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54화 (455/485)

454. 진짜같은

1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황당한 평점으로 시작되는 리뷰는, 가장 먼저 작성자가 미발매된 게임에 대한 충분한 플레이를 거쳤음을 인증하는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게임이 발매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것도 오로지 PTW 파크에서만 플레이 가능한 게임을 리뷰하고, 더 나아가 평점까지 부여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섣부른 일이라고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게임 리뷰어로써의 소신을 걸고 말하건데, 적어도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전 세계에 있는 게임 리뷰어 중에 KOH의 리뷰를 할 가장 확실한 자격을 가진 기자는 오로지 나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엔 나보다 뛰어난 수많은 게임 리뷰어들이 존재하지만, 그 비싼 5차 NE 컨벤션의 티켓을 두 장이나 쓰면서 무려 2일이란 시간 전부를 KOH 플레이에 할애한 미친 리뷰어는 오직 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다.

PTW라는 회사가 존재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게임 리뷰어로서, 나는 오로지 세계에서 가장 먼저 PTW의 신작을 리뷰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이틀이란 시간을 투자하여 KOH라는 게임의 실체를 최대한 파악하기 위해 5차 NE 컨벤션에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모두 포기한 것이다.

남들이 과거의 추억을 상기하며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맞춰 리메이크된 역대 NE 컨벤션의 세트장을 즐거운 기분으로 누비고 다닐 때, 난 골방에 앉아 딥 다이버를 쓰고 KOH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남들이 ‘가게만 차렸다면 미슐랭 스타는 무조건 받았을 것’이라고 평가받는 NE 컨벤션의 명물 요리들을 즐겁게 맛보고 있을 때, 난 골방에 앉아 주린 배를 부여잡고 KOH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남들이 현존하는 가장 하이 스펙의 풀 다이브 VR 디바이스인 PRD 안에 들어가 바다 내음까지 느껴질 듯한 환상적인 그래픽을 느끼며 범선의 키를 잡고 유쾌한 해적 동료들과 즐거운 항해를 하고 있을 때, 난 골방에 앉아 패드를 잡고 KOH를 플레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를 경악시킨 그 전설적인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남들이 15미터짜리 티타늄 강철 바디에 열광하던 그때, 나는 골방에 앉아 KOH의 이벤트를 하나라도 더 보기위해 악착같이 게임을 플레이 하고 있었다.

물론 한 장 더 가지고 있는 티켓을 사용하여 2일 차 행사 때도 전날 플레이했던 KOH의 세이브를 이어서 플레이한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적어도 게임 시스템이나 이벤트, 진행도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게임 리뷰어 중에 가장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 리뷰어가 바로 나라고 봐도 무리는 아닐 터.

그런 나이기에,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 게임 리뷰를, 그런 엄청난 즐거움을 모두 포기한 채 이틀이란 시간 동안 KOH라는 게임을 전력으로 플레이하려 노력했던, 한 리뷰어의 피눈물이 담긴 게임 리뷰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상혁은 글쓴이의 한이 느껴지는 머리글을 읽으며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진짜로 2일 연속 입장해서 KOH만 플레이 한 유저가 있었다니···.”

“유명 관광지까지 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호텔 방 안에서 게임만 플레이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거랑 버금가는 변태 플레이군요.”

“그만큼 KOH라는 게임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야기니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습니다.

5차 NE 컨벤션은 일부러 테마 파크 형태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간에 역대 NE 컨벤션의 모든 어트렉션을 리뉴얼해서 집어넣고, 거기에 아레나 스타디움이라는 희대의 볼거리까지 집어넣은 이벤트니까요.

그걸 다 포기하고 게임 하나 리뷰하는데 목숨을 거는 리뷰어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뭐, 덕분에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전문가 리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평점도 한도 이상으로 좋게 주었고요.

왜 그렇게 고평가를 했는지 궁금해지네요.”

기열의 말을 들은 상혁은 마우스의 휠을 굴려 기사를 아래로 내렸다.

기열이 본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렇게 내린 본문에는, 왜 그 작성자가 굳이 10점 만점에 100점이라는, 정해진 기준점 이상의 점수를 주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콘솔 게이밍 월드(Console Gaming World)에서는 기본적으로 10점 만점을 기준으로 평점을 매기고 있다.

그러나 이번 리뷰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KOH라는 게임을 단순히 게임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어느 곳을 살펴보더라도, 자사의 게임 팬들을 위해 15미터 짜리 실물 로봇을 만드는 미친 회사는 PTW외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이 특이한 게임은 기존의 게임 평가 기준만 가지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KOH라는 게임은 게임 외적인 요소가 게임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큰 게임이기 때문에.

우선 KOH라는 게임은, 단순히 그 게임 하나만 가지고 독립적으로 돌아가는 기존의 게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를 가진 게임이다.

굳이 따지면 매니지먼트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까운 KOH라는 게임은, 그와 연동되는 풀 다이브 VR FPS 게임인 KOHA와 세이브가 연동되는 게임이며, 그 KOHA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 대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실물 크기 로봇 대전 스포츠인 ‘나이츠 아레나’와 연동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실물 크기의 로봇을 이용하여 펼쳐지는 거대 로봇 스포츠인 ‘나이츠 아레나’는 반드시 KOHA라는 게임에서 챌린저 랭크에 등록된 유저들만 참가가 가능하며, KOHA라는 게임을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KOH라는 게임의 세이브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 독특한 개성을 가지는 2개의 게임 속에서, 유저는 자유롭게 두 게임 사이를 오가며 각각의 게임에서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미를 체험하게 된다.

이런 KOH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는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가장 메인이 되는 KOH만의 강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선택과 집중 - 풀다이브 VR 환경의 ‘산만함’을 배제하기 위한 PTW의 고민이 느껴지는 KOH의 독특한 시스템.

PRD로 구현된 1세대 풀 다이브 게임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현재까지도 VRMMORPG인 YAS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풀 다이브 게임으로 평가받고 있는 희대의 명작 HC 101.

발매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이용자 수가 감소할 생각을 안 하는 그 멋진 게임은,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가지고 놀만 한 수많은 VR 컨텐츠로 가득 차 있는 게임이다.

쇼 윈도에 걸린 모든 옷은 구매해서 입어볼 수 있는 옷이며, 길에 있는 모든 NPC와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방에 있는 모든 오브젝트 역시 직접 만지면서 노는 것이 가능한 게임이기 때문에.

HC 101의 배경이 되는 거대한 도시 속에서, 플레이어는 손을 들어 택시를 잡거나 경찰의 무전을 도청하고 은행에 예금을 하러 가거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

볼링과 다트를 즐기고,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젤라토를 사 먹거나 마트에서 컵라면을 사와 아지트에 쟁여놓는 것도 가능한 게임.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유저들이 처음으로 HC 101을 플레이 하게 되면, 그들은 게임 안에 있는 모든 오브젝트를 한번씩은 다 만져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벽에 다트를 던지면서 현실과 똑같이 날아가는 다트를 보고 흥분하기도 하고, 볼링공을 던지면서 현실과 딱히 다르지 않은 볼링공의 무게감을 느끼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시민 구출은 포기하고 도시 안에 있는 스크린 골프장에서 VR 골프를 즐기거나 길거리 농구를 즐기는 유저들도 상당수 있을 정도이니, 풀 다이브 VR 게임이란 측면에서 HC 101의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HC 101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모든 것이 가능한 환경’ 자체가 게임의 몰입도를 크게 해친다는 것이다.

HC 101에서 가능한 그 모든 VR 컨텐츠들은, 딱히 VR이 아니어도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굳이 VR 세계가 아니어도 현실에서 다트를 던지고 볼링공을 굴릴 수 있다.

그런 것들을 게임 속에서 만져볼 수 있다는 경험은, 처음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얼마 안 가 쉽게 질리게 되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결국 HC101의 월드 안에 그토록 잘 만들어진 수많은 컨텐츠들은 가끔 심심할 때 만지작거리는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메인 컨텐츠인 시민 구출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 HC 101이란 게임의 실체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온갖 음식이 넘쳐나는 뷔페 한가운데 유저를 밀어 넣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그 신기한 음식들을 모두 맛보기 위해 사방을 돌아다니지만, 결국 매일 방문하다 보면 가장 맛있는 메뉴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먹게 되는 것처럼.

KOH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선택과 집중을 잘 해놓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게임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컨텐츠들이, 전부 캐릭터의 육성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메인 플로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물론 KOH안에도 여러 가지 서브 컨텐츠들이 존재하긴 한다.

게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션 보상으로 다트판이나 트럼프, 커피메이커, 테니스 코트, 주방(기본적으로 부유 요새 내에서의 식사는 영양소 블록을 조리용 3D 프린터로 뽑아낸 식사가 메인이기 때문에 재료를 가지고 직접 조리하는 요리는 세계관 내에서 매우 귀한 음식 취급을 받는다), 함선 내부에 설치할 수 있는 텃밭과 정원 등의 다양한 서브 컨텐츠를 해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HC 101의 샌드박스식 서브 컨텐츠와 다른 점은, KOH의 모든 서브 컨텐츠는 ‘히로인 육성’과 ‘연애 이벤트’를 위한 일종의 키 아이템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주방을 해금하고 특정 재료를 습득하면 특정 히로인이 도시락을 만들어준다던가, 게임 안에서 이따금 발견할 수 있는 영구 보존 캡슐에서 초콜릿 덩어리를 발견하면 발렌타인 데이 이벤트로 초콜릿을 받을 수 있다던가, 혹은 가장 추천하는 미니게임 중 하나인 ‘마피아 게임’을 히로인들과 즐기는 식으로.

특히 내부가 우주선처럼 꾸며진 부유 요새 안에서 진행되는 마피아 게임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미니게임이었는데, 부유 요새의 크루가 일정 수 이상인 상태에서 함선 내부의 유지 관리 상태가 일정 이하로 내려가면, 주인공의 제안을 통해 마피아 게임을 할 수 있다.

그럼 마치 ‘어몽○스’처럼 우주선 내부를 돌아다니며 마피아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데, 딥 다이버의 마이크 기능을 사용해서 음성 대화로 진행되는 이 파트를 플레이 하다 보면 어몽○스의 미소녀 버전을 플레이 하는 기분이 들게 된다.

물론 소중한 크루를 진짜로 살해할 수는 없으니 등에 ‘사망’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쪽지를 붙이게 되지만, 쪽지를 붙이는 순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 앉는 히로인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게다가 평소엔 어떻게든 플레이어와 함께 있으려고 달라붙던 히로인이 마피아 게임을 할 때는 엄청나게 경계하는 표정으로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를 거야!’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한 기분이고.

축제도 즐거운 컨텐츠 중의 하나이다.

미션을 통해 해금 가능한 보상 중 하나인 ‘매점’의 종류를 일정 이상 늘리다 보면, 마수 토벌 미션에 성공한 뒤 마을에서 축제를 여는 선택지가 열리는데, 자금과 식량을 일정 수준 이상 지불하면 기뻐하는 마을 주민들이 노점으로 가득한 축제를 열어준다.

당연히 조명으로 반짝이는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히로인과 즐겁게 데이트하는 것도 나에겐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마지막에 잔뜩 흥분한 크루들이 다 같이 나이츠를 꺼내와서 공중에 온갖 무기를 난사해 만든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매우 즐거웠고.

이런 식으로 게임 안의 모든 해금 보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벤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KOH의 미션 보상은 플레이어에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드는 마법 같은 존재가 된다.

가구 하나가 해금되어도 단순히 부유 요새에 설치할 수 있는 가구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구로 인해 생겨날 히로인들간의 상호작용을 기대하게 만드니까.

그렇기에 KOH를 플레이 할 때 볼 수 있는 맵을 가득 채운 미션 마커는, 다른 오픈 월드 RPG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

KOH를 플레이 해 보지 않은 일부 게이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서브 퀘스트로 넘치는 오픈월드 RPG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게임이 아니냐고.

그리고 그것은 딱히 틀린 지적은 아니다.

맵 화면을 여는 순간 온갖 퀘스트 마커로 화면이 가득 메워지는, 서브 퀘스트 투성이의 오픈월드RPG는 현대 RPG 트랜드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나 단순히 플레이 타임을 늘리고 게임의 볼륨을 키우기 위해 어거지로 삽입되는 대다수 RPG의 서브 퀘스트와는 다르게, KOH의 미션은 언제나 ‘기대감’을 안겨 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번엔 어떤 보상이 해금되어 어떤 히로인의 무슨 이벤트가 해금될까?

이번 마수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혹시 좋아하는 캐릭터가 새 스킬을 습득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밸런스가 맞지 않은 상태로 셋팅된 특정 나이츠에게 딱 맞는 부속을 이 미션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엄청나게 매력적인 새 히로인을 이번 미션을 통해서 동료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기대감이 있기에, KOH의 맵에 가득한 미션 마커는 플레이어에게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으로 가득한 보물 상자처럼 보이게 된다.

이 즐거운 게임의 볼륨이 크기를 기대하는 게이머의 마음에 부응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 넓은 맵을 가득 채운 온갖 미션들이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내 가슴은 열심히 모은 부유 요새의 크루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2회차를 할 때의 즐거움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렇기에 난 이 ‘무지막지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게임에,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평가를 부여하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이틀동안 미친 듯이 몰입해 플레이한 KOH라는 게임은, 이 게임이 PRD를 이용한 풀 다이브 VR 게임으로 발매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오히려 이 게임이 콘솔 게임으로 나와준 것에 대해 더 감사하게 될 만큼 엄청나게 잘 만들어진 콘솔 게임이니까.

▶로봇 – KOH라는 게임을 논하는 데 있어서, 실물 크기 로봇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어떤 게임이 게임으로서 완벽한 완성도와 재미를 갖추었을 때, 리뷰어는 그 게임에 대한 존경을 담아 10점 만점에 10점이란 스코어를 부여한다.

그러나 KOH라는 게임에 있어서만큼은, 기존의 게임을 평가하는 일반적인 평가방식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의 뉴스를 한순간에 도배해버린 15미터 크기의 실물 크기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서는, KOH라는 게임이 플레이어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과 가상.

때때로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검은 화면에 떠오르는 한 줄의 작은 메시지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따금 보는 이에게 스포일러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보는 이에게 몰입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진짜’와 ‘진짜 같은’의 차이는, 보는 이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한때 전 세계에 마법 붐을 일으켰던 MYOM을 들 수 있다.

플레이어가 정해진 공식에 따라 손을 휘젓는 대로 화면 속의 캐릭터가 마법을 시전하도록 만들어진 MYOM이란 게임은, ‘make your own magic’이라는 게임의 타이틀에 걸맞게 플레이어가 진짜 마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주는 게임이었다.

당시로써는 엄청난 오파츠급 성능을 자랑하던 코넥트를 100% 활용하도록 만들어진 MYOM의 마법 시스템은, 수많은 유저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마법 공식을 연구하고 새로운 주문을 만들기 위해 TV 앞에서 수백 시간을 보내게 했다.

남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적탑 소속 5서클 마스터 소서러 XXX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기억은, PTW 팬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험이다.

그러나 MYOM의 팬들은, 마음속으로는 간절하게 마탑 소속의 마법사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현실에서는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를 그토록 흥분하게 했던 MYOM 세계에서의 마법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나 KOH는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력과 미친 장인 정신을 가진 PTW라는 광인 집단은, 자신들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들이 당당하게 ‘나는 프로 나이츠 파일럿 XXX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게이머들에게 제공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야 말로, KOH를 플레이할 수천만의 유저들의 가슴에 불타는 꿈을 품게 만드는 뜨거운 장작이 된다.

비록 수많은 경쟁자들 때문에 그 꿈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불가능’한 것과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것이니까.

그렇기에 KOH를 플레이 하는 유저들은 게임을 플레이 하는 내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

‘지금 내가 조종하고 있는 나이츠의 조종석에 앉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기분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알기 위해서는, PRD에 앉아 KOHA를 플레이 하면 된다.

내가 플레이하던 게임 속 동료들과 함께, 내가 부품을 모아 완성한 나이츠를 타고, 완벽하게 파일럿의 기분이 된 상태에서 나이츠의 조종간을 잡고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게임이 KOHA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KOHA를 플레이하고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들 것이다.

‘VR 세계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진짜 나이츠를 조종하는 기분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건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당연히 가지는 망상이다.

‘엘더스크롤의 세계 속에서 사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라스트 판타지 7의 티판과 에어리트를 실제로 눈앞에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와쳐의 세계에서 게랄트로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대부분은, 그것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즐거운 상상으로 남는다.

그 어떤 개발사라도, 상상 속의 산물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므로.

그러나 미친놈들 중의 상 미친놈들인 PTW는, 그 미친 짓을 실제로 해냈다.

‘세상에 거대 로봇 같은 게 어디 있어!’라고 외치는 부정론자들에게, ‘아니야! 거대 로봇은 있어! PTW가 만들었다고!’라고 게이머들이 외칠 수 있도록.

그렇기에 PTW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게이머들은 이제 당당하게 남들에게 말할 수 있다.

너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실 세계의 한곳에,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나이츠 파일럿들이 진짜로 존재하는 15미터 짜리 거대 로봇에 타고 싸우는 경기장이 있다고.

그리고 나 역시 그 파일럿들이 로봇을 조종한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로봇을 조종하며 적들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총평 – 우리는 PTW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게이머들이다.

자동차의 개발은 마차라는 운송 수단이 사라지게 하고 레이싱이라는 새로운 스포츠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발명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걸어 다니며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그처럼 위대한 혁신은 언제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법이다.

그리고 PTW는, 코넥트와 딥 다이버, PRD라는 장비로 우리가 사는 현실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PTW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리고 이번에 공개된 나이츠 역시, 우리의 삶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매년 나이츠 리그의 지역 예선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각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나이츠들을 보며 올해의 우승 후보를 점친다던가, 프로 파일럿의 플레이를 보며 자신의 나이츠 세팅을 변경해보기도 하고, TV 광고에서는 나이츠와 파일럿을 모델로 한 광고가 수없이 방영될 테니까.

그리고 학교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희망 직업에 ‘나이츠 조종사’라는 직업을 써넣고, 로봇 조종을 가르치는 전문 학원이 곳곳에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콘솔 게임기 앞에서 게임 패드를 잡고 KOH를 플레이하며 그 변화를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허구와 상상의 산물인 게임이란 컨텐츠를 비하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적어도 KOH라는 게임 앞에서는 그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내가 플레이 한 KOH라는 게임은, 게임이라는 차원을 넘어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된, 게임 이상의 ‘무언가’라 할 수 있는 물건이었기에.

PTW는 KOH라는 게임을 통해 상상 속 세계와 현실 사이에 있는 장벽을 무너트리는 말도 안 되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유저들이, 상상 속의 세계 안에서도 현실의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그렇기에 난 KOH라는 게임의 장르를 게임이란 틀 안에서 정의하지 않을 것이다.

초 현실 거대 로봇 팀 매니지먼트 ‘시뮬레이터’.

이것이 바로 KOH의 올바른 장르적 정의이며, 내가 게임 평가에서 10점 만점에 10점을 부여한 뒤에 붙인 추가점수 90점은, 바로 ‘게임’을 ‘시뮬레이터’로 바꾸어 버린 미친 개발자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부여한 점수이다.]

리뷰는 거기서 마무리되었지만, 상혁은 계속 스크롤을 내렸다.

이 낯뜨거울 정도의 찬사로 가득한 리뷰에 대한, 유저들의 댓글이 궁금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기사 밑에 달린 수많은 유저들의 댓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이 리뷰에 10점 만점에 100점을 주겠다.]

[베댓스다가 올드스크롤 세계로 전이할 수 있는 차원문을 개발했다면 베댓스다도 100점 받을 만하지.]

[우린 PTW의 시대를 살고 있다 –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함.]

[지금은 어느 가게에 가도 코넥트를 보기가 어렵지 않은 것처럼, 회사에서 딥 다이버를 쓰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

무엇보다 100% 완벽한 수준의 실시간 번역을 지원하는 기기니까, 심지어 그 꼰대들로 가득한 종합 상사에서도 양복 입고 딥 다이버 쓴 채로 일하고 있더라니까?]

[솔직히 제일 편한 건 일본어나 영어만 지원하는 게임 할 때 텍스트 자동 번역 기능을 AR로 사용하는 거야.

이미지 위에 한글 텍스트 합성해주는 번역 기능이 너무 좋아서, 딥 다이버만 쓰면 한국 게임 하는 느낌으로 외국 게임을 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나이츠끼리 싸우는 영상을 보는 순간 그 경기를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 기사를 보고나니 KOH라는 게임이 격하게 하고 싶어졌다.

말만 들어도 완전 초 갓겜이네.]

[계속 PRD 전용 게임만 만들다가 갑자기 콘솔 게임 내놓는다길래 좀 의아해했는데, 리뷰를 보니 납득이 가네.

HC 101이 완벽에 가까운 풀 다이브 패키지 게임이긴 했지만, 풀 다이브 게임 특성상 너무 건드릴 수 있는 게 많아서 산만한 느낌이긴 했음.

연애라는 목적성이 명확히 정해져 있는 만큼, KOH는 콘솔 게임으로 나온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함.]

[그 KOH를 실제로 해본 사람으로서, 난 이 기자의 리뷰에 격하게 동의한다.

진짜 뭘 고르던 전부 이벤트와 성장으로 귀결되는 게임이라서, 몰입감이 장난이 아닌 게임임.]

[나도. 보통 서브 퀘스트 포함해서 플레이 타임 300시간 정도면 꽤 길다고 하는데, KOH는 못해도 수천 시간은 플레이해도 될 정도로 엄청난 볼륨의 게임이었음.

가끔 게임을 하다보면 시작하자마자 ‘아! 이 게임은 엄청 볼륨이 컷으면 좋겠다! 플레이 타임 길었으면 진짜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잖아?

KOH가 바로 그런 느낌의 게임이야.

시작하는 순간 게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게임에 엔딩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게임.

그러면서도 2회차 플레이가 너무 기대돼서 엔딩이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게임.

그 아이러니를 가슴에 품고 플레이 하게 되는 게임이 바로 KOH라는 게임이지.]

[윗놈 글 존나 잘 쓰네.]

[ㅋㅋㅋ 그 기분 나도 알 것 같음.

진짜 게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게임 플레이 타임이 엄청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임이 있지.

KOH도 그런 게임이라면 그건 반드시 사야겠네.]

[난 일본 서브컬쳐 스타일 게임 안좋아하는데 나한테도 추천해볼만 함?]

[캐릭터는 전형적인 일본 아니메 스타일 미소녀들이지만, 스토리 자체는 생각보다 마초적인 부분이 있음.

약간 미소녀 모드 적용한 폴아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세계관부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마수와 맞서 싸우는 나이츠 파일럿들에 대한 이야기거든.

파고들수록 묵직한 느낌의 세계관과 대조되는 밝은 캐릭터들의 느낌 사이의 갭이 굉장히 매력적인 게임이야.]

[씹덕이면 무조건 인생 게임 확정이고 씹덕이 아니어도 99%확율로 인생 게임 확정임.

애당초 게임 플레이하는 내내 미소녀 하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드는 게임이라고.

가끔 너무 기분 좋을 때 막 다리가 배배 꼬이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경우가 있잖아?

이건 게임 하는 내내 이벤트 볼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게임이야.]

[아무리 좋은 게임이라도 호불호가 갈리게 마련인데, 어떻게 악플이 하나도 없냐? 너희 PTW에서 고용한 알바임?]

[리뷰 올라오자마자 단체로 달려온 사람들이면 당연히 여기 모인 인간들은 전부 PTW 팬들인거지.

그걸 지적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

[아니 무슨 PTW 팬들은 어느 커뮤니티에 가던 다 있어!?!]

[인간들에게 고한다. 지구는 이미 PTW에게 점령당했다.

PTW의 위대함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구세대의 인류는 지금 즉시 지구에서 떠나라.]

그 엄청난 리플을 보며, 기열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매번 게임 발매할 때마다 이렇습니까?”

그러자 상혁이 미소지으며 기열의 질문에 답했다.

“보통은요. 그래도 이번엔 좀 심하긴 하네요.

아무래도 교수님이 만든 실물 크기 나이츠 때문이겠죠.”

“아뇨, 아무리 제가 진짜 로봇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게임이 재미없었다면 유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겠죠.

게다가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유저들조차 게임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네요.”

“좋은 현상이죠. 이 정도면 말씀드린 대로 PRD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를 예상해도 되겠죠?”

“예. 조금 전까지는 지금까지 2배 이상의 판매량 증가를 예상한다는 상혁씨의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렸지만, 유저들의 반응을 보니 2배가 아니라 3배도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3배라. 그것도 가능하긴 하겠죠.

지금보다 더 포커스를 모을 필요가 있긴 하겠지만.”

“하지만 이제는 남은 카드가 없지 않습니까?

실물 크기 나이츠도 이미 공개된 상태고, 이후의 운영 계획이나 게임 시스템도 어느정도 알려진 상황이니까요.

현재 상태에서 유저들을 더 놀라게 할만한 이슈가 있을까요?”

“아직 미공개인 카드가 없는건 아닌데 지금은 적기가 아닙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기가 불타는 중이니, 굳이 추가로 장작을 집어넣을 필요는 없겠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열기가 잦아들 때가 되면, 다음 스텝으로 진행하면 될 겁니다.”

“다음 스텝이라면 뉴욕 이벤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거죠.”

상혁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회의실 벽면에 있는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현실의 뉴욕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가상 공간에서, 수백 미터 크기의 마수와 혈투를 벌이는 나이츠들의 모습이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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