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투왕의 유산 (1)
28화 투왕의 유산 (1)
2위에는 후드가 적혀 있다.
20레벨, 클리어 타임은 19분 58초.
그리고 잠시 후 모두의 시선이 가장 위쪽의 1위에게로 향했다.
"어?"
"저게 뭐야?"
"잠깐만, 이거 무슨···."
그 순간, 그 자리에 모인 수많은 이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듯 굳어 버려야 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기록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8레벨?"
"아니, 그건 그렇고 기록이···."
1위 무흔.
그의 기록은 무려 10분 37초.
"10분?"
"15분이라며?"
"10분인데?"
"이거 뭐야?"
그 아래에 걸려 있는 후드의 기록이 초라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20레벨, 19분 58초라는···,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그런 기록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기록이었다.
"······!"
"···이게 뭐야···."
"맙소사···."
충격을 받은 건 세 사람도 마찬가지다.
후드와 루스, 그리고 하루.
그 세 사람은 1위의 기록을 몇 번이나 거듭 확인하면서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루스의 머리는 지금 깨질 듯이 아파왔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낭패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저 정도로 괴물이라고?'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 했던 결과물이었다.
20레벨도 아닌 18레벨.
그리고 심지어 18레벨에 후드보다 무려 10분이나 빠른 클리어 타임이라니.
'뭐 하는 녀석이지?'
감히 상상도 못 할 재능이 분명하다.
'정말 존재하는 건가?'
그렇게 되느 루스조차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99, 혹은 100이라는 동화율에 대해서 말이다.
'말도 안 된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가 봤던 98%의 동화율을 가진 그 남자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천재였다.
'98%가 그 정도인데···.'
99라니.
100이라니.
이걸 믿으라는 말인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저 기록은 분명 그 위의 존재에 대해서 상정하고 있지 않은가?
꿀꺽
루스는 침을 삼켰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시선들이 루스에게로 향해 있다.
'······.'
무언가 설명을 기다리는 눈빛이다.
이 상황에 대해서.
"하하···."
루스는 웃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사람들 만큼이나 루스 역시 당황했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하하하하하!"
루스는 그냥 웃었다.
정말로 그냥···, 어이가 없어서.
뒤통수가 화끈하고 뒷목이 당겨온다.
이내 그는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질러 버리자.
몇 번이나 뒤통수를 맞고 이렇게까지 되어 버린 이상, 불러내자고 말이다.
"좋습니다."
이내 목청을 가다듬은 루스가 말했다.
"충격적이군요. 인정하겠습니다. 저의 패배입니다. 완전한 패배요."
이 시점에서 루스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뿐이었다.
인정하는 수밖에 없지.
변명해 봐야 더 추해질 뿐이다.
하루 역시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꽈악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후드는 말 해서 무엇 할까.
망연자신한 얼굴이다.
진짜로 벽을 느낀 자의 얼굴.
"자. 말씀드리죠."
루스는 이내 웃으며 소리쳤다.
"초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초대라고 말했다.
그 말에 그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눈에 의문의 감정이 떠올랐다.
초대라니?
무슨 초대를 한다는 말일까?
대체 어디로 초대를 한다는 말일까?
"정체 모를 플레이어···. 자, 이제는 무흔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불리는 걸 원하는 듯 하니."
숨을 고른 루스는 다시 말했다.
"무흔을 진정한 랭커의 세계로 초대하겠습니다. 아마 녀석도 그걸 원하는 것 같으니까요. 이제 곧 깨닫게 될 겁니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대가를요."
분노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반응이다.
랭커라는 체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난 이상, 그 랭커의 핵심 중 한 사람인 루스가 이 사안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법이다.
"제가 직접 악역이 되어 주겠습니다. 겁도 없이 기어 오르는 영웅 놀이에 취한 어린 아이를 짓밟아 주는 악역 말입니다."
루스는 한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오거라. 중앙 대륙으로. 너를 초대할 테니까."
*
그 무렵, 태준은 리우라에 도착하여 검을 손에 쥔 채로 열심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리우라는 거대한 도시였고, 대륙 곳곳으로 뻗어 나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는 거점 지역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수많은 NPC들이 길을 오가고 있었다.
"그거 봤어? 10분이라던데?"
"18레벨에 10분 말이야."
"돌은 거 아니야?"
"루스가 단단히 화가 났다더라."
"중앙 대륙으로 초대 한다며? 개박살을 낼 생각인가본데?"
리우라 곳곳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어디를 가더라도 예외 없이 모든 플레이어들은 조금 전에 끝난 후드의 오크 히어로 솔로 레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
역시 태준의 예상대로였다.
태준의 기록이 밝혀진 순간, 생각보다 더 큰 파장이 일어나 버렸다.
'쓰읍···.'
사실 태준도 알고 있었다.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는 걸.
다만 루스의 이상한 짓으로 인해 판이 더 커져버렸고, 그로 인한 파급력도 태준의 상상 이상으로 커져 버렸다는 게 문제겠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그 누구도 태준이 그 무흔이라는 자라고 생각하지 못 한다는 점이었다.
"그 새끼 어디 있을까?"
"아마 지금쯤 리우라에 와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에 태준은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그 정도 피지컬이면 이미 트롤의 숲은 졸업하고 리우라에 와 있겠지."
"리우라에 있는 격투가만 잡아다 족치면 찾아 낼 수 있는 건가?"
"그럴지도."
태준은 머리가 지끈대는 듯한 감정을 느껴야 했다.
아직 투왕의 유산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힌트조차 손에 넣지 못한 와중, 그보다 더 복잡한 폭탄이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이내 태준은 생각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래.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나.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우선 퀘스트나 하자.'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문제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기엔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태준은 다시 검을 바라봤다.
검은 진동하고 있었고, 그 진동은 지금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가 보자.'
태준은 검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
"여긴···."
대장간이었다.
리우라에는 많은 대장간들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다.
커다란 도시니까.
그런데 문제는 지금 검이 이끈 곳은 아주 초라하고 작은 대장간이라는 점이었다.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건가 헷갈릴 만큼 초라한 대장간.
반면 그 맞은편에는 아주 커다란 대장간이 있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었고 그 내부를 흘끗 살펴만 봐도 종업원이 족히 수십 명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규모였다.
'아무튼··· 여기가 맞는 거지?'
태준은 다시 검을 살폈다.
큰 대장간으로 향하자 진동이 미세하게 약해진다.
그리고 다시 허름한 대장간으로 향한 순간.
'확실해.'
진동은 강렬하게 울리며 태준의 손을 간질였다.
그때.
"저기요!"
누군가 태준을 부른다.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커다란 대장간의 직원이 서 있었다.
"예?"
"거기 가시려고요? 안 가시는 게 좋을 걸요? 이리로 오세요!"
"아닙니다. 볼일이 있어서."
"에이. 어차피 장사도 안 해요. 가 봐야 욕만 먹고 쫓겨난다니까요? 그냥···."
"그럼."
태준은 영업원의 말을 잘라낸 채 허름한 대장간의 문을 두드렸다.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
아니, 정확히는 쇠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하지.'
물론 꽤 먼 곳에서 들려온다.
저 대장간의 끝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우선 들어가 봐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태준은 우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느낌상 이 안에 있을 대장장이는 성격이 젠장맞을 확률이 크다.
그런 사람의 허락도 없이 대장간 안에 쳐들어 갔다간···.
'퀘스트가 날라가 버릴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우선 기다려 보자.
언젠가 밖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밤은 어두워졌고 길가에 걸어다니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끼익-
드디어 문이 열렸다.
"···대체 당신은 누구요?"
그리고 그 안에서 걸어 나온 한 노인이 물었다.
키는 대략 190남짓의 거구.
길게 자란 수염은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었고 지저분하게 기른 머리는 손질조차 하지 않아 산발을 이루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위압적인 모습.
하지만 태준은 그 눈을 마주보고 말했다.
"기다렸습니다. 이 물건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태준은 검을 들어 올렸다.
그 검을 본 순간···.
남자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걸 대체 어디서···? 아니지. 우선 들어 오시오."
*
태준은 허름한 대장간 안으로 기어코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허름해 보였어도, 그 내부는 그래도 구색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아니, 사실 태준이 대장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꽤 훌륭하다는 느낌이 드는 내부다.
마치 루루의 오두막 내부를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우선 이 무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수 있겠소?"
그렇게 대장간 내부로 태준을 이끌고 들어 온 뒤, 대장장이가 말했다.
태준은 그에게 검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어떻게 검을 얻게 됐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렇군. 역시 그 분께서 남기신 물건이었단 말이지···."
그렇게 되니 태준도 내심 궁금했다.
대체 저 검이 무엇이고,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 대장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말인가?
"우선 나를 소개하겠소. 내 이름은 무라크. 호스 일족의 후예이자, 오래전 투왕이라 불리던 남자의 절친한 친구인 구파라크의 후손이오."
"아···."
무라크.
그 남자가 자신에 대해서 소개하고 나니 태준은 얼핏이나마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 남자가 바로 투왕의 절친한 친구의 후손이고 저 검이 바로 투왕의 친구의 검이라는 말일 테지.
"전··· 준이라고 합니다. 투왕의 제자이며 그 분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모험하고 있습니다."
"······."
무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검이 당신을 여기까지 이끌었다면, 당신이 한 말에 필시 거짓은 없을 테지. 그렇다면··· 나를 따라 오겠소? 당신에게 꼭 보여줄 것이 있소."
그 말과 함께 무라크는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따라 오시오."
"······."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태준은 무라크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계단을 한참이나 타고 내려가야 했다.
그렇게 지하로 내려간 순간, 거기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두꺼워 보이는 문이었다.
무라크는 두 손으로 문을 열어냈다.
쿠쿠쿵-!
굉음과 함께 무거운 문이 열리고, 그 너머에서는 제단 하나가 보였다.
흔히 판타지 애니메이션 속에서 볼 법한 그런 제단이었다.
그 크기는 꽤 크다.
성인 세 명 정도는 누워 있을 법 한 크기.
그런데 중요한 건, 제단이 아니다.
그 커다란 제단 위에 올려 있는 물건이었다.
"이게 바로 투왕께서 남기신 그의 물건이요. 투왕께서는 나의 조상에게 이것을 남기셨고, 나의 조상은 투왕께 이 검을 선물하신 것이지."
그러니까···, 이 제단 위에 있는 건 바로 투왕이 남긴 무기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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