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62화 (463/485)

462. 전탄발사

PTW에서 관객들의 이동을 위해 준비한 ‘특수 보호 차량’은, 기본적으로 현무와 나이츠의 전투에서 발생한 AR 데미지에 대한 방어력을 제공하는 장비였다.

그러나 그 제공되는 방어력이라는 것이 완전 무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특수 보호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수들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곡예 운전을 선보이며 현무가 이동할 때 발생하는 수많은 건물 파편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고 있었다.

눈으로 보기에 대충 밀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파편은 밀고 지나가고, ‘저건 박는 순간 뒈지겠다’싶은 파편은 핸들을 틀어 회피하면서.

그리고 그런 작은 파편들이 차량에 충돌할 때마다, 관객들은 차량 주위를 감싸는 투명한 에너지장이 무지개색으로 빛나며 파편을 밀어내는 모습과 함께 좌석에 전달되는 강한 충격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야 딥 다이버를 쓰고 있으니 운전사가 이렇게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차를 보면 음주 운전으로 신고할지도 모르겠네.”

“아무것도 없는 도로에서 눈에 안 보이는 장애물을 피해 곡예 운전을 하고 있으니 그런 건 당연한 거겠지.”

“그나저나 뉴욕시도 이벤트에 진심이라 다행이다.

맨하탄 시내를 수없이 걸어 다녔지만, 도로가 이렇게 텅 빈 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아.

주차된 차량은 몇 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대체 그 많은 차량을 어떻게 치운 거지?”

윤식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옆에서 유리벽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던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아, 그거! 내가 압니다! 나도 이 근처에 주차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한 건지 알고 있거든!”

“어떻게 한 거죠?”

“일단 이벤트 기간 중에 뉴욕시에서 현무의 경로에 해당하는 도로 전체를 주차 금지구역으로 지정했지.”

“그럼 차 뺄 데가 없어서 반발이 장난이 아니었을 텐데요?”

“그게 대단한 부분이라니까?

이 근처에 주차장을 지정받은 사람들은 전부 PTW에서 보낸 연락을 받았는데, 이벤트 기간 중 맨해튼 시내에서 차를 빼서 브루클린 쪽에 준비된 지정주차장으로 옮기면, 주차 지원금을 지급해준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이것도 준다고.”

남자는 입고 있는 점퍼의 지퍼를 내리려 안에 입고 있는 옷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정가가 300만 원에 지금은 매물이 없어 중고 거래 프리미엄이 400만 원 이상 붙어있는 KOH의 파일럿 슈트였다.

“지정 주차장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상 때문에 브루클린으로 차를 옮겼고, 불법으로 주차한 차량들은 뉴욕시의 집중 단속으로 차를 뺄 수밖에 없었지.

하루에 5번씩 나와서 주차단속을 하는데, 차를 안 치울 수 있었겠어?”

“그게 이 마법같이 텅 빈 도로의 비밀이었군요.”

“정말이지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는다니까.

이 차량만 해도 그래.

안에서 밖을 보기 쉽도록 특수 아크릴로 차체가 제작된 데다, 차량 디자인부터 진짜 무슨 SF영화에나 나올법한 디자인을 하고 있잖아.

이거 한 대 만드는 것도 꽤 큰 비용이 들 텐데, 그걸 수백 대나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장애물이랑 충돌할 때 발생하는 이펙트까지 추가하다니.

다른 회사 같으면 그냥 아무 지원도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대충 버스 몇 대 빌려서 겉만 대충 칠한 다음 투입했겠지.”

“다른 회사 같으면 이런 AR 이벤트 같은 걸 진행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네.

자네 마음에 드는군?

혹시 자네도 PTW 팬인가?”

그러자 윤식의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캐롤라인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엄청난 팬이죠. 아마 여자친구인 저랑 PTW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PTW를 고를걸요?”

“하하하! 아가씨는 거기에 불만이 없고?”

“같은 상황이면 저도 그렇게 할 테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저희가 만나게 된 것도 PTW의 게임이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된 거니까.”

“그럼 이 이벤트는 두 사람에게 한없이 즐거운 이벤트겠구먼.

그런 두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딱 하나밖에 없어.

즐기게.

오직 게이머를 즐겁게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진정한 미친놈들이 제공하는 멋진 이벤트를,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받아먹는 게 PTW 팬들이 가져야 할 본연의 자세니까.

그리고 너무 직관 모드만 돌려보지 말고, 방송 모드도 중간마다 돌려보라고.”

“방송 모드를요?”

PTW에서 제공한 딥 다이버의 이벤트용 어플리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이벤트를 관람할 수 있는 두 가지 모드를 지원하고 있었다.

하나는 지정된 범위 내의 현장에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이벤트를 지켜볼 수 있는 ‘직접 관람 모드’.

나머지 하나는 이벤트 현장에 없어도 PTW에서 준비한 드론 캠과 설치형 카메라, 파일럿들의 콕핏 내부 카메라 등의 다양한 카메라 시점으로 이벤트의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게 편집되어 제공되는 ‘방송 모드’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방송 모드는 이벤트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되는 모드라고 생각한 윤식과 캐롤라인은 기왕 현장에서 이벤트를 지켜보는 김에 직관모드로만 이벤트를 감상하는 중이었다.

“물론 방송 모드가 직접 보는 느낌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직관 모드랑은 다르게 편집된 영상이 나오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시점에서 볼 수 있거든.

예를 들면 지금 저 멀리 앞에서 거대한 홀로그램 영사기를 든 채 미친 듯이 욕을 하며 몬스터를 유도하고 있는 즈라드 파일럿의 모습이라던가, 조금 전에는 미 7함대 지휘통제선의 내부 모습이나 대통령과의 통신 내용도 나왔지.

항모에서 F35가 방어 작전을 위해 긴급 출동하는 모습도 나왔고.

물론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직관 모드는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긴 하지만, 방송 모드는 직관 모드로 볼 수 없는 영화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고.

둘을 교대로 돌리면서 보는 게, 이 이벤트를 100%제대로 즐길 수 있는 비법인거지.”

“오, 그건 몰랐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윤식은 남자의 말대로 바로 모드를 변경하기 위해 검지와 약지를 편 상태로 허공에 손을 내렸다.

그것은 MYOM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카메라 전환 기능 호출 제스쳐였는데, PTW에서 개발되는 VR 게임은 대부분의 옵션 호출 방식이 MYOM에서 파생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어떤 게임이나 앱을 실행하든 별다른 설명 없이도 같은 모션으로 카메라 설정을 변환할 수 있었다.

그러자 윤식이 기대한 대로, 윤식의 눈앞에 세 개의 커다란 화면이 등장하며 그의 선택을 기다렸다.

윤식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을 그대로 축소한 듯한 모습의 ‘직접 관람 모드’.

그리고 현재 방송 중인 카메라의 시점으로 현무 바로 앞에서 질주 중인 즈라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방송 모드’.

마지막이 직관 모드의 한쪽에 별도의 창을 띄워 방송과 직관 상태를 한번에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듀얼 모드’.

잠시 고민하던 윤식은 3번째 화면을 선택했다.

방송에서 나오고 있을 내용도 분명 흥미진진해 보이긴 했지만,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압도적인 현장감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자 윤식의 시야 한쪽에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 영상이 홀로그램 창 형태로 등장했고, 윤식은 능숙한 동작으로 그것의 크기를 적당히 조정한 후 내용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여러 카메라의 시점을 돌아가며 보여주고 있는 방송모드에서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PTW의 마스터 클래스 사운드 엔지니어 남성연이 깔아둔 이벤트 음악을 배경으로 다양한 장소에 있는 이벤트 관계자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지금 방송으로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진짜 재미있게 보고 있겠네.’

대체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음악의 템포가 바뀌는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장소의 내용이 재생되는 방송모드의 퀄리티는 도저히 그것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방송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시각, PTW의 직원이자 마스터 클래스 영상 편집자인 신희준은 무려 150개의 영상화면을 눈앞에 띄워놓고 미친 듯이 시선을 돌려가며 방송 모드에 재생시킬 영상을 실시간으로 선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수백 번 이상 들어 자면서도 흥얼거릴 수 있을 수준의 배경음악의 템포 변화를 머릿속으로 의식하면서, 영상의 긴장감과 흥미를 최대한 끌 수 있도록 150개가 넘는 카메라에 연결된 실시간 영상 중 가장 최적의 영상을 골라 방송으로 송출하는 작업이었다.

‘5초 후에 72번 카메라.’

‘23번 카메라로 달려가는 나이츠의 얼굴 측면을 재생.’

‘거기서 바로 콕핏의 사이드 카메라로 파일럿과 나이츠의 옆 모습을 페이드 인.’

‘15초 뒤 BGM 분위기 변경.

긴장감 넘치는 낮게 깔리는 배경음.

여기서는 출동 준비 중인 미군을 배경으로 46번 카메라로 전환하자.’

“46번 카메라의 미군 지휘관이 연설을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녹화 시작했다가 원하는 타이밍에 6번 클립보드로 재생해줘.”

“알겠습니다.”

“희준 씨. 지금 촬영된 14번 카메라 영상이 44번 편집 점 분위기랑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40번대 클립보드에 넣어놔.

확인해보고 더 나은 영상이 없으면 그걸로 재생 예약하고.

아직 전투 개시는 없나?

37번 편집 점에 뭔가 좀 터지면 좋겠는데.”

“7함대 전투기가 항모에서 보급중인데 잠시 후면 재출격 가능할 겁니다.”

“좋아. 1차 클라이막스는 현무가 보낸 설발대와 미 공군의 대결이었고, 2차 클라이막스는 나이츠의 등장.

다음은 3차 클라이막스입니다.

예상 타이밍은 1분 12··· 11···

배경음 템포 맞춰주시고 타임스퀘어 광장에 현무가 진입하는 순간 음악 볼륨이랑 분위기 전환해주세요.”

“예정된 대로 거기서 3번 BGM으로 변경하겠습니다.”

작업에 달라붙은 영상 편집자만 12명.

그중 마스터 클래스의 작업자가 무려 3명이나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의견 충돌 같은 것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의견이 있으면 무조건 선착순으로 먼저 낸 사람이 고른 영상을 재생한다.’라는 기본 원칙이 깔린 상태에서, 모두가 자신이 맡은 파트를 위해 정신없이 작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작업은, PTW에서 이번 작업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가상 작업실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편집 영상 보냅니다.”

한 작업자가 눈앞에 있는 영상에 손을 대고 주먹을 쥐자, 펼쳐져 있던 영상이 무지갯빛 구슬로 변환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것을 들고 뒤편에 있는 신희준을 향해 집어 던졌고, 날아간 영상은 희준이 미리 지정해놓은 클립보드 영역으로 날아가 펼쳐지며 8배속으로 재생되었다.

그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영상을 곁눈질로 훑어본 희준은 그것을 대기 중 영상 영역으로 옮겨놓고 다른 영상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주변엔 그가 영상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단축키들이 홀로그램 버튼의 형태로 그를 감싸고 있었다.

‘키보드와 마우스만 가지고는 절대로 이 정도 편집 작업을 실시간으로 하는 건 불가능했겠지.’

범배가 만들어준 이 가상의 편집 스테이션은 그 많은 카메라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편의성을 제공해주었다.

영상편집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하나의 버튼이나 오브젝트로 구현하여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희준은 보고 있던 영상의 화면에 손을 댄 뒤 자신의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영상의 모습이 길쭉한 길이의 필름 같은 형태가 되었고, 희준은 그것을 보고는 앞쪽의 필요없는 부분을 손으로 잡아 확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중앙의 특정 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확 잡아 늘였다.

그러자 해당 장면의 재생속도가 느려지며 마치 슬로우 모션같은 영상으로 변경되었다.

만지고, 찢고, 자르고, 던지고, 합친다.

마치 SF 시대의 영상편집이란 이런 느낌이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으로, 편집팀에서는 실시간으로 촬영 중인 수천 개의 영상 클립을 ‘손으로’ 만져가며 하나의 완성된 영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는, 마찬가지로 사운드 팀을 위해 완성된 VR 스튜디오에서 실시간으로 작업 중인 남성연과 그의 팀원들이, 눈 앞에 펼쳐진 수천 개의 사운드 클립과 씨름하는 중이었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66번의 볼륨을 줄이면서 타이밍 맞춰 42번으로 바꿔.”

“42번의 시작 부분에 있는 팀파니 소리와 66번의 중간 부분에 있는 팀파니 소리가 교차되는 부분에서 교체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3차 클라이막스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영상팀의 판독 결과로는 40초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럼 23초 후에 재생되는 반복 구간을 3번 더 반복시켜.

원하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클라이막스 파트가 터질 수 있도록.

가장 좋은 타이밍은 현무가 타임 스퀘어 광장에 진입하는 정면 카메라가 돌아갈 때 하이라이트 파트가 재생되는 거야.”

“사후 편집도 아니고 그걸 임의로 맞춘다는 건 진짜 미친 발상입니다.”

“연습 많이 했잖아.

나이츠 파일럿들도 고생을 많이 했지만, 우리도 한 달 내내 이 지긋지긋한 가상공간에서 먹고 자면서 수천 개의 사운드 클립 내용을 달달 외워야 했다고.

난 X발 이제 영화 볼 때도 원래 음악이 아니라 ‘이 장면에서는 몇 번 클립 써야겠네!’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유감이지만 저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무슨 PTSD도 아니고.

결과물이 실시간으로 나아지는 모습이 없었으면, 당장이라도 이 미친 계획을 취소하라고 했을 겁니다.”

“근데 나아졌잖아.

재미도 있고.

뭔가 실시간으로 콘서트를 하는 느낌이 들지 않아?”

“젠장.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죠.

10초 후 현무가 진입합니다.

5··· 2··· 1··· 지금!”

그 순간, 방송화면에 현민의 도발을 따라 타임 스퀘어 광장에 진입한 현무의 얼굴이 정면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완벽한 싱크’라고 밖에는 다른 표현이 불가능한 그 타이밍에, 마치 이 장면을 위해 미리 준비한 것 같은 긴박한 배경음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PTW의 홈페이지에서 그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팬들은, 그 완벽한 편집으로 제공된 영상을 보며 잔뜩 흥분한 채 채팅창을 마구 도배하고 있었다.

-X친 내가 지금 애니를 보고 있는 거야 아니면 실시간 영상을 보고 있는 거야?!-

-음악 변하는 타이밍 오졌고요, 카메라 연출도 지렸고요!-

-이게 녹화방송이 아니라 실시간 중계라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무슨 SF 애니메이션의 매드 무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네.-

-그 좋은 타이밍에 미군도 재합류했다아아!!-

채팅에 올라온 누군가의 외침처럼, 타임 스퀘어 광장에 도착한 현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재보급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온 미 7함대의 전투기 들이었다.

그들은 준비가 되는 대로 바로 현장에 합류한 1차 방어전 때와는 다르게, 일부러 합류 타이밍을 맞춰 한 번에 타임스퀘어 광장 상공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여기서 전투기 콕핏 내부 캠으로 전환.”

희준이 카메라를 변경하자 영상의 시점이 전투기를 몰고 있는 조종사의 워 다이버의 조종사 시점으로 화면으로 변경되었다.

그러자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전투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현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나이츠들은 타임 스퀘어 광장에 준비된 충전 스테이션에서 재충전 작업에 들어갑니다.

재출발까지 필요한 시간은 20초.

그 안에 현무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벌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때, 조종사의 귓가에 나이츠에서 보낸 통신 메시지가 전달되었고, F35를 몰던 파일럿은 그런 나이츠 파일럿의 목소리를 듣고 조종간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20초 정도는 어렵지 않지.

거기 서서 세계 최강 미 공군이 가진 미친 화력 쇼를 감상하라고.

전 편대원에게 전달한다.

신호하는 순간부터 20초간 가능한 모든 화력을 타겟 정면에 집중적으로 투사하도록.”

-기스도 안 날 것 같은데요?-

“조금 전엔 화력이 집중되지 않아서 그렇다.

이번엔 다를 거야.

일단 불평하지 말고 해 보자고.

아마 평생 전투기를 몰더라도 저런 고질라 짭퉁을 상대로 가진 미사일을 전부 쏟아 붓는 경험은, 오늘 이후로는 절대 겪지 못할 테니까.”

-라져(ROGER). 지금 즉시 타임스퀘어 상공으로 선회비행하며 신호를 기다리겠습니다.-

“대기 중인 A10도 같은 신호에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

주변 건물에 피해를 주지 않는 고도에서 기관포로 진입을 저지하라.”

-공격 준비 완료.

명령만 내리십시오.-

“현장에 있는 알파 브라보 찰리 팀에서 지휘 본부에.

지금부터 타겟 ‘현무’를 상대로 공대지 전투에 들어갑니다.

목표는 타겟의 파괴 혹은 타임 스퀘어 광장으로의 진입 저지.”

-준비되는 대로 현장 판단에 의해 공격을 개시할 것.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 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타겟의 제거가 아닌 뉴욕 시민의 보호이다.

정확히 본체를 노릴 수 있는 견적이 나오지 않을 시에는, 무리한 공격을 지양하라.

내 말 알겠나?-

“알겠습니다(Copy that).”

긴장감 넘치는 조종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윤식은 진작 방송 모드를 켜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재생되는,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BGM도 그렇지만, 현장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이런 대화나 장면들이 이벤트의 분위기를 더욱 더 살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윤식은 굳이 방송 화면을 메인으로 돌려놓지는 않았다.

물론 PTW의 괴물 같은 작업자들이 실시간으로 편집해서 제공하는 방송 화면도 엄청나게 재미있어 보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더욱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이벤트를 구경하고 있는 관객들 모두는 마치 홀린 것처럼 뉴욕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슈와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을 찢을 듯 가까이서 들려오는 전투기의 제트 엔진 소리.

에어쇼에서도 겨우 몇 대 정도만 동시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 최신형 전투기 수십 대가, 동시에 뉴욕 상공을 선회하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장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멋진 것은, 오로지 날아다니는 것이 목적인 에어쇼와는 다르게 그 전투기들이 단 하나의 타겟을 목표로 일제히 기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보다 엄청난 위압감을 전달하고 있었다.

“전 편대원 일제 공격 개시!”

-공겨어어억!!!!!!(Firrrreeee!!!)-

현재 출동한 함재기들은 오로지 지상의 타겟인 현무를 상대하는 것을 상정하여 세팅된 상태로 출격했기 때문에, 첫 출격 때와는 다르게 전 무장을 공대지 무장으로 변경하여 출격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많은 공대지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던 전투기들은 그 압도적인 화력을 동시에 현무에게 쏟아내었고, 그것들은 실제 미사일이 아닌 PTW가 제공한 AR 미사일과 탄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펙트를 전달하며 엄청난 장관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폭스 알파 전탄 발사 완료.

-폭스 브라보 전탄 발사 완료.-

-폭스 델타 전탄 발사 완료.-

-데인저 제로. 선회하여 재공격에 들어갑니다.-

단 몇 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화력을 투사한 전투기들은 그 거대한 현무가 가려져 안 보일 정도의 거대한 폭염을 피해 뉴욕 상공을 길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공격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엄청나네.-

-일반적으로는 저 정도 공격을 쏟아 부을 타겟이 없으니까.

물론 저게 시뮬레이션된 이미지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로 쏘면 저런 느낌이긴 하겠군.-

-주변 건물에 있는 유리창이 전부 박살났는데요?-

-그것도 AR 이미지야.

하지만 엔진 소음으로 인해 유리가 파손될 수 있으니, 너무 저고도로 비행하지는 말도록.

현재 관찰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편대원은 적의 상태를 보고하라.-

-타겟 침묵. 전진하지 않습니다.-

-폭발로 인한 구름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만, 죽은 게 아닐까요?-

-설마. 진짜 미사일도 아니고, AR 미사일인데 적어도 마무리는 나이츠들이 해치울 수 있게 화력을 조정했겠지.-

-그 정도의 폭격이었습니다. PTW의 계산 미스로 죽었을지도?-

-진짜 해치웠나?!-

죽은 보스도 다시 부활시킨다는 ‘그 대사’에 대한 화답으로, 현무는 검은 구름 속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밝은 빛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본 편대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타겟이 살아있다!!

전원 즉시 산개하라!!-

만약 현무의 브레스가 직선으로 나가는 일반적인 공격이었다면, 능숙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그 공격을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분노한 현무가 뿜어낸 노란 빛의 브레스는 채찍처럼 길게 뻗어져 나가 도망치는 전투기들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초음속 기동을 위해 애프터 버너를 사용한 F35의 속도를 아득하게 상회하고 있었다.

-죽는다아아아!!-

-진짜가 아니야! 그냥 이벤트 모드만 종료되는 거니 맞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함대로 복귀하도록!-

-이런 X친!!! 놀라서 탈출 레버 당길 뻔했네!-

-파괴된 편대원들은 레이건호로 복귀하라.-

-20초는 아직인가?!-

-다시 옵니다!-

-젠장! 쿨타임이 왜 이리 짧아!-

-저건 기동으로는 못 피해!

본인이 타겟이면 아군 경로를 최대한 피해서 맞도록!-

-X바아아아알!!!!-

브레스를 쏜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재공격을 준비하는 현무를 보며, 한 파일럿이 욕설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콕핏 너머로 보이는 뉴욕 거리 한복판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해 보이는 수백 미터짜리 괴물이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괴물의 입에서는, 조금 전 세계 최강의 미군 전투기 5대를 한 번에 날려버린 ‘그 공격’이 머리를 내밀려 하고 있었다.

‘죽는다.’

물론 실제로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미 해군 소속 조종사로서, 그 역시 이런 대형 이벤트에서 멋지게 활약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그는, 오늘 저녁의 술자리에서 그 거대한 괴물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격추당한 사람들을 놀리는 그룹에, 자신이 속해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래도 행운의 여신은 그를 놀림받는 쪽에 배치할 생각인 것 같았다.

‘젠장.’

그는 당황하여 조종간을 꺾지 않도록, 조종간을 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피격 경로에서 아군이 최대한 덜 맞을 수 있는 장소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늦지 말아라.’

그때, 간절히 마음속으로 빌며 현무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 그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것은 온몸을 붉은색으로 물들인 채 거대한 양손 도끼를 잡고 건물 위로 뛰어 올라가고 있는 즈라드의 모습이었다.

그는 공중을 바라본 채 입을 벌리고 있는 현무의 바로 옆 건물 꼭대기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배틀 엑스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채 건물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 입!!!!!-

그렇게 멋지게 점프한 즈라드는, 40톤에 육박하는 나이츠 본체의 무게에 배틀 엑스의 무게까지 더해, 자신이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현무의 목을 자르기 위해서가 아닌, 현무의 브레스를 막기 위해서.

-닥쳐라아아아!!-

순간, 즈라드의 배틀 엑스에 콧잔등을 가격당한 현무가 입을 다물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마치 섬광탄이라도 터진 듯한 눈 부신 빛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관객들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머리를 마구 흔드는 현무의 목덜미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즈라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쿠우우웅!-

그 순간, 현무의 머리가 지면에 가까워진 타이밍에 아래로 뛰어내린 즈라드는 광장 바닥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남기며 지면으로 착지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홀리 프레일을 향해 도끼를 집어 던졌다.

-야! 이 X친놈아! 그걸 집어던지면 어떡해!!!-

자신을 두 동강 낼 기세로 회전하며 날아오는 배틀 엑스를 가까스로 피한 오다가 소리치자, 현민이 웃으며 답했다.

-미안! 대장!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고!-

-젠장. 됐어! 어쨌든 조금만 더 가면 센트럴 파크야!

어떻게든 거기까지 끌고 가!-

-맡겨주십쇼!-

그 순간, 다시 기동된 어그로 머신에서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이 뿜어져 나왔다.

거기엔 조금 전 자신의 배틀 엑스로 현무의 콧잔등을 후려친 현민이, 현무를 향해 가운뎃손가락 두 개를 동시에 내민 채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아프냐아아!!!??! 아프냐고!?!

고작 그거 맞고 뒈졌냐아아!

이 고래회충 같은 X끼야아아!!”

AI가 아닌 사람이 봐도 빡칠 것 같은 그 어이없는 모습을 보며, 오다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현민 씨가 쓴다면 저거 PVE가 아니라 PVP에서도 쓸 수 있겠군.”

그때, 미친 듯이 분노한 현무가 괴성을 지르며 현민을 향해 포효했다.

그러자 현민은 차가운 눈으로 콧잔등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절규하는 현무를 흘깃 바라본 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약 오르냐?”

-크워어어어어어어!!-

“죽이고 싶냐?”

-쿠우웨에에에엑!!!-

“그럼.”

세상의 분노를 다 품은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현무의 눈동자를 보며, 현민은 세상에서 가장 약오르는 미소로 현무에게 말했다.

“나 잡아봐~~~라!!!!!”

다시 시작된 현무와 즈라드의 술래잡기.

수백 미터짜리 몬스터의 이성을 완전히 날려버린 현민의 모습을 보며, 오다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역시 저거, PVP에서도 먹힐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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