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 전초전
“진짜 바글바글하네.”
고국인 한국을 떠나 뉴욕 시립대에 다니는 유학생 이윤식은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배터리 파크 근처를 바라보며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원래부터 이곳은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모인 관광객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긴 했지만, 오늘처럼 사람이 많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배터리 파크는 자유의 여신상을 관람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위한 일종의 중계 지점에 가까웠다.
이곳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와의 이곳 간의 거리 때문에 실제로 보면 실망할 정도로 그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이 매우 작게 보이는 곳이 바로 배터리 파크였기 때문에.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부푼 마음으로 여객선을 기다리고, 잠시 후 리버티 섬으로 가 ‘진짜’ 자유의 여신상을 관람하는 것이 뉴욕 관광의 정석적인 코스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여객선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윤식은, 대충 보기에도 수십만은 되어 보이는 그 바글바글한 인파를 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많은 인원이 딥 다이버를 쓰고 있으니 뭔가 SF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PTW에서 출시한 증강현실 디바이스인 ‘딥 다이버’를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일제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관중들.
전 세계에서 몰려온 가지각색의 인종들로 구성된 그 관중들의 정체는, 당연하게도 오늘 진행될 ‘퍼스티스트’의 도시 침공 이벤트를 보기 위해 모인 PTW의 팬들이었다.
“헤이. 윤식. 이 많은 사람이 네 고국인 한국의 게임 회사 때문에 이 자리에 모여있다는 게 믿어져?”
그때, 같은 대학에 다니는 친구인 캐롤라인이 윤식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윤식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PTW는 한국인이 보기에 한국 기업이 아니라 그냥 외국 기업 같은 느낌의 회사야.
애당초 노는 물이 너무 글로벌한데다, 예전에 규모가 작았을 때는 NE 컨벤션도 미국에서 진행했을 정도니까.
한국은 그나마 PTW 때문에 지금 수준의 콘솔 패키지 시장이 형성된 거지, 예전엔 거의 PC 온라인 게임만 강세인 나라였다고.”
“그런가? 그래도 만약 내가 PTW가 있는 천하대에 다니고 있었다면 난 매일 그 회사가 있는 방향으로 놀러 갔을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본 거지만 천하대 학생들은 편하게 PTW에서 고액 아르바이트를 소개받거나 구내식당에서 싸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들었어.
게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PTW 직원들하고 친해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고.
취업자 비율도 천하대 출신 비율이 높다며?”
“그나마 높은 편이라는 거지 PTW 자체는 원체 다양한 사람들이 취업하는 회사라 딱히 특정 학과나 대학을 나왔다고 대우해주지는 않아.
애당초 PTW는, 게임 회사 출신 경력자를 잘 뽑지 않는 거로 유명하니까.”
“그건 처음 듣는데? 어째서 그런 거야?”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저것 때문이겠지.”
윤식이 손을 뻗어 가리킨 곳에는, PTW에서 미리 준비해 둔 8미터 정도 크기의 거대한 상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나이츠와 거기에 탑승하는 나이츠 파일럿이 탑승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상자의 주변에는,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상자 근처로 접근하는 관람객을 통제하는 PTW 직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게임 제작자 출신의 인간들이라면, 아마도 실물 크기 로봇을 만들어보자거나 그걸 가지고 이런 식의 대규모 AR 이벤트를 진행해보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애당초 지금 네가 매일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PTW의 웹 드라마도, 게임 제작자 출신이 아닌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의 직원이 편집을 맡았다고 들었고.
웹 드라마에서 나이츠 훈련 교관으로 등장한 구스타프 씨도 아예 중세 검술을 연구하던 검술 오타쿠 출신이었다고 들었어.
거기에 파일럿들에게 제공되는 메뉴나 NE 컨벤션에서 제공되는 메뉴들을 개발하는 요리 연구가 출신 직원도 있고, 나이츠를 개발한 김기열 교수는 아예 게임이랑은 전혀 관계 없는 천하대 로봇 공학과 교수였지.
그것만 봐도, PTW가 일반적인 게임 회사랑은 완전히 다른 회사라는 걸 알 수 있지.”
“네 말대로 그 많은 사람이 게임 제작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면, 대체 그 명작 게임들은 누가 만드는 거야?”
“예전에 PTW를 다룬 다큐에서 본 내용인데, 애당초 PTW는 게임 제작 과정에서 특별한 게임 제작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 방향으로 게임을 개발한다고 하더라고.
그런 회사에서 만든 게임이니까, 리얼 엔진이란 물건이 초보가 아무렇게나 다뤄도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괴물 같은 게임 엔진이 된 거지.
일반적으로 게임 회사의 개발자라는 건, 기획자라면 기획서 작성을 잘 하고 엑셀과 함수를 마스터하며 간단한 스크립트 언어를 익히는 등의 전문 기술을 요구받고, 프로그래머는 다양한 엔진에 대한 이해와 다루는 언어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요구받지.
하지만 PTW에서는,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전부 AI와 게임 엔진이 처리해버리니까, 개발자가 단순히 무언가를 원하는 대로 구현하기 위해 기술적인 면을 붙잡고 몇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돼.
그 말은, 수없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로지 재미에만 집중한 채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엄청난 애정이 느껴지는데.”
“내 꿈 중의 하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PTW에 입사하는 거니까.
관련 정보는 빼놓지 않고 체크하고 있지.”
“그래서, 미래의 PTW 직원씨가 보기에 오늘 이벤트는 어떤 느낌일 것 같아?”
그녀의 질문을 들은 윤식은 저 멀리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으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PTW에서 진행하는 모든 이벤트는 지금까지 세상그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이벤트였다는 거야.
그러니 오늘의 이벤트도,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역대급 규모의 이벤트가 되겠지.
보급을 핑계로 삼기는 했지만, 태평양을 지키고 있어야 할 미 7함대가 뉴욕 앞바다로 이동한 것을 보면 확실하지.”
“PTW에서 군을 끌어들였다는 거야?”
“7함대가 뉴욕 근처에 정박 중이라는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나도 믿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 먼 거리를 이동해서 지금 뉴욕 근처에 와 있잖아?
심지어 이곳 근처엔 미국을 위협하는 어떤 세력도 접근하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지.
항모 전단을 이동시키는 건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야.
그걸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바이던 행정부가 세금을 날리면서 굳이 뉴욕 앞바다로 끌고 온 데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지.
세계 최강의 함대라는 미군 7함대가 아니라면 막을 수 없는, 엄청난 위협이 뉴욕을 덮칠 예정이라던가.”
“시간은 얼마나 남았어?”
“약 10분 정도.
저기 보여? 안 그래도 방송국 카메라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잡으려고 이동 중이야.
곧 이벤트가 시작된다는 소리지.”
“하지만 그 마수라는 존재는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잖아.
방송 카메라로도 그게 촬영이 돼?”
“저기 카메라마다 옆에 달린 혼자 SF 틱하게 생긴 보조 장비를 달고 있지?
저게 이번에 PTW에서 방송사에 배포한 장비인데, 저걸 카메라에 끼우면 방송으로 촬영한 이미지에 딥 다이버로 송출해야 하는 AR이미지를 즉석에서 합성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줘.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들은 PTW에서 배포된 앱을 깔면 본인 휴대폰으로도 이벤트 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진짜 준비를 엄청나게 많이 했구나.”
“그게 바로 한국의 자랑이자 전 세계 게이머들이 가장 사랑하는 게임 회사.
PTW의 스케일이니까.”
“그런데 윤식. 몬스터는 리버티 아일랜드 남쪽에서 출현할 예정이었지?”
“응.”
“그럼 리버티섬에서 보는 게 가장 잘 보이지 않을까?”
“그야 몬스터의 등장에 한정하면 그렇겠지만, 문제는 몬스터가 이동을 한다는 거야.
리버티섬에서 아무리 빨리 배를 타고 이동해도 맨하탄 섬에 도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 실제로 리버티 아일랜드에서 감상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마수의 등장 장면만 보고 가장 중요한 전투 장면은 놓치게 되는 거지.
중요한 건 이벤트를 전부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최대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며 이벤트를 관람하는 거야.
만약 내가 있는 자리를 몬스터가 공격해서 사망 판정이 뜨면, 그 순간 딥 다이버로 이벤트를 지켜볼 수 없게 되니까.”
“데스 패널티 같은 거네?”
“맞아. 그러니까 몬스터가 도착하면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몬스터의 진행 방향으로 이동해야 해.
오늘 이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위해서는, 절묘한 위치 선정이 가장 중요하거든.”
“그래서 전동 킥보드를 가져오라고 한 거구나.
내 남자친구 똑똑한데?”
“잠시 후면 더 반하게 될 거야.
오늘은 내 덕에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라이브 이벤트를,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게 될 테니까.”
반짝이는 눈으로 먼 바다를 바라보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보며, 캐롤라인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때만큼은, 게임 오타쿠이자 한국 남자인 윤식과 사귀기로 결심한 자신의 결정이, 매우 옳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
같은 시각.
미 7함대의 기함이자 미 해군을 통틀어도 단 두 대밖에 존재하지 않는 지휘 통제함 USS Blue Ridge에 타고 있던 칼 O. 토마스 해군 중장은, 함내 상황실에서 이벤트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표정은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는데, 세계 최강의 무력을 가진 미 7함대를 이런 장난 같은 이벤트에 동원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 최강의 함대라는 미 7함대의 사령관이라 할지라도, 미합중국의 군 통수권자인 조 바이던의 직접 지시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평소라면 거의 들를 일이 없는 뉴욕 앞바다에서,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초조한 기분을 느끼는 중이었다.
하지만 불만에 가득한 토마스의 표정과는 반대로, 함내에 있는 수병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는데, 그것은 이번 작전이 평소의 7함대가 절대 수행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7함대의 존재 목적은,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지 미사일로도 잡을 수 없는 거대한 가공의 괴수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마치 게임같은 기분으로 작전에 임하며, 워 다이버를 쓴 채 각자의 자리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건 호에서 대기 중인 전투기의 무장은 다 교체했나?”
“PTW에서 제공한 무기로 전부 교체했습니다.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그냥 통상 무기와 똑같이 생겨서 바로 교체가 되더군요.”
“그래 봤자 실탄도 나가지 않는 장난감이지 않은가.
난 이번 작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은 면도 있을지 모릅니다.
온갖 작전에 투입되는 7함대로서도, 다른 차원에서 온 미지의 거대 생물을 상대로 뉴욕을 수비하는 임무는 수행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쓸 수 없는 경험은 경험이라 할 수 없어.
대체 수백 미터 크기의 가상의 괴물과 싸운 전투 경험을 어디에 써먹는단 말인가.”
“정 그런 부분이 불만이시면 수병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레저 활동이라고 생각하시죠.
지금 작전에 참여한 모든 병사들은, 나름 즐거운 기분으로 이번 이벤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말인가?
젊은이들의 게임 감각이라는 건 이해할 수 없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몬스터가 도시를 침공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새까맣게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마음도 모르겠고.”
“비록 이벤트 자체는 가상의 현실에서 이루어지긴 하지만, 모든 게 가짜인 것은 아닙니다.
작전에 참여하는 나이츠 파일럿들은 진짜 인간이고, 그들이 탑승한 거대 로봇 나이츠도 한국의 경기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장비니까요.
다만 수십 톤에 달하는 실제 장비를 운용하여 이벤트를 진행하면 도시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가상의 로봇으로 괴물과 싸우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 미군도, 그 방어 작전에서 가상의 미사일과 탄환을 쏘며 나이츠 파일럿들을 돕게 될 거고요.”
“말 그대로 애들 장난인 거지.”
“그래도 워 다이버는 쓰셔야 합니다.
작전에 제공되는 정보는, 전부 이 상황실에 있는 모니터에 가공의 정보를 덮어씌워서 출력되는 정보니까요.
워 다이버를 착용하지 않고 계시면 사령관님이 보시는 화면은 아무것도 떠 있지 않은 평화로운 상황판의 화면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카메라맨이 촬영한 사령관님의 모습도, 워 다이버를 착용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대로 방송될 거고요.
그건 대통령께서 좋아하는 모습이 아니겠죠.”
“젠장. 이리 내.”
부 사령관이 건네주는 워 다이버를 머리에 쓰며, 토마스가 투덜거렸다.
지금까지 수 없는 장병들의 목숨을 구하며, 현재는 미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 워 다이버가, 지금은 단순한 게임기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가 워 다이버를 머리에 쓰는 순간,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 이벤트의 시작은, 레이더 모니터의 앞에 앉아 있는 한 병사의 다급한 외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상 물질 발견!
이상 물질 발견!
리버티 아일랜드 남쪽 2KM 에리어에 레이더 반응 다수!”
“다수? 하나가 아니라?”
“레이더 화면엔 여러 개로 나옵니다.”
“크기는?!”
“전달받은 크기만큼은 아니지만, 신호 강도로 볼 때 전투기 크기 정도 되는 수준으로 파악됩니다.”
“화상 정보가 필요하다.
프레데터를 띄우도록.”
“프레데터 도착까지 1분.”
“영상 출력합니다.”
잠시 후, 무인 정찰기인 MQ-1 프레데터가 보내온 화면을 본 토마스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화면 속에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원래 작전에서 7함대의 참전이 확정되면서 PTW측에서도 대응하는 수량을 늘린 것 같습니다.
저건 일종의 정찰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겠죠.”
“정찰대라고?”
부 사령관의 말을 들은 토마스가 고개를 돌려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의 앞에 펼쳐진 화면에서는, 크기가 거의 자유의 여신상에 육박하는 거대한 몬스터들 수십 마리가 보라색 차원문에서 쏟아져 나와 리버티 아일랜드를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세계 최강이라는 7함대의 사령관인 토마스는 그 경험에 걸맞은 연륜으로 최대한 빠르게 감정을 수습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지금 이 상황실의 모습을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으며, 워 다이버를 통해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도저히 ‘장난’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벤트의 내용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냥 비디오 게임 수준의 장난 같은 이벤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순식간에 지금 벌어진 상황이 완전히 현실에서 일어난 재난이라 가정하고 미 7함대로서의 대응 방법을 보여주기로 했다.
“지금부터 리버티 아일랜드 남부에 출연한 정체불명 공격자에 대한 즉각 대응에 들어간다.
전 수병 전투 위치로.
대기 중인 파일럿은 즉각 공중 지원에 착수하라.”
“전 수병 전투 위치로!”
“현재 시각 1시 23분, 뉴욕 맨하탄 근처 전 에리어를 레드 존으로 설정.
미확인 거대 생명체에게 즉각 공대지 공격 작전을 수행한다.”
“몇 대나 출격합니까?”
“눈으로 보기에도 가만두면 뉴욕시가 먼지가 될 것 같으니, 처음부터 최대 화력으로 가도록.”
“전 정비팀은 즉시 무장 체크 실시. 설치된 장비를 즉각 지대지 공격 세팅으로 변경.
세팅이 완료되는 대로 즉각 출동하도록.”
“프레데터에 미사일은 설치되어 있나?”
“헬파이어 미사일 4정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그럼 그거부터 한 방 먹이도록.”
“발포 승인. 현재 선회 중인 MQ-1 프레데터로부터 임의의 타겟에 AGM-114.
발사 완료.
타겟 도달까지 3··· 2··· 1··· 명중!
대상 생물체의 움직임을 확인.
효과가 없습니다.”
“아니, 효과는 있다.
단지 일반적인 생물과는 다르게, 몸의 절반이 날아가도 움직일 수 있을 뿐이지.
그나저나 엄청난 디테일이군.”
토마스의 말대로, 모니터에 비치는 괴물은 대전차 미사일 중에서도 최강급이라는 헬파이어 미사일을 맞고 신체의 일부가 날아갔음에도 꿈틀거리며 포효하고 있었다.
그것은 발사된 미사일로 인해 발생한 폭발이 AR 이미지에 의한 그래픽임을 알고 있음에도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하는 리얼한 장면이었다.
“공중 지원 출발까지 얼마나 남았지?”
“제1진 출격 대기 중입니다.”
“콜 기다리지 말고 완료되는 대로 출동하라고 해.”
“대기 중인 파일럿에게 알림.
지시 기다리지 말고 이륙 준비 되는 대로 즉각 출동해 응전할 것.”
-롸져 댓.-
“ F-35C 출격 개시.
목표 지점 도달까지 약 2분 소요 예정입니다.”
“프레데터는 선회하며 정보를 계속 보내도록.”
“프레데터에 대한 타겟의 공격 행동 감지.
입으로 보이는 신체 부위가 빛나고 있습니다.”
“레이저인가?!”
그 순간, 괴수의 입에서 뻗어 나온 기다란 빛줄기가 프레데터의 카메라를 덮쳤고, 몬스터의 모습을 비추던 모니터는 [Signal Lost]라는 메시지만을 띄운 채 전투 지역의 화상 재생을 중지하였다.
그러자 토마스가 매우 당황한 표정으로 부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설마 진짜 박살 난 건 아니겠지?
저거 한 대에 500만 달러나 하는데?!”
“그냥 워 다이버로 보이는 화면만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잠시 벗어보시죠.”
부 사령관의 말을 들은 토마스는 머리에 쓰고 있던 워 다이버를 벗었다.
거기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는 듯이 평화로운 리버티 아일랜드의 모습을 비추고 있는 프레데터의 전송 영상이 상황실 모니터에 비춰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토마스는 잠시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더니, 워 다이버를 다시 한 번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부 사령관을 향해 말했다.
“좋아.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겠군.
프레데터를 추가로 2대 더 보내도록.
이번엔 공격 행위 대신 현장 영상 전송만을 목적으로 하고, 최대한 교전을 피한 채 멀리서 정보를 수집하라.”
“프레데터 발진.
현장엔 미리 출발한 F35C가 먼저 교전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적의 반격에 주의하며 교전에 들어가도록.”
“파일럿에게 알림.
적 타겟은 원거리 대공 능력을 갖추고 있음.
정찰용으로 보낸 프레데터가 적의 원거리 대공 공격을 받고 파괴되었으니 교전에 극도로 주의할 것.
다시 알린다.
이번 임무는 굉장히 위험한 근접 교전 임무이다.
작전에 참가한 파일럿은 최대한 먼 거리에서 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타겟을 명확하게 조준하라.”
-미사일은 사용 불가인가?-
파일럿의 무전을 들은 토마스는 잠시 고민하다 지시를 내렸다.
“무기의 사용은 현장 상황을 보고 판단하도록.
적의 목적지로 보이는 맨하탄 본토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으니,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많은 타겟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자 통신을 맡은 병사가 즉시 파일럿들에게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했다.
“현장에서의 무장 사용에 대한 판단은 출동한 파일럿의 판단에 맡김.”
-롸저. 교전 예상지점까지 10초··· 9··· 8···. 지금부터 폭스 편대는 정체불명 타겟에 대한 공대지 공격에 들어간다.-
“프레데터는?”
“10초면 도착합니다.”
“도착하는 대로 영상을 연결하라.”
“영상 연결 완료. 현장 화면을 출력합니다.”
순간,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는 파일럿의 무전이 상황실에 울려 퍼졌다.
-본부에 알린다!
본부에 알린다!
적 타겟은 비행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전달한다!
적 타겟은 비행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순간, 화면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화면에서 토마스의 눈에 비친 것은, 날아다니는 용 모양의 괴수에게 당해 공중에서 폭발하는 F35의 모습이었다.
-폭스 감마가 당했다!-
-뭐야?! 진짜 폭발한 거야?!-
-눈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우리도 지금 워 다이버를 쓰고 있으니까!-
-감마 파일럿은 응답하라!-
-젠장. 전 멀쩡합니다.
대신 제 시야에서는 몬스터가 사라졌습니다.
그냥 평화로운 리버티 아일랜드 근처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동료들의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사망 처리된 폭스 감마는 복귀하도록.”
-아, 젠장. 지금부터 재미있어지려는 찰나였는데.-
“정비팀에 전달하도록.
지금 즉시 대기 중인 전투기에 공대공 장비도 실으라고.”
“알겠습니다. 정비팀에 알린다.
적 타겟이 비행 능력을 가지고 있음.
정비팀은 출격 대기 중인 F35에 지금 즉시 공대공 장비를 실을 것.
이해했나?”
-카피 댓.
훈련이긴 한데 이렇게 실감 나는 훈련은 또 처음이군.-
-정비는 확실하게 해 줄 테니 화려하게 적이나 잡아달라고.-
그 시각, 멀리서 리버티 아일랜드를 보고 있던 윤식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작 게임 회사에서 하는 이벤트 따위에, 무려 미군의 전투기가 출동해 가상의 적을 향해 미사일을 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 전투기들은 가상의 적을 맞아 가상의 폭발까지 하고 있었다.
이것이 AR 이벤트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적인 그래픽으로.
그런 윤식의 주변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미국 공군의 출동에 잔뜩 흥분한 채 소리를 지르는 관중들이 있었다.
“Yeeeeeeeeeeeeeeaaaahh!!”
“이것이 아메리카다 망할 괴물놈들아!!”
“와 X발!? 저거 진짜 전투기잖아!? 딥 다이버를 벗어도 전투기가 보인다고?!”
“아무래도 바이던 정부는 이번 이벤트에 진심으로 응하기로 했나 보군.”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영웅처럼 등장해 괴물들과 싸우기 시작한 미군만이 아니었다.
워 다이버를 쓰고 있는 관중들의 귀에는 위험 상황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실감 나는 목소리로 연기하는 관계자의 안내 방송이 들리고 있었으니까.
-현재 배터리 파크에 있는 뉴욕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알립니다.
현재 정체를 알 수 없는 괴 생명체가 리버티 아일랜드의 남쪽에 등장.
미 7함대의 공중 지원 부대와 전투 중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현장에 출동한 뉴욕 경찰의 지시를 받아 안전한 곳으로 긴급히 이동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현재 시민들의 보호를 위해 주 방위군이 출동 중이니 현장에 있는 시민들께서는 방어 작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경찰도 한패야?!”
“이런 미친.”
“스케일을 어디까지 키우려고!?”
방송에서 나온 대로,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등장한 뉴욕 경찰들은 반짝이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딥 다이버를 쓴 채 시민들을 통제하며 안전한 지역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캐롤라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윤식에게 물었다.
“안내 방송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거 아냐?
이벤트가 진행 중인지 모르는 시민들은 놀라서 진짜라고 믿을 것 같은데?
심지어 진짜 전투기까지 등장했고.”
그러자 윤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내 방송도 딥 다이버를 쓴 사람한테만 들려.
그러니까 지금 이건, 진짜 같은 가상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장비를 가진 사람들이 현실을 배경으로 노는 거대한 AR 쇼 같은 거지.
못 믿겠으면 딥 다이버를 벗어봐.
내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될 테니까.”
그녀는 윤식의 말대로 딥 다이버를 벗었다.
그러자 거대한 괴수를 향해 미친 듯이 화력을 투사하고 있던 전투기들의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그녀의 시선에 전혀 다른 풍경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발사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피하기 위해 열심히 회피 기동을 하고 있는 전투기들의 모습이.
그건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복서를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마찬가지로 딥 다이버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바라보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저 미친놈들은 뭘 잘못 먹었길래 아무것도 없는 곳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공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을까?’라고.
하지만 그건 주변의 시선일 뿐이야.
딥 다이버를 쓰는 순간부터, 우리가 보는 장면은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긴장감 넘치고 화려한 현실 속의 가상 배틀이 될 테니까.”
캐롤라인은 다시 머리에 딥 다이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자신의 남자친구인 윤식을 향해 말했다.
“이게 진짜라면, 우린 정말로 공포에 질려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겠지?”
“그렇겠지.
구경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하니까.”
“그럼 이건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재난 훈련 같은 거네?”
“그렇게 볼 수도 있고.
하지만 일반적인 재난 훈련과는 다를 거야.
우리가 아는 재난 훈련에는, 적어도 저런 물건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윤식은 뉴욕 상공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고, 캐롤라인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떡 벌린 채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헛웃음을 뱉어내었다.
눈앞에 펼쳐진 초현실적인 광경은, 이것이 아무리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벤트라도 절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을 나는 요새.
배라고 부르기엔 배 같은 모습이 아니고, 요새라고 부르기엔 요새같은 모습이 아닌 기괴한 형태의 거대 전함이, 하늘을 모두 덮을 기세로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캐롤라인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았던 미 공군과 정체불명의 괴물이 펼친 화려한 공중전은, 단지 이 거대한 이벤트의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본격적인 이벤트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미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네.”
“당연히 못 믿지 지금 보고 있는 건 그냥 가상의 그래픽이니까.
현실엔 저렇게 거대한 물건을 공중에 띄울 수 있는 기술이 없다고.”
“목 아파···. 근데 시선을 못 떼겠어.”
아마도 딥 다이버를 쓰고 있지 않은 사람이 그들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기겁하며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수백만 명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기괴함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은, 더욱 기괴한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수십만의 시민들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똑같은 타이밍에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으니까.
수백만의 시민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바라보게 만든 거대한 외침.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름 끼치는 느낀 울음소리였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
구멍.
마치 누군가가 공간을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암흑 속에서,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구멍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은 등골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다.
수 킬로미터의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짙은 암흑 속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이질적인 존재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선을 보낸 존재는, 마치 세상의 분노를 모두 안고 있는 듯 한 표정으로, 천천히 구멍 안에서 기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 먼 거리에서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좁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공간을 찢어발기며 기어 나오는 존재.
살아있는 그 어떤 존재와도 닮지 않은 그 거대한 생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자아내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든든해 보이던 미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가, 마치 날파리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그 압도적인 크기를 바라보며, 유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저것’은, 인류가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되겠지. 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엔.”
같은 시각.
거리에 따른 통신 지연을 막기 위해 미국에 설치된 상황실에서, 이벤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상혁이 말했다.
그러자 상혁과 함께 미국으로 온 김기열 교수가 상혁에게 말했다.
“미군 전투기가 쏘고 있는 미사일이나 무장이 전부 AR로 구현된 무기라서 튕겨내는 거지, 실제로 저 정도 화력을 쏠 정도면 비늘이 티타늄으로 되어 있어도 지금쯤 고기조각이 되어 있어야 할 겁니다.”
“뭐 그렇겠죠. 하지만 그건 너무 낭만이 없잖아요?
밸런스 문제도 있고.
어찌 되었건 나이츠가 등장하기도 전에 미군한테 뚜까맞아서 마수가 퇴치당하는 건 팬들이 기대하는 내용이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미군에게 제공된 AR무장과 마수의 강함을 조정하신 겁니까?”
“그렇죠. 저흰 이 이벤트의 목적을 명확하게 명심해야해요.
이 이벤트의 진정한 목적은, 현실적인 무기의 파괴력을 가상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즐거운 이벤트를 팬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될 겁니다.”
기열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이 남자의 터무니없는 계획은, 적어도 자신이 알기로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알기로 PTW에서 준비한 내용은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이벤트의 연출이나 개입하기로 약속된 지원 세력의 준비부터, 가상 괴수의 동선을 설계하고 전투의 시나리오를 잡는 과정까지.
방송에 나온 내용은 극히 일부이기에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PTW의 직원들은 오늘 하루의 이벤트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모든 준비를 묵묵히 해 왔죠.
분명 계획만 본다면 오늘의 이벤트는 터무니없는 망상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번 이벤트가 대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TW는 그 터무니없는 계획에 걸맞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수준의 준비를 해왔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준비한 이벤트의 스케일이 말도 안 되게 크다면, 그 미준비를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빡세게 준비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번 프로젝트에 임하는 저희 PTW직원들도,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 될 나이츠 파일럿들도, 오늘 단 하루를 위해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정말 전력을 다해 준비해왔죠.
그리고 결국 그 수많은 골수 게이머들조차 클리어 하지 못한 EX 급 퀘스트의 클리어 방법을 알아냈고요.
그 방법이 저희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해괴한 장비를 사용한 방법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겁니다.”
“저도 기대가 되네요. 그런데 나이츠들은 언제 출동하죠?
7함대에서 보낸 전투기들도 준비한 무장을 모두 소진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제 슬슬 나이츠가 등장하지 않으면 배터리 파크에 모여있는 수백만의 관람객들이 이벤트 종료 화면을 보게 될 겁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미국 정부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까.”
“미국 정부에서요? 누가 연락을 한다는 겁니까?”
“그건 잠시 후면 알게 되겠죠.”
상혁이 말을 마치자마자, 삐비빅 하는 비프음과 함께 오퍼레이터 역할을 맡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미국 정부로부터 연락입니다.-
그러자 상혁이 씨익 웃으며 허공을 향해 말했다.
“연결하도록.”
-안녕하십니까. 이상혁 사령관.-
“대통령 각하. 오랜만입니다.”
통신 연결을 통해 모니터에 등장한 인물은, 놀랍게도 전 세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인물이었다.
미합중국의 대통령, 조 바이던.
미군 전체의 통솔권을 가진 그만이, 공식적으로 PTW의 가상 지구 방위 조직인 ‘퍼스티스트’의 도움을 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마치 진짜 벌어지는 일인 것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미 7함대에서 파견한 병력이 맨하튼 남쪽에 출현한 마수와 대치 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잠시 교착 상태에 빠져 있지만, 곧 수백만의 시민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뉴욕이 위기에 처하게 되겠죠.
이 상황에서, 저희 미 정부는 공식적으로 퍼스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마수퇴치 작전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혹시 지금 당장 뉴욕을 수비할 수 있는 부유 요새의 파견이 가능합니까?-
“블러디 크림슨이 대기 중입니다.”
-그럼 공식적으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블러디 크림슨 소속의 나이츠들과 함께, 뉴욕 수비 작전에 참가해 주십시오.
지금부터 저 조 바이던은 미군과 함께 여러분을 도와 뉴욕 시민을 위협하는 거대 괴수와 싸우겠습니다.-
“요청을 접수했습니다. 지구 방위 조직 퍼스티스트의 작전 책임자로서, 미합중국 정부의 요청을 공식적으로 수락합니다.
뉴욕 상공에 대기 중인 블러디 크림슨을 연결하도록.”
-블러디 크림슨의 파일럿 오다 츠요시입니다.
현재 전 팀원이 출동을 위해 대기중에 있습니다.-
“현재 시각을 기준으로 맨하튼 남부에 등장한 거대 마수의 이름을 ‘현무’라 지칭한다.
블러디 크림슨 소속 나이츠 파일럿들은 지금 즉시 나이츠를 타고 뉴욕으로 강하하여 현무 저지 작전에 참여하도록.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 임무는 EX등급의 위험도를 가진 작전이다.
최대한 많은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되, 소중한 나이츠와 파일럿을 동시에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작전에 임하도록 하라.”
-명령 사항 확인.
현재 강하 대기 중인 나이츠들은 즉시 배터리 파크 에리어로 강하하여 수비 작전을 수행할 것.
지금부터 작전명 ‘엿 먹어라’를 개시하겠습니다.-
-통합 작전 본부로부터 작전 개시 명령을 확인.
부유 요새 블러디 크림슨은 지금부터 전투 모드에 들어갑니다.
타겟은 맨하튼 남부 지역에 출연한 EX 급 마수 ‘현무’.
전 파일럿은 강하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홀리 프레일 파일럿 오다 츠요시. 강하 준비 완료.-
-사일러스 파일럿 최현희. 강하준비 완료.-
-즈라드 파일럿 박현민. 강하준비 완료.-
-이하 준비가 완료되는 나이츠부터 순서대로 강하를 개시합니다.
우선 저희가 준비한 특수 장비가 EX급 마수에게 먹힌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걸로 최종 토벌까지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훈련에서는 가장 토벌에 근접한 수준까지 접근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각 개인의 집중에 달려있겠죠.
그러니 기본적으로는 미리 훈련한 작전대로 수행하되, 작전이 개시된 이후부터의 결정은 각 나이츠 파일럿의 상황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오케이-
-라져-
-알겠어요.-
모두가 통신을 교환하는 소리를 들으며, 상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작전을 시작합시다. 발아래 있는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이벤트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볼 수 있도록.
이 역사적인 이벤트의 성공을, 여러분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상혁의 눈앞에 있는 수많은 모니터에 비친 파일럿들은, 그런 상혁의 말을 들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혁은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럼 작전 개시.
투하.”
-1번 격납고부터 12번 격납고까지, 순차적으로 나이츠 투하를 개시합니다.
1번 나이츠 투하 개시···. 완료.
2번 나이츠 투하 개시···. 완료.-
하늘을 가릴 듯한 거대한 요새에서 마치 운석처럼 지상으로 떨어져내려오는 강철의 거인들.
그것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나이츠의 궤도가, 정확히 그들의 머리 위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으아아아!!!”
“피해!!”
“여기서 죽으면 이벤트 못 본다 아아!!”
그 순간, 마치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우르르 퍼져나가며 시민들이 만든 공간 중앙에 나이츠가 착지했다.
AR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십톤의 무게에 걸맞은 엄청난 먼지구름을 내뿜으면서.
착지시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반쯤 무릎을 구부리고 있는 강철 거인은, 그것이 가상의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질 정도의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이츠다아아!!”
“X오오오온나게 크다아아!!”
“진짜 같다!!”
“퍼스티스트 멤버들이다!!!”
“오 맙소사 내가 방송에서만 보았던 나이츠를 내 눈으로 보고 있다니!”
오다는 콕핏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자신들을 둘러싼 채 미친 듯이 환호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발에 있는 발판을 꾹 눌렀다.
그러자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당하게 만드는 번쩍이는 로봇이 대지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눈앞에서 차례로 일어나기 시작한 15m 크기의 거대한 강철 로봇들.
로봇 팬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할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은, 이번 이벤트가 드디어 ‘본편’에 접어들었다는 분위기를 미친 듯이 뿜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