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59화 (460/485)

459. 뉴욕 방어전

한 달이란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PTW의 홈페이지에서 한 시간씩 웹 드라마를 시청하며 KOH를 플레이하고 있는 PTW의 팬들에게는, 그 한 달이란 시간이 참으로 알찬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에게 직접 지도를 받는 퍼스티스트의 훈련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미처 모르고 있던 게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몇 번을 도전했음에도 한 번도 물리치지 못한 EX급 마수의 강력함을 보며 어떻게 해야 공략을 할 수 있을지 게시판에서 뜨거운 토론을 나누는 동안, 한 달이란 시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 가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특히 본격적인 전투 훈련에 들어간 2주 차 방송 이후로, 퍼스티스트 멤버들은 각각 자신의 게시판을 따로 운영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었는데, 게시글을 올리거나 개인 방송이 가능한 개인 페이지를 통해 멤버들은 그날 방송되었던 전투를 팬들과 복기하며 어떻게 해야 EX급 마수를 물리칠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약속한 뉴욕 이벤트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퍼스티스트 멤버들은 뉴욕 이벤트에서 등장할 예정인 EX급 마수를 토벌하는데 또 한 번 실패했고, 팬들은 그런 퍼스티스트 멤버들을 보며 안타까운 탄성을 토해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당초 EX 급 마수의 강함은 게임이 오픈되고 반년 이상의 플레이 경험이 쌓여야 토벌 가능한 수준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게임이 발매된 지 고작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KOH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EX 급 마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적어도 플레이어들의 게임 노하우가 반년 가까이는 쌓여야 클리어가 가능한 괴물’.

그것은 노력이나 재능의 문제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RPG 장르의 게임인 KOH는, 장비의 파밍이나 세팅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느정도의 ‘노가다’를 요구한다.

거기에 힘들게 장비를 파밍한다 해도 새로 장비를 바꾸면 그 장비에 맞춰 나이츠에 탑승해 전투 훈련을 할 시간 또한 필요했고.

그러니 나이츠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KOH’와, ‘KOHA’라는 두 가지 게임을 동시에 마스터할 필요가 있었고, 그 복잡한 과정을 단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 마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모든 아이템의 등장 조건과 파밍 루트, 육성 방법을 알고 있는 개발자의 서포트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유 요새 블러디 크림슨의 리더를 맡은 오다 츠요시를 매우 갑갑하게 만들고 있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애당초 PTW는 매 침공 이벤트마다 일정 숫자의 파일럿을 탈락시키기 위해 EX급 마수와 싸우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늘도 전투 훈련에서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너덜너덜해진 오다는 샤워를 마치고 개인 룸으로 돌아와 언제나처럼 방송을 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때요?”

그러자 채팅창에 오다의 의견에 동의하는 수많은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 일반 유저는 커녕 밥 먹고 KOH만 플레이하는 개 폐인들도 EX급 못 잡고 있는데 아무리 개발자 서포트 받는다고 해도 방송 촬영 일정까지 커버해야 하는 퍼스티스트 멤버들이 한 달 만에 클리어하기엔 무리인 듯.-

-디아볼로 3 나올 때 헬모드 보스 잡는데도 일주일 안 걸리던데 이건 왜 이렇게 어려움?

차라리 다르크소울이 더 쉽겠네.-

-패턴 빨로 무시할 수 있는 보스가 아니라 무조건 데미지 들어오는 구간이 있어서 그런 듯.-

-그거 회피하면 안 되나?-

-기본적으로 침공 이벤트는 KOH 에 있는 대도시 수호 이벤트를 베이스로 한 작전임.

대도시 수호 이벤트는 안 그래도 KOH안에서 악명이 높은 이벤트고.

시민이 일정 수 이상 죽으면 죽은 시민들의 영혼을 흡수해서 폭주하기 때문에, 데미지를 감수해서라도 시민들에게 가는 피해를 막아야 해.

게다가 게임 내부에 나오는 맵 보다 뉴욕 맵이 더 시민 밀집도가 높기도 하고.-

-안 그래도 어려운데 울트라 하드모드라는 거네.-

-오다 씨. 힘내세요.

설사 이벤트에 실패했다 하더라도 퍼스티스트 멤버를 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방송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훈련에 임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격려 감사합니다만, 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저희의 패배가 확정적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잘못하면 개박살난 뉴욕을 보게 될지도?-

-그보다 썰이나 좀 풀어봐요.

나이츠 파일럿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입니까?-

“나이츠 파일럿으로 살아가는 느낌이라···. 그거 관련해서는 여러 번 이야기 하지 않았나요?”

-못들은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리고 최근에 변화가 있는 지도 궁금하고요.-

-나도 궁금하네.-

-쉬는 시간이 있기는 합니까?-

“아, 방송으로 보시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휴식 시간은 철저하게 보장됩니다.

아레나 지하에 있는 생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레저 시설이니까요.

특히 바다 컨셉으로 만들어진 상륙 지역은 지금도 아마 상당히 많은 파일럿들이 애용하는 설비입니다.

심지어 그 인공 바다엔 파도도 쳐서 서핑도 즐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야간이든 주간이든 설정만 하면 마음대로 날씨를 바꿀 수도 있고요.

방송에서 몇몇 파일럿 분들이 피부를 검게 태닝한 게 보이실 텐데, 그건 하도 해변 구역을 애용하다 보니 피부가 탄 겁니다.”

-방송으로 봤을 때는 하루종일 훈련만 하는 느낌이던데?-

“기본적으로 훈련 프로그램은 개인 훈련과 단체 훈련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방송에서는 단체 훈련을 편집해서 내보내는 경우가 많으니 개인 트레이닝은 그리 많이 노출되지 않죠.

그 외에는 하루 두 시간 정도 무조건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해야 하는데, 이건 좀 힘든 편이죠.”

-헬스는 왜 강제로 하나요?-

“식사가 거의 호텔급으로 나오는 데다 쉬려면 한없이 쉴 수 있는 시설이라 살이 금방 찌거든요.

-개인 트레이닝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기본적으로는 특정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빠르게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메인입니다.

예를 들어 아군이 랜덤하게 배치된 상황에서 광역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포지션을 찾는 훈련이라던가, 아니면 브레스의 각도를 방패로 틀어서 흘리는 훈련, 나이츠에 탑재된 수많은 버튼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 특정 공격의 공격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한 포지션을 잡는 훈련.

나이츠의 현재 자세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공격기를 익히는 훈련 같은 게 개인 트레이닝 과정에 포함되어 있죠.

대부분의 훈련은 이른바 무술을 익히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수없이 많은 상황에서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수 있도록,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에 움직임을 강제로 익히는 거죠.

리듬 게임을 할 때 아무 생각이 없어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노트를 누르는 수준으로, 파일럿이 나이츠의 콕핏에 있는 수백 가지의 기능 버튼들을 철저하게 암기하게 하는 게 개인 트레이닝의 목적입니다.”

-예쁜 여성 파일럿도 좀 있던데, 연애에는 관심 없으신가요.-

“뭐 방송 나가기 전에는 다들 전문가에게 메이크업과 코디를 받고 나가니까요.

현재 이곳엔 머리 한번 만지는 데 수십만 원 이상 받는 미용사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각 거주 구역별로 바버샵이 있어서, 아침에 찾아가면 전문가가 깔끔하게 면도를 해주죠.

당연히 머리도 정리해주고요.

사실 여기서 나가면 제일 그리울 것 같은 서비스가 바로 그겁니다.

전 수염이 빨리 자라는 편이라, 매일 면도를 하는 게 귀찮거든요.

게다가 여기서는 빨래도 설거지도 할 필요가 없고, 메뉴를 고를 필요도 없죠.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제가 가장 사랑하는 머신 스피릿과 24시간 내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딥 다이버만 쓰고 있으면, 생활 공간인 부유 요새 안에서 머신 스피릿이 절 따라다니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세계 최고의 대화형 AI 기술을 가진 PTW에서 만든 홀로그램인 만큼, 대화에서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오다는 손뼉을 쳐 시청자들의 주의를 환기했다.

단체 훈련과 개인 정비에 필요한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개인 훈련에 쏟아붓는 그가, 일부러 짬을 내어 개인 방송을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오다는 그가 진행하는 개인 방송을 통해 매일 공개되는 훈련 프로그램을 시청한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작전에 대한 아이디어를 받고 있었다.

“지난번에 시청자들께서 제안하신 ‘자유의 여신상을 보호막 삼아 바다 근처에서 저지하는 작전’은 대 실패로 끝났습니다.

애당초 자유의 여신상 자체가 겉만 튼튼해 보이지 실제로는 구리로 만든 속이 빈 동상일 뿐이니까요.

녹는 점이 낮은 구리로는 현무의 브레스를 막을 수 없었어요.

잠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자유의 여신상 뒤에 숨어있다가 브레스와 함께 녹아내린 현희 씨와 사일러스를 위해 묵념하도록 합시다.”

-ㅋㅋㅋ 진짜 어이없게 뚫리긴 했음-

-그럼 건물을 저지선으로 삼아야 하나?

철근 콘크리트는 구리보다 좀 더 버티지 않을까?-

-애당초 큰 건물은 대부분이 겉이 유리로 된 건물들이고 낮은 건물은 외장이 벽돌인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건물 안에는 사람도 있는데, 애당초 자유의 여신상을 방어막으로 삼으려던 이유도 그 안에 시민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거잖아요?

건물을 방어막으로 삼았다가 건물채로 날아가면 시민이 얼마가 죽을지 몰라요.-

-실제로 죽는 건 아니잖아?-

-문제는 스코어에 기록이 된다는 점이지.

시민이 죽으면 죽을수록 현무가 광폭화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게 문제임.-

-아니 그럼 좀 더 거리를 두고 나오던가 애당초 뉴욕 앞바다에서 튀어나오는데 그 많은 시민을 어떻게 지킴?-

“상혁 씨의 말로는 일단 시민들도 공격받아서 사망 판정이 나면 이벤트 관람 기능이 정지되기 때문에, 가급적 안전한 지역에서 지켜보려고 할 거라고 이야기하긴 했습니다.

아마도 KOH의 도시 수호 이벤트에서 시민들이 마수를 피해 도망가는 것처럼, 뉴욕 시민들도 이벤트를 지켜보기 위해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하며 이벤트를 지켜볼 거라고요.”

-근데 딥 다이버를 쓰지 않은 인원은 어떡합니까?

예를 들어 이벤트 시간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벤트가 진행중인지도 모르고 그냥 건물 안에 있다가 죽을 것 같은데.-

“딥 다이버를 쓰고 있지 않은 시민이 공격받는 경우는 카운트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이벤트를 지켜보는 시민들만 지켜내면 되는 거죠.”

-장비 세팅을 변경하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 쓰고 있는 <대지 수호의 보루 방패>는 현재 저희가 구할 수 있는 장비 중에 마속성 저항이 가장 높고 스킬 발동 시 광역 보호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니크 방패입니다.

브레스도 한 번 정도는 완전 방어 가능할 정도로 좋은 장비이니, 이 이상의 장비는 없겠죠.

문제는 거기에 있어요.

애당초 건물 한두 개 지켜낸다고 성공할 수 있는 작전이 아니니까요.”

-그 말은 결국 건물을 최대한 많이 지키려면 어느 한 지점 현무를 묶어놔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현무의 공격을 버틸 정도로 단단한 건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짐작 가시는 부분이 있으신 분?”

오다가 질문하자 채팅창은 이 건물이 좋아 보인다, 저 건물이 좋아 보인다는 의견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오다는 그렇게 미친 듯이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눈으로 훑으며, 가장 현실성있어보이는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잠깐, 오다는 한 줄의 메시지가 빠르게 묻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용은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유일하게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채팅이 한줄 빠르게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오다는 급하게 잠시 모두 채팅을 멈추라고 말하고는, 채팅의 스크롤을 올려 자신이 읽었던 메시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참이 지난 후, 자신이 찾던 메시지를 쓴 사람의 ID를 호명하며 메시지의 내용을 읽어주었다.

“ID Recharged Gear님.

혹시 조금 전에 ‘건물이 문제면 건물이 없는 곳에서 싸우면 되지.’라고 채팅을 치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러자 잠시 멈춰 있던 채팅이 순식간에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뉴욕에 건물이 없는 곳이 어디 있냐?-

-맨하탄 한가운데서 싸우는데 어케 그게 가능함?-

-이 색기 뉴욕 안 가본 듯-

-넌 가봄?-

-가본 적은 없는데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그 땅값 비싼 곳에 온갖 고층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자유의 여신상 지나서 도시에 진입하는 순간 이미 작전은 실패했다고 봐야 돼.-

그러자 ‘리차지드 기어’라는 닉 네임을 가진 유저의 채팅이 다시 한번 올라왔다.

-미안하지만 전 뉴욕 시민입니다. 그리고 현무가 상륙하면 무조건 박살 나는, 로어 맨해튼 지역에 살고 있죠.-

-뉴욕 시민이면 더 잘 알겠네.

스테츄 오브 리버티에서 소환된 현무는 배터리 파크를 지나 타임 스퀘어 공원으로 천천히 이동함.

그 과정에서 저지가 가능한 곳은 딱 두곳임.

가장 남쪽의 배터리 파크와 그 바로 위에 워싱톤 스퀘어 파크.

그 두 곳에서 발을 묶지 못한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까지 박살 나고 미션은 100% 실패한다고.-

-그야 남쪽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뉴욕에서 가장 큰 공터는 타임 스퀘어 광장도, 배터리 파크나 워싱턴 스퀘어 파크도 아닙니다.

그보다 큰, 전 세계 대도시 공원 중 가장 큰 공원이, 뉴욕에 있으니까.-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

미국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편에 속하는 뉴욕.

그중에서도 뉴욕의 상징으로 불리는 맨해튼 섬에는, 1856년 조경가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에 의해 건축된 거대한 공원이 있다.

맨해튼 안에서도 알짜 중의 알짜 땅에 건설된 이 거대한 자연공원은, 100년을 앞선 미래를 본 두 천재의 손에 설계되어, 마천루가 즐비한 맨하튼 섬의 어느 곳에서나 빠르게 도심을 탈출해 자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유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원은, 확실히 현무의 거대한 크기를 고려하더라도 충분히 건물의 피해 없이 방어전을 수행할 수 있는 넓이를 지닌 공간이었다.

-애당초 센트럴 파크가 종점이라고 생각하니까 맨해튼에서도 부촌에 속하는 남부 섬 쪽에서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겁니다.

차라리 아예 어그로를 끌어서 북쪽의 센트럴 파크까지 최단 거리로 유도하면, 이동 도중에 파괴되는 건물은 있어도 방어 행동으로 인해 건물이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죠.

그 이후엔, 센트럴 파크의 넓은 부지에서 건물 걱정 없이 현무를 상대할 수 있을 거고요.-

-그게 되나?-

-마수의 목적지가 센트럴 파크 아님?

그걸 북쪽으로 더 끌고 가는 게 가능한가?-

그때, 채팅을 보던 오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장비 중에는 짧은 특정 시간 동안 절대적인 어그로를 확보할 수 있는 특수 장비들이 있고, 지속 시간이 지날 때마다 다음 장비를 가진 사람이 스킬을 시전 하면 센트럴 파크까지 현무를 끌고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죠.

그리고 상혁 씨는 분명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수는 타임즈 스퀘어를 향해 이동한다.’라고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상혁 씨의 이야기는 마수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이지,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건물의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 방어전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의 강점은 매우 큽니다.

다른 무엇보다 넓은 공간에서 전투할 수 있으면 부유 요새의 지원 사격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도발을 걸어도 안 따라오고 타임 스퀘어 광장에서 행패 부리면 어떡함?-

“그럼 또 한 번의 실패가 누적되는 거죠.

여러분. 저희가 펼치는 전투가 실제가 아닌 가상의 전투이기에 가장 좋은 점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비록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통합 훈련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리차지드 기어 씨의 새 작전은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전이에요.

문제는 그 원거리 도발 전용 장비라는 게, 생각보다 쓰기 어려운 장비라는 거죠.

저도 팀원들도, 그 장비를 처음 파밍 한 현희 씨가 그 장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실제로 사용하는 장비가 아닌, 일종의 장난감 같은 장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대체 어떻게 쓰는 장비이길래.-

-뭐지? 방송에서는 안 나온 내용 같은데?-

-혹시 오다 씨가 말한 장비 먹어 본 사람?-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오다는 현희가 원거리 도발 장비를 사용하던 그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아마 다음 합동 훈련 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그때 보시면 될 겁니다.

혹시 그 부분이 편집된다면, 여러분은 뉴욕 이벤트가 시작될 때 저희가 그 개그 장비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시게 되겠죠.”

오다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오다가 말한 장비는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하는 매우 황당한 사용법을 가진 장비였다.

***

“푸흐흡, 크큭···. 확실히 이 방법이라면 센트럴 파크까지 몬스터를 유도할 수 있겠군요.”

미 공군 참모총장 찰스 브라운은 상혁이 한국에서 보낸 시뮬레이션 영상을 보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는 가상의 마수로부터 뉴욕을 방어하기 위해 파견될 예정이라는 ‘레드 크림슨’의 멤버들이,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장비를 가지고 몬스터를 도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은 멋지다기보다는 한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브라운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삼키며 영상 회의를 통해 보이는 상혁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거기엔 상혁이,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미 합중국의 공군 참모총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저희도 거의 반 장난식으로 넣었던 장비니까요.-

“저거, 효과는 있습니까?”

-쓰는 방식이 좀 웃기다 뿐이지 실제로 효과는 있습니다.

다만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뿐이죠.-

“그 능력이라는 건···. 푸흑, 혹시···.”

-생각하시는 그게 맞습니다.-

“역시 게임회사라 그런지 발상이···. 크흡, 남다르네요.”

-저도 역사적인 첫 공개 이벤트에서 저 아이템이 사용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합리적인 사용법이긴 합니다.

유저들의 발상이란, 언제나 개발자의 사고를 뛰어넘는 법이죠.-

“그럼 저희가 세운 방어 계획에도 수정이 필요하겠군요.

기본적으로 지금 세워진 계획은, 방어에 실패한 나이츠들을 대신하여 타임 스퀘어 광장에서 미 공군이 마수를 제거하는 거니까요.”

“수정이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넓은 공간이니만큼, 전투기의 접근도 쉽고 더 많은 화력을 투사할 수 있겠죠.

보내주신 더미 장비들도 여유가 남아 있으니, 추가로 전투기에 장착하여 작전에 참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전투기 추가에 따른 운용 비용은 저희가 지급하죠.

나중에 영수증을 보내주십시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옙.-

상혁과의 통화가 끝나자, 브라운은 웃음을 참느라 아플 정도로 힘을 주었던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자신의 옆에 있는 병사가 그를 향해 이야기했다.

“대통령 각하께서 연결 대기 중입니다.”

“바이던 각하가?”

“PTW에서 작전 관련 영상을 백악관에도 보낸 모양이더군요.

방위 작전의 변경과 관련하여, 총장님께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연결하도록.”

그러자 조금 전 상혁이 나왔던 모니터에서, 나이든 백인 남성의 모습이 등장했다.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인 그의 모습을 보며, 브라운은 절도있는 몸놀림으로 경례자세를 취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쉬게.-

“감사합니다.”

-조금 전 PTW에서 작전 변경에 대한 영상을···. 푸흡, 받았다지?-

“각하께서도 보셨습니까?”

-웃긴 장면이긴 했지.-

“솔직히 말하면 저도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연락한 것은, 3일 후에 시작될 뉴욕 방어전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일세.

비록 한국의 게임회사에서 만든 가상의 몬스터가 뉴욕을 습격하는 이벤트이긴 하지만,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 이래 처음으로 미국 본토가 공격받는 사건이지.

난 이걸 좀 더 유용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거대 괴수와의 전투를 상정한 훈련이 되므로, 미군의 실전 경험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작전에 참여하는 파일럿들도, 뭔가 전자오락을 하는 기분으로 훈련에 참여하고 있고요.”

-그야 작전에 참여하는 당사자로서는 그러하겠지.

하지만 뉴욕의 시민들과 미국의 국민들에게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들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르고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세계 최강의 군대가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걸세.

우리의 동맹국과 적국에게는, 미군의 강력함을 어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고.-

“규모를 키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군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작전적인 의미에서 말이지.

이 부분은 PTW와도 이미 합의가 끝난 내용이지만, 자네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전달해두겠네.

작전이 시작되면, PTW에서 뉴욕을 감시 중인 레이더 기지에 있는 병사들의 워 다이버로 가상의 레이더 데이터를 보내게 될 것이네.

그리고 병사들은, 미리 훈련한 대로 공군에 출격 명력을 내려 정체불명의 거대 괴수를 요격하라 명령할 것이고.

그 이후엔 긴급 출동한 미 공군과 괴수의 공방이 이루어지다가, 모든 화력을 투사한 전투기가 임시로 퇴각하게 되겠지.

그 과정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박살 날 것이고, TV에선 긴급보도가 나가게 될 것이야.-

“TV를 사용하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TV를 볼 때만 보이는 영상이니, 문제는 없을 걸세.

애당초 그날 뉴욕에서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이 이벤트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럼 별문제 없겠군요.”

-그렇게 긴급 안내 방송이 나가는 도중에, 내가 직접 출연해서 긴급 발표를 할 것이네.

갑작스러운 정체불명의 괴수 출연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이 준비하는 동안, 뉴욕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근방을 유영 중인 블러디 크림슨에게 보호 요청을 하겠다고.

그러면 뉴욕 상공에 거대한 부유 요새가 워프를 해 오고, 그 안에서 나이츠들이 지상으로 낙하하는 거지.-

“신난 것처럼 들립니다.”

-재미있는 건 사실이니까.

위기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것이 비록 가상의 사건이라 하더라도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모습일 것임이 틀림없네.

이 이벤트를 통해서, 사람들은 도람푸와 진흙탕 싸움을 벌이던 대선 때의 내가 아닌, 진정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시민을 보호하려는 조 바이던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그리고 그 이미지를 잘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난 다음 대선도 무리 없이 승리하게 될 테고.

이런 억만 금짜리 캠페인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 난 최대한 적극적으로 PTW의 이번 이벤트에 협조할 생각이네.

그것 때문에 태평양을 지키고 있어야 할 7함대까지 보급을 핑계로 뉴욕으로 이동시켰으니까.-

“소문대로 그 이동은 진짜로 이벤트를 위한 것이었군요.”

-어차피 비용은 PTW에서 낼 테니까.-

“항모 전단은 이동할 때 돈을 거의 뿌리면서 다니는 수준으로 비용이 많이 들텐데요.

PTW에서 그것까지 받아들였단 말입니까?”

-받아들였다고?

오히려 좋아하더군.

그들에게 있어서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자신들이 피워올린 불꽃이, 얼마나 화려하고 뜨겁게 타오르느냐만이 그들의 관심사일 뿐이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남은 건 오직 헐리우드 영화보다 스케일이 더 큰 이 이벤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 뿐일세.

그것을 위해서는, 미군 화력의 핵심인 미 공군이 최대한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하고.-

진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대통령에게, 브라운은 경례 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외쳤다.

“왜 미 공군이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지, 전 세계에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브라운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밑에 있는 세계 최강의 공군에 대한 끝 모를 자부심과,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군·민 합동의 가상 전투 이벤트’에 대한 끝없는 기대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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