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44화 (445/485)

444. 격동의 쇼케이스

2021년 8월 15일 저녁 7시.

한낱 뜨거운 행사 열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20만 개의 객석을 가득 채운 채우고 있는 관객들은, 매번 ‘레전드’를 갱신하는 PTW의 새 쇼케이스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 함께 온 일행들과 큰 소리로 마구 떠들고 있었다.

그 활기찬 모습을 보며, 리차드는 PTW가 건설한 이 독특한 테마파크가 가진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편집장님. 참 신기한 모습이지 않습니까?”

-어? 뭐가? PTW의 쇼케이스에 이 정도 관심이 쏠리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잖아?-

“아뇨. 제가 말한 건 이 관객들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말한 겁니다.

여기 있는 관객 대부분은 아침 9시보다 훨씬 전에 이곳에 도착해서 행사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이죠.

게다가 그중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인 어제 해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한국에 도착한 사람들이고요.

그 말은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오늘 하루, 거의 10시간 이상을 이 테마파크에서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다들 활력이 넘쳐 보이죠.

편집장님도 전에 따님하고 디즈니랜드 가보신적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저녁 7시쯤에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떠올려보시죠.”

그러자 편집장의 놀란듯한 목소리가 통신을 통해 들려왔다.

-어? 진짜 그렇네?

보통은 테마파크 한번 방문하면 저녁때쯤엔 거의 마른 시금치처럼 변하는 법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쌩쌩하군?

게다가 한국은 한참 여름이라며?

왜 다들 저렇게 활력이 넘쳐 보이는 거지?-

“그 이유야 몇 가지 있겠지만 일단 AI가 관리하는 가이드 시스템으로 인해 극단적으로 줄어든 어트랙션 탑승 대기 시간, 그리고 거의 2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PTW의 신작인 KOH를 체험 플레이하기 위해 에어컨이 틀어진 공간 안에서 자리에 앉아 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길게 걸어 다녀야 하는 경로 대부분을 조경을 통해 만든 그늘로 커버한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싶네요.

AI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 길 한가운데서 만화처럼 생긴 지도를 보며 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멍청하게 서 있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고요.”

-세계 최초의 ‘피곤하지 않은’ 놀이 공원의 탄생인가?

인상적이군.-

“실제로 저도 여기 와서 밥먹는 시간과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아이와 함께 온 관객들도 오늘 하루 즐겁게 지냈을 겁니다.

공주님과 기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든, 아니면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든,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든.

여기엔 아이들이 즐길만한 어트랙션도 무지막지하게 많으니까요.”

-잘 알겠으니까 자랑은 그만해.

안 그래도 지금 배아파 죽을 것 같은 상태니까.

게다가 잠시 후면 그 모든 이벤트의 꽃인 쇼케이스가 시작될 것 아닌가?

전 세계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어.

누군가는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방송을 통해서.

누군가는 PTW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또 누군가는 TV 방송을 통해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쇼케이스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지.

심지어 자네가 보고 있는 화면을 딥 다이버로 공유해서 보고 있는 나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이라고.

대체 PTW라는 미친 회사가 이 괴상한 구조의 스타디움에서 어떤 이벤트를 하려는 것인가가 미칠 듯이 궁금해서 말이지.-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쇼케이스 내용이 뭔지 대충 예상할 겁니다.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이 경기장은, 제가 KOHA안에서 보았던 경기장과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 구조물이니까 말이죠.

물론 나이츠를 타고 코트 내부에서 싸웠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관람석에 있는 입장이긴 하지만.”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PTW에서는 지금 이 거대한 경기장 내부에서 실제 크기의 로봇들을 AR이미지로 구현해서 서로 싸우게 한다는 거지?

그걸 직접 체험한 자네가 보기엔 어때?

이미 한번 체험해 본 것이라도, 직접 보면 더 대단해 보일 수 있을까?-

“오늘 KOHA를 플레이할 수 있었던 건 KOH플레이어 중에서도 상 위권에 속해있던 1만 명의 유저들 뿐이었어요.

그 말은, 나머지 19만 명의 관객들은 KOHA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관람을 하면서 짬짬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그 존재를 접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적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거의 컬쳐 쇼크 수준의 경험이 될 겁니다.

PTW의 기술력으로 구현된 KOHA속 아레나의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죠.”

리차드가 말을 마치는 순간, 본격적인 쇼케이스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경기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던 모든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사이즈가 아닌 것 같은 거대한 강철 게이트를 비추는 조명을 제외하고.

그것은 자연스레 객석에 있는 20만 명의 시선을 한곳으로 모으는 연출이었다.

‘근데 저 게이트는 나이츠가 통과하기 위한 용도로 보기에도 너무 거대한문인데?

뭘 통과시키려고 저렇게 커다란 문을 설치한 거지?’

순간 게이트 양옆에 달린 조명에서 붉은빛이 마구 회전하기 시작하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두가 머리에 쓰고 있는 딥 다이버의 스피커를 통해 –삐이 삐이-하는 경고음과 함께 음성 안내가 흘러나왔다.

[메인 게이트 오픈.

메인 게이트 오픈.

현재 시각 19:00분을 기점으로 스타디움 내부를 제1급 위험 에리어로 지정합니다.

사고 방지를 위해 모두 제자리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게이트 근처에 있는 작업자와 관람객들께서는 사고 방지를 위해 게이트 근처에서 100미터 이상 멀어져 주십시오.]

뭔가의 ‘위험’을 알리기에 그보다 적절한 연출은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면서, 미사일도 튕겨낼 듯한 모습의 거대한 강철 게이트가 서서히 반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 전 위험 상황을 안내했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위험을 알리기 시작했다.

[경고. 경고.

제1급 위험종 게이트로 접근 중.

레이드 참가를 위해 대기 중인 파일럿은 시급히 전용기 근처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20만 명이 숨도 쉬지 않고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게이트 너머의 어두운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거대한 발소리가 스타디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질량을 가진 모종의 존재가, 서서히 스타디움 내부를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였다.

-쿵-쿵-쿵-

‘사운드 하나는 진짜 예술적으로 현실 같네.

지금 당장 저 게이트 너머에서 고질라가 튀어나온다 해도 믿겠어.’

리차드는 마른 침을 삼키며 게이트가 있는 방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게이트 안에서 걸어 나온 존재를 보고는 허탈함에 웃음을 터트렸다.

“어?! 뭐야?! 사람?!”

필드에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왜소한 체구의 인간은 마치 거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공간을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면서도 20만명의 관객들은 전혀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걸어갈 때마다 발걸음에 맞춰 조금 전 들리던 거대한 발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엄청난 무게를 압축해놓은 인간이 필드 위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필드의 정 중앙위로 이동한 남자가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손에 든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게이머 여러분.

비록 거리가 멀어서 제가 누군지 정확하게 보고 계시지는 못하겠지만, 다들 제 정체를 짐작은 하고 계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PTW의 CCO, 이상혁이 게이머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그 순간 20만 명이 동시에 내는 엄청난 환호성이 스타디움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상혁은 사람들의 환호성이 조용해지기를 잠시 기다렸다 다시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 의미에서 이번 5차 NE 컨벤션은 기존의 NE 컨벤션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는 컨벤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기존 NE 컨벤션에 있는 모든 세트를 현대 기술로 리뉴얼 하여 재개방했죠.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과거에 특별한 행운을 누린 게이머들만 볼 수 있었던 그 순간을 다시 체험할 수 있도록.

1차부터 4차 NE 컨벤션 에리어에 방문하신 분들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드셨습니까?]

“Yeeeeeeeeeeeeeees!!!!!”

“Yeeeeeeeeeeeeaaahhhhh!!”

“NE 컨벤션 최고오오!!”

[그리고 슈퍼볼 광고에서 공개된 ‘무한의 바다’가 있었죠.

해적이 된 기분으로 행사장을 누비며 돌아다닐 수 있도록, 저희는 체험 에리어에 중세 해적 마을 스타일의 세트를 건설하고 게임 속에서 나온 다양한 술과 음료를 현대인 입맛에 맞게 어레인지 해서 제공했으며, 무려 4만 대의 PRD를 사용해 여러분들께서 저희의 신작이 주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그것도 여러분의 마음에 드셨습니까?]

다시 한번 격렬한 긍정의 외침이 터져 나오자, 상혁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KOH도 빼놓을 수 없겠죠.

저희는 20만대에 달하는 9세대 콘솔을 준비하여 여러분이 대기 시간 없이 저희가 만든 새 게임을 원하는 시간 만큼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물론 KOH의 체험 존 역시 게임 속에서의 분위기를 현실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SF 스타일의 음료수 바나 부유 함선 스타일로 꾸며진 식당 등 여러 준비를 하여 두긴 했지만, 저희가 하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여러분이 게임 패드를 한번 잡으면 절대 손에서 놓지 않는, 게임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죠.

덕분에 전체 에리어에 있는 식당 중에서, KOH 에리어에 있는 식당이 매출이 가장 적게 나왔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그쪽에서 일하는 알바생 몇 명이 다른 지역으로 좌천될지도 모르겠네요.]

상혁의 너스레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상혁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한 손에 마이크를 잡은 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상혁이 말을 꺼낼 때마다, 아무것도 없는 경기장의 허공에 딥 다이버로 구현된 영상이 구름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객석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크기를 가진 ‘영상 구름’이었다.

마치 만화에서 사람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연출처럼 보이는 그 구름 속에는, 오늘 하루 PTW 파크의 여러 에리어에서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관객들의 모습이 마치 추억의 앨범처럼 재생되고 있었다.

[요리사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것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의 모습을 보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개발자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일은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죠.

오늘 행사장에서 여러분에게 음식을 건네고 음료수를 섞으며 길을 안내하던 모든 스텝은, 저희 PTW에서 여러분이 플레이하던 게임을 만들던 개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게임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위해, 기꺼이 요리를 배우고 칵테일 레시피를 배우며 더운 햇빛 아래서 여러분에게 미소를 짓는 법을 배웠죠.

그것은 회사에서 시켜서 한 것이 아닌, 팬들의 행복한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싶다는 개발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집에 가면 즐거운 기분으로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오늘 내가 마신 음료수는, PTW의 개발자가 직접 타서 건네준 음료수였다고.]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오자, 상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함성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게이머는 개발사가 만든 게임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플레이하면, 개발자는 그런 게이머를 보며 더 좋은 게임을 만들겠다고 결심합니다.

고등학교 교실에서 방과 후에 모여 게임을 만들던 작은 동아리는, 오직 그 마음 하나만으로 이토록 높고 거대한 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그러나 회사가 커지고 매출의 규모가 아무리 거대해진다 하더라도, 저희의 모든 직원이 가진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게이머의 사랑을 배신하지 말자.’

그런 한결같은 일념으로, 저희는 매번 저희가 만드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게임에 단 하나의 가치관을 적용해왔고요.

그 가치관은, 바로 ‘진심으로 누군가가 만들어줬으면 하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게임을 만들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원하면서도, 너무 바보 같고 막연한 일이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

오히려 그렇기에 더 반짝이는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

10년, 20년, 40년이 지나도 그 게임을 처음 할 때의 감동을 떠올리면서 몇 번이고 다시 패드를 잡게 만드는 게임.

‘이 게임이 있었기에, 이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임.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이 아무리 바보 같고 멍청한 일이라도, 저희는 해낼 겁니다.

PTW라는 회사는, 바로 그런 일을 ‘해내기 위해’ 존재하는 회사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저희는 이번 신작을 만들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게이머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어떤 게임이 오직 PTW가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멋지고 환상적인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끝에 도달한 답이, 바로 거대 로봇을 소재로 하는 게임이었죠.

거대 로봇.

참 로망 있는 단어이지만, 참 바보같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거대 로봇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을, 다른 기계들이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려면 크레인을 쓰면 되고, 강력한 대포를 쏘려면 포탑을 쓰면 됩니다.

어디론가 이동하려면 자동차나 트럭을 사용하면 되고, 하늘을 날려면 비행기를 공중에 띄우는 것이 로봇을 공중에 띄우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로봇의 특별함은 반대로 뭐든지 잘 하지는 못하는 단점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거대 로봇이란 존재는, 언제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 속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거고요.

멋지기는 하지만 효율성은 없는 물건.

그것이 바로 거대 로봇이라는 물건의 본질입니다.]

상혁의 설명을 들으며, 리차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정론에 가까운 설명이었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범용성을 얻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 로봇이란 존재였기에, 거대 로봇이란 아무도 제작을 시도하지 않는 환상 속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 PTW에서도, 가상 공간에서 거대 로봇이란 물건을 구현할 수밖에 없던 것이고.

[하지만 그래서요?]

그리나 그 순간, 가슴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리차드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멋지기만 하고 현실성은 없는 게 나쁜 겁니까?

어차피 다 똑같은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디자인 따져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는게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럼 거대 로봇이란 것도, 단순히 거기에 로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에 존재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물건이 아닐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희는 콘솔 전용 게임인 KOH의 PRD 버전을 개발했습니다.

실제 로봇을 조작할 수 있는 조종석을 가상으로 구현하여, 15미터 크기의 강철 기사에 타고 수 톤짜리 티타늄 블레이드를 휘두를 수 있는 게임을.

그리고 그 게임 안에서, 여러분은 마치 우주선의 조종석같이 생긴 콕핏에 타고 엄청나게 넓은 경기장 안에서 거대 로봇을 조종하며 ‘로봇 대전’을 펼칠 수 있죠.

여기 계신 분들 중 상당수는 이미 그 게임의 존재를 스트리머 방송이나 TV 쇼를 통해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이 스타디움의 내부로 들어온 순간 확신하셨겠죠.

‘아, 이 경기장은 KOHA 안에 나오는 아레나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이구나.’하고요.

지금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조금 전 열렸던 거대한 게이트의 안에서 다시 한번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것은 상혁이 걸어 나올 때와는 전혀 다른, 압도적인 ‘질량감’을 가진 무언가가 다가오는 발소리였다.

“문 안에 뭔가 있다!”

그 순간, 게이트 가까이 있던 수천 명의 관객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를 들은 20만명의 관객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게이트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안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무언가’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저거···. AR 맞지?’

딥 다이버를 벗지 않고는 도저히 구분할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현실감을 가지고, 게이트 안에서 걸어 나온 존재.

그것은 리차드가 KOHA를 플레이 할 때 보았던 ‘마수’와 정확히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생물이었지만, PRD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그래픽 성능보다 아득하게 뛰어난 ‘해상도’를 가지고 있는 거대한 괴수였다.

***

“돈값은 하네.”

스타디움 지하에 있는 상황실에서, 딥 다이버로 구현된 거대 생물을 바라보던 민준이 말했다.

그러자 민준과 함께 쇼케이스를 지켜보던 현주가 민준을 향해 물었다.

“그냥 그래픽이지 않아? PRD에서 보는 거랑 그리 다를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러자 민준은 고개를 저으며 현주의 질문에 답했다.

“기본적으로 모델링 하려는 물체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필요한 연산 능력이 올라가요.

게다가 저 크기를 구현하는 데 들어가는 폴리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하고요.

지금 라이브로 돌아가는 저 괴수의 껍데기에 들어간 텍스쳐 데이터의 용량만 페타바이트 수준입니다.

지금 관객들이 보고 있는 괴수의 모습은, 그렇게 렌더링 된 실제 크기 괴수의 그래픽 이미지를 딥 다이버의 해상도에 맞게 조정한 모습이죠.

게다가 관객마다 객석에서 볼 수 있는 앵글의 위치가 다 달라서, 모든 영상 데이터를 20만 개로 쪼개서 각각의 관객에게 보내줘야 해요.

스타디움 좌석 옆에 있는 유선 케이블이 그래서 필요한 거고요.

그 많은 데이터를 무선 네트워크로 한 공간에 밀어 넣으면 주파수 간섭으로 통신 불가 상태가 될 테니까요.”

민준의 말대로, 현장에 있는 모든 관객들의 딥 다이버에는 의자에서 나온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관광 도중 장시간 사용된 딥 다이버의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동시에 네트워크와 그래픽 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된 특수 케이블이었다.

그 케이블은 미리 구성된 유선 네트워크를 통해 지하의 거대 연산 센터와 연결되게 되어 있었고, 민준은 그 케이블을 통해 실시간으로 처리된 데이터를 20만 개의 딥 다이버로 동시에 송출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저건 그냥 모델링이 아니라 안에 주요 근육과 혈관, 뼈와 내장이 모두 구현된 가상 생물이에요.

말하자면 저 움직이는 괴수 자체가 현대 컴퓨터 공학의 정점인 셈이죠.”

“만드는 데 엄청 힘들었을 것 같은데.

아니, 힘든 정도가 아니라 그 정도면 거의 불가능에 도전하는 수준 아니야?”

“그나마 STC가 있으니 가능했던 거지 일반 그래픽카드로 했으면 현재 시장에 나온 최신형 그래픽카드를 모두 가져다 박아도 저렇게는 구현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아무리 힘들더라도, 회사 지하에서 ‘진짜 로봇’을 만들겠다는 미친 인간들이 있는데.

그 미친 인간들에게 밀리지 않는 수준의 기술력을 보여주려면, 이 정도 퍼포먼스는 보여줘야죠.

스컹크 웍스의 수장으로써, PTW의 외계인 자리를 나이츠 개발팀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오늘 이벤트가 끝나면, 물론 저희가 공개한 나이츠의 존재가 가장 큰 이슈를 차지하겠지만, 업계에서는 가상 레이드에 대한 이슈가 더 크게 화재될 겁니다.

거의 현실을 그대로 구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말도 안 되는 연산 처리 능력을 가진 시스템을, PTW가 만들어낸 거니까.”

그렇게 말한 민준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모니터의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거대한 가상 괴수의 등장 때문에, 아까 전보다 더 작아 보이는 상혁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

‘가상이란 걸 아는데도 옆에 서 있으려니 다리가 떨리네.

민준이 이 자식.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로 현실적으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가까이 다가가면 피부에 있는 땀구멍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 괴수 옆에서, 상혁은 남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그의 이성은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거대 괴수가 가공의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감각은 당장 이 미친 괴물 옆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깊이 심호흡을 한 뒤, 당장이라도 자신을 간식거리로 한입에 삼켜버릴 듯한 괴물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며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는 객석을 향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보이는 괴수는 저희가 이번에 공개한 신작 게임, ‘나이츠 오브 아너’에 등장하는 마수입니다.

그 게임에서, 빛나는 기술력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과거의 인류는 폭주한 마력으로 발생한 마수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죠.

그렇기에 전 지구를 지배하고 있던 인류는 멸종의 위기 속에서 마수에 의한 공포에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상해보시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 스타디움을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강력한 괴물이, 여러분이 앉아 있는 객석으로 달려든다고요.

그러나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의 인류는, 자신들의 손으로 마수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위대한 힘도 남겨주었으니까요.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자, 자격있는 용사들을 위해 준비된 고대의 유물.

‘명예의 기사들(Knights of Honor)’을!!!”

그렇게 말한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객석에 앉은 20만 명의 관객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PTW에서 준비한 화려한 볼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그러나 그런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경기장의 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분명 PTW라면 허공에서 마법진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할 거로 생각했는데.’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쏠린 것을 보며, 상혁이 씩 웃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위로 올리며 관객들에게 말했다.

“여기가 아니라 위입니다.”

그 순간, 가상으로 구현된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중량감을 가진 강철 덩어리가, 상혁의 주위에 일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쿵!!-쿵!!-쿵!!

마치 운석이 낙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몸에 화려한 장갑을 두른 채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착지한 나15미터 짜리 강철 기사들은, 그것이 가상의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보는 이의 심장을 터질 듯 두근거리게 할 만큼,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게 가상 이미지라고?’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듯한 광경을 본 리차드는 자신도 모르게 나이츠가 착지한 바닥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수십 톤의 중량을 가진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충돌할 때 생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형태의 크레이터(Craters : 충돌구)가 갈라진 바닥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그 황당한 모습을 보며, 리차드는 자신도 모르게 딥 다이버의 전원을 내렸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서 있는 상혁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조금 전까지 바닥에 보였던 크레이터와 돌조각도 온데간데없이.

그 황당한 모습을 보며 딥 다이버의 전원을 다시 올린 리차드는,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이 미친 X끼들이, 이제 하다 하다 바닥에 부서진 돌까지 전부 구현하고 있네?!”

저 정도 크기의 거대 로봇들이 격돌하는 전투에서,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구조물의 파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리처드는 하늘에 맹세코, 지금까지 자신이 본 그 어떤 파괴 효과도 저토록 현실적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런 기분을 느낄 정도로, 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압도적인 ‘해상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리차드가 자신의 두 눈으로 본 KOHA의 모습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의 그래픽이었다.

“아, 아하하···. 그래픽이라···. 이제 이걸 그래픽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의문이네.”

리차드의 허탈한 웃음소리는 관객들의 함성 속에 순식간에 묻혀버렸다.

그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할 만큼, PTW가 준비한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기다려도 잦아들 줄 모르는 함성 속에서, 상혁은 조용히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오늘 준비한 쇼케이스의 첫 번째 경기 시작을 선언했다.

“그럼 여러분.

오늘, 이 경기장에 모인 여러분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압도적인 모습은, 스트리밍 방송이나 TV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일 테니까요!

아마 집에 돌아가면 친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느낀 이 감각은,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라고.

제 말이 허언인지 아닌지는, 이어지는 전투를 보며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실 나이츠의 파일럿들에게 힘찬 환호 부탁드립니다!

기사들에게  영광을!”

상혁이 선창하자 20만명의 관객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기사들에게 영광으으을!!!”

“파일럿들에게 축복을!!!”

“축복으으으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게이머에게 지고의 행복을!”

“행복!!!행복!!해앵복!!!”

오다는 콕핏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20만 명의 게이머가 쏟아내는 열광적인 응원을 들으며,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콕핏 내부에 설치된 압도적인 사운드 시스템이, 지하에 있는 자신에게도 경기장의 열기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가상의 로봇’에 이토록 열광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오다가 동료 파일럿들에게 말했다,

“X친, 겨우 가상 레이드 가지고 저 정도라니, 진짜 로봇이 등장하면 어떻게 되는거야?

사망자 나오는 거 아냐?”

그러자 다른 나이츠 파일럿이 오다의 질문에 답했다.

-우리야 실제 로봇을 보았으니 레이드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고, 저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모르잖아요.

아마 파이널 멤버에 뽑히지 않았으면, 우리도 지금 저 사이에 끼어서 미친 듯이 환호하고 있을 거라고요.

으아아아! PTW!!! P!!!T!!W!!!

하면서.-

“그렇겠죠.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간절해지네요.

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 바보들아! 너희가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게 준비되어 있단 말이다아아!!’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건 전부 같은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상혁씨의 허가를 받아야 하죠.

조금 전 리허설 삼아 진행했던 레이드의 결과를 보고서, 그리 만족한 표정을 짓지는 않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그래서 다시 전략을 바꿨지만, 이것도 안 통하면 저희는 관객들에게 실물 로봇을 보여줄 기회를 얻을 수 없을 거예요.-

-젠장,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지?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안전빵으로 거의 데미지도 받지 않고 마수를 토벌했고, 조종 실력도 증명할 만큼 증명했는데, 대체 뭘 더 보여줘야 아르마에 참가할 수 있는거야?

엘레니아. 혹시 넌 알고 있어?”

오다가 보조석에 탄 머신 스피릿에게 질문하자, 그녀의 답변이 돌아왔다.

[비슷한 질문을 받을 거라고 언질을 받았었기 때문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은 지정된 답변뿐입니다.

만약 제가 담당한 마스터가 아르마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면, 그에 걸맞은 ‘진지함’을 보여달라고요.

여러분은 지금 세상 모든 로봇 매니아들이 꿈에서도 바라고 있던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단 한번의 기회라도 주어진다면,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 말이죠.

상혁 씨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 응당 보여야 하는 반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허용된 대답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응당 보여야 하는 반응이라.

여전히 알기 어렵네.

하지만 하나는 알겠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혁씨가 우리에게 믿고 나이츠를 맡길 만큼의 실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걸 어필하는 거라고.

그러니 다들 미리 아까 변경한 전략으로 가겠습니다!

말했지만 이건 한명이 실수하면 다른 사람이 당하는 전략이니 절대 실수하지 마세요!”

-라져! 대장!-

자신과 함께 참여한 9명의 팀원이 동시에 하는 대답을 들으며, 오다는 조종간을 눌러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나이츠의 거체를 서서히 일으켰다.

그리고는 양손에 자신의 나이츠의 상징인 ‘프레일’과 방패를 집어 든 채로, 눈앞에 있는 거대한 마수를 향해 포효했다.

“얏떼야루제!!! (やってやるぜ해주겠어!!!)”

그와 동시에, 100미터 높이의 거대한 드래곤을 상대로, 15미터 크기의 강철 거인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PTW가 준비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스타디움이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경기장의 모습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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