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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증권사 신입사원 (2) (3/529)

 3화. 증권사 신입사원 (2)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아는 미래는 10년 후.

 다시 말해 10년 후면 내 머릿속에 있는 정보는 쓸모가 없어진다. 그러니 10년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잘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신입사원답게 부서에 제일 먼저 출근한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하아.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러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회를 잡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마당에 굳이 회사를 다닐 필요가 없다. 열심히 일해서 이 회사 사장이 될 것도 아니고.

 당장 사직서를 쓰고 세상이라는 바다를 향해 돛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그 사건.

 나갈 땐 나가더라도 그건 해결하고 나가야 할 것 같은데.

 시킨 일을 끝마친 나는 서류를 들고 우백현 과장에게 보고했다.

 “아까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지고 배가 나온 중년의 과장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오전에 시켰는데 벌써 다 했다고? 일 대충 하고 그러면 안 돼.”

 우백현 과장은 둥글둥글한 외모와는 달리 깐깐한 성격이다. 만들어온 자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시킨다.

 잔고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뭐야? 나 왜 이렇게 돈이 없어?”

 통장 잔고는 고작 500만 원.

 잠시 생각해보고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아, 일부는 학자금 대출 갚고, 나머지는 주식으로 날려먹었구나.”

 급한대로 일단 있는 돈으로라도 사기로 했다.

 내가 사려는 주식은 아직 비상장.

 다행히 대형 증권사의 경우 고객편의와 수수료 장사를 위해 비상장 주식을 거래하는 플랫폼도 운영한다.

 여기서 거래되는 종목들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다행히 내가 원하는 주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매분기 이어지는 적자 때문에 차트는 지속적인 하향세를 그리는 중.

 현재 매매가는 6500원.

 난 클릭해 770주를 매수했다.

 동호 선배는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부대찌개 맛집 알아놨어.”

 난 동호 선배 손에 끌려서 회사 밖으로 향했다.

 허름한 가게는 정말로 맛집인지, 우리가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의도 직장인들로 꽉 들어찼다.

 “너 여기 처음 와보지?”

 “아마도요.”

 여기도 오랜만이네.

 “그런데 아까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좋은 정보가 있으면 함께 나눠야겠지?

 난 동호 선배에게 물었다.

 “혹시 레드홀 스튜디오라고 아세요?”

 “레드홀? 헤라 만든 곳?”

 “맞아요.”

 레드홀 스튜디오는 게임회사로 과거 헤라라는 MMORPG를 제작했다.

 “자회사 통해서 신작게임 개발 중이라는데 들어봤어요?”

 “들어본 것 같은데.”

 “정식공개는 다음 주인데 일단 내일 베타서비스 시작할 거예요. 장르는 PC용 FPS.”

 “그래서?”

 “친구 말에 따르면 이거 잘될 것 같다는데.”

 동호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거 쫄딱 망할걸.”

 “어째서요?”

 “지금 FPS는 오버클락이 꽉 잡고 있어. 한국 중소게임사가 비빌 만한 상대가 아니야. 그리고 이번 게임 심의등급이 청소년이용불가일걸. 반면 오버클락은 12세 이상이고. 거기서부터 이미 상대가 안 된다고 봐야지.”

 “그래도 잘 만들면 가능성 있지 않을까요?”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마케팅은 어떻게 할 건데? 아이스스톰이 오버클락 런칭할 때 전 세계에 쏟아부은 마케팅비만 해도 수천만 달러는 될걸. 레드홀 스튜디오가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건 힘들겠죠.”

 “지금 회사 사정도 별로 좋지 않을걸. 조만간 구조조정하고 자회사들 정리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

 “그거야 게임이 뜨면 해결되지 않아요?”

 “게임이 뜨기만 하면 대박이라는 거 누가 몰라? 그럼 다른 게임회사는 대박 내기 싫어서 안 내고 있겠어? 대한민국 3대 게임사로 불리는 렉슨만 해도 10년 동안 출시한 신작들이 줄줄이 망했어. 걔들 던전 앤 워리어즈 없었으면 매출 반토막 났을걸. 스마일도어는? 신작 쫄딱 망해서 얼마 전에 서비스 종료했잖아. 개발비는커녕 마케팅비도 제대로 못 건졌어.”

 그 말대로 최근 출시된 신작 게임들은 줄줄이 고배를 마셨고, 대형게임사들은 대부분 과거 IP로 먹고 살고 있다.

 괜히 요즘 신작게임 대신 2, 3, M(모바일) 등을 붙여서 내놓는 게 아니다. 새로운 게임을 띄운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긴 하지.

 내 표정을 본 동호 선배가 물었다.

 “그런데 그건 왜? 너 설마 주식 사게?”

 “조금만 사볼까 해서요.”

 사실은 이미 샀지만.

 “그거 비상장인 건 알지?”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거래되는 기업들은 대략 2천 개.

 이들을 상장기업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속해있지 않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상장기업이다.

 HTS나 MTS에 접속해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주식을 살 수 있는 상장기업과는 달리, 비상장기업의 주식은 장외거래소를 통해 사야 한다.

 아무리 잡주나 동전주라 하더라도 거래소에 있는 기업들은 최소한의 요건을 통과한 상장기업이다. 하지만 비상장기업의 경우 공시의무도 없고, 회계감사를 제대로 받지도 않고, 재무제표도 불투명하다.

 한마디로 기업 상태가 어떤지를 내부자가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에 대한 투자는 가끔 대박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쪽박을 찬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손을 댈 만한 시장이 아니다.

 “애초에 비상장주는 건드리는 게 아니야. 주식시장에 사기꾼들이 넘쳐난다고 하지만, 장외거래소는 그야말로 사짜들 집합소야. 전문가들도 잘못 들어갔다가 귓방망이 처맞고 ‘아!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하고 울며 나와.”

 비상장주식 거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매수자와 매도자가 제한적이라 매수호가와 매도호가의 갭이 큰 편이고, 상한가 하한가도 없다.

 운 좋으면 하루에도 10배가 오르기도 하지만, 반대로 10만 원에 산 주식이 자고 일어났더니 1만 원이 돼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친구가 괜찮을 것 같다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사볼 생각 없어요?”

 동호 선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개잡주 사지 말고 나처럼 우량주에 투자해. 한정물산 얼마나 좋아? 지금 저평가되어 있으니까 이런 주식은 꾸준히 사놓으면 나중에 노후자금 된다니까.”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전혀 살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게임 대박날 테니 믿으라고 해봐야 안 믿을 테고.

 “그런데 아까 보니까 한정물산 5만 원 깨졌던데.”

 내 말에 동호 선배는 인상을 팍 썼다.

 “어허! 장기투자 몰라, 장기투자!”

 “물려서 강제 존버 타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부터 물 타기 들어갈 거야.”

 “물 타기 하다가 대주주 되시겠어요.”

 “······시끄러.”

 날아간 돈이 생각나는지 동호 선배는 울상을 지었다.

 * * *

 점심을 먹고 돌아온 나는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널찍한 방안에는 깐깐하게 생긴 안경 쓴 중년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의 이름은 윤영철.

 직책은 부장으로 리서치부서의 최고책임자다.

 보통 이 정도 위치쯤 되면 기관투자자나 기업담당자들과의 미팅이 잦아, 회사 안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편이다.

 “찾으셨습니까?”

 윤영철 부장은 날 보더니 말했다.

 “입사한 지 이제 반년쯤 되가나? 업무는 좀 적응됐어?”

 적응은 예전에 다 끝마친 것 같지만.

 “최선을 다 해 배우는 중입니다.”

 내 대답에 윤영철 부장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우백현 과장이 똑똑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칭찬하던데. 원래 남 칭찬 잘 안 하는 사람이 말이야.”

 “감사합니다.”

 윤영철 부장은 자료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에 펀드 추천 리포트 낼 건데, 여기 있는 내용 잘 정리해줘. 수익률도 좋고, 고객 만족도도 높은 펀드라는 점을 부각시켜서. 모르는 거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이걸 맡긴다는 것은 슬슬 정식 업무를 해보라는 뜻이겠지?

 자리로 돌아온 나는 자료를 펼쳐보았다.

 첫 페이지에 추천하는 펀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프리머스 펀드.>

 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거 때문이었지.”

 * * *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펀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기본적으로는 주식형과 채권형으로 나뉘지만, 부동산, 원자재, 파생상품을 담는 펀드도 있고, 이를 적당히 섞어 혼합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특정 국가, 산업, 업종에 투자하는 펀드, 심지어는 ETF를 모아서 만든 펀드나 펀드를 모아서 만든 펀드도 있다.

 최근 증권가는 사모펀드 열풍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펀드가 존재했다.

 프리머스 펀드(Primus Fund).

 정식명칭은 ‘프리머스 안정형 채권전문 투자형 사모투자펀드’로 발행순서에 따라 뒤에 숫자와 알파벳이 붙는다.

 대부분의 경우 은행과 증권사는 판매만 할 뿐, 실제 펀드를 만들고 운용하는 곳은 따로 있다.

 프리머스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는 프리머스 자산운용사.

 대표는 박태일로, 사모펀드와 채권시장에서 꽤나 유명인이다. 원래는 법인전용 펀드를 만들어 기업을 상대로 영업했는데,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도 투자요청이 많았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를 발행해 미래투자증권과 NJ증권 등에서 판매해 왔다.

 은행예금만큼이나 안전한데 수익률은 은행금리보다 높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프리머스 자산운용사는 공격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섰고, 설립된 지 5년 만에 설정액만 3조 원이 넘으며 업계 1위 운용사로 성장했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의 러브콜이 쇄도했고, 여기저기서 펀드를 모셔가기 위한 경쟁을 펼쳤다.

 놀랍게도 DA증권이 그 경쟁에서 이겼고, 작년부터 독점판매를 시작했다.

 그 펀드가 바로 ‘프리머스 안정형 채권전문 사모투자펀드’다.

 채권형 펀드로 설정금액은 5천억 원, 목표수익은 5퍼센트. AAA등급의 선진국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만 투자한다.

 가입액은 최소 1억 원이었지만, 기관투자자와 고액 자산가들이 몰리며 모집은 순식간에 마감됐다.

 그래서 이번에 5천억을 추가로 모집한다.

 워낙 인기가 좋다 보니 내놓기만 하면 완판되고, 지점에도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프리머스 펀드 가입을 위해 DA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도 많았다.

 거액의 판매수수료뿐 아니라 신규고객 유치 효과까지. 효자 상품도 이런 효자 상품이 없다.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어디 가서 ‘펀드 손실로 인해 증권사가 망한다’고 말하면 무식하다고 욕먹기 딱 좋다.

 펀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기인지 알 테니.

 펀드는 주식이나 채권과 마찬가지로 투자다. 그리고 투자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수익이 나는 펀드가 있다면, 마이너스가 나는 펀드도 있다. 그렇다고 손실에 대해 증권사가 책임을 지는 일은 없다.

 따라서 펀드가 잘못돼 증권사가 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건 경우가 좀 달랐다.

 “보시고 부족한 점 말씀해주시면 다시 해오겠습니다.”

 우백현 과장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자료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아니. 지난번이랑 다르게 엄청 잘했는데. 이거 혼자서 만든 거 맞아?”

 “예. 저 혼자서 만들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어?”

 대리까지 달았었는데 이 정도는 껌이지.

 “과장님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우백현 과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알겠습니다.”

 일하는 사이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뭔가를 하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금융시장에서 정보만 있으면 돈을 버는 건 쉬운 일이다.

 마침 딱 좋은 정보가 하나 있다.

 내일이면 그 게임이 공개된다. 그러면 주가는 바로 폭등한다. 그러니 그 게임회사 주식을 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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