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66화 (467/485)

466. 첫 번째 사명

독도함에서 12대의 나이트가 일제히 독도 심해로 뛰어내리며 시작된 수중전(水中戰).

AR로 진행되는 혈투의 현장은 현장에서 볼 때는 푸른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딥 다이버를 통해 보이는 영상은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퍼어어엉!! 촤아아아아악!!-

마치 항공기가 하늘을 가를 때 생기는 비행운처럼 수면 속을 가르는 수십 줄기의 기다란 궤적.

수중에서 폭발이 일어났을 때 발생하는 ‘버블 제트’와 충격파.

폭파의 파장이 수면 위로 전달될 때마다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 높이까지 터져 나오는 거대한 물기둥.

15m 크기의 거대한 기체가 유조선보다 거대한 800m 길이의 몬스터에게 끌려가며 생기는 수중 궤적.

그것은 동해 앞바다의 생태계 자체가 걱정될 정도로 격렬하고 화려한 전투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물리 현상 시뮬레이션 가운데서도 가장 리소스를 극심하게 잡아먹는 ‘실시간 유체 역학 시뮬레이션’을 수행해야 했던 PTW 렌더링 센터는 상상을 초월한 연산량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X친. 본사 지하에 있는 렌더링 센터랑 대전 PTW 엑스포 지하에 있는 렌더링 센터의 연산 능력을 합치면 아마존 클라우드 서버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연산 능력이 나오는데.

그걸 다 몰빵해도 간당간당할 정도라니.”

천하대 지하에 있는 PTW의 렌더링 센터.

PTW가 자랑하는 코드 및 칩셋 최적화 기술인 ‘STC’로 설계된 전용 칩셋으로 구축된 이곳은, 같은 규모의 연산 센터 대비 압도적인 연산 효율을 보유하고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그곳도 모자라 대전에 있는 추가 렌더링 센터마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해에서 벌어지는 미친듯한 수중전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여 제공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컹크 웍스에 입사한 이래로 계속 생각하던 거지만, 이 회사는 진짜 미쳤어.

남들 다 안 하는 짓만 골라서 한다니까?

이것도 그래.

사실 보통 이런 이벤트는 어차피 AR로 진행되는 이벤트이니 실시간으로 처리할 필요 없이 녹화방송으로 진행해도 충분했을 거라고.

그럼 굳이 무리하게 이 미친 전투씬을 초당 120프레임으로 실시간 렌더링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한 프레임에 몇 십 분 정도 잡고 느긋하게 렌더링한 다음, 녹화한 영상을 틀어주면 그만이었을 거 아냐.

근데 그걸 굳이 실시간으로 진행하겠다고 버츄얼 스튜디오 기능까지 멈춰가면서, 이 거대한 설비 전체를 이벤트만을 위해 돌린다는 게 말이 되냐고.”

스컹크 웍스의 멤버이자 프로그래밍 계의 척 노리스라 불리는 존 스캇이 투덜거리며 말하자, 옆에 있던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입꼬리에서는 미소가 가지 않으시는데요?

입은 그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은근슬쩍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존 스캇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올라가 있는 자신의 입꼬리를 몇 번 어루만지더니, 자신의 눈앞에서 미친 듯이 팬 소음을 내고 있는 거대한 연산 설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X발. 그래. X나 좋아.

이런 미친 짓을 실제로 시도하는 회사에서, 그 미친 짓에 한몫 거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말 그대로, 내가 지금 인류 문화사의 최전방에 있는 느낌이라 흥분돼서 돌아버릴 것 같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하긴, 사람들은 그냥 화려한 수중전이 펼쳐지고 있구나 정도만 생각하지, 저 미친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서 스컹크 웍스 멤버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겠죠.

그건 좀 아쉽네요.”

“뭐, 그거야 나중에 웹 드라마 방영분에서 메이킹 필름 형태로 인터뷰가 나갈 수도 있는 거잖아?

그리고 난 딱히 일반 시청자들이 그런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왜요?”

“어차피 업계 관계자라면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이 얼마나 미친 짓인지 잘 알고 있을 거거든.”

물론 헐리우드의 특수효과 업체들도 마음만 먹으면 PTW가 지금 구현하고 있는 수준의 전투 장면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장비는 그런 수준의 그래픽을 한 프레임 렌더링하는 데 24시간이 걸릴 정도의 성능을 가진 장비인 데 반해, PTW가 가진 렌더링 센터는 그 모든 연산을 실시간으로 뽑아낼 수 있는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존 스캇은 현재 펼쳐지는 수중전에서의 물리 연산이 요구하는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 그것이 누구든 간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이벤트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진행되는 전투가 멋짐 그 자체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니까.”

옆에서 존 스캇의 혼잣말을 들은 스컹크 웍스 멤버는,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다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상혁 CCO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요?”

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수중전을 진행한 장본인이, 지금 어떤 기분으로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러자 잠시 최근에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존 스캇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일본 정부랑 전화로 싸우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스캇은 상혁이 일본 정부에 먹인 ‘빅엿’을 떠올리며, 자신의 입꼬리가 스윽 하고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당장 철회하십시오.-

“그건 권고가 아니라 지시입니까?

저희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따를 이유가 전혀 없는데요?”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습니까!-

-코노 야로 상.

그쪽에서 요구한 것은 분명 ‘한국 함선이 독도 해상에 접근하지 않게 해 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그런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단 한 척의 군함도 독도 근해로 출격시키지 않았고요.

저희도 당시 약속에 따라 한국 정부에 군함을 무리하게 출격시켜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면 약속을 충분히 이행한 것이 아닙니까?-

약 올리는 듯 말하는 상혁의 목소리를 들은 코노 야로 일 방위 대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을 느끼며 전화기를 향해 소리 질렀다.

-하지만 지금 이벤트 현장에는 한국 군함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한 대도 아니고 수십 척이나!-

-그건 저희가 만든 가상의 전함이죠.

위성사진을 보세요.

독도 근해에는 군함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싸우고 있는 건, 말 그대로 ‘게임 속 세계’의 ‘게임 속 군함’일 뿐이고요.-

-그건 말장난이 아닙니까! 보는 사람으로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진짜 한국의 해군이 마수에 맞서 싸우기 위해 다케시마 앞바다에 출격했다고 생각하겠죠!-

-흠.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긴 하네요.

저희가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현재 송출되는 한국 함정의 모습은 가상으로 구현된 AR 이미지입니다.’라는 메시지라도 띄워드릴까요?-

-그···. 그게 가능합니까?!-

상혁의 말을 들은 코노 야로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아왔다.

어찌 되었건 자신의 실책으로 이런 일이 발생한 이상, 자신이 수습을 위해 그런 메시지를 삽입하게 했다고 상부에 어필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코노 야로에게 있어서 상혁의 제안은 가뭄 속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사실 국방 대신인 자신이 게임회사인 PTW에 행사할 수 있는 압력이란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었고, 상혁의 말대로 ‘가상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타국의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명분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상혁에게 물었다.

-말씀하신 메시지를 삽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렵지 않죠. 지금 바로는 어렵고, 한 1분 정도 후부터 방송종료 때까지 그 메시지가 계속 화면에 출력되게 될 겁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코노 야로는 곧바로 통화를 대기로 돌린 뒤, 들고 있던 전화를 이시다 우미오 일본 총리에게 연결했다.

그러자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분노한 듯한 이시다 총리의 목소리가 코노 야로의 고막을 때렸다.

-자넨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가!-

한참의 사과와 경위에 대한 설명이 있은 뒤, 코노 야로는 겨우 한숨을 돌리며 이시다 총리에게 자신이 사태 수습을 위해 한 노력에 관해 설명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이시다 총리가 코노 야로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PTW에서 방송 중인 화면 어딘가에 현재 송출되는 한국 함정의 모습이 가상 이미지라는 설명이 떠 있다는 거지?-

코노 야로는 잠시 머릿속으로 시간을 가늠한 후 총리에게 대답했다.

-아마 약속한 1분이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화면에 메시지가 출력되어 있을 겁니다.-

-내가 보고 있는 화면에는 어딜 보아도 그런 글자가 없는데?-

코노 야로가 당황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상혁이 자신에게 약속한 메시지를 찾아보았다.

‘없어! 왜 없지?!’

그때, 1분이 한참 지난 상황임에도 아무런 메시지가 떠 있지 않은 화면을 보며 당황하던 코노 야로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오른쪽 구석에, 일종의 스크래치처럼 보이는 한줄기 흠집이 보였던 것이었다.

‘뭐지? 뭐가 묻은 건가?’

본능적으로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지른 코노 야로는 사라지지 않는 흠집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 흠집을 자세히 본 뒤 주먹으로 강하게 책상을 후려쳤다.

“이런 쓰레기 같은 자식이!!!”

상혁이 약속한 문장.

그것은 확실히 화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방이 푸른색인 심해를 배경으로 하는 영상에서, 무려 ‘푸른색’으로 쓰인 상태로.

참깨만큼 작은 글자로 된 그 ‘메시지’는, 약속대로 확실하게 화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쏟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에, 코노 야로는 억지로 평정을 유지하며 총리를 향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PTW에 확인 전화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대기 상태로 돌린 코노 야로는 비서를 향해 화내듯 소리쳤다.

“PTW에 다시 연결해!”

그러자 코노 야로의 비서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그쪽에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뭐?! 언제!?”

“조금 전 총리님과 통화하실 때요.”

“젠장! 자네 머리 위에 달린 그건 장식인가!? 그럼 다시 걸면 될 것 아냐!”

불같이 화를 내는 방위 대신을 보며 비서관은 급하게 다이얼을 눌렀다.

그러나 신호가 연결되는 순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본어로 친절하게 녹음 되어 있는 자동응답 메시지뿐이었다.

-현재는 업무로 바빠 연락을 받을 수 없사오니, 삐 소리가 난 후 메시지를 남겨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으아아아아아아!!”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전화기를 내던지는 코노 야로를 보며, 비서관은 사무실에 설치 할 새 전화기를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괜찮겠어?”

여유로운 표정으로 뒤통수에 깍지를 낀 채 앉아 있는 상혁에게 민준이 물었다.

그러자 상혁은 뻔뻔한 표정으로 민준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알잖아.”

다시 한번 묻는 민준을 보며, 상혁이 끼고 있던 깍지를 풀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민준을 향해 말했다.

“별일 없을 거야.

저쪽에서는 이거 가지고 시비를 걸 수 없는 상황이니까.”

“왜?”

“생각해봐. 만약 이걸 이슈화시키면, 일본 정부가 한국의 게임회사에 거의 조롱 수준의 놀림을 받았다는 게 알려지게 되지.

기껏 요청을 넣었더니, 참깨 씨앗만 한 글자를 넣어서 일본 정부를 기만한 게 되니까.

게다가 그쪽의 항의에 대해서 우리 쪽에서 ‘요청해서 넣었을 뿐 크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라고 대답하면, 그건 그거대로 놀림거리가 된다고.

게다가 이쪽에는 고객들이 이벤트를 감상하는 데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문구를 삽입했을 뿐이라고 하면 그만이고.

사태가 벌어지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우리가 그쪽을 가지고 노는 상황에서 그쪽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번 일이 최대한 이슈가 되지 않게 만드는 거야.

그쪽 입장에서 가장 베스트는 이쪽에 다시 강력히 항의해서 제대로 된 크기의 문구를 삽입하는 거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에서는 연락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그건 불가능하지.”

“수정할 수 없으니까, 아예 묻으려 할 것이다?”

“그거 말고 답이 없잖아.

아마 그쪽에서 요청한 문구를 우리가 개미 눈물만 한 크기로 삽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그 사실 자체가 영원히 인터넷에 박제되어 평생 놀림거리로 떠다니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아마 묻으려 하겠지. 아니면···.”

“아니면?”

“최소한의 지능이 있다면, 전 세계 인들의 축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크기로 삽입해달라고 요청했다고 구라를 치겠지.

그 요청을 우리가 그 정도로 과하게 해석할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모르고 당한 거라면 머저리라고 놀림 받기 딱 좋지만, 이쪽을 배려해서 일부러 그렇게 요청한 건데 우리가 악의적으로 글자 크기를 줄였다고 주장한다면 나쁜 건 이쪽이 되는 거니까.”

“그럼 문제 아냐? 그 주장까지 부정하면 일본 정부랑은 철천지원수가 될 거고, 긍정하면 우리가 나쁜 놈들이 되는 거잖아?”

“그래서 일단 긍정은 할 거야.

일본에서도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아예 일본 정부와 척을 지는 건 현명하지 않으니까.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선 빚으로 해두고 그쪽이 먼저 글자를 작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부분은 긍정하는 거지.

하지만 그 글자가 과도하게 작게 들어간 것이나 글자의 색이 잘 보이지 않는 푸른색으로 들어간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쪽의 과실이 아니라고 우기면 돼.

원래 IT 계열 기업에서는, 이런 종류의 문제에 대해 치트 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물 같은 답변이 있으니까.”

“그게 뭔데?”

“해당 문구는 입력 과정에서 정상적인 크기로 삽입되었으나, ‘알 수 없는 기술적 오류’로 인해 실제 화면에서 매우 작은 크기로 삽입되게 되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핫!!”

상혁의 입에서 ‘기술적 오류’라는 단어를 들은 민준은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힘들게 숨을 고르며 상혁에게 말했다.

“X친. 전 세계 최고의 괴물들만 모여있는 PTW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오류’라니, 진짜 무섭군.”

“그렇지. 워낙 복잡한 프로그램이니까, 어디에서 오류가 생길지 모르는거야.

프로그래밍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한 것이니까.”

“하하! 좋아. 재밌네.

그래서, 빚으로는 뭘 요구하려고?”

“이번 독도 이벤트 건에 대해 일본 정부에서 별도의 보복 조처를 하지 않는 것.

그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일본 정부를 ‘컴퓨터의 컴자도 몰라서 게임회사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늙고 멍청한 늙은이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해야지.

별 의미도 없는 문장 하나 삽입해달라고 빌고 빌어서, 참깨만한 글자 몇 개 얻어낸 무능하고 머저리 같은 정부로 홍보해주겠다고 하면서.”

“끔찍하겠군.”

“일부러 본사와 대전에 있는 렌더링 센터를 총동원하면서까지 힘들게 만들어낸 화려한 수중전이야.

저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전기세만 따져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다고.

그런데 그 멋진 장면에 그따위 멋없는 글자를 삽입하라고?

절대 못 하지.”

분노한 듯 말하는 상혁을 보며, 민준은 쓰고 있던 딥 다이버의 모드를 방송 중계 모드로 전환했다.

그러자 상혁의 말대로 PTW 본사와 대전 렌더링 센터의 연산 능력을 총동원하여 만들어낸 화려한 수중전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확실히 멋있긴 하네.”

평소라면 절대 ‘육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한 장면들의 향연.

사방에서 폭발하는 기뢰들과 몸무림 치는 800미터 크기 마수의 모습.

그리고 그런 마수의 움직임에 맞춰 마치 파동처럼 퍼져 나가는 해수의 일렁거림.

비라도 내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거품을 내며 가라앉고 있는 수많은 기뢰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는 부서진 마수의 껍질들.

마치 거품으로 만들어진 낙서처럼 잔잔해야 할 심해의 바다를 사정없이 할퀴고 있는 어뢰의 궤적들.

그 안에서도 거의 미사일 기지 같은 느낌으로 수중전용 무기들을 마수를 향해 쏘아내는 나이츠의 모습은, 말 그대로 심해에서 펼쳐지는 미래의 전장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장면을 연출 하고 있었다.

‘음악도 좋고.’

실시간으로 분위기에 맞춰 재생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 마치 싱크라도 맞춘 것처럼 음악의 템포에 맞춰 이루어지는 파일럿들의 대화.

거리와 관계없이 심해 공포증을 일으킬만한 거대한 크기를 가진 마수가 사방을 향해 비늘을 쏘아내는 모습은 전투의 긴장감을 한층 더 살려주고 있었다.

[클레이모어에서 RebirthDP에!!

타겟이 심부 해저로 이동하려 한다!!]

[전 부대원! 현 위치에서 앵커 일제 사출!

전투 심도 밑으로 잠수하지 못하도록 막아!]

[이쪽은 라인이 없어! 랜드 크러셔에서 독도함에! 앵커 라인 지원을 요청합니다!]

[PTSD제조기에서 독도함에!

이쪽도 앵커 라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위치 738,231,444!]

[여기는 독도. PTSD제조기의 앵커 라인 요청을 확인.

랜드 크러셔의 좌표 전달을 대기 중입니다.]

[이쪽은 랜드 크러셔.

현재 좌표 446,223,424!]

[수신 완료. 해당 위치로 앵커 라인 사출합니다.]

이번 전투의 핵심 전략은 이러했다.

일단 한국 해군 함정에서 마치 낚시 줄을 내리듯 크랭크와 연결된 사슬을 심해로 내려 보내면, 잠수 중인 나이츠가 그 줄을 잡아 앵커 사출기에 연결한 후 모비딕을 향해 쏘아내는 것.

그렇게 수십 척의 배가 마치 인형극을 하는 것처럼 굵은 사슬로 모비딕의 신체가 더 깊은 심해로 가지 못하도록 막으면, 나머지 나이츠들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모비딕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항공모함의 두 배 길이에 달하는 모비딕의 거대한 신체를 쇠사슬만으로 저지하는 것이 기껏해야 배수량 1만 2천 톤 이하의 함선으로 구성된 한국 해군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만재 배수량 18,800톤급 강습 상륙함 ‘독도함’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나머지 함선들은 모두 줄에 끌려 심해에 가라앉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엔진 출력 최대로!]

[강제로 당겨서라도 수면 위로 끌어내라!]

[젠장! 기뢰 말고 다른 수단만 있었어도!]

[PKG 712 한상국 함 침묵!

정긍모 함은 세종함과 충돌 이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미친!! 이따위 대잠전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워 다이버의 독점 사용권을 미국군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PTW에서는 이번 이벤트를 위해 해군 병사들이 직접 조종할 수 있는 가상 전함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대신 유명한 함선 조종 게임 ‘월드 오브 워십’과 비슷한 함선 조종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놓고, 해군에서 특별 파견된 수십 명의 함장들에게 각 함의 조종을 맡겨두었다.

그러나 그 계획에도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그 어느 나라의 해군도 이런 식의 전투를 상정하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건 내가 아는 어떤 해상전과도 다르다.’

한 함장이 마음속으로 뱉어낸 한마디.

그것은 이 작전에 참여한 모든 함장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한국 해군이 꽤 고전하고 있네요.

저건 한국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함선의 체급 때문인가요?”

같은 시각, 미국에서 이벤트를 중계하고 있던 허먼이 힘들게 초빙한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깔끔한 해군 정복을 입은 게스트가 거대한 모니터를 통해 비춰 지는 화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뇨, 딱히 한국 해군이 아니라 미국 해군이 저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상황은 비슷했을 겁니다.”

“세계 최강의 미 해군이 붙었다고 해도 비슷할 거라는 말씀입니까?”

“애당초 해군 전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저런 형태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전력이 아니니까요.

해상에서의 전투는 크게 4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같은 전함을 상대로 수면 위에서 싸우는 해상전(海上戰).

또 하나는 이쪽은 수면 위에서, 상대는 수면 아래서 싸우게 되는 대잠전(對潛戰).

그리고 먼 거리의 바다에서 미사일이나 함포 등으로 해안 근처의 타겟을 섬멸하는 지원전(支援戰).

마지막이 아군 함선을 향해 다가오는 미사일이나 폭격기를 요격하는 대공전(對空戰)이 있죠.

그 외에도 잘 벌어지지는 않지만 상륙전같은 전투가 있긴 합니다만, 일단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저 큰 4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전투를 수행합니다.”

“그래서요?”

“일단 해상전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적 함선을 상대로 얼마나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적의 장갑에 얼마나 유요한 타격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척도가 되죠.

그런 해상전에서는 포의 구경이 크고 위력이 강하면 좋고, 배가 빠르거나 장갑이 두꺼우면 상대를 제압하기 유리해집니다.”

“화력 싸움이 된다는 거군요.”

“반대로 대잠전은 좀 다르죠.

잠수함은 은밀함을 생명으로 하는 만큼, 탐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탐지만 할 수 있다면, 잠수함은 매우 쉬운 타겟이 되죠.

장갑이 두꺼운 함선은 함포 한두발을 맞아도 격침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잠수함의 경우는 유효타 한방에 승무원 전원이 골로 가게 되니까요.

결국 대잠전은 화력전의 양상이 아닌 탐색전의 양상을 띠게 됩니다.

찾으면 이쪽의 승리, 못 찾으면 저쪽의 승리가 되는 거죠.”

“그 말씀은···.”

“보시다시피 이번 전투의 상대는 심해에 있는 거대한 고래 형태의 괴물이죠.

육안으로 보아도 찾기가 어렵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가진 저런 상대는, 찾기는 쉽지만 쓰러트리기는 어렵습니다.

잠수함과 같은 위치에 있지만, 잠수함과는 정반대의 성향이 있는 적인 거죠.

현존하는 어떤 함선의 함포도 수면 아래의 잠수함을 노리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애당초 잠수함은 그렇게 잡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지금 요구되는 것은 탐색전이 아닌 화력전이죠.

그것도 수면에서의 화력이 아닌, 수중에서의 화력을 요구하는 화력전이요.

결국 이 승부는, 심해에 있는 나이츠들이 저 거대한 고래를 얼마나 빨리 수면 위로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면에 나온 고래 따위야 저기 모인 수많은 함선이 쏘아내는 화력 앞에서 단순한 고깃덩이밖에는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지금의 한국 해군이 저 괴수를 수면 밖으로 끌어내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허먼이 초대한 전직 함장 출신의 게스트는 말없이 화면에 비치는 한국 해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앵커가 설치된 방향을 중심으로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조금이라도 힘을 더 줄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내는 것.

오직 신들린 조종 실력만이 이 위기를 타파할 열쇠가 될 것입니다.”

그 진지한 목소리를 들으며, 허먼은 함장에게 질문했다.

“함장님은 예전에 한국 해군이 참여했던 연합훈련에 나가신 적이 있었죠.

그때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한국 해군이 모비딕을 수면위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을까요?”

“한국 해군이라···.”

허먼의 질문을 받은 그는 그리운듯한 표정을 지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허먼의 눈을 보며 말했다.

“1997년에 있었던 환태평양 훈련 환태평양 훈련(RIMPAC)에서, 1200톤짜리 한국 잠수함이 미 해군의 다중 방어막을 13번이나 돌파하면서 항모에 어뢰를 먹인 적이 있었죠.

그것도 핵 잠수함이 아닌 디젤 잠수함을 가지고요.

비록 눈으로 보기에 저 함선들은 미군이 가진 함정들보다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저들이 가진 포술 능력이나 함선 조종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비의 열세를 개인의 실력으로 커버하는 것이 한국 군대의 특징이니까요.”

‘그리고 지금도 다급히 선회 기동을 하면서 함포의 조준만큼은 확실하게 하고 있다.’

앵커에 실린 육중한 무게 때문에 배가 기울어지는 상황에서도, 한국 함선들의 포신은 계속 한 방향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모비딕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하는 지점을 향해.

그들은 단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마침내 수면으로 끌려 나온 적이 약점을 드러내는  찰나의 순간을.

그것은 마치 여유롭게 바다를 지켜보면서도 찌의 위치만은 놓치지 않는 노련한 낚시꾼의 눈빛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계속 심해로 이동하려고 시도하던 적의 움직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클레이모어에서 독도함에!

적의 움직임에 변화가 발생!

수면 위를 향해 고속으로 이동합니다!]

[출현 예상 지점은!?]

[지금 예상 좌표를 전송하겠습니다!]

[전 함선은 지정된 좌표에서 긴급히 이동하라!

적 출현 시 발생하는 파도의 충격에 대비!]

[전 포문 목표 지점을 향해 조준 완료.]

[어서 나와라! 거대한 생선 놈아!]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거대한 마수가 수면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면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모비딕은 곧바로 수면 위로 점프하지는 않았다.

마치 수면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 해군의 일제 사격에 대한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힘차게 앵커에 연결된 모터를 돌려 전력으로 모비딕을 수면으로 끌어당기던 함선들은 마치 뭔가에 걸린 것처럼 큰 굉음과 함께 그 자리에 멈췄고, 모비딕은 자신을 어떻게든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수십 척의 함선들과 힘겨루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체 작전을 총괄 하고 있던 독도함의 함장이 레비아탄 멤버들을 향해 다급한 무전을 날렸다.

[독도에서 레이바탄에게.

들립니까?]

[여기는 RebirthDP.

듣고 있습니다. 함장님.]

[현재 꼬리쪽은 어떻게든 될 것 같지만, 머리쪽에 연결된 앵커 라인의 수가 부족합니다.

더 연결하려고 해도 연결할 함선이 없고요.]

[그 말씀은···.]

[이대로면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저희쪽에서 뭔가 더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지만, 수면 위로부터의 공격은 적을 더 아래로 끌어내릴 위험이 있습니다.]

[아래쪽에서의 공격이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가능하시겠습니까?]

나이츠 RebirthDP의 파일럿 마성준은 시야 옆에 있는 동료 나이츠들의 잔탄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려는 모비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팀원들 대다수가 가지고 있던 화력 대부분을 상실한 상황.

잔탄이 남아 있는 기체는 에너지 잔량이 부족하고, 에너지가 남아 있는 기체는 잔탄이 없는 상황에서, 모비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만한 화력을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결국 잠시 고민하던 성준은, 자신의 답변을 기다리는 함장에게 통신을 날렸다.

포기가 아닌, 마지막 시도에 대한 무전을.

[이쪽에서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대장?!]

[어쩌려고요?!]

[레비아탄 멤버는 전부 내 기체 근처로 집결해주세요.]

잠시 후, 마치 줄에 매달린 생선처럼 이동용 앵커를 타고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11대의 나이츠를 앞에 둔 마성준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것은 듣자마자 팀원들이 반대 의견부터 낼 정도로 무모함의 극치를 달리는 계획이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최초의 탈락자를, 레비아탄에서 낼 생각입니까?

그것도 첫 번째 전투에서 대장기가 탈락한다고요?]

[그럼 더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성준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성준이 말했다.

[지금 남은 방법은 이것 하나뿐이에요.

모두가 남은 에너지를 귀환에 필요한 수준만 남기고 제 기체로 넘긴 뒤, 잔탄이 남은 장비 전체를 제 나이츠에 장착하고 모비딕의 머리 바로 아래서 터트리는 거죠.

사격에 들어가는 사거리를 최대한 줄이면 발사에 들어가는 에너지 잔량도 최대한 아낄 수 있으니, 근접해서 집중 사격 하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폭발의 여파만으로도 나이츠가 찢겨 나갈 겁니다.]

[에어 버블 근처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제 나이츠의 팔이 산산조각 났어요.

근데 그걸 몸으로 받으시겠다고요?

진짜로 죽는 게 아니라고 너무 무모한 시도를 하는 게 아닙니까?]

[이게 가상이 아닌 진짜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겁니다.]

성준이 말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의 지원 아래 독도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만약 이 마수가 진짜였고, 정말로 독도가 위험에 처해있으며, 제게 그것을 막을 힘이 있었다면, 전 기꺼이 저 자신을 희생했을 겁니다.

제 나이츠의 이름은 RebirthDP에요.

그건 아주 제가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PTW의 애니메이션 ‘Guardian of Steel’에 나오는 로봇, DP – 045의 이름을 딴 이름입니다.

어릴 적 제가 보았던 애니메이션에서, DP – 045 라는 로봇은 동료 전체가 부상당한 상태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적의 공격을 막았었죠.

어린이용 로봇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장하고 잔혹한 장면이었지만,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멋있다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그리고 지금, 제가 가장 사랑하는 로봇을 만들어낸 그 회사에서, 지금 저에게 진짜 로봇을 조종할 기회를 주었어요.

만약 이런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저는 평생을 후회하게 되겠죠.]

[진심입니까?]

[제 모든 것을 걸고 말하건대, 진심 그 자체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나이츠 한 대가 옆구리에서 케이블을 꺼내 RebirthDP의 충전 커넥터에 연결했다.

[나이츠 TNT 파일럿 이다희가 말한다. 기체의 남은 에너지를 2%만 남기고 전부 RebirthDP에 전송하라.]

그러자 나머지 로봇들도 하나둘씩

자신의 몸에서 케이블을 꺼내 RebirthDP의 몸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나이츠 PTSD제조기의 파일럿 최지연이 명령한다. 기체의 남은 에너지를 2%만 남기고 전부 RebirthDP에 전송하라.]

[나이츠 클레이모어의 파일럿 글로리아 탤벗이 명령한다.

남은 에너지를 2%만 남기고 전부 RebirthDP에 전송하라.]

성준은 동료들이 남은 에너지를 건네줄수록 힘을 받아 웅웅거리기 시작하는 RebirthDP의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에너지 부족으로 천천히 돌아가던 RebirthDP의 육중한 플라이 휠이 강한 에너지를 받아 다시 고속으로 회전하며 내는 소리였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 소리 속에서, 마성준의 머신 스피릿인 티르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에너지 잔량 52%.

잔탄 없는 장비를 해체 후 남은 화력을 전부 넘겨받아 장착했습니다.

작전 수행 가능합니다. 마스터.]

[만약 내가 리타이어하면 넌 어떻게 되지?]

[머신 스피릿은 언제나 마스터와 운명을 함께 합니다.]

[그럼 너도 이제 프로젝트에서 죽는 거네.

미안하다.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마스터.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누구나가 멋있는 최후를 맞이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마스터의 머신 스피릿인 저는, 마스터 덕분에 역사상 가장 멋진 최후를 맞이하는 머신 스피릿이 될 수 있겠지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기억될 수 있는, 가장 귀엽고 충성스러운 머신 스피릿의 모습으로요.]

[역시 내 서브 파일럿이야.

로망이 뭔지 안다니까?]

[역시 제 마스터십니다.

머신 스피릿의 첫 번째 사명은 마스터의 목숨을 지키는 것.

그리고 머신 스피릿의 두 번째 사명은 마스터가 원하는 것을 이뤄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로 멋진 것을 위해 목숨조차 바칠 수 있는, 마스터의 그런 면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럼, 가볼까?]

[언제든지 준비 오케이입니다. 마스터.]

[1, 2, 3번 앵커 동시 사출. RebirthDP. 전속 발진!]

[1, 2, 3번 앵커 사출 및 고정 완료.

고속 이동으로 인한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그 순간, RebirthDP의 허리와 양 팔에서 3개의 앵커가 맹렬한 기세로 발사되었다.

그리고는 머리 위에서 햇볓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모디빅의 턱 한가운데 박혀 들었다.

그러자 RebirthDP의 거대한 기체가 거품으로 이루어진 기다란 궤적을 남기며 초고속으로 모비딕의 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조종간과 시트를 통해 전해지는 엄청난 흔들림을 느낀 성준은 잡고 있던 조종간을 있는 힘껏 거머쥐었다.

그리고는 조종석 스크린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모비딕의 거대한 턱을 향해 소리쳤다.

[이거 먹고 꺼져라. 개자식아아아!]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눈빛으로 소리치는 자신의 마스터를 보며, 머신 스피릿 역할을 맡은 티르네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성준을 향해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뭐가?]

[거짓말이요.]

그렇게 말한 티르네는 서브 파일럿 좌석의 뒤편에 달린 작은 레버를 집어 당겼다.

“메인 파일럿 콕핏 강제 사출.”

순간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성준이 앉은 시트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흔들림의 의미를 알고 있는 성준이 분노한 표정으로 티르네를 향해 외쳤다.

[너 지금 뭐하는···!?]

[머신 스피릿의 두 번째 사명은 마스터가 원하는 것을 지켜 드리는 것.

그리고 첫 번째 사명은 마스터의 목숨을 지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두 가지를 모두 이루어드릴 방법은, 오직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혼란스러워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성준은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런 시나리오가 짜여 있었나?

아니다.

애당초 이 작전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의 돌발적인 결정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머신 스피릿은, 그런 자신의 돌발적인 결정을 지금 같은 행동으로 받아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 전체에서 파일럿의 ‘목숨’에 해당하는 권리.

끝까지 살아남아 ‘전용기’를 획득할 수 있는 마스터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는 성준을 지키며 홀로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통신이 종료됩니다.

현재 외부 환경이 심해 환경으로 판단되어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절대로 해치를 열지 마십시오.]

귓가에 들려오는, 티르네의 목소리가 아닌 시스템 어시스트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조종간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X바아아아아알!!!!”

순간 머리 위에서 비치는 새하얀 빛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모비딕의 턱을 강하게 후려치고, 수십 대의 군함들과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힘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곧, 800미터짜리 심해 괴수가 수면 위로 또 오른다는 의미였다.

“전 군 사격 개시!!!!”

“발포!!!!!”

수면 위로 점프한 모비딕의 거체를 향해 대한민국 해군이 가진 모든 포문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기나긴 갑갑함을 한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폭음과 연기를 내며 발사된 탄환은 공중에 떠오른 모비딕의 신체를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모비딕의 거체가 수면에 충돌하자, 그 거대한 몸체를 가릴 정도로 커다란 파도가 일어나 해군 함정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독도함이 뒤집히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의 거대한 파도가.

그것은 마치 핵실험이 만들어낸 쓰나미를 보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

미국에서 쇼를 진행하던 허먼도,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심지어 일본에서 이 이벤트를 지켜보던 코노 야로조차도 말없이 화면을 지켜보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마침내 파도가 가라 앉은 독도 해상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거기엔 조금 전까지의 압도적인 위력과는 반대로, 거대한 흰 배를 드러낸 채 죽은 생선처럼 엎어져 있는 모비딕의 시체가 처참한 모습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겼다?!”

그 순간, PTW 파크에 초대되어 단체로 함선 조종을 하고 있던 독도함 함장 이무열이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화면을 보며 소리쳤다.

“이겼다아아아!!!”

“X바아아알!! 대한민국 해군이 저 괴물을 쓰러트렸다아아!!”

“으아아아아!!!”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이 가상 이벤트를 지켜보기 위해 군 부대에서 특별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던 국군 장병들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벤트 진행 중에 발생하는 시스템 부하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스컹크 웍스 멤버들도, 모두가 미친 듯이 소리치는 가운데, 정작 이 이벤트의 주인공인 레비아탄 멤버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탈 처리되면서 작동이 정지되었어야 할 RebirthDP에서, 머신 스피릿이 임의로 파일럿 사출 기능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은 실제로 독도 앞바다 심해에서 훈련용 기체를 타고 이벤트에 참가했던 레비아탄 멤버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예상외의 전개라 할 수 있었다.

[저거 진짜 사출된 건 아니지?]

[설마···.]

[아니 PTW에서는 뭐 이런 미친 기능을 넣어놨어?!]

[대장! 내 말 들려요!?]

그러자 모두의 귓가에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훈련용 기체에는 콕핏 사출 기능이 안 들어있죠.

그냥 전원만 잠시 나간 겁니다.

지금 복구하면 나이츠에 탄 채로 걸어서 복귀할 수 있고요.

아니 이 정신 나간 인간들 거기서 그런 신파를 찍어?

나중에 대전으로 돌아오면 한소리 해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자 이벤트 종료 판정으로 통신이 복구된 마성준이 얼굴을 비추며 말했다.

[아니, 그때는 진짜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요.

그리고 티르네의 돌발행동만 없었으면, 깔끔하게 저랑 티르네가 프로젝트에서 하차하면서 끝났을 일이고요.]

[그러니까 이번 사태는 머신 스피릿이 마스터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다?

그럼 처벌은 머신 스피릿에게만 하면 됩니까?]

[그건···.]

[마스터. 마스터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넌 죽은 AI가 왜 떠들고 있냐.

공식적으로 너는 일단 RebirthDP와 함께 장렬하게 폭사한 거라고.]

[장렬하고 X나 멋지게 폭사했죠.]

[X나 멋있었던 건 인정.

하지만 일단 규정상 재합류는 안 돼.]

[마스터는요?]

[네가 살렸으니 일단 성준씨의 생존은 인정하겠다.

다만 머신 스피릿이 사망한 이상 새 멤버와 다시 팀을 꾸려야겠지?]

상혁의 말을 들은 성준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다.

지금 와서 다른 머신 스피릿과 호흡을 맞춘다고 해도, 절대 즐겁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러자 상혁은 그런 성준을 보며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성준 씨. 너무 심란해하지 마요.

시나리오도 없이 그렇게 멋진 장면을 만들어줬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이별하게 만들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니까.

일단 대전으로 복귀하시죠.

이후의 처리는, 이쪽에서 적당히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지금은···.]

[지금은 일단 수면위로 올라가세요.

독도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과 독도 수비대분들이, 여러분의 등장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상혁의 말을 들은 파일럿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각자 조종간을 잡아 나이츠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앞에 있는 외로운 바위섬.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위섬이 되어버린 ‘독도’를 향해.

그렇게 잠시 후. 훈련용 나이츠에 탄 채 수면 위로 걸어 올라온 그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자신들을 맞이하는 수많은 팬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외로이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전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게 된 독도 수비대 대원들의 모습과 함께.

그것은 이 장대한 이벤트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멋진 마무리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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