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36화 (437/485)

436. 마음의 불길

“Yeeeeeeeeeeeeeaaaaaaaaah!!!”

미국프로풋볼(NFL)의 ‘살아있는 전설’ 톰 브래디가 6번째 패싱 공격으로 다시 한번 점수를 따내자, 관중석에선 경기장을 날려버릴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원정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응원단의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함성을 들으며, 올해로 44세를 맞이한 노장 브래디는 주먹을 꽉 쥐었다.

‘느낌이 좋아.’

전통의 강호 뉴 잉글랜드의 주전 쿼터백으로 뛰면서 이미 6개의 슈퍼볼 우승 반지를 거머쥔 브래디는 매번 우승할 때마다 느껴지던 승리의 예감을 전신으로 체감하는 중이었다.

경기 내내 집중력이 최고로 유지되면서, 말하지 않아도 동료들이 원하는 위치로 알아서 이동하고, 던진 공이 원하는 속도로 원하는 착지점에 정확히 꽂히는 느낌.

경기를 하다 보면 때때로 도저히 지고 싶어도 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브래디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행되는 경기의 모든 요소가, 팀을 승리로 이끌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응원 때문인가?’

상대 팀이 공격에 성공하면 거의 저주에 가까운 야유를 퍼부으며, 자신이 공격에 성공하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수만 명의 열정적인 관객들.

그 환호성 속에서, 브래디는 팀 동료들의 움직임이 평소보다 더욱 날래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헤이, 마이크. 오늘따라 더 잘 뛰는 것 같은데?

그건 단지 내 기분 탓인가?”

브래디가 조금 전 패스로 점수를 따낸 와일드 리시버 마이크 에반스에게 묻자, 마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평소보다 점프 높이가 훨씬 높아진 느낌이니까.”

“경기장 분위기 때문에?”

“그렇죠. 제가 공을 놓치는 순간, 저 커다란 환호성이 야유로 바뀔 걸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니까요.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서 뛰어야죠.”

“좋아. 그럼 경기 끝날 때까지 그 분위기로 가자고.”

브래디는 마이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마이크가 브래디의 등에 대고 말을 걸었다.

“헤이. 캡틴.”

“어?”

“오늘 우리가, 슈퍼볼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까요?”

브래디는 그가 말한 ‘역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슈퍼볼 역사 최초로, 홈팀이 자신의 홈구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

사실 다른 스포츠 리그에서 홈팀이 홈구장에서 우승하는 것은 그리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슈퍼볼은 다르다.

매년 2월에 경기가 열리는 슈퍼볼 특성상, 추운 지역에 돔구장까지 없는 구단의 경우 홈 구장에서 슈퍼볼 결승전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슈퍼볼은 원래 경기에 참여하는 두 구단과 연고가 없는 중립 지역을 경기장으로 설정하고, 두 팀을 가상의 홈팀과 원정팀으로 지정하여 경기를 진행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공교롭게도 템파베이 버커니어스의 홈구장이 슈퍼볼 결승 구장으로 지정된 상태.

이런 상황에서 버커니어스가 승리한다면, 슈퍼볼 역사상 처음으로 홈구장에서 홈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역대급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선수들은 대기록을 앞에 두고 말을 아끼는 징크스가 있었지만, 브래디는 주저 없이 마이크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될 거야. 오늘은 징크스가 아니라 징크스 할아버지가 와도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거든.”

***

브래디의 말대로, 압도적인 응원에 힘입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는 상대 팀인 캔자스시티 치프스를 압도적으로 농락했다.

전체 구단 가운데 리그 최고의 리시버진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칩스의 리시버들은 버커니어스의 수비 라인이 펼치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뚫지 못했고, NFL 우승기록 1위를 달성한 NFL의 전설적인 쿼터백, 톰 브래디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버커니어스의 압도적인 공격 퍼레이드는, 미식축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PTW 팬들조차 열광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중이었다.

어찌 되었건 오늘 PTW가 팬들을 위해 준비했다는 1000개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응원 중인 버커니어스가 슈퍼볼 우승을 차지해야 했으니까.

역전승이 짜릿하다는 이야기는 남의 경기를 볼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고, 기본적으로 스포츠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상대를 압도적으로 농락할 때 더 즐거워하는 법이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오늘 경기장에 입장한 탬파 팬들은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경기장 전체가 하나가 된 느낌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고 있었으니까.

선물을 받을 생각에 잔뜩 흥분한 PTW 팬들은 옆에 앉은 버커니어스 팬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젠장! 미식축구는 잘 모르지만, 너희 팀 오늘 정말 멋진데?! 앞으로 내가 NFL을 봐야 한다면 무조건 벅스 팬이 되겠어!”

그러면 반대로 게임에는 관심 없지만 버커니어스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팬들이 PTW팬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PTW 팬들이 슈퍼볼 분위기를 망쳐놓는다고 불평한 걸 취소하지! 너희도 멋진 팬들이야!”

버커니어스의 팬들은 미식축구의 재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게임 팬들을 마치 뉴비를 바라보는 고인물 같은 느낌으로 즐겁게 받아들였고, 응원가를 가르쳐주거나 경기를 이해하기 쉽도록 규칙을 알려주는 등 오늘의 경기를 온몸으로 즐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PTW의 중간 광고가 송출될 시기가 되자, 경기장의 스피커에서는 이례적으로 ‘광고’를 안내하기 위한 안내 방송을 내 보내주었다.

오늘 홈 구장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을 ‘강제로’ 응원하게 만든, PTW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잠시 후, 여러분이 그토록 기다리시던 PTW의 중간 광고가 경기장 전광판을 향해 송출됩니다.

역대 슈퍼볼 광고의 역사를 매번 새로 쓴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에서, 팬들을 위해 준비한 광고가 무엇인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지켜보도록 합시다!

Go~!! Bucs!!!!

Go~!! PTW!!!!]

오로지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PTW의 팬들을 위해, 벅스 팬들은 잠시 축제처럼 들떠있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입을 다물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하나, 전광판에서 나오는 메시지 하나도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들과 함께 사랑하는 팀을 열정적으로 응원해준 PTW 팬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리고 PTW팬들은, 그런 벅스 팬들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자신들도 입을 다문 채 전광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직 이 찰나의 순간을 위해 수백만 원의 웃돈을 지급하면서까지, 암표상에게 슈퍼볼 결승 티켓을 구매한 보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눈에 서려 있는 것은 제발 자신을 한 차원 높은 즐거움의 세계로 데려가 달라는, 게이머들의 염원이 담긴 눈빛이었다.

그렇게, 이제는 슈퍼볼의 명물로 떠오른 PTW의 중간 광고는, ‘도대체 어떤 광고를 하기에 사람들을 저토록 미치게 만드는 것인가’에 대한 버커니어스 팬들의 호기심과,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PTW팬들의 기대감 속에서, 전광판을 통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

상혁이 생각하는 PTW의 광고란, 보는 시간 내내 팬들을 몰입하게 하고, 광고가 끝나는 순간 미친듯한 환호를 쏟아내게 만드는 광고였다.

그러나 2분이란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의 감정을 들끓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상혁과 함께 광고 제작을 맡게 된 PTW의 영상 전문가 랄프 뮐러는 광고를 만들면서 많은 고민을 해야했다.

그러나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지 못한 그는 상혁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소개하면서,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불을 붙이죠?”

그러자 상혁은 뮐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냥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예?”

“혹시 게임 중에 컴파일 하트에서 개발하는 ‘넵튠 시리즈’ 아세요?”

“아뇨, 처음 듣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렇게 잘 모르는 게임의 새 시리즈가 나온다고 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뮐러 씨는 기쁨에 찬 함성을 터트릴 수 있으신가요?”

“아마도 어렵겠죠.”

“그럼 반대로 다른 질문을 하죠.

제가 알기로 뮐러 씨는 SF 게임 홈 월드의 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작년 8월쯤에 기어박스에서 홈월드 3의 정보가 공개되었죠.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분은 뮐러 씨가 홈월드라는 게임에 대해 잘 알고, 그것이 주는 재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분입니다.

수백 수천 시간을 플레이하며 쌓여온 즐거운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광고가 암시하고 있으니 그런 기분이 드는 거죠.

배트맨을 싫어하는 사람은 배트맨 신작의 광고를 보아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반대로 배트맨을 좋아하는 사람은 긴 영상 말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배트맨의 갑옷 실루엣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법입니다.

즐거움이라는 건 영상의 내용이 아닌, 영상을 통해 끌어올려 진 내면의 추억이 만드는 거니까요.

그리고 저희 PTW는, 유저들의 마음속에서 끌어낼 수 있는 즐거운 기억이 미친 듯이 많은 회사죠.

이번 광고는 그것을 끌어내는 컨셉으로 제작하면 됩니다.

광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 그때의 나는 참 즐거웠었지.’라고 떠올릴만한 그런 내용으로요.”

뮐러는 상혁의 요구를 그대로 구현한 광고를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의 수천만 PTW 팬들이 생방송을 통해 보고 있는 바로 그 광고였다.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을 팬들의 마음속에서 끌어올린다.’

가장 먼저 등장한 화면은, 1차 NE 컨벤션을 진행하기 위해 PTW가 임대한 거대한 공터 앞에, 상혁이 홀로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멋진 행사를 개최하기 위한 장소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공터를 바라보며, 상혁은 옆에 있는 스텝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마법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 겁니다.]

그리고 5초 정도의 짧은 타임랩스 영상이 이어지며 1차 NE 컨벤션을 위한 거대한 세트장이 건설되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고작 3일간 이어지는 행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직원들의 노력이 들어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그렇게 행사장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 광고는 이번엔 1차 NE 컨벤션에 참가한 유저들의 즐거운 모습과 함께 참가한 팬들이 남긴 메시지를 텍스트로 보여주었다.

[D.C 더글라스 : 내 삶에서 더없이 황홀한 순간]

[존 게빈 : 행사를 즐기는 동안 난 완전히 마법사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팬들의 즐거운 추억을 되살리던 영상은 다시 한번 완전히 비어있는 공터를 보여주었다.

1차 NE 컨벤션에 행사장으로 쓰였던 공터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공터를.

[이번에 공개할 게임은 미군 캠프와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장비는 미군에서 지원하기로 해 주었으니 최대한 실감 나는 세트를 지어봅시다.]

다시 이어진 타임 랩스 영상.

그것은 같은 패턴을 가진 영상이었지만 점차 커져가는 NE 컨벤션의 스케일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전 세계 5도시에 있는, 5개의 행사장에서, 5개의 새 게임을 소개할 겁니다.

그러니 이번엔 세트를 5개 동시에 완성해야 합니다.]

[자, 지금부터 이 거대한 가상 공간을 완벽한 테마파크로 만들어볼까요?]

그 영상의 내용을 보며, 팬들은 고작 며칠 동안만 이어지는 짧은 행사를 위해, PTW라는 회사가 얼마나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기뻐하는 팬들의 모습을 통해, 어째서 그들이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그리고 마침내, 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4차 NE 컨벤션에 대한 내용이 끝나자, 영상은 다시 한번 커다란 공터 앞에 작은 박스를 든 채 서 있는 상혁의 뒷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혁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공터를 향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장소를 역대 NE 컨벤션을 모조리 씹어먹을 정도의 멋진 장소로 바꿀 겁니다.]

그러자 상혁의 옆에 다가온, 공사장 안전모를 쓴 스탭이 상혁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겠네요. 앞선 행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번에도 그럴 가치가 있을 겁니다.

사람의 꿈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이번엔 어떤 꿈을 보여주실 생각이죠?]

[하나는 바다와 범선, 대포와 모험이 난무하는 대 해적 시대에 대한 꿈입니다.]

순간 영상이 전환 되며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해상전 장면이 재생되었다.

서로를 향해 대포를 쏘아가며 바다를 가르는 범선들의 모습은, 그것이 실제인지 아니면 그래픽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배와 대포는 그래픽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것 치고는 사람은 그래픽 같은데?”

“뭐지? 저거 진짠가?!?”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 재생되고 있는 범선들의 해상전 영상은, 상혁이 스턴트 봇을 동원해 실제로 범선끼리 진짜 대포를 쏘며 싸우게 했던 그 장면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었으니까.

물론 사방에 달린 센서가 노출되어있는 테스트 영상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기 때문에 CG로 센서를 지우는 등의 수정을 가하긴 했지만, 영상 안에 등장하는 모든 폭발물과 터져 나오는 파편은 ‘진짜’ 해상전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턴트 봇이 있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가상의 선원들’의 모습을 제외하면.

경기장에 있던 팬들이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전투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 영상은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어 게임의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다.

썩어버린 덩굴과 기어 다니는 벌레 사이를 헤쳐 나가며 유적을 찾아다니는 중세 복장의 인물들과, 항구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는 선원들의 모습들.

그리고 피스톨을 든 채 서로를 죽을 듯 노려보는 중세 해군과 해적 선장의 대립.

‘Fire!!!!!’라는 힘찬 구호와 함께, 함선에 난 수많은 구멍을 통해 발사되는 수백 개의 대포들.

로프를 잡고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마차를 탄 채 시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

절대 지구의 생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온몸에 갑주를 두른듯한 초 거대 고래가 수면 위로 점프 하는 모습과, 거대한 범선을 두 동강 내려는 것처럼 죄어오는 거대한 크라켄의 촉수들.

불타는 건물 속에서 손에 든 검을 들고 칼싸움을 하는 두 해적 선장의 모습.

그것은 마치 ‘모험’이란 단어를 슬라이드쇼로 만들어 보여주는 듯한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영상의 끝엔, 피스톨을 든 군인이 방아쇠를 당기며 카메라를 향해 묻는 장면이 있었다.

[빌어먹을 범죄자 같으니! 너 하나  때문에 도시의 절반이 박살났어!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냐?!]

그러자 카메라가 180도 회전하며, 피스톨을 든 해군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비추었다.

거기엔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린 목걸이를 한 남자가, 해골이 그려진 선장 모자를 쓴 채 양손을 들고 서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황당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 이 모습을 보고도 모르겠어? 내가 누군지?

혹시 네가 바보일 경우를 위해서, 친절하게 대답해주지.

100명이 보면 100명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연한 대답이긴 하지만, 네 질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남자는 손바닥을 올려 쏘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한 후, 손가락을 조심스레 품 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현상 수배 전단을 꺼내 카메라를 향해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해적’같은 느낌이 살아있는 그 전단지에는, ‘현상수배(WANTED)’라는 커다란 글자 아래, 흔히 볼 수 있는 ‘Dead Or Alive’라는 글자 대신,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Only Dead(죽여서 데리고 올 것)-

그 순간,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팬들의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범선과 모험, 해적을 주제로 한 PTW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과, 다음 NE 컨벤션을 예고하는 듯한 광고의 내용이, 그들의 심장을 당장이라도 터질 정도로 두근거리게 했기 때문에.

다들 광고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영상에서 보여준 게임의 퀄리티와 컨셉은 팬들의 인내심을 버티지 못할 수준으로 철저하게 박살 내고 있었다.

다음에 이어질, 가장 중요한 장면을 보기 위해 소리죽여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으아아아아아아!!!!!!!!!!!”

“Wooooooooooooooooooow!!!”

“다음 게임은 해적이다아아!!”

“X바아아알!!! 존나 멋져어어어!!”

“Awesome!! Awesome!!!”

“Fuck the heeeeeell!!!!!!!!!!!”

굳이 집에서 보아도 될 슈퍼볼의 중간 광고를, 비싼 티켓값을 내며 경기장에서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게임회사를 향해 함께 소리지르며 기뻐할 때 느껴지는 유대감.

그들에게 있어서, PTW의 광고가 나오는 슈퍼볼 행사는 이미 또 하나의 게임쇼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함성을 듣지 못한 것처럼, 광고 속 영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내용이 나온다 아아!!”

환호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광고 내용을 놓치기 싫었던 한 팬이 소리치자, 관객들의 함성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강제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흥분한 상태에서도 묘하게 통제된 듯한 모습을 보이는 PTW의 팬들을 보며, 버커니어스 팬들은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긴 저 정도 수준의 행사라면 좋아할 만하지.’

그들이 바라본 화면 속에서는, 다시 한번 공터 앞에 서 있는 상혁과 스태프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해적이라, 멋지네요.

그럼 나머지 한 개는 뭐죠?]

스텝의 질문에 상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상혁은 들고 있던 박스를 스탭에게 넘겨주었고, 카메라는 스탭이 들고 있는 박스를 비춰주었다.

그것은 조금 오래된 문구점에 들르면 흔히 볼 수 있는, 정체 모를 낡은 장난감 로봇이 그려져 있는 상자였다.

그 알 수 없는 영상을 끝으로, 스타디움을 울리는 ‘두둥’소리와 함께, PTW의 광고 영상은 종료되었다.

검은 화면에 흰 글자와 함께,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팬들에게 남겨주면서.

[Imagine(상상해보라).

If you can(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보다 훨씬 도발적인 메시지였지만, PTW의 팬들은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PTW라는 회사는, 아마도 팬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형태의 행사보다 ‘엄청난 것’을 준비해 두었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들은 참았던 숨을 한번에 터트리는 것처럼, 일제히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5차 NE 컨벤션이다아아아!!!”

“빌어먹을?! 그 미친 행사를 한 번 더 한다고오오!?!!”

“상상할 수 있으면 상상해보라는데?!?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마지막에 나온 로봇은 뭐지?”

“젠장, 지금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해적이야 해적! 뒤쪽에 나온 로봇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도 이미 앞에 나온 게임만 봐도 난 행복해 죽을 것 같다고!”

“PRD 전용이지?! 제발 PRD 전용 게임이라고 해줘!!”

“마지막에 로봇은 뭔데!?

뭘 하려는 거야?!”

“젠장, 지금 중요한 건 마지막에 나온 로봇 장난감이 아니라 다음 NE 컨벤션이 열린다는 거라고!

당연하게도 미친 듯이 즐거웠던 4차 컨벤션보다 더 끝내주는 행사가 될 거고!”

모두가 잔뜩 흥분해서 자기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마구 떠드는 가운데, 전광판을 통해 아나운서의 모습이 등장했다.

그렇게 등장한 그는, 기뻐하는 팬들의 마음에 기름을 붓는 한 마디를 더해주었다.

[조금 전 전달된 사실에 의하면 방금 전 광고는 5차 NE 컨벤션에 대한 행사 광고가 맞다고 합니다.

그리고 PTW가 약속한 1000개의 선물은, 바로 그 5차 NE 컨벤션에 참가할 수 있는 초대장이고요.

오늘 경기에 참가하신 PTW의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제는 경기를 진행해야할 시간입니다.

아직 경기 종료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고, PTW가 여러분에게 약속한 선물은 오늘의 홈 팀인 탬파베이 버커니어스가 우승했을 때만 지급되는 선물이니까요.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응원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저희 중계진도 가장 열정적인 응원을 하는 팬분들을 최대한 카메라로 비추도록 노력할 테니.]

아나운서의 그 말은, 안 그래도 흥분으로 가득 차 있던 경기장을 말 그대로 ‘폭발’시켰고, 그 열렬한 응원을 받은 ‘만년 약체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는 상대 팀인 ‘디펜딩 챔피언’ 캔자스시티 치프스를 31대 9라는 성적으로, 그야말로 ‘박살’내면서 18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것은 긴 슈퍼볼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홈팀이 홈구장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야말로 역사를 다시 쓴 경기라 할 수 있었다.

[여러분! 오늘의 경기는 전설이 될 겁니다!

그야말로 드라마가 따로 없는 경기였으니까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를 들으며, 경기장에 있는 버커니어스 팬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44세 노장이 이끄는 만년 약체팀의 18년 만의 슈퍼볼 우승.

그 안에서, 선수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포텐셜을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한 경기를 보여주었고, 경기장의 팬들은 열광적인 응원으로 보답했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임 팬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PTW가 5차 NE 컨벤션을 연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뻐서 울고, 누군가는 자신이 1000명의 행운아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기쁨 때문에 울고, 누군가는 안타깝게도 1000명 안에 들지 못한 억울함 때문에 울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의 경기가 경기장에 입장한 모두의 마음속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깊은 추억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경기의 내용도, 팬들의 응원도, PTW가 벌인 깜짝 이벤트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PTW의 중간 광고도.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경기였기 때문에.

PTW의 팬들은 미식축구도 생각보다 멋진 스포츠라고 생각하며 흥분된 얼굴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고, 버커니어스의 팬들은 중간 광고에 집착하는 PTW의 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의 경기는 미식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나 멋진 경기였으며, 오늘의 광고는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나 멋진 광고였으니까.

그렇게 PTW의 5차 NE 컨벤션 광고는 단 2분의 광고 시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화젯거리를 낳으며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PTW 의 커뮤니티는 일제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광고의 마지막 순간에 잠깐 등장했던, ‘장난감 로봇이 담긴 상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것은 행사가 열리는 8월 15일까지, 6개월 이상 지루한 기다림을 감내해야 하는 팬들을 위해, 상혁이 준비한 작은 퍼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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