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회귀
어린 시절.
난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제법 머리가 좋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공부를 잘했고, 성적은 전교에서 놀았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내가 장래에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칭찬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슬아슬하게 한국대 경제학과 합격이 결정된 그날.
학교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부모님은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 나 또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게 착각이라는 것은 대학에 들어간 뒤 깨달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한국대에 합격한 사람은 단 2명. 그런데 막상 한국대에 가보니 나 포함해서 전부 한국대생이다.
게다가 예비순번에 있다가 간신히 합격한 나와는 달리 누구는 수석이나 차석으로 합격해 장학금을 받았다.
생각해보자.
한국대 재학생은 대학원생을 포함해 대략 2만 7천 명. 한국대 세계대학 순위가 60위쯤이니, 이런 대학이 전 세계에 60개는 더 존재한다. 여기에 의대, 의전, 로스쿨 등등.
아니,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뭐 이렇게 많아?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돈 많은 사람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집 근처로 배정되는 중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의 생활수준이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대학교는 전혀 달랐다.
누구는 페라리나 포르쉐를 끌고 다녔고, 누구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남 아파트에서 자취를 했다.
이유는 집에 돈이 많기 때문.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졸업과 동시에 DA증권에 입사한 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다짐했다.
비록 지금은 신입사원이지만 10년 후에는 이 회사 사장이 된다!
이후 경력을 쌓아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세계적인 투자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내 회사를 차린다!
난 꿈을 이루기 위해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일하고, 열심히 배우고, 관련 자격증도 땄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년 후.
난 드디어 사장이 됐다.
“사장님! 여기 간장치킨 한 마리랑 생맥주 두 잔 주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여기 포크 떨어졌어요!”
“예. 바로 가겠습니다!”
······동네 치킨집 사장이.
* * *
내 첫 직장이었던 DA증권은 부실로 망했다.
그 뒤로는 적당히 아르바이트나 하며 지냈다. 하지만 집안 사정도 힘들어져서 언제까지 백수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날, 같이 살던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나랑 같이 치킨집이나 하자.”
이 녀석의 이름은 강선우.
나와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로 하이스트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LB스튜디오라는 게임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했지만, 이후 회사가 망해 인수합병되며 나와 마찬가지로 백수가 되었다.
“뭔 치킨집?”
선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생각해봐.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사람들이 치킨은 시켜 먹을 거 아니야?”
“그렇겠지?”
“넌 한국대 경제학과, 난 하이스트 전자공학과. 우리가 힘을 합쳐 닭을 튀기면 맛이 없을 수가 없어.”
“······.”
이게 설득력이 있는 소리인가?
뭐, 한국대나 하이스트나, 문과나 이과나······ 종착역은 치킨집이지.
그래서 우리는 동업으로 치킨집을 차렸다.
선우의 판단은 정확했다.
세상이 변했어도 사람들은 치킨을 시켜 먹었다.
* * *
선우는 그 좋은 머리로 철저하게 상권을 분석해, 가장 장사가 잘될 거라 생각하는 곳에 치킨집을 개업했다.
덕분에 장사는 꽤 잘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건의 시작은 염지닭과 튀김유, 소스 등 부자재 가격의 인상이었다. 본사는 원가 상승을 이유로 들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맹점에 재료를 공급하는 JJ통상이라는 곳이 있다.
사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비상장기업으로, 이곳만 거치면 가격이 50퍼센트가 뛰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라벨을 다시 붙이는 것뿐이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셈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본사가 치킨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
“이게 말이 돼?”
“말이 안 되면 어쩌게?”
“어쩌긴. 사실을 알려야지.”
선우는 재빨리 원가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표로 만들어 가맹점주들이 모인 게시판에 올렸다.
이걸 확인한 가맹점주들은 분노했고 본사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데 사장은 사과는커녕 면담 자리에서 가맹점주 대표를 폭행했다. 공개된 녹음파일에는 때리는 소리와 함께 온갖 쌍욕이 담겼다.
황당한 사실은 녹음한 사람이 피해당사자가 아닌 본사 직원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이다.
사장이 평소 직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욕한 걸 들어보면 저게 정녕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인가 싶다.
이 녹취는 처음에 인터넷을 떠돌았고 이어서 9시 뉴스를 장식했다. 여론이 안 좋아지자 검찰은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장은 포토라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물의를 일으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성실하게 조사받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피해자에 대한 사과의 말은 없었다.
난 가게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쟨 10년 전에도 저러더니 지금도 여전하네. 사람이 저렇게 한결같기도 쉽지 않은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10년 전쯤에도 비슷한 사건이 한 번 터져서 논란이 됐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선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
“저 새끼는 구속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재벌들의 범죄에 관대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잘해봐야 집행유예겠지.
뉴스가 나가고 나자 거센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매출은 순식간에 3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가맹점주가 폭행당한 사건임에도 정작 피해는 가맹점들의 몫이었다.
난 예전 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증권사가 망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실업자가 되었고, 지금은 제주도에서 지내는 중이다.
[뉴스 봤어. 가게는 괜찮은 거야?]
“뭐, 그냥 그렇죠.”
핸드폰을 통해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힘들어 보였다.
“요즘 몸은 어때요?”
[똑같지 뭐. 언제 친구랑 제주도 한번 놀러와.]
“알았어요, 선배. 건강 잘 챙겨요.”
[그래. 너도 잘 지내고.]
난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일이 있어야 연락을 할 텐데, 서로 힘들다 보니 자주 연락할 일도 없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죽겠는데, 영업이 끝날 때쯤 예상치 못한 사람이 찾아왔다.
나이는 약 40대 초반. 키는 170센티 후반. 어깨가 넓고 턱이 각졌다. 앞머리는 벗겨져 이마가 훤했고, 금테안경을 꼈다.
아까 뉴스에서 본 얼굴이었다.
다름 아닌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이다.
그는 당황하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원가분석표 게시판에 올린 게 니들 맞아?”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가격에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든지. 그걸 왜 게시판에 올려?”
“아! 말로 했습니다. 본사 측에 여러 번 문의했는데, 문제없다는 답변이 돌아오던데요.”
선우의 대답에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시발. 내 덕에 밥 빌어먹고 먹고 사는 새끼들이 뒤통수를 쳐?”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니들 때문에 내가 검찰청까지 왔다 갔다 해야겠어? 존나 좆같네 진짜.”
“당신 말 다했어?”
순간, 욱한 마음에 주먹을 쥐고 나서려는데 선우가 내 손을 붙잡았다. 주먹을 꽉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사장은 비웃듯 말했다.
“이야! 잘하면 한 대 치겠네. 치고 싶으면 한번 쳐봐. 가맹점주가 사장 때리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마음 같아서는 한 대 후려갈기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는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할 테고, 가게는 문을 닫아야겠지.
난 이를 악물고 화를 참았다.
사장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잘 참았어. 돈 없고 힘없으면 참아야지 어쩌겠어?”
마치 자신의 갑질이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니까 뒷일 생각 안 하고 가맹점주 대표를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겠지.
사장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니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 한번 두고 봐. 내가 어떻게 할지.”
한 달 후.
우리는 대로 맞은편에 3층 규모로 만들어진 직영점을 보았다.
선우는 나에게 물었다.
“야, 치킨집 망하면 우리 뭐 먹고 살지?”
“······어, 시발.”
* * *
직영점이 들어선 뒤.
주문은 뚝 끊겼고 넓은 홀은 텅텅 비었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선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번 달은 월세도 제대로 못 내겠는데. 다른 치킨집 배달 알바라도 뛰어야 하나?”
“가맹점주의 노력은 본사의 갑질을 이길 수 없는 법이지.”
손님이 안 와도 장사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텅 빈 가게에 앉아서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데 게임광고가 흘러 나왔다.
10년은 꽤 긴 시간이다.
그사이 세계에서는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출시되었으며 많은 것들이 변했다.
특히 게임 업계는 지각변동이라 할 만큼 많은 것들이 변했다.
선우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저런 VR게임을 만드는 게 내 꿈이었는데.”
하지만 현실은 치킨을 만드는 중이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선우는 날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넌 꿈이 뭐였어?”
“내 꿈?”
한때는 나도 꿈을 꾸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 꿈은······.
난 피식 웃었다.
“글쎄. 기억도 잘 안 나.”
띠링!
그 순간, 주문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웬 주문이야? 취소해야겠다.”
주문표를 확인한 나는 선우에게 말했다.
“그냥 받아. 배달한 다음 오토바이 타고 그대로 퇴근하자.”
“그럴까?”
놀면 뭐 하나?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어차피 초벌한 닭도 남아있고, 혹시 몰라 튀김기 하나는 안 꺼놓았다.
선우는 닭을 다시 튀긴 다음 재빨리 양념을 입혔다. 우리는 포장된 치킨을 싣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내가 핸들을 잡고, 선우는 뒤에 올라탔다.
오토바이는 번화가의 골목길을 달렸다.
늦은 시간임에도 거리에는 젊은 남녀들로 가득했다. 나 빼고 다 커플인가? 마지막으로 여자친구와 헤어진 게 언제였지?
왠지 20대 시절이 엄청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다.
난 증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한때 내 꿈은 성공한 투자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첫 직장이었던 DA증권은 입사 후 불과 3년 만에 망해서 이름조차 사라졌다.
가끔 뉴스에서 ‘그 사건’이 언급될 때면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지금쯤 뭐 하고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만약 ‘그 사건’이 없었다면 DA증권은 망하지 않았을 테고, 난 계속 회사를 다녔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쯤 뭔가 달라졌을까?
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기회는 도처에 널려있다. 주식, 채권, 부동산, 암호화폐 등등.투자만 잘하면 몇 달 만에 수백만 원을 수백억 원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기회를 잡는 것도 능력이다.
로또 1등 될 확률은 8,145,060분의 1. 한 명이 1등 당첨금을 타가는 사이 800만 명 이상이 돈을 날린다.
스타 트레이더 한 명 탄생하기까지 수백 명의 트레이더가 회사에서 잘리고, 누군가 수십 배의 대박을 터트리는 동안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잃고 눈물을 삼킨다.
나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이미 흘러갔고, 난 어느새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난 전혀 특별하지 않다.
오토바이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사람들이 다들 걸음을 멈춘 채 하늘을 올려보았다.
선우가 말했다.
“어! 유성이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유성이 긴 꼬리를 매단 채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유성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100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우주쇼라고 했나?
“별똥별이다!”
“와아! 예쁘다!”
“소원 빌어야지!”
사람들은 재빨리 두 손을 모은 채 소원을 빌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런 걸 보며 소원 빌 나이는 이미 지났겠지?
골목길을 빠져나온 오토바이는 대로로 진입했다.
그 순간, 반대편 골목길에서 작은 강아지가 도로로 튀어나왔다. 주인이 유성을 보느라 목줄을 놓친 모양이다.
맞은편에서는 대형 SUV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
구하러 달려가려 해도 너무 늦었다!
이대로라면 강아지가 타이어 밑에 깔릴 상황. 근처에 있던 커플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히 상황을 인지한 운전자가 자율주행 모드를 종료하고 재빨리 핸들을 붙잡고 꺾었다. 거대한 SUV는 마치 묘기라도 하듯 아슬아슬하게 강아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좋았어!”
환호하던 나는 좋아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이쪽으로 와?
선우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피해! 핸들 돌려!”
“자, 잠깐.”
개는 살았다.
그런데 내가 죽게 생겼다!
콰앙!
미쳐 피할 새도 없이 대형 SUV는 그대로 우리를 들이받았다. 오토바이가 산산조각 나며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랐다.
한순간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착각이 들며, 밤하늘에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우가 눈에 들어왔다.
100년 만에 한 번 펼쳐지는 우주쇼라더니······ 정말로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광경이다.
마치 우주 공간 속에 떠있는 것 같았다.
설마 이렇게 죽는 건가? 강아지 대신 차에 받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삶이었다. 뭔가를 이루지도 못했고, 뭔가가 되지도 못했다.
흘러간 시간, 놓친 기회, 어긋난 인연, 해야 했던 일들과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
좀 더 열심히 살걸, 좀 더 재밌게 살걸, 남들 다하는 결혼도 한번 해볼걸.
하지만 모든 게 이미 늦었다.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떠올랐던 몸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