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의외의 추종자 (1)
19화 의외의 추종자 (1)
*
'완벽한 사냥터야.'
트롤의 숲 깊은 곳.
이곳은 플레이어도 없다.
일전에 말했듯,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트롤의 숲 초입에서 사냥한다.
트롤의 숲에서 언제, 어디에서 트롤에게 공격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트롤의 숲 깊은 곳으로 들어오게 되면 트롤 궁수, 혹은 트롤 마법사 따위의 상위 트롤과도 마주치게 된다.
'까다롭긴 더럽게 까다롭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울창하고 어두운 숲.
그 안에서 궁수, 혹은 마법사와 같은 원거리 몬스터를 마주친다면?
'죽는 거지, 뭐.'
그 때문이다.
트롤의 숲 깊은 곳은 하운드의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도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사냥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태준에게는 더더욱 좋았다.
울창한 숲이나 어둠 따위는 애초에 태준에게 문제 따위 되지 않는다.
트롤 궁수의 화살 저격도 마찬가지다.
이미 이전 전직 시험에서 암기조차 모조리 회피해 버렸던 태준이 화살 따위에 겁먹을 이유가 있겠는가.
심지어 지금의 동화율은 무려 200%로 뛰어 올라 버렸는데 말이다.
'꿀통이 따로 없네.'
이제 40레벨에 가까워진 트롤을 끝없이 사냥하는 태준에게 놈들은 그야말로 경험치 보따리나 다름없었다.
'레벨도 3개나 올랐고.'
어느덧 태준의 레벨은 3이 더 올라 23레벨이 되었다.
기함을 토할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준]
-레벨 : 23
-힘 : 33+70
-민첩성 : 69+73
-체력 : 23+63
-마력 : 23+63
-포인트 : 0
능력이 역시 괴상하기 짝이 없는 수준.
'이게 어떻게 23레벨의 상태창이야?'
스스로 보면서도 헛웃음이 흘렀다.
저 추가 능력치들이 거의 대다수가 아이템이 아닌 업적을 통해 손에 넣은 거라는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이 게임의 밸런스를 탓하며 운영사 앞으로 가 대규모 시위를 벌일지도 모를 일이다.
홱!
그때, 태준은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던 화살을 회피했다.
그리고 부스터를 사용했다.
현재 부스터의 레벨은 4.
민첩성을 무려 25% 나 올려준다.
대략 30이 조금 넘는 민첩이 부스터 한 번으로 증가해 버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단숨에 170이 넘는 민첩성을 가지게 된 태준은 단숨에 도약해 올랐다.
먼 곳에 떨어져서 야비하게 자신을 저격한 트롤 궁수를 향해 단숨에 가까워진 태준은 거침없이 주먹을 놈의 면상을 향해 꽂아 넣었다.
콰아아앙!
얼굴이 움푹 파인 트롤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고, 놈이 무어라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 태준의 발은 놈의 머리통을 다시 깨부쉈다.
콰앙!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나 버린 트롤 궁수는 다시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태준의 눈앞으로 반가운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부스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부스터.
그 스킬이 드디어 5레벨이 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그와 함께 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부스터 스킬에 새로운 속성이 부여 되었습니다.]
'응?'
속성이라니.
말했듯, 스킬의 생성 혹은 변화는 완전히 랜덤이다.
그러니 태준으로서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예측 할 수 없는 일.
그런데 속성 부여라니.
태준은 빠르게 시선을 돌려 부스터의 변화를 살폈다.
[부스터]
-레벨 : 5
-일시적으로 민첩성을 증가시켜 공격 속도, 이동 속도를 증가시킨다.
-민첩성+30%
-공격력+35
-속성 부여 : 폭발 데미지+30%
-재사용 대기 시간 : 25초
'오···?'
태준은 새로 추가된 옵션을 확인했다.
'폭발 데미지라니?'
그러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폭발이 일어난다는 건가?
'아, 그러고 보니···.'
현재 루루의 마법의 징 장갑에 달려 있는 옵션.
마법 데미지 13% 추가.
그 효과는 이 속성 부여 효과에 적용이 될 테니.
'예상치 못한 이득이네.'
그리고 마침, 저쪽에서 트롤 세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태준은 그런 놈을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
'어디 한 번 맛이나 보자.'
새로 부여된 속성.
그 위력을 말이다.
콰앙!
태준이 트롤을 향해 주먹을 내지른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콰쾅!
그 폭발은 번져나가며 그 옆의 트롤들까지 공격한 것이다!'
'스플래시?'
말 그대로, 폭발에는 스플래시 데미지까지 더해져 있다는 뜻.
'좋은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사냥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지 않나?
마법사와 같은 직업이 선호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광염 공격 때문이다.
그로 인한 폭발적인 화력 말이다.
지금 당장 그 정도는 아니지만, 태준에게도 한 번에 다수의 몬스터를 사냥할 무기가 생겼다는 뜻.
'좋았어.'
그렇게 다시 태준이 주먹을 움직이려던 순간.
구우우-!
'불덩이? 마법인가?'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파공성.
그와 함께 태준의 방향으로 커다란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태준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콰아앙!
폭발과 함께 트롤이 쓰러졌다.
한 마리가 아니다.
태준에게 달려오고 있던 모든 트롤은 순식간에 모조리 쓰러져 버렸다.
'플레이어다.'
지금 저쪽에 플레이어가 있었다.
태준은 경계했다.
지금의 행위는 명백한 스틸.
그 말은 저들이 결코 태준에게 호의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태준과 대치하고 있던 세 마리의 트롤은 순식간에 쓰러져 버렸다.
그것만으로 봐도 지금 저쪽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레벨이 결코 낮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꽤 높다.
당연한 말이지.
트롤의 숲 깊은 곳에서 트롤을 순식간에 쓰러트릴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못 해도 50레벨은 뛰어 넘었다고 봐야 할 터였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태준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만약 첫 번째 트롤을 쓰러트린 게 실수였다면, 다가와서 사과를 했어야 했겠지만 사과는 커녕 보란 듯이 세 마리의 트롤을 한 순간에 쓰러트려 버리지 않았나.
태준은 기감을 끌어 올렸다.
'숫자는 세 명.'
심지어 그들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태준은 조금 더 신경을 끌어 올렸다.
'마법사, 기사, 사제?'
그들의 직업도 곧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조합.
그리고 그때.
"찾았다, 이 버그 쓰는 쓰레기 새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그 순간 태준은 떠올렸다.
'그 놈들이구나.'
일전, 태준에게 쓰러져 캐릭터가 삭제 당했던 그 세 명 말이다.
'뭐, 복수 혈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태준은 피식 웃었다.
*
브람스, 라파엘, 연.
세 사람은 트리오다.
그들은 라스트 엠파이어를 플레이 한 순간 깨달았다.
이 게임에서 자신들은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을 즐길 거리가 없는 게 아니다.
이 게임엔 많은 생활, 생산 콘텐츠도 존재한다.
그리고 뭐.
세상 모두가 랭커가 되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판타지의 세계관 속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고 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매력을 지닌 게임이지.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세 사람도 그런 부류였다.
단순한 사냥, 생활 따위론 결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으나 그렇다고 랭커가 될 수도 없는 이들.
그들이 택한 방향은 바로 PK다.
그야말로 짜릿한 경험이 아닌가.
누군가를 죽이고 장비를 빼앗고, 그것으로 성장한다.
물론 위험하다.
잘못했다간 막피범을 낙인이 찍혀 게임을 못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부캐를 육성한다.
부캐로 적을 죽이고, 그 아이템을 빼앗아 본캐로 넘기는 것이다.
값비싼 현질 없이도 꽤 괜찮은 아이템을 쉽게 수급하고, 본캐는 더 빠르게 성장 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그들은 정직하게 사냥하고 파밍하고 성장하는 이들을 보며 조소하는 부류였다.
그런데 그런 부캐가 사망했다.
심지어 캐릭터가 삭제됐다.
정체도 모를 녀석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 영상 하나가 공개됐다.
오크 대전사를 혼자 때려잡는 격투가!
'이 새끼다.'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저 격투가가 바로 자신들의 부캐를 지워 버린 녀석이라고.
그 격투가를 향한 논쟁을 보며 세 사람은 생각했다.
'지랄하고 있네!'
그들은 안다.
조금 전 말로는 버그니 뭐니 했지만, 저 새끼는 버그도 유저는 아니다.
고렙도 아니다.
'진짜 재능충이야.'
분명했다.
직접 마주해서 알고 있다.
처음엔 단순히 버그라고 생각하고 운영사에 문의를 넣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버그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게임 이용자입니다.
로그 확인 결과 충분한 경고 메시지가 제공 되었습니다!
그러니 인정했다.
버그는 아니라고.
그러면 레벨이 높은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확률이 더 높다.
분명히 봤으니까.
두 눈으로.
그 실력을 말이다.
'미친 재능충새끼. 운이 좋아서 웬 이상한 스킬을 손에 넣은 새끼.'
하지만 가만히 놔둘 순 없다.
그들은 본캐를 꺼냈다.
복수를 위해서다.
그 날부터 하운드 곳곳을 뒤졌다.
오크 부락을 뒤졌고.
그것도 모자라 트롤의 숲 온 천지를 쑤시고 다녔다.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말이다.
그리고 결국 찾았다.
한 눈에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혼자서 기본 장비 하나만 들고 날뛰는 격투가 새끼!
솔직히 조금 놀랐다.
혼자 트롤을 사냥하고 있다니.
뭐 이런 괴물이 다 있는 건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길 수 있다.
'네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뭐 어쩔 건데? 우리는 레벨하고 장비가 있다고.'
그들의 레벨은 이미 50레벨이 넘었다.
장비 역시 돈으로 치면 수천만 원을 훌쩍 넘는 장비들이다.
물론 그들의 동화율은 그리 높지 않다.
고작 해 봐야 70을 조금 넘는 수준.
하지만···, 괜찮다.
이길 수 있다.
'한 번만 맞으면 끝나는 거야.'
제 놈이 아무리 동화율이 높고 피지컬이 좋다고 한들, 게임에선 장비빨을 못 이긴다.
물론 비슷한 레벨이라면 동화율의 차이가 어마무시 할 테지만.
레벨 차이가 수십이 난다면 동화율로도 어찌 할 수 없는 거다.
말 그대로, 한 번만 맞으면 되니까.
단 한 발만 적중시키면 게임은 끝이다.
'심지어 저 새끼는···, 방어구도 없다고.'
기본 장비.
대체 그것으로 어찌 하겠다는 말인가?
'뒤져라. 그리고 우리한테 뺏은 아이템이나 내 놔.'
그렇게 생각하며 그들은 싸움을 준비했다.
사제는 버프를 걸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버프 스킬을 쏟아냈다.
탱커는 방패를 들었다.
이 순간을 위해 방어력에 몰빵했다.
저번과 같은 일은 없을 거다.
마법사만 지키면 된다.
그렇게 마법사가 한 번만 공격을 성공하면 게임은 끝날 테니까.
그리고 지금···.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번쩍!
그리고 그 녀석의 발아래에서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런데···.
'없다.'
또다.
이 개 같은 새끼.
하지만 괜찮다.
이미 경험해 봤다.
저 괴물 같은 반사 신경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건 그냥 미끼일 뿐이다.
'이건 못 피할 거다.'
다시 마법사의 지팡이가 빛을 뿜어냈다.
[블레이즈 필드]
범위 안에 있는 적에게 무차별적으로 화염을 난사한다.
이걸 피한다?
그건 세상 누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레벨 높고 장비 좋은 놈들은 몸으로 버텨 내겠지.
하지만 저 놈은 아니다.
무조건 당하게 돼 있다.
그러면, 넌 죽는다.
'뒤져라!'
콰아아아!
그 순간, 반경 수십 미터에 이르는 지형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신이니 뭐니.
캐릭터가 삭제되니 뭐니···.
'어쩌라고, 씨발.'
안 진다.
이번엔 절대 안 진다.
한 번 당했으면 됐지 또 당해 줄까봐?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들의 머릿속엔 패배 따윈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
'······!'
태준은 조금 놀랐다.
'피할 곳이 없나.'
마법사가 마법을 시전한 그 순간, 태준이 서 있는 모든 범위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범위 마법이구나.'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범위 마법.
'위험한데.'
분명히 위험했다.
저 마법에 한 번이라도 당한다면 위험하다.
태준에게 방어력은커녕 마법방어조차 없으니까.
'단단히 노리고 왔어.'
그리고 그 순간, 땅이 불길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다.
하지만···.
'있다.'
태준은 그 순간에 길을 찾아냈다.
이 화염 마법은 분명 반경 수십 미터 범위 안에서 랜덤으로 불길을 뿜어내는 마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인다.'
미세한, 불길이 솟구치는 그 극도로 미세한 에너지의 유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태준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느낄 수 없을 일명 '마나'라 불리는 에너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