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니드의 둥지 (2)
23화 니드의 둥지 (2)
"나를 소개하지. 나는 니드의 둥지로 향하는 이 공간을 지키는 수문장, 노라라고 하노라!"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작은 요정의 말이었다.
"우선 나를 따라 오겠나?"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태준은 노라를 따라 움직였다.
노라는 숲 깊은 곳을 향해 태준을 이끌고 들어갔다.
아름다운 숲이었다.
정말 동화 속 세상을 걷고 있는 기분.
그렇게 조금 더 숲 깊은 곳에 들어가니, 정말 다양한 종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인반수, 요정, 난쟁이, 거인, 그리고 엘프 등···.
'이 종족들이 전부 원래 트롤의 숲에서 살고 있던 그런 종족이라는 말이지?'
루루가 그러지 않았던가.
이들이 사실 트롤의 숲에 살고 있던 이들이었고, 오크에 의해 영역을 빼앗기고 결국 트롤에 의해 완전히 쫓겨났다고 말이다.
그 순간에도 노라라는 수문장은 바쁘게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손으로 붙들어 이동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치솟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참았다.
그랬다간 노라의 자존심이 팍 상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 움직인 그때.
"오···."
태준은 눈을 껌뻑였다.
지금 저 앞에는 귀여운 여자애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대충 생긴 건 엘프처럼 예뻤지만, 키가 작았다.
대충 140cm 정도 될까.
사촌 여동생이 떠올랐다.
그때,
"저 분은 우리 니드의 여왕이신 이르다움님이시다. 인사를 올리거라."
'여왕?'
흠칫 놀랐다.
사촌 동생을 떠올리고 있었건만, 여왕님이라니.
'실수 할 뻔 했네.'
노라의 말에 태준은 무릎을 꿇고 여왕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런 태준을 보며 여왕이 말했다.
"되었다. 그대의 말에 따르자면, 저 인간이 오크 처단자라 하지 않았느냐?"
목소리는 우아하다.
동작 하나 하나에 품위가 깃들어 있었다.
"그러하옵니다."
여왕의 물음에 노라가 답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귀한 손님일진대, 어찌 우리가 예를 표하지 못 할 망정 저 인간에게 예를 강요한다는 말인가. 일어 나거라, 오크 처단자여!"
조금은 얼떨떨하다.
하지만 어쩌랴.
저들은 태준의 고용주가 될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열심히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맞다.
태준은 몸을 일으켰다.
이내 여왕이 날개를 퍼덕이며 태준을 향해 다가왔다.
몸동작뿐만 아니라 여왕의 날갯짓에도 굉장히 품위가 있다.
우아했고,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좋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탁!
그렇게 다시 태준의 앞에 착지한 여왕은 태준을 한참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성을 올려다보는 호기심 가득한, 그리고 또랑또랑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이내 여왕이 말했다.
"인간의 전사여, 우선 그대의 위업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내 그대의 무용담을 조금 자세히 들어 보고 싶은데, 나에게 그러한 영예를 허락해 주시겠소?"
여왕이 이렇게 까지 저자세로 나와 주니 태준으로서도 황송할 따름이다.
물론 이건 다 태준이 획득한 칭호의 효과 덕분이겠지.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태준은 고개를 숙여 답했다.
"좋소. 그렇다면, 잠시 기다려 주시오. 그대를 위한 만찬을 준비할 테니!"
그 말과 함께 숲의 일원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한 눈에 봐도 눈이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엘프들은 태준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딱히 여자에 관심이 없는 태준조차 입 꼬리가 올라가는 외모였다.
'별천지가 따로 없구나, 정말···.'
*
말 그대로, 니드의 둥지에선 축제가 벌어졌다.
'우와···.'
태준은 넋을 놓고 바라봤다.
온갖 종족들이 난생 처음 본 다양한 악기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고, 엘프와 니드, 루브라는 수인족들은 어울려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거기에 지금 태준의 앞에 놓인 술과 음식은 태준의 후각과 미각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는 중이다.
"드시오. 인간의 전사여!"
니드의 여왕 이르다움이 말했다.
태준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음식을 맛봤다.
'장난 아닌데!'
놀라웠다.
태준도 미식으로는 일가견이 있다 자부해 왔다.
그럴 수밖에 없지.
젊은 나이에 어마어마한 부를 쌓아 올렸고, 이렇다 할 취미가 없는 태준은 온갖 미슐랭 스타 맛집들을 찾아 좋은 음식들을 맛봤다.
해외여행을 가더라도 좋은 음식점들은 빠지지 않고 찾아 다녔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인데?'
정말이었다.
태준이 먹었던 음식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
'괜히 스타 셰프들이 라스트 엠파이어로 찾아오는 게 아니구나?'
실제로 스타 셰프들은 라스트 엠파이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게임 속에서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재료들을 찾아 새로운 음식들을 만들어 냈고,
그러한 식당들이 오히려 현실의 레스토랑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를 구가하는 경우도 빈번했던 것이다.
전투와 성장만을 추구하던 태준에게 있어서도 분명 새로운 경험이었다.
"음식은 마음에 드시오?"
다시 이르다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준은 이르다움을 바라봤다.
그녀의 또랑또랑한 눈동자가 태준에게로 향했다.
저 눈빛은 볼 때마다 왠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그리고 동시에 태준은 저 눈빛의 의미를 읽어냈다.
호기심이 잔뜩 묻어 있는 눈빛이다.
'무용담이 궁금하다고 했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들.
그리고 오크 처단자라는 칭호를 얻게 된 그 과정을 궁금해 하는 것일 테지.
그렇게 태준은 운을 띄웠다.
"제가 우연히···.'
라는 말로 시작된 태준의 일대기들이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
"오, 오오···."
"우우와아···."
"그렇군. 대단하군, 정말···."
"오호오···."
이르다움의 입에서는 끝없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다리조차 닿지 않는 높은 의자에 앉아 버둥대는 모습이 꽤나 귀여워 웃음이 나올 뻔 했다.
그렇게 태준의 말이 끝난 순간.
"정말···. 대단하오!"
이르다움은 잔뜩 신이 났는지 입을 작게 벌리고 작은 손을 부딪치며 박수를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몇 번 젓더니 표정을 고쳤다.
다시 근엄한 여왕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목을 몇 번 가듬더니 말했다.
"훌륭하오. 위대한 인간의 전사여. 그대의 여정에 진심으로 나 역시 경의를 표하는 바요."
"과찬입니다."
"과찬이라니. 그럴 리가! 그대는 분명 투왕의 제자라고 하지 않았소?"
"아, 예. 맞습니다만···."
순간, 태준은 기시감을 느꼈다.
투왕 그 이름을 이르다움이 뱉어낸 순간 말이다.
'설마···.'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 다시 돌아 봤을 때, 이번 퀘스트가 어쩌면 또 투왕으로부터 시작되는 퀘스트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기시감이다.
"우리 역시 그 남자에게 많은 빚을 졌지."
"아···!"
설마는 역시였다.
소름이 돋았다.
여기에서 또 한 번 투왕의 이름이 나오게 될 줄이야!
"그 분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 공간에 숨어 들 수 있었지. 그 분이 오크 히어로라는 괴물을 처단한 덕분에 말이오."
여기에서 이야기가 다시 이렇게 이어 질 줄이야.
그 뒤로 이르다움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오크 부족이 오크 히어로라는 오크들의 영웅으로 규합되고, 점점 니드와 숲의 종족들을 위협하기 시작하기 시작하였고.
그 빈틈을 노려 트롤까지 가세하여 그들이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그 순간에 투왕은 오크 히어로를 봉인했고, 트롤들을 몰아냈다는 것.
그렇게 숨을 돌리게 된 숲의 종족들은 니드를 주축으로 하여, 마법진을 설치했고 지금과 같은 니드의 둥지라는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우리의 둥지가 위협을 받고 있소. 트롤들의 대다수는 멍청한 녀석들이나, 간혹 현명한 트롤의 현자가 나타나지. 그 트롤의 현자가 현재 우리의 은거지를 발견한 듯 싶소."
이르다움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는 그들과 싸울 수 없소. 이미 숲 전체가 트롤의 마기로 가득차 버려 우리가 그 밖으로 나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힘을 잃게 되니까. 그러니 그대에게 부탁을 한 가지 하고 싶소."
"말씀 하십시오."
태준이 말했다.
바라던 바다.
부탁이라면 역시 퀘스트가 아니겠는가?
"부디 트롤 대현자를 쓰러트려 우리의 은거지를 위협하는 트롤로부터 이 둥지를 지켜 주길 바라겠소. 만약 그대가 트롤 대현자를 쓰러트린다면···, 그 보상으로 투왕이 남겨 놓은 유산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줄 터이니···."
"···?!"
태준의 눈이 커졌다.
'투왕의 유산?'
그런게 있었다고?
그런 말은 투왕에게도, 투왕의 제자들에게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맙소사.'
심장이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전설 퀘스트를 다시 손에 넣게 된 것만 해도 이미 대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버렸다.
이미 비전 기술 두 개를 습득한 것으로 끝난 줄 알았던 투왕의 남은 유산에 대한 힌트가 다시금 태준의 손 안에 들어올 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으니···.
'이건 놓칠 수 없잖아.'
그래.
그냥 전설도 아닌, 투왕과 관련된 전설 퀘스트라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퀘스트.
"제가 반드시 트롤 대현자를 쓰러트리고 오겠습니다."
"고맙소, 인간의 전사여! 하지만 트롤 대현자는 쉽게 찾아 낼 수 없을 거요. 그 자는 지독할 만큼 영민하고 영악한 존재라 자신의 존재를 결코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으니···."
이르다움은 태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받으시오. 이 안에 트롤의 피를 가득 채운다면, 이 구슬은 당신을 트롤 대현자가 숨어 있을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오."
[니드의 구슬]
-등급 : 유일
-트롤의 피를 가득 채울 경우, 니드의 구슬은 가장 강한 피를 품고 있는 트롤을 향해 당신을 인도할 것이다.
유일등급의 아이템.
그리고 이 구슬은 태준을 가장 강력한 트롤에게로 이끌 것이다.
그 이름은 트롤 대현자.
문제는···.
'또 히든 보스다.
그래.
중요한 건 바로 그거다.
트롤 대현자는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몬스터.
'지금까지 트롤의 숲의 보스 몬스터는···, 레드 락 트롤이 아니었던가.'
붉은 바위 트롤.
트롤의 부족 중, 가장 강력한 붉은 바위 족의 수장이 바로 지금까지 알려진 트롤의 숲의 보스 몬스터.
하지만 아니다.
그 뒤에 또 다른 보스 몬스터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태준은 다시금 새로운 보스 몬스터를 찾아 낼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강력한 트롤을 사냥할수록, 그 구슬에 트롤의 피는 더 빠르게 차오를 것이오. 반드시 트롤 대현자를 쓰러트리고 우리의 숲을 지켜 주시오."
[퀘스트가 발동됐습니다.]
[트롤 대현자 처치]
-등급 : 전설
-트롤 대현자를 처치하고 니드의 둥지를 수호하라.
보상은···, 이미 알고 있다.
이르다움이 말했던 그대로 투왕의 유산에 대한 힌트가 주어질 테니.
"다녀오겠습니다."
더 이상 지체 할 시간은 없었다.
태준은 바로 움직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투왕의 유산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다.
'자, 그럼···.'
이제는 구슬에 트롤의 피를 채울 차례다.
'최대한 빨리 채워 보자.'
어차피 이미 트롤이야 충분히 사냥해 봤다.
그러니 시간 문제일 뿐, 구슬을 채워 넣는 건 조금도 문제가 될 리 없다.
태준은 니드의 둥지를 벗어나 나시 트롤의 숲에 도착했다.
그때 마침 태준을 향해 네 마리가 넘는 트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전같았으면, 골치가 아팠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부스터!'
부스터에 추가된 속성 능력.
그리고 루루로부터 받은 타이즈의 효과까지···.
'쓸어 버리자.'
태준은 부스터와 절대 영역을 펼친 채 다가오는 트롤들의 가운데로 파고들어 주먹을 움직였다.
콰앙! 콰콰콰쾅!
폭발과 함께 한 번에 네 마리의 트롤들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니드의 구슬에 트롤의 피가 차올랐습니다.]
차오른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괜찮다.
태준의 사냥 속도는 23레벨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이대로 최대한 빠르게 채워 보자.'
그러니 할 수 있는 최대한 빠르게 트롤의 피를 채워내어 트롤 대현자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 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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