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재능 (3)
3화 재능 (3)
*
튜토리얼 마스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현상이다.
[튜토리얼 마스터 Lv.20]
그 레벨은 무려 20레벨.
교관 테이큰의 레벨이 10이다.
그런데 그보다 10레벨이 더 높다.
'이런 경우가 있었나?'
태준의 기억엔 없다.
나름 이 게임에 관심이 많아 꽤 많은 정보들을 찾아 봤는데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라스트 엠파이어를 하는 유저라면, 튜토리얼 맵에서 10레벨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기본 장비 하나에 모든 능력치가 기본 능력치인 10에 맞춰있는 1레벨 유저가.
10레벨의 교관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싸우기는커녕, 무기 한 번 휘두를 틈도 없이 사망하는 게 부지기수.
그러니 대부분의 유저들은 10단계에 이르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20이라고?'
그게 다가 아니다.
'동화율 재구성?'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아직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어안이 벙벙한 그 순간, 아슬론은 기지개를 켰다.
가죽 갑옷 속에서도 그의 근육이 느껴질 만큼 그의 몸은 잘 단련되어 있었다.
얼굴도 선이 두꺼운 쾌남상이다.
그런 몸과 얼굴은 그의 위엄을 더하고 있었다.
이내 태준을 보며 슬그머니 입 꼬리를 들어 올린 아슬론이 말했다.
"시끄러워서 나와 봤더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군. 어때. 원하면 내가 직접 자네의 재능을 시험해 보고 싶은데 말이지."
태준은 답했다.
"하겠습니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눈빛만 봐도 느껴진다.
저 남자는 진짜다.
레벨도 증명하고 있다.
무려 20레벨.
들끓는 투쟁심을 잠재울 수 없었다.
"좋아. 그렇게 나와 줘야지."
아슬론은 흐흐, 웃으며 옆에 있던 조교의 검을 받아 들었다.
"빌리지. 괜찮나?"
"무, 물론입니다!"
잔뜩 굳은 조교가 소리쳤다.
아슬론은 피식 웃으며 다시 태준을 향해 말했다.
"좋아. 그럼 따라 와."
아슬론은 태준을 이끌고 링 위로 올라갔다.
링 위에 올라 선 아슬론은 검을 몇 번 휘두르고 통통, 발을 구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깔끔하다.'
별 동작도 아니건만 그의 움직임에선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레벨이라는 수치를 떼고 본다면 기본기에 있어서 저 사람을 따라 갈 NPC가 얼마나 있을까.
'괜히 튜토리얼 마스터가 아니었어.'
"시작해 볼까?"
그 말과 함께···.
아슬론은 바로 태준을 향해 쇄도했다.
기습이다.
아슬론은 웃고 있었다.
어디 막을 테면 막아 보라는 듯이.
확실히 빠르다.
1레벨의 능력치로는 감히 감당조차 할 수 없는 속도.
하지만···.
‘보인다.’
그 순간 태준은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제 아무리 20레벨 아슬론이라 하더라도, 태준의 동체 시력은 벗어 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태준도 웃었다.
분명 1레벨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속도와 힘이었지만.
예측만 할 수 있다면.
‘못 피할 이유가 없지.’
휙!
태준이 몸을 움직였다.
최소한의 움직임이다.
아슬론의 공격을 피해 내기에는 충분할 정도로만.
부웅!
아슬론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야말로 미세한 격차다.
아슬론도 느꼈을 테지.
이건 결코 운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아슬론과 태준의 눈이 마주쳤다.
"······."
아슬론의 눈빛이 묘하다.
놀랐겠지.
상상도 못 했을 거다.
그런 아슬론을 보며 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줬다.
'어떻습니까?'
태준은 눈으로 물었다.
극히 찰나의 순간, 서로의 시선을 주고 받은 두 사람.
그 다음에 움직인 건, 태준이었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른 순간, 아주 미세한 빈틈이 드러났으니까.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도 고민할 이유도 없다.
태준이 주먹을 내질렀다.
쾅!
태준의 주먹은 아슬론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아슬론은 그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막으려 했지만, 반응 할 수 없는 위치.
그야말로 맹점!
[치명타!]
여지없이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꺼윽···!"
아슬론의 입에서 기함이 쏟아졌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아파서 그런 건지,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는 아슬론만이 알고 있을 테지.
물론 태준은 이대로 자신의 공격을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미 태준은 움직이고 있었다.
콰앙!
두 번째 치명타.
"커흑!"
이번에도 아슬론의 입에서 고통 가득한 신음이 터졌다.
'이거, 뭐야?'
아슬론은 머리가 지끈댔다.
태준의 공격은 분명히 보인다.
아직 태준은 1레벨이다.
움직임이 빨라봐야 얼마나 빠르겠는가.
아슬론이 놓칠 공격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막을 수 없다.
한 번 잡은 기세를 확실히 휘어 잡기 위해 태준은 바쁘게 움직였다.
세 번째 공격이 아슬론에게로 향했다.
이번엔 몸통이었다.
콰아아아앙!
순간, 튜토리얼 무대에는 작은 소음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우아아아아아아아!"
"미쳤다! 천재다!"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크어윽···."
정신이 아찔해진 아슬론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 했다.
순간, 아슬론은 생각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괴물이다.
이 녀석은 진짜 괴물이었다.
*
몇 번의 공방이 더 오고갔다.
처음에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던 유저들도, 지금은 경악감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모두 알고 있다.
튜토리얼의 난이도가 얼마나 극악인지.
10레벨 교관 테이큰.
그 역시 지금 경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태준이 강할 것이라곤 생각 했다.
모든 대련을 10초 만에 끝내 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때 아슬론이 나타났다.
웬만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아슬론이다.
그만큼 흥미로웠다는 얘기겠지.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당연히 태준이 패배하리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이 아닌가?
적어도 이 튜토리얼의 무대에서 아슬론은 제왕이니까!
그런데 아니다.
'저 녀석은··· 돌풍이다.'
돌풍!
그 말이 맞다.
태준은 아슬론을 그야말로 압도하고 있다.
아슬론은 태준의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일방적인 폭행의 현장이다.
'대체 어찌 된 녀석인지···!'
계속해서 자신을 향해 되 물었지만, 어쩌겠는가.
이건 현실인 것을.
그리고 그때.
뻐어어어억!
“허윽!”
태준의 발길질이 아슬론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
“아...!”
“이게...”
“진짜라고...?!”
테이큰 뿐 아니다.
그 자리에 모인 조교, 플레이어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렸다.
더 이상 감탄하기도 힘들 지경.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끝이다.’
태준은 직감했다.
이 일격으로, 튜토리얼은 종료 될 것이다.
"크윽!"
채애앵!
결국 아슬론의 검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허어...”
아슬론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떨어져 내린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전신이 욱신댄다.
믿을 수 없다.
고작 1레벨 플레이어에게 이 정도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체감하고도 믿기지 않는다.
"이 놈이···, 정말···."
아슬론이 중얼거렸다.
아슬론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졌다, 내가. 지독한 녀석이군 정말로."
잔뜩이나 질렸다는 듯한 말투.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태준을 향한 일말의 경외심도 느껴진다.
"정말이지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 같은데. 교관이 되어서 내가 봤던 셀 수 없는 모험가들 중에서···, 너 같은 놈은 정말로 처음이다. 그래, 인정하마. 네가 최고다."
최고라는 그 한 마디가 아슬론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태준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한계 돌파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시스템의 한계를 초월했습니다.]
[101%의 동화율을 획득했습니다.]
'뭐?'
태준은 제 눈을 의심했다.
'101?'
98도, 99도, 100도 아닌 101?
'그럼 설마?'
이제 이해가 됐다.
동화율 체계의 재구성.
그게 무슨 뜻인지.
'그러니까, 기존의 동화율은 100까지였고, 이제 101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지금으로선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게 정확한 추측이리라.
'나 때문에?'
더 중요한 건, 새로운 동화율 체계를 만들어 낸 건, 태준의 행동 때문이라는 것.
'미치겠네.'
태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야말로 상징적인 순간이다.
상상도 못 해 본 순간이기도 했다.
태준의 재능이라는 게 시스템이 상정하고 있던 그 한계조차 돌파한 재능이라는 뜻이 아닌가?
감격스럽다.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어떤 감정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반쪽짜리 재능.
비운의 재능.
태준의 어깨에 올라있던, 그 짐을 이제야 내던질 수 있게 되었다.
감독의 커리어로도 벗어버리지 못했던 그 짐을 말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업적을 ‘아슬론의 인정을 받은 자!’를 달성했습니다!]
[아슬론의 입정을 받은 자!]
>레벨업 시 1의 스탯 포인트 추가
더 이상 말도 잇기 힘들 지경.
태준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놀랄 수밖에 없는 보상이다.
레벨업 시 스탯 포인트가 1개 추가된다니!
꿀꺽, 하고 태준의 목구멍 너머로 침이 넘어갔다.
“감사합니다!”
태준이 아슬론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슬론은 흐뭇한 미소로 태준을 바라봤다.
모든 튜토리얼의 과정을 끝마친 태준.
그리고 이제는 스타팅 포인트를 선택해야 할 차례였다.
아슬론이 말했다.
"흐흐···, 그래서 다음 목적지는 정했나?"
지금 태준의 눈앞에는 라스트 엠파이어의 스타팅 포인트들에 대한 정보들이 떠올라 있었다.
라스트 엠파이어에는 총 10개의 스타팅 포인트가 존재한다.
스타팅 포인트마다 모두 특성이 다르고 난이도 역시 천차만별.
덕분에 유저들은 자신의 환경이나, 주변 지인들이 있는 스타팅 포인트를 선택한다.
“물론이죠.”
태준이 답했다.
당연히 태준은 이미 처음부터 어떤 곳에서 시작할지 결정해 둔 상태.
"어디지?"
"하운드로 갈까 합니다.”
하운드.
그 곳은 스타팅 포인트 중 가장 난이도 높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몬스터의 난이도가 끔찍할 정도로 어려운 수준.
덕분에 라스트 엠파이어를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에게는 지옥이라고 불리는 스타팅 포인트였다.
'저기로 안 가면 어디로 가?'
튜토리얼을 끝낸 순간, 태준은 확고한 목표를 다시금 설정했다.
이 라스트 엠파이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극악의 난이도를 즐겨보자.'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이 세계에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이다.
무엇이 되었건, 어렵고, 더 어려운 곳을 향해 끝없이 내달려 볼 생각이었다.
'101%.'
그 말도 안 되는 동화율이라면.
그리고 그 동화율을 만들어 낸 자신의 재능이라면···, 당연히 가장 어려운 곳으로 가는 게 맞지.
그게 바로 태준이 망설임도 없이 하운드를 택한 이유였다.
"하하. 그럴 줄 알았네만, 한 번만 더 묻지. 그 결정에 후회는 없나?"
아슬론이 다시 한 번 물었다.
하운드로 가기 전,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당연히 태준은 무를 생각이 없었고.
“예. 물론입니다.”
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다고. 5레벨이 된다면, 이걸 들고 마을의 의뢰소장을 찾아가 봐."
그렇게 말하며 아슬론은 작은 명패를 건넸다.
[아슬론의 명패]
-등급 : 유일
-이걸 의뢰소장에게 가져다준다면, 아마 놀라운 일이 벌어질 듯 하다···.
'어···?'
마지막까지 태준을 놀라게 한다.
유일 등급 명패.
그 이름 그대로, 유일한 아이템이라는 뜻.
그리고 놀라운 일이라면, 그건 대체 또 무엇일까.
"날 놀라게 한 자네에게 주는 선물이야. 어쩌면 자네를 그 누구도 닿지 못한 곳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
그 말과 함께 아슬론은 웃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
"알겠습니다."
"무운을 빌지. 오랜만에 즐거웠어. 덕분에 말이야."
그 순간 태준의 몸이 빛무리에 휩싸였다.
[로딩 중]
[하운드 마을로 이동합니다.]
이내 태준은 웃었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하운드에 대한 유저들의 평가 덕분이었다.
>여기 가지마! 한 번 말했다 절대 가지 마라!
>진짜 지랄. 개지랄. 하운드 갔다가 피만 보고 캐릭 지운다.
유저들의 절규는 오히려 태준에겐 기대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순간.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하운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태준이 첫 시작점인 하운드에 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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