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57화 (458/485)

457. 창의적인 광기

아무리 잘 만든 작품이라도, 흥행에는 어느정도의 운이 필요하다.

잘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을 너무 앞서나간 나머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한다거나, 희대의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당시에는 별 인기가 없다가 나중에야 인기가 생기는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대표적인 예로 영화 쇼생크 탈출을 들 수 있다.

모두가 손꼽는 명작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개의 아카데미 상도 타지 못하면서 ‘무관의 제왕’이라는 이명을 얻게 되었으니까.

그것은 그 영화가 나온 1994년이 안타깝게도 명작 영화가 ‘쏟아져’나온 해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을 두고 경쟁해야 했던 작품들이 무려 ‘포레스트 검프’, ‘블루 스카이’,‘펄프 픽션’,‘라이온 킹’같은 지금도 명작 반열에 오른 쟁쟁한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멋진 결과물을 내었음에도 경쟁자들에게 묻혀 빛나는 성과를 내는 데 실패한 작품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타이밍.

그것은 수많은 명작들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운명의 신이 보내는 장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KOH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묻혀버린 ‘무한의 바다’역시 마찬가지였기에, PTW가 공개한 또 다른 신작은 그 높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저평가받게 되리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평가였다.

3일간의 5차 NE 컨벤션 기간 동안, 전 세계의 포커스는 온통 KOH라는 게임에만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게다가 개발사인 PTW에서도 나이츠 리그나 웹 드라마의 공개 등으로 동시에 출시된 게임인 ‘무한의 바다’가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의 푸쉬를 집중적으로 KOH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무한의 바다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팀은 누구 하나 그것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상혁이라는 인물에게 품고 있는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었다.

이상혁이라면.

그들이 알고 있는 이상혁이라는 인물이라면, 이대로 자신들이 최선을 다해 만든 게임이 다른 게임에 묻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상혁은 전 세계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 상황에서 무한의 바다라는 게임이 얼마나 뛰어난 게임인지를 소개하는 특별 방송을 세상에 공개했다.

‘The Pride(긍지)’.

PTW의 웹 드라마 ‘퍼스티스트’의 3회차 방송에서 공개된 새 프로그램의 이름은,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그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6000만 이상의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 광고는, 자연스럽게 KOH가 차지하고 있던 집중적인 관심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무한의 바다라는 게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희대의 받아치는 주먹이 되었다.

광고가 끝나고 본 방송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을 보고 있던 팬들이 한참 동안 ‘무한의 바다’에 대해 떠들게 만들 정도로.

방송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PTW의 프로그램 게시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와 X발 이걸 여기서 공개하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이긴 했음. 5차 NE 컨벤션에서 공개했으면 무조건 KOH 때문에 묻힐 이슈였으니까.

오히려 이런 식으로 KOH에 시선을 몰아놓고 ‘무한의 바다’에 대한 광고를 때려버리면, 게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아도 강제로 가질 수밖에 없지.]

[범선 12척이라니, 제정신인가?

실물 크기 거대 로봇의 공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21세기에 15세기 스타일 범선을 고작 게임 하나 만들겠다고 12척이나 건조하겠다는 미친 발상엔 진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

[이것이 PTW 스케일인가.]

[저게 승인이 난게 더 신기하네.

보통 다른 회사 같으면 게임 만든다고 범선 건조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바로 해고당할텐데.]

[게임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진심이라는 거지.

그래서 프로그램 이름도 ‘긍지’인 거고.]

광고에서 보여준 촬영 영상과 실제 대포를 사용하여 이루어진 파괴 시뮬레이션 영상, 그리고 게임의 고증을 위해 만들어진 수천 벌의 중세시대 복장과 각종 무기들은 마치 유명한 해적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메이킹 필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실사 영상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인 게임 영상들은, 그 미친 물건들을 만든 인간들이 제작한 게임의 퀄리티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고.

그런 영상으로 구성된 광고였기에, 영상을 보면서, 게이머의 피가 끓어 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게이머들의 반응이 폭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그중에서도 KOH보다 ‘무한의 바다’를 더 좋아하던 팬들은, PTW의 광고를 보고 미친 듯이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그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갓겜’이, 완전히 묻혀버릴 위기에서 일발 회생의 역전 카드를 집어든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PTW 홈페이지의 무한의 바다 커뮤니티는, 광고가 끝나는 순간부터 완전히 축제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

[축배를 들~어라~~~축배를 들~어라~~]

[그럼 그렇지. 어쩐지 과하게 현실적인 느낌이었다니까?

진짜 배 타본 놈들이 만들었으니 그렇게 현실적일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

↳ 그냥 배도 아니고 중세시대 스타일 범선임.

아니 그건 스타일이라고 부르기엔 아까운 배지.

그건 그냥 중세시대 범선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듯.

[12척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매번 게임 만들 때마다 몰빵하는게 PTW 스타일이니 이번에도 있는 돈 다 퍼부어서 만든 거겠지.]

↳ 그러다 하나라도 망하면 X되는 거 아님?

↳ 다들 KOH에 묻힌 비운의 명작이 될 거라고 예상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KOH에 과도하게 몰린 관심을 역으로 이용한 마케팅을 펼친 회사임.

애당초 망하는 것 자체가 계산에 없었던거지.

망할지를 두려워할 바에는, 망하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게 PTW 스타일인 거야.

↳ 하···. 저건 또 언제 기다려.

↳ 아니, 생각보다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아.

KOH 같은 경우도 웹 드라마 보고 있으면 게임이 겁나게 땡기잖아.

그래서 드라마 끝나자마자 바로 KOH하러 가는거고.

무한의 바다도 마찬가지임.

아마 보고 있으면 내가 게임에서 본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 멋진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퍼부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겠지.

당연히 보고 있으면 엄청나게 무한의 바다가 하고 싶어질 거고.

그럼 그냥 하면 됨.

하루 종일 무한의 바다를 플레이하면서 다음 날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보고 또 무한의 바다를 플레이하는 영원의 루프에 빠져드는 거지.

↳ 잠은 언제 자고 밥은 언제 먹고 일은 언제 하고 소는 누가 키우냐?

↳ 멍청한 녀석. 난 작년에 PRD 사고 나서부터 계속 백수였음.

내 삶은 이미 PTW로 가득 차 있다고.

↳ 그럼 돈은 어케 버냐?

↳ 오픈 베타 중인 YAS에서 골드만 캐서 팔아도 돈은 됨.

PTW에서 정식으로 회수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게이머들 사이에 현거래 시장이 엄청나게 활성화되어 있어서 골드 내놓는 족족 무지 잘 팔리거든.

솔직히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잘 벌린다.

물론 당분간은 그렇게 모아놓은 돈으로 무한의 바다만 플레이하고, YAS는 좀 쉴 거지만.

↳ YAS도 중세 판타지 배경이고 무한의 바다도 중세 판타지 배경의 풀 다이브 VR 게임이잖아.

YAS랑 비교하면 어떰?

↳ YAS랑은 서로 다른 게임임.

굳이 따지자면 YAS는 판타지 라이프를 풀 다이브 VR 로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임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은 게임이야.

무기를 만들어서 무기상에 팔거나 물약을 만들어서 상점에 팔아도 되고, 아니면 정기적으로 운영진에서 내려주는 퀘스트를 수행해도 골드를 벌 수 있고, 심지어 정원사를 직업으로 하는 유저들도 있어.

돈 많이 버는 유저들의 집을 돌면서, 그 녀석들이 사냥하는 동안 집 근처의 정원을 가꾸는 거지.

YAS의 풀이나 나무는 조금만 내버려 두면 금세 지저분하게 자라니까.

반대로 무한의 바다는 넓지는 않지만, 깊이가 있지.

적어도 범선과 모험, 항해라는 측면에서는 YAS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깊이를 자랑해.

애당초 월드 자체가 대륙 없이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월드라서, 세계관 속 인물들이 대부분 배나 항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든.

그렇게 한 방향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만큼, 인물들의 연기가 엄청나게 실감 나고 퀘스트의 방향성도 한 방향으로 잘 짜여 있어.

만약 네가 PRD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구매해야 할 타이틀 중의 하나일 거고, 만약 PRD가 없다 해도 이번 다큐멘터리는 꽤 볼 만한 거야.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하나의 세계를, PTW의 개발자들이 어떻게 창조해냈는지를 볼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

[명불허전(名不虛傳).

PTW. KOH에 밀리지 않는 또 하나의 명작의 존재를 세상에 과시하다.]

[그 KOH의 존재는 사실 ‘무한의 바다’의 홍보를 위한 밑밥이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역대급 주목을 끌어낸 PTW의 신작, ‘무한의 바다’에 대해 알아보자.]

[실물 크기 거대 로봇에 이어 12척의 범선까지 제작.

게임에 대한 PTW의 진심은 어디까지인가?]

[신품은커녕 중고 마켓에서도 사라져버린 PRD.

전 세계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증산 계획은 언제쯤?]

[디스커버리 채널과 PTW가 함께 만든 신규 프로그램 ‘The Pride’의 시청자들이 PTW 본사에 보낸 격렬한 항의.

‘이런 게임을 보여주고 PRD를 구할 수 없다는 건 고문이나 다름 없다.’]

KOH라는 희대의 이슈메이커를 통해 화려하게 공개된 ‘무한의 바다’의 다큐멘터리는, 개개인의 뛰어난 창의성과 집착이 회사의 무한한 지원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이 탄생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수십 미터짜리 범선과, 수백 년이란 시간을 넘어 21세기라는 현대 시대에 과거의 유물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장인들의 모습.

그리고 수없이 많은 자료를 검토하여 장인들을 서포트하던 교수들의 모습과 게임 제작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PTW 직원들의 진지한 눈빛은,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열정보다도 게이머들을 더욱 흥분시키는 것은, 다큐멘터리 중간중간에 간간이 나오는 게임 개발 과정의 모습이었다.

세계 최초로 ‘버츄얼 스튜디오’에서 제작이 이루어진 무한의 바다의 개발 현장은, 모두가 상상하는 ‘게임 개발’이란 단어가 가진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로지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수많은 연출.

즉석에서 허공에 범선을 소환하고 디자인을 다듬어 나가는 개발자의 모습.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세트장에서 즉석 연기를 펼치며 NPC들의 행동들을 조정하는 성우들의 모습은, 마치 미래의 게임 개발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물론 게임 개발이라는 작업의 특성상 모든 개발 과정이 버츄얼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개발자 중에는 PRD와 리얼 엔진을 이용한 개발보다는,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를 가지고 개발하는 것이 더 취향에 맞는 개발자들도 있었고, 리얼 엔진에서 지원하지 않는 커스텀 기능을 제작해야 하는 프로그래머들은 아예 PRD 안에서 가상의 모니터와 키보드를 소환하여 코딩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식상한’ 모습은 상혁이 다큐멘터리 내용에서 전부 삭제해 버렸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장면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개발자들의 모습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마치 할리우드의 영화 스튜디오를 연상하게 하는 그 황당한 ‘게임 개발 과정’을 보며,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게이머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니 X친 저게 뭐야.

가상 공간에서 3D 세트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트 안에서 스턴트 맨이 바로 뛰어다니며 인게임 연출을 만든다고?]

[저렇게 하나의 공간 안에서 동시에 여러 공간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게임 배경만 판타지인 줄 알았는데, 개발 과정은 더 판타지 같네.]

[전 세계 회사 중에 PTW의 이직율이 가장 낮은 이유를 알겠다.

X발 게임 개발 과정 자체가 게임보다 재미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다른 회사에 가겠어?]

[PTW에서는 기획서가 필요 없을 듯. 즉석에서 본인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해서 팀원들에게 보여주면 그만이니까.]

[어떻게 개발자 중에 의욕 없어 보이는 사람이 한 명도 안보이냐.

이런 X친, 저기가 게임 개발자의 유토피아인 것인가?]

[게임을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완전히 다름.

PTW가 대단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이건 아예 별세계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PTW의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게임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한없는 진지함과 소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그보다 더 몰입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자신들의 게임에 몰입하여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런 그들의 아이디어는 세계 최고 의 실력을 갖춘 개발자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해전 말인데요. 지금 것보다 조금 더 개선된 느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식으로요?”

“좀 더 상대 선장의 의중? 그런 걸 읽어야 전황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형태로요.

만약에 이게 진짜 현실의 해전이라면, 선장마다 전투를 끌어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겠죠.

그건 본인이 탄 배의 스펙에 따른 결정이 될 수도, 아니면 배에 탄 크루들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결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상대 선장의 사고 방식이, 적 선단의 움직임에 다이렉트로 전달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유저들이 눈으로 읽으며 상대의 사고를 읽어낼 수 있다면, 전투가 지금보다 훨씬 전략적인 형태가 되지 않을까요?”

“흠.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한데, 구체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잠시 전투 시스템 관련 인원 좀 호출할게요.

AS(Assist System)?

배틀 시스템 관련 인력들을 호출해.

해상전 시스템과 관련해서 회의하고 싶다고.”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텔레포트 해온 다른 개발자들로 인해 순식간에 회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그것도 모니터와 화이트보드를 두고 벌어지는 게임회사의 일상적인 회의가 아닌, 수면 위를 걸어 다니며 어린애 크기의 전함 사이를 누비는 특이한 형태의 회의로.

그렇게 모인 개발자들은, 제안된 아이디어에 대해 격렬히 토론하기 시작했고, 곧 그 대화 내용들은 게이머들이 무한의 바다라는 게임의 전투 시스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 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말하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방식은,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만화 ‘킹덤’에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의 육지전을 해상전의 형태로 구현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본능형 장수와 지략형 장수, 그렇게 두 타입의 장수로 장수들을 구분하죠.

수십만의 대군이 엉켜 싸우는 격전 속에서, 장수들은 각각 자신이 가진 개성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병사들을 움직입니다.

돌파력이 강하지만 무모한 장수는 한없이 돌파만 하다가 적에게 당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같은 돌파력을 가지고 있어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깨우치는 장수는 철수할 타이밍을 잘 파악하는 식이죠.

저는 배의 선장이란 존재도 일종의 부대를 이끄는 장수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원거리전을 선호하는 선장은 주로 대포에 힘을 준 세팅을 할 것이고, 아군 함정의 측면을 적에게 빠르게 향할 수 있도록 선회력에 집중한 세팅을 하겠죠.

반대로 백병전에 능한 선장은 선회력보다는 빠르게 적의 배에 접근할 수 있는 속도에 편중한 세팅을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선장들의 움직임은, 본인이 조종하는 배의 세팅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거고요.”

“수십 대의 배 한가운데서 맹렬하게 돌진하는 한 척의 배를 본다면, 그 순간 상대 배의 세팅이 백병전 위주의 세팅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인가요?”

“저희가 제대로 선장들의 AI를 구현할 수 있다면요.”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배들의 움직임에서 그런 부분을 파악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배들이 움직이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린 편이고, 여러 배가 엉켜있는 상황에서 특정 배의 성향을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제대로 구현했다 하더라도, 게이머가 그것을 일일이 파악해서 전투를 수행하게 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겠죠.”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옆에서 해설해주는 인물이 있다면 다르지 않을까요?”

“해설?”

“적 함의 움직임을 해석하여 플레이어에게 알려주는 군사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무런 어시스트가 없는 상황에서 적의 배 한 척이 맹렬히 돌진해온다면, 게이머는 그걸 그냥 잡아야 하는 타겟 정도로 생각하게 되겠죠.

하지만 옆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저 붉은 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아마 저 배가 바로 그 유명한 <돌진하는 상어>, 바르바토스의 배 일거야.’

그런 대사를 게이머가 듣게 된다면···.”

“대사를 듣는 순간 단순한 배가 아닌 캐릭터를 인지하게 되겠네요.”

“저희가 잘 구현해 낼 수 있다면요.”

“그럼 배들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움직이게 할 것인지, 그리고 군사 역할을 맡은 AI가 어떤 기준으로 배들의 움직임을 해석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 토의해봅시다.”

“함선 AI 개발을 맡은 담당자도 호출할까요?”

“그렇게 하죠.”

아이디어에서 논의로, 논의에서 회의로, 회의에서 개발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연계를 본 게이머들은 자신들이 게임 안에서 본 요소들이 어떤 식으로 구현된 것인지 직접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들이 게임 안에서 보았던 모든 요소들이, 방금 보았던 과정과 같은 과정을 거쳐 게임 안에 삽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 어쩐지 해전이 시작되면 1등 항해사가 바로 함선들의 움직임에 대해 해설해주던데, 그게 저런 식으로 들어간 시스템이었구나.]

[단순히 그렇게 동작하게 만든 것 뿐만 아니라, 게이머에게 실제 위협이 될 수 있도록 보정치까지 설정되었네.

어쩐지 돌진계 성향 가진 애들이랑 근접전 하면 무지 힘들더라니.]

[반대로 내가 백병전을 계속 반복하면 적 함선들이 내 배가 접근하자마자 홍해 바다 갈라지듯이 도망치던데, 그것도 저 시스템 때문인가 보네.]

[근데 그렇다고 올라운더로 키우는 것도 쉬운건 아냐.

무한의 바다에서는 전투 한번에 들어가는데 발생하는 인적 물적 피해가 꽤 큰 편이라서, 그렇게 자주 해전을 반복하기는 쉽지 않거든.

한정된 전투 횟수 속에서 크루들의 원거리 전투 능력과 근거리 전투 능력을 동시에 키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

[크···. 게임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다큐를 보면 볼수록 내가 하는 게임에 대한 애정이 마구 솟아오르네!]

[난 방송 끝나자마자 바로 무한의 바다 하러 가려고.

다들 KOH만 연호하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무한의 바다 역시 KOH에 절대 꿀리지 않는 ‘갓겜’이야.

적어도 나한테는 KOH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임이기도 하고.]

[다른 무엇보다 풀 다이브 VR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적으로 꽤 편한 게임이란 게 마음에 들어.

항구나 유적에서 퀘스트 하려고 돌아다닐 때를 제외하면, 배 위에서는 대부분 한자리에 서 있거나 선장실에 앉아 해도를 보고 있게 되니까.

HC 101은 시민들을 구하려면 계속 뛰어다녀야 해서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드는 게임이었고, YAS도 돌아다니려면 계속 팔다리를 움직여야 하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게임이었거든.

그에 반해 무한의 바다는 적어도 항해하는 동안은 꽤 쾌적하게 보낼 수 있어.

중간에 발생하는 해전만 제외하면 말이지.]

[뭐랄까, 그 절묘한 밸런스가 좋은게임이지.

유적이 있는 섬으로 이동하면서 한참 쉬다가, 유적에서 인디애나 존스처럼 멋지게 뛰어다니고, 배로 돌아와서 편하게 앉아 전리품을 점검하는 거.

뛰어다니고 싶은 기분과 쉬고 싶은 기분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췄다는 게 무한의 바다의 최대 강점 중 하나니까.]

[저렇게 게임에 미치도록 진지한 사람들이 만든 게임이야.

재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그렇게 무한의 바다는 상혁의 마케팅 전략으로 인해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KOH에 밀리지 않는 명작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KOH는 그에 뒤질세라 웹 드라마를 통해 흥미진진한 내용을 연속으로 풀어가며 자신에게 쏠려있던 게이머들의 관심을 계속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마치 쌍두마차처럼 나란히 질주하는 두 게임의 멋진 흥행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KOH의 세 번째 스텝을 성공시키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이벤트에는, 이벤트의 배경이 될 뉴욕시와 미 국방부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미국에 도착한 상혁은 공항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DARPA의 전략 기술 연구실 책임자, 자레드 더들리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는, 상혁에게는 아직 생소한 모습의 한 흑인 남성과 함께.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는 더들리의 옆에서 상혁을 향해 흰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로이드 제임스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입니다.”

“국방부 장관님과의 면담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만?”

상혁이 당황하며 더들리를 바라보자, 오스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레드 씨의 책임은 아닙니다.

원래는 일정에 없었지만, 제가 상혁씨를 보고 싶어서 했기 때문이죠.

PTW의 최근 행보는 전 세계는 물론 미 국방성조차 놀라게 했습니다.

그 놀람에 대한 보답으로, 저도 오늘의 만남을 비밀로 했습니다만, 상혁씨의 놀란 표정을 보니 제 장난이 심했던 것 같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어차피 미 국방부의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DARPA를 통해서 관련자와 미팅을 진행할 생각이긴 했습니다.

그 관련자가 국방부 장관인 오스틴씨라는 건 좀 의외였지만요.

이야기가 빨라지니 좋을 것 같군요.”

“협력이라면 웹 드라마에서 공개되었던 AR 이벤트와 관련된 내용입니까?”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선 저희가 준비한 헬기에 오르시는 것이 좋겠군요.

저보다도, PTW가 뉴욕에서 진행하려는 이벤트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시니까요.”

“그게 누구죠?”

얼떨떨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상혁에게, 오스틴이 씩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다음 대답은, 그 대단한 상혁조차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죠 바이던. 미 합중국의 46대 대통령이십니다.”

그것은 로널드 도람푸에 이어 상혁이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미  합중국의 또다른 대통령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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