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니드의 둥지 (3)
24화 니드의 둥지 (3)
*
'됐다.'
[트롤의 피를 가득 채운 니드의 구슬이 강력한 피를 품은 트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트롤을 계속해서 사냥한 결과 대략 이틀 째.
드디어 구슬에 트롤의 피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레벨도 많이 올랐다.
4레벨이 더 올라 이제 태준의 레벨은 벌써 27레벨이 되었다.
'이제 30도 코앞이네.'
30.
라스트 엠파이어에서 30은 꽤나 상징적인 레벨이기도 했다.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떼었다고 할 수 있는 레벨이 바로 30레벨이니까.
사실 뭐···.
태준에게 있어서는 크게 의미 있는 단계는 아니다.
시작하자마자 게임을 들썩이게 만든 태준인데 초보 딱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의미가 없진 않지.'
맞는 말이다.
왜 30이 초보 딱지의 기준이 되었는가 묻는다면 다 이유가 있다.
'다음 지역으로 이동 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거든.'
말 그대로다.
그 어떤 스타팅 포인트에서 시작하건 30레벨이 되는 순간 스타팅 포인트를 벗어나 그 다음 구역으로 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하운드에서 30레벨이 되었다고 곧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플레이어는 없다.
30레벨이라면 장비에 따라 오크 부락, 혹은 트롤의 숲에서 열심히 사냥하며 레벨을 올릴 때니까.
보통 하운드에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레벨은 40 중반대에서 50초반.
'난 바로 넘어가야지.'
당연한 말이다.
이미 30레벨이 되기도 전, 트롤의 숲에서 혼자 몬스터를 쓸어담고 있는데 굳이 더 머무를 필요는 없다.
'귀찮기도 하고.'
안 그래도 스타팅 포인트에서 너무 어그로를 끌어 버렸다.
이러다간 격투가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사냥이 불가능해 질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니 태준은 최대한 빠르게 30레벨을 달성한 뒤 곧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 가겠노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 대현자 먼저 사냥하고···, 그 뒤로 트롤 조금 사냥하다 보면 되겠지.'
사실 30레벨을 달성하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보통의 플레이어들이라면 두, 세 달을 쉬지 않고 사냥해야 한다.
그것도 하운드의 기준이다.
누군가 태준의 레벨업 속도를 본다면 피를 쏟으며 배아파 할지도 모를 정도의 속도다.
그렇게 태준이 구슬이 안내하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고 있던 중.
'어?'
태준은 그 자리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이거 뭐야.'
지금 태준의 눈 앞에 있는 건, 커다란 산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산이 아니다.
산 중턱에 보이는 작은 동굴이었다.
그냥 동굴이 아니다.
태준의 눈에만 보이는 동굴이다.
구슬이 뿜어내고 있는 빛이 산 중턱을 향했고, 그 중턱에 겉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은 동굴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태준은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10분 남짓 산을 오른 순간.
우우웅!
구슬이 강력한 빛을 뿜어냈고···.
쿠쿠쿠쿵!
산 중턱이 무너져 내리며 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은 입구가 만들어졌다.
'와우···.'
태준은 절로 감탄사를 쏟아냈다.
[히든 던전 '트롤 대현자의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 증가했습니다.]
지금 태준은 히든 던전을 발견한 것이었다.
덕분에 업적을 달성했다.
보상은 그게 다가 아니다.
[히든 던전 내에서 사냥 시 60분간 경험치, 숙련치 100% 증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히든 던전 내에서 사냥 시 60분간 아이템 드랍율 100% 증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하하···!'
경험치, 숙련도, 드랍율 버프 효과가 적용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어쩌면 바로 30레벨 찍어 버릴 지도 모르겠는데.'
사신의 시련 경험치 증가 버프와 히든 던전 발견 버프가 더해진 이상···.
어쩌면 이번 던전 안에서 30레벨을 충분히 달성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간 순간이다.
'흠···.'
하지만 문제가 있다.
과연 저 안에서 사냥이 가능할 것인가.
'어떤 몬스터가 등장하는지 전혀 모르잖아.'
필드라면 모를까, 저 던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던전.
어떤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트롤 대현자의 전투력도 알지 못한다.
중요한 건, 한 번 던전에 입장하게 되면 60분이라는 시간은 저절로 카운트 되리라는 것.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하던 태준은···.
'가자.'
결심했다.
저 안에 들어가 보기로.
어차피 정보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새로운 정보가 나타날 리도 없다.
그렇다고 밖에서 사냥을 하며 레벨을 올리고 던전에 들어간다고 하기엔 지금 레벨 몇 개 올린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테지.
'우선 부딪쳐 보자. 안 되면, 그때 밖으로 나와서 성장하면 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후퇴를 하더라도, 우선은 조금이나마 던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뒤, 성장하는 편이 나을 테니.
이미 결심한 이상, 물러설 생각은 없다.
태준은 던전 내부로 거침없이 발을 들였다.
그리고 지금···.
크르르르-
그르르륵!
저 안에서 거친 트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놈들의 강렬한 기세가 태준의 피부로 와서 닿았다.
'······!'
놈들의 기세를 느낀 태준은 생각했다.
'해볼만 하겠어.'
사냥을 해 볼만 하겠다고.
쉽지는 않을 테지만, 충분히 태준이 싸워 볼 만한 녀석들이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태준은 곧바로 부스터와 절대 영역을 활성화 한 채로 트롤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그때···.
[절대 영역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이다.
*
그 무렵···.
한 남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바로 루스다.
그는 지금 3:1 PK 영상을 보고 있었다.
얼마 전 게시되어 이 시간에도 끝없이 조회수가 치솟아 오르고 있는 영상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격투가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니.
웬만한 일은 개의치 않게 털어 넘겨 버리는 루스조차도 지금 이 순간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이거 대체 뭐야?"
놀라운 일이었다.
루스는 몇 번이나 제 눈을 의심하고 영상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고, 길드의 영상 편집팀에게 영상을 전달하여 혹시 조작된 영상은 아닌가 몇 차례나 거듭 확인했다.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다.
조작된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영상 사이에 편집된 부분조차 보이지 않는다, 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그럼 이게 진짜 인간이 해낸 일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97%의 동화율로도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불가능하다.
"어떻게 생각해."
루스가 물었다.
자신의 옆에서 굳은 얼굴로 영상을 함께 보고 있는 하루에게.
"······."
그녀 역시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하루도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놀라운데요."
그러니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뿐이다.
"이 사람··· 동화율이 얼마일까요."
"글쎄."
그 물음에 루스도 쉽게 대답 할 수 없었다.
97?
그건 절대 아니다.
자신이 그 동화율을 가지고 있으니 세상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다.
"설마···."
루스는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쉽사리 꺼낼 수 없었다.
지금 그가 생각하는 건 98이 아니다.
어쩌면 그 이상이다.
"있는 걸까요?"
하루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쉽사리 입에 담을 순 없었다.
98을 넘어선 동화율.
99, 어쩌면 100이라는 수치는 그동안 모든 랭커들이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불문율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랭커라는 체계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동화율이다.
98, 그리고 97.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극소수만이 가지고 있는 그 전유물을 바탕으로 한 라스트 엠파이어란 세계의 질서에 균열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확실하지도 않은 것으로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겠지."
하루는 그 뜻을 이해했다.
그럴 리는 없다는 단언일 테지.
"어쨌든···, 꽤 난감하게 됐군요."
하루가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후드의 오크 히어로 사냥이요."
하필이면 그들이 막 보스 쟁탈전에 참여했을 때 터져 나온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첫 번째 보스 레이드 권한을 쟁취해 냈다.
그런데 문제는···.
"저 사람이 오크 히어로의 첫 번째 클리어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후드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을 테죠."
바로 그것이다.
저 괴물같은 피지컬을 가진 정체 불명의 플레이어가 오크 히어로를 처치했다면?
그래서 후드의 기록과 저 남자의 기록이 비교가 된다면?
후드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쓴 돈이 얼만데 레이드를 포기 할 순 없다.
"이렇게 하자고."
이내 루스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어차피 후드는 저 녀석을 이길 순 없어."
말 그대로 벌써부터 루스는 후드의 패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도 조금 놀랐으나, 반박할 여지는 없다.
아무리 봐도 후드가 저 괴물을 상대로 더 빠른 기록을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루스는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
하루도 루스의 말뜻을 이해했다.
"결국 어차피 누구도 저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거군요. 아마 그 사람을 제외하면, 그 누구라도···."
"그래. 그 녀석이 아닌 그 누구를 저기에 가져다 놔도 저 괴물같은 격투가의 기록을 깰 수는 없을 거야. 이건 나와 너, 그리고 후드의 솔로 레이드를 보게 될 모두가 갖게 될 생각이지."
"맞아요."
그 말이 정확하다.
이미 영상이 공개 된 순간, 라스트 엠파이어의 유저들 모두가 패배를 직감하고 있다.
그들 뿐인가.
"그 놈들도 마찬가지겠지."
여기에서 말하는 그 놈들이란, 일명 나인티 세븐이라 불리는 플레이어들이다.
동화율 97%의 다섯 명.
그들 모두가 이 영상을 봤을 테고, 루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뭐가 문제야? 패배한다고 해서 후드를 욕하는 놈이 이상한 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저 녀석을 보스 몬스터로 만드는 작업이고."
"보스 몬스터?"
"그래. 후드는 보스 몬스터에 도전하는 영웅이 되는 거지. 그럼 이제부터 퀘스트가 주어지는 거고. 과연 후드는 저 괴물같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얼마나 추격해 갈 수 있을까."
하루의 눈이 번뜩인다.
"좋은 생각이에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발상이라니.
존경심이 절로 솟구칠 수밖에 없는 남자다.
"이렇게 홍보하자고. 어차피 우리는 녀석을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드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이벤트도 하나 해 보는 게 좋겠어. 저 괴물같은 녀석과 얼마나 격차를 좁혀 낼 수 있는지 문제를 내는 거야."
루스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만연했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하루는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
웃고 있던 루스의 얼굴이 굳었다.
루스는 이내 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괴물같은 놈이로군.'
그 역시 직감하고 있다.
어쩌면 머지 않아 라스트 엠파이어라는 세계에 커다란 폭탄 하나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아니, 이미 떨어졌다.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루스는 확신했다.
후폭풍이 몰아친다고 해도, 이 세계의 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랭커들에게는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랭커 브레이커? 웃기지도 않는군.'
그는 알고 있다.
지금의 랭커라는 시스템은 일개 개인이 무너트린다고 하여 무너질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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