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43화 (444/485)

443. 콜로세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좋은 건 육중한 쇳덩이들끼리 부딪히며 불꽃이 피어오르는 ‘아르마’이지만, 가상의 괴수를 상대로 가상의 나이츠를 타고 싸우는 레이드도 꽤 볼만하네요.

실제 로봇끼리 싸울 때 느낄 수 있는 ‘박력’은 좀 모자랄지 몰라도, 그것을 압도하는 ‘화려함’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으니까요.”

오다 일행이 드래곤 모양의 거대 괴수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기열의 말을 들은 상혁은,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기열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물리법칙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는 ‘가상’의 전투엔 현실의 전투에서 느낄 수 없는 화려함이 있었기 때문에.

거대 마수의 입이 벌어지며 쏘아져 나온 레이저 빔 같은 브레스를 방패 스킬로 막아내는 홀리 프레일의 모습을 보며, 상혁이 말했다.

“사실 저런 공격은 현실에서 구현하기도 힘들뿐더러, 실제로 저 정도 출력이 나오는 빔 공격이라면 막는 순간 방패고 뭐고 맞은 자리에 녹은 쇳덩이만 남아있어야겠죠.

게다가 충돌 지점이 정해져 있는 나이츠들 간의 싸움과는 다르게, 허공에 휘두르는 칼에 반동을 주는 건 구동계에 몇 배로 부담을 주게 되니까요.

게다가 실탄 계열 무기도 죄다 타이밍 맞춰서 공중에서 터트려야 하고.

이럴 땐 현실 세계에서 저런 괴수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좀 많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그러자 기열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만들어드릴까요?”

“예?!”

“지금 보면서 떠오른 건데, 기계로 내부 구조를 만들고 위쪽에 인공 피부를 씌우면 저런 마수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방금 저 마수가 쏜 브레스를 그대로 구현하면 나이츠가 녹아버릴 테니 브레스 같은 건 구현하기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고출력 레이져 정도는 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 딥 다이버로 이펙트를 씌우면, 공격하는 모습 자체는 브레스를 쏜 것처럼 보이지만 데미지는 저희가 지정한 수준의 데미지만 입히는 공격이 가능하겠죠.

그런 식으로 마수를 구현 한다면, 레이드에서도 실제 나이츠를 사용해서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거고요.”

“그럼 저건요?”

상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모니터 안에서는 가상의 마수가 소환 스킬을 시전하여 하수인인 골렘을 땅에서 일으키고 있었다.

그 판타지스러운 모습을 본 기열은, 잠시 고민하다 상혁에게 말했다.

“스테이지 바닥의 일부를 가는 모래로 채운 다음 밑에서 공기를 불어 넣으면 모래가 액체처럼 변하죠.

모래의 양에 따라 필요한 공기압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충분한 양의 모래를 준비한다면 나이츠가 뛰어다니는 충격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 모래 안에 미리 만들어둔 기계 골렘을 넣어두고, 소환 마법이 시전 되면 모래에 공기를 불어 넣어 액체처럼 만든 다음 골렘을 위로 스르륵 올라가게 만드는 겁니다.

그럼 아마 땅속에서 솟아오른 것 같이 보이지 않을까요?”

상혁은 잠시 기열이 말한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기계 골렘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그리고 그 기계 골렘들을 각자의 무기로 물리치는 나이츠들의 모습도.

그것은 매우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상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지은 상혁은 다시 한번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럼 저건요?”

오다 일행의 나이츠들이 재빠르게 소환된 골렘을 처리하자, 마수가 포효하며 울부짖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마법진이 허공에 생성되며 날카로운 형태의 불타는 얼음을 만들어냈다.

마수가 날개를 휘두르자 폭풍같은 강한 바람과 함께 소환된 얼음이 일제히 나이츠들을 향해 날아갔고, 나이츠들은 각자의 기체 특성을 활용해 자신들을 공격하는 얼음을 맞받아쳤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기열은 피식 웃으며 상혁을 향해 말했다.

“저런 건 AR로 처리해야죠.

애당초 나이츠끼리 싸울 때도 마법 스킬은 전부 AR로 처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상혁 씨. 전 로봇 개발자이지 마법사가 아닙니다.”

“글쎄요. 오늘 경기를 보게 될 관객들은 아마도 나이츠를 만든 기열 교수님의 정체가 이세계에서 온 마도 공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나이츠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마도 공학이든 흑마법이든 상관하지 않고 뭐든지 배우고 싶네요.

필요하다면 악마와 계약을 해도 좋고.”

“악마도 교수님보다 로봇 개발을 잘 하지는 못할 겁니다.

교수님이 달성하신 업적은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이었어요.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세상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하니까요.

과거 나사의 과학자들은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죠.

제대로 된 항공기술도 없던 시절의 라이트 형제는 엔진을 단 비행기로 인간을 하늘로 올려보냈고요.

의지가 있으면,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아, 물론 그 의지를 뒷받침하는 ‘돈’이 든든하게 백업된다는 가정 하에서요.”

말을 하며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돈을 상징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기열을 본 상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얼마든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결국은 나이츠를 사용한 리그전도 PTW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될 테니까요.

슬슬 마무리되려는 모양이군요.”

상혁은 크리스티나가 제안한 작전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는 작전을 선택했지만, 그 덕에 별다른 손해 없이 무난하게 마수를 쓰러트린 오다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가상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동료가 타고 있다는 가정하에 전투를 계획한 오다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조금 의외이긴 하네요.

오다 씨의 KOH와 KOHA 플레이 기록을 보면, 동료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매우 공격적인 전략을 주로 쓰는 플레이어였는데 말이죠.”

“그야 그때까지의 오다 씨는 나이츠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 안에 파일럿이 탑승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심지어 그 구스타프 씨 조차도 나이츠에 탑승했을 때는 피해를 입는 걸 주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목숨만이 걸려있는 것이 아닌, 발아래 있는 서프 파일럿의 목숨도 안고 싸워야 하는 것이 나이츠 파일럿의 숙명이니까요.”

“그 말은 저들 역시 어느정도 진지하게 이번 이벤트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겠군요.”

“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십니까? 애당초 전부 의도하신 거면서.”

“뭐 그렇죠.”

상혁이 말했다.

“5차 NE 컨벤션에 관객이 입장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설계가 계획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상혁의 말대로, 상혁은 이번 이벤트의 모든 요소를 의도적으로 조정하고 있었다.

먼저 상혁은 게임에 관심이 많은 유저와 관광에 관심이 많은 유저를 분리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관객에게 두 개의 관광 가이드 AI를 제시했고, 그 방식을 통해 수많은 볼거리를 제쳐두고 KOH의 체험존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게이머를 구분해냈다.

그리고 그렇게 선정된 게이머 중에서도, 끝까지 게임을 붙잡고 하이스코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1만 명의 유저를 추려내어, 특별이 준비한 공간에서 PRD 버전의 체험 플레이를 진행 시켰다.

거기에 엄청난 비용 증가를 감수하면서 따로 주문 제작한 1만 벌의 커스텀 PRS와 PRD, 전용 룸을 통해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였고, 마지막으로 그들 중에 가장 조종 능력이 뛰어난 12명의 플레이어를 선정하여 예비 파일럿 후보로 선정했다.

그들이 걸어온 복도의 디자인 하나, 게임 속과 현실에서 본 격납고의 문 여는 방식, 그들을 안내한 연구원들의 복장과 격납고에서 조우한 머신 스피릿의 모습까지.

12명의 예비 파일럿들이 이벤트 회장의 입구를 통과해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이벤트의 모습은, ‘나야말로 이번 컨벤션의 진 주인공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연출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상황에서 직접 로봇을 조작하는 것을 막아두었으니, 지금쯤 저들은 갑갑해서 미칠 지경일 겁니다.

아마 지금의 저들이 보기엔, 제가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려는 것을 막는 마왕처럼 보이고 있겠죠.”

“일부러 갑갑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기열의 말을 들은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들에게 실물 크기의 로봇을 보여주었어요.

그리고 탑승할 기회는 주었지만 조종할 권한은 주지 않았죠.

지금쯤 예비 파일럿들의 가슴속에는 현대 전차도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는 무지막지한 거대 병기에 탑승했다는 두려움보다는, 그 로봇을 조종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그 욕망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준이 되었을 때, 저들은 저희가 부탁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저희에게 나이츠를 타고 아르마에 참가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게 될 겁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마음이 아닌, ‘실제로 조종해도 해볼 만할 것 같다’라는 마음으로요.”

“그게 생각대로 그렇게 쉽게 흘러갈까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같은 겁니다.

처음엔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 모니터 앞에서 플레이하지만, 점점 몰입감이 강해지면서 컨트롤러를 사고 모니터의 크기나 개수를 늘려가게 되죠.

그리고 몰입감이 절정에 달하면, 이런 만화같은 망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 중에 갑자기 조종사에게 사고가 생겨서, 스튜어디스가 객석으로 다가와 다급하게 외치는 거죠.

‘여기 혹시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는 분은 안 계신가요!?’

그때 ‘제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나서서 실제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건,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 미친 유저라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게 되는 즐거운 망상입니다.

저희는 저들이 오늘 하루 안에, 그것도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초 몰입 상태가 되게 만들어야하죠.

오늘 준비된 모든 이벤트 과정은, 바로 그것을 위한 겁니다.

그리고 그 준비의 마지막 스텝이, 바로 잠시 후 벌어질 스타디움 오프닝의 개막이고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키보드 옆에 있는 마이크를 향해 고개 숙였다.

그리고는 ‘안내’ 버튼을 눌러 스피커 망에 접속하고는, 현재 테마파크에 입장해 있는 30만 명의 관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후부터 5차 NE 컨벤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쇼케이스가 시작됩니다.

해당 쇼케이스를 관람하실 분들께서는 딥 다이버를 착용한 상태로 가이드 AI의 안내를 따라 지정된 장소로 입장해주시기 바랍니다.”

***

KOHA를 플레이할 정도의 랭킹 달성엔 성공했지만, 12명의 최종 엔트리에 들어가지는 못한 게임 전문 기자 리차드는 게임 도중에 들려오는 안내 메시지를 듣고 깜짝 놀라 동작을 멈췄다.

그것도 눈앞에 있는 나이츠가 거대한 티타늄 블레이드로 자신을 두동강 내려는 그 타이밍에.

당황한 리차드는 방어 동작조차 하지 못한 채 리타이어를 감수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의 몸에 돌아온 것은 제대로 방어가 성공했을 때 느껴지는 가벼운 반동이었다.

[휴, 방금 전 건 진짜 위험했는데.

치명적 피해를 막기 위해 기체 조작에 강제로 개입했어.

마스터. 괜찮아?

갑자기 왜 멈춘 거야?]

아무래도 자신과 함께 나이츠에 타고 있는 머신 스피릿이 리차드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방어 행동에 나선 모양이었다.

그 덕에 리타이어 될 위기를 피한 리차드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자신의 머신 스피릿에게 말했다.

“덕분에 살았네. 하지만 전투는 종료해야겠어.

지금 당장 가야 할 곳이 생겼거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마스터와 함께 싸우는 건 즐거운 경험이지만, 내 즐거움보다는 마스터의 용건이 더 중요하니까.

그래도 하나만 약속해줬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뭐?”

[그 ‘당장 가야 할 일’이란 게 끝나면, 다시 돌아와서 나와 함께 싸워줬으면 좋겠어.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이라도.]

AI가 하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풀풀 묻어나는 머신 스피릿의 대사를 들으며, 리차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리차드는 KOHA와의 접속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PRS를 벗어 슈트 라커에 집어넣고 파일럿 룸이 있던 곳을 나섰다.

[꽤 오래 플레이하신 것 같네요? KOHA의 플레이는 즐거우셨나요?]

어느새 리차드의 앞에 나타난 페로가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자, 리차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페로의 질문에 답했다.

“쇼케이스고 뭐고 그냥 게임 속 세계를 나가기 싫을 만큼 재미있었지.

역시 PTW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현존하는 게임 회사 중에 VR 경험을 완벽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인 만큼,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보여준 기분이야.

처음엔 익숙해지기 어려워 보이던 나이츠의 직접 조종 방식도, 의외로 배우는 데 그리 어려운 느낌은 아니었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치고는 엄청 두들겨 맞으신 것 같은데요?]

“그렇게 진짜같이 만들어진 로봇의 조작 계를 처음 조작한다면 누구라도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지.

컨트롤 보다는 전술 전략적 판단이 더 중요한 KOH면 몰라도, KOHA의 로봇 컨트롤은 초보자가 쉽게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주변 환경 파악은커녕, 내가 조종하고 있는 나이츠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였으니까.

뭐, 그래도.

조종하는 내내 ‘이거 익숙해지면 진짜 미친 듯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은 계속 들고 있었어.

문제는 하루 만에 익숙해지기가 어려운 시스템이라는 거겠지.

게임이 정식 발매되고 나서 컨트롤에 익숙해진 유저가 등장하면, 진짜 화려하고 멋진 전투가 가능해질 거야.

아무래도 이번 신작은 프로리그 결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 같은데, KOHA의 프로 리그라면 돈을 내고서라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개발자가 들으면 엄청 기뻐할 만한 이야기네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따로 게임의 개발자에게 리차드 씨의 게임 감상을 전달해도 될까요?]

“그런 기능도 있었어?”

[제 임무 중에는 테마파크를 관람하는 입장객들의 피드백 수집도 있으니까요.

화장실이 부족하다던가, 음식이 덜 익었다든가 하는 모든 불평 사항은 방문객의 허락을 받아 운영팀에 전달돼요!

굳이 귀찮게 고객센터를 찾아 항의를 남기지 않아도 되도록!]

“요리가 마음에 들면 쉐프를 불러 칭찬을 하는 법이지.

그럼 부탁할게.

개발자에게 전해줘.

내가 지금까지 태어나서 해 본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로봇 게임을 만들어주어서 감사드린다고.

그런데, 쇼케이스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안내 좀 해 주겠어?”

리차드의 말을 들은 페로는 웃으며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화살표를 소환해 리차드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리차드는 페로가 띄워놓은 화살표를 따라가기를 멈춘 채 그 자리에 말뚝처럼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뭐야 이건, 21세기 콜로세움인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거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건축물.

고개를 한참 옆으로 꺾어야 건물의 끝을 겨우 볼 수 있을듯한 그 건물은, 한참을 바라보아야 그것이 어떠한 ‘경기’를 위해 건설된 일종의 스타디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형태를 가진 특이한 건축물이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디움이라는 북한의 능라도 스타디움(Rungnado Stadium)보다 훨씬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크기는, 리차드가 종전에 가지고 있던 스타디움이란 건물에 대한 상식을 가볍게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일단 절대 일반 스포츠를 위한 경기장은 아니겠군.”

리차드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마 저 정도 크기의 경기장에서 가장 먼 객석에 자리 잡으면, 경기장 안의 축구 선수는 그냥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렇기에 인류를 위한 스포츠 경기가 진행되는 경기장은, 필연적으로 각 스포츠의 필드 크기에 따른 ‘적정 크기’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코트가 작은 테니스 코트의 객석은 그만큼 더 작을 수밖에 없고, 반대로 넓은 필드를 사용하는 축구 경기장의 객석은 그만큼 더 큰 규모를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리차드의 눈앞에 있는 건물은 그런 ‘적정 크기’ 같은 상식은 깡그리 무시한 채로, 단순히 더 많은 입장객을 받기 위해 무식하게 크기를 늘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많은 관객들에게 동시에 쇼케이스를 진행하려고 이렇게 지은거라면 이건 확실히 PTW의 실책이라 할 수 있겠네.”

그렇게 말한 리차드는 스타디움의 사진을 찍기 위해 목에 든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치며 이 비상식적인 건물을 지은 PTW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아오 시발!! 건물이 너무 크고 넓어서 카메라에 다 안 들어오잖아!!!”

그렇게 한참을 뒤로 물러선 리차드는 겨우 자신의 카메라 안에 스타디움의 전체 모습을 찍어 올릴 수 있었다.

스타디움의 입구에 개미떼처럼 몰려있는, 사람들의 작은 모습과 함께.

리차드는 그 사진을 편집장한테 전송했다.

-5차 NE 컨벤션의 메인 쇼케이스가 벌어질 행사장 전경 사진입니다.-

그러자 곧바로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며 편집장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어디 벽에 걸려있는 조감도 사진인가? 축적이 엉망이네.

사람을 좀 더 크게 그렸어야 할 텐데.-

-제가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진짜 사진만큼 크다고요.-

-미친, 장난해?

인간이 하는 그 어떤 스포츠도 저만한 경기장에서 진행하는 건 불가능해.

저 정도 크기면 맨 위쪽 객석에 앉는 순간 선수들이 점으로 보일거라고.

전부다 망원경이라도 장착시킬 생각인가?-

순간 ‘망원경’이라는 단어를 들은 리차드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자신이 이곳에 오기 직전에 상혁이 방송한 안내 방송의 내용이.

그 방송 속에서, 상혁은 분명 모든 관객들에게 ‘딥 다이버’를 착용하라고 권유하고 있었다.

-혹시 딥 다이버랑 관련있는 게 아닐까요?-

-딥 다이버랑?-

-딥 다이버를 쓰면 망원경 대신 경기장의 근접 시야를 관객에게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게 가능하니까요.-

-젠장, 말이 되긴 하는데 그건 멍청한 방식이잖아.

직접 볼 게 아니면 누가 굳이 경기장까지 가냐고.

그렇게 볼 거면 그냥 방에서 딥 다이버로 보고 말지.-

-그것도 그렇네요.

역시 들어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PTW가 이 거대한 스타디움을 건설한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한 후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젠장, 그러지 말고 실시간 시야 모드를 공유해.

나도 딥 다이버가 있으니 자네가 보는 시야를 공유해서 보도록 하겠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워크패스트 계정으로 시야 공유 신청을 넣도록 하죠.-

잠시 후, 시야 구석에 <시야 공유 모드 사용 중>이란 작은 메시지가 출력되며, 리차드의 귀에 낯익은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부럽군. 차라리 내가 간다고 할 걸 그랬어.

스트리머들 방송을 보니 테마파크 전체가 볼거리로 가득하던데.-

“그럼 승진 거부하고 좀 더 현장 기자로 계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럼 바꿔. PTW관련 취재할 때만 자네가 편집장하고, 다음부터 현장 취재는 내가 갈 테니까.-

“아뇨. 전 지금 이날까지 오늘처럼 제가 편집장이 아니라는 데 하늘에 감사한 적이 없습니다.

편의주의적으로 꿀 빨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즐거운 기분으로 쇼케이스나 감상하시죠.

우주에서도 보일 만한 저 미친 크기의 건물을 지은 PTW가, 20만 명의 관객들을 위해서 준비한 ‘쇼’가, 곧 시작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리차드는 경기장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 입구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리차드는 그 특이한 구조를 보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외관의 디자인과 크기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건물 안에서 보는 스타디움의 내부 구조는 더욱 말이 안 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대체 무슨 경기를 위해 준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형태를 한 거대한 필드의 주변은, 벙커 버스터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높이는 무려 30미터.

그 압도적인 크기의 경기장 내벽을 보며, 리차드는 어째서 이 거대한 건물의 입장 인원이 20만 명밖에 되지 않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객석 위치가 30미터 위에서 시작하니 객석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지.

일반적인 경기장의 건설 방식으로 하면 못해도 5, 60만 명은 입장 가능한 건물 크기였으니까.”

리차드는 자신과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편집장이 보기 쉽도록, 경기장 이곳저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딥 다이버의 카메라 시야를 공유해주었다.

그러자 리차드가 공유한 시야를 본 편집장이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로 리차드에게 말했다.

-미친, 내 살다살다 이런 경기장은 처음 보는데.

코트 내벽 높이가 30m인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내부 코트 구조도 말이 안 돼.

이런 구조의 경기장에서는 절대 정상적인 스포츠 관람이 불가능하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여기서 벌어지는 게 ‘일반적’인 스포츠라면 그말이 맞겠죠.”

-그건 무슨 의미야?-

“저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코트를, 제가 이미 본 적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바로 조금 전에요.”

-이런 황당한 구조의 경기장을 본 적이 있다고?

자네 약이라도 잘못 먹었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지구상엔 이렇게 생긴 스포츠 경기장이 존재하지 않아.-

“저도 동의 합니다.

지금 PTW가 건설한 이 경기장을 제외하면, 아마도 전 세계에 이런 구조를 가진 경기장은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겠죠.”

-자네 지금 나랑 말장난하나? 그럼 대체 어디서 봤다는 거야?!-

“제 말은 ‘지구상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습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제가 플레이하던 게임 속에서, 전 이렇게 생긴 스타디움의 코트를 배경으로 15미터 크기의 강철 로봇들과 싸우고 있었으니까요.”

-그 말은···.-

“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리차드가 말했다.

“여긴 분명히 KOHA에 등장하는 나이츠들의 경기장.

‘아레나’가 분명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리차드의 시선은, 경기장의 외벽에 드리워져 있는 거대한 천에 그려진 KOH의 ‘클랜(Clan)’을 상징하는 엠블렘에 고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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