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49화 (450/485)

449. 와일드 카드

한쪽에서는 중세 기사의 결투를 방불케 하는 근접 무기와 방패를 사용한 대결.

한쪽에서는 현대 로봇을 연상하게 하는 총과 대포를 이용한 원거리 대전.

그리고 한쪽에서는 온갖 화려한 마법을 사용하며 마법 대전을 펼치고 있는 나이츠들 간의 집단 대결.

마치 전혀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세가지 타입의 거대 로봇 대전은, 보고 있는 관중들에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나이츠를 선택하여 응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경기 초중반 회피에 집중하다 후반부터 공세를 시작한 마도계 나이츠 사일러스의 전투는 마도계열 나이츠 특유의 엄청나게 화려한 전투를 선보이며 가장 많은 관중들의 주목을 받는 중이었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상혁이 지수에게 따로 연락을 할 정도로.

-지수야-

700밖에 남지 않은 HP를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온 힘으로 회피 기동을 수행하던 지수는 상혁의 통신을 받고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상혁 오빠?! 왜요! 나 지금 바쁜데!!”

-혹시 지금 사일러스의 스킬을 네가 대신 쓰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지금 저는 회피 기동만 하고 있다고요!

게다가 공격 스킬의 시전 보조는 이번 이벤트에서 금지된 사항이잖아요!

쓰고 싶어도 못쓴다고요.

민준 오빠가 기능을 전부 잠가놔서.”

지수의 대답을 들은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지수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저 스킬을 전부 메인 파일럿 혼자서 쓰고 있다고?-

상혁이 그렇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도계 나이츠의 스킬 시전 시스템은, 초보자가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어려운 조작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나이츠의 조작은 조정간과 콕핏에 배치된 수많은 버튼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버튼 배치와 수량은 나이츠의 몸통에 해당하는 ‘코어’에 따라 갈리게 된다.

근접전을 주로 하는 나이츠는 근접전에 적합한 조작계통을, 원거리전을 주로 하는 나이츠는 원거리전에 적합한 조작계통을, 마력전을 주로 하는 나이츠는 마력 조작에 적합한 조작계통을 가지도록.

그렇기에 나이츠의 장비는 코어에 따라 장착 가능한 파츠가 갈리고, 코어에 따라 사용 가능한 스킬이 갈리게 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마력전’을 주력으로 하는 나이츠 <사일러스>의 콕핏은, 마력 조작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버튼과 기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코어의 콕핏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은 터치 패널이나 플랙시블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진 두루마리형 스크롤, 홀로그램 이미지가 투사되는 커다란 수정구와 자동으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마도서 모양의 컨트롤러 등.

마치 마법사의 실험실을 압축해놓은 것 같은 형태를 한 사일러스의 콕핏은 초보자라면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 감도 안 잡힐 정도의 복잡함을 자랑한다.

그런 사일러스의 스킬을 초보자인 현희가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으니, 상혁이 지수의 서포트를 의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수의 말대로 민준은 혹시나 모를 머신 스피릿의 개입을 막기 위해 나이츠의 운영 프로그램 기능 일부를 봉인해둔 상태였고, 그 덕에 현재 경기장에 있는 모든 나이츠의 머신 스피릿은 방어 보조를 제외한 공격 보조가 불가능한 상태로 세팅되어 있었다.

-락은 정상적으로 걸려 있어.

지수는 아까부터 회피 관련 커맨드만 입력하고 있고.-

-그럼 저 미친 스킬 연사를 전부 차현희 씨가 직접 조작해서 하고 있다는 거야?-

-말했잖아요. 전체 파일럿 중에 나이츠에 대한 이해도는 가장 높은 파일럿이라고.

애당초 세팅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 아니라면 지금의 사일러스 같은 세팅은 못 해요.

심지어 저도 지금 세팅을 완성했을 때 3일이 넘게 걸렸으니까.-

-그럼 결국 이번 대결은 조종, 지휘, 이해의 삼파전이 되겠군.-

-삼파전은 아니죠.

애당초 팀 가르기 과정에서 오다 씨가 가장 먼저 픽업한 멤버가 사일러스의 파일럿인 차현희 씨였으니까요.-

-하지만 차현희 씨와 사일러스는 레이드에서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첫 번째 픽업으로 차현희 씨를 골랐을 때도 좀 의아해했던 거고.-

-그만큼 오다 씨는 파티 리더로서 사람 보는 재능이 있다는 거죠.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때 현희와 지수가 함께 조종하고 있는 나이츠 사일러스의 앞을 거대한 나이츠가 가로막았다.

그것은 날렵한 형태의 사일러스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는, 완전 무장한 중세 기사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 나이츠.

<즈라드>였다.

***

-당신이 여기 있다는 건, 홀리 프레일이 리타이어 했다는 건가요?-

통신을 걸어 현희가 묻자 즈라드의 파일럿 최현민이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리타이어 시킨 건 아닙니다.

이쪽 상황이 너무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멤버 교대를 했을 뿐이죠.

조금이라도 더 당신을 내버려 뒀다간 아군이 전멸할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반대로 당신을 내버려 뒀다면 저희 쪽이 전멸했겠죠.

다른 건 몰라도 조종 실력이나 반사신경 같은 부분에서는 현민 씨가 가장 강할 테니까.-

그때, 지수의 긴장한 듯한 음성이 현희의 귓가에 들려왔다.

[주인님. 조심하세요.

기본적으로 마도 계열 나이츠의 상극이 근접계열 나이츠인 데다, 상대가 쓰는 주 무장은 이쪽의 피해를 모두 씹고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아?-

[거리를 벌리면서 데미지를 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즈라드의 장비를 물리적으로 파괴할 순 없겠지만, 실드 에너지를 깎아서 동작 불능 상태로 만들 수는 있을 테니까요.

단, 저쪽에서 휘두르는 공격은 절대 맞아서는 안됩니다.

이쪽에서 주는 데미지는 마도 계열 공격.

저쪽에서 주는 데미지는 실제 파츠를 절단낼 수 있는 물리 계열 공격이니까.

저 15미터짜리 양날 도끼에 스치기라도 한다면 사일러스의 가벼운 팔다리 정도는 한방에 두 동강 날 거예요.]

-회피 할 수 있겠어?-

[어렵습니다. 즈라드는 무식하게 큰 양손 도끼를 사용하는 근접계 나이츠인 주제에 스피드 형 나이츠로 구분되는 괴물 같은 나이츠니까요.]

-그거 밸런스 붕괴 아니야?-

[대신 쉴드 에너지가 낮게 설정되어 있고 모든 방어를 무기로 쳐내야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초보자가 다루기 어려운 머신이지만, 상대 파일럿의 실력은 보통이 아닌 것 같네요.]

‘20만명 중 12명 안에 속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는 건가.’

현희가 고민하는 사이, 즈라드는 양손으로 거대한 경연 엑스를 휘두르며 사일러스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자 지수가 빠르게 사일러스를 뒤로 후퇴시키며 현희에게 소리쳤다.

[마스터! 전투 지시를!]

-큭! 체인 프리즌!-

현희는 오른손 근처에 있는 마도서 위에 손을 올려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바람이라도 불어온 것처럼 마도서 위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며 체인 프리즌의 마법진이 새겨진 페이지까지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현희는 다른 손을 휘둘러 페이지에 그려진 수인(手印)과 똑같은 손동작을 만든 뒤 손바닥을 펴 수정구 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수정구의 안에서 눈 부신 빛과 함께 휘몰아치는 사슬의 이미지가 재생되었다.

그것은 가공의 사슬을 소환해 상대의 움직임을 묵는 마도계열 스킬, <체인 프리즌>의 캐스팅 조작법이었다.

-촤르르르르르륵-

순간 땅바닥에서 마치 뱀처럼 쏟아져나온 수십 개의 굵은 사슬들이 돌진하는 즈라드의 전신으로 짓쳐 들었지만, 현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파악한 즈라드의 성능은, 이 정도 스킬에 막힐 정도로 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즈라드를 향해 짓쳐 드는 사슬 다발을 본 현민은 자신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머신 스피릿에게 소리치며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리나! 한 방에 날린다!-

[좋아! 가자고!]

순간 즈라드는 들고 있던 양날 도끼에 거대한 푸른 불꽃을 피운 채 사슬을 향해 자신의 무장을 휘둘렀다.

그러자 즈라드를 향해 돌진하던 사슬들이 불어터진 라면 면발처럼 힘없이 끊어져 나갔다.

구속 주문을 단 한방의 일격으로 파훼하고 자신을 향해 재차 달려드는 즈라드를 본 현희가 다급하게 외쳤다.

-네피림! 분명 자신이 쓴 폭발형 스킬에 적중할 경우는 데미지가 줄어드는 게 맞죠?-

[그렇긴 한데 그건 왜···?!]

-이렇게 하려고요!-

현희는 다시 한번 마도서의 페이지를 넘긴 뒤 이번엔 터치 패드를 힘차게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현희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 지수가 다급하게 그녀에게 외쳤다.

[마스터! 잠깐···.!!?]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일러스가 양손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그리고는 손바닥에서 거대한 화염구를 생성한 뒤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앙!!-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폭발과 함께, 돌진하던 즈라드가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폭발의 반동을 이용해 저 멀리 튕겨 나간 사일러스를 보며 말했다.

-미친, 갑자기 자폭입니까?-

-그 짧은 시간에 돌진 동작을 캔슬하고 뒤로 빠지다니 대단하시네요.-

-즈라드는 쉴드 에너지가 높은 편이 아닌 기체니까요.

그래도 너무 가까이서 터진 나머지 전부 막지는 못한 것 같지만.-

현민이 화면 구석에 붉은색으로 경고를 발하고 있는 HP 게이지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거기엔 현재 남은 즈라드의 쉴드 에너지를 표시하고 있는 1200/5600이라는 숫자가 붉은 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기체 손상은 제로인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빠지는군. 도끼로 막았어야 했는데 거리가 너무 가까웠어.’

설마 HP가 700밖에 남지 않은 사일러스가 단순히 거리를 벌리기 위해 자폭성 공격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투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현민은 생각하고 있었다.

‘뭐, 하지만 상태가 안 좋은 건  사일러스가 더 하겠지.’

그의 말대로, 현희는 무려 50밖에 남지 않은 HP게이지를 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의 귓가엔, 갑작스런 돌발 행동에 당황한 지수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마스터! 제정신이세요?! 조금만 맞추는 위치가 틀렸어도 뒤로 튕겨 나가는 게 아니라 그대로 리타이어 했을 거라고요!]

-그래도 성공했잖아. 거리도 꽤 벌렸고.

그리고 애당초 성공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사용한 기능이었어.

내 계산 대로라면, 자신이 시전한 광역 스킬의 데미지 감소 수치를 고려했을 때 정확히 50의 HP가 남을 수준의 공격이었으니까.

게다가 폭발 반동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건 퀘이크 같은 게임에서 자주 쓰는 기술이기도 하고.-

‘그걸 나이츠를 타고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는 말인데.’

물론 현희의 말대로 ‘로켓 점프’ 같은 스킬은 게임 속에서 그리 보기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키보드나 마우스 같은 컨트롤러를 사용한 ‘게임’ 속에서의 이야기이지, 자신이 직접 탑승하고 있는 나이츠 안에서 처음 보는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큰 두려움을 동반하는 법이었다.

누군가가 ‘할 수 있다’라고 말해준다 하더라도, 자신의 발 밑에 로켓 런쳐를 쏠 수 있는 미친 인간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에.

그렇기에 그런 시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도하는 현희를 보며, 지수는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사람. 뭔가 감각이 뒤틀려져 있어.’

그러나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게임 감각’이었다.

환상으로 만들어진 가짜를 진실이라고 믿는 힘.

그것이 ‘마도 계열 나이츠’의 성능을 100% 끌어낼 수 있는 파일럿의 자질이었기 때문에.

‘남은 HP 50이라.’

지수는 잡고 있는 조종간에 힘을 주며 말했다.

[딱 좋은 패널티네요.

제가 선택한 마스터라면, 이 정도 HP로도 충분히 즈라드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응? 조금 전에는 마도 계열 나이츠의 약점이 근접 계열 나이츠라고 하지 않았어? 상성이 좋지 않다고.-

[그건 일반적인 실력의 파일럿이 조종할 때를 상정한 상성입니다.

원래부터 나이츠의 밸런스라는 건, 파일럿의 기량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상성을 지니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수가 말했다.

[마도 계열 스킬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상대가 그 어떤 계열의 나이츠라도 상성 면에서 불리할 게 없습니다.

고수들의 싸움은 순수하게 얼마나 자신의 머신을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려있으니까요.

마스터. 지금부터는 전력으로 회피 기동을 보조하겠습니다.

다음에 쓰고 싶은 주문을 알려주시면,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의 캐스팅 시간을 벌어드릴 테니 원하는 대로 마음껏 주문을 사용하세요!]

***

“이런 부분은 굉장히 좋네요.

뭔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라서.”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성진은 손을 휘둘러 허공에 있는 버튼을 터치했다.

그러자 화면이 순식간에 전환 되며 나이츠의 내부에 있는 파일럿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그것은 딥 다이버를 이용한 경기 관람 시 관람객이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카메라 시점 변환 기능을 사용한 것으로, 경기장의 모든 관객들은 딥 다이버를 쓴 상태에서 관중석 시점, 각 파일럿의 콕핏 시점, 시네마틱 뷰, 시뮬레이션 뷰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반적인 관중석 위치도 마음대로 조정이 가능했는데, 그 기능을 사용하면 12시 방향에 있는 관람객이 6시 방향에 있는 관람객의 시점에서 경기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콕핏에 앉아 있는 파일럿의 시점으로 머신 스피릿과 파일럿간의 대화를 지켜보며 나이츠의 파일럿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대리 체험하거나, 모니터가 아닌 콕핏과 파일럿을 비추는 카메라를 사용하여 각 파일럿들이 나이츠를 조종하는 ‘과정’ 그 자체를 생생하게 지켜볼 수도 있었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1만명의 입장 제한 때문에 KOHA를 플레이해보지 못한 관객들은 나이츠 안에 있는 화려한 콕핏 내부의 모습을 보며 흥분을 멈추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KOHA를 하면 지금 보고 있는 저 조종석에서 실제로 저런 조작을 하며 나이츠를 조작할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거기서 상위권에 들면 PRD로 구현된 가상 콧핏이 아니라 아예 현실에 존재하는 나이츠 안에서 저 조종 시스템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거고?

미쳤네. 그냥 앉아서 버튼만 눌러도 개 즐 거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난 마도 계열 나이츠의 조작 시스템이 가장 마음에 들었음.

특히 스킬 명 외치면서 마도서 위에 손 올리면 페이지 알아서 넘어가는 거.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진짜 개 멋짐.-

-어 그거 나도 진짜 가지고 싶던데. 안 팔겠지?-

-그것만 따로 팔지는 않을 듯.-

-그것도 PTW의 클래스가 보이는 부분임.

다른 회사 같으면 그냥 액정 타블렛 하나 설치해주고 안에서 영상 같은 거로 처리했을 텐데, 실제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을 만들어서 컨트롤 시스템으로 쓰는 미친 회사는 PTW 정도밖에 없을 듯.-

-페이지 넘어가는 책 자체는 MYOM 부스에서도 보여준 기능이다.

그걸 로봇 컨트롤에 사용한다는 미친 발상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거지만.-

-성진 씨! 화면 전환 좀! 지금 벌어지는 싸움 진짜 장난 아님!-

올라오는 채팅을 보던 성진은 콕핏 내부를 보여주던 뷰를 다시 경기장으로 되돌렸다.

파일럿이 긴장된 표정으로 로봇을 조작하는 모습도 물론 엄청나게 매력적인 모습이었지만, 그 조작을 통해 벌어지는 나이츠들 간의 대전 역시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경기장으로 시점을 변환한 성진은 필드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두 나이츠의 대결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건 레이드 때보다 더 화려한 것 같은데?”

거리를 벌리기 위해 전개되는 수많은 마법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쳐내며 돌진하는 즈라드의 모습과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 데미지를 주기 위해 온갖 주문을 시전 중인 사일러스의 대결.

그것은 온갖 컴퓨터 그래픽 효과로 가득한 헐리우드의 SF 영화를 실시간으로 보는 것 같은 화려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앗!!!”

“조금 전 껀 진짜 위험했다!!”

“미친, 저게 진짜로 오늘 조종간을 처음 잡은 조종사의 실력이라고??!”

스치기만 해도 팔다리가 절단날 것 같은 살벌한 즈라드의 공격도 대단했지만, 그 모든 공격을 회피하며 역습을 가하는 사일러스의 컨트롤 실력 역시 대단함 그 자체라 할 수 있었기에, 관객들의 시선은 다른 나이츠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두 나이츠의 대결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목의 당사자인 두 파일럿들은, 통신을 통해 서로를 약 올리며 경기의 분위기를 첨차 달아오르게 만드는 중이었다.

-이제 그만 도망치고 한판 붙자니까?!!-

-메롱이다! 제 남은 HP를 알면서 그런 뻔뻔한 부탁을 하시는 건가요?-

-그럼 아예 서로 동시에 후려치던가! 승부가 안 나잖아!-

-사일러스의 남은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따라잡을 수 있으면 즈라드가 이기는 거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현희와 지수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전투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즈라드의 스피드와 공격력은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수준이었기에.

스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파편에 맞는 것으로도 리타이어 될 수 있기에, 두 사람은 쉴새 없이 의견을 교환하며 한몸처럼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몰아붙이는 현민 역시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고.

‘젠장. 무기로 패링을 완벽하게 해도 데미지가 약간씩은 들어온다.’

상대의 공격이 물리 계열 공격이었다면 완벽하게 방어가 가능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상대의 공격은 가상 공격 계열.

나이츠 간의 대결에서 마력을 사용한 가상 공격은 방어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 나이츠의 HP를 조금씩 깎을 수 있었기에, 즈라드의 HP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즈라드 역시 직격만큼은 피하려고 상대의 공격을 적당히 피하는 중이었고.

그렇게 야금야금 데미지를 입던 현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상대 파일럿을 향해 소리쳤다.

-쥐새끼처럼 도망가지 말고 싸우라고오오!-

-어머, 아무리 그래도 저같은 숙녀에게 쥐새끼라뇨.

그리고 쥐새끼는 이렇게 잘 싸우지 못한답니다?-

-여유로운 듯 말하지만, 어차피 그쪽은 마력이 떨어지는 순간 패배하는 것 아닙니까?

길던 짧던 서로 유효 데미지를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결국은 제가 이기게 될 텐데요?

무기를 이용한 즈라드의 물리 공격은, 마력 소모 없이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건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현민 씨.

현민 씨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어요.-

-중요한 사실?-

-현민 씨가 제가 조종하는 사일러스가 오다 씨가 조종하는 홀리 프레일보다 강하다고 판단하고 오다 씨를 내버려 둔 채 저를 막으러 달려온 거요.-

-그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그렇죠. 그건 본인 역량과 팀원들의 역량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내가 상대한 홀리 프레일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는데?-

-그건 ‘즈라더’와 ‘최현민’을 기준으로 내린 판단이잖아요?

잘 생각해보세요.

애당초 당신을 상대로 근접전에서 8분 이상을 버텨낸 홀리 프레일을, 당신의 동료가 제대로 막을 수 있을 것인지.-

현희의 말을 들은 현민은 식은땀 한줄기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종속 뒤편에 배치된 후방 스피커에서 울려오는 거대한 발소리를 들었다.

수십 톤의 강철 거인이, 대지를 박차고 달려오는 발소리를.

그러자 현희의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현민의 귓가에 들려왔다.

-현민 씨의 가장 큰 실책은, 상대와 동료가 가진 역량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 팀의 가장 강한 인물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도.

확실히 말씀드리지만, 저희 팀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제가 아닙니다.

당신 정도의 엄청난 파일럿을 8분 이상 붙잡고도 별다른 데미지를 입지 않았던, 저희 팀 ‘최강의 방패’.

홀리 프레일이 저희 팀이 가진 최강의 카드니까요.-

현희의 말을 듣던 현민의 머릿속에 홀리프레일과의 전투가 떠올랐다.

자신이 아무리 강력한 공격을 시도해도, 그 커다란 방패로 모든 공격을 튕겨내던 나이츠의 모습이.

그것은 겉으로 보기엔 무력하게 두들겨 맞기만 하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군을 위해 시간을 벌려는 명백한 의도가 담겨 있는 움직임이었다.

‘만약 그를 상대한 것이 내가 아니었다면, 다른 파일럿이 그를 상대할 수 있었을까?’

이제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육중한 발소리를 들으며, 현민은 젖먹던 힘을 다해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가 탄 나이츠, 즈라더가 그의 동작을 따라 몸을 180도 회전시키며 자신의 거대한 양날 도끼를 뒤쪽을 향해 휘둘렀다.

거기엔 커다란 십자가가 새겨진 하얀 방패를 든 나이츠, 홀리 프레일이 즈라드가 있는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해 들어오고 있었다.

-오다아아아아아!!-

막으려고 시도하는 순간, 방패따위는 단숨에 양단될 듯한 무시무시한 공격을 시도하는 순간, 현민은 자신의 한쪽 팔을 붙잡은 굵은 쇠사슬을 보았다.

그것은 즈라더가 공격을 위해 뒤로 돌아선 순간, 사일러스가 시전한 속박 주문이 만들어낸 사슬이었다.

‘어차피 이걸로 즈라더의 움직임은 못 막겠지만···.’

현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들의 대장, 오다가 방패를 튕겨낼 수 있는 아주 잠깐의 틈을 벌어줄 수 있다면, 대장이 어떻게든 해 줄 거라고.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대처럼, 홀리 프레일은 그녀의 사슬이 벌어준 찰나의 틈을 파고들어 그 거대한 방패로 즈라드의 양날 도끼를 저 멀리 쳐냈다.

그 순간, 현민은 도끼를 쳐내며 눈앞을 지나가는 방패 뒤에서 뱀처럼 머리는 내밀고 있는 거대한 프레일의 머리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전투 초반에는 그에게 별 위협이 되지 않았던, 그러나 HP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한 홀리 프레일의 ‘시시한 평타’ 공격이었다.

-콰아아앙!!-

홀리 프레일의 공격이 즈라드의 옆구리를 직격 하는 순간, 즈라드는 데미지 경감을 위해 충격이 가해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크게 점프했다.

그리고는 마치 프레일에 맞아 날아간 것처럼, 긴 직선을 그리며 경기장을 가로질러 경기장 벽에 충돌했다.

잠시 이어진 침묵의 순간.

관객들은 12대의 로봇 중 단 두 대만 남아있는 경기장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눈앞에 등장한 메시지를 보며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Winner - Team Holy Frail]

“우와아아아아아아아!!!!!”

“Heeeeeell Yeeeeeeeahhhh!!!!”

“진짜 X발스럽게 멋졌다아아!!”

“마지막에 봤어?! 자신에게 달려드는 나이츠 2대를 혼자 처리하고 즈라드에게 막타 치는 거 봤냐고!”

“X친 이게 6시간 플레이 한 인간들의 전투라니?!!!”

“게임 오픈하고 나면 더 멋지고 화려해지겠지?!!”

“게임을 내놔!!!!!”

“K.O.H!! K.O.H!!!!”

각자 자신이 소리치고 싶은 대로 마구 소리치던 관중들은, 어느새 흐름을 탄 것처럼 하나의 외침을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 멋진 시간을 선사한, 세계에서 가장 게이머를 사랑하는 회사.

자신의 팬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상상 속의 존재인 ‘거대 로봇’마저 만들어 선물하는 미친 회사.

그리고 앞으로도 그들의 인생을 온갖 행복과 추억으로 가득 채워줄 회사.

바로 ‘그’ 회사의 이름이었다.

“Play!!! To!!! Win!!!!”

“Play!!! To!!! Win!!!!”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이름을 연호하는 20만명의 관객들.

그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상혁은 키보드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사방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나이츠의 콕핏이 열리며,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파일럿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상혁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파일럿들의 귓가에 전달되었다.

-헤이, 영웅님들. 지금이 바로 손을 흔들 타이밍입니다.-

그러자 잠시 주저하던 파일럿들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고, 장내는 더욱 커다란 함성 속에 파묻혔다.

그것은 뭐라고 외치고 있는지 구분도 힘들 것 같은, 오로지 감정만이 느껴지는 거대한 기쁨의 외침이었다.

“멋졌다아아아!!!”

“너네 짱이야아아!!”

“진짜 게임에 미친놈들이구나아아!!!”

“X발 개 부럽다!! 나쁜 색기들아!!!!”

그때, 상황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상혁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경기장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로 올린 채 관객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이 멋진 경기를 선보인 12명의 영웅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터지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속에서, 상혁이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이벤트를 기획한 저조차도, 이 정도로 멋진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나이츠의 콕핏에 앉아 수백 개의 버튼을 누르며 15미터짜리 거대 로봇을 조종하는 것은, 단 6시간의 훈련으로는 절대 마스터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게이머 여러분들의 능력은 개발자의 상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군요.

개발자조차 예상하지 못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여기 모인 12명의 파일럿은 지금의 PTW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사랑스러운 팬 여러분.

여러분들은 저희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뜨거운 성원을 저희에게 보여주셨고요.

그러니 확실히 말하겠습니다.

만약 오늘의 쇼케이스가 역사상 최고의 쇼케이스로 선정될 수 있다면, 그건 저희가 아닌, 여기 있는 20만 12명의, 그리고 지금도 인터넷과 TV 방송으로 저희 PTW를 응원해주시는 수천만의 위대한 영웅들 덕분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PTW가 만든 기술은, 세상을 바꾸어 가고 있다고.

저희도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저희 게임에 보내는 사랑과 애정이, 저희가 세상을 바꾸게 만들고 있다고.

이토록 멋진 쇼케이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 진행된 세계 최초의 ‘로봇 대전’은 이만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지는 말아주십시오!

쇼 케이스는 이걸로 끝이지만, NE 컨벤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폐장 시간인 12시 정각까지, PTW의 NE 컨벤션은 계속 플레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가보지 못한 에리어, 여러분이 해보지 못한 게임을 마음껏 플레이 하며, 남은 시간 즐거운 추억을 마음껏 쌓고 가시길 바랍니다!]

“Yeeeeeeeeeeeeeeeaaaaaah!!!”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PTW 사랑해요!!!!!!!!!!”

“Play!!! To!!! Win!!!!”

“Play!!! To!!! Win!!!!”

끝날 줄 모르는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12명의 나이츠 파일럿들은 어찌할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상혁의 목소리가 그들이 쓰고 있는 딥 다이버를 통해 들려왔다.

-오늘 참가하신 나이츠 파일럿 분들은 그대로 나이츠에 탑승하세요.

경기장 패널을 통해 지하로 이동시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행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이후에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상혁의 말을 들은 현희가 옆에 서 있는 지수를 향해 물었다.

“지수 씨? 이후의 행보라뇨? 이벤트는 이걸로 끝 아닌가요?”

그러자 지수가 그녀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벤트는 끝났죠. 하지만 전부 끝난 건 아니에요.

PTW에서 계획한 ‘나이츠 리그’의 운영을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으니까.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프로 경기단’의 창설이죠.”

“프로 경기단이라면···.”

“아마 현희 씨가 상상하는 게 맞을 거예요.

그러니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한, 지수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츠 파일럿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세계 최초의 ‘프로 나이츠 경기단’ 창설을 위해 상혁 오빠가 여러분에게 스카웃 제의를 할 정도로, 오늘 여러분들이 멋진 경기를 펼쳐주었단 뜻일 테니까요.”

오늘 이후에도 계속 나이츠에 탈 수 있을 거라는 의미를 담은 지수의 말은, 안 그래도 관중석의 환호성으로 터질 것처럼 벅차오르던 파일럿들의 가슴을 두근대다 못해 터트릴 정도로 부풀어 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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