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52화 (453/485)

452. 10억 달러의 가치

-4억 달러입니다.-

모스크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가격부터 올려치는 상혁의 목소리를 들으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일에는 인사치레 같은 사회적 절차가 선행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기라도 하려는 듯 인사도 없이 가격 제시부터 하는 상혁의 태도가 모스크가 쌓아놓았던 가격 협상 계획을 한방에 무너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모스크는 거래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가기 위해 시치미를 떼며 상혁의 제안에 넌지시 항의했다.

-저기, 상혁 씨? 물론 제가 현주 씨에게 전용기 제작에 대해 의뢰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통화의 목적이 아무리 명확하다 하더라도 대뜸 인사도 없이 물건 가격을, 그것도 인터뷰에서 제시된 시장가의 2배가 넘는 가격을 부르는 건 좀 비상식적인 일이 아닐까요?-

-보통의 전화라면 인사로 시작해서 근황을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다 본 안건을 슬쩍 꺼내는 게 일반적이었겠죠.

하지만 오늘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5차 NE 컨벤션의 첫날입니다.

아직 이틀의 행사가 더 남아있는 상황이라, 제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모스크 씨의 목적은 근황을 전달한답시고 테슬러가 PRD 생산과 공급에 있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저희가 중국 공장 설립을 반대하고 인건비 비싼 선진국에만 공장 설립을 허가하는 바람에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는지 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며 마음의 빚을 만들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공개된 가격보다 싼 가격에 모스크 씨의 전용기를 한 대 넘겨주면 안 되느냐는 부탁을 하실 생각이었을 테고요.-

-가능하면 거기에 지인 할인과 가족 할인, 특별 이벤트 할인도 요구할 계획이었습니다.-

-그거 다 적용한 가격이 4억 달러입니다.

정확히는 한국 돈으로 4천억이 정가이니, 대충 달러로 따지면 3억 6천3백만 달러 정도 되겠네요.-

-하지만 인터뷰에서는 분명 1억 달러 정도라고···.-

-그건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실사용’ 용도로 구매하는 경우의 가격입니다.

트위터나 인스타에 홍보용으로 쓰려고 사는 물건의 가격이 아니라요.

억울하시면 모스크 씨도 KOHA를 플레이해서 전 세계 유저들과 경쟁하여 챌린저 랭크를 획득하세요.

그 이후에 구단을 하나 만드시고, 선수 생활하시면서 우승컵 하나 따시면 단돈 1억 달러에 전용기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단순히 ‘가지고 싶다’라는 이유로 전용기 제작을 신청하시려면, 못해도 2천억은 내셔야죠.-

-그런데 저한텐 왜 3억 6천만 달러입니까?-

-세계 최초 프리미엄.-

상혁이 말했다.

-지금은 아직 저희가 운영할 프로 게임 팀인 ‘퍼스티스트(Firstist)’의 운영 기간이 종료되지 않았죠.

그렇기에 팀 활동 종료 시 보상으로 약속된 전용기도 1년 이후에나 지급될 겁니다.

그리고 다른 프로 유저를 대상으로 한 전용기 역시, 리그 우승 경험이 제작 조건이니 내년 이후에나 제작에 들어가게 되겠죠.

그 말은, 향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전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스크 씨 단 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게다가 나이츠에 들어간 기술과 개발비를 생각해보면, 4천억이라는 가격은 꽤나 싼 편이라고 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트인 히스토리 서프림이 45억 달러(한화 5조 4천억) 정도 하니까요.

그건 금이랑 백금이 100톤 가까이 들어갔으니 비싸다 치더라도, 2번째로 비싼 요트인 스트리트 오브 모나코 역시 9억 9천 6백만 달러(한화 1조 2천억) 정도 하죠.

그에 비하면 3억 6천만 달러라는 세계 최초 전용기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저렴한 겁니다.-

-젠장, 내가 미쳤나? 상혁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에서 ‘어라? 그럼 그렇게 비싼 건 아니네?’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비싼 건 사실입니다.

상혁 씨의 화려한 말발로도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제시하신 가격은 웬만한 기업을 살 수 있는 금액이라고요.-

모스크의 말을 들은 상혁은, 씩 웃으며 현주를 향해 조용히 손짓했다.

그리고는 현주에게 ‘서연을 불러와 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전달한 뒤, 모스크를 향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돈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생각해보세요.

향후 1년이란 기간 동안, 저희는 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국제 규모의 VR 리그를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매달 세계 최초의 프로 나이츠 게임 구단인 퍼스티스트를 통해 실물 나이츠를 통한 대전이 진행될 예정이죠.

전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경기에 참가할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겁니다.

모스크 씨가 직접 전용기에 타고 이벤트 매치의 형태로 한국에서 진행되는 경기에 참여하시거나, 혹은 그냥 한국의 대전에 있는 PTW 파크에서 한두 달을 쉬면서 전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나이츠를 타고 다른 퍼스티스트 멤버들과 연습 경기를 할 수도 있죠.

게다가 전용기의 탑승 권한은 양도할 수 있습니다.

모스크 씨가 원한다면, 본인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기에 다른 파일럿을 챔피언으로 내세워 탑승시켜 경기에 참여시키는 것도 가능하죠.

4천억이라는 가격에는, 추가 비용 없이 PTW 파크에 평생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과 스타디움 지하에 있는 파일럿 전용 숙소의 무제한 사용권, 그리고 3년간 보장되는 월드 챔피언십의 특별 참가 권한이 부여됩니다.-

-특별 참가 권한은 뭡니까?-

-전용기를 구매한 바이어가 프로 게임 팀을 구성할 경우, 해당 프로 게임 팀은 지역 리그에서 우승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진행되는 월드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그건 너무 파격적인 조건이 아닙니까? 리그 자체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고요.-

-애당초 그 바이어가 소유한 구단이 특별 참가 권한을 행사한단 의미는, 지역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이벤트 매치 형태로 패자 부활전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고, 팀의 실력이 부족하다면 토너먼트 초반에 바로 탈락하겠죠.

딱히 우승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우승권을 노릴 실력이 있는 팀이라면, 지역 리그에서 떨어지지도 않을 테고요.

사실 특별 참가 권한은 비싼 돈을 주고 전용기를 구매한 바이어와, 팬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에 가깝습니다.

팬들은 좀 더 많은 전용기가 참가하는 경기를 볼 수 있고, 바이어는 비싸게 돈을 주고 구매한 전용기를 타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받는 거죠.

게다가 바이어 입장에서 보면 이건 엄청난 혜택이기도 하죠.

전 세계의 어떤 유명 리그도, 구단주라는 이유로 경기에 뛸 권한을 주지는 않으니까요.-

상혁이 말을 마친 순간, 방문이 열리며 서연이 들어왔다.

그러자 대기실에서 이곳까지 뛰어왔는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서연을 보며, 현주가 미소지으며 음료수를 건넸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상혁을 배려해 작은 목소리로 서연이 묻자, 상혁은 손으로 마이크 부분을 가렸다.

그리고는 서연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지금 바로 전용기 컨셉 스케치 하나 그려줄 수 있어?”

“흠···. 갑자기 휙 그리기는 어려운데···.무엇보다 전용기는 컨셉이 중요하니까요.

뭔가 확 오는 키워드가 있으면 몰라도.”

“이거면 어때?”

상혁이 쪽지에 뭔가를 적어서 건네주자, 쪽지를 본 서연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펜과 A4용지를 들고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상혁은 잠시 그런 서연의 뒷모습을 보다가 모스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미 절반쯤은 혹해서 넘어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설득하면 4천억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전용기를 팔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그래도 비싸다고 생각이 드신다면, 포기하시면 됩니다.

저희로서는 바이어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지금 모스크 씨와 이렇게 통화를 하는 것 자체가, 모스크 씨에게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특혜요?-

-연락한 사람이 저희와 협력 관계에 있는 테슬러의 CEO가 아니었다면, 현재로서는 전용기 판매 계획이 없다고 단박에 잘라냈을 겁니다.

좋든 싫든 첫 번째 전용기의 제작자에겐 저희가 예정 중인 퍼스티스트의 활동에 참여할 권한이 주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저희가 진행하는 모든 행사의 포커스를 나눠 받게 될 테니까요.

게다가 전용기는 아직 퍼스티스트 멤버들에게도 주어지지 않은 특전입니다.

모두가 범용기를 사용해서 이벤트 매치를 진행하는 가운데, 혼자서 전용기를 타고 경기에 참여한다면 매우 눈에 띄겠죠.

그리고 그 높은 가격 때문에 더욱 주목받을 거고요.-

-하지만 그 주목은 다른 바이어가 같은 가격을 제시하는 순간 바로 분산되겠죠.

1년간 저만 독점으로 전용기를 가질 수 있다는 조건이 아니라면, 지금 제시한 조건은 메리트가 좀 떨어집니다.-

-그건 모스크 씨의 결단에 달렸습니다.

애당초 전용기의 민간 판매 가격이 비싸게 책정될수록, 그것을 살 수 있는 구매자가 줄어들 테니까요.

저희가 제시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에 사신다면,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바이어들은 구매를 포기하게 되겠죠.

그러니 선택하시면 됩니다.

저희가 제시한 가격에 세계 최초의 나이츠를 구매하시던가, 아니면 더 가격을 올려서 다른 구매자들이 구매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허들을 올려두시던가.

최소가격인 3억 6천만 달러만 넘겨주신다면, 향후 1년간은 모든 전용기를 그 가격에 팔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3억 6천만 달러로 민간 판매 가격을 낮추도록 하고요.-

‘여기서 가격을 나보고 더 올리라고?’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PRD를 테슬러에서 독점적으로 생산하기로 계약한 이후로, PRD 전용 게임이 발매될 때마다 테슬러의 주가가 미친 듯이 쭉쭉 올랐기 때문에.

게다가 단기적으로 본다면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할 이 시기에 유일하게 전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5조 4천억짜리 요트의 주인이 누군지에 대해 별로 궁금해 하지 않겠지만, 전 세계 유일의 전용기를 가진 주인에 대해서라면 엄청난 주목을 보낼 테니까.

‘게다가 직접 타지 않아도 대리 로 다른 플레이어를 태울 수 있다는 강점도 있고.’

어차피 이 정도 규모로 진행될 프로 리그라면 테슬러는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

최신 IT 기술의 정점에 서 있는 업체로써, 테슬러라는 기업의 이미지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기에.

그러나 문제는, 대체 허들을 어느정도로 잡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세상엔 요트 한 대를 만들기 위해 조 단위 이상의 금액을 투입하는 미친 부자들이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에.

‘우선 석유 재벌들은 거의 100%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가격과 관계없이 무조건 구매한다고 봐야겠지.

돈이라면 썩어 넘치게 많을 기업들을 돈으로 막는 건 포기해야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도 관심을 보일 게 분명하고.

와플은 PTW와 사이가 좋지 않으니 어렵다고 치더라도, MS의 윌 게이트는 충분히 관심을 보일만 하지.

두 사람 모두 내가 가격을 얼마로 결정하든 막기 어려운 인간들일 테니, 가격으로 허들을 올리는 건 큰 의미가 없어.

테슬러의 주요 경쟁자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진입만 막을 수 있으면 돼.

얼마면 막을 수 있지?

10억 달러? 20억 달러?’

말없이 고민 중인 모스크의 침묵을 들으며, 상혁은 마지막 카운터를 날렸다.

-깔끔하게 10억 달러에 사시죠.

대신 정가의 10배에 구매하시는 것이니만큼, 1년간 테슬러의 경쟁업체에서 전용기를 구매하는 것을 막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구매하시면, 별도로 특전 하나를 더 드리도록 하죠.-

-특전이라면?-

-나이츠는 무기가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장비이기에, 원칙상 스타디움이 있는 대전에서만 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싼 돈 주고 산 물건을 타기 위해 매번 한국에 방문해야 하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 되겠죠.

그러니 지금 10억 달러에 깔끔하게 구매를 결정하신다면, 미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트레이닝 전용 나이츠를 한 대 더 붙여드리겠습니다.-

-트레이닝 전용 나이츠라면?-

-전투가 가능한 수준의 움직임이 막혀 있는, 말 그대로 VR 훈련용 나이츠입니다.

무장도 제공해드리지만, 실탄은 나가지 않고, 장식용으로 속이 비어있는 물건들만 제공하죠.

나이츠 본체도 느리게 걷거나 파일럿을 태우는 등의 동작 정도만 가능한 장식용의 물건입니다.

당연히 등에 있는 대형 동력 공급장치도 속이 빈 상태로 제공되고, 안에 들어가는 부속도 정규 나이츠의 성능을 낼 수 없는 일반 부속이 제공됩니다.

대신 물리 피드백은 완벽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집에 두고 그 안에서 나이츠 조종을 VR 환경으로 연습할 수 있죠.

내부 콕핏의 디자인이나 재질은 실물과 완벽하게 동일한 제품이며, 버튼과 조종간도 실물 나이츠와 같은 물건이 들어갑니다.

말 그대로 안에 타고 게임만 즐길 수 있는 장식용 물건이지만, 집에 두고 감상하거나 지인들에게 보여주기엔 완벽한 물건이죠.

무엇보다 무게가 기존 나이츠의 1/20 정도인 4톤 정도밖에 나가지 않으니까요.-

-4톤이면 조금 큰 트럭을 쓰면 충분히 옮기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전력 소모량도 줄어들었을 거고요.-

-애당초 나이츠 본체에서 가장 큰 무게를 차지하는 것이 등에 달린 두 개의 거대한 플라이휠 때문입니다.

그 육중한 무게로 빠른 기동을 구현하기 위한 초 고전압을 제공하기 위해 동력부의 무게가 증가하고, 증가한 동력부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프레임과 관절의 무게가 또 증가하고, 그 늘어난 무게를 기동시키기 위해 동력부의 무게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죠.

하지만 트레이닝 전용 나이츠라면 굳이 파일럿 보호를 위해 두꺼운 특수 장갑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니 외장을 속이 빈 알루미늄으로 제작하면 그만입니다.

그거 타고 고속도로를 돌아다닐 것도 아니니 충돌에 대한 안전장치도 딱히 필요가 없어지죠.

무게가 비교도 안 되게 가벼운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고요.

물론 말씀하신 대로 전력 소모량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데몬스트레이션을 위해 탑재되는 ‘슬로우 모션’ 기능을 쓰지 않으면 가정용 220V 전압으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죠.

물론 에어컨보단 전기를 좀 더 먹겠지만.-

-그러니까 이 트레이닝 장비라는 건 제가 집에 놓고 써도 된다는 거군요?-

-크기는 실물과 같은 15미터 정도이기 때문에 집에 놓고 쓰시려면 마당에 놓아두셔야 합니다만, 대신 요청하신 설치 지역에 나이츠가 비에 젖지 않도록 격납 공간을 따로 건설해드리겠습니다.

그것도 SF 스타일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대 로봇의 격납고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형태의 세트를 말이죠.-

상혁의 말을 들은 모스크는 머릿속으로 자신의 집 정원에 있는 SF 스타일의 멋진 격납고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겉으로는 실물 나이츠와 구분 할 수 없는 거대한 나이츠의 모습도.

그것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이룩한 부와 업적을 자랑하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을 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황금과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5조짜리 요트보다, 사람들은 이걸 더 부러워하겠지.’

어차피 오늘 PRD 전용 게임인 KOHA와 무한의 바다의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었기에, PRD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가한 수요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PRD의 독점적 생산 및 유통 권한을 가진 테슬러의 주가를 또 한 번 뻥튀기시켜 줄 것이 분명했고.

그때마다 증가하는 자신의 자산 가치를 생각하면, 10억 달러란 금액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하며, 모스크는 상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제가 구매를 결정한다면, 양도는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전용기 제작은 범용기의 라이선스 부여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행됩니다.

우선 전용기의 설계 및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모스크 씨에게 KOH와 KOHA를 플레이시켜 모스크씨의 배틀 스타일에 맞는 머신을 찾게 됩니다.

KOH는 조합에 따라 수십만 가지의 로봇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이고, 각자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그에 맞는 로봇의 형태도 전부 달라지는 게임이니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PTW에서 파견된 숙련된 파일럿들이 KOH의 플레이에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게임 플레이를 가이드 해 드릴 겁니다.

그 상태에서 바이어가 충분히 만족할 만한 ‘범용기 세팅’이 완성되면, 거기서 엔지니어들과 함께 전용기 제작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게 됩니다.

범용기 세팅에서는 지원되지 않는 특수 기능을 붙인다던가, 혹은 해당 코어에서는 지원되지 않는 다른 타입의 무장을 붙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 식으로 전용기의 장비 세팅이 준비 되면, KOHA안에서 해당 전용기를 사용한 전투 시뮬레이션이 진행됩니다.

커스터마이징 된 콕핏과 조종체계, 부속의 교체로 인해 달라진 조작감 등을 가상 환경에서 직접 조작하며 세팅을 좀 더 다듬어 나가죠.

최종적으로 그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되면, PTW의 디자이너들이 바이어와 함께 최종 디자인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장비나 장식, 도색, 머신의 외형 등이 180도 변하게 되고요.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아, 저게 전용기구나’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로봇이 완성되게 됩니다.

전체 기간은 총 5개월 정도 소요되며, 만약 진행하신다면 그 기간 도중 진짜로 나만의 로봇을 만드는 경험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상혁의 화려한 언변에 말려 들어간 모스크는 머릿속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내가 정신이 나갔나?! 이제 10억 달러가 아깝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네?!’

제품 자체도 너무나 매력적이었지만, 거기 붙은 서비스는 더 매력적이었다.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다른 시간선의 세계처럼 보이는 PTW 파크 지하의 파일럿 시설.

그 안에서 KOH의 개발과정에 참여한 개발자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게임을 플레이하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로봇을 만든 엔지니어들과 직접 대화하며 자신만의 전용기를 만드는 과정은 상상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즐거움’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모스크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품으로 인해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포함하여 상품으로 구성한 상혁의 놀라운 상술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상혁에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말만 들어도 군침이 절로 나오는 조건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개인의 취미를 위해 10억 달러를 사용한다는 건 너무 큰 결정입니다.

조금만 고민할 시간을 주시죠.-

-좋습니다. 그렇게 해 드리죠.

다만 추가 서비스로 저희 쪽에서 모스크 씨가 만족할 만한 전용기의 커스텀 디자인을 스케치 해 보았는데, 완성되는 대로 워크패스트 메시지를 통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빨리 보고 싶군요.-

1조짜리 거래가 걸린 상혁과 모스크의 통화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그러자 옆에서 두 사람의 통화를 듣고 있던 기열이 상혁에게 말했다.

“예전에 기동만 가능한 알루미늄 프레임의 나이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요?”

“물건의 가격에 비해서 반출 불가라는 조건이 너무 큰 디 메리트가 되니까요.

자고로 부자들이란 자신이 산 물건을 자신의 집에 전시하고 싶어 하게 마련입니다.

다른 부자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 전에 전용기를 구매했어!’라고 자랑하면서, 보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대한민국 대전에 있다!’라고 말하는 건 너무 모양새가 빠지지 않습니까?

천천히 걸어가는 수준의 기동만 가능한 수준의 나이츠라면 충분히 문제없이 반출이 가능하니, 서비스 차원에서 전용기 구매자들에게 한 대씩 돌릴 생각이었죠.

집에서도 나이츠의 콕핏에 앉아 버튼을 직접 조작하며 KOHA를 플레이할 수 있도록.

어차피 그 물건은 관절 구조부터 내부 부품까지 실제 나이츠랑 전부 다른 부품을 쓰는 물건이라 기술 유출 우려도 없고요.”

그러자 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네. 게다가 그렇게 집에 놓을 수 있는 물건이라면, 바이어가 계속 인스타 같은 SNS에 자신이 산 나이츠를 자랑할 거고, 그걸 보고 부러워하는 다른 셀럽들도 전용기를 가지고 싶어하게 되겠지.

나이츠를 타기 위해 무조건 대전에 방문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해외의 셀럽을 대상으로 한 장사로는 메리트가 크게 떨어질 테니까.”

“어차피 그건 그냥 겁나 복잡한 게임기 같은 거라 생산비가 그리 비싸지 않아요.

게다가 격납고 부속도 그냥 LED달린 쇳덩어리 같은 거라 그리 비싼 물건이 아니고요.

심지어 전용기조차도 실제로는 범용기에 걸려 있는 일부 제약을 풀어서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생산비는 그리 많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 말은, 저희가 전용기를 비싸게 팔면 팔수록, 그 모든 수익이 저희에게 마진으로 돌아온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리고 그 마진은 전부 게이머와 PTW 직원들을 위해 쓰는 거고?”

상혁은 현주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그때, 작업을 마친 서연이 상혁에게 A4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상혁이 제시한 키워드대로 서연이 직접 스케치한, 일론 모스크의 ‘전용기’를 표현한 컨셉 스케치가 그려져 있었다.

“시간을 좀 더 주시면 컴퓨터로 옮겨서 디지털 파일로 바꿔드릴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니, 이대로가 좋은 느낌이야.

아이론 맨 1편의 동굴 안에서 토디 스터크가 손으로 그린 설계도 같은 느낌이니까.

대신 몇 개 더 추가하긴 해야겠지만.”

그렇게 말한 상혁은 전용기의 여러 파츠에 선을 긋고는 선 끝에 알 수 없는 이상한 단어들을 적어놓았다.

[헬파이어 시커 미사일]

[써멀 스텔스 제네레이터]

[초 진동 블레이드]

[초 고 충격 흡수형 울트라 티타늄 쉴드]

그렇게 10개 정도의 파츠 이름을 모두 적어놓은 상혁은 로봇의 스케치에서 컨셉 설계도처럼 변한 그림을 핸드폰으로 찍어 모스크의 휴대폰으로 보냈다.

그러자 그 즉시 휴대폰이 울리며 상혁의 워크 패스트 계정으로 답장이 날아왔다.

[이런 미친?!?! 혹시 미래라도 볼 줄 아시는 겁니까?

제가 전용기를 100% 구매할 거라고 확신하지 않은 이상, 이렇게 제 마음에 드는 스케치를 이 자리에서 바로 준비할 순 없었을 텐데요?]

[거짓말이 아니라 통화하면서 바로 준비한 겁니다.

저희 AD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로봇 디자이너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마치 제 마음을 읽은 것 같은 디자인을 즉석에서 만들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컬러링부터 디자인까지, 이 전용기의 모든 부분이 제 마음을 사로잡네요.]

모스크가 그렇게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혁이 서연에게 제시한 키워드는 두 개.

모스크가 그토록 집착하는 ‘화성’이란 키워드와, ‘우주’라는 키워드 였기 때문에.

서연은 그 두 개의 키워드를 사용하여 화성의 대지 색을 연상하게 하는 강렬한 주황색과 우주선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흰색의 컬러링이 섞인, SF 스타일의 행성 개척 로봇처럼 생긴 나이츠를 디자인해 냈다.

마치 지금 당장 영화 ‘마션’에 등장하는 우주기지 옆에 서 있다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디자인으로.

그러니 보는 것만으로도 ‘화성’을 연상하게 만드는 그 디자인을 보고 모스크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상혁은 흥분한 모스크에게 문자를 보내 이 디자인이 확정이 아님을 전달해주었다.

[말씀드렸지만 전용기의 디자인에는 구매자의 플레이 스타일이 반영됩니다.

그러니 이건 어디까지나 컨셉 디자인이고, 모스크 씨가 게임 안에서 자주 쓰고 좋아하는 무장의 타입으로 얼마든지 디자인이 변경될 수 있죠.

하지만 모든 부품의 외장과 컬러링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합니다.

어떤 부품을 써도, 현재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 상태로 원하시는 기능을 포함한 나이츠의 제작이 가능하죠.

물론 그 모든 부품을 전부 양산이 아닌 개별제작 해야 해서, 전용기의 가격이 그리 비싼 겁니다.]

[10억 달러라고 했었나요?]

[물론 더 낮추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서비스는 조정될 겁니다.

그리고 그만큼 경쟁자도 더 붙겠죠.

그러니 10억 달러가 적정한 가격이라고 봅니다.

세계 최초의 전용기를, 당분간이나마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가격으로서는 충분한 가격이죠.]

[지금 보내주신 전용기에 혹시 이름이 있습니까?]

[전용기의 이름을 지을 권리를 구매자에게서 빼앗는 것은 세련된 행위가 아니겠죠.

구매 의사를 확정하신다면, 이 멋진 로봇의 이름을 지을 권한은 모스크 씨에게 넘기겠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상혁은 자신의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진동하는 휴대폰에는, 모스크가 보낸 답변이 워크패스트의 메시지 창을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마션(Martian : 화성인).

제 전용기의 이름은 마션으로 하겠습니다.]

그것은 1조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세계 최초의 전용기를 구매하겠다는, 모스크의 확고한 결심이 담겨 있는 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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