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58화 (459/485)

458. 빵과 서커스

솔직히 말하자면, PTW는 조 바이던 행정부와 그리 좋은 관계라고 볼 수는 없었다.

딱히 둘 사이에 원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람푸의 최대 치적 중의 하나가 ‘워 다이버의 도입’이라고 불릴 정도로 PTW가 로널드 도람푸 미 행정부에 끼친 영향은 막대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1,2차 NE 컨벤션을 모두 미국에서 진행한 PTW는 미국 내의 게이머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회사이기도 했고, 특히 EOD를 개발하며 생긴 미군과의 커넥션은 DARPA와의 합작과 워 다이버의 도입으로 인해 더욱 그 관계가 공고해져 지금은 거의 미군의 주요 협력업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미군들에게 있어서 PTW라는 회사의 이름은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것은 EOD 개발때부터 이어진 상혁의 미군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정책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임용 AR 디바이스인 ‘딥 다이버’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워 다이버’라는 장비는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그대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기기였고, PTW에서는 작전에 참여한 미군용 장비에 한해 PTW가 개발한 VR 게임들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작전 지역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 중인 미군들 중에는,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에는 PTW에서 개발한 워 다이버의 작전 지원을 받고, 작전이 끝난 이후에는 냉방이 틀어져 있는 시원한 막사에서 워 다이버를 그대로 착용한 채 게임을 즐기는 식으로 현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물론 그렇게 PTW의 게임에 익숙해진 병사들이 본국에 돌아와 PTW의 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PTW는 협력 관계에 있는 미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반대로 지속적으로 추가되는 신규 유저 층을 확보하는 효과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국의 46대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졌을 때, 정권을 잡고 있던 도람푸 행정부는 적극적으로 PTW와의 관계 형성을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며 경쟁자인 바이던을 압박했고, 바이던은 그런 도람푸의 기세를 꺾는 데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게다가 왠지 모를 이유로 회귀 전에는 전 세계에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코로나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경기는 갑작스러운 둔화의 흐름 없이 자연스러운 상승세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그 흐름은 상혁조차도 도람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으로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걸 이 여성이 뒤집었단 말이지.’

상혁의 앞에서 싱긋 웃음을 짓는 젊은 여성의 존재.

자신을 마리사 파데레스라 밝힌 그녀는, 바이던의 선거 운동에서 매우 큰 역할을 차지한 선거 운동 전문가로, 현재는 그 공을 인정받아 바이던 행정부의 핵심 측근인 비서 실장 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면 곧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보통은 접견 대기를 비서실에서 하지는 않을 텐데요.”

“어머, 굉장히 백악관에 익숙하신 말투시네요?”

“전 정부 때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으니까요.”

“정부가 바뀌면 규칙도 바뀌는 법이죠.

사실 상혁 씨를 미팅시간보다 일부러 일찍 부른 것은 제가 대통령 각하에 앞서서 먼저 이야기를 해 두고 싶어서이기도 하니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상혁이 묻자 그녀가 말했다.

“혹시 바이던 행정부와 손을 잡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제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미국 행정부 소속으로 일할 수는 없는 법이죠.”

“국적 문제야 귀화하시면 되죠.

물론 귀화하자마자 행정부 요직을 맡게 되는 건 많은 반대가 있긴 하겠지만, 다른 인물이 아닌 PTW의 이상혁 씨라면 아마 아무도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대중은 PTW라는 회사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PTW 본사가 미국으로 이전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겠죠.”

“고작 게임 개발자인 제가 백악관에서 할 일이 뭐가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네요.

해봤자 얼굴마담밖에 더하겠습니까?”

“그 얼굴마담이 가진 힘이 상상 이상이라면, 그건 얼굴마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겁니다.”

상혁은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뭐, 어차피 제 대답은 예상하고 계셨을 테지만요.”

“어머, 아깝네요. PTW 본사를 미국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저희 행정부 초유의 업적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물어보시죠.”

“알아보니 PTW는 예전에 인터넷 사전 검열 문제로 한국 정부와 날을 세운 적이 있더군요.

그 전엔 콘솔 패키지 게임의 셧다운 적용 문제로 정부와 싸운 적이 있고요.

적어도 미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셨더라면,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기업 활동을 하기엔 미국보다 좋은 나라는 없을 텐데, 왜 그 작은 한국에서 일하는 것에 집착하시는 건가요?

물론 PTW의 근거지가 천하대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미국에도 PTW의 뒷배가 되어 줄 수 있는 유명 대학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학에 들어오는 인재들이나 교수진은, 분명 천하대의 그것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들일 거고요.

게다가 미국은 땅도 넓죠.

저희 정부가 힘을 쓰면, 대전에 건설한 PTW 파크 부지의 매입 비용보다 훨씬 싼 비용에 더 넓은 용지를 마련해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아예 공짜로 부지를 임대해드릴 수도 있고요.

그런 메리트를 모두 버리고서, 굳이 사이가 좋지 않은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 사업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뭔가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사업하기 정말 좋은 나라입니다.

물론 저희가 그 대상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한국은 징벌적 손해 배상이나 기업 강제분할권 같은, 기업을 한방에 해체해버릴 만한 강력한 법의 철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땅이 좁다고 하셨는데, 기민성이 중요한 IT 기업에게 한국보다 좋은 활동 배경은 없죠.

한국은 섬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류가 하루 만에 배송 가능한 국가입니다.

게다가 땅이 좁아서, 그 좁은 땅 전체에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시간이 단축되죠.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의 특성은 새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속도를 압도적으로 끌어올려 줍니다.

3억 2천만이 넘는 미국에 PRD 1000만대를 공급해봤자 인구수 대비 공급량은 3%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같은 물량을 한국에 뿌리면 20%의 점유율이 되죠.

게다가 국민 대다수가 IT 문화에 익숙한 만큼,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게임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빠르고요.”

“작은 국토와 적은 인구수를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한다는 말이군요.

이해가 되었습니다.

PTW라는 회사의 특성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 눈앞에 있는 이상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럼 이번엔 제 쪽에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요.”

“대체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이기신 겁니까?”

상혁의 질문을 들은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어려웠죠.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른 존재도 아닌, PTW가 도람푸 행정부의 뒤에 있었으니까요.”

“딱히 저희는 특정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워 다이버 같은 경우는 순전히 비즈니스 적인 측면의 계약이었고요.”

“하지만 대중의 인식은 그렇지 않았죠.

미국 국민 대다수는 미군이란 존재를 좋아하며 지지하는 편이고, 그런 미군의 생존율을 압도적으로 올려준 워 다이버란 존재의 도입은 말 그대로 혁명적인 성과라고 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걸 자신의 정권에서 이룩해낸 도람푸 행정부는, 선거 상대로는 최악의 상대라고 할 수 있었죠.

상대가 삽질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이기는 게 불가능했을 만큼.”

그녀의 말대로, 회귀 전의 타임라인에서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뤄낸 도람푸 행정부는 기묘하게도 다른 부분에서 엄청난 실책을 반복하며 힘들게 쌓아 올린 지지율을 깎아 먹는 정책을 반복하고 있었다.

가만있어도 다음 대선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실책을 반복하는 도람푸 행정부의 기사를 본 민준이, 그 해괴한 실책에 ‘삽질 총량 보존의 법칙’이란 이름을 붙일 정도로.

상혁이 민준의 말을 떠올리고 있는 와중에, 그녀는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TW에서 미 대선에 개입했다면 바이던 대통령의 당선은 절망적이었을 겁니다.

예비군을 포함해 200만에 달하는 미군과 엄청나게 많은 미국의 게이머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PTW가, 도람푸 행정부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다면 안 그래도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저희가 이길 방법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헬프 요청이 없었던 건 아니었죠.”

실제로 도람푸는 선거 유세 기간에 PTW에 협조 공문을 보낸 적이 있었다.

현재는 거의 법적 절차와 미국에 있는 데이터 센터의 운영 및 관리만을 수행하고 있는 PTW의 미국 지사 규모를 확대해 달라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냥 뒤에 서 있기만 해도 좋으니 유세 현장에 함께 있어달라는 공문을.

당시 딱히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상혁은 바쁘다는 이유를 핑계로 그 부탁을 거절했었다.

“그게 승리의 열쇠 중 하나였습니다.

저희는 도람푸 행정부에 있는 핵심 인물에게 도람푸 대통령이 PTW로부터 협조 요청을 거절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 정보를 적극적으로 퍼트렸죠.

사실 현 정부와 PTW는 단순히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하며, 도람푸 행정부가 PTW에 매달리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워 다이버의 라이선스비로 지불하고 있다는 소문을요.

게다가 그것 때문에 한국에 받아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이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동결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뭐, 거짓말이 아니긴 하죠.

실제로 거기서 나온 돈으로 이번 5차 NE 컨벤션의 비용을 충당했었으니까.”

“이번 미팅의 주요 안건엔 그 문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 국방부에서 PTW에 지불하는 라이선스 비용의 조정 문제입니다.”

“계약서를 검토해보셨을 테니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가 받는 라이선스 비용의 대부분은 오직 미군에서만 워 다이버를 사용하는데 들어가는 독점 권한에 대한 비용입니다.

금액에 불만이 있으시면 독점 권한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대신 그 경우엔 전 세계 군대가 마음대로 워 다이버를 착용하고 서로 싸우게 되겠죠.”

“PTW는 방산 업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흰 돈 되는 일이면 다 합니다.

좋은 게임을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요.”

“그럼 차라리 게임에서 돈을 버시는 게···.”

“그건 그냥 본전치기 겨우 하는 수준이죠.

물론 콘솔 게임에서는 꽤 돈이 남는 편이지만, PRD 게임은 출시 이후로 계속 적자였습니다.

개발비는 천문학적으로 많이 들어가는데, 보급량 자체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기기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보급률이 증가하면 천천히 이윤도 늘어나겠죠.

지금은 투자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남성은, 마리사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전했고, 마리사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상혁에게 말했다.

“미팅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벌 오피스(Oval Office)로 이동하시죠.”

드디어 이루어진 미국 대통령과 만남.

보통 사람이라면 긴장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상혁은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상혁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오늘의 미팅을 통해 게이머들을 즐겁게 할 AR 이벤트의 성공 여부밖에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상혁의 세계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로지 게임밖에 없었다.

정치, 경영, 돈, 권력, 명성.

수많은 사람들을 그토록 집착하게 만드는 지고의 보물보다, 상혁에게는 게이머들이 보여주는 반짝이는 미소가 더 가치 있었기 때문에.

상혁에게는, 미국의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이번 미팅조차 게이머들을 위해 펼칠 화려한 이벤트의 전초전에 불과한 것이었다.

***

“조 바이던 미합중국 대통령입니다.

오늘 드디어 그 유명한 PTW의 이상혁과 만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군요.”

“유명하다고 해봤자 단지 게임 개발자일 뿐입니다.

세계를 이끄는 미합중국의 대통령께는 비할 바가 아니죠.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다른 인사보다,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리사 씨에게 들었습니다만, 혹시 그건 이번 대선에 개입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입니까?”

“그렇습니다. 미국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PTW에서 적극적으로 전 정권을 지지했었다면, 근소한 차이로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 문제라면 반대의 경우에도 개입하지 않았을 테니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일정이 급한 관계로 바로 본 안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만···.”

“많이 바쁘신가보죠?”

“원래는 나이츠 리그의 AR 이벤트가 벌어질 예정인 에릭 에덤스 뉴욕 시장과 만날 약속이 잡혀 있었으니까요.”

“그거라면 비서를 통해서 약속 시각을 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대통령과의 만남 때문이라면, 에릭도 기다려 주겠지요.”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뉴욕 시장은 어째서?”

“웹 드라마에서 공개된 내용이지만, PTW에서는 각국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도시를 침공하는 거대 몬스터와 나이츠 파일럿 간의 가상 공방전을 진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딥 다이버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도시를 지키려 분투하는 나이츠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당연히 이벤트 지역에 이벤트를 관람하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리겠죠.

이번 방문은 교통 통제나 NYPD 의 치안유지 협조를 요청하려 방문한 겁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바이던은 턱을 몇 번 쓰다듬더니 질문을 던졌다.

“DARPA측에도 연락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미 국방부와 미팅을 진행하고 싶다고 하셨다고요.

그것도 AR 이벤트와 관련 있는 사안입니까?”

그러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구체적으로는 F35를 몇 대 빌리고자 미팅을 하려던 거였죠.”

“전투기를? 어째서입니까?”

“그건 영상을 보며 설명해 드리는 게 빠를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대통령 옆에 서 있던 덩치큰 흑인 경호원이 상혁에게 말했다.

“자료는 어디에 담아오셨습니까?”

“USB에 있습니다.”

“그럼 보안점검을 위해 잠시 USB를 건네주시기 바랍니다.

백악관 네트워크에 연결된 전자기기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내부 파일 점검이 필수라서요.”

“안에 담긴 건 단순한 동영상 파일이니 별문제 없을 것 같네요.

여기 있습니다.”

“그럼 그 사이에 두 분이 자료를 쉽게 보실 수 있도록 대형 모니터를 이곳으로 가져오겠습니다.”

잠시 후, 준비가 완료되자 상혁은 TV를 통해 준비한 영상을 재생시켰다.

거기엔 PTW가 준비한 AR 이벤트의 간단한 개요가 프레젠테이션 형태로 담겨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번 이벤트에서, 저희가 마수라 부르는 거대 몬스터는 허공에 발생한 게이트를 통해 도시에 침공합니다.

뉴욕 이벤트 같은 경우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 근처에서 게이트가 발생하고, 거기서 타임스퀘어 광장으로 천천히 이동할 예정이죠.

이후에 보여 지는 영상은, 마수의 이동 경로에 위치한 뉴욕 거리의 영상입니다.”

상혁이 말을 마치자 TV 안에서 뉴욕 거리의 모습이 등장했다.

그러자 상혁은 잠시 기다렸다가 바이던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이걸 딥 다이버로 보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순간, 화면이 전환 되며 같은 지역의 다른 영상이 등장했다.

거기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거북이 형태의 괴물과, 그 발아래 처참히 부서지고 있는 뉴욕 거리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이번 이벤트를 위해, 저희는 뉴욕 전체의 골목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스캔하여 ‘가상의 뉴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AR 이벤트에서, 저희는 그 가상의 뉴욕을 철저하게 박살내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죠.”

“가상의 이미지치고는 너무 현실적인 느낌인데, 딥 다이버로 보는 영상 속에서 건물이 부서진다고 해도 실제 건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기는 무너진 건물 뒤로 하늘이 보이는군요.”

“그건 무너진 건물과 하늘을 합성해서 AR 이미지로 건물 위에 뒤집어씌운 겁니다.

실제 그 자리에 있는 건물의 존재를 볼 수 없게 감추고, 그 위에 가상의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는 거죠.”

“그런 눈속임으로 저 정도 퀄리티의 이벤트가 가능하다니···.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가 않는 군요.

실제로 건물이 박살나는 건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공식 설정으로, 이건 ‘경면세계(Mirror Dimension)’라 불리는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현실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별개의 차원을 만들어 그 안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설정이죠.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파괴 행위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설정도 붙어있고요.

이벤트가 끝나는 순간, 관객들은 무너진 뉴욕 거리가 순식간에 깔끔한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좋습니다. 거리에 피해가 없다면 큰 문제는 없겠죠.

그런데 실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는다면서, 전투기는 왜 필요한 겁니까?”

“그건 저희가 진행하려는 이벤트의 특성 때문입니다.

이번 이벤트에서, 저희는 저희가 개발한 나이츠를 AR 이미지로 구현하여 괴수에 맞설 예정이지만, 그와 더불어 한 가지 지원을 더 덧붙일 예정이죠.”

“지원이라면?”

“각국 군대의 지원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만약 이것이 게임의 이벤트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어땠을까요?

정말로 뉴욕 앞바다에 수백 미터짜리 괴수가 출연해서, 뉴욕 거리를 박살내며 타임스퀘어 광장으로 진입하려는 상황이라면요.”

“당연히 미군이 저지했겠죠.”

“그렇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 국가엔 자국을 수호하기 위한 군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일정 이상의 무력을 지니고 있죠.

특히 미국은 국방력에서 압도적으로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 나라의 대도시에서 이변이 발생했는데 군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당연히 이변이 일어나는 순간, 미국의 군대가 즉각적으로 이변에 대응하려 할 겁니다.

그렇게 해야 정상이기도 하고요.”

상혁의 설명을 들은 바이던은 고개를 끄덕여 상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군대가 출동한다 해도 상대할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벤트에 등장하는 ‘위협’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존재이며, 미군이 가진 강력한 화력은 가상의 적이 아닌 진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힘이었으니까.

바이던은 그 부분에 대한 질문을 상혁에게 던졌다.

“말씀하신 대로 그 위협이 진짜 ‘현실’이었다면 미군이 대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이벤트에 등장하는 괴물은 환상의 존재입니다.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적에게 미사일을 쏜다고 해서 그 적이 실제로 데미지를 입지는 않겠죠.

게다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미사일을 쏴 달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요청이고요.

단호하게 말씀드리건대, 말씀하신 가상의 전투에, 미군의 존재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아실텐데도 미군의 지원을 바라시는 이유는 뭡니까?”

그러자 상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의 전투력도, 가상의 전투엔 도움이 안 되죠.

저희가 바라는 것은 미군이 가상의 적을 상대로 총과 미사일을 쏘며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바라는 거죠.”

“단순히 있어 주기를 바란다?”

“그냥 저희가 요청한 타이밍에 맞춰 전투기가 지정된 경로로 날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그에 맞춰 저희가 해당 전투기에서 AR 이미지로 구현된 미사일을 발사해 마수를 요격하는 이미지를 보여줄 것이고, 마수는 그 가상의 미사일을 맞고 주춤한 모습을 보이게 되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의 전투기가 공중을 가르며 전해주는 위압감은 보통이 아닙니다.

저희가 어색하지 않게 타이밍만 잘 맞출 수 있다면, 뉴욕 상공을 날아다니는 실제 전투기가 참여한 이벤트의 현장감은 믿을 수 없을 수준으로 현실적인 느낌이 될 겁니다.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미군 병사들을 엑스트라로 등장시켜 이벤트를 진행할 수도 있겠죠.”

“병사들도?”

“저희가 이벤트를 위해 준비한 물건 중에는, 실사용 총기와 똑같이 생겼지만, 총알은 나가지 않는 가짜 총도 있습니다.”

“그냥 공포탄을 쏘면 되지 않습니까?”

“총기와 총기가 아닌 것의 차이는 꽤 심하니까요.

공포탄으로 연사를 하려면 가스가 새지 않도록 총기 입구에 공포탄용 어댑터를 설치해야 합니다.

게다가 공포탄이라도 화약을 사용하는 물건이라 화상의 위험 같은 문제가 있고요.

저희가 개발한 ‘진짜 같은 가짜 총’은, 총구에 공포탄용 어댑터를 설치하지 않아도 총구에서 불꽃이 나오고 탄의 소음과 반동이 그대로 재생되는 물건이죠.

물론 탄피도 나옵니다.

미군들이 그 가짜 총을 가상의 괴물에게 발사하면, 진짜 총을 쏜 것 같은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겠죠.

상상해보십시오.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미군 병사들이, 절대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괴수를 상대로 용감히 싸우는 모습을.

그걸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건, 그 어떤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멋진 현장감을 전달하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 이벤트에서, 자국의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적을 막아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거고요.”

“죄송하지만 잠시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마리아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바이던과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대통령을 향해 고개 숙여 감사한 뒤 상혁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입니다만, 조금 전 영상을 보면 몬스터가 지나가면서 상당히 많은 건물을 부수며 전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보는 사람이 건물의 밖에 있다면 말씀하신 대로 가상의 이미지를 씌워 무너진 건물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해당 건물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자신이 있는 가상의 건물이 무너졌다고 해서 15층에 있는 사람을 1층으로 옮길 수는 없겠죠?

그럼 그 사람들이 보기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재미있는 상상이긴 하지만 그렇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괴수의 공격에 의해 특정 에리어가 공격받을 경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망 판정을 받게 되니까요.

그럼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도 AR 이벤트 모드가 강제로 해제되며, 안전 에리어로 이동하라는 메시지가 출력되게 됩니다.

결국 멀리서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안전한 에리어로 이동해야 이벤트를 계속 지켜볼 수 있게 되죠.”

“그렇게 된다면 실제로 괴물의 공격을 피해 도망가는 관중들의 모습도 연출할 수 있겠군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했다.

“저도 PTW의 웹 드라마의 시청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해당 이벤트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이 이벤트의 주인공은 PTW에서 운영 중인 나이츠 파일럿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마수를 퇴치하는 것도 AR로 구현된 거대로봇, ‘나이츠’의 역할이라는 뜻이죠.

그럼 사실 미군의 존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닙니까?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 세계 최강의 미군조차 막지못한 가상의 몬스터를 나이츠 파일럿들이 막아내었다’라는 전개로 흘러갈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그게 문제가 됩니까?”

“제가 걱정하는 건, 이벤트에 참여한 미군이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아까 상혁 씨는 현실감에 관해 이야기하셨죠.

그러니 저도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강력한 괴수라도 미군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희가 가진 강력한 무기가 허무하게 막힌다면, 그게 오히려 현실성을 더 떨어트리는 요소가 되겠죠.

미사일에도 끄떡하지 않던 괴물이 나이츠가 발사한 탄환에는 괴로워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이 이벤트는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이벤트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이벤트에서, 미군의 공격이 허무하게 막히는 것은 미군의 위신에 관련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말이죠.”

그녀의 질문을 들은 상혁은 잠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확실히, 마리아 씨의 말 대로 시나리오가 진행된다면 미군은 이번 이벤트에서 그냥 들러리처럼 보이게 될 겁니다.

그리고 확실히, 미군이 보유한 무기에는 끄덕도 하지 않던 몬스터가 나이츠의 공격에만 반응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느낌을 주기도 하겠죠.

그러나 마리아 씨가 우려하시는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입니까?”

“애당초 이번 시나리오는, 미군의 도움이 없으면 퍼스티스트가 마수에게 패배하는 시나리오로 잡혀 있으니까요.”

대화를 듣고 있던 바이던은 상혁의 눈빛에 서린 진지함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젊은이들 특유의 뜨거운 열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그 뜨거운 진지함으로, 이번 이벤트의 첫 번째 개최지가 어째서 뉴욕으로 잡힌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저희가 뉴욕을 첫 번째 배경으로 설정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퍼스티스트는 이제 막 훈련에 들어갔을 뿐인 미숙한 팀이며, 그들의 조종 실력과 팀워크는 집중 트레이닝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족한 상태죠.

그런 상황에서 맞이해야 하는 첫 번째 적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터무니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력을 다 한 상태에서도 EX급 몬스터에게 한없이 고전하게 되고, 어쩌면 첫 번째 탈락자가 발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게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이 될 수도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전투의 결과는 미군의 개입으로 인한 아슬아슬한 승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슬아슬한 승리를 통해, 퍼스티스트 멤버들은 깨닫게 되겠죠.

이대로는 이어지는 이벤트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후에 진행될 다른 대도시에서의 이벤트에선,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미군 수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말하자면 이번 이벤트는 이보 전진을 위한 강제적인 일보 후퇴에 가깝습니다.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는 혹시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벤트가 패배로 끝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부여하고, 이벤트에 참가한 퍼스티스트 멤버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여하며, 마수를 물리친 미군 병사들에겐 도시를 지켜냈다는 자긍심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이번 뉴욕 이벤트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조 바이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무게감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재미있군요.”

“각하?”

“애당초 게임 회사가 미군 장비를 멋대로 빌려 쓰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대담한 발상이지만, 그게 마치 확정된 것처럼 계획을 세우는 것은 더 대담한 행동입니다.

그리고 지금 들은 느낌으로는, 상혁 씨는 아예 거절당할 경우를 가정하지 않고 미국에 온 것 같군요.

저희가 100% 그 제안에 응할 것이란 확신이라도 있는 것처럼.”

“저라도 100%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 행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타이밍에, 국민들을 위한 좋은 오락거리를 놓치지 않을 만큼의 현명함을 바이던 정부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을 뿐이죠.

심지어 고대 로마의 황제들조차,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콜로세움이란 거대한 공간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이번 이벤트를 위해 미군 장비를 운용하는 비용은 전부 저희PTW가 지불할 예정입니다.

예산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미군의 막강함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으며, 전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도시 침공 이벤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십만의 관광객도 기대할 수 있는 이벤트입니다.

만약 이런 이벤트를 거절할 만한 대통령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대통령을 이런 이름으로 부르게 되겠죠.”

“어떤 이름입니까?”

“머저리(Idiot)라고요.”

무려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이란 위엄 넘치는 공간에서 주저 없이 저열한 단어를 입에 담는 상혁을 보며 바이던은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머저리가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받아들여야겠군요.

도람푸가 어째서 그토록 간절히 PTW의 선거 지원을 바랐었는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대통령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병사나 전투기뿐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항모전단까지도.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나이츠 리그의 도시 침공 이벤트를, 세계 최고의 이벤트로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웃으며 맞잡은 두 사람의 손.

그것은 PTW와 최초로 협력 관계를 맺었던 로날드 도람푸에 이어, 미합중국에 들어선 새 정부와 PTW사이에 시작된 새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역사적인 악수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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