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투왕의 유산 (2)
29화 투왕의 유산 (2)
"이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소. 저것이 바로 투왕이 남긴 무기요."
"아."
태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다만, 정말로 투왕의 무기가 숨겨 있었을 줄이야.
"이 곳이 바로 투왕이 어린 시절 살던 집이었지. 그리고 투왕의 모든 게 시작된 곳이기도 하지."
이건 들어봤던 이야기다.
니드의 둥지에서 말이다.
감회가 새롭다.
이건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성지 같은 곳 아닌가?
"투왕께서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길 바라셨지."
"그렇군요."
안 그래도 투왕은 자신이 남긴 모든 흔적을 지우길 바랐다고 했다.
그러니 투왕의 생가가 이렇게 허름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투왕의 친우인 나의 선조께서는 투왕의 뜻을 기리며 이 땅을 지키라는 말씀을 남기셨소. 대대손손 우리는 그 뜻을 지켜왔고···, 우리 조상께서는 그런 말씀을 남기셨지. 이 검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 투왕이 남긴 유산을 전해 주라고 말이야. 그리고 오늘 그대가 나를 찾아왔소. 이 검과 함께 말이오."
"······."
문득, 묘한 감정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을 지켜 왔다는 말인가?
그걸 지키고 있었다는 것도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드디어 이 검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오. 당연히 저 무구의 주인은 당신이오. 그것이 그 두 분이 남기신 뜻이니까. 하지만 저 무구는 너무 오래되어 당장에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소. 그 대신 내가 조금 손을 봐 주려고 하는데···, 재료를 구해다 줄 수 있겠소?"
태준은 생각했다.
이제 여기에서 퀘스트가 나타나리라고 말이다.
"말씀만 하십시오. 뭘 구해 오면 되겠습니까?"
"저 무구는 아무 금속이나 사용해서는 안 되오. 킹 메탈 슬라임의 몸체가 있어야만이 저 무구를 원상태로 복구 할 수 있소."
"킹 메탈 슬라임···?"
메탈 슬라임.
"그렇소. 킹 메탈 슬라임의 몸통은 잘 가공한다면 훌륭한 장비의 재료가 되어 줄 수 있지. 신의 금속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재료 말이오. 하지만 문제가 있소. 메탈 슬라임의 동굴은 몹시 찾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지. 메탈 슬라임의 동굴을 발견만 했다 하면, 그건 금광을 발견한 수준의 행운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라···."
"아···."
그 말뜻은 결국 메탈 슬라임을 처치하는 것보다, 놈이 있을 곳을 찾는 게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 아닌가?
'난감하네.'
무기를 눈앞에 두고서 가져 갈 수 없는 지금이다.
"그래도 최근에 메탈 슬라임이 칼날의 숲에서 목격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 소문일 뿐 아직 진짜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나는 분명 칼날의 숲 어딘가에 메탈 슬라임의 동굴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소. 그리로 가서 메탈 슬라임의 동굴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소?"
"···알겠습니다."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투왕의 유산!]
-등급 : 전설
-메탈 슬라임의 동굴을 찾아 킹 메탈 슬라임을 처치하고 킹 메탈 슬라임의 부산물을 무라크에게 가져다주어라!
그 순간 나타난 건 전설 등급의 퀘스트.
'후우···.'
점점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도 분명 쉽지는 않았다지만 이번 퀘스트에서는 확실하게 난이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강력한 몬스터를 처치하라고 하는 퀘스트면 수월했을 텐데.'
지금 이 퀘스트는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으라는 수준의 난이도로 느껴지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우선 가 보자.'
태준은 칼날의 숲이라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
칼날의 숲.
리우라 도시에서 북쪽으로 움직여서 도착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우···.'
칼날의 숲에는 강철 호그, 강철 늑대, 강철 오크 부족의 오크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묵직하고, 살벌한 것이 적지 않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사냥터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느낌뿐만이 아니다.
칼날의 숲은 지형 자체도 굉장히 까다롭다.
왠히 칼날의 숲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게 아니었다.
이 근처에 서식하는 식물들은 나무 이파리가 강철처럼 날카로웠다.
당기만 해도 출혈이 일어나고, 체력이 줄어든다.
태준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수풀들 모두가 그랬다.
살짝 건드려 봤다.
'딱딱해.'
나뭇잎이 아니라, 정말 마치 철판이 가지에 달려 있는 듯 한 느낌이다.
게다가 몬스터의 레벨도 높다.
칼날의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의 레벨은 이제 60레벨을 육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트롤 대현자를 처치한 게 얼마 되지 않았건만.'
그렇지 않나.
녀석의 레벨 역시 마침 60레벨이었지.
그런데 이젠 보스가 아닌 사냥해야 할 일반 몬스터의 레벨이 60이 되어 버렸다.
'난이도가 미친 듯이 뛰어 오르고 있어.'
사실 태준은 레벨업을 위한 사냥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달려왔다.
퀘스트와 퀘스트를 거치며 말 그대로 여기까지 질주해 왔으니까.
'이러다간 레벨이 부족해서 퀘스트를 못 하는 일이 생겨 버릴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조만간 날을 잡고 레벨업을 확실히 해야겠노라 생각하며···.
태준은 칼날의 숲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나마 여기에선 격투가들이 조금씩 보이긴 하네.'
말 그대로였다.
리우라까지 오고 나니 이제는 사냥터에 간혹 격투가들이 보였다.
심지어 격투가는 종종 혼자 사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애초에 파티 플레이 하기 쉬운 사냥터가 아니니까.'
칼날의 숲의 지형 때문에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뭉쳐 움직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파티를 이룬다고 해도 3명을 넘어가지 않는 게 보통이다.
사람이 많아 봐야 움직이는 게 불편해 질 뿐이니까.
그러니 태준이 혼자 사냥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서 혼자 사냥하는 격투가들은 못 해도 70레벨은 됐을 테고. 세상 그 누구도 태준의 레벨이 아직 40도 안 됐으리라곤 상상도 못 할 테지만 말이다.
철컹! 철컹!
그리고 그때 막, 온 몸에 강철로 된 갑옷을 두른 오크 한 마리가 태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칼날비 부족의 오크 전사였다.
녀석의 레벨은 59레벨.
아직 60레벨은 되지 않은 녀석이다.
그리고 녀석의 좌우에는 강철 늑대가 함께였다.
녀석들의 레벨도 각각 57, 58.
'쉽지 않겠지만···.'
태준은 다짐했다.
메탈 슬라임의 동굴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이 숲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겠다고 말이다.
태준은 스킬을 활성화 한 채 녀석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 태준을 향해 두 마리의 늑대가 온 몸에 두른 강철을 철컹대며 무섭게 달려들었다.
*
콰앙!
'할 만 한데?'
그것이 태준의 감상이었다.
분명히 녀석들은 강했다.
'방어력하고 체력이 무시무시해.'
태준이 아무리 열심히 공격을 해 봐야, 정해진 물리적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었고.
녀석들은 이전 사냥했던 몬스터들처럼 공격 몇 번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녀석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만 했다.
'느려.'
그게 가장 주요하다.
녀석들은 온 몸에 강철을 두른 만큼, 움직임이 느리다.
태준의 눈에는 굼벵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일 만큼.
'이 정도면···, 경험치 밭이겠는데?'
시간은 조금 걸릴 지라도, 녀석들은 태준이 사냥하기에 아주 수월한 녀석들이다.
그야말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애초에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지.'
레벨이 거의 20레벨도 넘게 차이 나는 녀석들을 공격 몇 번으로 쓰러트릴 수 있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오케이. 우선··· 칼날의 숲에서 당분간은 강행군이다.'
그렇게 태준의 사냥이 시작됐다.
*
[준]
-레벨 : 41
-힘 : 51+113
-민첩성 : 123+121
-체력 : 41+101
-마력 : 41+101
-포인트 : 0
'40레벨이 드디어 넘었어.'
태준은 칼날의 숲에 도착한 뒤 사흘 내내 쉬지 않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또 사냥해서 기어코 7레벨이나 올릴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빠른 속도긴 하지.'
40레벨대에서 1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일주일 내내 밥만 먹고 사냥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그런데 3일 만에 7레벨을 올려 버린 건, 분명 엄청난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종종 이런 시간을 조금 가져야겠어.'
아무리 피지컬이 뛰어나다고 해도, 레벨 역시 중요하다.
혹시라도 훗날 레벨이 부족해서 수행할 수 없는 퀘스트나, 입장 불가능한 장소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그리고···, 결국 전투력은 능력치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 말도 사실이다.
레벨이 오를 때 증가하는 포인트는 1개.
거기에 보통 유저들은 마스터리 보정치까지 더해 레벨업 마다 2개의 스탯을 손에 넣는다.
스탯을 쉽게 올릴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스탯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꽤나 크다.
그런 만큼 이 게임에서 레벨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요소였다.
'자, 그럼 오늘도···.'
칼날의 숲 어딘가에 있을 지 모를 메탈 슬라임을 찾기 위해 움직이려던 중이었다.
"그 얘기 들었어?"
"뭔데?"
"여기 어디에 메탈 슬라임이 있을 수도 있다더라."
"?!"
태준은 저쪽에서 들려오는 플레이어들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꽤 먼 곳에 떨어져 있었지만, 태준의 귀에는 그들의 대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럼 우리가 찾으면 대박 치는 거 아니야? 완전히 로또잖아?"
"에이. 지금 이렇게까지 소문이 퍼졌는데 그것들이 안 움직일 리가 없지. 벌써 후크하고 루비스 쪽에서 움직였다더라."
"아오, 젠장···."
'후크? 루비스?'
아마도 길드의 이름인 듯 했다.
"그 새끼들이 움직였으면 뭐··· 조만간 이 숲을 구석구석 뒤져서라도 찾아 낼 테니까."
"괜히 안 엮이는 게 좋지. 그 새끼들은 사냥개들이잖아."
"그렇지. 랭커들의 사냥개지."
'······.'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대략적으로나마 후크와 루비스라는 길드가 어떤 길드인지는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결국···, 랭커들이 이 숲의 메탈 슬라임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들의 일을 대신 수행하는 루비스와 후크는 일종의 행동대장격이라는 말일 테니···.
'어쩔 수 없지.'
태준은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이제 사냥은 어느 정도 내려놓은 뒤 메탈 슬라임 수색에 전념을 다 하기로 말이다.
'반드시 내가 찾아야 해.'
그래야만이 투왕의 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속도라면···, 내가 질 리는 없을 테니.'
이미 지난 사흘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기감을 통해 구석구석을 살펴왔고, 이제 남은 부분은 칼날의 숲 전체의 1/2 정도밖엔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니드의 둥지를 찾아갈 때 경험해 보지 않았나.
드넓은 숲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건 이 게임 내에서 태준을 따라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백 명 천 명 풀어 봐라.'
태준은 자신 있었다.
*
그렇게 대략 12시간.
태준은 남은 칼날의 숲 지역 곳곳을 살피며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있었어.'
발견했다.
지금 저 땅 속에서 꿈틀대는 무언가를 말이다.
'금속이 액체처럼 움직이고 있어.'
마치 수은 용액이 움직이듯, 지금 땅 아래에서 금속이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해서 땅 위로 올라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워진다.'
태준은 기다렸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게 정말 메탈 슬라임이 맞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대략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쿠드득-
땅이 미세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은빛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
태준의 눈이 커졌다.
이내 틈은 점점 더 벌어졌고, 이내 농구공만큼 커다란 은빛의 덩어리가 땅 아래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채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맞다.'
확실했다.
저건 바로 메탈 슬라임이다.
'그러면···.'
이 근처 어딘가에 메탈 슬라임의 동굴이 있다는 말일 터였다.
'찾자.'
찾아야 한다.
그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입구를 말이다.
그런데 그때.
"이쪽으로 가 보자고."
"젠장. 더럽게 넓구만."
"여기에서 메탈 슬라임을 찾을 수 있기나 한 거야?"
"못 찾아도 상관 없지. 우리는 시키는 일이나 하고 월급이나 받으면 되니까."
저쪽에서 몇몇 플레이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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