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소문 (3)
15화 소문 (3)
*
권강.
그 힘을 손에 넣었지만, 역시 트롤의 숲은 만만한 사냥터가 아니었다.
아니, 지금의 태준에게는 확실히 버거운 사냥터였다.
일반 트롤이 나오는 트롤의 숲의 초입을 조금 지나고 난 뒤부터 등장하는 트롤들은 일반 트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괴물들이었다.
'깊숙이도 숨어 있네.'
마법사는 트롤의 숲 깊은 곳에 숨어 살고 있었다.
지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 움직이니 이제는 플레이어들도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외진 곳까지 들어오게 됐다.
그런만큼, 몬스터의 위협은 점점 거세졌다.
트롤 전사.
트롤 광전사.
트롤 투사 등···.
일반 트롤보다 덩치는 조금 작았지만, 트롤의 재생력과 날렵한 움직임을 보유한 말도 안 되는 몬스터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놈들의 레벨은 30중반에서 40초반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제 아무리 태준이 훌륭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코 상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거 무기라도 바꿔야지 안 되겠는데.'
태준조차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아직 녀석들에게 공격을 허용하진 않았지만 두 마리가 몰려 버리면 태준으로서도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는 일은 빈번했다.
쿠웅!
지금 막 태준은 35레벨의 트롤 전사를 쓰러트린 참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래도 레벨은 빠르게 오른다.
벌써 트롤의 숲에 접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준의 레벨은 15가 됐다.
[준]
-레벨 : 15
-힘 : 25+29
-민첩성 : 45+27
-체력 : 15+27
-마력 : 15+27
-포인트 : 0
'말도 안 되는군.'
이게 어떻게 15레벨의 능력치라고 할 수 있을까.
심지어 권강의 효과로 이젠 레벨이 오를 때마다 민첩성까지 증가하게 된 상황.
덕분에 민첩성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첩성이 증가할 수록, 권강의 추가 데미지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으니, 그 시너지 효과는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수준.
그리고 지금 막.
[부스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부스터]
-레벨 : 4
-일시적으로 민첩성을 증가시켜 공격 속도, 이동 속도를 증가시킨다.
-민첩성+25%
-공격력+30
-지속 시간 : 17초
-재사용 대기 시간 : 24초
부스터의 레벨 역시 하나 올랐다.
민첩성 증가 효과는 5%가 증가했고, 공격력 역시 10이 추가됐다.
'그나마 성장 속도는 빨라서 버틸 만 하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태준은 진즉 트롤의 숲에서 후퇴하여 오크를 사냥하며 스펙을 올려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 곧 도착 할 것 같네.'
태준은 맵을 확인했다.
마법사가 살고 있다는 은신처와 점점 가까워 지고 있었고, 이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법사의 은신처가 위치해 있었으니까.
태준은 속도를 높였다.
'다시 가 보자.'
태준은 속도를 높였다.
확실히 부스터의 레벨이 높아진 것으로 인해 트롤을 사냥하는 데에 속도가 붙었다.
태준은 하나씩 트롤들을 격파하며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트롤이 보이지 않았다.
태준은 지금 이 주변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법인가.'
그럴 확률이 높았다.
트롤을 쫓아내는 마법이겠지.
그 말 뜻이 무엇이겠나?
태준은 기어코 마법사의 집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조금 더 걸어갔다.
그러자 이내 숲 한 가운데에 원형의 공터가 보였다.
공터 한 가운데에는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저기네.'
한 눈에 봐도 저기가 바로 마법사가 살고 있는 오두막인 듯 했다.
허름한 오두막이다.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톡, 건드리면 허물어질 듯이 보였다.
하지만···.
'조심해야겠는걸.'
태준은 그 자리에 멈췄다.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뎠다간, 무언가 터져 나올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탓이었다.
기분탓은 아니다.
지금 이 근방에선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렁였다.
아마 이걸 '마력'이라고 부르는 걸까.
그리고 그 마력은 지금 태준의 바로 앞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단 한 발자국 차이로 태준은 마법사가 설치해 둔 마법장을 밟지 않았다는 뜻이다.
'큰일 날 뻔 했어.'
태준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오두막을 바라봤다.
대충 5분 정도.
그러자, 저쪽 오두막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마치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는 듯한 목소리다.
태준은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타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타호? 지금 타호라고 했냐!]
"그렇습니다!"
[거짓말 치지 마라!]
뭐야, 저건.
"정말입니다! 저는 투왕의 제자이자, 명진의 제자인 준이라고 합니다!"
[뭐, 임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태준은 다시 소리쳤다.
"제가 증명할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이 오두막까지 걸어 와 봐라! 네가 정말 타호를 만나고 투왕의 제자들을 만났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게 아니라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무서우면 돌아가!]
'역시 전설이라는 거지?'
그래.
지금 태준은 전설 등급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이들은 길드 단위로 수행해도 몇 달은 걸릴 만큼 어려운 퀘스트가 바로 전설 등급 퀘스트다.
그리고 이 퀘스트도 마찬가지다.
태준은 눈을 들어 원형의 공터를 바라봤다.
눈으로만 보자면 저곳까지 가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뻥 뚫린 길이니까.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 본다면 그야말로 함정 투성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잘못 디디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 정도로 어려운 퀘스트를 지금 눈 앞에 두고 있다는 뜻.
물론 걱정은 되지 않는다.
태준은 신경을 끌어 올렸다.
순간, 절대 영역이 펼쳐졌다.
그와 함께.
'보인다.
절대 영역의 능력 중 하나인 감각 극대화.
그로인해, 마법사가 설치해 놓은 함정조차 꿰뚫어 볼 수 있게 됐다.
통로는 정말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움직일 정도로 좁은 통로다.
그렇게 태준은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태준은 통로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길은 직선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때로는 곡선으로.
때로는 끊어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태준을 가로 막을 순 없다.
절대 영역의 범위 안에 들어있는 한, 태준의 기감을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
저벅-
다시 발을 내디뎠다.
역시 무사했다.
태준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신중하게 움직였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확인하고 발을 내디뎌야 했다.
그렇게 결국 태준은 오두막 앞에 도착했다.
"후우, 후우···."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보다 더 숨이 찬다.
그리고 그때.
끼익-
문이 열렸다.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를 마주한 순간.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한 건가요?!]
[모든 능력치가 1 증가했습니다.]
'업적도 참 많다.'
물론, 태준이기에 가능한 일.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이 함정을 이렇게 가뿐하게 통과 했을 리가 없지 않겠나.
다만 태준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이다.
마법사 역시도 놀란 기색이다.
오두막만 봤을 땐, 옷도 허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로브는 꽤나 고급스러워 보였고, 구김살조차 하나 없이 잘 관리되어 있는 옷이었다.
신기한 눈으로 태준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마치 호기심 가득한 강아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내 마법사가 말했다.
"정말이었구나. 의심한 것에 대해선 양해를 구할 게. 아무래도 별 이상한 인간들이 많은 세상이라서 말이지."
"이해합니다."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루는 자신의 오두막 안으로 태준을 안내했다.
오두막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태준은 흘끔 내부를 살폈다.
'오?'
순간 태준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겉에서 보기엔 허름한 오두막처럼 보였는데, 그 내부는 완전히 달랐다.
내부는 아주 잘 꾸며져 있는 고급 저택이다.
"놀랐지? 이게 바로 마법이란다, 후후후···."
루루는 자랑스러운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날 찾아 온 이유가 뭐지?"
그 말에 태준은 오크의 투혼을 꺼내들었다.
그걸 본 루루의 눈이 커졌다.
"이건···?"
"오크의 투혼입니다."
"그러면, 너 설마···."
"예. 투왕님으로부터 받은 물건입니다."
루루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좋아. 날 잘 찾아 왔어.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
"자, 자. 마셔!"
"감사합니다."
태준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맛이 좋았다.
향도 좋고.
"먼저 궁금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투왕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마법사가 어떻게 투왕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말이다.
"난 너의 스승인 명진님의 딸이야."
"···예?"
상상도 못 한 이야기.
"아, 물론 친딸은 아니야. 어린 시절 산에 버려진 나를 길러 주신 게 바로 명진님이셨지."
"아···, 그렇군요."
"그 과정에서 나 역시 투왕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조금은 슬픈 뒷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 자라 성인이 되어 산을 내려왔고, 보다시피 이 숲에 숨어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지. 그리고 그 오크의 투혼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이제부터 본론이 나타나려는 듯 하다.
"먼저 오크의 투혼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고대 오크 히어로의 염원이 담긴 구슬이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중요한 이야기는 그 다음에 이어졌다.
"그 구슬을 통해 오크 히어로를 깨워내기 위해선, 먼저 녀석의 무덤을 찾아야 해."
"무덤?"
그제야 태준의 눈이 번뜩였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크 히어로의 무덤.
그 곳은 바로 하운드 어딘가에 숨겨 있을 히든 맵이라는 것을 말이다.
'대박인데···.'
새로운 보스 발견도 대단한데, 히든 맵까지 찾아 낼 수 있는 기회다.
"녀석의 무덤에 가서 그 구슬을 깨트리면, 오크 히어로가 눈을 뜨게 될 거야. 위치는···, 나도 몰라. 하지만 내가 마법을 걸어 줄 게. 그 구슬에 마법을 걸게 된다면 구슬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찾아 가게 될 테니까."
태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서 오크 히어로를 불러 낼 수 있을 조건에 대한 정보를 확보했다.
이내 루루는 오크의 투혼을 들고 그 위에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마법을 부여한 뒤, 루루는 다시 태준에게 오크의 투혼을 내밀었다.
"받아. 이제 너에게 오크 히어로의 무덤을 안내해 줄 거야."
"고맙습니다."
태준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럼 전 다시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태준이 막 몸을 일으키려던 그 때.
"잠깐만!"
"···예?"
"설마 그대로 그냥 가려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해서. 혹시 무언가 도와 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니 조금 실례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용건만 끝내고 홱, 돌아가 버린다는 게 말이다.
그런데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런 게 아니야. 이것 봐. 네 장비들!"
"아···."
태준의 장비는 초라하기 그지 없다.
기본 방어구.
타호의 건틀렛.
그리고 PK를 통해 획득한 장신구 세 개.
"그 대로 오크 히어로와 싸웠다간 뼈도 못 추릴 걸? 내가 선물을 주지. 명진님의 제자라면 나의 형제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테니···."
"어?"
태준의 눈이 커졌다.
대화의 흐름을 보아하니 루루가 태준에게 무기를 주려고 하는 듯 했다.
이건 그야말로 예상치도 못 한 전개였다.
그렇게 루루는 창고로 가더니 잠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는 장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가벼워 보이는 장갑 위에는 징이 몇 개 박혀 있었다.
"받아. 이 정도는 해 줘야 그래도 오크 히어로와 싸워 볼 만 하지 않겠어?"
맞는 말이다.
아무리 피지컬이 훌륭하다고 한들, 게임에서 장비란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태준은 그 장갑을 받아들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의 보상을 획득했습니다.]
[루루의 마법의 징 장갑을 획득했습니다.]
그제야 떠오른 퀘스트 완료 메시지와 함께 태준은 새로운 무기의 옵션을 확인했다.
'와, 씨.'
장갑의 옵션을 보자마자 태준은 육성으로 욕지거리를 쏟아낼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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