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65화 (466/485)

465. 독도 해상전

PTW가 2차 월드 이벤트를 독도 근해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은 웹 드라마의 방영분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게다가 한국 기업인 PTW의 소속에 걸맞게 ‘동해(East Sea)’라는 명칭까지 명기된 상태로.

그러자 PTW의 2회차 침공이벤트를 간절히 기다리던 전 세계의 수많은 팬은, 당연하게도 이벤트 지역이 어디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격렬하게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동해가 어디야?-

-일본에서는 일본해라고 부르는 바다인데 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부르는 듯.

현재는 양쪽 모두에서 서로 자기네 명칭이 맞다고 우기는 상황이고.-

-그럼 우린 뭐라고 불러야 하냐?-

-PTW가 동해라고 명시했으니 동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지.-

전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동해’라는 이름을 각인하는 작업은 매우 치밀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작전 브리핑 화면부터 PTW 직원들이 참가한 현장 답사 촬영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참가자들이 ‘동해’라는 이름과 ‘독도’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호명하고 있었고, 심지어 정부와의 협조로 특별출연한 독도 수비대대원이 한국어로 독도를 소개하는 내용까지 방영되었으니까.

웹 드라마 속의 레비아탄 멤버들과 PTW직원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히 그렇게 불러야 하는 이름’인 것처럼 ‘동해’와 ‘독도’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호명했고, 그 모습은 전 세계에서 웹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는 수억 명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그 단어를 강하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2차 방어전 파트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세계의 유저들은 다들 PTW가 의도한 대로 작전 지역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신력을 가진 해외 언론까지도.

그 덕에 한국과 일본 외에는 별다른 국제적 관심을 받지 못하던 독도 앞바다는, 순식간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버렸다.

[이번 PTW의 2차 방어전이 펼쳐지는 동해에서는···.]

[한국 정부에서는 독도 해상에서 직접 이벤트를 관람하고 싶어서 하는 유저들을 위한 별도의 관광 프로그램을 제공···.]

[별다른 잠수 장비가 없어도 딥 다이버가 있으면 육지에서도 독도 앞 심해에서 수중전을 펼치는 나이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밝혀···.]

[전직 잠수함 함장이 참여하는 특별 프로그램.

독도 앞바다의 수중 지형을 보며 이번 수중전의 핵심 포인트와 레비아탄 멤버들의 예상 전략을 짚어보자.]

그렇게 순식간에 ‘독도’와 ‘동해’가 글로벌 인기 검색어에 등록되는 상황을, 일본이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벤트에 집중되는 국제 언론의 열기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일본의 우익 언론과 혐한 뉴스들은 매일같이 PTW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PTW라는 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회사라면, 적어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니만큼 자막으로라도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해서 표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일본 정부 관계자.

‘현재 PTW의 움직임은 자칫 전 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분쟁지역인 다케시마 근해를 한국의 영토로 오해하게 할 소지가 있어.’]

[일본 극우 단체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일본 정부에 PTW의 신작 게임 KOH의 판매 중지를 강력하게 요구.]

[외무성 관계자의 발표.

대대적인 글로벌 캠페인과 적극적인 기자 회견을 통해 다케시마가 국제법상 정당한 일본의 영토임을 세계에 알릴 것.]

[코노 야로 국방 대신.

현재 사태의 해결을 위하여 긴급 방한 일정을 조율 중.]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단순히 언론을 통한 압박만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외교부에는 일본 정부에서 보낸 PTW의 이벤트에 대한 공식 항의가 접수되었고, PTW의 본사에도 역시 일본 외무성에서 보낸 항의 서한이 보내어져 왔다.

게다가 TV 인터뷰에서는, 일본의 국방 대신인 코노 야로가 ‘그것이 게임의 이벤트를 위한 일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한국 해군이 국제법상 일본의 정당한 영토이자 분쟁지역인 다케시마 근처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치게 된다면, 일본 해군은 그에 상응한 조처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PTW에서는 일본의 요구대로 이벤트 개최지를 옮길 예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상혁은 한국과 일본의 기자들을 초청하여 이벤트 개최지와 관련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상혁은 제 2회 침공 이벤트의 개최지역을 바꿀 생각이 없음을 확실하게 못 박았다.

“다들 오해하시는 게 있는데, 저희 PTW는 글로벌 기업이기 이전에 한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한국 기업입니다.

창업 멤버들도 전원 한국인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한국 기업이 한국의 영토를 대상으로 게임 이벤트를 펼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건 AR 이벤트입니다.

이벤트 장소에 투입되는 나이츠는 전투력이 전혀 없는 트레이닝용 나이츠이며, 실제로 전투에 참여하는 나이츠는 실체가 없는 가상의 이미지일 뿐이죠.

정부가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가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가지고 타국의 게임 회사에 시비를 걸겠습니까?

그럴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그러자 기자회견에 참여한 한 기자가 손을 들어 일본어로 상혁에게 물었다.

그러나 상혁은 이미 딥 다이버와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딥 다이버의 실시간 번역 기능을 통해 그 기자의 목소리를 한국어로 들을 수 있었다.

“아사히 신문의 타케다 미츠나리 기자입니다.

조금 전 상혁씨께서는 이번 이벤트가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뉴욕 이벤트 때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 7함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실물 전투기와 군인들, 경찰들이 이벤트에 투입되어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았습니까?

현실의 군사력이 개입되는 만큼, 이걸 순수하게 가상 세계에서의 일로 치부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요?”

“그건 해석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갈리는 문제겠죠.

딱히 거기에 한국 해군이 출동한다고 해서, 독도에 침공하려는 일본 자위대를 상정한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습용 포탄을 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된다고 하면 그건 지나친 해석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PTW의 이번 이벤트는 전 세계의 수많은 팬이 주목하고 있는 이벤트입니다.

그런 이벤트에서, 분쟁지역인 다케시마를 ‘독도’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일본해를 ‘동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은 그곳을 PTW에서 발표한 대로 부르게 되었고요.

지금은 누구도 ‘PTW의 2차 침공 이벤트는 일본해의 다케시마 근해에서 펼쳐진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들 ‘동해의 독도 근처에서 펼쳐진다.’라고 하죠.

안 그래도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가 박힌 상황에서, 분쟁 지역인 다케시마 근처를 한국 해군이 지키는 모습을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그건 모두가 다케시마를 한국의 영토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겁니다.

단순히 가상의 일이고 게임 속의 일이라고 치부할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일본이 몇십 년간 공들여 지속적으로 펼쳐온 로비를, 단 한 순간에 역전시킬 핵폭탄급 영향력을 행사한 상혁은, 그런 기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일본 기자들이 모여있는 자리를 향해 말했다.

“그게 불만이라면, 일본 측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 수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일본 하면 손꼽히는 게임 강국 아닙니까?

게다가 전자제품에 대한 기술력도 상당한 나라고요.

지금부터라도 저희가 보유한 VR 및 AR 관련 특허를 전부 우회하면서, 전 세계에 2억 대 이상 보급된 딥 다이버와 3천만 대 가까이 보급된 PRD를 능가하는 새로운 VR 디바이스를 개발하세요.

그리고 전 세계에 그걸 배포하고, KOH같은 게임을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한 것과 똑같이 가상 세계에서 펼쳐지는 AR 이벤트를 진행하면 되겠죠.

그 세계 속에서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러도, 가상의 일본 해군이 독도 앞바다를 지키게 하셔도 됩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만든 여러분들의 세계니까요.

하지만 이건 저희가 만든 저희의 세계입니다.

일본 정부가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 정부가 나서더라도, 저희의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일에 왈가왈부할 수 없습니다.

억울하면 일본에서도 비슷한 가상 이벤트를 진행하도록 하세요.

물론 저희가 진행한 이벤트처럼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이 열광하며 봐줄지는 의문이지만.”

상혁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본에서 온 기자들이 시끄럽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PTW는 일본 콘솔 팬들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국제 사회에는 지켜야 할 룰이란 것이 있는 겁니다!”

그러자 상혁의 눈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만약 일본에 있는 게임 회사가 만든 게임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더라도, 저희는 항의하지 않았을 겁니다.

심지어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된 가상 세계에서, 침략하는 한국군을 상대로 싸우는 게임을 만들었더라도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을 거고요.

그것은 그것이 게임 속 세계에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터의 가치관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남이 상상하는 상상의 세계에 태클을 걸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세계를 돈 주고 구매한 고객밖에 없죠.”

“지난번 발표 이후부터 시작된 일본 유저들의 보이콧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개인의 선택입니다.

저희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저희 PTW라는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환불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저희는 얼마든지 환불에 응할 생각입니다.

만약 이번 이벤트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벤트를 보고 싶지 않다면, 그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 2차 침공이벤트는 수중전이 테마인 만큼 역사상 가장 화려한 화력전이 펼쳐지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 거대한 현무의 크기를 가볍게 압도하는 고래 형태의 마수 ‘모비딕’을 상대로, 수중전용 장비를 갖춘 채 동해 바다를 증발시킬 기세로 펼쳐지는 나이츠들의 화려한 원거리 전투.

살면서 평생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수중 버블과 수십 미터 크기의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바다의 모습.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해일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재난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파일럿들의 드라마.

그 모든 것을 놓치고 싶다면 얼마든지 이벤트를 거부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저희가 이번 이벤트를 진행하는 건 팬 여러분들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서이지, 이거 진행한다고 저희한테 딱히 뭔가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나중에 ‘그때 실시간으로 이런 대형 이벤트를 지켜볼 기회를 놓치다니! 인생 절반 손해봤어어어!’라고 절규하는 것도 각자의 선택이겠죠.”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상혁의 말투에 한국 기자들은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 농담을 듣는 일본 기자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슈를 길게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이 없던 상혁은 짧은 마무리로 기자회견을 마무리 지었다.

“말씀드렸지만 저희 PTW는 딱히 게이머들에게 특정 사상을 강요하거나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주입하지 않습니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죠.

그 안에 등장하는 지역의 명칭에 대해, 저희는 한국 게임 회사로서 지켜야 할 사명을 지켰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게임 회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게이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일본어판에는 일본해로 표기를 하고 한국어판에는 동해로 표기하는 게임들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제조사의 선택이죠.

그리고 고객의 한 사람으로서, 각국의 게이머들은 자신이 취향에 맞는 단어 선택을 게임사에 요구할 정당한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한은 오직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저희가 서일본 지역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면, 아마도 이벤트 개최지인 일본 게이머들의 심리를 배려해서 바다의 명칭을 일본해로 표기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정당한 한국의 영토인 독도 앞바다에서 펼쳐지는 이벤트입니다.

그러니 이번 이벤트의 주권 국가는 일본이 아닌 한국이 되는 것이고, 그 경우 원칙상 한국에서 부르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단에 불만이 있다면, 일본 정부가 가진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주장을 수억 명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어필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어필할 기회라면?”

“이벤트 시작 전에 이번 이슈에 대해 알리는 시간을 가지고, 대한민국 측이 가지고 있는 독도의 역사적 점유권에 대한 수많은 사료들을 소개하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공정함을 위해서, 일본에서 주장하는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근거도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양쪽 데이터를 비교하며 제시함으로써, 어느 쪽의 근거가 더 설득력 있는지 공개된 장소에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장할 수 있겠죠.

그쪽에서 모은 증거로 저희 측 증거를 무마시킬만한 자신감이 있다면, 한판 붙어봅시다.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보는 한 가운데서, 어느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요.”

기자들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상혁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참고로 제출한 모든 자료는 원본 사료와 대조하여 조작이 발견될 경우 ‘해당 진영에서 제출한 자료는 이 부분이 조작된 자료이며 원본은 이렇습니다’라고 공개하겠습니다.”

상혁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기자회견을 종료했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은, 당연하게도 일본 극우세력의 극렬한 비난을 받게 되었다.

[PTW의 도발에 응하자. 전 세계를 상대로 다케시마가 일본 소유의 영토라는 것의 정당성을 어필할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즉시 철저히 준비한 자료를 PTW에 제공하여 전 세계에 일본의 정당성을 알려라!]

[이번 기회에 아주 결판을 내자!]

그러나 그런 극우 네티즌들의 격렬한 의견과는 반대로, 일본 정부는 상혁의 제안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애당초 일본이 가진 독도 영유권에 대한 근거가 대부분 조작된 자료에 기반하고 있는 만큼, 공개된 자리에서 검증 대결을 펼치면 일본측 주장의 허술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혁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남의 나라 게임 회사가 이벤트 하는데 왜 너희가 X랄이냐.’라는 논지가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하면서, 정부가 나서서 고작 게임회사에 불과한 PTW를 압박하는 것은 좋은 그림이 아니라는 의견이 무게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PTW의 기자 회견 이후 일본 정부에서는 타겟을 바꾸어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돌렸다.

PTW가 원하는 것은 한국 해군이 거대한 마수에 맞서 독도를 지켜내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일 터.

분쟁지역에 대규모의 해군을 집결시키는 것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대한민국 정부에 넌지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일본에서는 코노 야로 일 국방 대신을 한국에 보내 대한민국 정부와 접속했다.

비공개로 이루어진 물밑 협상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와 미팅을 가진 코노 야로는 회의가 끝나자마자 천하대로 향했고, 그곳에서 상혁을 비롯한 PTW 임원들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PTW의 CEO 김현주입니다.

이쪽은 CCO 이상혁, CTO 김민준입니다.”

“일본 국방 대신을 맡은 코노 야로입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나주신 점에 대해 감사 인사드립니다.”

회귀 전부터 딱히 코노 야로에 대해 좋은 인상이 없었던 상혁은 직접 내린 커피를 대접하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를 열어 잠시 안쪽을 살펴보더니 유통기한이 약간 지난 오렌지 쥬스를 꺼내 유리컵에 담아 대접했다.

이런 자리에서는 무엇을 마실 것인지를 상대에게 미리 물어보고 대접하는 것이 상식이었기에, 코노 야로는 그런 상혁의 태도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지만, 그것을 굳이 내색하지는 않고 태연히 받아넘겼다.

어찌 되었건 조금 전 대한민국 정부와 있었던 협상을 통해 승리를 따낸 것은 일본 정부였기 때문에.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상혁이 내준 쥬스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맛이···갔나?’

설마 일본을 대표하여 온 자신에게 상한 쥬스를 대접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코노야로는 원래 한국의 오렌지 쥬스가 이런 맛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탁자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상혁과 현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여러분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조금 전 대한민국 정부와 협상을 마쳤습니다.

분쟁 지역인 다케시마 앞바다에서의 대규모 해군 동원은 양국 간에 불필요한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으며,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질 때 일본의 해군 역시 다케시마 앞 바다에 출격해 한국 해군의 움직임을 유의 주시하겠다고 말이죠.”

그러자 현주가 당황한 듯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쪽은 이미 정부와 협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걸 지금 와서 취소한다고요?”

“일개 게임 회사와 정부와의 약속보다는, 국가 간의 약속이 더 중요한 법이죠.

비록 PTW가 미국 정부를 들었다 놨다 하는 대단한 회사라 할지라도, 그 근본은 어디까지나 ‘기업’에 불과합니다.

국가와 국가를 잇는 거대한 연결고리 속에서, 기업의 작은 움직임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죠.”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대한민국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벤트였습니다.

아무리 일본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해도, 대한민국 정부가 그렇게 쉽게 지원을 철회할 수는···.”

그때, 상혁이 현주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아뇨. 아마 이 경우에는 정부의 계산이 맞을 겁니다.”

“무슨 말이야?”

“애당초 저희가 그리려던 그림은 이번 이벤트에서 한국 해군과 협력하여 독자적으로 모비딕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거였죠.

그것을 통해 독도의 정당한 주인이 대한민국임을 알리고, 독도를 수호하고 있는 주체가 대한민국 해군임을 보여주려던 거였고요.

하지만 지금 코노 야로 씨가 말한 것처럼 일본 전함이 그 그림에 끼어든다면, 전 세계는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아, 저기가 분쟁지역이 맞구나.’

한 지역을 두고 양국 해군이 동시에 맞붙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어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대한민국 정부는 그것을 고려하여 지원을 철회하기로 한 것이겠죠.”

“맞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머리가 굉장히 좋으시다던데, 실제로도 그러하군요.

만약 한국 해군이 독도 근해에 모습을 비춘다면, 저희 역시 대규모 선단을 파견해 한국 해군과 대치하게 될 겁니다.

실제 무력행사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전 세계에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되겠죠.”

“그래서, 일본 정부에서 원하는 것은 뭡니까?”

“독도에서의 이벤트를 취소해주십시오.

원하신다면 도쿄 앞바다든 어디든 이벤트 장소로 제공하겠습니다.

일본 자위대의 해군 전력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 규모에 달하죠.

원한다면 일본 정부가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조건으로 일본 해군의 함선을 마음껏 동원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이미 공지가 나간 상태이고, 웹 드라마의 내용도 독도에서의 전투를 상정한 전투 훈련 내용으로 방송이 나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여기서 캔슬하면 저희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이벤트 장소를 옮긴 것처럼 보이게 될 테니까요.”

“그럼 이벤트를 강행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한국 해군은 워 다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군함을 동원한다 해도 단순한 병풍 수준의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딱히 한국 해군이 실제로 참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무 지역을 변경할 필요가 생기는 건 아니죠.”

“그 말씀은···.”

“저희 PTW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입니다.”

‘됐어.’

상혁의 말을 들은 코노 야로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비록 독도 앞바다에서의 수중전 이벤트를 막지는 못했지만, 반대로 자국 영토에 그토록 큰일이 벌어졌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찾아낸 기사회생의 한 수였다.

코노 야로는 매우 만족한 얼굴로 이상한 맛이 나는 쥬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에서도 더 이상 PTW의 이벤트에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겠습니다.

실제 한국군이 동원되는 이벤트라면 몰라도, 가상의 로봇들이 가상의 괴수를 상대로 싸우는 이벤트 정도는 어디까지나 게임 회사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는 이벤트이니까요.

하지만 한가지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한국 해군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한국 해군이 동해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 즉시 일본 해군을 출동시켜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정부를 움직여 경거망동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죠.

이번 이벤트에서, 한국 해군의 개입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상혁의 약속을 받은 코노 야로는 만족한 표정으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비록 일본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설사로 인해 반쯤 시체같은 몰골이 되긴 했지만, 그것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재치 넘치는 협상으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의 뇌리에 한국의 영토로 영원히 낙인될 뻔한 다케시마가 단순한 이벤트 장소로 남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 입지가 튼튼하지 않은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정치적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일본 정부와의 충돌을 우려하여 독도 앞바다에서의 2차 침공 이벤트에 한국 해군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

[국방 대신 코노 야로의 놀라운 협상력.

파국으로 치닫던 양국의 대치를 한순간에 화해 무드로 바꾸다.]

[해군의 지원 없는 해상전.

PTW는 어떻게 이 이벤트를 이끌어 나갈 것인가?]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 코노 다로에 의해 양국의 협상 내용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 뉴스를 접한 일본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한국의 국민들은 분노의 포효를 내뱉었다.

그리고 PTW는, 그 폭풍의 한 가운데 우직이 서서 ‘PTW는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판단을 존중합니다.’라는 메시지만을 내놓은 채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자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PTW의 팬들은, 그런 PTW의 공식 대응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PTW의 대응은 솔직히 매우 실망스러웠다.

콘솔 셧다운제와 인터넷 검열에 맞서 용맹하게 목소리를 내던 PTW의 모습은 대체 어디 간 거지?]

[PTW도 PTW지만 대한민국 정부도 그렇지.

아무리 국가 간 충돌이 무섭다 하더라도, 이건 독도가 걸린 문제인데, 이미 약속한 해군 파견을 그렇게 멋대로 취소해도 되나?

자국의 영토 하나도 지키지 못할 거면 군대는 왜 있는 거야?]

[아 뭔가 전함이 엄청 동원된 화려한 해상전을 기대했던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와중에서도, 상당수의 PTW 팬들은 PTW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할지는 몰라도, 그들이 아는 PTW라는 회사는 절대 게이머의 믿음을 배반하는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기억하는 PTW는 한다면 하는 사람들의 집단이었고, 눈앞의 힘에 절대 굽히지 않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딥 다이버 발표 때 헤지펀드랑 붙었던 사건도 그렇고, 셧다운제 때 여성가족부랑 붙었던 사건 때도 그렇지만, PTW는 지금처럼 조용히 침묵할 때가 가장 무서운 회사야.

분명 뭔가 하겠지.

그리고 그건 엄청나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결과가 될 테고.]

[믿음이 부족한 그대여. PTW를 믿으라. 그들은 언제나 받은 믿음의 수십 배 이상을 갚아주는 회사이니···.]

[다른 회사도 아니고 ‘그’ PTW인데, 당연히 뭔가 하겠지.

걔들이 이대로 지고 가만있을 것 같냐?]

수많은 억측이 오가는 중에도, PTW는 묵묵히 웹 드라마를 통해 수중전 트레이닝을 받는 레비아탄 멤버들의 모습을 공개하며 이벤트가 취소되지 않았음을 전 세계에 어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대한민국 해군의 참가 취소에도 불구하고 이벤트가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할 만큼, 엄청난 임팩트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콰콰콰콰아아아앙-

물속을 가르는 수십 개의 어뢰가 동시에 터져나가고, 폭발 점에서 발생한 거대한 기포가 빛과 함께 터져나가는 모습은, 대기 중에서의 전투 이상으로 박진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거대한 괴수의 신체에 앵커를 박아넣고 수십 노트의 속도로 심해를 가르는 나이츠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역동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거기에 레비아탄 멤버들이 주력으로 사용하는 ‘미사일 중시’의 세팅이 가진 화려함은, 그런 훈련 장면의 화려함을 몇십 배로 더해주고 있었고.

그 화려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거 전함 같은 거 굳이 참전 안 해도 충분히 볼만한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기에 팬들 사이엔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해군의 부재를 나이츠의 화력 강화라는 방법으로 대응하려는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돌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전 세계 팬들의 주류 의견이 되었다.

뉴욕 이벤트에서 화려함을 보조했던 미군 같은 조력자의 존재가 빠진 만큼, 부족한 화려함을 나이츠의 화력으로 보충하면 될 문제였기에.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다 같이 한 마음으로 그것이 PTW의 결정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믿음 속에서,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다.

뉴욕 이벤트로부터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난 시점에, 대한민국의 작은 섬 독도 앞바다에서, 전 세계를 배경으로 PTW에서 선정한 나이츠 파일럿들이 가상의 마수와 AR 배틀을 벌이는 ‘퍼스티스트 프로젝트’의 2회차 방어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에서의 협상 타결 이후로 엄청난 지지를 얻어낸 코노 야로 방위 대신은 잘 쓸 줄도 모르는 딥 다이버까지 껴 가며 이 빅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구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이벤트는, 그가 총리의 자리까지 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준 소중한 이벤트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즐거운 기분으로 기자들까지 초대하여 자신의 방에서 이벤트 감상회를 마련한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이벤트 시작의 카운트 다운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예고한 시간이 되자, 마치 실제로 만져질 것만 같은 거대한 바다와 그 한가운데 있는 두 개의 바위섬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것이 PTW의 기술력인가.

진짜 엄청나네. 바다 냄새까지 맡아질 것 같아.’

잠시 그 뛰어난 그래픽에 감탄하고 있던 그는 카메라의 시점이 수중으로 전환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그리고는 그 모습을 기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짜 물속으로 뛰어드는 줄 알았네.’

스크린이 아닌 망막에 직접 투사하는 형태로 영상을 재생하는 딥 다이버의 특성상, 딥 다이버를 사용한 VR 영상은 시야각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코노 야로는 시야가 닿는 공간 전체가 독도 앞 바다의 심해로 변한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헤엄치는 수많은 물고기와 오징어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낮은 밝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어야 하는 모습이었지만, PTW에서 시청자들이 심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영상의 밝기를 크게 올려놓았기 때문에, 영상은 마치 티 한 점 없는 남태평양의 얕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밝은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코노 야로는 마침내 일본 정부를 그토록 애먹이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규오오오오오오오-

마치 머릿속의 뇌에 직접 전달되는 듯한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서서히 심해 안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거대한 존재.

고래의 형상을 닮았지만, 지구상의 그 어떤 고래와도 닮지 않은 그 존재는, 온몸에 바위 같은 갑주를 두른 채로 심해의 깊은 바다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는데요!”

“으아악!”

그 순간, 코노 야로의 집무실에 앉아 있던 몇몇 기자들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코노 야로는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그 깊은 심해를 가득 메울 것처럼 거대한 크기를 가진 이형의 생물이, 그 커다란 눈으로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본 그 생물의 눈에 담긴 감정.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 대한 끝없는 증오 그 자체였다.

“나이츠는?”

“PTW는 아직 출동하지 않은 건가?”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적인 마수의 모습에 당황한 기자들이 소리치는 사이, 괴수는 그 거대한 덩치를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속도로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그리고는 그 거대한 입을 벌려 눈앞에 있는 작은 존재를 삼키려 시도했다.

끔찍하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괴수의 입안을 보며, 코노 야로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뒤로 물러서려 시도했다.

그러자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카메라가 괴수의 정면에서 빠르게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휴.”

“물리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이지 얄미운 회사이긴 합니다만, 기술력 하나는 인정해줘야겠네요.”

그때, ‘퍼어엉’ 소리와 함께 심해에서 다시 수면으로 뛰어오른 카메라가 수면 가까운 곳을 비추기 시작했다.

마치 그곳에 뭔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잠시 후, 코노 야로는 왼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바다를 가르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카메라가 이동하는 순간, 그가 세상에서 가장 바라지 않던 것이 카메라의 정면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대한민국 해군 소속 3천 톤급 구축함 DDH-971 광개토대왕함, DDH-972 을지문덕함, DDH-973 양만춘함.

대한민국 해군 소속 5천톤급 구축함 DDH-975 충무공 이순신함, DDH-976 문무대왕함, DDH-977 대조영함, DDH-978 왕건함, DDH-979 강감찬함, DDH-981 최영함.

대한민국 해군 소속 1만 톤급 구축함 DDG-991 세종대왕함, DDG-992 율곡이이함, DDG-993 서애류성룡함까지.

이름만 따지면 대한민국 위인전의 절반은 차지할 법한 수많은 전함이 동해 바다를 가르며 일제히 카메라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만재 배수량 1만 9천톤급 강습 상륙함이자, 이번 작전 지역인 ‘독도’의 이름을 딴 거대한 함선.

‘LPH-6111 독도함’이 마치 기함같은 모습으로 그 거대한 진형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코노 야로는 당황하며 급하게 소리쳤다.

“대체 대한민국 해군이 저렇게 접근할 때까지 일본 해군은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

“당장 알아봐! 아니! 내가 직접 알아보지!”

분노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든 코노 야로는 일본 해군을 지휘하는 해군 참모 총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그에게서 황당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한국 해군은 움직인 적이 없다고?”

“확실합니다!”

“그럼 내가 보고 있는 건 뭔가!”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PTW에서 만든 가상이 함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상이라고?!”

코노 야로는 지금도 자신의 눈 앞에서 펼져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을 보며 말했다.

“저게?!”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가상 사물을 만드는 것은 PTW의 특기 중의 특기입니다.

한국 해군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니, 아예 군대 자체를 가상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일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 보이는 그것이고요.”

“일본 해군은?!”

“지금 출동해도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전투가 끝날 겁니다.

한국 해군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일본 해군도 각자의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젠장!”

만약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 해군을 출동시킬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해역’에 대규모의 군사력을 동원하는 ‘무력시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일본 정부는 고작 게임 회사의 가상 이벤트에 대응하기 위해 ‘진짜 군대’를 출동시킨 머저리처럼 보일 것이었다.

코노 야로는 완전히 PTW의 농간에 당했다는 생각을 하며, 코노 야로는 이빨에서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힘을 주어 이를 깨물었다.

같은 시각, 한국에서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상혁은 대형 스크린을 가득 메운 한국 해군의 함정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록 한국 해군의 협조는 얻지 못했지만, 어찌 되었건 자신이 원하건 결과는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혁의 곁에는, 비슷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민준이 서 있었다.

“상혁아.”

“응?”

“넌 한국 해군이 빠진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지?”

민준의 질문을 들은 상혁은 왜 당연한 것을 묻냐는 표정으로 민준을 향해 되물었다.

“당연한 거 아냐?”

“네 생각을 알았더라면, 코노 야로는 당연히 VR로 구현한 해군도 동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겠지?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

“글쎄, 일단 그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아.”

“어째서?”

“팩스랑 도장도 못 버리고 은행 프로그램을 디스켓에 저장하는 나라의 대가리라는 인간이, VR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니까.

조금만 게임이나 가상현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가상현실을 통해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겠지.

하지만 코노 야로 그놈은 달라.

우린 현실에 살면서 가상의 세계를 보지만, 그놈은 현실에 살면서 현실의 것밖에 보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아예 그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군?”

“그렇지.

원래 멍청한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수만 막을 수 있으면 쉽사리 승리를 단정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신의 손을 천천히 귓가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귀에 있는 이어폰에 손을 대고 ‘첫 번째 명령’을 하달했다.

“전 레비아탄 파일럿.

독도함으로부터 독도 심해를 향해 강습 준비.”

그렇게 말하는 상혁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1만 9천톤 급 강습 상륙함인 거대한 독도함의 갑판 위에서, 번쩍이는 전신을 드러내며 바다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는 12대의 나이츠의 모습이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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