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48화 (449/485)

448. 파트너십

경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이츠 파일럿들의 공격은 점점 기세를 타고 강해져 가고 있었다.

초반엔 혹시나 자신의 기체에 달린 흉악한 무장이 상대 파일럿이나 관중들을 다치게 할까 봐 주저하는 마음에 상대방을 조심스럽게 공격하고 있었지만, 경기가 진행되면서 그들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인명피해를 발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민준이 직접 제작한 안전 프로토콜은 파일럿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관객이나 상대 파일럿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것은 모든 나이츠에 입력되는 파일럿의 조종 신호와, AI에 의해 통제되는 나이츠의 움직임을 일일이 추적하여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피해를 미리 시뮬레이트하고, 위험이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경우 강제 개입하여 피해가 미치는 범위를 의도적으로 경기장 안쪽으로 제한시켰다.

공격으로 인해 장갑이 파손될 것이 예상될 경우, 피격되는 각도나 공격의 세기를 의도적으로 조정하여 떨어져 나간 장갑 파편이 관중석으로 날아가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파일럿에게 데미지가 가해질 위험이 존재하면 나이츠를 강제로 뒤로 이동 시켜 데미지를 흡수하게 하거나, 타격 직전에 강제로 공격의 세기를 조정함으로써 콕핏 안에 타고 있는 나이츠들의 안전을 지킨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산 센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안전 프로토콜의 전투 시뮬레이터는, 그 자체가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의 전투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인 만큼 거의 미래예측 수준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경기장 안에 있는 돌조각 하나하나의 위치까지 전부 철저히 통제하는 중이었다.

물론 관중석에서 볼 때는 그런 부분이 잘 체감되지 않는다.

그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속도와 세기로 휘두른 무기에 맞아 수십 톤짜리 나이츠가 몇 십 미터를 날아가는 모습이나, 당장이라도 두꺼운 방패를 벌집으로 만들 것 같은 대구경 탄환을 능숙하게 방어해내는 나이츠의 모습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나이츠의 안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파일럿들은, 민준이 만든 안전 프로토콜의 강력함을 조금씩 체감하는 중이었다.

“오! 이것도 막히네??”

큰맘 먹고 상대 파일럿이 타고 있는 몸통을 전력으로 후려친 즈라드의 파일럿, 최현민은 자신의 공격이 닿는 순간 뒤쪽으로 점프하며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상대 나이츠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티타늄 합금으로 이루어진 상대 나이츠의 팔을 자르고, 날아오는 포탄을 도끼날로 쳐내며, 공격을 막으려 시도하는 상대의 방패를 멀리 쳐 날릴 수는 있어도, 상대 파일럿이 타고 있는 본체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어떤 방법을 써도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현민은 올려치기, 내려치기, 회전 베기, 도끼 투척, 심지어 점프한 상태에서 나이츠의 무게 전체를 실은 공격까지 전부 시도해 보았지만, 상대 나이츠의 코어에 손상을 입히는 데는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현민이 어떻게든 상대를 죽이고 싶어하는 싸이코라서 그런 공격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현민도, 상대 나이츠의 파일럿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현민이 선택한 머신 스피릿 ‘리나’는, 그런 현민에게 이렇게 말함으로써 현민의 도전 정신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에에엣?! 오빠, 뭐예요?

지금 그걸 공격이라고 한 거?

즈라드의 성능이 아깝지 않아요?

설마 상대 파일럿이 다칠까 봐 무서워서 살살 공격하시는 건가요?

걱정하지 말고 전신 전력으로 공격하세요.

오빠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이츠의 파일럿이나 관중들에게 데미지를 주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혹시 모르는 거잖아! 저 안엔 사람이 타고 있다고?!”

[그럼 내기하시던가요.

지금 오빠가 낼 수 있는 전력으로 상대 나이츠를 공격해봐요.

만약 상대 나이츠 파일럿이 오빠가 한 공격 때문에 다치거나 죽는다면, 오빠랑 하루 데이트해 줄게요.]

“아니, 다치는 거면 몰라도 상대방이 죽으면 데이트가 아니라 면회를 와야할 텐데?”

[그건 사고가 발생하도록 나이츠의 안전프로그램을 설계한 개발자의 책임이 되겠죠.

저희 머신 스피릿들은 이번 이벤트에서 오빠들이 낼 수 있는 전력을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그러니 전력을 다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전부 PTW에서 책임지게 됩니다.]

다른 대부분의 나이츠 파일럿들과 마찬가지로, 최현민 역시 수백명의 머신 스피릿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외모와 성격을 지닌 머신 스피릿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비록 PTW에서 고용한 직원이라 하더라도, 그런 머신 스피릿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여자아이가 데이트해 준다는데, 의욕이 나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다.

현민은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리나에게 말했다.

“약속. 지켜라?”

[인공지능인 머신 스피릿은 마스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답니다?]

바로 그 직후부터, 현민은 공격의 공세를 급격하게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현민을 1:1로 상대해야 했던 오다는, 갑자기 미친 것처럼 자신의 본체를 공격해오는 현민을 보며 입으로 욕설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이 미쳤나?!”

[왜 그러십니까? 마스터?]

“사람이 타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코어를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잖아!

저 거대한 양날 도끼에 베이면 티타늄이 아니라 아다만티움으로 만든 코어라도 단번에 두 동강 날 거라고!”

[그런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마스터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들은, 이미 테스트가 된 상태니까요.

마스터. 현재 마스터가 타고 있는 나이츠의 코어는 사람이 탄 상태에서 전체 나이츠의 무장 및 투사체에 대한 피격 테스트가 완료된 제품입니다.

나이츠의 본체에 해당하는 ‘코어’라는 물건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내부 파일럿이 다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격렬한 동작 중에도 내부에 전달되는 충격량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만들어졌죠.

오히려 지금 상대 나이츠인 즈라드의 공격 방식이, 저희가 권장하는 이상적인 공격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타고 있는 로봇에 저렇게 미친 듯이 큰 양날 도끼를 무식하게 휘두르는 게 이상적인 공격 방식이라고?”

[원래 그렇게 싸우도록 만들어진 물건이니까요.

오히려 저는 상대 나이츠에 타고 있는 머신 스피릿이 부럽습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즈라드의 머신 스피릿은 파일럿의 공격성을 100% 끌어내고 있으니까요.

그것은 파일럿의 나이츠 조종을 보조해야 하는 저희들에게 있어서, 매우 부러운 일입니다.

저 정도로 조종사의 역량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때, 아슬아슬하게 즈라드의 연속 공격을 막아내며 뒤쪽 방향으로 멀리 점프한 홀리 프레일의 동작이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딱 하고 멈췄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홀리 프레일의 파일럿인 오다는 다짐하는 듯한 목소리로 엘레니아에게 말했다.

“엘레니아. 지금 부럽다고 했어?”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마스터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전력으로 싸움에 임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은 제 진심입니다.]

“좋아. 그럼 보여주지.”

오다가 조종간을 앞으로 밀자, 홀리 프레일이 들고 있던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적어도 내 파트너는 나만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으니까.

상대가 다치더라도 난 책임 안 진다.”

[원하던 바입니다.]

활기가 돌아온 듯한 엘레니아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다는 밟고 있던 페달을 힘을 주어 눌렀다.

“가자! 파트너!”

[마스터의 분부대로!]

그 순간, 수세에 몰려있던 홀리 프레일의 공격이 마치 광전사 같은 공세로 전환 되었다.

***

광전사처럼 싸우는 두 거대 로봇의 격돌에 관중들이 열광하는 사이, 경기장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의 대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강철과 강철의 충돌이 아닌, 탄환(彈丸)과 탄환끼리의 싸움.

중세의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즈라드와 홀리 프레일과는 다르게, 다양한 종류의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두 로봇은, 마치 FPS 장르의 전투를 보는 것 같은 원거리 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투투투투투투투-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탄피 배출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탄피들은 마치 우박처럼 스테이지 바닥에 떨어지며 경쾌한 금속음을 내었다.

그리고 겨우 궤적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쏘아져 나간 탄환은, 상대 나이츠의 장갑에 움푹 파인 탄흔을 남기며 화려한 불꽃을 피워올렸다.

그쪽의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관객들은 그 중 어느 탄환이 AR 탄환이고 어느 탄환이 진짜 탄환인지 구분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누구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했다.

나이츠의 총구에서 실탄과 섞여 발사되는 AR 탄환이, 딥 다이버를 착용한 상태에서는 거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의 현실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즈라드와 홀리 프레일의 대결이 압도적인 무게감과 파괴력의 대결이었다면, 이쪽의 전투는 실탄을 가지고 펼치는 대전 특유의 화려함과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단 한발로 몇 인치 두께의 강철판 따위는 가볍게 뚫어버릴 연속 공격을 방패로 막아낸다거나, 그 와중에 탄환의 충격으로 인해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나이츠의 모습은 멀리서 보는 것 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나이츠를 운전하는 파일럿들은, 그 탄환 폭풍의 한 가운데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종간에 달린 발사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아아아아! 이러다 진짜 상대방 죽는 거 아니야?! 진짜 이대로 쏴도 돼?”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을 회전식 기관포라는 무식한 무기로 몰아붙이던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조종하는 나이츠의 머신 스피릿이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마스터. 그렇게 말하면서 총신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탄환을 연사하고 계신 건 마스터 본인이지 않나요?]

“그건 네가 하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지금 그 말을 믿고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는데, 어때요.

상대방 코어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났나요?]

그녀의 말을 들은 크리스티나는 누르고 있던 발사 버튼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그리고 지금도 방패를 든 채로 짙은 먼지구름 속에 싸여있는 상대 나이츠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탄환이 스친 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는 코어를 가진 나이츠가, 지친 것 같은 자세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덜너덜하잖아아아!!”

[그건 겉 장갑만 그런 거라고요! 겉모습에 속지 말아요! 찌그러지고 그슬리기만 했지 구멍은 하나도 안 났잖아요!?

애당초 나이츠의 무기에서 발사되는 탄환은 코어의 장갑을 뚫을 수 없게 세기가 조정되어 있다고요!]

“그럼 내 방패에 생긴 이 커다란 구멍은 뭔데?”

그녀는 다른 손에 있는 방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거기엔 한눈에 보기에도 대전차 포탄에 관통당한 것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그건 관통 판정 있는 탄환을 방패로 막았으니까 방패를 뚫을 수 있는 탄환이 날아온 거고요.

만약 같은 탄환을 몸으로 막았으면 AR 탄환이나 가짜 탄환이 발사됐을 거예요!

애당초 그런 식으로 설계되어 있으니까!]

“그럼 등에 장착된 대구경 대포도 마음껐 쏴도 된다는거지?

진짜로 사람 죽으면 네가 다 책임져?”

[맡겨두세요. 말했지만 무슨 수를 써도 파일럿을 다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마스터? 지금은 등에 달린 포를 사용하니 마니를 논할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어? 왜?”

[저쪽에선 지금 ‘미사일’을 쏠 생각인 것 같으니까요.]

머신 스피릿의 통신을 들은 크리스티나는 다급하게 들고 있던 방패에서 상대 나이츠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들고 있던 방패마저 내려놓은 채, 등에 달려있던 4연장 로켓 두 대를 자신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상대 나이츠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크리스티나는 젖멋던 힘까지 다해 구멍난 방패를 앞으로 세우며 외쳤다.

“스타니아! 달려어어어어!!”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로켓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콰콰콰콰콰콰쾅!!!-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치 네이팜 탄을 이용한 공중 폭격을 맞은 것처럼 화려하게 연쇄 폭발한 미사일 공격을 본 차현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머신 스피릿을 향해 말했다.

“저거 진짜로 맞아도 안 죽어요?”

그러자 PTW팬들에게는 꽤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안 죽어. 실제 네이팜이라면 몰라도, 저건 그냥 폭발만 화려하게 만든 화학 폭탄이라 실제 폭발력은 그리 높지 않으니까.

물론 제대로 맞으면 나이츠 본체의 손상은 없어도 에너지는 수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지겠지?

게다가 기껏 힘들게 꾸며놓은 화려한 장갑이 그을음으로 숯검뎅이 같이 변할 거고.]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야만적인 무기니까.

내가 좋아하는 건 좀 더 화려하면서도 깔끔하고 아름다운 공격이지.

무식하게 수십 톤짜리 강철 더미를 휘두른다던가, 상대방을 숯검정으로 만드는 재래식 공격이 아니라.]

투덜대는 머신 스피릿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역시 PTW 최고의 마스터 소서러 다운 발언이네요.

서지수 씨.”

그러자 머신 스피릿이 그녀를 향해 투덜대듯 말했다.

[주인님. 말했지만 지금의 저는 PTW의 임원 서지수가 아닌 당신의 파트너로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거랍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선택한 머신 스피릿과 똑같은 성격을 연기하고 있는 거고요.

그러니 저를 부를 땐 주인이 선택한 머신 스피릿의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습니다.

나이츠 ‘사일러스’의 파일럿.

차현희 씨.]

“아무리 그래도 지수 씨를 그렇게 부를 수는 없어요.

제가 어릴 적 MYOM을 처음 플레이했을 때부터, 지수 씨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히어로였다구요.

그래서 지수 씨가 제 머신 스피릿의 담당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거의 울 것처럼 기뻐했던 거고요.”

[아니, 그러니까 그런 태도가 절 엄청나게 곤란하게 만든다니까요?

이번 이벤트에서 머신 스피릿의 임무는 파일럿의 역량을 한계까지 끌어 올리는 거라고요.

그런데 주인님은 아까 전부터 계속 ‘지수 씨, 다음은 뭘 하면 될까요?’

‘지수 씨, 혹시 하고 싶은 것 있으세요?’

이런 식으로 계속 제 의사만 물어보고 있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전 제 욕심으로 억지로 머신 스피릿 담당에 지원한 걸 후회하고 있을 정도라고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서지수 님의 가장 열렬한 팬인 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주인님은 지금 서지수의 팬 차현희가 아니라! 사일러스의 파일럿이자 머신 스피릿 네피림의 마스터인 차현희라고요!]

“그래서, 이제 뭐 할까요? 서지수 님?”

[으아아아아!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애!! 상혁 오빠아아! 나 파일럿 바꿔줘어어어!!]

“그건 안 돼요. 전 지금 서지수 님이 제 머신 스피릿 담당이라서 행복해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럼 혼자만 행복해하지 말고 나도 행복하게 해줘요!!

일부러 차현희 씨를 고른 절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고요!]

그 순간, 지수의 절규를 들은 차현희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지수를 향해 물었다.

“절 골라요? 파일럿이 고른 머신 스피릿 중에서, 자신이 담당할 수 있는 성격이 있을 때 자동으로 배정 받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자 지수가 훌쩍이며 현희의 질문에 답했다.

[힝···.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저는 좀 달라요.

다른 담당자는 스무 개에서 서른 개 정도의 성격 연기를 커버하는 반면에, 저는 혼자서 60개 이상의 캐릭터 연기를 커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원래는 다른 담당자가 현희 씨를 담당할 예정이었지만, 제가 대신 하기로 하고 주인님을 고른 거라고요…….]

“왜 저를?”

[조종 실력만 따지면 즈라드의 파일럿이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고, 전술 능력은 홀리 프레일의 파일럿이 가장 뛰어났지만, 나이츠와 머신 스피릿의 조합 능력에서는 주인님이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니까요.

주인님이 타고 계신 나이츠 <사일러스>는 제가 KOH에서 가장 애용하던 초반 머신이었어요.

그리고 주인님이 고른 장비 세팅 역시 제가 초반에 가장 최적화 된 세팅이라 생각해서 결정한 세팅이었고요.

그런 나이츠를 손발처럼 다루는 마스터와 함께라면, 그 어떤 나이츠가 상대라도 질 것 같지 않았어요.

이렇게 전투 내내 일일이 모든 걸 물어볼거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차라리 다른 나이츠 파일럿을 골랐을텐데···.]

“흐응···. 그렇단 말이죠.

지수 씨가 저를 직접 지명했다고···.

그리고 제 능력을 믿고 있다고···.”

그 둘이 대화하는 와중에도, 지수는 나이츠의 조종에 강제 개입하여 상대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과도한 조종 보조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마스터가 리타이어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파일럿과 나이츠의 보호를 위한 회피 행동이나 방어행동이라면 몰라도, 머신 스피릿이 나이츠를 조종하여 상대 나이츠를 쓰러트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의 공격을 최대한 회피하면서 방어하는 것뿐이었다.

마도 스킬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도록 세팅된 ‘마도 기사’클래스의 나이츠인, 사일러스의 스킬 대부분을 봉인 당한 채로.

어떻게든 현주의 의욕을 살리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며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지수는 회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대의 공격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상대 나이츠가 쏘아낸 10발의 화염구가, 지수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회피 경로를 틀어막고 사일러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지수는 남아있는 사일러스의 쉴드 잔량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남은 HP는 700정도인가···. 마력은 8000이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은 상상도 못했네···.’

지수는 페달을 밟은 발에 힘을 빼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HP 잔량이 ‘0’이 되었을 때 나오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리기를 기다리며 잡고 있는 조종간에 힘을 주었다.

얻어맞는 공격이 AR 이미지로 구현된 마도 공격이라도, 나이츠의 물리 피드백 시스템은 실제 화염구에 맞은 것처럼 타격으로 발생한 충격을 조종석에 전달할 테니까.

그러나 지수의 손에 느껴진 것은, 나이츠가 공격받을 때 전달되는 물리 피드백의 감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스터 파일럿이 직접 머신을 조작할 때 느껴지는, ‘나이츠의 움직임’이 반영된 조작 피드백이었다.

“일루젼 필드!”

그토록 듣고 싶었던 현희의 의욕에 찬 목소리를 들은 지수는 감고있는 눈을 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판타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처럼, 사일러스의 주변에 펼쳐진 수십 개의 마법 진이 날아오던 화염구를 반짝이는 유리 가루로 바꿔놓고 있었다.

“혀···. 현희 씨?”

당황하며 말하는 지수의 귓가에, 웃음 섞인 현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현희가 아니라 주인님입니다.

사일러스의 머신 스피릿 네피림.

남은 HP는···. 700인가요?

이건 뭐 화염구 한 방만 맞아도 죽을 만한 HP네요.

하지만 잘 했어요.

적어도 마력은 8000이 넘으니까.

마도 나이츠인 사일러스에게, 8000이 넘는 마력은 승리를 노리기에 충분한 수치라고 할 수 있죠.

네피림!

이제부터 모든 공격은 흘리려고 시도하지 말고 전부 회피하세요.

회피할 수 없는 각도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제가 전부 무효화 할 테니까.

지금부터 전력으로 상대 나이츠의 배제에 들어갑니다!]

“현···. 아니, 주인님?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짓을?”

[미안해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저는 지금도 당신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그건 제 행복이죠.

네피림은 이 전투에서 화려하고 멋지게 이기고 싶은 거죠?

그래서 저라는 파일럿을 고른 거고요.]

지수가 눈가에 흐른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네피림의 주인님으로서, 네피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제 역할 중 하나겠죠.

그러니 보여드리겠습니다.

제가 사일러스라는 나이츠와, 네피림이라는 머신 스피릿을 고른 이유를.

두 번 다시 당신의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게 해 드리겠어요.]

“지금 보여주신 그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겠죠.

저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승리보다도 더 갚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마도의 위대함이니까요.”

마침내 하나가 된 두 사람이 동시에 조종간을 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똑같은 동작으로 조종간을 밀며 외쳤다.

[위대한 마법의 길에!!]

[가장 화려한 승리를!!!]

그것은 KOH 안에서, 사일러스의 머신 스피릿이 필살기를 시전할 때마다 외치는, ‘네피림’의 결정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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