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프리머스 펀드 (1)
일이 터지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뒤.
그때까지 프리머스 펀드는 3조 원이 넘게 팔려나갔다. 홍보에 입소문이 더해지며 기관투자자, 기업, 고액 자산가들뿐 아니라 일반 고객들까지도 뭉칫돈을 넣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환매가 지연되기 시작했다. 프리머스 측은 펀드 자산을 매각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라고 해명했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환매는 이뤄지지 않았고, 펀드 돌려막기 의혹이 확산됐다. 금융감독원이 현장검사에 나서고, 회계법인이 펀드를 실사했다.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선진국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만 투자한다는 것은 거짓이었고, 펀드에는 온갖 부실자산이 가득 쌓여있었다.
경영진이 펀드 자산을 횡령한 정황도 발견되었다. 표시된 평가액은 3조 2천억 원이었지만, 실제 남은 자산은 500억도 채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사기였고,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후 최악의 금융부실 사태였다.
조사가 시작되자 회사는 문을 닫았고, 박태일 대표는 모습을 감췄다.
금융범죄의 특징은 피해액이 크고 다수의 피해자들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돈을 날린 피해자들은 일제히 펀드를 판매한 DA증권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평생 일해 모은 돈을 넣은 자영업자, 결혼자금을 모으던 청년, 퇴직금을 투자한 퇴직자,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넣은 주부 등등.
DA증권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은 판매사일 뿐이고, 프리머스 자산운용사가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 말이 먹힐 리 없었다.
금감원은 DA증권이 우선적으로 피해자들에게 70퍼센트를 배상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그러나 배상금 규모는 증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70퍼센트라고 해도 2조 원이 넘는데, DA증권 자산을 전부 매각해봐야 1조 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피해자들은 DA금융그룹 차원의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계열사 하나 살리자고 그룹 전체가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 당연히 주주들은 반대했고, 경영진들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DA금융그룹은 DA증권에 대한 지원 포기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피해자들이 배상받을 길은 사라졌다.
수많은 가정이 파탄 났고,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 중 화학회사 연구원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었다.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잃고,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걸 본 남자는 공장에서 몰래 빼돌린 인화물질과 유독물질을 트럭에 가득 싣고 DA증권 본사로 돌진했다.
인화물질이 연쇄폭발하며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은 불길에 휩싸였고 유독가스가 사방으로 퍼졌다.
스프링쿨러가 작동했지만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상자 192명. 그중 사망자는 112명.
대부분이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한 질식사였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호흡기에 큰 손상을 입었다.
한국 금융 시장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가 밀려들었다.
연기를 마시고 쓰러져 의식이 없던 나를 동호 선배가 들쳐 업고 끌어내서 살려냈다. 그 과정에서 동호 선배는 화상에 기관지를 다치는 장애를 얻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입사 동기, 학교 선배, 같이 밥 먹던 타 부서 동료, 평소 인사 나누던 경비원 아저씨 등등.
이 사건으로 한동안 여론이 시끌시끌했다.
추모의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악플을 다는 사람도 많았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프리머스 펀드에 투자해 전 재산을 날리고 아내까지 잃은 피해자였다. 그 역시 그 자리에서 죽었기 때문에 원망해봐야 소용없었다.
그 이후, 난 한동안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내가 매달 프리머스 펀드 추천 리포트를 썼지.”
나 역시 몰랐다.
회사에서는 프리머스 펀드가 안전하다고 했고, 그냥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까?
개인 피해자들 상당수는 지점 직원의 추천을 믿고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만든 리포트는 판매와 홍보에 사용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나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졌을 수도 있다.
그때는 멋모르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추천 리포트를 썼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이제는 이게 사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미래를 알고 있다면······.
“바꾸는 것도 가능하겠지?”
난 우선 프리머스 펀드가 매입한 자산목록을 살펴보았다.
기업의 실적에 따라 가치가 수시로 변동하는 주식과는 달리, 채권은 수익률과 만기가 정해져 있다.
프리머스 펀드가 투자한 자산은 전부 AAA등급.
자산편입 내역을 보면 전부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들이다. 한마디로 해당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부도가 날 확률은 제로다.
최근 3개월 수익률은 1.6퍼센트, 작년 수익률은 6.2퍼센트다.
주식형은 물론이고, 채권형 펀드 중에서도 이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펀드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프리머스 펀드는 부도위험이 없는 채권에만 투자해 이 정도 수익률을 올렸다.
은행예금만큼이나 안전한데 수익률은 은행금리보다 높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동안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거고.
지금 시점에서는 몇 번을 확인해 봐도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뭐, 당연한 건가?”
증권사 경영진과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내가 서류만으로 알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 눈치챘겠지.
* * *
해결방법은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하고,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회귀를 했다고 생각하니 왠지 구내식당 모습이 정겹다. 맛은 별로 없지만 여기서 많이 먹었는데.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으려는데 누군가 손짓했다.
“미루 씨! 여기예요!”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 둘과 여자 한 명이 앉아있는 테이블 쪽이었다.
셋 다 내 입사 동기들이다.
손짓을 하고 있는 남자는 황영민. 법인영업부 소속으로 채권브로커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많다.
그 옆에 있는 안경 끼고 머리가 짧은 남자는 배근석으로 트레이딩 부서에 있다. 나이는 나와 동갑.
마지막으로 그 맞은편 여자의 이름은 성윤아.
내 입사 동기로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무려 뉴욕대를 나온 재원이다. 유학파답게 영어는 유창했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들었다.
학력도 좋고 업무능력도 뛰어난데 외모도 빼어나다.
160센티가 살짝 넘는 키에 늘씬한 몸매. 작고 갸름한 얼굴, 매끄럽고 환한 이마, 그린 듯 가지런한 눈썹과 커다란 눈, 반듯한 코와 붉고 도톰한 입술.
긴 머리는 방해되지 않도록 하나로 묶고 화장도 단정히 했다. 아직은 사회 초년생 같은 풋풋함이 느껴졌다.
황영민은 특유의 촐싹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동기끼리 점심 먹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배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네요.”
DA증권 상반기 공채로 들어온 사람은 총 21명.
그중 적성에 안 맞아서 퇴사한 사람과 지점으로 간 사람을 제외하고 본사에는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이 남았다.
성윤아는 나를 보며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아니요. 딱히.”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어요?”
“그게······.”
일전에 벌어졌던,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배근석은 화재 사건 당시 죽었고, 황영민은 살아남긴 했지만 크게 다쳤다. 성윤아는 그전에 회사를 그만둔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그녀를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입을 여는 순간 황영민이 먼저 말했다.
“저기 양정욱 전무님 아니에요?”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40대 초반 정도의 남성이 구내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평소 관리를 잘하는지 어깨가 넓고 체구가 좋다. 표정에서는 살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은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는 원래 DA생명 이사로 있었으나, 작년에 DA증권 전무로 영전했다. DA증권은 중소 증권사다 보니 부사장이 없고 사장 밑이 바로 전무다.
사실상 조직의 2인자인 셈이다.
겨우 43세에 전무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천재적인 경영능력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라, DA금융그룹 양현성 회장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뒤에는 마치 수행이라도 하듯 여러 명이 따라다녔는데, 그중 한 얼굴이 낯이 익어서 자세히 보니 우리 부장님이다.
어쩐지 오전 내내 안 보이더니 라인 타느라 바쁘셨구나!
이게 다 우리 부서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밥을 먹다 말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전무님.”
“여,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양정욱 전무는 웃으며 말했다.
“저도 밥 먹으러 온 거니, 일어나지 말고 편하게 식사들 해요.”
전무가 와있는데 편하게 식사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배식 받았다.
배근석은 그 모습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대단한 것 같지 않아요? 전무님 오고 나서 DA증권이 엄청 컸잖아요.”
이건 사실이다.
왜냐하면 DA금융그룹 차원에서 실적을 몰아주고 있으니까. 양현성 회장에게 아들은 양정욱 전무밖에 없는 만큼 사실상 차기 회장으로 낙점되어 있다.
황영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프리머스 펀드를 가져온 것도 양정욱 전무님이시잖아요.”
“미래투자증권, 유성증권, KC증권 등도 눈독 들였다는데, 어떻게 독점판매를 따낸 거예요?”
성윤아가 말했다.
“프리머스 자산운용 박태일 대표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데요.”
“아, 그래요?”
“인맥이든 어쨌든 기관을 상대로 영업을 잘한 셈이네요.”
얘기를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문제였죠.”
“예? 무슨 말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프리머스 펀드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곧 양정욱 전무의 경영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러니 아무도 조사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게 문제를 더 키웠다.
배근석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어! 이쪽으로 오시는데요.”
그 말대로 양정욱 전무는 혼자서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신입사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모양이다.
“여기 앉아도 되나요?”
황영민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무, 물론입니다.”
양정욱 전무는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눴다.
“구내식당 음식은 입에 맞나요?”
“그럼요.”
“아주 맛있습니다.”
그냥 전무라도 어려운데 상대는 무려 그룹 차기 회장. 이병이 군단장과 함께 밥 먹는 기분이 이런 거겠지?
양정욱 전무는 성윤아에게 물었다.
“일하는데 힘든 점은 없나요?”
“없습니다, 전무님.”
양정욱 전무는 웃는 표정으로 주변에서 밥을 먹는 직원들과 농담 섞인 얘기를 나누었다. 격식 없는 그의 태도에, 처음에는 잔뜩 긴장하고 있던 직원들도 점차 표정을 풀었다.
겉으로 봐서는 직원들을 챙기는 자상한 임원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양정욱 전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밥이 별로 맛이 없나 보네요.”
“예?”
“아까부터 식사를 안 하고 있어서요.”
“아, 네.”
사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입맛이 뚝 떨어졌다.
그는 날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
난 양정욱 전무를 보며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무님.”
그를 보니 저절로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