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 세계인의 축제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수많은 요소가 개입하는 미래 예측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쓰이는 단어가 바로 ‘나비효과’라는 단어였다.
그리고 상혁은, 그 나비효과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 중의 한 명이었다.
회귀 이후 발생한 현실 사건 변화의 흐름을,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과 민준이었기 때문에.
상혁과 민준이 회귀를 한 직후인 1998년 즈음만 해도,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의 타임 라인은 상혁이 알고 있는 회귀 전의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진행된 최초의 코믹 월드 개최일이라던가, 온라인 게임을 필두로 한 국산 게임사들의 부흥기도 그렇고, 전 세계에 있는 각 게임사에서 발매되는 신작 게임들도 큰 변화 없이 상혁이 기억하는 그대로 발매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상혁이 고등학교 동아리였던 PTW라는 팀을 회사로 키워내고, 히트작을 연속으로 내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의 행보를 반복하면서, 현재 벌어지는 전 세계의 사건들은 상혁이 기억하는 회귀 전의 사건들과 꽤 거리가 있는 형태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 첫 번째 예가 바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콘솔 유저수의 엄청난 성장이었다.
한국에 위치한 세계 굴지의 콘솔 게임 업체 PTW의 존재는 전세계 게임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것은 그대로 콘솔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덕분에 원래는 정식 한글 버전을 지원하지 않았던 메이저 콘솔 게임들이 한글을 지원하여 발매된다거나, 혹은 대규모 마케팅을 한국에서 진행하는 등, 회귀 이전에 상혁이 기억하는 것보다 한국의 콘솔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한 상태였다.
두 번째 변화점은, 회귀한 이후의 세계에서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민준의 의중이 포함된 변화였는데, 회귀 전 가상화폐 채굴로 인해 그래픽 카드 가격이 급상승했던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했던 민준이 비트코인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관련 기술 특허를 전부 따내었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었다.
민준은 그 특허를 통해, 2009년 1월 3일 첫 번째 오픈 소스 비트코인 클라이언트가 등록되자마자 소송을 걸었고, 그 덕에 현 세계에서의 비트코인은 등장하자마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 번째 변화점은 워크패스트의 등장으로 원래의 타임 라인에 존재했어야 할 수많은 서비스가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워크패스트의 아성에 도전하려 한 야심 찬 프로젝트가 몇 개 나오긴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워크패스트의 압도적인 편의성과 통합성에 밀려 말없이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다.
그처럼 회귀 후에 발생한 대부분의 큰 변화는 PTW가 지금까지 벌인 일들과 관련 있는 변화들이었지만, 개중에는 대체 어떤 것 때문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짐작조차 안가는 변화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 사태의 부재.
상혁이 기억하는 원래의 타임라인에서, 2019년 말에 중국 우한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어야 했을 코로나 사태는, 상혁이 회귀한 이후의 지구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혁은 그 이유를 궁금해하면서도, 딱히 알아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뭐, 마스크 안 쓰고 살면 더 편하지.
미리 사둔 마스크 제조 기계엔 먼지만 쌓일지 몰라도.’
상혁은 2019년이 되자마자 마스크 제조 설비를 왕창 사서 창고에 넣어놓았는데, 그것을 쓸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묘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전 인류의 재앙 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괜찮은 호재로 평가받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만약 회귀 이전의 타임라인 대로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면, PTW측에는 꽤 큰 호재가 되었을 것이다.
위험하게 밖으로 돌아다니는 대신, 집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이고, PRD를 통해 VR 골프나 VR 서핑 같은 레저 스포츠를 대리 체험하고자 하는 수요도 늘어났을 것이며, 자택 근무로 트렌드가 변화하며 버츄얼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기업의 수요도 폭증했을 테니까.
말 그대로 엄청난 이익을 긁어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날아간 셈이었지만, 상혁은 그것에 대해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익이야 게임 외적인 사업에서 필요한 만큼 내고 있는 상황이고, 5차 NE 컨벤션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기 때문에.
어째서 원래 발생했었어야 하는 코로나 감염증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상혁은 현재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만약 코로나 사태가 원래의 흐름대로 발생하였더라면, 2021년 슈퍼볼에 입장할 수 있는 관객 수는 거리 두기를 위해 종전의 30% 정도로 조정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코로나 사태는 현재의 지구에서 발생하지 않았고, 전 세계 경기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으며, 엄청나게 늘어난 콘솔 유저들은 미식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슈퍼볼 결승 티켓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PTW의 신규 광고가 공개되는 순간을 라이브로 지켜보기 위해.
상혁은 지금의 그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번 2021 슈퍼볼에서는 PTW가 광고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수천만 PTW 팬들의 시선이 행사로 집중될 수 있도록.
목표는 이번 슈퍼볼을 통해 역대 시청자 수 기록을 두 배 이상 더 갱신하는 겁니다.”
상혁이 이번 5차 NE 컨벤션의 홍보 전략에 대해 브리핑하자, 현주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적극적으로 알린다고 하면, 그건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겠다는 이야기야?”
그러나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현주의 질문을 부정했다.
“아뇨. 저희가 일반적인 게임회사라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돈이란 카드를 써야겠지만, 저희는 PTW잖아요?
저희가 돈을 써서 홍보하지 않아도, 그냥 ‘광고를 할 거다.’라는 정보만 뿌리면 알아서 홍보가 될 겁니다.
무엇을 공개하려는 것인지, 다시 한번 NE 컨벤션이 열리는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분석이 각종 언론과 커뮤니티에 쏟아지게 될 테니까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은, 홈페이지에 ‘2021 슈퍼볼을 기대하라.’라고 한마디를 전달하는 것뿐이죠.”
홍보는 상혁이 짠 전략대로 집행되었다.
단 한 푼의 마케팅 비용도 집행하지 않고, 단순히 PTW의 홈페이지에 팝업 공지를 하나 올리는 방식으로.
그것은 다른 게임회사들이 홍보를 진행하는 방식과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방식이었지만, 그 짧은 메세지가 가져온 파급력은 수천억의 마케팅 비용이 들어간 광고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
[2021 슈퍼볼. PTW가 광고주로 참가 의사를 밝히다.]
[미식축구 팬들의 가장 큰 축제 슈퍼볼. 올해는 전세계 게이머들의 축제가 되나?]
[슈퍼볼 광고를 추진하던 일부 회사.
광고 철회 의사를 밝히다.
‘어차피 PTW 광고에 묻혀서 우리 광고는 아무도 기억 못 할 것.’]
[PTW의 2021 슈퍼볼 광고 전쟁 참전.
다음 컨벤션에 대한 예고인가?
신작 게임에 대한 예고인가?]
[PTW의 이번 슈퍼볼 광고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
‘제 아무리 PTW라도 4차 NE 컨벤션을 뛰어넘는 행사는 진행할 수 없을 것.
이번 슈퍼볼 광고는 신작 게임 광고가 분명하다.’]
모두가 주목하는 이번 슈퍼볼의 메인 아젠다는 매우 명확했다.
PTW의 광고 참여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상황에서, 그 광고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
팬들은 당연히 PTW의 최고 이벤트라 할 수 있는 NE 컨벤션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함께 나오고 있었다.
4차 NE 컨벤션이라는 압도적인 행사를 보여준 PTW에서, 또 한 번의 혁신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기 어려웠으므로.
다음 NE 컨벤션을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서도, 추억이 망가지기를 바라지는 않는 마음.
그것이 PTW팬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마음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슈퍼볼 광고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다.’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풀지 않았고, 그것은 상혁과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PTW관련 정보로 본인의 쇼를 진행하는 허먼은 그것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는데, 그의 쇼가 방송되는 날마다 PTW의 팬들이 게시판을 마비시킬 정도로 정보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허먼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찾아와서 상혁에게 정보를 달라고 애걸복걸했지만, 상혁은 그런 허먼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했다.
“아무리 허먼 씨의 부탁이라도 이번엔 안 됩니다.”
“그럼 하다못해 공개 예정인 내용이 컨벤션 관련 내용인지만이라도 확인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놉.”
“그럼 PTW 본사 옆에 있는 거대한 창고 안에 뭐가 있는지 만이라도···.”
“그것도 안 됩니다.”
“하아···. 너무하시네요···.
그래도 저 역시 PTW의 가장 큰 팬으로써 PTW의 게임이나 행사를 홍보하는데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허먼을 보며, 상혁이 작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허먼 씨. 홍보라는 건요.
굳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말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무슨 뜻입니까?”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정보는, 그냥 저희가 슈퍼볼 광고를 통해 엄청난 것을 공개할 것이라는 사실 뿐이죠.
그리고 그것조차 저희가 실제로 팬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의 극히 일부분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슈퍼볼 광고를 통해 보여준 모든 정보가, 실제 저희가 만들어낸 것의 매우 일부분만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요.
때로는 입을 다무는 것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크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입니다.
그러니 제가 허먼 씨라면, 쇼에 나가서 블러핑을 시도하겠어요.”
“블러핑이요?”
“슈퍼볼 광고의 내용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 PTW 본사에 방문해서 이상혁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엄청난 계획에 대해 들을 수 있었지만, 엠바고 때문에 이야기 해줄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번 슈퍼볼 광고를 통해 PTW가 보여주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던 가장 큰 충격보다 더 거대한 충격을 몰고 오리라는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의 거짓말을 하는 거죠.”
“잉?! 그건 거짓말이 되지 않습니까?”
“결과적으로 공개된 내용이 블러핑친 수준으로 충격적인 내용이라면, 그건 거짓이 아니게 되죠.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사실을 듣는 것 만으로도, 팬들의 마음속에는 온갖 망상이 들끓게 될 겁니다.”
“하지만 분명 그런 블러핑에는 후속 질문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오로지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질문들이요.
그런 질문에 대해 답변하려면, 적어도 PTW가 숨기고 있는 정보의 규모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휴 진짜 말도 안 되게 엄청난 게 기다리고 있는데, 말로 할 수가 없네요.’라는 말로 방송 전체를 때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그럼 허먼 씨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단 한 가지 정보만 드리겠습니다.
한국에 가서 이상혁을 만나, 이 말을 들었다고 하세요.
‘PTW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PTW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라고요.
눈치 빠른 허먼 씨라면,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계시겠죠.”
허먼은 잠시 생각했다.
전 세계에서, 오로지 PTW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잠시 후,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허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혁을 향해 외쳤다.
“설마 이번 슈퍼볼 광고 내용이?! 정말입니까!?”
그러자 상혁은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었고, 허먼은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상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솔직히 저도 믿기지 않네요.
많은 팬들이 동의하는 사실이겠지만, 4차 NE 컨벤션은 이미 PTW가 가진 포텐셜의 끝을 보여준 행사였습니다.
게다가 PTW가 개발 중이었던 YAS나 나이츠 어셈블2 역시 이미 공개가 다 된 상태고요.
흔히들 말하죠.
영원한 혁신은 있을 수 없다고.
그런 상황에서 그 수많은 팬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할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PTW가 가진 포텐셜의 끝은 PTW가 정하는 겁니다.
팬들의 상상력이 정하는 게 아니라요.
그리고 자신감에 대한 질문이라면, 예. 맞습니다.
그 누가 보더라도 ‘그’ 4차 NE 컨벤션이 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말도 안 되게 멋진 선물을 준비해 놓았으니까요.”
“믿기 어렵네요.”
“믿고 안 믿고는 보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저희 PTW는 지금까지 언제나 모두가 상상하던 것 그 이상을 보여주는 회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 말이 맞는지는, 올해 2월에 열릴 슈퍼볼 광고를 보시면 아시게 되겠죠.”
결국, 허먼은 한국까지 먼 거리를 날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쇼에서 풀만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PTW의 팬으로서 누구보다 빠르게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간 허먼은, 바로 이어진 쇼에서 상혁이 말한 대로 열심히 블러핑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기다리고 있지만, 엠바고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허먼을 보면서, 수많은 게스트와 시청자들은 조금이라도 정보를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허먼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애당초 아무것도 모르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허먼이 할 수 있는 일은, 앵무새처럼 자신의 말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저에게 아무리 물어보시고 시청자 게시판을 항의글로 도배하셔도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입니다.
슈퍼볼 광고를 보세요.
거기에 모든 것이 담겨있을 테니까.”
결국 허먼의 그런 태도는, 그의 쇼를 시청하는 PTW팬들이 호기심을 극대화 시켰고, 2021년 슈퍼볼의 시청자 수 기록을 종전의 두 배 이상 갈아치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
매년 슈퍼볼이 열리는 시즌이 되면, 미식축구 팬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그러나 현재의 슈퍼볼은, 매번 열릴 때마다 미식축구를 사랑하는 팬들과 오로지 중간 광고에만 열광하는 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기류 때문에 오히려 전쟁 직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기에 집중하고 싶은 스포츠 팬들은 오로지 중간 광고를 보기 위해 엄청난 티켓값을 지불하고 경기장에 들어오는 PTW팬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PTW가 광고에 참여한다고 알려진 슈퍼볼 시즌이 되면, 경기장 관중석은 크게 4개의 파로 나뉘게 된다.
홈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팬.
원정팀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팬.
그리고 미식축구와 PTW를 동시에 사랑하는 팬.
마지막으로 미식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PTW의 중간 광고에만 관심 있는 팬.
경기장에서 그런 팬들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응원하는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봉을 든 채 앉아 있는 스포츠 팬들과는 달리, PTW의 팬들은 자신이 자주 입는 일상복을 입고 휴대폰이나 카메라를 든 채로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올해는 그런 분위기가 더욱 극대화되었는데, 슈퍼볼이 열리기 몇 개월 전부터 상혁이 사전에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2021 슈퍼볼이 열리는 콜로라도의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은 유니폼을 입은 팬들보다 일반인 복장을 한 팬들이 자리를 더 차지하고 있을 정도였다.
미식축구 팬들의 입장에서는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는 수준이었지만, 협회에서는 따로 PTW 팬들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가 없었다.
PTW가 광고에 참여한다고 알려진 순간, 그해 슈퍼볼 시청자 수의 자릿수가 달라지니까.
이제 미식축구 팬들의 입장에서, PTW 팬들의 존재는 ‘치울 수 없는 암적인 존재’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앨런 리처드 마이클스, 통칭 ‘엘 마이클스’라 불리는 슈퍼볼 아나운서는 홈팀 팬보다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PTW 팬들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
[미국인들에겐 특별한 날인 슈퍼볼이, 지금은 전 세계인의 축제처럼 되어버린 것은, PTW라는 게임 회사의 존재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습니까?]
[원래 슈퍼볼 결승이라는 건 홈팀 팬과 원정팬의 응원 싸움이기도 하니까요.
선수들이 슈퍼플레이를 보여줄 때 터져 나오는 열광적인 환호나, 위기의 순간에 뿜어져나오는 응원의 환호.
그 모든 것이 합쳐져 슈퍼볼인 겁니다.
단지 3분도 안 되는 중간 광고를 보기 위해 경기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요.]
[사실 홈팀인 템파베이에서도 PTW 팬들의 관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PTW에 대한 게임 팬들의 열정을 꺼트리기엔 노력이 부족했나 보네요.]
[최소한 이게 게임쇼가 아니라 위대한 프로스포츠의 결승전이라는 건 좀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미식축구 팬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동감입니다. 관중석에서도 유니폼을 입은 템파 팬이 항의하고 있네요.
입 모양을 보니 ‘그렇게 게임이 보고 싶으면 집에서 TV로 봐라!’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런 모습도 슈퍼볼의 일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그때, 한국에서 TV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주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홍보를 위해 슈퍼볼이라는 무대를 선택한 것은 좋았지만, 그것 때문에 PTW와 팬들이 비난받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PTW의 광고가 슈퍼볼의 즐거운 볼거리가 되기를 원했지, 이런 식의 논쟁거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다음엔 광고 매체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할 것 같아.
이제 우리 광고가 가진 파급력이 경기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커졌으니까.
미식축구 팬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잖아?”
“대신 시청자 수는 압도적으로 늘려줬잖아요.
저희 덕분에 적어도 슈퍼볼 만큼은 전 세계에서 방영되는 행사가 되었고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생각해서, 이번엔 나름 수를 써 놨으니까.”
“수를 써?”
“저거요.”
상혁이 가리키는 화면 속에는 커다란 박스를 들고 무언가를 PTW 팬들에게 열심히 전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들이 전달하는 것은, 이번 경기의 홈팀을 맡은 ‘템파베이 버커니어스(Tampa Bay Buccaneers)’ 유니폼 티셔츠였다.
갑자기 나타난 일련의 사람들이 나눠준 티셔츠를 받아든 PTW 팬들은 당황하며 유니폼이 든 비닐 안에 있는 종이를 읽어보았다.
거기엔 PTW의 로고 밑에, ‘오늘 경기에서 홈팀이 승리할 경우 가장 열정적으로 템파베이 버커니어스를 응원해 주시는 팬 1000분께 PTW에서 특별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문장에 낚이지 않을 PTW의 팬은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경기장에 모인 수많은 PTW 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이 입은 옷 위에 홈팀인 템파베이의 붉은 색 유니폼을 뒤집어썼다.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수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아나운서는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경기장에 모인 게임 팬들이, 갑자기 홈팀을 응원하는 팬들처럼 붉은 색 유니폼을 걸치고 있습니다!]
[조금 전 확인한 바에 따르면, PTW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유니폼을 나눠줬다고 하네요.
그리고 홈팀을 가장 격렬히 응원하는 1000명의 팬을 뽑아······]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경기장 스피커의 음량을 가볍게 누를 정도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의 템파베이 팬들조차 뒷걸음질 치게 할 정도의, 엄청난 함성이.
그것은 아나운서인 엘 마이클스가 기억하던, ‘PTW가 슈퍼볼을 망가트리기 전’의 바로 그 함성이었다.
[여러분 들리십니까?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 내는 함성이?
비록 그것이 PTW가 약속한 선물을 받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열정적인 응원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분명 오늘 관중들 중 상당수는 경기가 끝나고 몇 주간 목이 잔뜩 쉬어서 이비인후과를 찾게 되겠죠!
하지만 좋습니다!
적어도 아무도 경기를 보지 않은 채 수다만 떨면서 광고만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 좋으니까요!
응원해 주십시오!
소리쳐 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와 고함이, 오늘 경기를 더 빛나게 만들 테니까!]
“고막 떨어지겠네?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 열린 슈퍼볼 경기에서 홈팀 쿼터백을 맡은 44세의 톰 브래디가 귀청을 울리는 함성을 들으며 당황한 표정으로 동료에게 말했다.
그의 오랜 경기 경험 속에서도, 이 정도로 열정적인 응원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장을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한 팬들은 마치 이번 경기에 영혼을 걸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미친 듯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고, 그중의 일부 팬들은 어떻게든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손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그러자 그 황당한 모습을 보며 당황해하는 브래디에게, 동료가 다가와 말했다.
“듣자하니 PTW에서 응원을 제일 열심히 하는 팬 1000명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더군.
우리가 이기면 받는 조건으로.
아마 지금 소리 지르는 인간들 대부분은 미식축구 규칙도 모를걸?”
“선물이 뭔지는 알아?”
“몰라. 안 적혀 있다는데.”
“미친, 뭘 받을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열정적으로 응원한다고?
우리가 지면 산채로 찢기겠는데?”
“PTW에 대해서는 나도 좀 아는데, 지금 구단에서 쓰는 훈련 장비인 PRD-S를 만든 회사야.”
“아, 거기가 거긴가!?
그거 말도 안 되게 좋은 장비던데···.”
“그렇지. 기술력으로는 아마 지금 전 세계 기업 중에 손가락에 꼽히는 회사일걸.”
“그런 회사가 왜 버커니어스를?”
“올해 슈퍼볼 광고가 잡혀 있는데, 게임 팬들 때문에 응원 열기가 피해 받는 걸 원하지 않았나 보지.
덕분에 미식축구도 모르는 수만 명의 팬들에게 응원 받게 생겼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브래디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난 좋다고 생각한다.”
“뭐?!”
“그들이 벅스(Bucs) 팬이든 팬이 아니든, 저 관객들은 지금 우리가 이기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팬들이라고.
그러니까 저렇게 간절하게 응원을 하지.
만약 우리가 여기서 승리한다면, 저 사람들은 미친 듯이 기뻐하게 될 거고.
우리가 슈퍼플레이를 하고, 승리에 가까워질 때마다, 미식축구가 주는 진짜 재미를 느끼게 될 거야.
미식 축구 팬이 아니라 게임 팬이라고?
상관없어.
오늘 우리가, 이 경기에서,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미식 축구 팬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리고?”
“오늘 같은 때가 아니면 언제 저렇게 뜨거운 응원을 받으면서 결승전을 할 수 있겠어?
오늘 경기에 감사하면서, 저들이 주는 응원을 최대한 즐기자고.
슈퍼볼 시대가 열린 후 최초로, 홈구장에서 우승하는 팀이 우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의 말을 들은 동료들이 씨익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자신의 어깨를 강하게 두드리고는, 브래디의 주변에 모여 손을 모았다.
그들의 슬로건, 'One Team, One Cause'를 외치기 위해.
“One Team! One Cause!”
그렇게, 55회에 걸친 기나긴 슈퍼볼 역사 속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열광적인 응원 속에서, 템파베이 버커니어스와 캔자스 시티 치프스의 슈퍼볼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게임 팬들의 축제이자, 미식축구를 사랑하는 스포츠 팬들의 축제가.
상혁이 던진 떡밥으로 뜨겁게 달궈진 그 경기의 열기는, PTW의 팬들이 이번 슈퍼볼 광고에 걸고 있는 기대감을 표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