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0. 정말 멋진 세상 >
세계 최초의 풀 다이브 MMORPG를 넘어, 이제는 세계 최고의 MMORPG가 된 ‘너의 모험 이야기(Your Adventure Story)’, 속칭 ‘YAS’는 이미 그 게임에 빠진 게이머들에게는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제2의 세계로 불릴 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현실은 잠을 자기 위해 존재하는 곳.’
‘내 진정한 삶은 YAS세계 안에 있다.’
‘YAS를 시작한 이후로 현실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YAS에 로그인 한 시간이 더 길어짐.’
‘심지어 많은 유저들은 잠도 PRD에 매달린 채로 그대로 잠든다.
그들이 PRD에서 내려올 때는 오로지 화장실에 갈 때와 밥을 먹을 때, 그리고 물을 마실 때와 씻을 때뿐.
물론 나도 그렇고.
그런데 역으로 현실에서 먹고 싶은 거 다 챙겨먹고 살 때보다 지금이 더 건강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생활비야 이미 정식 유료화가 되기 전임에도 시세가 하늘을 뚫고 있는 YAS 재화를 현거래 시스템을 이용하면 금방 벌 수 있고.’
이처럼 현실의 삶을 포기하고 게임 속 세계에서의 삶을 선택하는 유저들이 넘쳐나는 YAS의 세계에, 상혁은 오랜만에 남들이 알아볼 수 없는 개인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YAS의 월드에 오랜만에 접속한 상혁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압도적으로 변한 수도의 모습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진짜 엄청나게 변했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삶의 변화가 느리던 과거에 있던 말이고, 지금은 강산이 변하는 데 2년이 채 걸리지 않는 시대.
그러나 광산 크래프트를 하며 아무 치트도 없는 야생에서 모래 수십만 개를 캐가며 사막을 밀어버리는 인간 게이머에게, 중장비도 없이 무지막지한 능력을 스킬의 힘으로 발휘할 수 있는 YAS의 세계는 몇 달이면 산을 깎고 몇 주 만에 집을 지을 수 있는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수도에 그런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금은 거의 강남 부동산 수준으로 올라버린 수도 토지의 권리증서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러나 상혁의 가슴을 무엇보다 벅차게 만든 것은, 이 도시를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 하나하나가 전부 유저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길가의 가로등 하나, 화단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조차 유저들이 직접 쇠를 두드리고 물을 주며 만들어낸 유저들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즐거운 기분으로 눈에 보이는 건물들을 제작자가 어떤 기분으로 만들었을지 상상하며 수도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관청에서 발주한 퀘스트를 받아 길가의 화초에 물을 주는 정원사 직업을 가진 유저와,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채 치안 유지를 위해 눈을 번득이고 있는 자경단 유저들, 그리고 어떻게든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소리 높여 상인과 흥정하는 모험가 유저들을 바라보며 민준과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격이 다른 스테이터스’라는 이름을 가진, 수도 내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고급 주점을 향해.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게 보이는 그 주점은, 비싸 보이는 실내 장식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즐기거나 음료를 마시러 온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기억으론 이곳은 유저가 만들어서 운영하는 주점 중에 가장 큰 주점이었지?’
요리 스킬로만 3티어를 바라보고 있다는 4티어 요리사 유저 ‘빡종원’이 운영하는 이 주점은, 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반 플레이어만 13명을 데리고 운영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이곳의 종업원들은 뛰어난 외모와 밝은 목소리로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어?! 처음 뵙는 분이네요? 신규 유저라면 여기는 조금 비싼데, 메뉴판을 먼저 확인시켜 드릴까요?”
이 게임의 개발자이자 창조자인 자신을 보고 뉴비 취급하는 귀여운 종업원을 보며 상혁은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곧 지금 접속한 자신의 캐릭터가 게임에서 사용하는 메인 캐릭터가 아닌 부계정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깨닫고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약속 때문에 온 겁니다. 초대받은 거니 음식값은 그쪽이 내겠죠.”
“오! YAS는 처음이신 것 같은데, 첫 시작을 이렇게 좋은 음식점에서 하게 되셨다니 행운이네요.
아마 초대하신 분은 손님에게 엄청난 호감이 있는 게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그야 여기는 게임 속 음식점이긴 하지만 음식 가격이 신라호텔 레스토랑보다 비싼 곳이니까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손님의 행색을 보고 가격에 대해 안내드리는 것은 실례되는 행동이지만, 여기서는 묵인되고 있습니다.
가끔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시는 분들이 초보 장비를 차고 와서 식사하려다가 낭패를 보곤 하거든요.”
“그럼 무전취식도 꽤 있겠네요?
아니면 음식값 때문에 난동을 부린다던가?”
“여긴 높은 레벨 분들이 매일같이 애용하는 단골집이라 난동부리는 분들은 없습니다.
그리고 운영사인 PTW에서는 가상 세계에서의 성희롱적 행동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요.
계정이 정지되는 순간 3천만 원짜리 PRD가 고철 덩어리가 되는데, 함부로 나쁜 장난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상혁은 기왕 초보 취급을 받은 김에 조금만 더 그녀의 설명에 어울리기로 결심하고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그런데 PRD는 기본적으로 압력이나 온도 같은 감각은 전달해주지만, 맛은 전달되지 않지 않나요?
그런데 왜 레스토랑이 이렇게 인기인 거죠?”
그것은 종업원으로 일하는 그녀가 YAS의 시스템에 대해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한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상혁이 정말로 초보 플레이어라고 생각했는지 밝은 얼굴로 상혁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계신 손님들이 드시는 건, 굳이 따지면 맛을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능력치를 위해 먹는 음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YAS에서 능력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음식으로 인한 성장 가속 버프인데, 저 레벨일 때야 관청에서 구호 용품으로 나눠주는 딱딱한 흑빵만 먹어도 끼니만 제때 챙겨 먹으면 능력치가 잘 오르지만, 고레벨 유저가 되면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격이 있는 음식을 먹어야 버프를 유지할 수 있거든요.
혹시 한국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악명 높은 리○지의 ‘아인○사드 시스템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좀 알죠. 실제 유저는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종량제 같은 개념이라서 고레벨이 될수록 소모량이 증가하는 경험치 버프 같은 거였죠?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몹을 사냥할수록 소모 속도가 빨라져서, 고레벨 유저일수록 돈을 더 쓰도록 강제하는 시스템인 걸로 아는데.”
“그거랑 비슷한 시스템이 YAS에도 있습니다.
다만 리○지의 그것과 다른 점이라면, 리○지에서는 게임 개발사에 돈을 내고 경험치 버프를 유지하는 반면에, YAS에서는 다른 유저에게 돈을 주고 음식을 사서 경험치 버프를 유지한다는 점이 다른 거죠.
실제로 이 주점에서 하루에 소모되는 음식 재료의 양과 값어치는 엄청난 수준이에요.
하루에만 거의 현실 가치로 수십억 원어치의 고레벨 몬스터의 고기와 희귀 지역에서만 채취되는 향신료 등이 거래되죠.
초고레벨 농부 유저들이 키운 특별한 작물들도 들어가고요.
그런 작물들은 키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여신의 축복을 필요로 하는데, 그 정도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신전에 무지막지한 양의 제물을 바쳐야 하죠.
농부 유저분들은 그 제물을 모험가 유저분들게 구매하죠.
그리고 그렇게 해서 키워낸 고레벨 작물은 이렇게 저희 같은 고급 음식점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사 간답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고 강해진 모험가분들은, 또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고 유물을 모아 다른 유저들에게 팔고요.
결국, 이 모든 경제가 원활히 굴러가는 이유가 바로 YAS특유의 능력치 시스템에 있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제 월급도 거기서 나오지요.”
“월급은 인게임 재화로 받습니까?”
“원하면 사장님이 현찰로도 주시는데, 저는 인게임 재화의 일종인 블레스 금화로 받고 있어요.
이 수도에서 통용되는 표준 화폐의 일종이죠.”
“왜 현찰로 안 받고 굳이 게임 재화로?”
“그야 게임이 오픈된 이후로 블레스 금화의 가치가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으니까요.
거의 매달 거의 1% 이상씩 오르고 있는데, 어차피 당장 쓸 게 아니라면 게임 속 금화로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매매상한테 현 거래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해요.
그걸로 벌리는 돈도 꽤 쏠쏠한 편이니까요.”
거기까지 들은 상혁은 웃으며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는 품 안을 뒤져 팁을 주려다 부계정 인벤토리에 말라비틀어진 흑빵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팁을 드리고 싶은데 이 계정에는 아무것도 없네요.
나중에 일행이 오면 그 녀석한테 뜯어서 두둑이 드리겠습니다.”
“그럼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그럼 식사는 어디에서 하시겠어요?”
“혹시 프라이빗 룸이 남아 있습니까?”
“등급에 따라 이용 가격이 다른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좀 싼 등급의 개인실은 이따금 고티어 도적 유저에게 대화가 유출되기도 하거든요.”
“그럼 제일 비싼 방으로.”
“어머, 지인분이 꽤 레벨이 높으신가 봐요?
그럼 4서클 보안 마법으로 보호되는 개인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벨이 있는데, 벨을 누르지 않으시면 종업원인 저희도 안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벨을 눌러 주세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발랄한 걸음으로 방을 안내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방에서 잠시 메뉴판을 보며 기다리자, 상혁과 마찬가지로 초보자 복장을 입고 있는 민준이 아까 그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왔다.
“왔냐? 근데 너도 부계정이네?”
“난 너랑 다르게 운영자 계정 말고는 별도 계정이 없거든.
내 운영자 계정은 너무 유명해졌고.”
주로 버그 테스트를 위해 사용되는 민준의 운영자 캐릭터는, YAS유저들에겐 일종의 밈이 되어 있는 캐릭터라 할 수 있었다.
그 밈은 누군가가 편집해서 올린 YAS의 버그 관련 영상 모음집을 통해 유명해진 밈이었는데, 촬영한 영상 클립 중 상당수의 장면 속에 검은 로브를 입은 남자의 모습이 찍히면서 유명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등장하고 나면 언제나 잘 먹히던 버그가 사라진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 캐릭터가 민준의 운영자 계정이라는 소문이 돈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오늘 민준은, 만든 지 얼마 안 된 본인의 계정으로 접속하여 상혁을 만나러 왔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문제는, 상혁이나 민준 모두 YAS내에서는 알거지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 방 꽤 비쌀텐데.”
“난 니가 본계정으로 올 줄 알았지.”
“민준아, 네가 초대한 거잖아.
난 당연히 네가 한턱 쏘려는 건 줄 알았다고.”
“어쩐지 방으로 안내할 때 종업원이 내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라니···.”
“일행이 오면 그 일행이 돈을 낼 거라고 했으니까, 그 일행이 초보자 그 자체인 모습일 줄은 몰랐던 거겠지.”
그렇게 말한 상혁은 시스템 메뉴를 호출하여 주소록을 열었다.
그리고는 퍼스티스트 프로젝트에 서브 파일럿으로 참가 중인 서지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위험. 현재 민준이랑 나랑 YAS 시작 도시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알거지인 상태로 감금되어 있음.
살려줘.]
그렇게 문자를 보낸 상혁은 자세를 고쳐 민준을 향해 말했다.
어차피 지수야 YAS 안에서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유저인 만큼 돈은 썩어 넘칠 만큼 있을 것이고, 굳이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민준이 자신을 보자고 한 이유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왜 하필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지금 내가 대전에 있어서 만나기 곤란한 거라면, 버츄얼 스튜디오에서 만나도 되잖아?”
그러자 민준은 미소를 지으며 상혁의 질문에 답했다.
“뭐, 오늘 할 이야기와 관련이 있어서 일부러 YAS 안에서 만나자고 한 거니까 그 이유는 이야기하다 보면 천천히 알게 될 거야.
그것보다 음식점의 개인실을 빌려놓고 텅 빈 테이블 앞에서 이야기하려니 좀 분위기가 그렇네.
일단 음식 좀 주문 해놓을까?”
“맛도 안 느껴지는데 굳이···. 게다가 이 초보자 계정에 뭐 성장치 부스트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뭐 어때. 돈은 지수가 내줄 텐데.
일단 좀 시켜보자고.
YAS의 세계는 정말 많이 들어와 봤지만, 유저들이 어떤 기분으로 가상의 음식을 먹고 어떤 음료를 먹는지는 알지 못했으니까.”
잠시 후, 주문한 음식들이 산더미같이 테이블 위에 차려지자, 민준은 종업원에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방에서 내보냈다.
그리고는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더니 놀란 눈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이거 능력치를 먹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맛은 느껴지지 않지만, 확실히 구별은 되는데?”
민준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현실의 인간이 음식의 맛을 보고 음식에 대해 감탄한다면, YAS안의 유저는 음식을 먹고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세지를 보고 음식의 가치를 판별하니까.
그것은 맛을 보지 않아도 자신이 먹은 음식의 가치를 충분히 전달해주는 느낌의 메시지들이었다.
[방금 마신 음료에서 장인이 선별한 좋은 쉐리 오크통에서 오랜 기간 숙성된 깊은 향이 느껴집니다.
우아하고 섬세한 이탄 향과 과일의 풍미, 꿀의 달콤함과 꽃밭을 거니는 듯한 향기가 당신의 혀끝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습니다.]
<14초 동안 붉은 고기 계열 요리 아이템의 효과가 325% 증가합니다.>
<음료에 들어간 알코올로 인해 20분에 걸쳐 체온이 서서히 올라갑니다.>
“어, 진짜로 몸이 좀 따뜻해지는 기분도 드네?”
“원래 그런 식이니까.
음료 아이템은 짧은 시간 동안 궁합에 맞는 요리의 능력치를 올려주기 때문에 요리를 먹으며 중간에 곁들여 먹기에 좋게 설계되어 있고, 알콜이 들어간 음료류는 마시면 PRS의 온도 전달 장치가 몸을 약간 덥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
그리고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몸을 가누기 어려워지는 기능도 있고.
거기에 엄청 취하면 내가 한 말이 전부 혀가 꼬부라진 말투로 들리게 하는 기능도 있지.”
“진짜 맛이 안 느껴지는 페널티를 극복하려고 영혼을 갈아넣었구만.
메시지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네.
왜 이 비싼 돈을 주고 여기까지 와서 좋은 음식을 먹는 지 알 것 같다.”
“자고로 게이머란 인종은 화면 구석 가득 떠 있는 버프 아이콘을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법이니까.”
상혁도 웃으며 음료를 한잔 홀짝이는 것을 보며, 민준이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최근 프로젝트 퍼스티스트 덕에 대전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는 상혁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어때? KOH는? 잘 될 것 같아?”
“잘 될 것 같아? 가 아니라 이미 대박 난 거지 그 정도면.
전 세계 굴지의 대기업에서 프로팀 창설을 선언했고 상위 랭커들은 하나둘씩 자기 팀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게다가 드라마 시청률도 역대 시청률 기록을 다 깨부수는 중이고.
아마 1회 월드 파이널은 게임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프로 리그가 될 걸?”
“즐거운 축제가 되겠네.”
“뭐, 그에 따른 부수적인 업무 때문에 바빠서 미칠 것 같긴 하지만.
김기열 교수님은 나이츠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를 차리고 싶다고 하시더라고.”
“지금 나이츠 생산은 거의 PTW 본사에서 밀어 넣는 돈으로 진행되는 거 아냐?
그걸 독립시키면 회사 운영이 되려나?”
“실물 나이츠를 생산하면서 로봇 기술 관련 특허가 어마어마하게 쌓였으니까.
그걸로 산업용 로봇을 생산해서 수지를 맞추는 거지.
거기에 민수용 전용기의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을 보태면, 앞으로의 나이츠 개발에 PTW의 도움을 최대한 덜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더라고.
실제로 그쪽 부서에서 쓰는 돈이 어마어마하니까, 그 기열 교수님조차 조금은 부담을 느낀 거겠지.”
“그래서, 시켜주려고?”
“아니. 안타깝게도 교수님은 100% 순수한 과학자에 가깝지, 경영자는 아니니까.
괜히 분사했다가 눈에 안 보이는 데서 사고라도 터지면 이쪽에서 수습하기가 더 곤란해 질 수 있어.
대신 분사가 아니라 확장의 형태로 나이츠 개발 파트의 규모를 확대해 주기로 했지.
개중엔 재미있는 아이디어도 있었으니까.”
“재미있는 아이디어?”
“마침 YAS랑도 관련 있는 이야기이긴 하니 지금 이야기하는 게 적절하겠네.
민준아. 혹시 YAS가 처음 오픈 배타를 시작할 때 내가 공지했었던 내용, 기억하고 있어?”
“그때 꺼낸 이야기가 어마무시하게 많아서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임펙트 있는 이야기는 회사 측에서 게임 머니를 현금을 주고 회수한다는 이야기였지.
근데 그게 지금 국내법상으로는 불법이라 아직도 오픈베타가 진행 중인 거고.”
“어 맞아. 대한민국에서는 사실 어떤 형태로든 게임 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거든.
대신 유저간의 아이템 거래는 허용하고 있고.
문제는 우리가 하려는 것도 현금화의 일종이라, 대한민국 게임 법상으로는 절대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교수님의 아이디어는, 그걸 어떻게든 해보자는 거고.”
“어떻게?”
“지금 나이츠 제작 공정의 상당 부분을 워커 봇이 처리하고 있는 건 알지?”
상혁의 말을 들은 민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개발될 때만 해도 무한의 바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람 대신 대포알을 대신 맞을 용도로 만들어진 로봇인 ‘스턴트 봇’은, 세계 최고의 로봇 과학자인 김기열 교수의 열정적인 개조 아래 업무 능력이 극적으로 향상된 ‘워커 봇’으로 다시 태어났고, 상혁은 그 로봇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대전에 있는 아레나 스타디움의 건설에 사용하거나 나이츠 생산 라인에 투입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워커 봇 자체의 스펙은 인간보다 나은 편이지.
일단 24시간 잠 안 자고 일할 수 있고, 반복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절대 실수를 하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일도 없어.
로봇이니까.
물론 복잡한 업무 환경 속에서 인간 같은 창의력과 판단력을 발휘할 순 없지만, 택배 물류 처리나 금속 가공 공정 같은 단순 업무 분야에선 이미 인간을 뛰어넘는 스펙을 자랑하고 있지.
들 수 있는 무게도 200kg이 넘고.”
“그래서?”
“교수님이 그 로봇들을 이번에 시험 삼아서 테슬러에서 새로 런칭한 PRD 생산 전용의 기가 펙토리에 투입했거든.
그리고 그 결과를 본 일런 모스크 씨에게 이런 답변을 받았지.
‘이런 스펙의 직원이라면 한 명당 연봉 1억을 주더라도 쓰고 싶다.’
거기서 교수님이 아이디어를 낸 거야.
로봇을 아예 파는 게 아니라, 대기업에 임대형식으로 빌려주고 원래 사람이 받아야 할 인건비를 대신 받는 거지.
대신 로봇이 일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비 이슈라던가 새 작업에 필요한 운영 프로그램은 이쪽에서 개발하는 조건으로.”
“흠···. 재밌네. 확실히 워커봇의 스펙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고.
게다가 워커봇만 일하는 공장이라면 비싼 비용을 들여서 에어컨을 돌리거나 식당을 운영할 필요도 없어지겠네.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기업에서는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오도록 원하겠는데?”
“그렇겠지. 우린 그쪽에 사람 대신 일할 수 있는 로봇을 파견하고, 그쪽에서는 원래 직원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를 우리 쪽에 지급하는 거야.
장비 대금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게 아닌, 지속적인 이용을 대가로 계속 돈을 내는 구조인 거지.
그 사업 모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라면···.”
그러자 상혁의 표정을 본 민준이 한숨을 쉬며 상혁에게 말했다.
“실업자 문제겠군.”
“아마존 직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류센터 직원은 숫자로 따지면 거의 120만명이 넘어.
그 업무를 로봇이 전부 처리한다는 건, 엄청나게 많은 대량의 실업자를 만드는 일이라는 거지.
그리고 가장 큰 문제인데, 실업자는 게임을 사지 않아.
물건도 살 수 없고.”
“그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야?”
“간단해. 아마존 같은 기업이 워커봇을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돈을, 우리가 YAS 유저에게 지급하는 거지.
예를 들어 워커봇 한 대가 1년에 아마존에서 받는 비용이 1억이라고 가정해볼게.
우린 그 1년 수익 1억을 100단위로 쪼개서 개당 100만 원짜리 지분으로 바꿔.
그 지분 1개는 1년에 100 만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지분이지.
우리가 그걸 YAS유저에게 게임 머니를 회수하면서 대가로 지불하면, 게임 내의 재화를 효율적으로 태울 수 있지.
반대로 게임 머니를 우리에게 팔고 지분을 받은 유저는 아마존으로부터 현금을 얻게 되는 거고.
결과적으로 아마존에서 100대의 로봇이 일하면 YAS 안에서 아마존의 월급을 대신 받는 100명의 고용인이 생기는 거야.
말 그대로, 게임만 하면서도 돈을 버는 사람이 되는 거지.”
“실제로 돈을 내는 주체는 로봇을 빌려 쓰고 있는 아마존이니까 게임 머니의 현금화가 아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그렇게 되는 거지.”
“흠···. 게이머들에겐 매우 이상적인 상황이겠군.
게임 화폐의 가치가 항상 보장된 현금 가치를 가지게 될 테니까.
게다가 게임 머니의 가치가 너무 올라가면, 반대로 로봇 지분의 가격이 내려갈 테고, 게임 머니의 가치가 너무 내려가면 같은 로봇 지분을 구매하더라도 더 많은 게임 머니를 내고 지분을 구매하게 되겠네.
어떻게 보면 회귀 전에 있었던 스테이블 코인이랑 개념이 비슷한 것 같은데?”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다만 민준이 네가 기억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가치한 코인을 가지고 투기 자금을 모아 돈 장난하는 물건이고, 이건 실제로 노동과 재화가 발생하는 정상적인 사업이라는 게 다르지만.
물론 대한민국 법이 이런 우회법까지 막는다면 그때는 답이 없지만, 만약 이 방식으로 런칭이 가능하다면 전 세계의 게임 시장은 재미있는 형태로 굴러가게 될 거야.
세계 최초로 고정된 현금 가치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가상화폐가 생기는 거니까.
그리고 그 화폐는 일종의 통합 화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겠지.
다른 게임에서 번 재화를 YAS의 재화로 교환한 다음 거래하거나, 혹은 YAS에서 번 재화를 손쉽게 다른 게임의 재화로 바꾸는 식으로.
말 그대로 VRMMMORPG계의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지.
이 계획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거야.
전 세계에 말 그대로 게임만 하면서 인생을 즐기는 수백 수천만의 게이머를 만드는 것.
그리고 원래 그들이 고통받으면서 해야 했던 힘든 업무들은 로봇이 대신 하게 되는 거고.”
상혁의 설명을 들은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던졌다.
“그럼 그 과정에서 PTW는 뭘 얻는데?”
이 계획에서, 대기업은 병에 걸리지 않고 24시간 일할 수 있는 뛰어난 로봇 직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게이머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 대신 기업에서 일을 해주는 로봇의 임금을 대신 받아갈 수 있는 권리, 즉 현금을 얻게 되고.
그러나 PTW 입장에서는, 그런 형태의 비즈니스가 이상적인 형태라고 보기 어려웠다.
만약 대기업에서 받게 될 막대한 인건비를 게이머들에게 지불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PTW는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상혁은 그런 민준의 지적을 들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이렇게 답했다.
“민준아. 일단 게임 회사가 있으려면, 그 전에 게이머가 존재해야 해.”
상혁이 말했다.
“우리 같은 게임 회사는 끊임없이 새 게임을 만들어서 게이머들에게 제공하지.
그리고 게이머들은 자신의 직업을 통해 번 돈으로 그 게임들을 구매해서 플레이하고.
만약 우리가 만든 워커 봇으로 인해 200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긴다면, 우린 2000만 명의 잠재 고객을 잃게 되는 거야.”
“하지만 그 고객들이 벌어다 줄 돈보다 워커봇 임대로 벌리는 돈이 더 많을 텐데?”
“그 돈으로 게임을 만들어도 그 게임을 사줄 게이머가 없다면 그건 의미가 없는 일이지.
우리가 뭐 언제는 돈 벌려고 게임 만들었냐?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가 전 세계에서 돈 제일 잘 버는 회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았지.
왜냐면 우리에겐 우리가 만들 게임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플레이 해줄 게이머의 존재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교수님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우린 YAS를 통해 1년에 몇천만 원씩 벌어가는 수천만의 유저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같은 시스템을, 우리가 앞으로 런칭 할 다른 VRMMORPG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메타버스’는, 엄청난 규모의 잠재 가치를 가진 시장이 되겠지.
그건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야.
적어도 너와 내가 만든 PTW라는 회사에 가장 소중한 존재는, 우리가 만든 게임에 수천만 원을 내는 극소수의 흑우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게임을 진정으로 즐거운 기분으로 매일같이 플레이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수천만이 넘는 게이머들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말한 상혁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현실의 상혁이 지은 미소가 아닌 상혁이 만든 아바타가 지은 미소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그가 웃을 때 느껴지는 것과 똑같은 따스함을 담고 있는 미소를.
그것은 개발자가 게이머란 존재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애정 그 자체가 담겨 있는 미소였다.
“말 그대로 게임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란, 정말 멋진 세상일 것 같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목소리엔, 그가 생각하는 게이머들의 천국(Gamers' utopia)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확실하게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