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위험한 초대 (2)
26화 위험한 초대 (2)
우선 태준은 손에 들린 검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조금 뜬금없긴 하다.
"이게··· 뭡니까?"
대뜸 검이라니?
"오래 전 투왕께서 남기신 물건이오. 오랜 친구의 물건이라고 하셨지. 이 검이 그대를 투왕의 유산이 있는 곳으로 안내 할 거요."
"······."
태준은 검을 받아 들었다.
[오래된 검]
-등급 : 유일
-공격력 : 205
유일 등급의 검.
하지만 이렇다 할 설명도, 특별한 옵션도 없다.
그나마 공격력이 조금 높다는 것 말고는 어디 내다 팔수도 없을 만큼 하찮은 검이다.
하지만.
"······!"
태준은 검을 받아 든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검이 마치 무언가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리우라로 가면···, 뭔가 힌트가 생길지도 모르겠어.'
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떠 있는 듯 막막했지만, 이 검을 가지게 된 순간 그나마 가야 할 목적지를 알게 된 듯 했다.
'그리고 잘 됐지. 어차피 리우라로 가려고 했으니까.'
스타팅 포인트에서 이어지는 다음 지역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그리고 리우라는 하운드에서 이어지는 가장 난이도 높은 구역.
그러니 당연히 태준의 목적지는 리우라였다.
그런데 마침 퀘스트 동선까지 겹쳐 준다면 태준으로선 환영일 수밖에!
"고맙습니다."
"그것은 내가 할 말이오. 그대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둥지는 다시 놈들에게 위협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그대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겠소."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태준은 니드의 둥지에서 벗어났다.
*
'하아···!'
태준은 다시 트롤의 숲으로 나왔다.
'이제는 떠날 때구나.'
그리 오래 된 일도 아니지만, 감회가 새롭다.
기간이 짧다고는 하지만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다이내믹했지.'
정말이었다.
튜토리얼에서부터, 지금까지.
남들은 상상도 못 할 일들을 몇 번이나 겪었고, 기어코 이제는 스타팅 포인트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
'잘 했어.'
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중의적인 의미다.
스스로에게 잘 했다는 자축의 의미이기도 했고, 이 게임을 시작하길 잘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그 말이 사실이다.
라스트 엠파이어의 세계는 넓다.
아직도 이 게임에는 수많은 랭커들이 저 높은 곳에 올라선 채 군림하고 있다.
그들에 비하면 제 아무리 200%의 동화율을 가졌다고 한들, 현재의 태준은 꿈틀대는 씨앗에 불과할 터.
하지만 그런 것 아무렴 어떻겠는가?
목표가 있으면 올라가면 된다.
그게 지금까지 태준이 살아왔던 방식이었다.
그러니 지금부터도 마찬가지다.
'뭐가 됐건, 해 보자고.'
그리고 이제 하운드만 벗어나면 태준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안 그래도 하운드에선 너무 어그로를 끌어 버린 나머지 격투가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나.
하운드에서 사냥하는 격투가는 눈 씻고 찾아 봐도 태준 뿐이니까.
하지만 스타팅 포인트를 벗어나면 다르다.
많진 않아도, 분명 많은 격투가들이 있다.
'신분 세탁 하고 게임이나 하자.'
그게 태준의 당장의 목표다.
스타팅 포인트를 벗어나 깔끔하게 신분 세탁을 한 뒤, 평범한 플레이어들 속에 묻혀 게임을 즐기는 것!
그렇게 태준은 걸음을 옮겼다.
트롤의 숲을 가로질러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
그렇게 한참을 걸어 움직이자 마침내 태준의 눈앞에 거대한 협곡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작의 협곡!'
저 협곡이 바로 시작의 협곡이라 불리는 협곡이었다.
스타팅 포인트와 라스트 엠파이어의 본 무대를 나누는 일종의 관문.
저 관문을 통과해야지만 본격적인 라스트 엠파이어의 무대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태준은 천천히 협곡을 향해 걸어갔다.
그 앞에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협곡 건너실 분! 44레벨 탱커입니다!"
"협곡 건널 파티원 구합니다! 46레벨 궁수요!"
협곡을 건너기 위한 파티를 모집하는 유저들이다.
대다수는 40레벨 중반부터 후반의 레벨대의 유저들이었다.
'역시 30레벨이 되자마자 하운드를 벗어나는 건 나밖에 없겠지.'
아마 다른 플레이어들이 태준의 레벨을 알게 된다면 기함을 쏟아낼 게 분명하다.
심지어 개중에는 간혹 50레벨 대의 유저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말 할 것도 없는 이야기.
'저 협곡 안에···, 몬스터가 겁나게 쏟아져 나온다고 했지?'
그게 바로 플레이어들이 협곡을 건너기 위해 파티를 구하는 이유다.
협곡에는 트롤보다 조금 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했다.
심지어 한,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번에 열 마리씩 몰려서 쏟아져 나온단다.
특히 리우라로 향하는 협곡의 난이도는 굉장하기로 이미 유명할 정도다.
'괜히 시험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딱히 퀘스트가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이 협곡을 지나지 못 할 거면 아예 발도 들이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일 터.
'뭐, 굳이 파티를 구할 필요가 있나.'
물론 태준은 파티 같은 건 딱히 구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미 트롤 대현자까지 혼자 처치한 마당에 저 협곡을 건너지 못 할 것이라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막 태준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 딜러십니까?"
"아, 예. 맞긴 한데···."
"같이 파티 하시는 거 어때요?"
태준이 막 파티를 거절하려던 순간···.
"그 말 들었어? 이제 곧 후드 오크 히어로 사냥 시작 한다는데?"
흑사자와 후드에 관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제 곧 시작 하겠네. 안 보러 가냐?"
"가야지."
"나가자."
"협곡 다음에 건너지 뭐."
그 주변의 플레이어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그렇게 접속을 종료하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지금 막 말을 걸어 온 플레이어가 말했다.
"하여간, 그 새끼는 좆된 거 같죠?"
"그 새끼요?"
"그 격투가요. 지금 흑사자에서도 단단히 화가 났을 걸요. 겉으로 티는 안 내도 뻔하죠. 아, 그리고 뭐 흑사자 뿐인가요. 앞으로 나인티 세븐 놈들이 이를 갈고 그 녀석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겁니다. 어? 그러고 보니 혹시 격투가신가요? 무기가 없으신데···?"
순간, 태준은 흠칫 놀랐다.
말 그대로 태준은 손에 장갑 말곤 아무 것도 착용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이러다간 여지없이 찍혀 버릴 지도 모를 상황이다.
솔직히 태준이 잘못 한 건 하나도 없지만···, 잘못했다간 제대로 어그로가 끌려 버릴 지도 모를 상황.
물론 흑사자니, 나인티 세븐이니.
그런 녀석들이 무섭다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 태준이 무서워하는 건 따로 있다.
'방해 받을지도 모른다는 거 아니야?'
그건 태준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괜히 어그로가 크게 끌려 버려 제대로 사냥조차 못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흑사자에게 찍히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그 순간에도 플레이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은 태준을 향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격투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가!
"혹시 정말···?"
'젠장.'
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 날 수 있을까.
순간.
'아, 그렇지.'
태준의 머리를 스쳐 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검이 있잖아.'
그것이다.
태준은 지금 검을 가지고 있다.
지난 퀘스트의 보상으로 획득했던 검!
[오래된 검]
니드의 여왕으로부터 받았던 그 검 말이다.
태준은 곧바로 검을 착용했다.
이 게임은 직업에 상관없이 모든 무기를 착용할 수 있다.
다만 착용뿐이다.
마스터리 스킬을 만들 수 없기도 했고, 보유한 스킬 중 무기 제한으로 사용 할 수 없는 스킬로 인해 엄청난 전투력 감소를 감수해야 할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괜찮다.
우선은 이 상황을 모면하는 게 먼저가 아니겠는가?
"그럴 리가요. 격투가 같은 쓰레기 직업을 할 리가 없죠."
"하하. 그건 그렇죠. 어쨌든, 파티 하시죠? 안 그래도 다들 후드 레이드전 보러 가 버려서 남은 사람이 없네요. 그 놈들이 그런 데에 정신 팔려 있을 때, 우리는 빨리 앞으로 치고 나가야죠."
태준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협곡을 혼자 건너기 위해선 권강을 사용해야 할 텐데, 검을 들고 있는 이상 권강은 사용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
결국 눈물을 머금은 채 태준은 저들과 파티를 맺고 함께 협곡을 건널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었다.
심지어 검을 들고 검사 흉내를 내며 말이다.
'이거···, 괜찮은 거 맞냐.'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이판사판이다.
격투가라는 걸 들키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건 그렇고 문제군.'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야 할까.'
언제까지고 검사 흉내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순간에 태준은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던데요."
그때, 파티원 한 명이 말했다.
"이번에 흑사자에서 이벤트 걸었잖아요. 후드 기록 대충 20분 언더 오버로 보고 있던데. 그래서 그 격투가 놈은 몇 분 걸렸을까요?"
"그 격투가 놈 클리어 타임은 15분 정도가 정배긴 하죠. 만약 후드가 20분 컷만 해 줘도 아마 대박날 텐데요. 그런 괴물이랑 클리어 타임이 5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 이거 못 막거든요."
'······.'
난감했다.
태준은 알고 있지 않나.
자신의 기록을 말이다.
'내 기록이 대충 10분이 조금 넘지 않았던가.'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그 무렵···.
온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었다.
과연 흑사자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화려한 데뷔전에도 불구하고, 후드의 활약은 너무 빨리 묻혀 버렸다.
웬 정체 모를 플레이어에 의해서.
이 상황에서 흑사자가 분노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
하지만···.
-쿨한데?
-그러게?
흑사자의 대응은 쿨했다.
[인정하겠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플레이어는 강합니다. 현재의 후드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죠.]
너무도 간단하게 그 사실을 인정해 버린 흑사자다.
그리고 오히려 이 상황을 노려 반전을 꾀했다.
[그래서 저희가 도전해 보려 합니다. 아직 그자의 오크 히어로 클리어 기록은 알지 못하지만, 후드는 그 괴물 같은 자의 피지컬에 도전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동참해 주십시오. 과연 후드의 기록은 얼마가 될 지, 함께 예측해 주십시오.]
흑사자는 판을 깔았다.
후드의 기록 예측을 독려하며 다시금 관심을 끌어 모았고.
이를 후드의 '도전'이라 명명하며 플레이어들의 감정 이입을 이끌었으니.
-와, 이거 좋은데?
-진짜 궁금하긴 하네. 후드가 그 녀석을 상대로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괴물의 기록은 몇 분인데?
-뭐 해 봐야 15분 정도겠지
-15분? 그건 너무 한 거 아니냐?
-그 피지컬이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그래도 후드라면 30분 이내에는 클리어 가능하겠지?
-후드 20분 언더에 풀 베팅 했습니다.
그렇게 지금, 플레이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많은 떡밥들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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