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증권사 신입사원 (1)
콰당!
“쓰읍!”
낙하의 충격과 고통이 느껴졌다.
이제 난 죽은 건가?
그런데 왜 이렇게 온몸이 아프지?
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몸에는 이불이 감겨 있고 옆에는 침대가 있다. 누가 보면 자다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진 줄 알겠는데.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비좁은 방. 그런데 어째 좀 익숙하다. 예전에 살던 집과 똑같다. 심지어는 침대 위의 벽지에 곰팡이 슨 것까지.
“여긴 사후세계인가?”
그래서 예전에 살았던 곳이 구현되어 있는 건가?
뭔가 신기하다.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사후세계라는 게 존재할 줄이야.
그런데 화장실이 좀 급하다.
죽어도 생리현상은 해결해야 하는 건가?
일단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으려던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헉!”
얼굴에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가 매끈하다. 얼굴만 봐서는 10년은 젊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두 손을 보자 기름에 데인 자국도 없이 깨끗했다.
“이게 대체 뭐야?”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허벅지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난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유성전자에서 출시한 코스믹L7.
내가 L16을 썼으니 대략 10년 전쯤 나온 폰이다. 요즘도 이런 구닥다리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있나?
액정에 뜬 이름을 본 나는 일단 전화를 받았다.
통화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외침이 들려왔다.
[야! 너 지금 어디야?]
“집인데요.”
[뭐? 집? 지금 10시가 넘었는데 출근 안 하고 뭐해?]
“출근이요? 선배 지금 저희 치킨집에 와있어요?”
[뭔 헛소리야? DA증권으로 오라고!]
“······예?”
DA증권 없어지지 않았어?
[당장 뛰어와, 임마!]
* * *
정신을 차린 나는 옷을 챙겨 입고 허겁지겁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가 여의도로 향하는 사이 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더럽게 느리네. 이거 앱 기반인가?”
홀로그램도 없고, 음성인식도 잘 안 된다.
난 올라오는 기사들을 훑어보고 SNS도 뒤져보았다.
옛날에 살던 집, 젊어진 내 얼굴, 선배의 전화, 오늘 날짜, 택시 차종, 자율주행 대신 운전대를 잡고 있는 택시기사, 거리의 모습 등등.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니 대략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혹시······ 나 회귀한 건가? 무려 10년을?”
그러자 택시기사가 물었다.
“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이건 말이 안 돼.
이런 일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아.
난 그렇게 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려 카드를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엄청 오랜만에 온 느낌이지만 난 길을 헤매지 않고 부서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3년을 넘게 다녔으니까.
첫 직장이었던 DA증권에서 내가 배정받은 곳은 리서치부서.
애널리스트(Analyst)들이 모여 향후 경제 전망과 시장 상황, 기업에 대해 분석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특정 산업을 전망하거나, 전도유망한 종목을 발굴하거나, 기업의 경영 현황을 분석하거나, 투자에 관련된 공개보고서를 작성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씩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너무나도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어! 선배!”
내 외침에 동호 선배는 당황했다.
“신입사원이 이 시간에 출근했으면 일단 죄송하다는 말부터 해야지.”
“신입사원이요?”
설마 나를 말하는 건가?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우백현 과장이 버럭 소리쳤다.
“그따위로 할 거면 당장 때려치워!”
* * *
점심시간.
남들 점심 먹으러 간 사이 난 시말서를 작성했다.
손으로는 시말서를 쓰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인가? 정말로 지금이 10년 전이야?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죽으면 거기서 끝나는 거 아니었어? 내가 돌아온 이유가 뭐지?
차에 치어서? 유성우를 봐서?
이유가 뭐든 중요한 건 10년 전으로 돌아왔다는 거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과거가 되었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경험으로 남았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된다.
그야말로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뭐가 말이 안 돼?”
누군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다. 안경을 쓰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겼다.
“동호 선배.”
“회사에서는 대리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임마.”
그의 이름은 이동호.
나이는 나보다 세 살 위로 나보다 3년 먼저 DA증권에 입사했다. 같은 리서치부서 대리로 증권 애널리스트다.
한국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나한테는 선배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대리님이라고 부르고, 밖에서는 편하게 선배라고 부른다.
“주말에 대체 뭐했기에 지각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어, 그게······.”
치킨배달하다가 차에 치어서 돌아왔다고 하면 안 믿겠지?
“그보다 선배 몸은 괜찮아요?”
“응? 내 몸이 왜?”
“아픈데는요?”
“딱히 없는데.”
확실히 얼굴과 목에 있던 화상자국도 없고 목소리도 멀쩡하다. 호흡도 매우 편해 보인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멀쩡하다니 다행이네요.”
“시말서는 잘 쓰고 있어? 직장인은 리포트보다 시말서를 더 잘 써야 돼.”
“대충 썼어요.”
동호 선배 내가 쓴 시말서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뭐야? 왜 이렇게 잘 썼어?”
그야 일하면서 사고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지. 시말서라면 질리도록 써봤다. 뭘 잘못했는지 주제만 주어지면 몇 장이고 뽑아낼 자신이 있다.
동호 선배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 너랑 같이 사는 친구 아직 LB스튜디오에 다니고 있지?”
“거기 망했······.”
“응?”
“아니, 아직 다니고 있죠.”
DA증권과 마찬가지로 LB스튜디오 역시 아직은 멀쩡하다.
“내가 이번에 LB스튜디오 리포트를 쓰거든. 거기 다음 달에 신작 출시한다는데, 그거 어떻게 될지 친구한테 한번 물어봐봐.”
애널리스트는 각자 분석을 담당하는 산업이 정해져 있다. 동호 선배의 경우 IT와 엔터테인먼트 담당.
“그것도 망했······.”
“응?”
난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 뭐 잘 되지 않겠어요?”
지금이 10년 전이 맞다면 그 게임 만드는 개발팀에서 열심히 개발 중일 것이다. 본인이 만든 게임은 무조건 초대박날 거라고 자신하면서.
“그럼 ‘기존 게임 매출 호조 속에 신작 게임 출시로 인한 실적과 밸류에이션 상승 예상’이라고 써야겠다.”
“그러다 망하면요?”
“아니면 마는 거지.”
“······.”
이렇게 대충 써도 되는 건가 싶지만 증권사 리포트라는 게 대체로 그렇다. 일단 긍정적인 전망부터 쓰고 보는 거지.
동호 선배는 자리로 돌아갔다.
멀쩡히 걷는 모습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된다.
“신작 게임?”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이쯤이면 그 회사도 신작 게임을 출시하지 않았나?
난 바로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내 기억대로 출시를 준비 중에 있다. 정확히는 이틀 후 오픈베타 서비스가 실시된다.
그 순간, 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지금이 10년 전이라면······.”
난 10년 후의 미래에서 돌아왔다.
다시 말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굳이 금융사 다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주방에서 닭을 튀기고 배달을 할 필요가 없잖아.”
현재 나는 증권사 월급쟁이.
하지만 10년 후에는 선우와 함께 치킨가게 사장이 된다.
열심히 장사를 했고 나름 맛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지만, 회귀까지 한 마당에 다시 치킨집을 목표로 할 이유는 없다.
내가 트레이딩 부서로 가기만 하면 1년에 100~200퍼센트 수익률 올리는 건 일도 아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뜰 만한 주식만 사놓고 묵혀놔도 수백억을 벌 수 있다. 건물 몇 채 사놓고 편하게 놀고먹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지. 회귀까지 한 마당에 고작 그 정도로 만족할 필요가 있나?
사람 위에 사람 없다지만, 부자 위에는 더 큰 부자가 있고, 재벌 위에는 더 큰 재벌이 있다. 그리고 돈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원래 내 미래는 치킨집 사장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난 10년 전으로 돌아왔으니까.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 하하하.”
* * *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신입사원이 시말서를 쓰다말고 신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백현 과장은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었다.
“니가 보기에 쟤 오늘 왜 저러는 것 같냐?”
홍창수 대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오다가 차에 치었나?”
* * *
난 야근까지 하고 집에 돌아왔다.
내가 사는 곳은 강남의 한 투룸.
원래는 친구가 혼자서 자취하던 집인데, 내가 취직하며 은근슬쩍 기어들어왔다.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취하려면 부담되지만, 친구와 함께 살면 월세랑 생활비도 나눠서 낼 수 있고.
넥타이를 풀고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데, 누군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복장은 청바지에 셔츠, 얇은 패딩. 더벅머리에 안경을 썼고, 코와 턱에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있다.
이 녀석의 이름은 강선우.
나와는 중학교 시절 만나서 고등학교까지 내내 붙어 다닌 친구다. 하이스트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는 LB스튜디오라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중.
취업난이 심각하다지만 IT업체들은 인력을 못 구해서 난리다.
여기저기서 오라고 손짓하는 곳들 마다하고 게임회사를 택한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
그리고 10년 뒤에는 좋아하는 치킨집을 차린다.
“······.”
그러고 보면 나름 좋아하는 일만 한 셈인가?
선우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은 퀭하고, 머리는 떡지고, 피부는 푸석푸석하다. 며칠은 제대로 못 잔 것 같은 모습이다.
“지금 시간까지 일한 거야?”
“그럼 놀다 왔겠냐?”
게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프로그래밍이든 시나리오든 디자인이든 전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출시가 다가오면 야근은 기본에 주말도 반납하고 일해야 한다.
오죽하면 이가 박박 갈린다고 해서 이를 크런치(Crunch)라고 부르겠는가?
이렇듯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개발자들의 노오오오력이 들어간다.
사람을 갈아 넣는 건 금융사나 게임사나 마찬가지지.
“저녁은 먹었냐?”
“아직. 넌?”
선우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나가서 치킨에 맥주나 한잔 하자.”
“응? 치킨?”
선우가 나를 데려간 곳은 집 앞의 치킨집.
다름 아닌 얘와 내가 10년 뒤에 할 프랜차이즈다.
“왜 하필 이 치킨이야?”
“뭔 소리야? 너 여기 치킨 좋아하잖아. 다른 브랜드 치킨은 먹지도 않으면서.”
“······.”
이때는 그랬었나?
결국 앉아서 주문했다. 선우는 두 손으로 닭다리를 잡고 뜯으며 말했다.
“역시 치킨은 여기가 최고라니까. 우리 나중에 할 거 없으면 치킨집이나 차릴까?”
그렇게 치킨집 창업한 사람이 전국에 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
난 한숨을 내쉬었다.
“차려봐야 본사 갑질로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응?”
“아니야. 계속 먹어.”
난 열심히 먹는 선우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넌 큰돈 생기면 뭐 하고 싶어?”
“큰돈이면 얼마?
“아주 많이.”
“로또 당첨금보다 많아?”
“응.”
쓸데없는 질문이었지만, 선우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럼 게임사 차려서 만들고 싶은 게임 만들 것 같은데.”
“그래?”
“응. 그게 내 꿈이니까.”
얘라면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게임 만드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으니.
‘100억 받고 평생 무위도식하기 VS 계속 게임회사 다니기’ 중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택할 놈이다.
문득 회귀하기 전 얘랑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서로의 꿈에 대해 얘기했었지.
“꿈이라······.”
처음 DA증권에서 입사했을 때만 해도 내 꿈은 세계적인 투자자로 명성을 날리는 거였다.
10년 후에는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지만, 이 시점의 나는 아직 그 꿈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모두가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막상 기회가 와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주저한다.
잘 몰라서, 할 줄 몰라서, 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어서, 힘들 것 같아서, 안 될 것 같아서 등등.
그렇게 매번 기회를 놓치고, 또다시 같은 후회를 반복한다.
그래서 결론은?
난 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좋아. 꿈을 위해서라면 목숨 걸고 달려들어야지.”
“응? 목숨까지?”
한국에서 부자라고 하면 대부분 재벌그룹을 떠올린다.
아무리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 창업해서 재벌그룹을 만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바로 투자회사를 차리는 거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외국에는 유명 사모펀드와 헤지펀드가 얼마든지 있다.
칼나인 그룹, KRR, 레드스톤 그룹, 블루펄 컨소시엄, 브릿지리버, 룬스타 등등. 이들은 수십, 수백조 원을 움직이며 전 세계에서 돈이 될 만한 기업들을 집어삼킨다.
외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국내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강명국 회장이 칼나인그룹을 나와서 차린 MKK파트너스의 경우 현재 국내 재계 순위로는 5위, 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큰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나라고 그렇게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이런 판은 죽을 수가 없어!”
내 결심을 본 선우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죽으면 안 되지. 어서 치킨이나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