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42화 (443/485)

442. 토벌전 레이드

상혁의 인상적인 로봇 공개 이후, 오다 일행은 회의실 안으로 찾아온 류세이에게 각각 한 뭉치씩의 서류를 넘겨받았다.

그것은 나이츠에 탑승하는데 필요한 각종 동의에 관한 계약 문서였기에, 오다를 포함한 나이츠의 예비 파일럿들은 당장이라도 나이츠에 달려가 그 강철의 거체를 마구 만져보고 싶은 욕망을 꾹 참은 채 서류에 있는 수많은 서명란을 자신의 서명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침내 지루한 서류 동의 절차가 끝나고, 마지막 파일럿이 자신의 동의서를 류세이에게 넘기자 스피커를 통해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세이 씨. 그게 마지막입니까?-

“예. 이걸로 마지막입니다.”

-그럼 일단 사인이 안 된 곳이 없는지 점검해주세요.-

“분부 받들겠습니다.”

류세이는 자신이 대답하는 순간 예비 파일럿들의 눈빛에 실망감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겨우 서류 작업을 마치고 로봇에 탈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저 많은 서류 뭉치를 ‘검토’해야 하는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니까.

‘그 마음을 생각하면 모두의 원망 섞인 눈빛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한 류세이는 자신이 검토를 빠르게 마치기를 눈으로 압박하고 있는 파일럿들을 보며 이야기했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저희는 PTW니까요.

촌스럽게 이 많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뒤져가면서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류세이가 벽의 한쪽 구석을 가볍게 터치하자, 푸른 빛과 함께 류세이가 만진 벽이 네모난 형태로 갈라지며 열렸다.

그러자 류세이는 잘 정리해둔 서류 뭉치를 그 안에 집어넣고 구멍의 위쪽을 다시 터치했다.

[나이츠 탑승 동의서 양식 확인.

서류 무결성 자동 검사 개시.

나이츠 탑승에 따른 위험 고지 동의···. 확인.

공개 이벤트에 대한 초상권 제공 관련 동의···. 확인.

공식 이벤트 참여에 따른 계약 연장 관련 동의···. 확인.

개인정보 수집․제공 동의···. 확인

전체 탑승 동의서의 서류 무결성이 확인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예비 파일럿들의 나이츠 탑승 절차를 진행하셔도 좋습니다.]

그 많은 서류가 1분 남짓한 시간 만에 검토 완료되는 장면은 매우 SF틱한 멋진 장면이었지만, 파일럿들은 누구 하나 그 장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예비 파일럿들의 나이츠 탑승 절차를 진행하셔도 좋습니다.’라는 음성 메시지가,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자마자, 그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류세이를 향해 소리쳤다.

“자! 그럼 이제 나이츠를 보러 가도 됩니까!?”

“안타깝게도 한 가지 절차가 더 남았습니다.”

그렇게 말한 류세이는 한쪽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조금 전 양쪽으로 갈라졌던 벽이 천천히 닫히며 파일럿들이 있는 방과 나이츠가 있는 방을 갈라놓았다.

그리고 닫힌 벽에 달린 모니터에서, 다시 한번 상혁의 모습이 등장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모두의 조급한 마음은 저희도 이해하지만 필요한 절차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시점으로 조금 전 보여드렸던 나이츠 들은 여러분과 1:1로 만나기 위해 랑데부 포인트로 이동합니다.

그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으니, 잠시 질의응답 타임을 갖도록 하죠.

혹시 질문하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질문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12명의 파일럿 모두가 동시에 손을 들었고, 상혁은 웃으며 그중 한 명을 지목해 질문을 받았다.

-레이디 퍼스트라는 말도 있으니 이 방 안에 단 두 사람밖에 없는 여성 조종사분께 먼저 질문 기회를 드리죠.

먼저 간단하게 출신 국가와 이름 같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전 대한민국 소속 여성 스트리머 차현희라고 합니다.

트위지와 너튜브에선 ‘아르망’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우선 부족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저를 파일럿으로 선정해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상혁이 말했다.

-나이츠 파일럿의 선정은 순수하게 나이츠 조종사로서의 기량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시다는 것은, 오늘 KOH를 플레이 한 22만 7642명의 플레이어 가운데 12등 안에 드는 실력자라는 의미이니,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느끼셔도 좋을 겁니다.-

“하지만 아레나에서 플레이했을 때의 감각으로는 제 조종 실력이 그렇게 능숙한 느낌은 아니었는데요?”

-나이츠 파일럿의 ‘실력’은 단순히 조종 능력만을 비교하는 개념이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전반적인 전투 상황을 인지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는 전술 능력이나 각 기체와 동료, 머신 스피릿 사이에 쌓은 유대감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아르망 씨의 파일럿 선정에는 그 부분이 높게 평가된 것이겠죠.-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될까요?”

-그렇게 하시죠.-

“여기 들어오기 전 진행하고 있던 스트리밍 방송 중단에 대한 동의를 받았는데, 언제 다시 방송을 재개할 수 있나요?”

-그건 보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행된 조치이기 때문에, 스타디움에서 나이츠를 사용한 배틀이 공개된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방송을 재개하셔도 됩니다.-

“그게 경기 도중이라 하더라도요?”

-예. 사실 여러분 외에 1분의 스트리머 출신 후보가 더 있었는데, 그분들은 방송 중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벤트 참여를 거절하셨습니다.

아마도 경기가 시작되고 아르망 씨의 방송이 다시 개시되고 나면, 그분은 자신이 놓친 기회가 어떤 기회였는지 알게 되겠죠.-

상혁이 다음으로 또 한 명의 여성 파일럿을 지목하자, 살짝 붉은 빛이 감도는 웨이브 머리를 한 여성이 입을 열었다.

“LA에서 온 크리스티나 로빈슨입니다.

다들 궁금해하는 부분일 것 같아서 제가 먼저 물어보려 합니다.

혹시 오늘 경기 중에 나이츠끼리 팀을 꾸려 대결하는 ‘아르마’는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예정되어 있습니다.

다만 실제 개전 시점까지 스타디움의 관객들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계획한 이벤트의 대략적인 흐름을 보여드리죠.-

그러자 상혁이 있던 화면이 다시 전환되며 마수와 싸우는 나이츠들의 영상이 출력되었다.

그러자 그 영상을 배경으로, 상혁은 오늘 준비된 이벤트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지금 이 테마파크에 입장한 관객들과, 스트리밍 방송 등을 통해 이 이벤트를 지켜보고 있는 PTW 팬들에게 공개된 정보는 KOH라는 로봇이 등장하는 콘솔 게임이 PTW의 새 신작이라는 사실과, PRD 전용의 KOHA라는 로봇 조종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는 정보입니다.

그리고 KOHA를 본 게이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죠.

‘PTW는 분명 저것을 일종의 리그 형태 스포츠로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 정도의 정보가 공개된 상태에서, 저희는 약 한 시간 후를 기점으로 현재 회장 안에 있는 관객 중 20만 명 정도를 스타디움에 입장시킬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분이 조종하는 나이츠들이 펼치는 ‘레이드’ 경기가 펼쳐지게 되죠.-

“그럼 그 경기는 조금 전 보았던 실물 크기의 ‘진짜’ 나이츠로 펼쳐지는 경기인가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보유한 로봇 기술력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대 괴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전자 조작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 마수에 가해지는 공격은 허공을 가격하는 행위가 되는데, 애당초 딥 다이버로 구현되는 AR 효과에 의존하는 일부 마도 스킬을 제외하고 실탄계나 물리계 능력은 가상 오브젝트를 상대로 사용하는데 제한이 많이 걸립니다.

그렇기에 듀얼, 아르마, 레이드 중 레이드 같은 경우는 딥 다이버에 의한 AR 전투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은 조금 전 보았던 나이츠에 탑승해 자신이 맡은 가상 기체를 원격으로 조작하게 될 거고요.-

“원격 조작이라면 PRD로 진행해도 되지 않습니까?”

-아르마에 앞서서 진행되는 레이드는 단순히 쇼케이스를 위한 것이 아닌, 여러분이 실제 버튼을 만지고 조종간을 조작하는 감각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한 트레이닝의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정지된 로봇 안에서, 실체 콕핏에 탑승해 가상의 로봇을 조종하며 조작감을 익힐 수 있도록.-

“그 말은 레이드가 끝나면 아르마도 진행하실 계획이 있으시다는 거군요.”

-물론 ‘계획’은 있습니다.

하지만 확정은 아니죠.

저희는 되도록 여러분들이 실제 나이츠끼리의 대결인 아르마를 펼쳐주시길 바라고 있지만, 그렇다고 여러분의 신체에 위험이 가해질 수도 있는 실제 로봇끼리의 대결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늘 아르마가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여러분이 실제 나이츠에 탑승한 상태로 레이드를 펼치며 아르마를 진행할 수 있는 팀워크와 조종 실력을 증명하는 것.

둘째, 전차도 반으로 쪼개 버릴 수 있는 출력을 가진 머신을 타고 기꺼이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여러분들께 저희가 개발한 머신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 두 가지 조건이 만족하였다고 판단되면, 오늘 여러분은 정식으로 나이츠의 파일럿이 되어 실제 로봇을 타고 팀 파이트를 벌일 수 있을 겁니다.-

“그 판단은 누가 합니까?”

-물론 제가 합니다.-

상혁이 미소지으며 말하자, 파일럿들 사이에 짧은 침묵이 맴돌았다.

대체 어떤 능력을 증명해야만, 나이츠를 타고 싸울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그런 그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손뼉을 쳐 파일럿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은 뒤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저희가 보려는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진심으로 이 이벤트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니까요.

슬슬 나이츠가 준비되었을 시간이군요.

각 파일럿분들께서는 연구원의 안내를 따라 랑데부 포인트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오다는 자신을 찾아온 류세이를 따라 이동했다.

대체 지하에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공간을 만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슴에 품은 채.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점점 어두워지는 복도의 한 가운데였다.

그곳에서 류세이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오는 오다를 향해 말했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아직 더 가야할 것 같은데요?”

오다의 말대로, 복도는 앞으로 한참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류세이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오다를 향해 미소지었다.

“저희의 도움은 여기까지.

여기서부터는 스스로의 의지로 걸어가셔야 합니다.

이 복도의 저편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이것도 ‘정해진 연출’의 하나임을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에, 오다는 고개 숙여 자신을 안내해준 류세이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자신을 배웅하는 류세이를 향해 물었다.

“혹시 저에게 해줄 만한 조언 같은 게 있으십니까?”

“조언이라.

제 생각엔 딱 하나만 확실히 인지하고 이벤트에 임하면 되실 것 같습니다.”

“그게 뭔가요?”

“저희가 진심을 걸고 로봇을 만든 만큼, 오다 씨도 저희가 만든 로봇을 진지하게 대해달라는 거죠.”

오다는 혼잣말로 작게 ‘진지하게’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리고는 류세이를 향해 다시한번 감사하고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갈수록 어두워지는, 정체불명의 기나긴 복도를.

***

“여기가 랑데부 포인트···.

어째 눈에 익은 느낌인데?”

잠시 후, 오다가 발견한 것은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는 거대한 문이었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오다는 그것이 KOH에 등장하는 격납고 문의 디자인과 같은 문임을 알아차렸다.

“지하 공간 전체를 게임 속 부유 요새와 같은 컨셉 디자인으로 맞춘 건가?

PTW라는 회사는 대체 어디까지 진심인 거야?”

오다는 류세이가 중간에 안내를 그만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을 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문 건너편에 있는 나이츠를 만나러 갈 수 있는지, 오다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단지 게임에서 주인공이 했던 것과 같은 동작을 똑같이 수행하면 될 뿐.

딱히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KOH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이 부유요새의 격납고를 열고 자신의 전용기를 만나는 장면은, KOH를 플레이 한 게이머라면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오다가 문 옆의 기둥에 있는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공간 자체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음성이 오다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격납고 입장을 위한 신원 확인 프로세스 개시.

파일럿 정보와 전용기 DB 대조 절차 진행···. 완료.

지문 정보에 따른 파일럿 신원 확인 절차 진행···. 완료.

신체 스캔···. 완료.

파일럿 슈트 착용 여부 확인···. 완료.

신원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전 방문 여부 확인 완료.

최초 방문 절차를 진행하겠습니다.

나이츠 파일럿이자 용감한 인류의 수호자, 오다 츠요시 님.

나이츠의 요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시간부로 게이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겠습니다.]

순간 문 안쪽에서 ‘텅-텅’ 하는 금속음과 함께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문 위쪽에서 들리기 시작해 점차 문 아래쪽으로 옮겨가는 소리를 들으며, 오다는 이 두꺼운 문을 고정한 고정장치가 얼마나 단단하고 두꺼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잠금 장치를 사용해야 할 만큼, 문 너머에 있는 강철의 거인이 가진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도.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봉인이 해제되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강철문이 기계의 힘으로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네.’

서서히 열리는 문틈 사이를 바라보면서, 오다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나이츠가 보이길 기대했지만, 방 안의 조명은 그 어떤 형태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리고 마침내, 갈라진 문의 넓이가 사람이 통과할 정도의 넓이가 되자 오다는 문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이후에 자신이 해야 하는 행동들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면서.

‘이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겠지.’

오다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귀에 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묻겠다. 너에게 투쟁이란 무엇인가?]

“남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묻겠다. 너는 어째서 힘을 구하는 거?]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약자들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묻겠다. 너에게 구원이란 무엇인가?]

“세계의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관철하며,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감정이 섞여 있지 않은 듯한 무덤덤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엘레니아의 질문에, 오다는 게임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딥 다이버를 통해 눈앞에 떠오르는 대사를 자신의 목소리로 읽었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 그 장면을 볼때와, 자신이 직접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의 문답은 단순한 연출에 불과했지만, 지금 오다가 하고 있는 대답은 실제로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나이츠의 파일럿이 되기 위한 맹세에 가까웠기 때문에.

오다는 진심을 담아 눈앞의 대사를 읊었고, 엘레니아의 목소리는 그런 오다의 대답에 응답하듯 마지막 질문를 내어놓았다.

[그대, 자격이 있는 자여.

강한 힘은 사용하는 자에 따라 희망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는 법.

그대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를 관철하고자 합니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힘을 바라는 간절함을 담아 이름을 부르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그대의 반신이 되어 싸우게 될, 진정한 동반자의 이름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쏘아보면서, 오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나이츠를 불렀다.

“홀리 프레일.”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안광이 빛나며 어두웠던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로봇의 전신에 새겨진 푸른 빛 조명이 빛을 발하며, 오다의 앞에 있는 거대한 강철 거인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진짜 홀리 프레일이다···.’

화면 속의 존재가 아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거대 로봇의 존재.

그것은 오다의 눈에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하기에 충분한 감동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지.’

오다는 완전히 밝아진 빛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하얀색 거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있는 나이츠의 다리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인류를 수호하는 강철의 기사여. 지금 바로 네 주인을 맞이하라.”

그 순간 오다의 손이 닿은 부분에서 환한 빛이 퍼져나가며 로봇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강철의 로봇은 자신의 몸을 열어 자신의 주인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콕핏의 내부를 바라본 오다는 로봇의 조종석 내부가 KOHA에서 보았던 조종석과 똑같은 디자인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오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확실히 PTW는 게임 속의 나이츠를 현실에 똑같이 구현하는 데 성공했어.

하지만 나이츠에 함께 타서 파일럿을 도와야 할 머신 스피릿은 오로지 주인공만이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가상의 존재 아니었나?

대체 PTW에서는 머신 스피릿을 어떻게 구현할 생각이지?’

그렇게 생각한 오다는 재빨리 한걸음 물러나 나이츠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흉부에 위치한 콕핏이 아닌, 그 아래쪽에 있는 ‘머신 스피릿’을 위해 만들어진 서브 콕핏의 해치를.

그곳은 메인 콕핏의 해치와 마찬가지로 오다의 호출에 응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머신 스피릿이 탑승하는 자리의 콕핏이 완전히 열렸을 때, 오다는 당황하며 안에 있는 ‘존재’를 향해 소리쳤다.

“엘레니아?”

딱 보기에도 키가 큰 사람은 탑승하기 어려워 보이는 작은 조종석.

그 안에서 오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원래라면 게임 안에서만 존재했어야 할 ‘머신 스피릿’.

엘레니아였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스터.”

자신을 향해 말을 걸어오는 조그만 미소녀를 보며, 오다는 엄청나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고른 게임 속의 머신 스피릿과 똑같은, 하얀 포니테일을 한 그녀가 자신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 오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혹시 ‘AR로 구현된 허상인가?!’라는 생각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는 알겠지만 저는 지금 마스터의 눈앞에 있는 현실의 존재입니다.

그러니 딥 다이버를 벗으셔도 제 모습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눈치 채는게 느리시네요.

절 다시 천천히 보아주시죠.”

오다는 그녀가 말한 대로 그녀의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자 게임 속 엘레니아와는 다른, 눈앞의 존재만이 가진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처음 봤을 땐 진짜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가발과 메이크업이구나.

그나저나 진짜 이쁘네.

게임 속에서 튀어나왔다고 말해도 믿을 만큼.’

잠시 고민하던 오다는 자신의 앞에 있는 작은 소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혹시 PTW 직원이신가요?”

“그건 4차원의 벽을 뚫는 질문이라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이 즐거운 경험을 눈앞에 두고, 굳이 현실 세계의 질문을 하고 싶으시다면···.”

“아니, 질문은 취소하죠.

여기서 그 질문의 답을 요구하는 것도 멋없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이번 이벤트에서, 당신이 엘레니아의 역할을 맡아 보조석에 탑승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갑작스럽게 파일럿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숙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조종 보조를 수행하고, 현실 속의 나이츠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초 지식을 안내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럼 임무가 끝날 때까지,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게임 속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편하게 엘레니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설사 제가 진짜 당신의 엘레니아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그녀의 역할을 대신 수행할 테니까요.”

오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잘 부탁합니다. 엘레니아 씨.”

“마스터. 저는 마스터가 기초 교육을 받는 동안 제가 전달받은 마스터의 플레이 데이터를 완벽하게 숙지했습니다.

그리고 KOH 안에서, 마스터는 엘레니아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계셨죠.

저도 같은 느낌으로 대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반말로 불러달라는 겁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다는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을 느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엘레니아···.”

“예. 마스터. 저는 여기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는 편하게 부를 수 있었는데, 현실 속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엄청나게 부끄럽네.

게다가 그 상대가 엄청난 미인이기도 하고.”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머신 스피릿은 인간과 연애 감정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나저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질문해도 될까?”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의 질문이라면 최선을 다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KOH는 자신이 탑승할 머신의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게임이잖아?

무기부터 몸통에 해당하는 ‘코어’까지.

플레이어가 원하는 타입의 장비로 교체가 가능하기도 하고, 게다가 도장이나 장식도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고.”

“맞습니다.”

“그럼 어째서 지금 홀리 프레일이 내 눈앞에 있는 거야?

그건 내가 오늘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만든 머신이잖아?

내가 이런 형태의 나이츠를 만들 것인지, 그리고 내가 파일럿으로 선정될 것인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게임 속에서 내가 디자인한 나이츠를 이렇게 빨리 준비할 수 있었지?”

“애당초 나이츠의 모든 부속은 일부 코어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전용 부속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통합 결속 모듈에 의해 제어됩니다.

마치 레고를 조립하는 것처럼, 미리 준비해둔 기성 부품을 빠르게 재조립하여 수많은 형태의 나이츠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있죠.

저희는 그 과정을 진행하는 설비를 ‘팩토리’라고 부릅니다.

그 팩토리를 통해서, 저희는 마스터가 파일럿으로 선정되는 순간 마스터가 진행하던 게임 데이터를 바탕으로 홀리 프레일을 조립해냈죠.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홀리 프레일을 게임 속 나이츠와 똑같이 급속 도색했습니다.”

“그럼 다른 파일럿들이 사용하는 머신도 그들이 게임 속에서 사용한 나이츠와 똑같은 머신이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그게 가능해?”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니까요.

한 덩어리로 되어 있는 코어의 경우에는 즉석에서 제작하는 데 제한이 걸려있지만, 그 코어에 유저의 취향에 맞춘 다양한 파츠를 부착하는 것은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파손된 부품의 경우도 팩토리를 통해 바로 교체할 수 있죠.

KOHA에서 보셨던 아르마에서의 수리 포인트는, 바로 팩토리에서 부속을 교체하는 데 드는 소요 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나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만 더 묻고 싶은데, 좀 곤란한 질문일 수도 있어서 고민되네.”

“편하게 질문해주십시오.”

“KOH 안에서 내가 확인한 머신 스피릿의 종류는 수십 개가 넘어. 그 각각이 전부 개성 있는 성격을 하고 있고.

그리고 지금의 너는 게임 속에서 내가 만났던 엘레니아를 연기하고 있지.

그럼 만약 내가 다른 머신 스피릿과 파트너를 맺었다면,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머신 스피릿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만, 이번 이벤트에 참여한 파일럿들은 각각의 머신 스피릿이 말하는 투나 사고방식에 대해 심도 깊은 연기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만해도 27종류의 성격을 연기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고요.

그 27가지 성격을 가진 머신 스피릿 중 한 명을 선택하셨다면, 그때는 여전히 제가 파트너로 등장했을 겁니다.

물론 말투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겠지만.”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보여줄 수 있어?”

“그런 식으로 4차원의 벽을 넘어갈 수 있는 요청에는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엘레니아가 되어 마스터 앞에 서 있고, 제가 성격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마스터가 가진 환상을 깨부수는 일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요청을 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요청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돼지 자식아.”

“어?!”

“안 그래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아까부터 계속 허벅지만 쳐다보지 말라고 말하는 거야!

혹시 너무 살이 찐 나머지 귓구멍도 막힌 거야?”

“어?! 나 그 성격 알아! 라우라가 타고 있던 나이츠의 머신 스피릿이 바로 그런 성격이었어!”

“욕먹고 기뻐하는 걸 보니 마조가 따로 없구나.

이런 한심한 마스터를 돌봐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겠지.

괜찮아.

얼마든지 응석부리렴.

내게 기어오르지 않는 이상은 아무리 비참하고 추레한 모습을 보여도 사랑으로 받아줄 테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마음에 드셨습니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진짜 성격이 180도 변하는구나.”

“그럼 말씀드린 대로 할 일이 많으니 바로 설명에 들어가죠.

자세한 이야기는 나이츠에 탑승한 후에 해 드리겠습니다.

1분 1초가 지나갈 때마다 오늘 나이츠에 탑승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그러자 오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소리치며 나이츠에 달려들었다.

“맞다! 나이츠에 타야지!

젠장! 아무리 이쁘다고 해도 내가 미소녀에게 홀려서 나이츠의 존재를 잊다니! 이건 말도 안 돼!”

KOHA에서 몇 번이고 나이츠에 탑승했던 오다는 어렵지 않게 파일럿 석에 올라타기 위한 손잡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츠의 흉부에 달려있는 손잡이 하나의 위치까지, 게임 속의 그것과 완벽히 똑같았기 때문에.

그러나 PRD의 성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실제 로봇의 콧핏에 탑승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감동은 PRD로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오다는 엉덩이를 통해 느껴지는 시트의 감각까지 하나하나 감미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조종간을 천천히 감아쥐며 입을 열었다.

“메인 해치 및 서브 해치 폐쇄.

나이츠 홀리 프레일 구동 개시.”

[메인 해치 및 서브 해치를 폐쇄 개시.

동력 공급 상태 확인.

1st 플라이 휠 충전 잔량 100%.

2nd 플라이 휠 충전 잔량 100%

레프트 암 파츠 기능 확인 완료.

라이트 암 파츠 기능 확인 완료.

레프트 레그 파츠 기능 확인 완료.

라이트 레그 파츠 기능 확인 완료.

운영 체제 최신화 여부 확인 완료.

머신 스피릿의 동작 보조 기능 확인 완료.

현재 탑승 중인 머신 스피릿의 통신 요청이 대기 중입니다.

바로 연결하시겠습니까?]

“연결해.”

[통신이 연결됩니다.]

[마스터. 엘레니아입니다.

현재 홀리 프레일은 레이드 참여를 위한 가상 운영 모드로 동작 중입니다.

준비가 되시면 가상 훈련을 위한 전장으로 모니터 동기화를 실시하겠습니다.]

그러자 오다가 한쪽 구석에 떠 있는 엘레니아의 초상화를 향해 물었다.

“가상 운영 모드는 뭐야?”

[나이츠의 콕핏을 PRD처럼 사용해서 경기장 안의 AR 로봇들을 움직이는 겁니다.

가상 운영 모드가 동작 중일 때는 조종석의 명령 신호가 나이츠 본체가 아닌 가상 머신쪽으로 전달됩니다.]

“그럼 로봇을 타고 걸어 다니거나 하지는 못하는 거야?”

[지금은 그렇습니다.

실제 나이츠의 운전을 위해서는, 설계자에게 권한을 넘겨 받아야하니까요.]

“그럼 일단은 그렇게 하자.

다른 파티원들은 대기 중인가?”

[예비 엔트리로 등록된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기의 나이츠가 가상 전장에서 마스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가상 전장과 동기화를 실시할까요?

아니면 별도의 조작 방식 훈련을 받으시겠습니까?]

“조종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KOHA에서 충분할 정도로 익혔어.

지금은 일단 정체 모를 파일럿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각 나이츠와 호흡을 맞추는 방법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명령 받들겠습니다.

카메라 동기화 개시.

지금부터 나이츠의 조작 신호를 가상 전장에 소환된 홀리프레일에게 전송합니다.]

순간, 격납고 내부를 비추고 있던 콕핏의 모니터가 하나씩 스타디움 내부를 비추는 화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실제로 그곳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오다는 거대한 로봇 10대가 동시에 전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넓은 스타디움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경기장 진짜 넓네.”

[이 가상 경기장은 KOHA 안에서의 가장 전장과 같은 넓이입니다.

이미 직접 싸우면서 경험한 넓이이지 않나요?]

“그때는 그게 그냥 가상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별 감흥이 없었던 거고, 실제로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크기의 거대한 경기장이 현실에 존재하는 거잖아?

그리고 20만 명의 관객이 객석에서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고.

그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

[그것도 그렇네요.

다른 나이츠 파일럿의 그룹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연결해.”

오다가 말하자 모니터 한쪽 구석에 9개의 초상화가 등장했다.

오다가 엘레니아와 대화를 하는 사이 전장에 합류한 마지막 멤버를 포함해서.

오다는 마치 게임의 레이드 화면을 보는 것 같은 그 창을 보면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반갑습니다.

어때요? 지금 심정이?”

그러자 오다의 질문을 들은 9명의 파일럿이 동시에 오다에게 소리쳤다.

“미친! PTW는 진짜 미쳤어!”

“전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이츠와 함께 묻힐 수만 있다면!”

“여러분! 제 머신 스피릿이 엄청나게 귀여워요!

난 처음 보고 진짜 게임 안에서 튀어나온 줄 알고 반가워서 껴안을 뻔했다고요!”

“아, 나도 나는 가상 이미지인 줄 알고 뺨 꼬집어보려다가 실패했는데.

손을 '탁' 치면서 ‘오라버니, 전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랍니다?.’라고 하는데 소름이 쫘악!!”

“결과적으로는 다들 지금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는 말이네요.”

오다가 다시 질문하자 9명이 동시에 오다에게 외쳤다.

“응!”

“네!”

“맞아!”

“PTW 만세!”

“하지만 여러분. 다들 아시겠지만 PTW의 이상혁은 저희에게 ‘콕핏에 탈 권한’까지만 부여했습니다.

저희가 지금 타고 있는 나이츠를 직접 조종해서 움직일 권한은 부여하지 않았고요.

그리고 아마도, 그 권한은 저희가 지금 진행할 레이드에서 얼마나 능숙하게 전투를 벌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그리고 나이츠를 활용한 토벌전은, 전투에 참여한 각 나이츠의 개성적인 능력을 얼마나 활용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리죠.

그러니 본격적인 전투가 개시되기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서로의 머신과 전투 성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합시다.”

10명의 나이츠 파일럿들은 오다의 요청에 따라서 자신들이 타고 있는 머신에 대한 정보와 사용 가능한 무장 및 스킬에 대해 공유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은 크리스티나가 모두에게 마수 토벌을 위한 작전을 제시했다.

“···지금 말씀 드린대로 움직이면 희생은 좀 있겠지만 가장 빠르게 마수를 토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의합니다.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겠죠.

탱커 역할을 맡은 두 분에게는 좀 부담이 되겠지만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이 격납고에 가기 전 류세이가 해 주었던 충고였다.

‘저희가 진심을 걸고 로봇을 만든 만큼, 오다 씨도 저희가 만든 로봇을 진지하게 대해달라는 거죠.’

그것은 단순히 흘려들을 수도 있는 내용의 조언이었지만, 오다는 그 말 안에 중요한 힌트가 있다는 직감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오다는 모두가 크리스티나의 전략에 동의하는 가운데, 용기를 내어 자신의 전략을 제시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예?”

“저는 일본 출신의 나이츠 파일럿 오다 츠요시라고 합니다.

분명 크리스티나 씨가 말씀하신 대로, 마수를 토벌하는 데 있어서 가장 빠른 방법은 조금 전 말씀하신 그 전략을 사용하는 거겠죠.

하지만 그건 게임 속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저희는 지금 현실 속에 있는 진짜 로봇 속에서 진짜 조종간을 잡고 로봇을 조종하고 있어요.

비록 그것으로 움직이는 로봇은 가상 공간의 로봇이고, 싸워야 하는 대상도 가상 공간의 괴물이지만, 만약 그게 진짜라면 어떻겠어요?

게임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마수가 존재하고, 저희가 실제로 나이츠에 탑승해 싸워야 하는 입장이라면요?

그런 상황에서 동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히. 게임 속이라면 몰라도 진짜로 동료의 목숨이 걸려있다면 크리스티나 씨의 전략은 조금 위험한 면이 있네요.”

“하지만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능숙한 조종 실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상혁 씨도 저희의 실력을 인정하고 아르마에 참가하는 걸 허락해주겠죠.”

오다는 크리스티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진짜로 로봇끼리 대결하는 전투가 벌어진다면, PTW 입장에서 가장 꺼려지는 것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사고’일 겁니다.

반대로 조금 안정적으로 가더라도 저희가 최대한 서로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혁 씨도 저희가 ‘진짜 파일럿’으로써 사고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거고요.

저희가 나이트의 진정한 파일럿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저희가 가진 그 ‘게임 감각’부터 빠르게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진짜이고, 저희는 KOH안의 세계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보자는 거죠.”

오다의 말을 들은 파일럿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둘씩 오다의 의견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야.

상대는 그 PTW잖아.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게 게임을 만드는 나머지, 게임 속에 등장하는 로봇을 현실에서 만드는 미친놈들이라고.

그럼 당연히 거기 타는 파일럿도 ‘진심’으로 로봇에 탑승하길 바라지.”

“저도 동의해요. 브리핑 룸에서의 상혁 씨는 나이츠 파일럿 선발의 기준에서 조종 능력보다는 전술적 판단능력이나 동료 나이츠의 능력에 대한 이해가 더 우선된다고 했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죠?”

“제가 새 작전을 세워보았습니다.”

오다는 어느새 진지함 그 자체가 된 동료들의 눈빛을 보며, 자신이 설계한 새 작전에 관해 설명했다.

그것은 ‘사람’이 타고 있는 나이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마수를 퇴치할 수 있는 가장 방어적인 토벌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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