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니드의 둥지 (1)
22화 니드의 둥지 (1)
"말씀하시죠."
태준이 말했다.
아주 좋은 예감이 스쳐간다.
또 다른 전설 퀘스트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는 예감 말이다.
이내 루루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이 숲은 과거에 여러 종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아름다운 곳이었지. 하지만 오크들이 부락을 형성한 뒤로, 숲의 종족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렸어. 그렇게 다양한 종족들이 사라진 곳을 트롤들이 가득 채워 버렸고."
"그렇군요."
이건 태준도 모르고 있던 이야기다.
그러니 더더욱 확신이 더해진다.
이제는 세상에서 잊힌 이야기.
그거야 말로 전설의 기본 조건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서 이 숲을 찾아낼 날을 기다리고 있어."
"······!"
왔다.
이건 분명히 전설이었다.
"혹시 그들과 만나 보겠어? 오크 히어로를 쓰러트린 너라면 아마 그들이 널 환영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숨어든 이들!]
-등급 : 전설
-과거 트롤의 숲에서 살고 있던 이들의 흔적을 따라 움직여라
'떴구나!'
태준은 쾌재를 불렀다.
역시다.
조금 전 달성한 유일 등급의 칭호.
최초의 오크 처단자.
그것이 바로 새로운 전설 퀘스트로 향하는 열쇠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이다.
"어때, 그들을 만나 보겠어?"
"물론입니다."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 나도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알지 못해. 그들이 숨어 있는 위치를 찾는 건 너의 몫이라는 뜻이야."
"···그렇군요."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히어로의 무덤처럼 길을 안내해 주는 것 따윈 기대 할 수 없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는 되어 줘야 전설 등급 퀘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 너라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태준은 루루와 인사를 나눈 뒤, 루루의 오두막을 벗어났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막상 다시 트롤의 숲으로 나오긴 했으나 막막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힌트가 없지 않은가?
'흠···.'
태준은 다시 퀘스트 창을 살폈다.
'흔적, 흔적이라···.'
분명히 그랬다.
현재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당장 숨어 살고 있는 이들을 찾아가라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흔적을 따라 움직이라는 것.
'그러면···.'
흔적을 찾아보자.
이 숲 어딘가에 흔적이 남아 있다는 말일 테니까.
물론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일 터였다.
그렇지 않나?
루루의 말에 따르자면 꽤나 오랜 시간 숨어 살고 있는 이들일 텐데, 그들이 어디 대놓고 흔적을 드러낼 리도 없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태준은 알고 있다.
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태준에겐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이미 한계를 아득히 초월해 버린 기감 말이다.
그걸 이용한다면, 분명히 흔적을 찾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 보자.'
그렇게 태준은 무작정 움직였다.
이 트롤의 숲 어딘가에 숨어 있을 무엇일지도 모를 흔적을 찾기 위해서.
*
흔적이란 무엇인가.
남아 있는 자취를 이야기 한다.
그러니까 핵심은 남아 있는 무언가라는 거다.
태준은 무엇이 남아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포인트에 집중했다.
결국, 이 안에 또 다른 종족이 살고 있다면 그들이 이동한 흔적, 혹은 먹고 남은 흔적과 같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남게 될 무언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흔적을 그냥 내버려 두진 않았겠지.'
맞는 말이다.
숨어 살고 있는 녀석들이 누가 보란 듯이 흔적을 대놓고 드러내 놓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어질 수 없는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야 한다.
연속된 패턴을 가지고 있는 흔적을 말이다.
태준은 벌써 며칠째 트롤의 숲을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 넓은 숲이 아닌지라, 기감을 끌어 올릴 만큼 끌어 올렸음에도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전설 등급인가.'
지금까지 너무 쉽게 진행돼서 그랬지, 이제야 전설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니까 웬만한 길드에선 엄두조차 못 내지.'
생각해 보라.
아무런 힌트도 없이 숲 하나에 던져 놓고 흔적을 찾아내라고 한다니.
그 단어만 봐도 머리가 지끈댈 수밖에 없다.
결국, 평범한 길드에서 이 퀘스트를 수행하게 되었다면, 모든 길드원들을 동원해서 숲을 구석구석 살피도록 지시했어야 했을 터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외부 인원을 돈을 주고 사와서 일을 시켜야 했겠지.
괜히 전설 등급 퀘스트를 거대 길드에서 독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인력을 동원 할 수 없는 길드는 아예 클리어를 포기하고 거대 길드에게 거액을 받고 전설 퀘스트를 팔아넘기는 일도 빈번했으니까.
'어쨌든, 난 할 수 있어.'
태준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게임에서 200%의 동화율을 가지고 있는 이상, 길드원 수십 명 동원해서 탐색하는 것보다 자신 스스로 찾아내는 게 훨씬 더 효율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태준이다.
이 순간에도 태준은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 채 숲을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순간.
'음?'
태준은 자리에 멈춰 섰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한 걸음 발을 내디딘 순간 말이다.
다시 조금 전 자리로 돌아갔다.
마찬가지다.
'뭔가 걸리는데?'
분명 허공엔 아무것도 없지만, 한 걸음 차이로 어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통과한 듯한 기분이다.
'여기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태준은 천천히 주변을 살핀다.
바닥 하나하나.
나무 하나 하나.
무언가 이상한 게 없는 가 면밀하게 살폈다.
그 순간.
'어?'
태준은 발견했다.
어떤 공통된 특징을 말이다.
'저기도 있네.'
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돌.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쳐 버린다면 알아차리지도 못 할 만큼 평범한 돌이지만···.
'마주보고 있다.'
맞다.
두 개의 돌은 정확히 직선 방향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저 돌 두개를 사이로···, 알 수 없는 장막이 설치되어 있다.'
정확하다.
둘 사이를 가로지를 때마다 어떤 미세한 막을 통과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태준은 히죽 웃었다.
'힌트를 찾은 것 같은데.'
자, 그럼 지금 찾은 힌트가 정말 이 퀘스트를 완료 할 수 있을 힌트인지 밝혀내야 할 때다.
그건 어렵지 않다.
'절대 영역.'
태준의 기감을 한층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그 놀라운 힘.
파아아앗!
순간, 절대 영역이 활성화 되며 태준 주변으로 장막이 펼쳐졌다.
그리고···.
'맞다.'
태준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돌 사이로 발동되어 있는 장막을 말이다.
'마법 장벽 같은 건가.'
무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이 숲에 살고 있는 녀석들이 설치해 놓은 일종의 장벽으로 보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태준은 다음 단계를 떠올렸다.
퀘스트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은 흔적을 따라 움직이라는 것.
'그럼···.'
이 돌 두 개는 여기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겠지.
또 어디론가 무언가가 이어져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태준은 시선을 돌려 그와 같은 돌을 찾았다.
그리고···.
'있다.'
또 발견했다.
돌은 또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었고, 돌과 돌 사이에는 또 알 수 없는 장막이 펼쳐져 있다는 걸 말이다.
'따라가 보자.'
태준은 그 돌을 따라 이동했다.
*
'육망성이다.'
결국 태준은 깨달았다.
돌과 돌이 연결되어 그리고 있는 모양은 바로 육망성이라는 걸 말이다.
'그런데···, 겁나게 크군.'
말 그대로.
돌이 연결되어 그리고 있는 육망성은 굉장히 커다랬다.
마주본 꼭짓점과 꼭짓점을 가로지르는 직선거리만 족히 수십 미터는 될 법 한 크기다.
'이러니까 찾기 힘들지.'
돌멩이가 밀집이라도 되어 있었다면, 규칙성을 찾기 좋았을 테지만.
이렇게 넓게 퍼져 있으면 여기에서 규칙성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로 밖엔 들리지 않는다.
'백 명을 풀어놔도 어렵겠는데.'
그것이 태준의 판단.
태준도 기감을 통해 그 장막을 느끼지 못했다면 힌트도 찾아 낼 수 없었을 지 모를 테니까.
'뭐, 어쨌든···.'
태준은 육망성의 존재를 알아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중앙으로 이동하자.'
육망성의 중앙.
육망성 내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에너지.
그것은 중앙으로 향할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태준은 망설이지 않고 육망성의 중앙을 향해 이동했다.
아마 그 중앙에 무언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조금 걸어 움직인 태준은 머지않아 육망성의 중앙에 도착했다.
'오, 신기한데···.'
육망성의 중앙에 도착해서 느낀 감정은 신비로움이었다.
이곳에는 트롤의 흔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육망성의 외곽 부분만 하더라도 트롤들이 오갔던 흔적이 확실히 눈에 띄었으나, 여기엔 트롤의 발자취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확신이 더해졌다.
자신이 잘 찾아 왔다고.
'자, 그럼···.'
뭘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다.
거듭 말했듯, 퀘스트의 요구 조건은 어디까지나 흔적을 따라 이동하라는 것.
그러니 지금···.
태준은 찾아냈다.
자신의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일렁임을 말이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니드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와 함께.
쩌적- 쩍!
허공에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마치 유리처럼 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아아앗!
동시에 갑작스레 무수한 빛무리가 허공을 수놓았다.
반딧불이 무리를 보고 있는 듯한 빛무리다.
그 수는 수십으로 시작하여 순식간에 수백, 수천으로 늘어났다.
공간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태준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건 조금 전에 나타난 그 빛무리 뿐이다.
혼란스러웠으나 태준은 정신을 붙들었다.
혹시라도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언제라도 싸울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니드의 수문장이 당신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니드의 수문장이 당신의 출입 요건을 검증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러더니.
[니드의 수문장이 당신의 칭호를 확인했습니다!]
[니드의 호감도가 증가합니다!]
[니드의 둥지로 향하는 문이 열립니다!]
콰콰콰콰!
니드의 둥지라는 곳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는 메시지와 함께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
지금 태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낯선 공간.
트롤의 숲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숲이다.
하지만 트롤의 숲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트롤의 숲은, 그저 나무만 빼곡히 자라 있는 울창한 밀림 같았다면 지금 태준의 눈앞에 보이는 곳은 숲이긴 하나, 넓은 들판과 냇물이 함께 흐르고 있는 동화속 에서나 볼 법한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때 태준의 귓가에 음성이 들어왔다.
[이 땅에 발을 들이는 것을 허락하노라, 위대한 인간의 전사여!]
그리고 웬 음성이 들려왔다.
근엄하고 동시에 고혹적인 여인의 음성이다.
이내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초로 니드의 둥지를 발견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증가했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진 업적 달성 메시지까지 떠오른 그 순간에 태준은 완전히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서 있는 건, 아주 작은 요정이었다.
태준의 주먹 정도 크기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요정.
그 요정의 얼굴은 한없이 잔잔한했으나, 그 순간에도 바쁘게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것이 꽤나 이질적이었다.
'힘들어 보여.'
그게 그녀를 본 태준의 첫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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