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터무니 없는 도전
상혁은 브리핑이 끝난 이후 곧바로 멤버들을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투입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트레이닝 과정은 방송 컨텐츠로 보면 ‘지루한 파트’에 해당하기도 했고, 아직 시설 내부에 준비해 둔 화려한 설비들이 소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상혁은 AR 레이드 이벤트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마친 후, 각 에리어 담당자 주도하에 진행되는 투어링 프로그램을 개시 했다.
그것은 이후 나이츠 리그가 정식 출범하게 되면 월드 파이널의 참가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 경험하게 될 공식 프로그램으로, 광활한 지하 시설 내부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시설들을 관광객의 기분으로 투어링 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었다.
이어지는 촬영분에서, 전 세계 최초로 그 투어링 프로그램의 참가자가 된 퍼스티스트 멤버들은, 정말 즐거운 표정으로 식당 및 헬스장, 수영장이라기보다는 워터파크라는 이름이 어울릴법한 지하 수영장과 대형 사우나,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복장을 자유롭게 골라 입을 수 있는 코스튬 샵 등을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된 1회 방영분은, 투어링 이후에 시작된 지옥의 훈련 과정은 쏙 빼놓은 채 즐거워하는 멤버들의 모습만 절묘하게 편집된 채로 첫 번째 방영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PTW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웹 드라마 ‘퍼스티스트’.
공개 당일 3800만 이상 조회수 기록.]
[역대 웹 드라마 역사상 가장 빠르고 거대한 흥행 규모를 기록한 PTW의 웹 드라마.
이것은 드라마인가 리얼 다큐인가.]
[PTW에서 계획 중인 ‘AR 레이드’의 정체는?
이벤트가 진행되는 도시 주민들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상혁이 공개한 전 세계에서의 AR 레이드 이벤트.
그리고 부유 요새의 각 시설에 대한 소개로 구성된 PTW의 웹 드라마 1회는 공개 첫날 PTW 홈페이지에서 38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그 높은 관심에 걸맞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PTW의 팬들은, 마치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세트를 그대로 구현한 PTW 파크 지하의 부유 요새 공간을 보며, 이벤트에 참가한 멤버들을 부러워하는 글을 미친 듯이 쏟아내고 있었다.
[어제 PTW에서 공개한 웹 드라마 본 사람?
진짜 세트 규모가 어마어마하던데, 아마 이게 TV 드라마였다면 역사상 편당 제작비가 가장 비싼 드라마가 되었겠지?]
↳ 뭔가 드라마 구성 자체는 각본 없이 진행되는 리얼리티 쇼 같은 느낌인데 세트는 초현실적인 느낌이라 너무 좋았음.
뭐랄까 현실 안에 존재하는 완전히 다른 공간의 리얼리티 쇼를 보는 기분?
↳ 진짜 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몰입해서 봤다.
그냥 인물들 배경에 있는 세트만 보고 있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옴.
↳ 상륙지점 세트는 충격 그 자체였음.
아니 그 지하에 산호초까지 갖다 놓다니 얼마나 진심인 거야?
↳ 그건 당연한 거야. 적어도 PTW라는 회사에 있어서만큼은 ‘대충’이라는 단어가 허용되지 않으니까.
↳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후에 프로 게임단이 월드 파이널에 진출하면 방송에 나왔던 그 시설에서 지내게 되겠지?
↳ 오늘 방송분도 기대된다.
마지막에 나이츠가 제작되는 팩토리 시설의 공개 직전에 방송이 끝났잖아.
그 거대한 로봇을 유저의 세팅에 맞춰 자동으로 조립하고 커스터마이징하는 시설이라니.
완전히 SF틱한 느낌이겠지?
어제 1화 보고 느낀 건데 어차피 촬영 자체는 24시간 진행될 텐데 하루 한 시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한 5시간 정도로 늘려주면 좋았을 텐데.
↳ 파일럿 슈트 부럽더라.
이번 컨벤션에서 배포된 수량이 하루 1만 벌씩 총 3만 벌이었지?
솔직히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멋지다고 생각하면서도 밖에서 입기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웹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더라.
슈트를 입은 파일럿들의 모습은 멋짐 그 자체였어.
분명 수백만원 이상 웃돈을 얹어줘야 구매할 수 있겠지만, 중고로 나온 슈트라도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을 정도로.
↳ ㅋㅋㅋ 나 어제 월마트에서 파일럿 슈트 입고 쇼핑 나온 사람 봄.
아마 1회차 참가자 같던데, 겉에 항공 점퍼 같은 걸 입고 있긴 했지만, 안에 입은 건 분명 파일럿 슈트였음.
아마 PRD로 게임을 하다가 그대로 장 보러 나온 거겠지.
↳ 뭐, 지금 시대에 PRS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물론 파일럿 슈트든 PRS든 기본적으로는 몸에 들러붙는 전신 슈트 계열 복장이라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솔직히 PRD 자체가 네츄럴 다이어트 머신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길에서 본 PRS 착용자 중에 살찐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엄청나게 비만 체형이 아니라면, PRS는 입는 것만으로 우주선 조종사 같은 느낌을 주는 복장이니까,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 파일럿 슈트 입고 마트에 온 사람에 대한 반응은 어땠어?
↳ 장은 보지도 못하고 포위당한 채 질문 세례를 받고 있더라.
‘혹시 그 옷 팔 생각 있냐’부터
‘PTW에서 파일럿 슈트 정발 계획이 있냐’라는 질문까지.
심지어 어떤 애는 나도 저 옷 입고 싶다고 울면서 바닥에 구르던데.
↳ 말 그대로 게임회사가 세상을 바꾸는군.
역사에 길이 남을 PTW의 웹 드라마 1화에 대한 반응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유저들의 게시글처럼 압도적인 관심과 호응 속에서 그 본격적인 대장정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
“오.”
“이게 상혁 씨가 말했던 ‘팩토리’···.”
“누가 내 뺨 좀 꼬집어줘.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확인 좀 하게.”
다음날 진행된 2회차 방송에서는, 안 그래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방송에 관한 관심을 더욱 끌어올리는 내용이 등장했다.
바로 1회차 마지막에 공개가 암시되었던 ‘팩토리’의 내부 설비가 공개된 것이었다.
PTW에서 공개한 나이츠 생산 및 정비 시설 ‘팩토리’는, 팬들이 기대하던 것 이상으로 멋진 디자인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 방송의 메인 호스트였던 기열은, 하얀 가운을 몸에 걸친 채 파일럿들의 반응을 즐기며 즐거운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나이츠의 세팅 변경이나 수리는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세팅을 입력하면, 사방에 달린 거대한 기계 팔들이 나이츠의 외부 잠금을 해체하고 각 파츠를 변경된 세팅으로 조정하죠.
나이츠는 기본적으로는 레고처럼 조립식으로 설계된 물건이기 때문에, 각 조인트의 형태와 출력만 사양에 맞는다면, 자유롭게 여러 부품을 교환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경기 도중 파손된 나이츠의 수리도, 그 즉시 새 부품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이루어지죠.”
“각 파츠의 생산도 이곳에서 이루어집니까?”
“그것도 팩토리 설비 일부이긴 합니다만, 아쉽게도 그 설비는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습니다.
거기엔 특허로 도배된 나이츠 장비의 생산 시설 외에도 보안을 이유로 특허조차 신청하지 않은 설비들이 가득 차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가공 난이도 때문에 매우 가격이 비싼 편인 티타늄 합금 장비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특수 절삭 가공 장비라던가, 지금은 공개할 수 없는 머신 스피릿 관련 신공정이라던가.
무엇보다 여러분이 탑승하는 나이츠의 코어가 개발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도 하죠.
안타깝게도 코어 자체는 내부 부속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장비라 자동화 설비만으로 제작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슈퍼카를 만드는 기분으로, 수많은 전문가가 부속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조립하죠.
물론 안전에 연결되는 장비를 사람이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만큼, 모든 부속의 조립 과정엔 산업용 딥 다이버를 통한 품질 체크 과정이 동반됩니다.
최종 점검 과정에서 나사 하나, 볼트 하나만 빠져도 바로 경고음이 울리고, 배선 하나하나의 위치와 상태까지 전부 체크 됩니다.
그런 이유로, 여러분들이 탑승하는 나이츠의 가격이 그토록 높은 겁니다.
생각보다 팔다리 부속이나 무장은 그리 비싸지 않아요.
대부분은 코어값이죠.
그리고 그 코어가 만들어지는 개발동은, 안 그래도 보안 레벨이 최고 등급인 부유 요새 내부에서도 가장 높은 보안 레벨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그 안에서 제작이 완료되어 밖으로 나오는 완제품은 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완제품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과정은 절대 볼 수 없죠.”
[사실은 외계인을 고문하는 중이라 공개가 어렵다는 게 정설ㅋㅋㅋ]
[거기까지 공개하지 않아도 이미 거대 로봇을 전자동으로 조립하는 시설이 공개된 시점에서 PTW의 기술력은 넘사벽 인증임]
[하아 싯팔 내가 지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건지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건지 다큐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려······.]
[움직이는 거 보여주세요! 실제 조립장면이 보고 싶어요!]
시청자들의 요구에 응해, 기열은 실제 나이츠 파일럿들의 결정에 따라 즉석에서 파츠 교환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수십 톤의 기계 팔이 허공을 가르며 나이츠의 부속을 옮겨 조립하는 장면은, 엄청나게 잘 만들어진 로봇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나이츠의 부품 교체는 단순히 외부에 있는 잠금장치를 해제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나이츠에 내장된 소프트웨어가 내부 연결 장치의 잠금을 해제함으로써 복잡한 시계태엽 같은 해체 알고리즘이 동작하죠.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이츠는 짧은 시간 내에 다른 파츠로 부속을 갈아끼고 전투에 합류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화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인력의 개입이 없는 전자동으로 이루어지고요.”
“코어를 제외한 전체 파츠를 교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정도입니까?”
“코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5분에서 10분 정도 걸립니다.
때에 따라서는 좀 더 걸릴 때도 있고요.”
“때에 따라서라면?”
“나이츠의 개성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도색과 장식입니다.
그러나 나이츠에 장착되는 장비는 수천 가지가 넘고, 그 많은 부속을 전부 특정 파일럿의 취향에 맞춘 커스텀 도색 장비로 준비해두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나이츠의 장갑은 3단계의 레이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기열은 팩토리 내부에 놓인 거대한 나이츠의 팔 부속 옆으로 이동해 안쪽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가장 안쪽에 있는 부속은 충격 흡수를 위한 기계적 설비가 들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프레임’이라 불리는 나이츠의 골격과 결합하는 부품이죠.
각종 유압 실린더와 기어 등으로 구성된 이 파츠의 위에는, 실질적인 방어력 제공을 위한 티타늄 합금 레이어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기본적으로 전용기 외에는 커스터마이징이 불가능하며, 어떤 나이츠가 장착하든 같은 부속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실제 관객들과 여러분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커스텀 레이어가 존재하죠.
이건 생각보다 해체가 간단하며, 무게도 가볍습니다.”
기열이 손짓하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연구원이 기열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두 사람은 어깨 장갑에 달린 몇 개의 버튼을 동시에 누르고는 힘을 주어 번쩍이는 장갑의 외부 부품을 티타늄 합금 레이어에서 떼어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들기에 약간 무거운 수준이긴 했지만, 들어 올리지 못할 정도의 무게를 가진 부속은 아니었다.
“여러분들이 KOH 안에서 머신을 커스터마이징 하면, 기본적으로 저희가 여러분 개개인을 위해 준비하는 것들은 바로 이 커스텀 파츠입니다.
이건 실제 동작과 방호를 담당하는 내부 프레임 위에 장착되어, 양산형 부품으로도 여러분 개개인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기본적으로는 가공의 편의성 때문에 알루미늄을 사용해서 제작되지만, 내부에 티타늄 제 뼈대를 심는 예도 있습니다.
그 위에 자동차의 도장을 하듯 여러 겹으로 페인트를 코팅해서, 결과적으로는 여러분이 경기에서 보셨던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외부 장갑이 완성되는 거죠.
경기 도중에 일부 부속의 파손이 일어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이 외장 부품만 교체하면 대부분 새것처럼 수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예 두 동강 난 경우는 새 부품을 사용해야겠지만, 그 경우에도 창고에서 꺼낸 양산형 부품에 해당 나이츠에 맞는 외장 부품을 끼워 넣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새 부품이 준비되죠.
그러니 실제로 전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결국 모든 파일럿들이 서로 나이츠를 공유하며 돌려쓰기를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첫째 경기가 끝나는 순간 바로 팩토리로 나이츠를 가져와서, 다음 경기에 참가하는 파일럿을 위해 빠르게 분해 과정을 거친 후 새 부품을 달아 완전히 새 나이츠인 것처럼 조립해서 경기장에 내보내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딱히 다음 경기에 해당 코어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엔 그냥 내버려 두긴 합니다만···.”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희는 나이츠에 탑승할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는 거군요?”
“어차피 소유의 개념이 무의미한 장비니까요.
모든 나이츠는 아레나 스타디움에서 외부로 반출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이 안에서만 탈 수 있는 장비라면, 탈 때마다 그때그때 조건에 맞춰서 조립 후 제공하는 게 좀 더 편한 방법이죠.
무엇보다 대당 수백억 이상 들어가는 코어의 생산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고요.”
기열은 그 이후로 세팅이 완료된 나이츠가 늘어서 있는 창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부유 요새 안에 있는 나이츠 세팅 장비의 인터페이스를 소개하기도 하며 방송의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팀 퍼스티스트의 멤버들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임으로써 현재 촬영 중인 웹 드라마가 대본 없이 촬영 중인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저 표정이 연기면 쟤네는 아카데미상 받아야 함.]
[지금 파일럿들이 짓는 표정이 딱 내 표정임.
이런 미친, 완전 이세계네 이세계.]
[프로 나이츠 파일럿이 되면 월드 파이널 기간 중에 저 안에서 생활할 수 있는 거지?
오늘부터 도전한다.
진짜 경쟁자 미친 듯이 많을 듯.]
↳ 발매 첫날 팔린 KOH 수량만 1800만 장이 넘음.
지금 오프라인 마켓에서는 9세대 게임기가 전부 품절 됐고, 되팔이들 물량도 싸그리 털렸어.
SANY는 물론이고 MS에서도 9세대 게임기 증산 계획 발표했는데, 그게 전부 KOH 때문임.
접는 인원 포함해도 활성 유저만 5천만은 금방 찍을걸?
그중에 한 줌도 안 되는 프로가 된다?
가능할 것 같냐?
↳ 방송 보면서 퍼스티스트 파일럿들이 하는 이야기 못 들었음?
저 중에 누구도 자기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잖아.
그럼 나도 모르는 거지.
중요한 건 얼마나 도전할 가치가 있느냐지, 도전이 얼마나 어려운가가 아니야.
이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여준 것은 시청자와 팬들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OTT 서비스 제공 업체들은 추가 방영될 웹 드라마의 독점 방영권을 따내기 위해 일제히 PTW에 연락을 취해왔고, 그 대가로 막대한 현금을 제시했다.
심지어 삼정과 PTW와의 협업 관계 때문에 PTW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와플 TV에서도 PTW측에 웹 드라마의 독점 방송권에 대해 제안을 해 왔는데, 현주는 그 모든 제안을 단칼에 잘라내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돈 많습니다.”
현주가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특정 OTT에 가입하지 않으면 PTW의 신작 웹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독점 방송권을 제공하는 것보다, 누구나 회원 가입 없이 자유롭게 지켜볼 수 있는 PTW 홈페이지에서 웹 드라마를 방송하는 것이 PTW 입장에서 훨씬 이득이기 때문에.
일일 시청수 38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는, 말 그대로 매일 한 번씩 슈퍼볼 광고를 공짜로 집행하는 수준의 광고 효과를 PTW에 제공해주고 있었고, PTW에서는 그 수많은 시청자에게 방송의 시작과 중간에 자사 게임들의 광고를 집어넣음으로써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어내고 있었다.
특히 상혁은 나이츠 리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처음으로 PTW의 게임을 접하게 된 신규 타겟을 위한 광고를 집중적으로 편성했는데, 그 광고들은 대부분이 PTW의 또 다른 신작인 ‘무한의 바다’에 대한 광고로 편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드라마 내용 자체가 KOH란 게임의 PPL용 드라마나 마찬가지였기에, 드라마의 시청자 수가 증가할수록 9세대 콘솔의 수요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증가하고 있었고, KOH의 판매량도 그것에 맞게 동반 상승하고 있었기에 KOH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게임이란 컨텐츠가 받을 수 있는 역대 최대의 포커스를 받으며 최적의 출발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흥하면 흥할수록 신이 나는 게이머들의 특성상, KOH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같이 축제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매일같이’ 드라마의 내용을 토론하는 내용으로 게시판이 가득 채워지고, ‘매일같이’ 새로 합류한 게이머들이 게임에 대해 질문하는 게시글과 멀티 플레이 팀을 구하는 구인 글이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중간 광고를 통해 뒤늦게 포커스를 받기 시작한 무한의 바다 역시 게이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KOH의 화려한 이벤트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한 신작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가 게이머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다들 KOH에 주목하고 있는 건 알지만, PTW의 또 다른 신작인 ‘무한의 바다’도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KOH가 PTW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어 만든 콘솔 게임계의 역작이라면, 무한의 바다는 HC 101에서 YAS를 거쳐 무한의 바다로 이어지는, ‘풀 다이브 VR’이란 개념을 최초로 구현한 PTW라는 회사의 VR 게임에 대한 노하우가 충 집결된 VR 게임계의 마스터 피스나 마찬가지인 작품이니까.
KOH가 KOHA라는 PRD 전용 게임 없이는 완전한 재미를 즐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순수하게 게임 자체로의 완성도는 KOH보다 무한의 바다가 압도적임.
물론 실물 크기의 나이츠라는,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는 희대의 물건 때문에 과도하게 묻힌 감이 있긴 하지만, 게임 자체로 보면 이건 VR 게임이 가져야 할 모든 지향점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전설의 명작이야.]
↳ 현재 기준으로 VR 게임계에서 최고 존엄은 YAS 아님?
↳ 물론 YAS는 좋은 게임이지.
근데 문제는 YAS의 장르가 MMORPG라는거야.
실제로 게임 안에 접속해보면, 이제는 NPC 보다 플레이어가 더 많이 보일 지경인 게임이라고.
물론 MMORPG에서 플레이어 숫자가 NPC 보다 많은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함’은 생각보다 큰 문제를 가져오고 있어.
↳ 문제라면?
↳ 우선 아무리 게임에 진지한 사람이라도 기본적으로는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결국 YAS라는 게임은 가상의 세계 속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플레이어 때문에 그 몰입감이 깨질 수밖에 없는 장르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거지.
YAS에서는 말하는 투만 봐도 내 눈앞에 있는 게 NPC인지 플레이어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그래서 필연적으로,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지금 게임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고.
↳ 무한의 바다는 다르다는 거야?
↳ 다르지.
기본적으로 싱글 플레이를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이니까.
게임 안의 모든 NPC는 마치 진짜 그 세계의 주민처럼 연기하고 행동해.
무한의 바다 안에 있는 선원들은 하나같이 더럽고 거친 바다 사나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
그런 인간들과 부대끼면서 몇 주는 빨지 않은 옷을 입고 서 있는 것만으로 땀이 줄줄 흐르는 정글 속을 헤쳐나가는 건, 생각보다 순식간에 내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한 몰입감을 줘.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무한의 바다 안에서 선원들이 하는 모든 모션은 말 그대로 엄청나게 현실적이거든.
밧줄 하나를 당기는 자세, 높은 파도가 갑판에 쏟아질 때 균형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는 자세, 방수를 위해 갑판에 발라놓은 타르가 덜 굳어서 신발이 들러붙어 이상하게 걸어가는 특유의 걸음걸이까지.
술잔 하나를 들어 올려도 어떤 캐릭터는 건배하자마자 떨어지는 술이 아까워서 혀로 핥기도 하고, 어떤 캐릭터는 잔뜩 취해서 마구 잔을 휘두르다 텅 빈 잔을 보면서 ‘어? 언제 내가 술을 다 마셨지?’라고 묻기도 한다고.
무한의 바다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NPC들만 지켜보고 있어도 충분히 즐거운 게임이야.
서늘한 그늘에 앉아서 악세서리 가격을 흥정하는 아가씨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항구에 앉아 그 시대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니까.
↳ 엄청난 찬사네. 그 정도로 재미있나? 다들 KOH에 빠져 있어서, 무한의 바다는 별 관심을 못 받은 것 같은데?
↳ 그게 숫자의 함정이지.
KOH가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높은 첫날 판매량을 기록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해봤자 60만원 정도 하는 9세대 콘솔 게임기로 플레이하는 게임이잖아.
그에 반해 무한의 바다는 3천만원짜리 PRD가 있어야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고.
9세대 콘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PRD의 보급률을 고려해보면, 무한의 바다는 충분히 역대급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어.
그리고 PTW에서 출시한 게임뿐만 아니라 PRD 전용으로 나온 타사 게임까지, 온갖 풀 다이브 게임들을 플레이해본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하지만 앞으로 KOHA 때문에 PRD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
괜찮다면 무한의 바다도 한번 플레이해 보라고.
KOHA가 아무리 대단한 게임이라도, 무한의 바다라는 게임 역시 게임을 켜는 순간 아예 게임 종료 버튼을 메뉴에서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멋진 게임이니까.
게임을 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내 말에 동의할 거야.
게임을 끈 이후에도, 나도 모르게 편의점에 가서 ‘Ahoy!’하고 인사하게 되는 게임이 무한의 바다라는 게임이니까.
↳ 아, 저거 레알 임.
나도 진짜 8시간 연속 플레이하고 목말라서 편의점 갔다가 나도 모르게 아르바이트생한테 ‘Ahoy!’라고 인사했다니까?
↳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데 요새 며칠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 실제로 봄.
근데 그게 장난처럼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인사하는 게 당연하다는 투로 인사하니까, 나도 모르게 ‘Ahoy!’라고 대답해버림.
↳ 게임 안에서는 선원들끼리 대부분 그렇게 인사하니까.
물론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Aye aye, captain!’이지만, 실제로 게임 안에서는 다른 NPC들에게 플레이어가 ‘Ahoy!’라고 인사하게 대본이 짜여 있어서, 8시간 정도 플레이하면 나도 모르게 입에 인사말이 붙어버림.
게시글 작성자가 말했던 것처럼, 게임이 제공하는 몰입감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몇 시간만 플레이해도 내가 게임 속 캐릭터가 아닌 진짜 선장 같이 느껴지거든.
↳ 그거도 KOH같이 이쁜 캐릭 많음?
↳ PTW 게임이니까 당연히 미형 캐릭은 많은데, 위생도 시스템 때문에 좀만 관리 안 하면 금세 꼬질꼬질해짐.
배에서는 식수가 귀해서 보통 바닷물로 씻으니까, 장기 항해 조금만 하면 피부에 흰색 소금이 번들거리는 미소녀들을 볼 수 있음.
머리도 자주 떡져있고.
그래도 항구에 기항하면 귀신같이 깨끗이 씻고 오긴 하니까, 자주 기항하면 못 씻어서 스트레스받는 모습은 안 봐도 됨.
↳ 거긴 비누 같은 거 없냐?
↳ 있는데 조오오온나 비쌈.
그리고 비누를 써도 씻는 물은 바닷물이기 때문에 제대로 씻기 어려움.
물론 나는 PRD로 게임하는 거니까 그 느낌은 잘 체감이 안 되지만, 선원들 말로는 ‘어떻게 씻어도 찝찝한 느낌’이라 함.
가끔 위생 욕구 높은 선원이 식수 훔쳐서 목욕하다 걸리는 이벤트도 나옴.
↳ 그거 플레이어가 수 마법 계열 스킬 익히거나 민물 생성하는 마도구 구할 수 있으면 해결됨.
기본적으로는 중세 대항해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판타지가 섞여 있는 게임이라 유물 같은 거로 커버할 수 있음.
그렇게 민물 생성할 수 있으면 선원들 스트레스 엄청 편하게 유지 가능하니까 한번 해보셈.
↳ 헐. 그건 몰랐네. 내가 얻은 유물은 하루 한 번 랜덤하게 내용물이 차오르는 술통이었는데.
고급 위스키 같은 거 나오면 술 좋아하는 선원들은 좋아 죽으려고 하던데.
↳ 난 오히려 그 술통에 대한 정보를 처음 듣는데? 그거 커뮤니티에 올려봐.
관심 가지는 사람 엄청 많을 듯.
↳ ㅇㅋ 바로 입수법 올려봄.
[무한의 바다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감탄사가 나오는 부분은, 배를 항해하는 파트가 진짜 현실의 그것 수준으로 리얼하다는 거임.
애당초 PRD 자체가 온도 센서로 바람의 느낌을 구현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배의 흔들림이나 키의 조작감, 바다 바람의 촉감 같은 게 지나치게 현실적임.
사운드는 물론이고.
물론 내가 진짜로 중세 시대 범선을 몰아본 건 아니지만, 무한의 바다에 구현된 항해 시스템은 경험이 없어도 그게 진짜처럼 느껴질 정도로 디테일한 부분이 잘 구현되어 있어.
의외로 현실감이라는 건 사소한 데서 느껴지는 법이거든.]
↳ 어? 그거 나도 동의함.
선원들 모션도 그렇고, 배가 파도에 맞춰서 흔들리면 전부 알아서 중심을 잡는데, 해전이 개시될 때 AI가 움직이는 동선부터 대포에 맞을 때 반응까지, 이게 진짜 인간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었음.
배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원들 간의 대화도, 이게 진짜 바다에서 몇 달 처박혀서 산 인간들이 맞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엄청 해적다운 느낌의 대화들이었고.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이런 의심이 들 정도라니까?
‘혹시 PTW에는 중세 시대로 가는 타임머신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 ㅇㄱㄹㅇ. 분명 게임 제작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게임일텐데, 게임이 가진 디테일은 중세시대 해적들이 만든 느낌임.
그 미친 디테일 때문에 자꾸 이게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자동으로 선원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니까?
기본적으로 게임을 시작하면 3시간도 안 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됨.
‘아, 나는 이 소중한 선원들의 선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얘네들과 항해에 성공해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게임을 시작한 지 고작 3일 차인데 내 고등학교 절친보다 무한의 바다에 있는 내 배의 크루들이 더 친근한 느낌임.
↳ ㅋㅋㅋ 진짜 정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는 애들로 가득 차 있음.
[근데 무한의 바다가 그렇게 재미있다면서 님들은 왜 게임 안하고 커뮤니티에서 이러고 있음?
싱글 게임이라 서버점검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게임 안 함?]
↳ 좀 있음 퍼스티스트 3화 나올 시간이잖아.
아무리 바빠도 그건 봐야지.
↳ ㅇㅇ 무한의 바다가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고 하루 한 시간 퍼스티스트 보는 건 못 참지.
↳ 오늘은 트레이닝 관련 내용 나온다던가?
↳ 1, 2화 내용이 사실 조종사들입장에서는 1일 차에 겪은 내용을 편집해서 방영한 거고, 그 이후에 훈련받는 내용이 오늘 3일 차 방송에 나온다고 그랬음.
실제 촬영은 거의 24시간 내내 이루어지고, 그중에 편집할 만한 장면만 PTW가 편집해서 방송하는 거니까 방송 내용하고 현실 타임라인은 좀 다르다고 봐야 함.
실제로 파일럿들은 우리가 어제까지 보았던 내용을 첫째날에 모두 겪고 그 이후엔 본격적인 트레이닝 과정에 돌입했다고 말했어.
↳ 그건 어디서 봄?
↳ 방송 페이지 메뉴 보면 각 파일럿 별로 개인 페이지 있음.
그리고 일부 파일럿의 경우 특정 시간대에 개인 방송하는 파일럿도 있고.
근데 사실 내용은 별거 없어.
보통 밥 먹고 훈련받고 밥 먹고 훈련받고 씻고 자거든.
↳ 훈련 내용에 흥미가 가는데?
↳ 그건 좀 재밌음.
근데 그걸 내가 말하면 오늘 방송 스포일러가 될 것 같은데?
↳ 그건 안 되지. 방송 보고 나서 물어봄.
↳ ㅇㅋ. 방송 끝나면 게시판으로 오셈.
[다들 닥쳐! 광고 나온다!]
[무한의 바다···. 광고, 맞나?]
[실사 아님?]
[유저로서 말하는데 저거 절대 게임 그래픽 아님.
근데 배는 게임 안에 나온 그 배 맞는 것 같은데?]
[X친 저거 뭔데?!]
PTW에서 공개한 3일차 방송의 사전 광고를 본 유저들은 경악에 빠졌다.
그들이 보고 있는 화면은, 가상의 그래픽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거의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PRD의 게임 그래픽을 기준으로도 아득하게 현실적인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작 기간 1년.
최대 배수량 3200톤.
230문의 발사 가능한 대포와 1200명 이상의 탑승 인원.]
반짝이는 햇살 아래, 거대한 대양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범선 ‘트리거(Trigger)’의 모습은, 중세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고전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도크에서 조금 전에 튀어나온 듯한 세련미를 겸비하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로 가서 현대의 바다로 범선을 끌고 온 느낌이랄까.
오래된 배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배는 이 배가 건조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총 제작 대수 12척.]
그리고 이어지는 문자와 함께, 멀어지는 카메라는 트리거의 주변에 있는 11척의 다른 범선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을 본 ‘무한의 바다’유저들은, 그제야 그들이 느꼈던 게임 속 디테일이 어떻게 구현된 것인지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게임회사인 PTW가, 그 디테일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미친 짓을 시도했는지도.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에서 현대로 강제 전송시킨 듯한 12척의 범선을 배경으로 시작된 ‘무한의 바다’의 광고는, 이윽고 그 범선이 건축되었던 도크의 모습을 비추어 줌으로써 조금 전 보여주었던 범선이 그래픽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
[게임의 기획단계부터 12척의 범선 제작, 실제 범선을 이용한 4개월간의 장거리 항해까지.
‘현실을 뛰어넘는 가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한 PTW의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는 장편 다큐멘터리.
세계 최고의 게임 제작사 PTW와, 세계 최고의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디스커버리 채널’의 전문가들이 협력.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설의 게임을 제작하기 위한 ‘게임 제작자’들의 터무니 없는 도전을, 여러분께 선물합니다.]
덤덤한 목소리의 나레이션을 배경으로, 영상은 ‘무한의 바다’의 제작 과정에 동원된 PTW의 수많은 노력을 보여주었다.
목제 범선의 자연스러운 파괴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실제 중세 시대 대포와 동일한 대포를 제작하여 사격을 반복하던 영상이라던가, 세계 최초로 거대 스튜디오 형태로 구현된 가상 스튜디오 안에서 게임을 제작하던 제작자들의 모습이라던가, 범선 게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아예 범선에 탑승한 뒤 쉽 비스킷을 씹으며 4개월 이상의 장거리 항해에 참여하는 미친 개발자들의 모습까지.
갑판에 타르를 칠하고 로프를 당기며 럼주를 들이키는 ‘개발자’들의 모습은, 그 영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이런 미친 놈들이 만드니까 이런 미친 게임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도록 만들고 있었다.
[X친 실물 크기 로봇만 만든 줄 알았는데 이색기들 범선까지 만들었어?!!]
[한대도 아니고 12대를?! 그리고 그걸로 실제 항해까지 했다고?
어디까지 게임에 진심인 건데?]
↳ 아니 이건 ‘진심’이라는 단어로는 표현 불가능이지.
이건 미친 거야.
정상인이라면 절대 저 정도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 난 오늘 깨달았다. PTW라는 회사에 ‘정도’를 묻는 것 자체가 금기라는 사실을.
↳ 오늘부터 다른 게임회사는 개발과정에서 뭐가 힘들었네 고생했네 그딴 소리 하지 마라.
모두의 경악 속에서, 광고는 마지막 장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개발자인지 중세 시대 뱃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의 모습을 한 한 개발자의 모습을.
그는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럼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누렇게 빛나는 이를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로봇이 뭐 X발 어쨌다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적어도 대당 제작비는 요놈이 그 장난감보다 훨씬 비싸단 말이다.”
전 세계를 경악시켰던 실물 크기 나이츠의 존재를 당당하게 ‘장난감’이라고 표현하는 그 개발자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KOH’에 절대 밀리지 않는 게임을 만들었다는, 스스로가 만든 게임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짙게 묻어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