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의외의 추종자 (3)
21화 의외의 추종자 (3)
그 순간에도 영상의 조회수는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덧 천만을 돌파했고, 머지 않아 이천만을 뚫어 낼 기세다.
'뭐야, 이거.'
태준은 놀라서 영상을 클릭했다.
'아···.'
그 녀석들이다.
태준에게 시비를 걸어 온 트리오!
그 안엔 분명 태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물론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은 또렷하게 보였다.
잠시 영상을 보던 중, 태준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려 버렸다.
자신의 모습에 말이다.
'멋있긴 하네.'
자뻑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봐도 멋있다.
스스로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다.
'저걸 내가 다 피한 거야?'
그 말도 안 되는 마법 회피 능력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지경.
'와, 진짜 열받을 만 하네.'
마법사가 열받아 고래고래 소리를 치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엔 조금 짜증이 났으나, 이제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무리 쏴대도 맞질 않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겠는가?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설마 사신까지 찍었나?'
그러면 이야기가 좀 복잡해 질 수 있다.
그런데···.
'응?'
아니다.
영상이 끝났지만 사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이 적은 글이 떠올랐다.
[니들 긴장해라. 다 뒤졌다. 보이냐? 피지컬 개지리는 거? 뭐? 고레벨 빤스맨 컨셉충? 지랄하지 마라 이 사람은 진짜 순수 피지컬 씹괴물이니까. 그리고 지금 랭커놈들 니들 이제 다 뒤진 거임 ㅋㅋㅋ 지금까지 편했지? 달달했지, 응? 기다려 곧 우리 흑사자 브레이커님이 니네 대가리 다 깨부수고 다닐 거니까.]
'···이건 뭐야···.'
태준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저 녀석들에게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댓글 역시 불타고 있다.
-진짜 장난 아니네?
-저거 일 낼 거 같은데?
-흑사자 똥줄 탈듯?
-흑사자 뿐이냐? 진짜 다 뒤지는 거임 ㅋㅋㅋㅋ
라스트 엠파이어의 유저들은 이 세계의 격변을 원하고 있었다.
고착화되어 있는 랭커 체계를 박살내줄 누군가를 말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벌어 질 수 없다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을 대체 무슨 수로 밀어낸다는 말인가?
동화율, 아이템, 세력, 자금.
그 모든 걸 갖춰도 될까 말까 한 이 판에서 누가 그 미친 짓을 해낼 수 있겠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유저들은 웬 영상 하나를 통해 가슴 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재능이 아닌가.
지금 영상의 재능이 그저 조금 뛰어나다, 수준의 재능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타오르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씨발! 마법을 다 피하는 새끼가 어딨냐!
-이건 그 누구 가져다 줘도 못 한다!
-저 새끼 ai아님? ㅋㅋㅋㅋ
ai이야기가 나올 만큼 기묘하고도 말이 안 되는 움직임을 초단위로 쏟아내는 저 천재를 보라!
-그러니까, 쟤가 걔일 확률이 높다는 거잖아.
-그렇겠지. 아주 높은 확률로!
그리고 지금, 그렇지 않아도 하운드를 들썩이게 만든 정체 불명의 플레이어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한 요소들이 겹치고 겹쳐 일명 '흑사자 브레이커'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랭커 브레이커다!
-랭커들 다 박살내 버려라!
-뭐가 됐건, 진흙탕 한 번 만들어 보라고!
랭커 브레이커.
흑사자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유저들의 염원이 담긴 말이었겠지.
'허, 참.'
태준은 이 기이한 현상에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피케이를 당해 캐릭이 지워진 녀석들이 이런 영상을 찍어 올리고, 추종자를 양산하는 기폭제가 되어 버릴 줄이야.
'근데 얘들은 왜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야?'
언제 랭커를 부순다고 한 적이 있던가?
생각해 봤지만 그런 기억은 없다.
그저 열심히 게임을 하며 랭커에 오르겠다고 다짐은 한 것 같은데···.
태준은 어이가 없어 댓글을 한 줄 남겼다.
-저 사람 그냥 게임을 좋아해서 열심히 게임을 하는 사람인 거 아닐까요? 그 이상한 별명들 보면 본인이 조금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순식간에 댓글이 달렸다.
-지랄하지 마라
-니가 뭘 안다고 ㅋㅋ
-저 사람의 행보만 봐도 보이지 랭커들 뚝배기 다 깨부수고 머지 않아 이 세계의 정점에 오를 왕이시다.
-저 구배지례 영상 올렸어요. 확인 부탁드려요. 다음엔 뭐 해볼까요? 추천좀요
-나가 뒤지는 건 어떰?
'미친놈들.'
태준은 혀를 내둘렀다.
논쟁이 불가능한 상대임을 깨닫고 태준은 관심을 돌렸다.
태준의 의도와는 다르게 신앙의 영역으로 번져가는 듯 하다.
'그건 그렇고···, 시작 됐나.'
태준은 지금 하운드에서 시작된 보스 쟁탈전에 대한 소식도 확인한 참이다.
사실 당연한 말이었지만, 벌써부터 거대 길드들은 오크 히어로의 독점을 위해 발 벗고 보스 쟁탈전에 뛰어들은 것이다.
'딱히 관심은 없다만.'
정확히 말하면, 태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오크 히어로를 불러내고 오크 히어로의 무덤을 찾아낸 건 태준이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 이후의 권한은 태준에게는 없다.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유일한 방법은 차라리 첫 레이드 권한을 거대 길드에 돈을 받고 파는 거였겠지만.
'그런 미친 짓을 왜 해?'
태준에겐 돈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이름을 남겼다.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역사의 족적을 남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퀘스트도 걸려 있었고.'
그 역시 중요하다.
루루의 퀘스트.
그 등급은 무려 전설.
운이 좋으면 그 다음 퀘스트로 연결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계속 앞으로 가는 거야.'
아무리 좋고 탐이 나 보이는 게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생각은 없다.
그래서야 발전이라는 건 생각 할 수 없는 법이지.
꼴깍-
태준은 맥주를 한 모금 살폈다.
보스 쟁탈전에 대한 소식들을 계속해서 천천히 훑어봤다.
'아무래도··· 흑사자가 가져가겠네.'
흑사자의 오크 히어로를 차지하기 위한 열의는 그 어떤 길드도 이길 수 없었다.
아마 후드 때문이겠지.
오크 대전사 다음으로 오크 히어로 레이드를 화려하게 성공시키며 후드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흠, 근데 힘들 걸.'
하지만 태준은 그런 흑사자의 전략에는 부정적이다.
'거기에 내 레벨하고 클리어 기록까지 적혀 있는데.'
그게 문제였다.
최초 클리어 하며 적어둔 무흔이라는 이름 옆에는 앞으로 첫 클리어 당시의 레벨과 클리어 시간이 함께 적혀 있을 테고.
결국 후드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태준은 알고 있다.
후드가 그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태준보다 빠르게 오크 히어로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어디 한 번 해 보라지?'
머지 않아 후드가 느끼게 될 절망감을 십분 공감하며 태준은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선수시절 느꼈던 감정들.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 무너지고 또 무너졌던 순간들!
문득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 경기에서 후드를 만났던 날에 대한 기억.
태준을 바라봤던 조롱 가득한 그 눈빛이 말이다.
그때 후드는 눈으로 태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게 차이야.
태준의 피해의식에 의한 망상은 아니었다.
후드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남자였고, 팀 내에서도 제왕으로 군림하는 남자였으니까.
'그래. 한 번 느껴 봐라.'
그렇다면 이제는 후드의 차례다.
재능 위의 재능.
그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무엇인지 그 녀석도 한 번쯤은 느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꼴깍-
태준은 다시 맥주를 삼켰다.
'사람이 그렇게 성장하는 거지.'
태준은 이제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자신이 최고일 지언정, 항상 자세를 낮춘 채 위를 바라본다.
선수 시절의 버릇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었으니까.
그러한 버릇은 태준을 성공적인 감독으로 만들어 줬으니, 지금 역시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
날이 밝았다.
루루가 이야기 했던 그 날이다.
태준은 일어나자마자 접속기에 몸을 뉘었다.
어떤 아이템일까?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아 날밤을 까버린 태준이다.
그렇게 태준은 루루의 오두막에 도착했다.
루루의 얼굴은 초췌하다.
아마도 밤을 꼬박 지샌 모양이다.
"와, 왔어?!"
희미한 동공으로 태준을 바라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루루를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예. 못 주무셨습니까?"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어? 이렇게 훌륭한 재료를 두고 말이지!"
루루는 어깨를 으쓱으쓱 하며 태준을 향해 윙크를 했다.
"후후후···. 자, 들어 와."
그렇게 루루는 자신의 오두막 안으로 태준을 안내했다.
그리고도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곳은 연구실로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과 각종 재료들이 사방에 늘어져 있었다.
태준은 신기한 눈으로 곳곳을 살폈다.
솔직히 봐도 뭔지는 잘 모르겠다.
"어휴, 내가 정리를 못 했어. 이해 해 줘."
"예, 괜찮습니다."
사실 태준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의 공간을 정리하는 사람이지만, 남에게 무어라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자신의 공간만 깨끗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 이거야!"
그때, 루루는 벽 한쪽에 걸려 있는 검은 물체를 가져왔다.
그 물체는 주먹만 한 크기의 무언가였다.
말 그대로 무언가다.
"이게··· 뭡니까?"
태준이 물었다.
눈으로만 봐선 대체 무엇인지 알기 힘들었으니까.
"확인해 봐. 직접."
그렇게 말하며 루루는 태준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태준이 그 무언가를 받아든 순간, 눈 앞에 정보가 떠오른다.
[마법의 투혼 타이즈]
-방어력+50
-피해 흡수+15%
-HP+500
-이동속도+10%
-공격속도+10%
-공격력+5%
-치명타데미지+5%
-모든 능력치+5
'어?'
타이즈?
'이것 봐라?'
심지어 옵션들도 하나같이 훌륭하다.
하나하나 태준에게 필요하지 않은 옵션들이 없었다.
심지어 피해 흡수까지 달려있다.
얼마 전 피케이를 통해 획득한 흡수의 반지와 더한다면, 족히 40%에 가까운 피해 흡수 옵션을 가지게 된 셈이다.
'허, 참!'
기대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훌륭한 아이템을 가지게 될 줄이야?
"그걸 손에 들고 '착용'이라고 말하면 돼.'
"차, 착용···?"
그 순간.
촤아악!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물체가 태준의 전신을 감쌌다.
그러더니 태준의 체형에 맞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와···!"
태준은 진심으로 놀라 감탄성을 쏟아냈다.
이내 태준의 온 몸을 감싼 검은 물체는 이름 그대로 타이즈의 형태로 변했다.
영화에서 봤던 블랙 재규어의 복장과 꽤나 유사한 모양새였다.
"마음에 들어?!"
"예. 정말 마음에 듭니다."
태준은 흡족했다.
특히나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크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검은색이라 눈에 띄지도 않는다.
게다가 안 그래도 영상에 퍼져 버려 골치아파질 수도 있는 이 타이밍에 방어구가 생겼으니···.
'당분간 이목은 피할 수 있겠네.'
안 그래도 기본 장비만 착용한 채 격투가로 활동하면 세상 누가 봐도 태준이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좋았어.'
이어진 전설 퀘스트들로 한 순간에 엄청난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튜토리얼로부터 시작한 그것이 여기까지 이끌어 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것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말이다.
'하긴···.'
문득 태준은 떠올렸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이렇게 짧게 끝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하나하나 쉬운 것들이 없었지.'
새삼 자신이 해 온 일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5레벨에 15레벨 높은 오크 대전사 사냥.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전직 시험.
그리고 동굴을 통과하여 투왕을 만나고···, 루루의 함정을 피하고 등등.
그것들을 그야말로 단시간에 돌파해 버렸으니, 지금의 성장도 당연한 말이었다.
남들의 몇 개월을 며칠 단위로 압축해 버린 셈이 아닌가?
그러니 생각했다.
'뭐, 더 나와줘도 좋지만 이 정도만 해도 할 만큼 했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평생가도 구경 못 할 전설 퀘스트를 대체 몇 개나 독식해 버린 것인가.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라는 걸 태준도 충분히 느끼고 있는 지금이다.
그런데 그때···.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유일 등급의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최초의 오크 처단자!]
-등급 : 유일
-오크를 원수로 생각하는 모든 종족에게 높은 호감도를 살 수 있는 칭호.
'어?'
갑작스레 눈앞에 떠오른 칭호 메시지에 태준의 눈이 동그래진 지금···.
"혹시 말이야······."
루루가 말을 걸어왔다.
순간, 직감했다.
'또다.'
아직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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