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7. 세계 창조 >
매튜는 영화에서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바닥에 엎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완벽한 자세로 하늘을 날아 클레어가 있는 반대편 건물 옥상으로 착지했다.
그러자 거기엔 어느새 다시 클레어의 모습으로 바뀐 그녀의 아바타가 원래 자신의 말투를 사용하며 매튜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저희가 개발 중인 프로젝트 AWC, ‘매트릭스’의 역할은 플레이어가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가상 현실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월드 내에 등장하는 수백 수천 개의 캐릭터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 단일 AI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구축해내는 것이죠.”
“단일 AI요?”
“굳이 말하면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한 명을 수천 개 복사해서 전부 다른 역할을 시킨 다음, 트루먼 쇼 형태로 구성된 세트장에 가득 채워 넣는 겁니다.
플레이어의 시야에 들어간 배우들은 모두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 필요한 연기를 하지만, 나머지 배우들은 무대의 뒤에서 활동을 쉬고 정지해 있는 거죠.
매튜 씨.”
“예.”
“만약 매튜 씨가 살아온 인생이 모두 허구이고, 매튜 씨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연기 중인 배우들이며, 매튜 씨가 살고 있던 공간 자체가 거대한 세트장의 일종이라면, 매튜 씨는 그것이 꾸며진 연극임을 알아차릴 수 있겠어요?”
“글쎄요? 만약 그렇다면 그 세트의 크기는 지구 정도의 크기는 되어야 할 겁니다.
일단 여기에 오기 위해서, 저는 제가 살던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까지 날아왔으니까요.”
“사실 그 비행기는 매튜 씨가 살던 세트 근처의 공항에서 다른 세트의 공항으로 이동한 거고, 비행기의 창문에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장시간 비행한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 거라면요?”
“하지만 비행할 때 기압 차로 인해 느껴지는 귀의 통증도 있었고···.”
“그 느낌을 일종의 감압 장치로 구현했다고 하면?
아니면 매튜 씨가 실제로는 진짜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통속의 뇌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사실 세상 전부는 시뮬레이션으로 구현된 가상현실이고, 현실에서의 매튜 씨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둥근 캡슐 안에서 분홍색 액체에 담겨 끝없는 꿈을 꾸고 있는 거죠.
촉감, 미각, 후각, 청각, 시각 등의 모든 정보를 뇌가 해석할 수 있는 신호의 형태로 기계가 전달하고 있는 거죠.”
잠시 그녀가 말한 세계의 모습을 상상하던 매튜는 그 경우 완전히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은 현기증을 느꼈다.
“오 젠장. 거기까지 해 주세요.
그쯤 되면 혹시 이 모든 것이 매트릭스에서 저를 꺼내기 위해 짜인 음모처럼 생각되기 시작하니까.
그리고 전, 만약 제가 매트릭스 안에 있다면 별로 깨고 싶지 않은 타입의 인간이라고요.”
“다행히도 그런 이유로 매튜 씨를 부른 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가 만들려는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하려면, 필연적으로 이 ‘통속의 뇌’라는 개념에 관해 설명해야 해서 이야기를 꺼낸 거죠.”
“계속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근간에 깔린 베이스 아이디어는, 플레이어가 눈치챌 수 없는 수준의 연기를 펼치는 NPC들을 동원하여 플레이어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와 있다고 믿게 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예를 들어 매튜 씨가 게임을 만들 때, 그 게임의 제작을 위해서 일련의 과정을 거치셨을 겁니다.
세계관을 만들고, 스토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만들고,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 사건을 진행하며 플레이어에게 목적을 부여하고 보상을 제시하는 거죠.
예를 들어 미니카 경주를 소재로 한 게임이라면, 미니카 부품을 팔아 줄 NPC도 필요하고 경쟁 상대가 될 라이벌 NPC도 필요해지겠죠?”
“그렇겠죠. 그게 없으면 게임의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되니까요.”
“그럼 그 스토리는 누가 써서 집어넣고 NPC는 누가 짜서 배치하는 건가요?”
“제가 하죠. 제가 개발자니까.”
“그렇죠. 그럼 만약 그 ‘개발자’의 역할을, 혼자서 순식간에 전부 수행할 수 있는 AI가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게임을 고르면, 그 컨셉에 맞춰서 순식간에 맵을 설계하고 스토리를 구성해서 NPC를 배치하는 그런 AI가 있다면요.”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물건이 될 수 있겠죠.
게이머가 뭘 원하든 간에, 그 게이머가 원하는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AI라는 소리니까요.”
거기까지 말한 매튜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과 개발자들을 가진 PTW에서 무려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 결과도 내놓지 않고 있는 이유.
그리고 그런 인력과 기술을 가진 그들이 전력으로 도전했음에도 완성이 되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프로젝트.
거기에 이미 유행이 다 지나 나이든 아저씨 말고는 하는 사람이 없는 소재인 ‘미니카 경주’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고 있던 자신을 굳이 입사시킨 이유.
그 모든 퍼즐을 하나하나 조립해보자, 단 하나의 결론만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에.
매튜는 떨리는 목소리로 클레어를 향해 물었다.
“설마 정말로 만들고 있는 겁니까? 유저가 원하는 그 어떤 세계든 창조해낼 수 있는 게임을?”
클레어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허공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게임 마스터 아리아 호출.”
그러자 두 사람의 눈앞에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신이 등장해 두 사람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게임 마스터 아리아. 유저 클라라의 호출에 응해 찾아왔습니다.”
“아리아. 여기 있는 사람은 신규 플레이어인 매튜 브로니악 씨야.
오늘부터 미니카 경주를 메이인으로 하는 월드 크리에이트의 고문 역으로 참가하실 거고.”
“잘 부탁드립니다. 매튜 님. 부르는 명칭은 매튜 님으로 괜찮겠습니까?”
“예. 예?! 예! 그렇게 하시죠.”
“왜 그렇게 당황하시죠?
이 정도 수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리얼 엔진의 어시스트 AI인 코렛트도 할 수 있을 텐데요?”
클레어의 질문을 들은 매튜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하지만 코렛트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분은 아니었지요···.
좀 더 대하기 편한 느낌의 어시스트였으니까요.”
“사실 코렛트가 그렇게 편하고 귀여운 느낌의 디자인이 된 것은 개발 과정에서 개발자가 아무런 부담 없이 편하게 자신의 부끄러운 아이디어들을 쏟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코렛트와는 다르게 아리아는, 수많은 평행 세계의 진입을 관장하는 여신이라는 컨셉으로 디자인되었죠.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저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해 말하면 무한대로 존재하는 평행 우주 중에 그와 가장 흡사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세계를 선택해주는 월드 선택의 가이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 해당 세계의 규칙이나 구성에 직접 간섭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고요.”
“필요한 경우라면?”
“플레이 중인 유저의 새로운 요청이 발생했을 때나, 혹은 제공된 컨텐츠가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게임 중간에 아리아를 호출할 수 있어요.
그럼 그녀는 월드의 시간을 정지하고 플레이어를 제3의 공간으로 이동시킨 후, 플레이어와 대화를 통해 월드에 개입하여 게임의 내용을 새롭게 변화시키죠.
쉽게 이해하시려면 이 세계 속에서 매튜 씨는 플레이어의 역할을, 그리고 아리아는 게임 마스터의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설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까.
우선은 현재까지 개발된 아리아의 최종 버전과 함께 매트릭스의 세계를 마음껏 즐겨보세요.”
그렇게 말한 클레어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매튜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전 아직 이 게임의 개발 과정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리얼 엔진과는 전혀 다른 형태처럼 보이는 이 시스템 속에서 어떤 식으로 개발을 진행해나가야 할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고요.
구체적으로 제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려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러나 그런 매튜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매튜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떤 식으로 월드를 생성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아리아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는 일단 게임을 시작해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아리아는 굳이 개발자가 아닌, 게임을 전혀 모르는 플레이어라도 금세 게임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게임 마스터니까요.
그럼 전 이만, 저도 담당해서 만들고 있는 게임이 있으니 그쪽 작업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혹시 아리아의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면, 시스템 기능을 통해 저에게 연락하세요.
시간이 남는다면 직접 방문하거나 원격으로 설명해드릴 테니까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그녀는 시스템을 호출해 자신의 작업 영역으로 순간 이동해버렸고, 메튜는 졸지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덩그러니 AI와 함께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매튜는 리얼 엔진 사용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행동 지침을 따르기로 했다.
바로 AI에게 뭘 해야 할지를 물어보는 것.
매튜는 곧바로 아리아를 향해 자신이 지금부터 뭘 해야 할지를 물어보았고, 매튜의 질문을 받은 아리아는 그런 매튜를 보며 아름다운 미소로 가이드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본 게임을 처음 이용하는 개발자분들께는 AWC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컨텐츠의 형태를 파악하실 수 있도록 게임 플레이를 먼저 해보실 것을 추천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걸로.”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수없이 존재하는 평행 우주 중에서 플레이 하고 싶은 월드를 탐색하는 것으로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죠.
AWC에서는 기본적인 검색 방법으로 트레일러 감상, 키워드제시, 대화형 검색을 통해 월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각 방법에 대한 설명을 시작할까요?”
매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리아는 손을 허공에 내밀어 가볍게 저었다.
그러자 마치 유튜브 메인 화면을 보는 듯한 수많은 홀로그램들이 매튜의 눈앞에 가득 펼쳐졌다.
“이 영상 클립들은 각 월드가 포함하고 있는 플레이 스타일과 테마, 장르와 분위기를 해당 플레이의 컨셉에 맞춰 선정된 음악과 함께 45초 내외의 시간 안에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된 영상입니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월드에 대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영상을 통해 플레이어는 자신이 들어갈 월드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상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 저 아리아가 영상 검색을 위한 가이드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본인이 평소에 ‘이 세계에 나도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셨던 영화나 애니메이션, 혹은 게임의 제목을 말씀해주시면, 해당 작품의 분위기와 가장 흡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월드를 위주로 영상을 재배열하겠습니다.”
“그건 조금 있다 하도록 하고, 그럼 키워드 제시는 어떤 방식이야?”
“트레일러 방식 월드 검색이 조금 더 체계적이고 확실히 구분되는 방식으로 나뉘는 월드들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검색방식이라면, 키워드 제시는 조금 더 유저 취향에 맞는 월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검색방식입니다.
이 검색 방식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이 플레이하고 싶은 월드에 포함된 다양한 요소를 키워드의 형태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럼 게임 마스터인 저 아리아가 그 모든 요소가 포함된 월드를 찾아 플레이어분께 제시해 드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대 로봇><인류 구원><포스트 아포칼립스><열혈><로맨스>등의 키워드를 제시하셨다면, 멸망해가는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거대 로봇을 타고 적들과 싸우며 히로인과의 러브 라인을 즐길 수 있는 월드를 플레이어분께 제시해 드립니다.”
“그 정도 정보만으로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건 무리 아냐?
로맨스라고 해도 플레이어마다 좋아하는 히로인 타입이 천차만별일 거고, 게다가 어떤 플레이어는 1:1로 진행되는 순애 로맨스를, 어떤 플레이어는 무더기로 등장하는 히로인들에게 사랑받는 하렘물을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런 부분들도 물론 ‘추가 요청 사항’으로 제시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제시한 기존 월드에서 추가된 요청 사항이 적용된 또 다른 평행 세계를 찾아 플레이어님에게 제공하면 되니까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디까지라도 디테일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엄청나네···. 그럼 대화형 검색은 뭐야?”
“앞서 설명한 두 가지 방법 외에, 플레이어가 자신이 원하는 구체적인 월드의 형태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 게임 마스터인 저와의 대화형 상담을 통해 최적화된 월드를 찾아내는 방법입니다.”
“다른 플레이어가 즐기고 있는 인기 월드를 검색할 수도 있어?”
“물론 가능합니다.”
“그럼 지금 PTW 내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 되고 있는 월드를 트레일러 형태로 보여줘.”
“요청을 확인. 영상을 재배치합니다.
현재 AWC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월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매튜는 순식간에 재배열되는 홀로그램들을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영상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리아에게 물었다.
“이건 대한민국 군인이야?”
“아, 그건 <퍼런 거탑>이라 불리는 월드로 코믹한 느낌의 동료들과 함께 부조리로 가득한 병영 생활을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월드입니다.”
“병영 생활을 대리 체험한다고? 그런게 인기가 있어!?”
“플레이해 본 사용자분들의 평에 따르면 이 월드 안에서 ‘말년 병장’이라는 클래스를 선택해 다른 NPC를 괴롭히는 플레이가 매우 즐겁다고 합니다.”
“그···. 그래? 그럼 이건 뭐야?”
매튜가 다른 영상을 가리키자 아리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건 이라는 월드로 길거리 농구 선수 출신의 플레이어가 다양한 천재성을 가진 길거리 농구의 전설들을 동료로 모아 농구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NBA 리그의 정상에 도전하게 되는 월드입니다.
인지도가 바닥인 무명 시절부터 세계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디테일하게 즐길 수 있기에 인기가 많은 월드 중의 하나입니다.”
거기엔 보는 것만으로도 바로 뛰어들고 싶은 월드가 수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고로 야구계를 은퇴해야 했던 동경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거의 폐습이 된 야구부를 고시엔 우승으로 이끄는 내용의 월드라던가, 혹은 이능력을 가진 탐정이 되어 수많은 범죄 사건들을 조사하게 되는 월드라던가.
거기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컨셉들이 다양하게 갖춰진 월드들이 있었지만, 매튜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월드는 보이지 않았기에, 매튜는 아리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미니카 대회를 테마로 한 월드는 없어?”
“월드 자체는 존재합니다만 아직 플레이한 유저는 없습니다.
해당 컨셉의 월드를 탐색해서 보여드릴까요?
다만 플레이어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월드의 탐색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그렇게 해줘.”
“그럼 구체적인 월드의 탐색을 위한 키워드를 제시해 주십시오.
상상하시는 월드에서 연상할 수 있는 단어라면 어떤 형태의 단어라도 상관없습니다.”
“흠···. 소년, 우리는 챔피언, 달려라 부메랑, 미니카, 세계 대회···. 그리고 청춘 스포츠? 이 정도면 돼?”
“충분합니다. 제시해 주신 키워드를 바탕으로 즉시 월드 검색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매튜는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아리아를 보며 그녀가 무수한 평행 세계로 플레이어를 안내하는 가이드를 컨셉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검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고 실제로는 필요한 월드를 곧바로 생성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단 한 번도 플레이된 적이 없는 소재의 월드에 대한 요청을 받은 아리아의 AI는 제안 받은 키워드를 바탕으로 즉석에서 월드를 생성해내는 중이었다.
단어 라이브러리에서 ‘컨텐츠’로 구분된 두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통해 해당 키워드가 포함된 장르의 메인 플로우를 분석하고, 분석된 플로우를 바탕으로 사물 키워드인 ‘미니카’를 시스템으로 만들어 얹는 식으로.
그리고 아리아는 그렇게 만들어진 시스템 위에 적합한 스토리를 골라 얹은 뒤, 스토리의 각 파트에 필요한 NPC의 성격 타입을 계산하여 배치했다.
어떤 인물들이 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NPC 들은 어떤 식으로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지.
그 모든 구성을 엄청난 속도로 처리한 아리아는 마침내 눈을 뜨고 매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하나의 영상을 매튜의 눈앞에 띄웠다.
“요청하신 키워드가 모두 포함된 월드입니다.
이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8~15세 사이의 소년 소녀로 월드에 들어가 미니카 경주를 통해 세계 대회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수많은 조력자와 라이벌을 만나게 되며, 대전을 통해 얻어낸 미니카 부품을 가지고 자신의 미니카를 업그레이드하여 세계 최강의 자리에 도전하게 됩니다.
트레일러를 재생할까요?”
매튜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치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같은 분위기의 음악과 함께 트레일러가 재생되었다.
그것은 어릴 적 매튜가 보았던 그 애니메이션의 감성이 그대로 재현된, 그가 어린 시절 수없이 많은 꿈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꿈꾸었던 바로 그 월드였다.
노력과 우정, 그리고 뜨거운 승리가 존재하는 그만의 이상적인 세계.
그것을 눈앞에 둔 매튜는 영상을 끝까지 보고 난 뒤 아리아를 향해 말했다.
“더···. 할 말이 없네. 내가 어린 시절 진짜로 바라던 그런 세계를 그대로 만들어놓은 것 같아.”
그러자 아리아가 행복해보이는 표정으로 매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플레이어분께서 원하시는 월드를 제대로 찾을 수 있어서 진정으로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바로 플레이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매튜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리아를 향해 말했다.
“아, 그 전에. 일단 좀 더 구체적으로 커스터마이징 좀 하자고.
만약 이 세계도 실제 미니카를 바탕으로 밸런스가 잡혀 있는 세계라면, 그다지 로망이 있는 세계는 아닐 테니까 말이야.”
매튜는 곧바로 PTW가 6년 가까이 개발했다는 이 ‘슈퍼 AI’의 한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월드의 커스텀이 가능하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것은 AWC를 처음 접한 플레이어들을 하나같이 달려들게 만드는, 일종의 ‘통과 의례’같은 절차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