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재능 (2)
2화 재능 (2)
사실 가혹한 처사기도 하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을 대상으로 앞으로 게임의 향방을 좌우할 만한 중차대한 사항인 동화율을 결정해 버리다니!
하지만 크게 불만을 가질 수도 없는 일이다.
이 무대는 그야말로 재능을 측정하는 장소니까.
튜토리얼 무대가 익숙해지며 어느 정도 동화율을 높일 수 있지만, 반복해서 튜토리얼을 수행한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열 번 넘게 반복해도 평균치는 항상 수렴한다.
-적당히 자신의 평균에서 조금 높다 싶으면 만족해라. 어차피 크게 안 바뀐다.
말 그대로다.
거액을 투자해서 동화율을 높이는 건 가능하지만, 결국 자신의 한계를 크게 벗어 날 수는 없다는 뜻.
누군가는 재능이란 벽에 가로막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무대가 바로 튜토리얼의 무대인 것이다.
'과연, 나는?'
그러니 태준도 궁금했다.
자신의 재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그리고 이내 태준은 훈련 교관을 마주했다.
그 이름은 테이큰.
건장한 중년 남성의 외향을 하고 있었다.
멋드러지게 기른 콧수염이 눈에 띄는 남자다.
그는 태준을 보더니 말했다.
"재능을 시험해 보겠나?"
첫 대사가 재능을 시험해 보겠나, 라니.
조금 긴장되는 순간이다.
"예."
태준이 답하자 훈련교관이 누군가를 불렀다.
튜토리얼은 훈련 교관과 조교들과의 대련으로 이뤄진다.
물론 낮은 수준의 조교들을 이기면서 올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최종 단계는 바로 훈련 교관인 테이큰.
“예, 교관님!”
그때 펄슨이라는 NPC가 달려왔다.
1단계의 훈련 조교다.
조금 어리숙하게 생기긴 했다.
하지만 무시해선 안 된다.
1단계 조교라고는 해도 재능 없는 플레이어들에겐 넘을 수 없는 산과도 같은 존재니까.
어쨌든 저 녀석을 대상으로 승리하면, 10%의 동화율을 획득 할 수 있게 된다.
"저곳으로 가서 시작하게."
테이큰이 비어 있는 대련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준과 펄슨은 테이큰이 지목한 대련장을 향해 걸었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으아아아! 뭐가 이렇게 어려워! 이거 1단계 맞아?”
“하... 미친... 이러다 동화율 조지겠는데?”
“으하하하! 성공! 2단계 가자!”
“허접들. 형은 먼저 간다!”
그러는 와중에도 유저들은 탄식을 쏟아내기도 하고, 스스로의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태준은 웃었다.
이 모든 순간이 즐겁게 느껴질 뿐이다.
“무기를 고르세요.”
펄슨이 말했다.
처음 지급되는 기본 무기.
태준이 무기를 골라 들었다.
“호오.. 너클?”
그건 바로 너클.
태준은 근접 계열을 선호했다.
그 중에서도 격투 계열을 선호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격투 계열은 방어력이 높기 때문이다.
피지컬이 좋지 않은 태준에게 탱킹력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탱커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태준은 탱커는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니 비교적 방어력이 높으면서도 공격이 가능한 격투 계열의 직업군을 선호하는 것이다.
물론 라스트 엠파이어에서 사정거리가 짧기 때문에 너클을 선호하는 유저는 별로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태준은 이 게임을 즐기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성능 따위 무슨 상관이랴?
그게 무엇이 되었건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플레이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태준이 너클을 장착했다.
그 순간.
“시작하겠습니다.”
펄슨이 먼저 움직였다.
펄슨의 검이 태준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
태준은 전율을 느꼈다.
보인다.
태준의 말도 안 되는 동체 시력은 이 세계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 이제 중요한 건, 몸이다.
과연 태준은 저 공격에 반응 할 수 있을까?
물론···.
파앗!
어렵지 않았다.
카아앙!
태준은 펄슨의 공격이 이제 막 시작되려던 찰나, 그의 공격을 쳐냈고.
어느새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순간, 태준은 깨달았다.
이 세계야 말로 자신의 재능이 온전히 꽃피울 수 있는 완벽한 세계임을 말이다.
생각하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껴지는 그대로.
이 몸은 따라 움직인다.
펄슨은 다급히 검을 움직여 태준의 공격을 방어하려 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태준은 그 찰나에조차 빈틈을 찾아내었고, 공격 루트를 전환했다.
콰아아앙!
태준의 주먹이 펄슨의 몸을 강타했다.
“...어, 어..?!”
펄슨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쏟아졌다.
그 순간.
[치명타!]
태준의 눈앞에 치명타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찰나의 순간 드러난 빈틈.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해 보이는 맹점.
여기까진 항상 해왔던 일이었다.
초속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적의 맹점을 발견하는 것쯤이야.
하지만, 그 곳에 정확히 공격을 적중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손이 따르질 못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된다.
보이는 약점에 정확히 공격을 꽂아 넣는 게 가능했다.
'치명타가 터졌잖아.'
이 게임은 맹점을 정확히 공격할 경우 치명타가 터진다.
그리고 방금 치명타가 터졌다.
그렇다면, 태준은 정확히 상대의 맹점을 공략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펄슨은 쓰러졌다.
일격에 훈련 조교를 처치해 버린 순간이다.
'하···.'
[튜토리얼 1단계를 통과했습니다.]
[10%의 동화율이 주어집니다.]
'아, 이건 진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감각이 휘몰아쳤다.
'된다.'
태준이 웃었다.
그리고 지금, 10%의 동화율을 손에 넣었다.
'다르다.'
고작 10%지만 감각의 차원이 다르다.
고작 10%의 동화율임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더욱 더 또렷해졌다.
'짜릿하다!'
태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라면, 어쩌면 정말 마의 벽이라 불리는 동화율 90%에 도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냐. 김칫국은 마시지 말자.'
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고작 1단계를 통과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몇몇 유저들이 태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악했다.
'원 킬?'
'저거 뭐지?'
'미친···!'
그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파죽지세.
태준은 매 라운드를 10초 이상 지속하지 않았다.
완벽하게 공격을 피해냈고, 그 순간 드러난 맹점을 여지없이 공략했다.
단계가 거듭되고 동화율이 늘어갈수록, 태준의 공격은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더 이상 태준은 이미 고작 훈련 조교들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튜토리얼 5단계를 통과했습니다.]
[50%의 동화율이 주어집니다.]
50%의 동화율.
그것을 손에 넣은 순간, 태준은 자신이 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미세한 움직임들마저 또렷하게 느껴진다.
훈련 조교들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 그들의 모든 행동이 예측될 지경이다.
그리고 이미 인간의 육체를 뛰어 넘은 플레이어의 아바타의 운동 능력까지 더해진 순간.
태준의 반응 속도는 그 어떤 조교들조차 태준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아무리 억누르려 했지만.
이미 태준의 머릿속에선 무수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른바 희망회로가 폭주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던 그때.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5단계까지의 모든 튜토리얼을 1분 이내에 클리어 했습니다.]
[히든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튜토리얼 조기 종료!]
-등급 : 히든
-교관 테이큰이 당신을 눈여겨보고 있다. 만약 테이큰의 제안을 수락한다면, 단 번에 튜토리얼을 종료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상 : 튜토리얼 조기 종료
'우와!'
태준은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지루해 지려던 참이다.
그런데 튜토리얼을 조기 종료 할 수 있다니.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이내 테이큰이 태준을 향해 다가왔다.
"대단하군."
"아, 교관님."
"자네의 대련을 지켜봤네. 그런데 모든 대련을 1분 이하의 시간으로 끝내 버렸더군."
테이큰은 놀란 듯 했다.
그의 콧수염이 씰룩대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가 말했다.
“혹시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나와 대련을 하지 않겠나? 자네에게 다른 조교들과의 대련은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거절 할 이유가 없지.'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야 하는 태준에게, 이런 귀중한 기회를 걷어 찰 이유 따위는 없었다.
“물론이지요. 감사합니다, 교관님.”
태준의 대답이 흘러나온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던 유저들의 입에서 커다란 탄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
"떴다!"
"그거 떴어!"
라스트 엠파이어의 유저라면 모를 수 없는, 일명 랭커 테스트가 시작 된 순간이었다.
*
랭커 테스트.
말 그대로, 튜토리얼 조기 종료 퀘스트를 손에 넣은 이들 중 거의 대다수는 랭커의 자리에 올랐다.
이 퀘스트야 말로 랭커 테스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테스트였다.
물론 이제 와서 랭커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게임이 오픈 한 지 2년.
벌써 랭커 테스트를 거쳐간 수많은 이들이 랭커 자리에 올랐고, 후발 주자는 따를 수 없을 만큼 그 차이가 벌어졌다.
그들은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 넣고 있었고, 멈추지 않고 고레벨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를 쓸어 담고 있는 중이니···.
그럼에도 분명 한 가지는 확실하다.
"상위 길드에서 채가겠지?"
"랭커는 못 돼도, 분명 거대 길드 핵심 멤버 정도는 될 수 있을 걸."
"출세했네."
"우와, 이걸 내 두 눈으로 본다고?"
유저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욱 더 커졌다.
'타오르는데.'
다시 한 번 승부사 기질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게임을 즐기려 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지만, 그 역시 프로 게이머였다.
그리고 감독이었다.
필연적으로 싸워 승리해야 할 의무를 가진 직업이지 않은가?
'이거야.'
감독으로 살며 잊고 있던 감정.
잊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꿈틀대던 그 감정.
투쟁심.
직접 몸으로 부딪쳐 쟁취하고 싶은 그 투쟁심!
“자네. 여기에서 바로 시작하겠나?”
이내 테이큰이 태준을 향해 물었다.
“예.”
그리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90%의 동화율이 적용됩니다.]
랭커 테스트.
그것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90%의 동화율은 깔고 들어가는 셈이다.
6단계부터 9단계의 튜토리얼을 패스하고 10단계로 진입하는 것이니까.
'못 해도 90%.'
이미 50%에서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건만, 90%의 동화율을 손에 넣은 태준은 이 감각을 대체 어찌 말로도 설명 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이 모든 세상이 슬로우 모션같이 느껴지는 듯 하다.
'하···.'
이런 것을 구현해 낸 라스트 엠파이어의 제작자에게 경외감이 느껴질 지경!
그렇다면 이젠···.
[10단계 튜토리얼 교관 ‘테이큰’과의 대련이 시작됩니다.]
10단계 튜토리얼.
그것이 지금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었다.
"몇 나올까?"
"93?"
"에이, 95 정도는···."
"혹시 98 나오는 거 아니야?"
"그건 오바고."
"하긴···."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태준의 귀를 두드린다.
그 누구도 태준이 98%의 동화율을 가지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건 그야말로 정점에 오른 한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수치니까.
하지만 태준은 다르다.
'해 보자.'
태준은 다짐했다.
현재의 정점이라 불리는 98%의 동화율을 한 번 손에 넣어 보겠노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그 테스트, 내가 하지."
이내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낮잠을 자고 나왔는지 나른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 만큼은 또렷하게 빛을 뿜어내고 있다.
한 눈에 보더라도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과, 관장님!"
교관 테이큰조차 화들짝 놀라 남자를 바라봤다.
이내, 메시지가 떠올랐다.
[재능의 한계를 초월했습니다.]
[시스템이 동화율 체계를 재구성합니다.]
[한계 돌파 미션이 발생했습니다.]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태준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야, 대체?'
알 수 없는 메시지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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