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4. 새로운 도전 >
[어제 아키바 아미아미에 PTW 직원들 단체 관광하러 온 거 직관함.]
↳ 아, 요즘 한참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다던데, 어땠음?
↳ 개 부러워. 미리 일정이 잡혀있었던 건지 아예 전담직원까지 붙여서 가게 물건을 거의 쓸어가다시피 했는데, 그 많은 물건을 사고도 돈은 마지막에 법카로 짠하고 긁더라.
↳ 요즘 여행사마다 PTW 직원 전용 상품 출시하느라 난리잖음.
회사에서 여행에 쇼핑에 레져까지 전부 지원하는 바람에 전 세계의 유명 고급 호텔이나 펜션에서 PTW 직원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음.
물론 그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서 PTW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 아니, 다 똑같은 손님인데 그 사람이 일반 관광객인지 아니면 PTW 직원인지 어떻게 알아?
↳ 지금 휴가중인 PTW 직원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첫째로 PTW 직원들은 절대 혼자 다니지 않아.
보통 2~6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 단체로 몰려다니면서 계속 게임 이야기를 해.
둘째로 관광 나온 PTW 직원들은 일반 관광객들보다 뭔가 자료조사 하러 나온 듯한 느낌으로 놀아.
약간 실험적이라고 해야 하나?
스키를 타도 같은 코스를 여러 번 다른 방식으로 돌면서 계속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기도 하고, 쇼핑을 할 때도 서로 같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상담해서 나눠서 구매하는 경향이 있더라고.
마지막으로, 일반 여행객과 휴가 중인 PTW 직원들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의 표정을 보는 거야.
↳ 표정은 왜?
↳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노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특유의 편안함이 표정에서 팍팍 묻어나오거든.
↳ ㅋㅋㅋ 진짜 그렇겠네.
회사에서 쇼핑하고 놀라고 돈 싸주면서 밀어주는데, 세상 그 어떤 여행도 그거보다 편할 순 없을 듯.
↳ 그렇지.
다른 회사에서도 복지 차원으로 여행을 보내주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개인 쇼핑 같은 건 회사 비용으로 처리 안 하잖아?
근데 ‘노는 것’에 한정해서는 거의 무제한 적으로 예산 지원이 되나 보더라고.
↳ 하지만 아무리 회삿돈으로 노는 거라도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지 않나?
예를 들어 여행 가서 명품샵에서 수억 원어치 물건을 싹쓸이하고 영수증을 내밀면 그것까지 처리해주진 않을 거 아냐?
게다가 다른 직원보다 눈에 띌 정도로 돈을 많이 쓰면서 놀면 그건 그거대로 눈치가 보일 수도 있고.
내가 뭘 하면서 놀았는지 회사에서 다 파악한다는 소리니까, 그건 그거대로 알아서 기라는 소리처럼 들릴 것 같은데?
↳ 그래서 ‘노는 것’으로 한정한 거지.
쇼핑도 마찬가지야.
단순히 ‘가지고 싶다’라는 걸로는 영수증 처리를 해주지 않는데.
대신 가지고 놀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전부 처리해준다고 하고.
↳ 그럼 자동차는? 자동차도 어찌 보면 가지고 노는 물건이니까 페라리 사고 싶다고 하면 페라리도 사주나?
↳ 글쎄, 다들 그런 생각으로 악용하기 시작하면 이벤트가 유지될 수 없었겠지.
직원들도 이벤트를 악용하다가 혜택이 줄어드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 PTW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개발자는 없지 않을까?
↳ 그거야말로 ‘알아서 눈치껏’ 판단해야 하는 일이겠지.
↳ 그런데, 정작 개발자 전체를 휴가 보내놓고 가장 유명한 임원들은 콧빼기도 안 비치네.
가끔 퍼스티스트에 출연하는 이상혁이랑 서지수를 빼면, 지금 임원 중엔 휴가 나온 사람이 없지?
↳ 그러게? 대체 PTW에서는 직원 전체를 휴가 보내고 임원들끼리 무슨 작당을 꾸미는 거야?
마치 노는 것에 한 맺힌 사람처럼 돈을 쓰고 다니는 PTW 직원들은 순식간에 관광업계에서 꼭 붙잡아야 하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물론 세상의 수많은 회사 중에 복지 차원으로 직원들을 여행 보내는 회사는 꽤 있었지만, PTW식으로 ‘화끈하게’ 놀라고 밀어주는 회사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런 PTW의 기이한 행보는 안 그래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기업답게 전 세계 기자들의 어그로를 끌었고, 자연스레 전 세계 유명 관광지의 지역 신문에는 PTW 직원들의 단체 방문 내용이 실리게 되었다.
읽는 사람의 부러움을 한눈에 살 만한 내용으로 가득한 기사로.
그러나 모두가 놀자판으로 뛰어드는 흐름 속에서도 업무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민준이 소집한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PTW의 ‘원년 멤버들’, 그리고 아직 방송이 끝나지 않은 퍼스티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직원들이었다.
대형 프로젝트 두 개가 동시에 끝나면서 여유가 생긴 본사 개발팀과는 다르게, 그들에겐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이 현주를 통해 그들에게도 웹 드라마 프로젝트가 끝나는 대로 같은 수준의 휴가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그들은 이전보다 더 열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방송 중인 웹 드라마가 최고의 마무리를 선보이며 끝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방송에 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쪽은 ‘현재의’ 보상을 만끽하며 휴식을 즐기고, 다른 한쪽은 ‘미래의’ 보상을 상상하며 업무를 즐기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유일하게 휴식도 보상도 없이 산더미 같은 업무량을 처리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PTW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지금까지의 모든 굵직한 대형 프로젝트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던 PTW의 ‘원년 멤버들’.
그들은 수천 명의 직원 전체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는 가운데, 마치 고등학교 동아리 같은 인테리어로 꾸며진 본사의 ‘부실’ 안에서 다크 서클이 가득 낀 상태로 새 게임의 베이스 설계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육체적 피로와는 별개로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말 그대로 게임에 미친 인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재미있는 게임’의 제작이란 건 세상 그 어떤 놀이와도 바꿀 수 없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몇 번이고 성공시킨 그들의 능력으로도 몇 번이고 베이스 설계를 갈아엎어야 했을 정도로, 이번 신작의 기획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무리에요. 이대로 설계해서 제작했다간 게임 용량이 페타바이트 수준이 되더라도 완성 못 할 거라고요.”
원년 멤버는 아니지만 PTW의 임원이자 마스터 클래스 기획자 자격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미야모토 카렌이 기획안을 검토하며 말했다.
“하다못해 시대 배경이라도 고정하면 필요한 텍스쳐와 이펙트의 양을 확 줄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최적화를 할 수 있겠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게임, 그것도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풀 다이브 VR 게임을 만든다는 건 현재의 SSD 용량으로 구현할 수 없는 과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까지의 개발의 흐름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상혁이 기초 안을 설계하면, 팀원들이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럼 상혁이 다시 해결책을 내놓고, 문제가 없으면 다음 과제로 넘어간다.
그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상혁은 또다시 눈앞에 주어진 난제를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카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일반적으로 게임 용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1순위가 음성과 음악 같은 사운드 데이터지?
그건 일단 우리가 가진 보이스 메이킹 시스템으로 커버할 수 있어.
그럼 이제 남은 건 4K해상도를 지원하는 풀 다이브 VR 게임의 텍스쳐 데이터와 인 게임 영상 같은 비디오 파일의 용량인데, 일단 인게임 영상은 전부 영상이 아니라 게임 엔진에서 구현하는 식으로 진행하자고.”
“음악은요?”
“한 게임에 모든 음악이 전부 필요하지는 않을 거 아냐.
시스템이 각 챕터 별로 필요한 사운드 트랙을 미리 파악해서, 그때그때 필요한 트랙만 내려받게 만들거나 스트리밍으로 재생하게 하는거지.
기본적으로 이건 새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만 할 수 있는 게임이고, 그럼 게임 내 리소스 대부분을 스트리밍으로 가져와도 문제가 없다는 소리니까.
텍스쳐도 그때그때 스트리밍으로 미리 받아서 덮어씌우자고.”
“그럼 용량 문제는 해결되겠네요.
하지만 동접자가 많으면 리소스 서버에 가해지는 부하가 엄청날 거에요.
만약 병목현상이라도 생겨서 텍스쳐의 로딩에 실패한다면, PTW 게임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허접한 게임 화면이 유저를 기다리고 있을 거고요.”
“그럼 일단 베이스 클라이언트에 각 재질에 따른 기본 텍스쳐만 넣어두도록 하자.
스트리밍이 완료되기 전에는 해당 텍스쳐를 먼저 출력하고, 로딩이 완전히 끝나면 제대로 된 텍스쳐를 출력하는 식으로.
저화질 텍스쳐에서 고화질 텍스쳐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건 유저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니까,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만 않는다면 버그처럼 보이지는 않을 거야.”
상혁의 말을 들은 지수가 모니터 안에서 손을 들며 말했다.
그녀는 웹 드라마의 촬영 때문에 대전에 있었기 때문에, 원격으로 회의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일단 게임에 처음 접속할 때는 로딩 화면이 뜨잖아요?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이미 게임이 개시된 이후에 빠른 이동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문제고요.
그럼 그냥 빠른 이동 시에는 일정 시간 블러를 심하게 먹이는 게 어떨까요?
어차피 새 인터넷을 사용하면 아무리 대용량 데이터라도 2초 안에 대부분의 로딩을 완료할 수 있으니, 대놓고 물건에 안 맞는 텍스쳐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아예 시야를 흐릿하게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좋네. 일단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자고.
해보고 어색하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
자, 그럼 기술적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으니 다시 기획적 문제를 다뤄 볼까?
저번 회의 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월드의 베이스 레이어와 바리에이션 개념에 대해서요.”
“맞아. 그랬지. 다들 내가 보내준 기획서를 보았으니 대충 어떤 구조인지 이해는 했을 거로 생각해.
오늘은 그에 대한 의견을 받고 싶은데.”
상혁이 말을 마치자 혁찬이 손을 들었다.
그는 중학생 시절 PTW와의 인연을 계기로 PTW에 입사하여 스토리 부분 마스터 클래스 기획자로 성장, 지금은 수백 명 규모로 성장한 PTW의 스토리 팀의 치프 디자이너 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개발자였다.
“저는 시스템 기획 쪽은 잘 모르니까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그러니까 이 시스템에서, 베이스 레이어란 건 게임의 플레이 적 장르를 결정짓는 개념이라는 거죠?
예를 들면 ‘용과 같이’를 베이스 레이어로 잡은 게임이라면 그 게임이 용과 같이 시리즈든 로스트 저지먼트 시리즈든 북두와 같이 든 대체로 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게임이 되는 거고요.”
“맞아.”
“그럼 그 베이스 레이어에 시대 배경이나 세계관 컨셉은 개입하지 않는 거네요?”
“그렇지. UBI에서 나온 오픈 월드 게임을 해보면, 그 세계관이나 컨셉과는 별개로 시리즈가 달라고 해야 하는 일의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게 느껴지잖아?
물론 그래픽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르고 전투 시스템이 다르니 서로 다른 게임같이 느껴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UBI식 오픈 월드’의 진행 과정 자체는 항상 비슷하게 적용되어 있지.
그런 개념의 ‘유저가 게임에서 해야하는 것.’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베이스 레이어의 개념이라고 보면 돼.
월드가 생성되기 전에, AI가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 바로 ‘이 월드엔 어떤 베이스 레이어를 적용해야 하는가’이고.
나머지는 그 베이스 레이어에 스킨을 씌우고 바리에이션을 더하는 식으로 생성되는 거야.”
“그 베이스 레이어는 AI가 ‘생성’하지 않고 ‘선택’하는 건가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상적일지도 모르지만, 그 부분까지 AI에게 맡긴다면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통제 불가 수준으로 늘어나.
적어도 유저가 게임이 개시된 지 20분 안에 이 게임의 전체적인 흐름이 어떤 거구나 하는 정도는 파악할 수 있어야지.”
“바리에이션은요?”
“여기서 말하는 바리에이션은 베이스 레이어에서 파생될 수 있는 서브 레이어를 말하는 거야.
예를 들면 똑같은 UBI식 오픈 월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지만, 중간 보스의 숫자가 다르다던가 아니면 중간 목표가 사람이 아닌 특정 지역의 점령이나 아이템 획득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하나의 기본 레이어를 잡고 나면, 그 구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다른 바리에이션을 미리 잡아두는 거지.
그 말은 결과적으로 이 게임 속에서, 월드의 설계 자체를 AI가 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부분은 AI에 맡기는 게 아니군요?”
“민준과 이야기해 본 결과 아직 그 수준까지는 무리일 거라는 결론이 나왔거든.
그러니까 일단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이거야.
이 게임에 적용할 만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종류의 베이스 레이어 설계를 잡는 것.
어떤 거라도 좋아.
지금까지 살면서 보고 듣고 즐긴 것 중에 재미있어 보이는 건 전부 집어넣어.
그게 스포츠 게임이든 전쟁 게임이든 판타지 게임이든 간에, 게임이란 건 언제나 쪼개고 쪼개면 그 아래 깔린 베이스 레이어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거기에 스킨을 바꾸고 바리에이션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수백 수천 가지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상혁은 계속 다른 업무를 병행해야 했다.
아직 웹 드라마 프로젝트도 자신이 손을 대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고, 김기열 교수가 원하는 계열사 분리와 관련해서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았기 때문에.
상혁은 민준의 프로젝트 기획을 진행하는 동시에 김기열 교수의 계열사 분리 작업을 돕고, 웹 드라마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스컹크 웍스 멤버들과 새 프로젝트를 위한 리얼엔진 개선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틈틈이 본사에 들리거나 화상 회의를 통해 PTW 멤버들이 작업한 기획안을 검토하고 수정사항을 잡아나갔다.
거기에 워커 봇의 도입을 위한 아마존과 테슬러와의 사전 협의까지 포함하면, 상혁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도입되는 순간 전 세계의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버릴 위험이 있는 워커 봇의 도입은 도입 예정인 해당 국가 정부와의 협의도 필요했기 때문에, 접촉해야 하는 정부 부처가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평소에도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익숙한 상혁에게도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상혁은 부족한 잠을 비행기 안에서 때워가며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일정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PTW에서 돈다발을 안겨주고 미친 듯이 놀으라며 6개월간 밖으로 쫓아낸 PTW 직원들이 회사에 복귀했을 때, 상혁을 포함한 PTW 멤버들은 어떻게든 직원들에게 소개할 만한 프로젝트 제안서를 완성하여 그들 앞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6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거치며, 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보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수천 명의 개발자 앞에서, ‘게임을 만드는 게임’이라는 전대미문의 기획을 선보이는 자리.
쉬운 이해를 위해 수천 명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버츄얼 스튜디오 내부의 가상 대강당에서, 상혁과 동료들은 다크 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강당에 모인 PTW 직원들을 피로에 절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보면, 그 누구도 그들이 피곤해 보인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광대뼈까지 내려올 기세로 짙게 새겨진 다크 서클, 피로에 지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표정과는 다르게, 그들의 눈빛만큼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상혁은 이제 겨우 쉬었다 회복된 목을 가다듬은 후 단상으로 자신의 아바타를 순간이동 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천 개의 가상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짤..커흠! 쉬셨습니까?”
중간에 목소리가 샌 상혁이 기침을 하며 인사하자, PTW의 직원들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에게 꿈같은 휴가를 선사한 PTW의 임원들에게 밝은 목소리로 화답했다.
“옙!!!!!!!!!!!”
“최고였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터져 나오는 외침 속에서, 상혁은 가장 앞줄에 앉아 있는 마스터 클래스 직원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상혁이 그를 손으로 가리키자, 발언권을 얻은 그는 상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긴 휴가 기간 동안, 저희는 김현주 CEO의 배려 아래 각자가 희망하던 최고의 휴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대형 프로젝트가 끝나면 정당하게 장기 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긴 했어도, 여기 개발자들 대부분은 그 제도를 쓰지 않고 바로 차기작의 개발에 들어갔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남들보다 더 빠르게 커리어와 경험을 쌓고 싶어서라거나, 아니면 회사에 잘 보여서 연봉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회사에서, PTW라는 이 회사에서 게임을 만드는 것이 그 어떤 휴가보다 더 즐거운 삶의 일부였기에 계속 게임 개발에 임했던 거죠.
그러나 이번 휴가 기간에, PTW에서는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전 직원에게 강제로 휴가를 보내도록 종용했습니다.
물론 저희에게 딱 맞춰서 설계된 그 휴가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휴가가 길어질수록 저희 개발자들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 그만 놀고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고요.”
“다들 이분의 말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젠장! 놀 만큼 놀았으니 어서 빨리 저희가 만들게 뭔지 보여주시죠!”
“다들 6개월이나 임원실에 뭉쳐서 진행한 비밀 프로젝트가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란 말입니다!”
“게임으로 만들고 싶은 아이디어가 넘쳐서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차기작 프로젝트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현주가 민준에게 속삭였다.
“보통 길게 놀면 놀수록 일하기 싫어지는 법인데, 왜 다들 반응이 저러지?”
그러자 민준이 웃으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애당초 그런 인간들만 모아놓은거죠.
남이 만든 것을 즐기는 것보다 자신이 만들어서 남을 즐겁게 하고 싶어서 하는 욕망이 강한 개발자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휴가를 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게임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람들.
PTW라는 회사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회사니까요.”
민준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상혁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견들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어서 빨리 준비한 것을 보여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뜨거운 요구에 응해 앞서 준비했던 다른 과정을 모두 스킵한 채 곧바로 새 프로젝트의 개요 설명에 들어갔다.
자신도 처음 들었을 때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던, ‘게임을 만드는 게임’에 대한 설명을.
그러나 민준이 처음 제안했을 때와는 다르게 그 프로젝트는, 6개월의 선행 기획 기간을 거치며 상당히 정리된 형태로 다듬어져 있었다.
듣자마자 ‘아니 어떻게 그런 걸 만들겠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막연한 프로젝트에서, 상혁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체화 된 프로젝트로.
그리고 오랜 기간의 휴식으로 온갖 게임 아이디어로 넘치는 직원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각자의 욕망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형태의 시스템으로.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게임 개발자들인 PTW의 직원들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손꼽는 기획자가 된 상혁의 설명을 들으며 각자가 휴가 기간에 마음속에 품었던 신작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PTW의 새 게임에 대입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상의 결과물은, 그들의 개발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에서, AI가 생성하는 것은 월드의 디테일입니다.
어떤 형태의 세계에서 어떤 형태의 플레이를 즐기고 싶은지를 플레이어가 결정하면, 그로 인해 조금 전 설명했던 베이직 레이어가 결정되고, AI는 그 위에 필요한 만큼의 살을 얹는 거죠.
그렇기에 이 게임은, 적어도 저희가 설계해서 집어넣은 만큼의 장르 포괄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저희가 작업하는 기간 대부분이, 그 베이직 레이어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쓰이게 될 거고요.
일반적으로 지금까지의 게임은 게임을 하기 전에 자신이 뭘 할지를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되죠.
하늘림을 플레이하려는 사람은 하늘림이 주는 게임 플레이가 대략 어떤 재미를 주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게임을 하게 되고, KOH를 플레이하는 사람은 KOH라는 게임에 그 게임 특유의 재미를 기대하며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재미의 종류는, 적어도 게임을 다른 게임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크게 변화하지 않죠.
물론 용과 같이 같은 방식으로 서브 퀘스트를 통해 재미의 변주를 주는 게임은 존재하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서브 퀘스트라는 시스템의 스케일에 갇혀 언젠가 본 플레이로 돌아가야 한다는 한계가 말이죠.
GTA 5에는 트라이애슬론, 다트, 항공기 스턴트, 요가, 골프 같은 다양한 서브 콘텐츠들이 들어있지만, 어디까지나 미니게임 수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게임은 다르죠.
플레이어가 퀸즈 갬빗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체스가 국민 스포츠인 판타지 세계에서 체스 챔피언이 되는 경험을 하고 싶어.’라고 주문하면, 바로 그런 플레이어를 위한 월드를 즉석에서 만들어줍니다.
AI가 생성한, 개성 넘치고 다양한 공격 스타일을 가진 라이벌 캐릭터들과 세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각 지역의 챔피언들,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체스를 가르쳐줄 스승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체스 실력에 반해 플레이어를 사랑하게 되는 히로인 캐릭터까지 모두 갖춰진 세계를 만들어주는 거죠.
그리고 그 캐릭터들은, 마찬가지로 AI가 설계한 월드에서 민준과 스컹크 웍스가 함께 완성한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힘으로 실제 그 세계의 주민처럼 플레이어와 대화하며 다양한 리액션을 취하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이 세계 안에서라면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그 어떤 존재도 될 수 있는 거죠.”
상혁은 나머지 설명을 마친 뒤 직원들을 향해 혹시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상혁의 앞에 있는 수천명의 PTW 직원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가 그 침묵을 깨고 손을 들자, 상혁은 그 개발자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었다.
“말씀하세요.”
“상혁 씨의 쉬운 설명 덕분에 대략적인 프로젝트의 개요는 이해했습니다만, 설명 외의 부분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이 게임은, 말하자면 기존에 존재하는 수많은 게임들이 가진 경험을 하나로 합쳐서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게임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세상에 게이머의 수는 하늘의 별만큼 많고, 그런 게이머의 욕망의 숫자도 천문학적으로 많죠.
그 모든 욕망을 만족하게 하려면, 정말로 엄청난 숫자의 베이직 레이어가 준비되어야 할 텐데요.
지금 설명을 들어보면 디테일한 부분을 AI가 구성한다고 해도, 결국 그 다양한 시스템을 구성하는 기초 설계는 개발자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개발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게임의 시스템을 전부 이 게임에 때려 박아야하고요.
여기 이 자리에만 2천 명이 넘는 개발자가 모여있지만, 저희가 모두 참여한다 해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프로젝트죠.
PTW의 CCO로써, 상혁 씨는 이 게임의 개발 기간을 몇 년 정도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최소 5년입니다.”
“중간에 추가로 충원되는 직원을 포함한 기간인가요?”
“그렇습니다.”
“5년 후엔 저 기획대로 확실히 동작하는 게임이 완성될 거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상혁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프로젝트 자체가 말 그대로 비효율의 극치죠.
그리고 저희의 기술력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완성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판단이 어려운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결국 5년이 채 되기도 전에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서 프로젝트가 엎어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 프로젝트는 저희 PTW가 창립된 이래 가장 거대한 게임 제작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참가는, 개발자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겁니까? 아니면 강제 참여입니까?”
“만들고 싶지 않은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의욕을 강요할 순 없겠죠.
이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이 기획의 비전에 동의하고 이 게임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만 프로젝트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나머지 분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팀 단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괜찮다 싶은 게임이 나오면 메인 프로젝트로 전환하면 되고요.”
상혁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직원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비록 자신과 팀원들이 6개월이란 시간 동안 불가능을 가능으로 보이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가 가진 리스크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같은 개발력을 투입한다는 가정 하에서, 다른 게임 여러 개를 만드는 것이 훨씬 이득일 수도 있고, 심지어 그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도 결국 구현 불가능 판정을 받은 채 프로젝트가 엎어질 위험까지 존재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건 도박에 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혁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긴 침묵을 깨고 한 직원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불안해 보이는 상혁의 표정을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상혁 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평소에 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던 상혁씨는 언제나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치 ‘너희가 이런 아이디어를 듣고도 함께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개발자라 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계셨죠.
그러나 오늘은 꽤 텐션이 다운된 모습이네요.
어찌보면 불안해보이기도 하고요.
왜 그런거죠?”
“이 프로젝트가 가진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개발자분들이시며, 이중 상당수는 당장 어느 회사에 가도 중역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커리어와 능력을 가진 분들이시죠.
그런 분들에게 최소 5년이 투입되어야 하는 프로젝트를, 그것도 실제로 완성할 수 있을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프로젝트에 참가해달라고 권하는 것은 저로서도 꽤 부담되는 일입니다.
게다가···.”
상혁은 고개를 들어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굳게 입을 다문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천 명의 개발자를.
“그 리스크를 다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란 생각도 들고요.”
“이런 반응이라는 건 침묵을 말하는 건가요?”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요. 상혁 씨.
적어도 다른 개발자들이라면 몰라도, 제가 침묵하던 건 이 아이디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참가에 따르는 리스크 때문이 아니기도 하고요.
PTW에서 6개월간 저희에게 쥐여준 긴 휴가 기간 내내, 저는 저 나름대로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로봇 게임은 KOH이상의 퀄리티를 뽑을 수 있을 자신이 없으니 포기하더라도, 아직 PTW가 손대지 않은 수많은 장르와 컨셉의 게임들에 대해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계획하고 있었죠.
그리고 그 긴 고찰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였습니다.
예. 6개월이란 시간은 한 가지 게임만 붙잡고 망상하기엔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으니까요.
음식점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을 때는 쉐프에 도전하는 게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PTW의 웹 드라마를 볼 때는 나이츠 리그를 배경으로 한 프로 파일럿 매니지 먼트 게임을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의 거리를 걸을 때는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보면서는 정말로 광활한 배경을 가진 판타지 배경의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그런 마음을 품고 회사에 돌아왔더니, 저희 CCO는 그 모든게 가능한 게임을 만들자고 하고 있네요.
저는 상혁씨의 설명을 들으며,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이 그 ‘게임을 만드는 게임’에 적용된다면 어떤 형태로 유저에게 전달될 것인가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꽤나 만족스러운 형태를 하고 있었죠.”
“그럼 그 말은···.”
“저도 끼고 싶습니다.
그 게임을 만드는 게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이렇게 말하니 뭔가 말장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요.”
그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직원들이 하나 둘씩 손을 들며 소리치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가 되어 똑같은 의견을 상혁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저도 끼겠습니다.”
“5년이 뭡니까. 저 정도 게임이라면 10년도 아깝지 않아요!”
“진짜 휴가 기간 내내 원 없이 놀았습니다.
이제는 원 없이 개발만 하고 싶습니다!”
대 회의에 참가한 개발자의 숫자는 총 3724명.
상혁은 PTW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그 개발자들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개발자까지 일어나 참가를 선언하자 조금 전 상혁에게 말을 걸었던 개발자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잘 알고 있죠?
이 프로젝트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난제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금까지 어떤 회사도 도전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도전하지 않을 프로젝트이기도 하고요.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는 것은, 정말로 몇 년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도박에 참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묻죠.
다들 일어서니까 분위기 때문에 휩쓸려서 일어난 분이 있다면, 조용히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회사를 잘 아시겠지만, 누구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타박하는 회사가 아니니까요.
여러분, PTW가 펼치는 대 도박에 여러분의 시간과 재능, 커리어를 걸고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예에에에에에!!!!!!!!!!!!!!!!!!”
“Yeeeeeeeereeeeeeeees!!!!”
“Fucking Yeeeeeaaahhh!!!”
앞서 주어진 충분한 휴식 때문일까.
거의 스포츠 경기장의 응원 소리 같은 느낌의 함성이 가상의 회의실을 가득 메우자, 모두를 대표하여 말을 꺼낸 개발자가 상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미소띈 얼굴로 상혁에게 말했다.
“그렇다는데요?
남은 건 상혁 씨의 대답뿐입니다.
도박에 베팅한 건 저희지만, 그 도박을 승리로 이끄는 건 상혁씨가 할 몫이니까요.
지금이야 다들 이렇게 말하지만, 5년이나 투자했는데 그때 가서 ‘아, 이건 안 되겠네요.’라고 하면 절대 용서받으시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묻죠.
상혁 씨는,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임원 여러분들은,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비전과 확신을 가지고 계십니까?”
대답은 상혁의 뒤에서 터져 나왔다.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상혁과 함께 부실에 갇혀 이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던 팀원들이, 상혁보다 먼저 개발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었다.
“여러분들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미친 발상의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저희가 설계한 대로 개발할 수 있다면 분명 의도대로 동작하는 물건이 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기술적 난관으로 구현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제 커리어를 걸고서라도 어거지로 뚫어내겠습니다.”
그렇게 한명씩 앞으로 나서며 호언장담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상혁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직원들을 향해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마도 이 게임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저희 PTW가 아니면 개발할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게임이겠죠.
그리고 그 PTW 조차도, 완성을 보장할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로 여러분이 투자한 노력과 재능이 헛되게 쓰이지 않게 하겠다고.
저희는 이 게임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무조건 완성해 낼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 저희 앞을 가로막았던 수많은 불가능을 노력으로 뚫어왔던 PTW의 모토이자, 저희가 게이머들을 위해 지금까지 지켜온 PTW의 신념이니까요.”
그렇게 상혁의 확답까지 얻어낸 개발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소지으며 상혁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 수천 명의 개발자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들었죠? 그럼 개발하러 갑시다!
이 정신 나간 인간들이 만들려고 하는 정신 나간 게임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만들기 위해!”
“Yeeeeeeeeeeeeeeeaaaahhhhh”
“미친 회사에 미친 게임! 좋네!!”
“X발 이런 프로젝트에 흥분하다니 나도 제정신이 아닌가 봐!”
“6개월간 기대하며 기다린 보람이 있는 프로젝트 소개였습니다! 치프!”
그렇게 가상 회의장을 가득 메운 수천 명의 개발자의 환호성 속에서, ‘프로젝트 AWC’가 시작되었다.
기나긴 휴식으로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정신 나간 개발자들의 폭주 기관차 같은 열기 속에서.
그것은 PTW 전원이 참가할 때까지 2년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던 상혁의 예상을 가볍게 깨부수는, 미친 기획에 어울리는 ‘미친 반응’,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