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프리머스 펀드 (2)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에 따르면 큰일이 생기기 전 징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프리머스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그랬다.
대략 6개월 전쯤부터 여러 문제와 의혹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난 당장 프리머스 펀드 판매를 중단하고 자산내역을 조사해 봐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DA증권은 중소증권사다 보니 승진이 빠른 편이었고, 이때는 나도 대리 직함을 달고 있었다.
추천종목과 분석이 제법 맞아들며 나를 신뢰하는 고객들도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몇 차례 보고에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난 부장에게 따졌다.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데?”
“두 달 전부터 세 개 펀드의 환매가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자산 매각에 시간이 걸린다잖아.”
“전환사채 편법거래 의혹은요? 프리머스가 CB를 편법으로 거래해 뒤로 리베이트를 챙겼다는 담당자 증언이 나온 뒤, 이사진 중에 세 명이 갑자기 사임하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 헛소문이지. 이 바닥 그런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야?”
“단순 루머라고 보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 막 대리 단 놈이 뭘 안다고 자꾸 나대? 그러다가 프리머스랑 관계 틀어지면 니가 책임질 거야?”
“부실 규모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잘못했다가는 우리까지 덤터기 쓸 수도 있어요. 일단 투자 주의하라는 리포트 쓰고, 고객들에게도 알리겠습니다.”
“뭐? 야! 한미루!”
다음 날.
양정욱 전무가 나를 불렀다.
각종 사내행사와 회사 복도나 로비에서 보긴 해도 독대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물었다.
“윤영철 부장에게 얘기 들었는데, 프리머스 펀드와 관련해 여러 의혹이 있다면서요?”
“예. 보고서에 쓴 내용 그대로입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얘기들도 그렇지만, 2년 만에 운용자산 규모가 3배 넘게 커졌음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시장의 변동성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수익을 내고 있는 점도 좀 이상합니다.”
양정욱 전무는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투자자들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프리머스 측에서 펀드 자료를 공개하고 의혹을 해명해야 합니다. 기존에 제출한 자료들과 실제 보유자산이 맞는지 검증도 필요합니다.”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회사 차원에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예? 정말입니까?”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 미리 얘기가 새나가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수도 있고, 저쪽에서 맞춰서 대응할 수도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아,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개 직원인 내가 문제를 느꼈을 정도면 위에서는 진작 인지했을 것이다.
괜히 조사 중인 일에 나섰다가 초칠 뻔했다.
양정욱 전무는 다정하게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으로써는 아무 문제없을 가능성이 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한미루 씨.”
“알겠습니다, 전무님.”
난 그 말을 믿고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얘기가 없었고, 양정욱 전무는 갑자기 DA은행 부회장으로 영전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대한민국 최악의 사모펀드 사기 사건으로 기록된 프리머스 사태가 터졌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양정욱 전무는 프리머스 펀드가 다른 곳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침묵했던 이유는 거액의 판매수수료 때문이다.
양정욱 전무는 박태일 대표의 실력을 믿었고, 약간의 손실이 있더라도 금방 복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부실을 눈치챈 시점에서는 이미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때문에 이를 바로 공표하는 대신 계속 판매하며 책임 회피를 위한 시간벌기에 나섰다.
그사이 정치인과 유력인사들에게 연락해 펀드에서 돈을 빼게 했고, 양정욱 전무와 몇몇 경영진들은 프리머스 펀드와의 관련성을 지운 다음 DA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졌을까?
그건 남아있는 직원들의 몫이었다. 회사는 마치 외부에 보여주기라도 하듯 관련자들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감봉, 보직해임, 대기발령, 해고 등등.
여기에는 그동안 수십 차례 추천 리포트를 쓴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문제를 지적한 보고서는 정식으로 올라간 적이 한 차례도 없었고, 양정욱 전무 역시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한 걸로 되어있었다.
나나 다른 직원들 모두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지만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정작 책임질 위치에 있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다 빠져나갔다.
펀드 투자자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결과 그 참사가 발생했다.
수많은 직원들이 죽고 다쳤다. 그들은 화재보상 외에는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했다. 살아남은 직원들도 회사가 망하며 일자리를 잃고 쫓겨났다.
양정욱 전무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고, 직원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DA은행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호 선배를 대신해 그 자리에 나갔다.
직원과 유족들의 계속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차례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나오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바로 경호원들에게 붙들렸다.
난 바닥에 짓눌린 상태에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잘못이잖아! 전 재산을 잃은 사람과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건데!? 당신이 책임져야 할 거 아니야!”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로 걸어가던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걸음을 멈췄다.
“그게 왜 제 책임이죠?”
“뭐라고?”
“잘못된 리포트를 쓴 사람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투자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게 쓰기 전에 좀 잘 알아보지 그랬어요, 한미루 씨?”
“······.”
그는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내 앞에 내려놓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한 것 같은데, 이만 집에 들어가서 씻고 쉬어요. 맛있는 것도 좀 사먹고. 여기서 백날 이래 봐야 바뀌는 건 없을 테니.”
난 차 문이 닫히기 직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무심한 표정 뒤에는 비웃음이 감춰져 있었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직접 본 그의 모습이었다.
* * *
“오랜만이라니. 우리 전에 봤었나요?”
양정욱 전무의 목소리에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난 아무렇게나 말했다.
“며칠 전 로비에서 지나가실 때 인사했었습니다.”
양정욱 전무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랬군요. 오랜만에 보지 않으려면 앞으로는 자주 구내식당에 들러야겠는데요.”
그는 밥을 먹으며 직원들에게 물었다.
“회사에 문제점이나 고쳐야 할 부분 같은 건 없나요?”
그의 물음에 주변에 있는 직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전혀 없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우리 회사가 최고입니다.”
“하하! 저한테 직접 말하기 힘들면 익명으로 사내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회사가 집이라면 직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직원이 행복하게 일해야 회사도 잘 되는 거니까요.”
가족들 죽든 말든 다 버리고 튄 새끼가 말은 잘한다.
가식적인 새끼.
난 속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하며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저쪽 테이블에서 이쪽을 보고 있던 우리 부장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모른 척하고 말했다.
“전무님께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양정욱 전무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요. 어떤 질문인가요?”
“만약 회사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흠, 좋은 질문이네요.”
양정욱 전무는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답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증권사는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는 고객의 자산을 보호하고 신의성실원칙에 따라 운용할 책임이 있습니다. 설사 당장 회사에 불이익이 생기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으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직원들은 감탄했다.
“너무 좋은 말씀이세요.”
“명심하겠습니다.”
답변만 놓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안 했지만.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전무님.”
* * *
자리로 돌아가기 전.
난 동호 선배와 함께 커피를 사러 밖으로 나왔다.
동호 선배는 휘핑크림을 휘저으며 말했다.
“너 왜 부장님이 직접 리포트 쓰라고 지시했는지 알아?”
“프리머스 펀드를 DA증권으로 가져온 게 양 전무님이니까요. 펀드 판매가 전무님 실적으로 잡히는 만큼 부장님께서 직접 챙기는 거 아니에요? 추천 리포트 잘 써서 내면 전무님이 빵긋하실 테니까요.”
내 말에 동호 선배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야? 너 왜 이렇게 잘 알아? 누구한테 들었어?”
1회차 때 선배한테요.
동호 선배는 직장생활은 라인이 생명이라면서 나름 열심히 연구했었다. 그런데 제대로 라인 타기도 전에 회사가 망했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었어요.”
동호 선배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차피 몇 년 안에 회장님이 은퇴할 거 아니야. 그럼 양정욱 회장이 물려받을 테고.”
“그렇겠죠.”
DA금융그룹 양현성 회장은 1남 1녀를 뒀다.
한국 재벌들은 가업을 승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회장 아들이 다음 회장이 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양정욱 전무가 증권사로 온 이유가 후계자 수업 과정이라는 얘기가 있어. 알다시피 DA금융그룹이 은행과 카드, 생명 다 잘나가지만 증권은 약세잖아. 그래서 그룹 차원에서도 지원하며 실적을 몰아주는 거지.”
아무리 핏줄로 세습한다고 해도, 능력이 없는 사람이 회장직에 앉는다고 하면 주주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러니 후계자는 경영능력이 있다는 것을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어쨌거나 너한테는 좋은 기회야. 리포트 잘 쓰면 부장님이 예뻐하실 거 아니야? 회사생활이라는 게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거든. 다시 말해 라인을 잘 타야 한단 말이지. 잘 쓸 자신 있어?”
“쓰는 건 문제없어요.”
멋도 모르던 1회차 때도 꽤나 잘 써서 제출했다.
부장은 매우 흡족해했고 이후에도 계속 나에게 펀드 추천 리포트를 맡겼다.
그렇게 분기마다 리포트를 써냈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니가 보기에는 프리머스 펀드 어때? 작년에 6퍼센트 수익 났다며? 나도 프리머스 펀드 가입할까?”
“주식은요?”
“이제 안 하려고. 생각해보니 안정적인 게 최고인 것 같아.”
“······.”
실제로 동호 선배는 프리머스 펀드를 샀다. 애널리스트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지뢰만 골라서 밟는지 신기하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니?”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 생각에 선배는 투자를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동호 선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응?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