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79화 (480/485)

< 479. 행복의 역설 >

설마 클레어가 정말로 접속 금지를 걸어놓았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던 매튜는 집에서 단 4시간의 수면만을 취한 뒤 곧바로 회사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정말로 접속이 금지된 자신의 계정을 보며 힘없이 어깨를 떨군 채 집으로 터덜터덜 되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충분한 숙면을 취하고 돌아온 매튜는 곧바로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가 AWC에 재접속했다.

자신의 사수인 클레어가 말했던 것처럼, 세세한 부분을 커스터마이징 하지 않은 채 AWC가 제공하는 ‘고유의 재미’를 느껴보기 위해서.

‘우선은 지원하는 월드의 스펙트럼부터 확인해볼까?’

그렇게 아리아를 호출한 매튜는 자신의 눈앞에 소환된 아름다운 여신을 보며 궁금한 부분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월드의 시대 배경은 어디까지 선택할 수 있어?”

“딱히 제약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공룡이 돌아다니는 까마득한 고대부터 2만 년 후 가상의 미래까지 자유롭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공룡 같은 과거 생물군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는 물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나간 미래 시대에 대한 데이터까지, AWC의 라이브러리엔 없는 것이 없으니까요.”

“그 말은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18세기 유럽에서 모차르트와 만나 피아노 합주를 할 수도 있다는 거야?”

“플레이어에게 피아노를 다룰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그렇게 되겠죠.

다만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재현 데이터는 인물에 따라 한정되어 있어서, 실제 역사 속 인물과는 꽤 다른 이미지의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하신 모차르트의 경우, 여러 사료에서 설명된 모차르트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과, 영화 ‘아마데우스’ 같은 미디어 컨텐츠의 데이터를 참고하여 해당 배역의 캐릭터의 성격 및 연기 스타일을 생성하게 됩니다.

그렇게 월드가 생성된 이후엔 미리 정해놓은 캐릭터 성격에 따라 각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취하게 되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AWC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하게 될 월드는 실제 지구의 특정한 과거 시점을 재현한 월드가 아닌, 각 주요 인물의 캐릭터와 성격을 구현하여 제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플레이어는 18세기 유럽의 모습과 굉장히 흡사한 월드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NPC들과 게임을 하게 되지만, 그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하던 인물들이 아닌 거죠.”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그럼 이번엔 다른 질문을 할게.

혹시 내가 전혀 상관없는 장르의 월드에서 임의의 순간에 게임 내의 NPC를 죽여버린다면, 플레이는 어떻게 변화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겠어요?”

“예를 들어 바둑 기사로서 성공하는 월드의 게임을 하고 있는데 대국 도중에 바둑판으로 상대 기사의 머리통을 찍어버리면 어떻게 되냐는 말이야.

기본적으로 풀 다이브 VR 게임이니까, 그런 것도 가능하긴 할 거 아냐?”

“찍어버린다니···. 과격한 표현이네요.

확실히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막대한 페널티가 발생하니 그런 식의 플레이는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페널티라면?”

“일단 해당 돌발 상황에 대해, 같은 장소의 다른 NPC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겁니다.

플레이어를 넘어트려 제압을 하려 한다던가, 플레이어의 손에 들린 바둑판을 빼앗으려 하겠죠.

플레이어와 친한 관계의 동료들은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느냐며 플레이어를 비난할 것이고요.

그리고 시대 배경에 따른 범죄 페널티로 인해 구속되어 감방에 가게 될 테니 이후의 정상적인 플레이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범죄자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보실 수도 있겠지만, 페널티는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죠.”

아리아가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스킬 트리같이 생긴 UI가 매튜의 눈앞에 등장했다.

“이건 개발자 모드에서는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보여드리지 않았던 이 게임의 성장 트리입니다.

이건 생성된 월드 안에서의 캐릭터 육성을 위해 사용되는 스킬트리와는 또 다른 용도를 가지고 있는 스킬 트리죠.

기본적으로 AWC에서, 게임을 처음 접한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월드를 선택할 때 많은 제약을 받습니다.

일부 월드는 커스텀을 하지 않아도 요구 포인트가 높아서 선택할 수 없고, 일부 월드는 원하는 대로 수정하는데 막대한 포인트가 들어가죠.

AWC에서 다양한 병렬 세계 속 이야기를 체험하며, 플레이어는 각 세계가 가진 수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게 됩니다.

그것은 때때로 주인공의 꿈을 이루어주는 일일 때도 있고, 때로는 세계를 구원하는 일일 때도 있으며, 때로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일 때도 있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양팔을 벌리자, 안에서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수많은 구슬이 마치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처럼 그녀와 매튜의 주변에 끝없이 펼쳐졌다.

그 몽환적인 광경 안에서, 그녀는 아마도 게이머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분명한 대사를 매튜를 향해 날렸다.

“구원을 기다리는 수없이 많은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플레이하고 싶은 월드를 찾아 그 세계의 이야기를 플레이하게 되죠.

AWC의 안에서, 플레이어분은 세계를 구할 용자이자 전장의 영웅이 될 겁니다.

잊혀가는 배구팀의 재능 넘치는 신입이 되거나, 혹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별들의 탄생과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 여행자가 되기도 하겠죠.

그러나 그 모든 세계를 마음껏 여행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먼저 구원을 바라는 작은 세계의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충실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해결해 나갈 때마다,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세계의 범위는 넓어지고, 그 세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특전의 종류나 강함도 늘어나게 되겠죠.”

“그럼 실제 본 게임에서는 이 모든 세계를 마음껏 체험할 수 없다는 말이야?”

“체험 자체는 가능하죠.

하지만 지원되는 능력이 약해지거나 혹은 아무런 서포트 없이 세계를 클리어해야할 때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고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먼 치킨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마음껏 여행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은, 오직 수많은 세계를 구해낸 숙련된 여행자에게만 부여되는 특권이니까요.”

‘일종의 다회차 특전 같은 개념인가 보네.

그럼 게임 내에서 말도 안 되는 돌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이해가 되는군.

페널티가 극심하다면, 힘들게 모은 특전 포인트를 날리고 싶어하는 플레이어는 없을 테니까.’

속으로 생각하던 매튜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특전 트리’를 살펴보았다.

거기엔 크게 3개의 갈래로 나누어진 수많은 특전 패널들이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게 보면 3종류라고 할 수 있네?

<특전>은 플레이어가 세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추가 특전을 강화시키는 트리고, <선택>은 월드를 선택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편집 권한을 강화해주는 트리고.

나머지 하나는 <운명>?

이건 뭐야?”

“특전이 게임 시작 시의 플레이어가 가진 보너스를 강화하는 개념이라면, 운명은 게임 플레이 도중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를 강화하는 개념의 육성 트리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 시작부터 밸런스 붕괴 수준의 치트급 능력을 가지고 월드를 즐기고 싶다면 <특전>트리에 투자를, 반대로 평범한 주인공으로 시작해 게임 진행 도중에 다양한 보너스를 받으며 성장하고 싶다면 <운명> 트리에 투자하면 되는 식이죠.”

“그렇게 따지면 얻는 과정만 다르지 결국 얻을 수 있는 특전의 종류는 같은 거 아니야?”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특전 트리에 있는 스킬 <싸이코 메트리> 특성은 오직 게임 시작의 시점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성으로, 해당 스킬을 찍으면 각 월드에서 상황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추리 및 추적 계열의 스킬을 특전으로 받을 수 있는 기능이 해금됩니다.

예를 들면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과거의 환영을 본다던가, 혹은 초인적 감각으로 현장에 있는 수상한 흔적에 대한 정보를 모두 얻어낼 수 있는 스킬 등을 쓸 수 있죠.

그러면 추리나 탐정 계열에 필요한 대부분의 월드를 편하게 클리어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는 특성이지만 운명 트리에 존재하는 <운명의 인도> 같은 특성은, 찍게 되면 월드 안에서 사건 해결에 도움을 되는 이벤트와 자주 조우하게 만드는 특성입니다.

그 경우 싸이코 메트리 계열 특전처럼 다이렉트하게 사건에 대해 파헤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단서를 수집하기 쉽도록 주변 인물들이 협조를 많이 해주기 때문에 초능력이 없어도 쉽게 유능한 형사나 탐정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죠.

결과물은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두 특성이 가져오는 게임 플레이의 변화는 매우 다릅니다.

한쪽은 먼치킨 수준의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편안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스타일의 전개가 되는 반면, 다른 한쪽은 조금 더 현실적인 전개 속에서 운명의 도움을 받아 착실하게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스타일의 전개를 즐기게 되는거니까요.”

“그럼 본인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맞게 특성을 찍어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월드를 플레이할 수 있겠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월드 안에서 사건 해결에 방해가 되는 돌발 행동을 수행한다면, 해당 트리의 포인트가 대폭 삭감되며 미리 찍어놓은 스킬들이 사용 불가 상태가 되는 거고요.”

“힘들게 찍어놓은 특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바둑판으로 상대 머리를 찍는 행위는 알아서 하지 말아라, 이런 말이군.

이해했어.

추가로 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무엇을 알려드릴까요?”

“사실 게임 안에서 가능한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이 권장되지 않는 플레이라도 뭐든 실험해 보고 싶어 하는 게 게이머의 본능이잖아?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일부러 관객들을 잡아다 호수에 떨어트린다던가, 심즈에서 계단도 없는 지하에 사람을 가둬두고 계속 그림만 그리게 만든다던가, 아니면 시스템 적으로 살해할 수 없는 NPC를 강제로 살해할 수 있게 MOD를 설치한다던가.

그런데 자유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풀 다이브 VR게임에서 이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특정 행동에 페널티를 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게다가 이 특성 시스템도 어떤 부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어.

아마 이 게임을 처음 접한 유저는, 물론 유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에 대한 로망을 품고 게임에 접속하게 될 거야.

그런데 자신이 플레이하고 싶은 월드를 선택하려면 원하지도 않는 세계의 사건들을 수없이 해결하며 포인트를 모아서 스킬을 찍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연스레 거부감이 느껴질 것 같기도 하거든?

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막느냐는 식으로.

그런 문제에 대해서, PTW의 개발진이 생각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부분에 대한 지적도 본 시스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AWC에서는, 게이머에게 원하는 모든 기능을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는 <샌드박스> 모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조건 없이 곧바로 플레이 가능한 샌드박스 모드에서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모든 스킬이나 특전을 제한 없이 사용 가능하며, 또한 아무런 페널티 없이 월드 안에서 자유로운 돌발 행동을 허용하고 있죠.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바둑을 테마로 한 세계에서 대전자의 머리를 바둑판으로 찍어버리면 감방에 가게 되는 등의 그 세계 안에서의 페널티를 받게 되긴 하지만, 샌드 박스 모드에서는 적어도 포인트 감소처럼 다른 월드에 영향을 끼치는 페널티는 받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스킬이 사용 가능하다면, 본편은 의미가 없는 거 아냐? 그럼 누가 본편을 플레이하겠어?

시작하자마자 샌드박스 모드로 들어가서 자신이 원하는 월드를 마음껏 커스터마이징하고 그 세계를 즐기겠지.”

“물론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만.”

아리아가 싱긋 웃으며 매튜에게 말했다.

“실제로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세계란, 생각보다 그리 즐거운 세계가 아니니까요.”

“어? 비슷한 이야기를 내 사수인 클레어 씨한테 들은 것 같은데?

분명 첫 번째 매트릭스와 관련된 이야기였지?”

“그 이야기는 개발자분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개발자분이 가르쳐 주신 캠페인 모드 개발의 목적도 알고 있죠.

들어보시겠어요?”

매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리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AWC에 탑재된 캠페인 모드의 목적은, 원래는 자유롭게 선택 가능해야 할 기능을 강제로 쪼개어 게이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무엇이든 가능한’ AWC의 복잡한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쉽게 이해하고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튜토리얼에 가깝죠.

AWC에는, 말 그대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월드가 존재합니다.

한 사람의 게이머가 평생을 플레이하더라도 다 플레이해볼 수 없을 정도죠.

하지만 그렇게 무한한 조합이 가능한 만큼, 각 세계가 전달하는 재미에는 명백한 취향과 격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어떤 세계는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경험과 충족감을 선사하는 반면, 어떤 세계는 단순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정도의 말초적인 경험만을 제공하기도 하죠.

물론 플레이어는 시작부터 샌드박스 모드를 써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세계를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제대로 된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주문’을 할 수 있어야 하죠.

어떤 식의 요구를 해야 더 재미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특정한 장르의 월드에서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재미있는 플레이를 보장하는가.

각 세계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특전을 선택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며, 어떤 식의 스토리를 요구해야 가장 재미있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인지, 캠페인 모드는 AWC의 ‘제대로 된 활용법’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게이머들은 깨닫게 되겠죠.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는 세계보다, 제가 플레이어를 위해 정성 들여 준비한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사실을요.”

그렇게 말한 아리아는 매튜를 향해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한번 체험해보시겠어요?”

그런 그녀의 질문을 들은 매튜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뿐이었다.

***

AWC의 진정한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캠페인 모드.

그것을 시작한 매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말한 것이 허언이 아님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가득찬 세계가 아니더라도, 그녀가 추천하는 세계는 온갖 예측할 수 없는 모험과 재미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매튜는 수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무한한 세계 속을 마음껏 헤쳐나가며, AWC가 제공하는 창조적인 세계 속 이야기를 마음껏 체험하고 있었다.

때로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강력한 형사가 되어 깡패들을 때려잡고, 때로는 무역 회사의 신입 사원이 되어 회사의 명운이 걸린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스템이 제공하는 월드를 체험하면서, 매튜가 느낀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몰입감’이었다.

간략한 정보만 알고 있는 세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매튜는, 아리아가 각 세계 속에서 게이머를 위해 준비한 여러 가지 공통된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어떤 세계든 반드시 이해를 돕는 조력자가 한 명은 등장하네.’

형사로 플레이를 할 때는 형사의 주요 업무나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동료 형사가 붙어서 설명을 하고, 판타지 이 세계에서는 동반자 역의 동료가 각 마을에 대한 설명이나 그 세계 안의 적대 생물에 관해 설명해 주며, 전장에서는 전장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부관이나 상급자, 혹은 전우가 등장하고, 스포츠 장르의 세계를 플레이 할 때는 해당 스포츠에 대해 설명하는 조력자가 붙었다.

그런 조력자들은 대부분 월드 내 정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대부분 올바른 정답을 이야기 해 주었지만, 반대로 그 정보가 방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형사물의 경우, 조력자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강조하던 인물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 범인이었던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비슷한 장르의 월드라도 고르는 특전에 따라 아예 스토리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고.’

똑같이 현대 배경의 월드에서 범죄자를 쫓는 플레이를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선택한 특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구성이 바뀌는 것이 AWC의 특징이었다.

예를 들어 싸이코 메트리 같은 추리 계열 능력이 아닌 전투 관련 특전을 선택했을 경우, 게임 속에서 등장하는 빌런이 지능형 범죄자가 아닌 싸움의 고수가 되는 식으로.

게다가 PTW가 자랑하는 시스템 어시스트는 AWC에서도 그 빛을 마음껏 발하고 있었는데, 분명 가볍게 한 대 쳤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마이크 타이슨에게라도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며 한방에 기절하는 건달들의 모습은 매튜로 하여금 묘한 쾌감까지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조직 폭력배들을 쓸어나가던 자신이, 아무런 지원 없이 조직 폭력배의 본부로 혼자 쳐들어가서 무쌍을 찍을 때는 전율에 가까운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이 판타지 세계의 힐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세계에서는 치료받은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받으며 명의가 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 모든 세계를 돌아다니며 매튜가 느낀 감정은,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세계보다 훨씬 매력적인 세계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해 매튜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을 크게 해치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력을 기울여 자신만의 월드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월드가 다른 월드만큼의 재미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매튜의 고민을 들은 클레어는 크게 웃으며 매튜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런 감정은 당연한 거예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잘 아는 세계에 대해서 무뎌진 감각을 가지게 되니까요.”

“그런가요?”

“쉽게 설명해보죠.

이건 공식적으로 밝혀진 연구 결과이기도 한데, 로또에 당첨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행복도는 처음엔 극적일 정도로 큰 차이가 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하게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게임도 그러하죠.

어떤 게임이든 처음 접할 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지만, 곧 그것이 반복되게 되면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되잖아요?

그리고 의미없는 퀘스트보다는 뭔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성장을 더 중요시하게 되고요.

매튜 씨가 미니카란 물건을 처음 접했을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그때의 매튜 씨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매일 밤 제 미니카를 품에 안고 자고, 하비샵에서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저 베어링을 쓰면 속도가 얼마나 빨라질까?’, ‘저 모터를 쓰면 얼마나 빨라질까?’ 같은 상상을 하곤 했죠.

별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가지고 있는 부품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려 애쓰기도 했고요.

생각해보니 그때가 가장 즐거웠을 때 같네요.”

“그렇죠? 그러니 매튜 씨가 만드는 월드는, 그 월드를 세팅한 매튜 씨 본인이 아닌 그 월드에 대해 잘 모르는 플레이어가 플레이했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거예요.

매튜 씨가 다른 개발자가 세팅한 월드를 돌아다니며 그 디테일에 감탄하고 월드를 만끽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던 것처럼, 그 게이머도 매튜 씨가 만든 미니카 테마의 월드를 보며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그렇네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제가 만들려는 월드보다 다른 개발자들이 학습시킨 월드가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AWC의 끝없는 세계를 영원히 여행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한 월드의 플레이를 마치고 다른 월드의 플레이를 위해 세계를 돌아보는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이 세계에서는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하고 시작하기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플레이를 멈추고 제가 만들려는 월드의 완성을 하고 싶다는 욕망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저에게는 재미가 떨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미니카에 대해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에게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한 매력적인 세계가 될 테니까요.”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여기 모인 수천 명의 개발자도,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아리아를 학습시키고 있죠.”

“하지만 조금 걱정되긴 하네요.

물론 아리아의 인공지능이 제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월드에 대해 학습시키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그 월드가 완벽한지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전부 체크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작업 시간이 걱정이라는 건가요?”

“제가 플레이한 AWC는 지금 당장 발매하더라도 게임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우주 갓겜이 될만한 게임이었습니다.

적어도 발매 전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있는지는 알아야 제 월드의 디테일 수준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거라면 딱히 문제는 없을 거예요.

어차피 발매 이후에도, PTW의 개발자들은 지속해서 아리아를 학습시키고 AWC를 업데이트 할 테니까.

만약 발매 전까지 매튜 씨가 월드의 마무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발매 이후에 계속 이어서 작업을 하게 되시겠죠.”

“그건 다행이긴 하지만···.”

매튜가 머뭇거리며 말꼬리를 흐리자, 클레어가 물었다.

“뭐 또 물어볼 질문이 있으신가요?”

“그래도 발매일에 대해서는 알고 싶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경우도 문제가 되지만, 지나치게 길게 남은 경우도 문제가 되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케이스는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월드가 완성되자마자 게임이 발매되는 거겠죠.

그럼 제가 창조한 월드에 대한 유저들의 피드백을 바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반대로 앞으로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발매가 되지 않는다면.

PTW가 지금처럼 끝없이 새 인력을 보충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AI의 완성에만 집착하게 된다면, 이 멋진 게임을 게이머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겁니다.

그러니 묻고 싶네요.

개발자가 아닌 게이머의 한 사람으로서, 이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개발자가 추가로 더 필요하게 될 지를요.”

한없이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매튜를 보며, 클레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매튜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좋아요. 이건 진짜로 외부에 나가면 안 되는 정보인데, 매튜 씨는 제가 추천해서 입사한 직원이니 특별히 알려드리도록 하죠.

하지만 지금 들은 이야기를 절대로 외부에 유출하시면 안 됩니다.”

“보안에 대한 PTW의 집착은 이 업계에서 이미 전설이 되었죠.

저도 그것을 어겼을 때의 페널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어도, 이 꿈같은 회사를 배신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요.”

“그럼 말씀드리죠.

사실 저는 매튜 씨 외에도 다른 개발자 몇 명을 추가로 추천했었어요.

그러나 그 요청은 인사팀에 의해 거부당했죠.

그건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사팀은, 아무리 많은 새 직원을 뽑는다 해도 단 한 번의 거부 없애 승인해줬었거든요.”

“그런데 저 이외에는 거부당했다? 왜죠?”

“끈질기게 이유를 묻는 제게 인사팀에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어지는 클레어의 말은, 귀를 바짝 가져다 댄 매튜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마지막 신규 직원이 바로 매튜 씨라고요.

매튜 씨. 매튜 씨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추가된 수천 명의 개발자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멤버에 합류한 ‘라스트 원’입니다.

그 말은, 이제 이 게임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위에서 판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너무 부담은 갖지 마세요.

그냥 타이밍 적으로 마지막 개발자가 된 것뿐이지, 딱히 큰 의미가 있는 결정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매튜는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미니카를 좋아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평범한 자신이, 이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어서.

매튜는 자신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짓는 클레어를 보며 마음속으로 강하게 다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학습시킨 월드가 게이머에게 완벽한 기쁨을 주는 세계가 되도록 만들어주겠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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