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72화 (473/485)

< 472. 궁극의 게임 >

‘풀 다이브 VR 디바이스, 개발자 대신 원하는 결과물을 뽑아주는 개발용 AI, 그리고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엔진.

이 3가지로 구현하려는 게임이라···.’

민준의 퀴즈 아닌 퀴즈를 앞에 둔 상혁은 대체 민준이 만들려는 게임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현재까지 민준이 개발한 작업물들.

그리고 민준이 작업에 관여했던 수많은 프로젝트와 특별히 애착을 두고 임했던 작업들.

평소에 민준이 중요시하는 비전이나 개발 성향까지 모두 고려한 끝에, 상혁은 하나의 가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애당초 지금까지 PTW에서 진행된 모든 프로젝트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상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으면서 민준을 향해 질문했다.

“혹시 만들고 싶은 게임이 ‘게임을 만드는 게임’인거냐?”

그러자 민준은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잘 아네. 어떻게 알아냈어?”

“지금까지의 네 작업물을 모두 취합해서 내린 결론이, 그거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YAS에서 적대 세력을 컨트롤하는 AI인 ‘혼돈’이 통제를 벗어나 날뛸 때, 민준이 넌 필사적으로 해당 AI를 초기화하는 것에 반대했었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야.

월드 전체의 붕괴를 두고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 월드보다 AI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게.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미 그 시점에서 민준이 네가 목표하는 인공지능의 기초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었던 거겠지.

그리고 네가 진짜로 보호하고 싶었던 것은, AI를 구성하는 프로그램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오랜 기간 학습을 거쳐 성장한 상태의 AI 자체였을 거고.

결과적으로 그 이벤트를 통해서, 혼돈은 자신이 태어난 목적이 게이머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도록 아슬아슬한 난이도를 조성해서 유저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지.

개발자의 개입 없이도 유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월드를 생성하고 운영 가능한 AI.

그게 바로 네가 원하던 것일 테고.”

“단서는 그것뿐이야?”

“PTW에서 수집하고 있던 데이터를 보아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지.

너도 알겠지만 우린 코넥트 시절부터 게임 내의 각 상황에 따른 플레이어의 표정 데이터를 익명으로 수집해왔어.

그리고 딥 다이버에도 사용자의 표정을 인식하기 위한 내부 카메라가 달려있고.

일반적으로 그 기능은 HC 101이나 YAS같은 게임을 플레이 할 때 플레이어의 표정을 아바타가 그대로 따라 하게 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많은 데이터를 사용하면 말 그대로 수천만의 유저가 각 상황에서 지은 천문학적인 양의 표정 데이터를 학습한 AI를 만들 수 있는 거야.

그 AI는 말 그대로 세상 어떤 사람도 전부 흉내 낼 수 있는 ‘수천만 개의 가면’을 가진 배우가 될 수 있겠지.

게다가 이미 PTW가 보유한 음성 생성 기술은 더빙 데이터가 없이도 모든 상황에 대해 능숙한 목소리 연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이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시작도 그래.

‘우리들의 게임 클럽’을 만들 때만 해도, 원래 내가 목표하던 수준은 그냥 엄청나게 많은 대사 데이터를 가지고 상황에 맞는 대사를 던져넣는 그런 AI를 원하는 거였어.

그런데 민준 너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기능까지 추가하면서 OGC의 AI가 ‘의지’를 가지게 했지.

플레이어가 화를 내면 사과를 하고, 플레이어가 화나게 하면 삐지기도 하고, 플레이어가 다른 캐릭터와 친하게 지내면 질투도 하는, 말 그대로 ‘반응’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뭔가를 하는 AI를 만들어냈던 거야.

그리고 그게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시넵스 모듈’의 정체일 거고.

게다가 우린 YAS를 통해 동접자만 300만이 넘고 실제 유저는 수천만에 달하는 그 거대한 세계의 경제와 발전을 통제할 수 있는 AI 기술도 가지고 있지.

그 모든 정보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밖에 없잖아?

‘세계를 생성하고 관리할 수 있는 AI’.

개발자의 의도적인 개입 없이 AI의 힘으로만 구축된 완벽한 가상 세계는, 프로그래머인 네게 가장 완벽한 게임이 지향해야 할 도달점처럼 보였겠지.”

상혁의 설명이 끝나자 민준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역시 월드 클래스 기획자답네.

거기까지 읽을 줄은 몰랐는데?

맞아.

상혁이 네 말대로 내가 만들고 싶은 건 순수하게 AI가 플레이어를 위해서 창조한 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느낌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게임이야.

마치 트럭에 치이면 가게 되는 이 세계처럼, 플레이어의 취향에 맞춘 세계관과 배경을 가진 세계를 창조하고 플레이어에게 원하는 능력을 준 뒤 그 안에서 플레이어가 최대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전개를 창조해 제공해주는 게임.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게임’이니까.”

민준은 밝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상혁의 표정은 어두웠다.

민준이 말하는 게임에 대해 그 어떤 기획자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그이기에, 민준이 말하는 ‘궁극의 게임’이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능할까?”

“난 가능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생각해봐.

조금 전 너에게 말했듯, 게임은 기본적으로 ‘규칙’이 있어야 돌아갈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야.

그리고 우리 개발자들은, 그 ‘규칙’을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게이머들이 최대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고.

하지만 민준이 네가 말하는 형태의 게임은, 그 규칙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AI가 자동생성하는 게임이지.

그 말은, 사용자의 수에 제한이 없는 만큼 AI가 생성할 수 있는 규칙의 바리에이션도 무한대여야 한다는 거야.

말 그대로 게임 속 세계에서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싶은 사람과 연애를 즐기고 싶은 사람, 전장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과 레이싱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재미를 전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건 이미 샌드박스의 개념을 벗어난 스케일의 게임이 되는 거고.”

“YAS는 어느 정도 그 형태에 근접하지 않았나?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할 수 있잖아.

그리고 실제로 게임 내의 규칙을 AI가 자동 생성하고 있고.”

민준의 말대로, AI가 월드를 관리하는 YAS는 유저가 새롭게 창조한 아이템에 대한 사용 규칙을 AI가 설정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직 월드의 문명 수준이 화약계 병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면, 화약계열 아이템의 제조에 필수적인 아이템의 등장 여부를 AI가 판단하는 식으로.

그리고 유저가 생산 시스템을 통해 만든 물건이 시스템적으로 허용된 기능과 능력의 범주를 벗어난 물건일 때도, 해당 결과물의 사용 가능 여부를 AI가 판단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저의 ‘요청’에 의한 처리 여부를 판단하는 것뿐이지.

월드 하나를 통으로 생성하고 관리하는 건 아예 스케일이 다른 일이야.

예를 들어 그 혼돈조차도 판타지 배경의 YAS가 아닌 다른 장르의 월드를 관리해야 한다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을 내놓게 될 거라고.

게다가 아무리 완벽한 AI라도 이런 분야에서 인간을 따라잡을 순 없어.

인간이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순 있을지 몰라도.”

“생각보다 꽤 부정적인 의견이네?

어째서 불가능하다는 거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게임을 다 제작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리얼 엔진조차도 우리가 데이터를 넣지 않은 게임은 만들어낼 수 없지.

물론 아마추어 개발자도 쉽게 AAA급 게임을 만들 수 있게 하자는 목표로 개발된 엔진이 리얼엔진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 입력된 데이터에 기반한 게임에 한정된 이야기야.

실제로 KOH나 무한의 바다를 만들 때도 전례가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손을 엄청나게 많이 탔었고.

물론 기존의 게임 엔진을 사용했을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편한 방식으로 작업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개발자의 손을 타지 않는 건 아니야.

인간에겐 있지만 AI에게는 없는 것.

난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의지에서 나오는 창의력은 AI가 아직 따라잡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민준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앗싸라비아 깐따삐야아아아!!!”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칸쵸칸쵸! 오징어 땅콩! 자갈치! 딸기맛 뿌셔뿌셔!”

“너 미쳤냐?!”

민준이 당황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본 상혁은 다시 호흡을 고르고는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민준을 향해 말했다.

“지금 내가 한 것처럼, 인간은 앞 뒷 문맥에 상관없이 전혀 다른 대화를 상대를 놀라게 하고 싶다는 의도 하나만으로 내뱉을 수 있어.

그리고 이건 AI가 할 수 없는 것에 관해 설명하고자 하는 내 뇌의 의지가 절차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따라서 꺼낸 단어들이고.

민준이 네가 만든 AI라면 이런 개 뜬금없는 단어들을 대화 도중에 갑자기 꺼낼 수 있겠어?”

잠시 고민하던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으로 현재 설계된 AI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논리를 따라잡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런 돌아이같은 인간의 행동을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는 인식할 수 있겠지만 사용은 하지 않겠지.

좀 더 나은 설득 방법이 있는 이상 우선순위를 따라 가장 논리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우리가 아무리 데이터를 모아도 민준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유저가 원하는 어떠한 월드도 상상 그대로 창조하는 인공지능은 개발하기 어렵다는 거야.

예를 들어 어떤 유저가 ‘난 고양이 귀를 가진 미소녀들이 이집트 전성기 때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며 플레이어를 파라오처럼 섬기는 세계에서 놀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거야?

다른 게임의 데이터를 참고하려고 해도 레퍼런스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원하고 있다면?

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AI 성격 데이터의 밖에 있는, 정말 인간이라고 상상할 수도 없는 특이한 성격의 캐릭터를 히로인으로 원하고 있다면?

현재는 그런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리얼엔진을 사용하여 성격 데이터를 입력하게 하고 있지만, 일반 게이머들은 아무리 애정이 있더라도 1만 개가 넘는 상황 지문을 일일이 입력하며 원하는 성격을 구현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상혁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민준은 미소 짓는 얼굴로 그 모든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현재 기술 수준에서 인간의 사고를 완벽히 따라할 수 있는 강 인공지능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AI가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상혁이 네 말엔 나도 동의해.

그리고 그 한계를 안고 만들어진 AI가 만든 월드가, 사용자의 욕구를 100%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하고.

그런데 상혁아.

굳이 100%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어?”

“어?!”

유저가 원하는 세계를 100% 완벽하게 구현하여 그 안에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창조해주는 게임.

그것이 민준이 만들려는 ‘궁극의 게임’이라 생각했던 상혁은, 민준이 말한 ‘100% 만족하게 해줄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민준은 입을 떡 벌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상혁을 내버려 둔 채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게임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이상향’은, 상혁이 네가 말한 대로 어떤 월드든 창조할 수 있는 게임이 되어야 하는 게 맞아.

하지만 그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종의 목표 같은 거지, 지금 당장 발매 시점에서 만족해야 하는 허들 같은 게 아니라고.”

“그럼 어중간한 상태의 게임을 발매하겠다는 거야?”

“하나 묻자.

우리가 만든 KOH라는 게임이, 정말로 그 게임을 하는 게이머들의 욕구를 100% 만족하는 게임이야?”

“그거야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

게임은 종합 엔터테인먼트야.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져 장시간에 걸쳐 플레이되는 물건이라고.

세상 그 어떤 게임도 그 많은 유저들의 니즈를 100% 만족하게 하지는 못해.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만 로봇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혹은 KOH의 복잡한 나이츠 설계 시스템이 너무 헤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그 게임에 연애 요소는 불필요한 계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유저가 1000만 명 있다는 소리는, 반대로 말하면 욕구도 1000만개가 존재한다는 거니까.”

“그럼 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100% 충족시켜주지 않는 게임을 하는 건데?”

“그거야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니까···. 아!”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는 상혁을 보며, 민준이 미소 지었다.

“네가 말한 대로, 세상 어떤 게임도 100% 유저가 만족할 만한 게임을 제공하지는 못해.

스토리가 마음에 들지만, 분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혹은 잘 만들어진 퀘스트 라인에서 이 퀘스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던가, 혹은 근접 전투는 마음에 들지만, 마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던가.

간단한 예를 들면 ‘무한의 바다’만 해도 그래.

무한의 바다 유저들 중에도 분명 로봇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왜 무한의 바다에는 나이츠 같은 로봇이 나오지 않나요?’라고 하지는 않잖아?

굳이 우리 게임의 예를 들지 않아도, 베뎃스다 사의 올드 스크롤 시리즈만 봐도 그렇지.

탐리엘에서 해머펠로, 해머펠에서 모로윈드로, 그리고 모로윈드에서 시로딜로, 시로딜에서 스카이림으로.

매 시리즈마다 배경이 변하고 분위기도 변하지.

때때로 그 변화한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고 구 시리즈를 계속 플레이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새로 나온 세계를 즐겁게 탐험하면서 개발사가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고 있어.

그리고 그 한정된 경험이 다 끝나면, 이번엔 모드를 통해 또 새로운 세계를 직접 만들어가고.

물론 정말로 유저가 자신의 욕구를 100%만족하는 올드 스크롤의 세계를 원한다면, 그 유저는 모드 제작법을 익혀서 직접 모드를 만들어야 할 거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암살 플레이에 적합한 장비를 추가하는 모드라던가, 그 험악하게 생긴 악명 높은 외형의 NPC를 아름답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유저들은 많아.

굳이 100%가 아니어도, 80%, 아니, 50%정도만 충족시켜줘도 유저들은 충분히 즐거워할 거라는 말이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라.”

민준의 말을 곱씹던 상혁은 생각보다 괜찮은 물건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특정 영역이 추구하는 재미를 정해놓고 그 영역이 전달할 수 있는 극한까지 재미를 끌어올리는 것을 추구하던 지금까지의 PTW 게임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생성된 월드 자체의 완성도가 아닌 ‘월드 생성’ 그 자체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게임이 목적이라면 의외로 괜찮은 물건이 나올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상혁은 민준이 생각하는 게임이 자신이 파악한 게임과 같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민준에게 질문했다.

“좋아. 대충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건지 들어줘.

그러니까 민준이 네가 생각하는 ‘궁극의 게임’이라는 건, 유저가 원하는 세계를 AI가 대략적으로 파악해서 생성해주긴 하지만, 그 세계가 완벽하게 유저의 니즈를 100% 만족하는 게임은 아니라는 거지?”

“맞아. 굳이 따지면, 이 게임에서 생성되는 월드는 세계관에 엄청난 깊이가 있고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듯 행동하며 유저에게 드라마가 동반된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퀘스트 라인을 가진 월드가 아니야.

이건 그냥 양산형 라노베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찍어낸 듯한 판타지 월드를 만들어내는 게임이지.

거기엔 지금까지의 PTW가 만들었던 것처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캐릭터의 장렬한 희생이나 유저가 충격으로 입을 다물 수 없는 대단한 반전 같은 건 없을지 몰라.

하지만 그런 세계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가 충분히 반영된 세계라면, 유저는 충분히 즐거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무엇보다 그 게임에서, 유저가 걸어 다니게 될 세계는 다른 개발자의 의도가 반영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닌, 유저가 원해서 직접 창조해낸 ‘만들어낸 세계’가 될 테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양산형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만드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으로 동작하게 하기 위해 엄청난 개발력이 동원될 거고.

어쩌면 PTW의 전 개발자가 몇 년이상을 투자해야 완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최악의 경우 그 오랜 기간을 투자하고도 ‘아, 이건 안 되는 프로젝트구나.’하고 물러서야 하는 결과가 나올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지.

나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만 가지고 있을 뿐, 할 수 있다는 확신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게다가 UI와 UX는 거의 새로 설계해야 해.

현재의 리얼 엔진을 이용해서 월드나 장르를 생성하는 과정은, 다른 게임 엔진에서 게임 개발을 시작하는 과정보다는 훨씬 쉬운 편이지만, 일반 유저가 손대기엔 아직도 한없이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니까.

네가 지금 말하는 건, 유저가 원하기만 한다면 KOH같은 게임을 생성할 수도, 아니면 무한의 바다같은 게임을 생성할 수도, 아니면 길거리 농구 선수에서 NBA 파이널 MVP가 되는 과정을 그린 스포츠 게임이 만들 수도 있는 말 그대로 ‘게임을 만드는 게임’을 말하는 거니까.

그건 결과물의 완성도를 희생한다 하더라도, 현존하는 모든 오브젝트의 개념을 게임이 품고 있어야 하는 거대한 작업이 될 거야.”

그렇게 말한 상혁은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입을 다물고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X친, 애당초 네가 언젠가 게임을 만들 때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그게 보통 게임이 아닐 거라는 예상은 했었지만, 게임을 만드는 게임이라니.

미친 건가?

특정 장르나 세계관 하나에 집중된 게임을 만드는 데도 엄청난 리소스와 개발력이 투입되는데, 아무 월드나 다 만들 수 있는 게임이라니, 게다가 그렇게 완성한다 하더라도 메이저 장르의 월드를 제외한 나머지 월드의 생성 기능은 태반이 버려지게 될 거라고.

그리고 그 범용성을 위해 퀄리티도 포기해야 할 거고.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해서 만들어낸 게임이, 결국 만들어내는 건 적당히 유저의 취향을 만족하는 양산형 라노베 같은 세계라고?

미쳤어.

제정신이 아니야.

제정신을 가진 개발사라면 아무도 이딴 프로젝트에 개발력을 투자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상혁은 자신의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상혁의 어깨에 한쪽 손을 올린 채, 하얀 이를 드러내며 다른 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민준의 모습이 있었다.

“말로는 미친 짓이라고 하면서,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뭔데?”

“누가? 내가?”

상혁은 자신의 입가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를 만지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와중에도, 상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나도 알아.

이게 미친 짓이라는 거.

하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어?

어쩌면 전 세계 그 어떤 개발자들도 성공하지 못한, ‘수명이 무한한 게임’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거잖아.

과거의 게임들은 언제나 당시의 하드웨어 스펙이 주는 한계에 갇혀 시대가 갈수록 떨어지는 게임성을 보여주고 있었지.

물론 모드를 깔아서 해상도를 강제로 올리거나, 캐릭터 모션을 개선하는 식으로 게임을 최신 게임처럼 바꿀 수 있다 하더라도, 게임이 개발된 시대에 걸맞은 ‘근본’ 자체는 변하지 않아.

아무리 모드를 깔아도, 아무리 캐릭터를 추가해도 그 게임 자체가 가진 메인 플로우는 절대 변하지 않지.

모드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게임의 그래픽이나 시스템같은 사소한 부분일 뿐이야.

반면에 매번 새 게임을 할 때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월드를 만들어내는 게임이 있다면, 그건 말 그대로 모든 게이머들에게 현실보다 더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이상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 안에서, 유저는 치트급 능력을 가진 용사가 되거나, 전 세계에서 3점 슛을 가장 잘 쏘는 농구 선수가 되거나, 아니면 2차 대전의 전장 한복판에서 티거 전차를 몰고 연합군의 셔먼을 박살내는 전차장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모두가 2차 대전 시절의 무기를 쓰는 세계 속에서 혼자 유일하게 마법을 날리며 전차를 박살 내는 세계 유일의 마법사가 되거나.

현재 개발 완료된 커뮤니케이션 엔진은, 그런 어떤 상황에도 게임 속 NPC들이 상황에 맞는 완벽한 연기와 대사를 펼칠 수 있도록 개발되어 있어.

마법이 없는 세계에서라면 마법을 처음 본 사람의 놀라움을 표현하고, 마법이 일상적인 세계라면 마법의 정도를 보고 무시하거나 경악하는 식으로 유저의 행동에 반응하지.

그들 하나하나가, 수천수만 가지의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베테랑 배우의 역할을 맡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애드립의 장인들이 활동할 무대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게임 시스템을 제작하는 거고.”

“넌 네가 네 입으로 그런 말을 하면서 그 말이 터무니없이 황당한 말이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5차 NE 컨벤션 전에, 네가 날 찾아와서 ‘실제로 움직이는 15미터 짜리 로봇을 만들 테니까 그 로봇의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라고 했을 때, 나도 너와 비슷한 기분이었어.

그리고 그 계획을 그 시점에 들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네 계획을 듣고 이렇게 말했을 거야.

‘그딴 미친 짓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아!’라고.

하지만 우린 했잖아?”

“했지.”

“굳이 그런 예를 들지 않아도,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일은 모두 일반인이 보기엔 전부 미친 짓밖에 없었어.

PTW는 그 광기 속에서 세워진 회사라고.

물론 때때로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지.

어떨 때는 네 요구조건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확 때려치우고 구글 같은 데나 입사할까.’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네가 입사한다고 하면 역대 프로그래머 몸값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겠는데?”

“그렇지.

지금보다 훨씬 편한 직장에서, 훨씬 쉬운 일을 하면서, 훨씬 느긋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거야.

실제로 MS와 협업한 이후로 헤드헌터한테 연락을 받지 않은 달을 꼽는게 더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내가 이 모든 미친 짓을 받아들이면서 PTW에 남은 데는 이유가 있어.”

민준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상혁은 상체를 벌떡 세우며 가슴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당당함이 넘치는 말투로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민준에게 외쳤다.

“그야 PTW에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마성의 개발자, 나 이상혁이 있어서가 아닌가?”

“마성은 X친, 몇 년째 전 세계에서 가장 미친 기획자 랭킹 1위를 놓친 적이 없는 공식 돌아이가 뭐래?”

“뭐?! 그런 랭킹이 있었어?”

“내가 만든 랭킹이긴 하지만, 매년 국제 투표도 받고 있고 수상도 하고 있지.”

“난 수상 받은 기억이 없는데?”

“투표는 항상 온라인으로 하고 있고 네가 수상한 상패는 항상 내가 대신 받고 있거든.

내 방에 가면 네가 2012년부터 받은 영광의 상패가 주르륵 걸려 있을 거야.

물론 2020년 우승자는 안 좋은 의미로 윌 드럭만이 굉장히 무섭게 치고 올라오긴 했지만, 결국 우승은 네가 하게 되었지.

기뻐해라.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1년 연속 디펜딩 챔피언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딴 자리 필요 없는데···.”

“뭐, 아무튼. 사실 그건 네가 은퇴할 때 선물로 주려고 준비한 건데, 오늘 이렇게 밝혔으니 나중에 전달하도록 할게.

영광의 자리라고 생각해.

전 세계에서 가장 미친 기획자란 소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기발한 기획자란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그 윌 드럭만이랑 같은 우승후보로 거론된 시점에서 그 상의 인상은 이미 최악인데.”

“어쩌겠어. 누구도 그 새끼가 전작을 그렇게 전설의 명작으로 만들어놓고, 후속작을 그따위로 말아먹을 미친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으니까.

너의 수상이 좋은 의미에서의 미쳤다는 의미라면, 그놈이 후보에 올라온 건 진짜 정신병자 같은 놈이라는 의미인 거지.”

“그래. 존재조차 알지도 못하던 상을 11년 연속 수상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마.”

“아무튼, 네 화려한 수상 경력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린 언제나 광기의 한 가운데를 걸어오고 있었어.

그리고 그 광기가,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장본인이고.

정말 한순간만 실패했어도 회사 기둥뿌리가 흔들릴만한 도박을 몇 번이고 시도하면서, 매 순간 우리는 우리가 그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게임을 만들었지.

그리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 앞에 주어진 과제가 제아무리 힘들고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라 하더라도, 그걸 뚫고 또 한 번의 ‘미친 짓’을 성공하는 게, 바로 이상혁이 이끄는 PTW라는 회사이니까.”

“하지만 보통 그 미친 짓은 성공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명확하게 잡혀있는 상황에서 진행된 미친 짓이지.

지금처럼 어떤 게임이 나올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개발한 적은 없다고.

잘 되면 네 말대로 수명이 무제한인 전설의 갓겜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별로 즐겁지도 않은 쓰레기 같은 양산형 월드만 생성되는 개똥겜이 나올 수도 있어.”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확신이 담긴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민준에게 되물었다.

“어째서?”

“내가 아는 기획자 이상혁은, 자신이 개발하는 게임이 절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녀석이니까.

말했지만 이건 내가 생각하는 ‘궁극의 게임’이고, 난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 지원을 아낌없이 퍼부을 거야.

그리고 나와 뜻을 함께하는 50명의 스컹크 워크스 구성원들도, 1960년대에 인간을 달로 쏘아낸 달 탐사 프로젝트에 비견될 정도의 기술적 지원을 프로젝트에 쏟아 부을 거고.

이 자리에서 약속할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개발팀에서 제시하는 요구사항에 대해서 그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어떠한 변명도 나오지 않게 하겠어.

돌로 금을 만들어달라면 금을 만들어주고, 팥으로 메주를 쑤라면 간장에 고추장까지 담가서 넘겨주지.

유저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이 게임이라면, 스컹크 웍스는 그 게임의 완성을 위해 개발자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도구가 되어주겠어.

그러니 지금, 예전에 약속했던 오래된 약속의 이행을 너에게 부탁할게.

나와 같이 게임을 만들어줄래?”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민준을 향해 말했다.

“좋아, 하지만 조건을 받아들이기 전에,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부탁이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제발 마치 프로포즈라도 하는 것 같은 말투로 물어보는 건 그만둬주라.”

“젠장, 너라면 분위기에 휩쓸려서 ‘네, 좋아요.’라고 한쪽 손을 내밀 것 같았다고.”

“내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성격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쪽 성향인 건 아니니까.

난 굳이 따지면 게이머 성애자지.

세상에서 날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미소녀의 고백도 아니고 미친 듯이 올라가는 회사의 매출도 아니야.

내가 만든 게임을 플레이어들이 하면서 수없이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

그게 날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니까.

그리고 네가 말한 게임은, 제대로 완성되면 분명 수많은 게이머를 행복사로 이끌 수 있는 갓겜이 될 테고.”

“그럼···.”

“이 정도로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할게. 한다고. 이 미친 짓에 나도 동참한다고.”

“으아아아아!!!”

기뻐서 소리 지르는 민준을 보며, 상혁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앞에서 기뻐 소리 지르는 민준의 모습이, 마치 회귀 직후 민준이 합류를 결정했을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은 오랜만에 상혁에게 잊고 있던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게 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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