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46화 (447/485)

446. 장난감 상자에 들어 있는 것

레이드가 시작되기 직전, 하늘에서 낙하하며 스테이지 바닥에 깊은 크레이터를 남겼던 나이츠의 등장 연출은 사실 현실의 나이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연출이었다.

아무리 PTW의 기술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수십 톤이 넘는 강철 거인 몇십대를 하늘 위로 운반할 수단까지는 준비하지 못했고, 그 높이에서 지면과 충돌할 때 콕핏 안에 가해지는 파일럿의 충격량을 완벽하게 흡수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상혁은 오직 가상 머신으로 이루어지는 레이드 전투에서만 나이츠가 하늘에서 낙하하는 연출을 쓰도록 등장 연출을 구성해 놓았다.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실감’의 부재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압도적인 화려함으로 커버하기 위해.

그리고 그러한 상혁의 전략은, 현실 속에서 동작하는 ‘진짜’ 나이트의 정체를 모르는 일반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전 세계 그 어느 스포츠 리그와 게임 리그를 갖다 대어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화려함’을, KOHA의 레이드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SF 영화를 실시간으로 구경하는 듯한 느낌의 전투라 할 수 있었다.

“후···. 뭐, 진짜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라 엄청나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수단이 없네요.”

그 ‘화려한’ 전투를 감상한 리차드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편집장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다고 기사에 ‘표현할 수단이 없다.’ 같은 표현은 쓰지 말라고.

안 되면 쥐어짜 내서라도 어떻게든 자네가 느낀 현장의 감동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지.-

“예전에 영화 트랜스포머가 개봉했을 때 취재차 페트라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전 페트라를 눈으로 볼 때 느껴졌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죠.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기사만 가지고 독자들이 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편집장님. 때때로 세상엔 직접 두 눈으로 봐야만 그 느낌을 알 수 있는 존재도 있는 법이에요.

바로 조금 전까지 저 경기장에서 펼쳐진 경기도 바로 그런 종류고.”

그렇게 말하며 리차드는 경기장 바닥에 있는 전투의 흔적들을 바라보았다.

진짜 바위가 낙하하기라도 한 것처럼 곳곳에 남아있는 크레이터들.

수십 톤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나이츠들의 격렬한 움직임에 의해 사방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

나이츠에서 떨어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거대한 금속 파편들과 마법계 스킬의 영향으로 불타오르고 그슬린 수많은 흔적들.

그 모든 잔해를 실시간으로 생성하고 전투에 적용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일 거라고, 리차드는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경기장 지하에 이 압도적인 물리량을 처리하기 위한 연산 센터를 건설해 두었겠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스타디움의 크기가 거대해진 것도 어찌 보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군.’

거의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거대 로봇들의 대전.

오직 그것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지갑을 열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게다가 MS와 SANY, 양대 콘솔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유저층을 타겟으로 하는 KOH, 그리고 그런 수많은 유저들 중에서도 PRD를 가지고 있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KOHA.

두 게임의 완벽한 연동 체계를 생각해본다면, 대전에 건설된 아레나 스타디움에서 열릴 ‘레이드’는, 말 그대로 수천만 이상의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빅 리그가 될 수 있을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거대 로봇 게임 리그인가.

말 그대로 대전의, 아니 한국의 상징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슈퍼 리그가 될지도 모르겠네.”

경기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리차드의 혼잣말을 들은 편집장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리차드의 의견에 동의했다.

비록 경기장에서 직접 그 압도적인 광경을 보지는 못했어도, 그 역시 리차드가 보고 있는 딥 다이버의 화면을 공유해서 이번 경기를 지켜본 당사자 중의 한 명이었기에.

그가 본 ‘레이드’는 전 세계 프로 스포츠 리그를 가볍게 제압하는 새로운 리그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완전히 새로운 볼거리였다.

마수의 목이 잘린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20만 관객의 함성이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함성은, 경기장 전체를 비추고 있던 조명이 한곳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로 다시 변하는 순간, 이성을 잃은 느낌으로 완전하게 터져나가고 있었다.

먼 거리 때문에 고작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경기장에 다시 한번 상혁의 모습이 등장했기 때문에.

상혁은 조금 전 레이드가 시작할 때 자신이 있던 위치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이상혁이다아아!!!”

“우와아아아!!!!!!!”

‘압도적’, 그 자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화려한 전투의 한복판에서, 상혁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을때와 마찬가지로, 들고 있는 마이크를 서서히 들어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상혁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Yeeeeeeeeeeeeeeaaahhhhh”

“끝내주게 멋졌다고오오!!”

“이 미친놈이 진짜 로봇을 만들어냈어!!

여러분 저기 있는 저놈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놈입니다!!!!”

상혁은 그 함성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아마도 중간중간 내가 보는 게 진짜 현실인가 헷갈리는 마음에 딥 다이버를 끄고 경기장 가운데를 바라보신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겁니다.

그리고 딥 다이버를 벗은 상태에서 경기장을 보신 분들은, 경기장 가운데서 계속 움찔움찔 거리며 필사적으로 지면에 발바닥을 붙이러 노력하던 저의 모습을 보실 수 있었겠죠.

지금 제 위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경기 내내 경기장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수십 톤짜리 로봇이 스테이지 바닥을 박차며 제가 있는 자리로 돌진할 때도, 제 작은 몸 따위는 순식간에 다진 고깃덩이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운석이 제 머리 위로 낙하할 때도, 저는 이 자리에 계속 서 있었죠.

그 압도적인 현실감 속에서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애당초 전 오늘 이 자리에 나오려고 기저귀를 차고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기저귀는 상당히 묵직해진 상태이고요.”

‘오줌을 지릴 정도로 무서운 경험이었다.’를 은근슬쩍 돌려 말하는 상혁의 농담에 관중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들 역시 자신이 그 격렬한 전투의 한복판에 있었다면, 반드시 오줌을 싸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분위기를 반전시킨 상혁은, 이번엔 진지한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만약’ 이 전투가 실제 로봇들이 펼치는 전투였다면, 전 한줌의 핏물이 되어 경기장 바닥의 얼룩이 되었겠죠.

‘만약’ 이 전투가 실제 마수가 등장하는 전투였다면 PTW의 어떤 기술력을 동원해도 경기장으로 날아간 나이츠에게서 관객 여러분을 보호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이 전투가 진짜로 수십 톤짜리 로봇들이 펼치는 배틀이었다면, 저는 손가락으로 이런 묘기를 펼칠 수 없었겠죠.”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스테이지 위에 있던 모든 오브젝트가 가루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딥 다이버를 벗지 않으면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현실감’을 주던 모습과는 다른, 말 그대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출이었다.

“조금 전의 화려한 전투는, 말하자면 일종의 신기루 같은 겁니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마법을 구현하고, 마수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마수를 소환하며,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PTW에서 준비한 화려한 ‘연극’이죠.

물론 그 연극에 대본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배우는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아무리 부서지고 박살 나도, 손가락 한번 튕기면 그 즉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상의 로봇들과 아무런 위험 없이 원거리에서 그 로봇들을 조종하던 나이츠의 파일럿들.

그 모든 배우들이 모여 만든 한편의 멋진 연극이, 바로 ‘레이드’인 겁니다.”

상혁의 말은, 어딘지 서글프게 들리는 메세지를 품고 있었다.

그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했던 그 화려한 전투조차도, 결국은 ‘가공’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주민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서글픈 진실’.

상혁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서글픈 진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아무리 화려하고 현실적으로 꾸민다 해도 가상은 가상일 뿐이라고, 그 화려한 가상 현실의 개발자가 직접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굳이 왜 저런 이야기를?’

‘가상을 통해 현실에 도전하는 것이 PTW라는 회사 아니었나?’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들은, 설마 하면서도 상혁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이상혁과 PTW라는 존재는, 절대 의도 없이 무언가를 말하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PTW가 팬들의 인식 속에 쌓아온, 절대적인 믿음이 깔려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PTW라는 회사는 팬들의 기대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회사라는 기대.

그리고 그런 관객들의 기대감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상혁은 마이크를 쥐지 않은 손을 들어 힘차게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 소리는 거리를 생각하면 절대 들릴 수 없는 소리였지만, 상혁이 들고 있는 마이크를 통해 객석 전체가 울리도록 크게 확대되어 울려 퍼졌고, 20만의 관객들이 순식간에 상혁이 있는 방향을 향해 주의를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관객들에게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올해 2월에 있었던 슈퍼볼 광고에서, 저희가 공개한 것은 낡은 로봇이 그려져 있는 장난감 상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자를 본 팬 여러분은 수많은 상상을 하며 오늘 컨벤션 회장을 찾아주셨죠.

저희 PTW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수많은 예측 글들.

그 중엔 로봇이 등장하는 게임을 공개할 것이라고 예상하신 분들도 있었고, 극히 적긴 하지만, PTW가 진짜 로봇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런 여러분들께 실물 크기의 거대 로봇이 싸우는 것을 상정하여 만들어진 거대 스타디움에서, 가상의 로봇들이 벌이는 AR 배틀을 보여드렸죠.

이대로 이벤트가 끝난다 해도, 오늘 이곳 PTW아레나에 방문한 여러분들은 주변 지인과 친구분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난 PTW가 주최한 5차 NE 컨벤션에서, ‘진짜 같은’ 거대 로봇이 서로 힘을 합쳐 초거대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그러나 질투 많고 심술이 그득한 누군가가, 신나서 말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봐야 진짜도 아닌데, 왜 그렇게 흥분하냐?’라고.

안타깝게도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임 속 세계를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게임 속의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게임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게이머라는 존재들을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비웃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고작 게임 따위에.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산물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진지하게 군다고, 비웃고 놀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오늘 여러분이 두 눈으로 직접 본 로봇들의 전투가 아무리 화려하고 멋지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 싸움이 아무리 게이머의 혼을 뜨겁게 달구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허구의 이야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겠죠.

그러나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약속드립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간 여러분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오늘의 행사가 끝나는 순간, 바로 전화를 붙잡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펼치는 ‘기만질’을 펼치시길 바랍니다.

통화 내용은···. 아마도 이 정도가 적합하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머릿속엔 오직 오늘 팬들이 ‘이 한마디’를 하게 하려고 수없이 극복해야 했던 엄청난 고난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개발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박살 난 수백억짜리 나이츠의 부속들과 철저히 보안을 지키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로봇 대전 스타디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단 한마디의 불평 없이 수 없는 야근과 철야를 반복했던 프로젝트 참가자들.

그들의 모든 고생은, 오늘의 이 한마디를 위해 쌓아 올려진 것이었다.

“오늘 나는, ‘진짜’ 로봇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위대한 전투를,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 순간, 상혁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외에 전부 꺼져있던 경기장의 조명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경기장 위에 펼쳐진 수많은 패널이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20만 명의 관객들은, 두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패널이 갈라지며 생긴 어두운 공간 안을 들여다보고 일제히 딥 다이버를 머리에서 벗었다.

그리고는 딥 다이버를 벗은 상태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구멍 안의 존재’를 보고는 비명을 질러댔다.

“나이츠다아아아아아!!!!”

“진짜 로봇이다아아!!”

“이런 X친!?! 저거 진짜야?!”

“AR이 아냐?! 진짜 나이츠라고?!!”

“게임에 X친 놈들이 드디어 진짜 로봇을 만들어냈다아아아!!!”

수십 톤의 나이츠를 스테이지로 밀어 올리기 위해 패널 밑의 기관이 동작하는 거대한 금속음은 관객들의 함성에 묻혀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함성 한가운데 있는 상혁의 고막이 걱정될 정도의 함성 속에서, 나이츠들은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확연하게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을 어필하며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바닥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전장 15m 크기의 강철 거인들.

전신이 번쩍이는 합금으로 도배된 형형색색의 거인들은 아무 미동도 없이 제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지만, 단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쿠우웅-

그리고 마침내, 서서히 올라오던 패널이 나이츠의 전신을 스테이지에 드러내자, 패널을 고정하는 잠금장치가 움직이는 육중한 금속음이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저거 진짜 움직여?! 진짜 움직이는 거냐고!?!”

“진짜로 파일럿이 타고 싸우는 진짜 로봇이라고?!

PTW가 진짜 미쳤나?!!”

“오늘부로 전 세계 스포츠 리그는 나이츠 아레나와 그 외 떨거지들로 구분될 것이다아아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목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있으면서도 관객들은 마음속의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저 거대한 로봇이 진짜 조금 전 레이드 경기에서 보여준 것 같은 움직임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일본에 있는 실물 크기 건담 모형처럼 엄청 느리게 움직이는 실물 크기 장난감은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 조금 전 레이드에서 마수의 목을 한순간에 잘라버린 <즈라드>가 자신이 들고 있는 15미터짜리 양날 도끼를 힘차게 공중에서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짜가 아니라는 걸 어필하려는 건가.

즈라드의 파일럿은 쇼맨십이 강하네.’

그 모습을 본 오다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일레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일레니아. 즈라드 혼자만 튀게 할 수는 없지.

우리도 갈까?”

[예스. 마스터.]

그러자 오다가 탄 홀리 프레일 역시 손에 든 거대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한쪽 손에 든 프레일을 붕붕 회전시키기 시작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나이츠들 역시 일제히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멋진 포즈를 지으며 나이츠의 놀라운 운동 능력을 관객들 앞에서 과시했다.

“으아아아아!!”

“진짜 움직인다아아!!”

“게임 속에서 본 것과 똑같이 움직이는 로봇이라니!?! 진짜 외계인이라도 고문하는 건가?!”

“나도 태줘워어어어!!”

“KOHA를 열심히 해서 상위권에 올라가면 태워주나?! 오늘부터 목숨 걸고 게임을 한다!!

아무도 말리지 마!!”

흥분을 넘어 거의 광란 상태에 돌입한 관객들은, 거의 돌고래 같은 비명을 지르며 로봇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관객들의 환호성이 집중되는 경기장 한가운데서 미친 듯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이츠들의 등장까지는 자신이 계획한 연출 대로였지만, 무대 위에 등장한 12대의 나이츠가 동시에 자신의 무기를 휘두르며 폼을 잡는 것은 상혁의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미친놈들아! 그만둬! 여기 사람 있다고!!’

스치는 순간 성인 남성 따위는 잘게 찢긴 육편으로 만들 수 있는 수십 톤짜리 쇳덩이가 눈 앞에서 마구 흔들리는 모습은 아무리 상혁이 강심장을 가졌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죽음을 각오하고 태연함을 연기하며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전 관객들에게는 농담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진짜로 기저귀를 차고 올 걸 그랬다고 후회하면서.

그리고 정지하자, 상혁이 시키지도 않은 운동성 퍼포먼스를 선사하며 상혁에게 미친 듯이 풍압을 날리던 12대의 나이츠가 상혁은 가까스로 마이크를 집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12대의 나이츠들이 관객들을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취하자, 관중석은 또 한번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으허으어흐어엉!!!”

“말할게요오오!! 친구들한테 말할게요오오!! 오늘 PTW 덕분에 ‘진짜 로봇’을 보았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목소리로 자랑할게요오오!!!”

시키지도 않은 나이츠 파일럿들의 퍼포먼스 덕에 이벤트의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다고 생각한 상혁은 작은 미소를 띄운 채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기 위해 대기 중인 20만 명의 관객들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럼 함께 즐깁시다!!”

그것은 이 경기장에 모인 20만명의 관중들에게만이 아닌, 스테이지 밖에서 딥 다이버로 쇼케이스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구르고 있는 나머지 10만 명의 입장객들과, 전 세계에서 PTW가 준비한 ‘히든 카드’를 보며 열광하고 있는 수천만의 시청자를 향해 던지는, 상혁의 메시지였다.

“세계 최고의 KOH 플레이어들이 펼치는, 세계 최초의 ‘진짜’ 로봇 대전을.

딥 다이버가 지원하는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검과 마법, 강철과 과학이 펼치는 ‘현실’속의 전투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Yeeeeeeeeeeeeeeeaaaaaahhhhhhh!!!!”

“Fuck the Heeeeeelll!!!”

“이것이 진정한 로!봇! 대전이다아아아!!!”

“PTW 만세에에에!!”

“P!T!W! P!T!W!”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성을 내지르는 관객들을 보며, 상혁은 깊은 만족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비록 나이츠 파일럿들이 갑작스레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머릿속에 몇 번이고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려야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니 그것조차 감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상혁은 중계 모드로 되어있는 딥 다이버의 모드를 파일럿들과의 통신 모드로 전환한 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조종간을 잡은 나이츠 파일럿들에게 말했다.

[다들, 멋진 등장 포즈였습니다.]

그러자 나이츠의 파일럿들이 상혁을 향해 일제히 외쳤다.

-감사합니다!-

-최고의 소개 퍼포먼스였어요!-

-베리 본즈가 73 홈런을 기록했을 때도 이 정도 환호성은 아니었을 겁니다!!-

-쇼 케이스의 마술사란 별명이 전혀 아깝지 않은 등장 연출이었습니다!-

그러자 상혁이 미소지으며 파일럿들에게 답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등장까지의 연출 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저의 부탁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현실의 나이츠를 타고 싸울 기회를 부여받으셨죠.

그리고 지금부터, 이 쇼 케이스의 주인공은 저나 PTW가 아닌, KOH라는 게임의 플레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나이츠 조종 권한을 획득하신 여러분들입니다.

영광스런 나이츠의 파일럿 여러분.

무대에 올라오기 전에 머신 스피릿에게 이야기 들어서 아시겠지만, 어차피 여러분들이 전력으로 상대를 향해 무기를 휘둘러도 저희가 개발한 완벽한 안전장치들이 파일럿의 안전을 끝까지 보장할 겁니다.

그리고 나이츠는, 팔다리가 날아간 것만으로는 기능이 정지하지 않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잘 만들어진 실전용 로봇이죠.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여러분께 제가 부탁드릴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여러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각오로 나이츠 배틀에 임해주세요.

여기 모인 20만 명의 관객들과 수천만의 시청자들이, ‘진정한 로봇 배틀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상혁의 부탁을 들은 나이츠 파일럿 전원은 조종간을 잡은 손에 꾹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상혁의 부탁에 힘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맡겨 주십쇼!-

-저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진짜 파일럿이 뭔지 세상에 보여드리죠!-

그 진지한 눈빛을 본 상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딥 다이버의 모드를 중계 모드로 전환했다.

관중들 모두가 상혁과 파일럿들이 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는 나이츠의 옆으로 다가가 거대한 강철 발을 손바닥으로 세게 치며 외쳤다.

“자! 함께 갑시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싸움을, 전세계 수천만의 게임 팬들의 뇌리에 영원토록 새겨넣으러!

이 뒤부터는 20만의 KOH 게이머 가운데서 선택받은 여러분들께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라져(ROGER)!!!!!!!!!!!!!!!-

파일럿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순간 딥 다이버의 AR 기능을 통해 관객들에게 공개된 파일럿들의 모습.

마치 애니메이션 속의 한 장면처럼, 형형색색의 LED로 빛나는 파일럿 슈트를 입은 조종사들이 ‘진짜’ 로봇의 콕핏에 앉아 일제히 소리치는 모습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모든 관객에게 ‘이것은 현실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저 거대한 로봇 안에, 자신들과 같은 ‘인간’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 역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행사장에 처음 방문한 게이머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그 어떤 갑부나 유명인보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인간이 되어버린 12명의 파일럿들은, 행사장에서 퇴장하기 위해 게이트로 걸어가는 상혁을 향해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현실’을 꾸도록 최선을 다해 이 무대를 준비한, 작지만 위대한 거인(巨人)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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