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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프리머스 펀드 (4) (7/529)

 7화. 프리머스 펀드 (4)

 우리는 회사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부대찌개집이네요.”

 “여기가 맛집이래요.”

 전에 동호 선배에게 끌려왔던 곳이다. 그 뒤로도 엄청 다녔지.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서 가게는 한산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직장인들이 몰려들겠지만.

 “할 얘기가 뭐예요?”

 “프리머스 펀드 알죠?”

 “물론이죠.”

 “이번에 그 펀드 추천 리포트를 쓰는데 뭔가 좀 이상해서요.”

 내 말에 그녀는 물을 따르던 손을 멈췄다.

 “뭐가 이상한가요?”

 “그러니까······.”

 난 부장에게 보고한 내용을 대충 설명해주었다.

 “수익률을 부풀린 정도가 아니라 보유자산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요?”

 “현재 기관 쪽에서 2천억 규모의 환매 요청이 들어왔는데 환매가 지연되고 있어요.”

 “그건 보유 채권을 매각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런 거 아니에요?”

 채권이든 주식이든 한 번에 많은 양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으면 제값을 받기 힘들다.

 대량의 환매 요청이 들어올 경우 기한을 정해놓고 순차적으로 매도하기 때문에, 지급이 늦어지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요. 뭔가 이상하잖아요.”

 “뭐가요?”

 “단기간에 팔기 힘들 정도의 물량인데, 어떻게 단기간에 매입했을까요?”

 단기간에 팔면 제값 받기 힘들다는 얘기를 반대로 하면, 단기간에 사면 제값에 사기 힘들다는 말과 동일하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대규모 공사를 할 때는 채권을 발행한다.

 이때 이 채권을 매수하거나 대금으로 받은 회사들은 만기까지 기다려 상환받는 대신, 빠른 유동성 확보를 위해 시장에 내다판다.

 프리머스 펀드는 그러한 채권을 사들여 수익을 낸다.

 문제는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트리플A등급 채권이면 할인해서 판매하는 물량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채권의 발행금리는 고정되어 있지만, 가격은 수시로 변하잖아요. 이런 상품을 단기간에 대량으로 매입했다면 가격이 치솟았을 테고, 그럼 수익률이 떨어져야 하지 않나요?”

 “그건 그만큼 경영진의 영업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그럼 아무 문제 없겠네요. 끓기 시작하는데 슬슬 먹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뭔가를 눈치챘을 것이다.

 프리머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건 아니다. DA증권 내부에서도 문제를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녀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성윤아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최근 이피엔케이에 대해 조사 중이에요.”

 난 힘들게 기억을 떠올렸다.

 “김명훈 과장님 건이죠?”

 “맞아요.”

 트레이딩 부서의 김명훈 과장은 이피엔케이를 매수해 큰 손실을 냈다.

 현재 리스크부서에서는 그와 관련해서 비리가 있지는 않은지 조사 중이다. 트레이더가 작전세력과 연계해 주가를 조작하는 일은 간간이 있다. 뒷돈을 받고 회사 경영진이 파는 주식을 고가에 매수해 고의적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힌다든지.

 “이피엔케이가 거래정지 직전에 대량의 CB를 발행했는데 그게 전부 완판됐어요.”

 CB란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회사채이긴 하나 일정기간이 지난 뒤 해당기업의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어디서 사갔는지 확인됐나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요.”

 “뭔가요?”

 “이피엔케이 사외이사 임태원이 프리머스 부대표예요.”

 난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사실은 알고 있던 내용이다.

 나중에 사태가 터진 뒤 알았지만 그녀는 나보다 훨씬 먼저 프리머스 펀드의 자산 매입내역을 지적하며 감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이피앤케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프리머스 펀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혹시 그 CB를 사간 곳이 프리머스 펀드일 가능성은요?”

 “설마요. 프리머스 펀드는 메자닌에 투자를 안 하잖아요.”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이미 의심이 자리 잡은 상태.

 난 그 의심에 부채질을 했다.

 “최근 코스닥뿐 아니라 비상장기업들이 발행한 사모사채가 완판되는 일들이 많았어요. 파라다이스피크, 에이트캐쉬, 와이엠씨머니, 나인오리온 등등. 이 기업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뭔가요?”

 “바로 임태원을 비롯해 프리머스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이 등기이사로 있다는 거예요.”

 그녀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에요?”

 난 재빨리 치고 들어갔다.

 “프리머스 펀드가 매입한 자산목록이 정말 맞을까요? 혹시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구매한다고 해놓고, 다른 자산을 매입했을 가능성은요?”

 성윤아는 눈을 크게 떴다.

 “진심으로 하는 얘기예요?”

 “제 생각에는 지금 펀드를 추가 모집하고 있는 게 운용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게 말이 돼요?”

 사실 말이 안 된다.

 펀드의 구조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으면,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고객이 증권사에서 펀드를 구매하면, 고객의 계좌에 있던 돈이 증권사 계좌로 들어온다.

 증권사는 이 돈을 자산운용사에 직접 주는 게 아니라, 중간에 자금을 맡아서 관리하는 수탁기관에 넣는다.

 자산운용사는 이 수탁기관을 통해 펀드자산을 매매한다.

 즉, A라는 채권을 살 때, 직접 사는 게 아니라 수탁회사에 A채권 매수 오더를 넣고, 수탁기관이 A채권을 사서 보유한다.

 매도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번거롭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거래하는 이유는, 운용사의 배임이나 횡령을 막고 펀드 자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사무관리기관, 수탁기관, 판매사는 서로 업무정보가 공유되지 않아요. 중간에서 서류만 조작하면 얼마든지 속이는 게 가능하죠. 예를 들어, B를 사놓고 판매사에는 A를 샀다고 보고한다든지.”

 “그건······.”

 그녀는 적당한 표현을 찾으려는 듯했으나 찾지 못했는지 그대로 내뱉었다.

 “사기잖아요.”

 그래서 DA증권이 망했지.

 원래대로라면 펀드 손실이 아무리 커져도 그것은 투자자의 손실이지, 증권사의 손실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게 가능한 경우는 하나뿐. 바로 사기다.

 사기인 게 밝혀지면 누군가는 투자자에게 배상을 해줘야 한다.

 “윤아 씨도 알겠지만, 사모펀드는 관계당국의 규제와 감독에서 비껴나 있어요. 당장 판매사만 해도 운용보고서 몇 장 받아보는 게 전부잖아요. 지금 DA증권이 1년 넘게 판매하고 있는데 자산내역이 사실인지 한 번이라도 검증해본 적이 있어요?”

 원래 사모펀드는 법인과 소수의 고액 자산가들의 투자상품이었다.

 그런데 가입금액이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낮아지고, 모집인원 규제도 완화되며, 이제는 은행과 증권사 창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국내 사모펀드사는 약 200개, 운용자금은 400조 원이 넘는다.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지만, 여전히 규제와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

 난 가지고 온 자료를 내밀었다.

 “의심 가는 거 몇 개를 뽑아봤는데, 이 거래가 실제 이뤄진 게 맞는지만 확인해줘요.”

 성윤아는 내가 건네준 자료를 살펴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신입인 그녀가 멋대로 조사를 진행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녀라면 다른 루트를 통해서라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 * *

 퇴근한 성윤아는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야근이지 뭐.”

 “한창 좋을 때인데 일만 하지 말고 연애 좀 해.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다.”

 “요즘 바빠.”

 “아무리 바빠도 연애할 사람들은 다 해.”

 그건 그렇다.

 회사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구랑 누가 사귄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회사에 마음에 드는 남자 없어? 너 좋다는 남자는?”

 성윤아는 코웃음을 치듯 말했다.

 “왜 이래? 엄마 딸이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마음에 드는 남자 생기면 꽉 붙잡아야 해. 머뭇거리면 다른 사람이 채간다. 엄마가 아빠한테 고백 안 했으면 너도 못 태어났어.”

 “네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샤워를 한 다음 머리도 말리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성윤아의 머릿속에는 낮에 한미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피엔케이에 대해 조사하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그게 프리머스 펀드와 관련이 있다고?

 금융사는 정보가 생명인 만큼, 운용사가 판매사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는 않는다. 또한 수익을 부풀리거나 약간의 부실을 감추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라는 거지?’

 입사 동기였음에도 얼마 전까지는 이름만 아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표정과 눈빛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한번 알아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 * *

 다음 날.

 난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6시가 되자마자 눈치 보지 않고 바로 퇴근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좀 떨어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 정장을 입은 20대 초반 여성이 안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난 손을 들어올렸다.

 “여기예요.”

 성윤아는 나를 보더니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동기지만, 이렇게 밖에서 따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오래 기다렸어요?”

 “한 시간 정도요. 전 칼퇴했으니까요.”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프리머스가 매입한 자산들은 전부 트리플A등급 채권이고 부실자산은 없는 걸로 나와요.”

 “정말요?”

 그녀는 나에게 자료를 내밀었다.

 “서류상으로는요. 하지만 지난달에만 1천억 규모의 채권을 추가로 매입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그런 거래량은 찾아볼 수 없어요. 보고서에도 어느 업체가 가지고 있던 물량을 매입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구요.”

 “그래요?”

 이게 얼마나 황당한 얘기냐면, 산 사람은 샀다고 하는데 정작 팔았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유채권 중에 내년 6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니더작센주 발행채권이 있는데, 정작 니더작센주는 그때가 만기인 채권을 발행한 적이 없어요.”

 “있지도 않은 채권을 샀다는 거네요.”

 전부 그녀가 나중에 보고서에 쓴 내용들이다.

 하지만 전부 묵살되었다. 이후 그녀는 지점으로 발령나며 회사를 그만뒀고, 덕분에 화재 참사를 피해갈 수 있었다.

 나름 전화위복인 셈이다.

 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추리하는 것처럼 말했다.

 “지난번에 모집한 펀드운용에 문제가 생겼을 거예요. 그래서 환매가 힘들어지니 추가로 가입을 받는 거구요.”

 성윤아는 인상을 찡그렸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 또 다른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건가요? 이건 폰지 사기잖아요.”

 찰스 폰지가 죽은 지 50년도 넘었지만 그는 인류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사기수법은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중요한 건 DA증권이 그 사기를 거들고 있다는 거죠.”

 비유를 하자면 대형마트에서 투플러스 한우라고 팔기에 샀는데, 알고 보니 썩은 돼지고기였던 셈이다.

 대형마트는 납품업체가 속여서 납품하는 바람에 몰랐다고 항변하겠지만, 그걸 제대로 검수하지 않고 진열해 판매한 건 마트의 책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를 샀는데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였고, 미국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인 줄 알았는데 베네수엘라 증시에 투자하고 있고, 독일 국채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를 샀는데 알고 보니 브라질 국채금리가 기초자산이라면?

 그럼 어느 누가 미쳤다고 DA증권을 믿고 거래하겠는가?

 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프리머스 펀드는 계속 팔리고 있어요. 더 큰 일이 생기기 전에 막아야 해요.”

 “뭘 어떻게 하려구요?”

 “프리머스 펀드에 심각한 부실이 있고 이를 돌려막기 하는 중이라면, 펀드 모집액이 커질수록 DA증권의 손실 역시 불어나요.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금이라도 빨리 터트리는 것뿐이에요.”

 그래도 지금 터트리면 배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돈을 못 돌려받은 피해자가 유독물질을 실은 트럭을 몰고 본사 건물로 돌진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겠지.

 성윤아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부실자산에 투자한 게 맞다고 해도 규모는 아직 파악이 안 되구요.”

 난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까보면 알겠죠.”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바로 위에 보고할 거예요?”

 “아니요. 프리머스 펀드를 DA증권으로 가져온 게 양정욱 전무예요. 그가 관련된 이상, 보고해봐야 조사할 리 없어요. 설사 사기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하더라도 그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숨길 거예요. 사실상 회사 내에서 터트리는 것은 불가능해요.”

 “설마요······.”

 실제로 그녀가 세 차례 낸 보고서는 전부 묵살되었다.

 이후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마지막 보고서를 낼 때쯤에는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사이 발을 뺄 사람들은 빼고, 관련자들은 자리를 옮기고, 양정욱 전무와 연관된 흔적을 지웠다.

 “프리머스 펀드를 건드린다는 건 양정욱 전무의 역린을 건드리는 거나 다름없어요.”

 “누구도 차기 회장의 그 역린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건가요?”

 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아요. 제가 건드릴 거니까요.”

 “······예?”

 양정욱 전무는 자신으로 인해 피해 입은 고객들을 버리고, 자신이 몸담았던 DA증권과 직원들을 버렸다.

 이런 인간이 금융그룹 수장 자리에 앉도록 놔둘 수는 없지.

 일이 터지면 양정욱 전무는 조사에 시간을 끌며 빠져나가려고 애쓸 것이다. 반드시 그가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

 성윤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DA증권은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은 신입사원이지만 내 직장생활은 그 뒤로 2년 더 이어졌고, 회사 내에서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중에는 나한테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었지만, 다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회사가 망하며 전부 실업자가 됐지만.

 그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을까?

 “도와줄 사람을 만나봐야겠어요.”

 “누구요?”

 양정욱 전무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장 큰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굴까?

 난 이름을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나중에 말해줄게요.”

 양현성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이제까지는 양정욱 전무가 그룹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됐다.

 하지만······.

 지금 프리머스 사태가 터지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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