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 파일럿 선정 기준
“상혁 씨. 이제 슬슬 행사에 참여할 파일럿의 선출 문제를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로봇의 개발이 어느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에 도달하자, 기열은 상혁에게 파일럿을 뽑아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기열이 보유한 유일한 인간 파일럿은, 목숨을 내놓고 로봇에 탑승해 열심히 테스트에 임하고 있는 칼 구스타브밖에 없었기 때문에.
행사는 거대 로봇의 1:1 대결이 아닌 5:5 팀 파이트로 이루어질 예정이었고, 그렇기에 최소 9명의 파일럿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행사 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등의 예기치 못한 상황을 생각하면, 예비 파일럿의 존재 역시 필수였다.
“저희가 로봇을 개발할 때 조종간을 잡고 조종하는 방식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로봇의 전투 기능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파일럿의 숙련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요.
레버를 어떻게 조작해야 팔을 어떻게 휘두를 수 있는지, 그 수많은 버튼 중에 어떤 버튼을 눌러야 보조 무기를 꺼낼 수 있는지.
조종자의 실력이 좋을수록 전투중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응력이 좋아질 것이고, 그래야 좀 더 화려한 전투가 가능해질 겁니다.”
기열의 말을 들은 상혁이 잠시 고민하다 기열에게 물었다.
“현재 제작 중인 로봇의 개발 진척도는 어떻습니까?”
“구스타프 씨와 범배 씨가 진행 중인 일부 미세조정을 제외하면, 10대의 나이츠 중 8대는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엥? 그거 전에도 완성되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완성에서 갑자기 완성 단계로 내려갔는데요?”
“뭐, 연구동 직원들 성격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완성이라고 해놓고 자꾸 뭘 더 붙이는 사람들이라 솔직히 말하면 아마 행사 진행하려고 로봇을 옮기지 않는 이상은 계속 업그레이드를 시도할 겁니다.
잠시 자료를 보며 설명해드리죠.”
기열은 워크 패스트로 PTW 서버에 접속해 자료 폴더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는 F11 키와 ctrl, I, enter 키를 순서대로 누르자 보안 폴더에 접근할 수 있는 메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거 영화 아이론 맨 mk 1 업데이트 할 때 나왔던 운영체제 업데이트 키 아니었나요?”
“맞습니다. 물론 뒤쪽에 개인 보안 코드가 따로 더 들어가긴 하지만요.”
기열이 나머지 코드들을 입력하자 비밀 폴더의 보안이 해제되었고, 그는 그중 하나의 파일을 열어 상혁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의, 멋진 외형으로 완성된 10대의 로봇에 대한 데이터였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는 각각의 로봇이 기본 설계에는 충실하게 따르되, 각 로봇에 따른 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나이츠를 개발했습니다.
원작 게임에 나오는 나이츠는 수백 종류가 넘고, 각 나이츠 별로 독특한 기술을 쓰니까요.”
기열이 가장 먼저 보여준 로봇은, 짙은 녹색이 감도는 외장이 달린 로봇이었다.
주먹에 밴드를 감은 것처럼 두꺼운 합금 장갑이 달린 그 로봇은, 다른 로봇에 비해 몸을 보호하는 장갑이 매우 작게 달려 있었다.
“민첩 계열 로봇인가요.”
“이 로봇의 이름은 ‘태극’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른 로봇에 비해 극단적으로 경량화한 방어 장비를 갖추고 있죠.
이 로봇의 특징은, 전신을 구성하는 메인 프레임에 가변식 주퇴복좌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겁니다.
원래는 자주포나 탱크에서 포를 쏠 때 발생하는 충격을 흡수하는 장비인데, 저희는 이것을 로봇의 뼈대에 적용했죠.
쉽게 말하면 유연성 있게 접혔다 늘어나는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어 시 발생하는 강한 충격을, 마치 아코디언처럼 흡수할 수 있는 로봇이 바로 태극입니다.
대신 접히는 장갑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장갑의 두께가 얇아졌고, 다른 로봇에 달린 두꺼운 추가 장갑을 달고 있지 않죠.
하지만 가벼워진 출력을 센서 성능으로 보조하고 있어서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포탄을 전부 맨손으로 쳐낼 수 있는 로봇이기도 합니다.”
“원작 게임에서는 로봇의 커스터마이징이나 업그레이드도 지원하는데, 이 로봇에도 그런 적용이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외장 장갑을 추가하는 경우는 주퇴기가 뒤로 밀리면서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이 동작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큰 강점을 포기해야하죠.
구스타프 씨는 태극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다른 로봇처럼 커다랗고 강력한 무장 대신, 좀 더 경량화된 무장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추천하셨습니다.
숙련된 조종사가 조종할 경우, 굉장한 기동력을 보장하는 머신이 될 것 같다고요.”
“다른 로봇도 보여주시죠.”
기열이 다음으로 보여준 로봇은, 앞서 보여준 로봇과는 정 반대 컨셉의 로봇처럼 보였다.
거울로 대신 써도 될 것처럼 매끄러운 장갑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로봇은 태극보다는 덜 민첩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중장갑 로봇보다는 가벼워 보이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이 로봇의 코드 네임은 ‘미라지’입니다.
이것도 여전히 경량형 로봇중의 하나지만, 태극과는 컨셉이 조금 다른 로봇이죠.
미라지에 달린 장갑은 다른 로봇의 장갑보다 훨씬 얇은 대신, 자동으로 맞는 각도를 조정하여 도탄각을 만들어내는 기능이 달린 가변형 경사 장갑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신에 달린 수많은 센서가 자신을 공격하는 공격의 방향을 감지하여 항상 최적의 각도로 탄환을 튕겨낼 수 있도록 장갑의 각도를 자동으로 조정합니다.
그런 이유로 전투 중에 격렬한 집중포화를 받으면 장갑이 물결치듯 움직이게 되는데, 그 신비한 모습 때문에 미라지라는 이름이 붙은 로봇입니다.”
“이거는요?”
상혁이 특이하게 4개의 다리가 달린 로봇을 지목하자 기열이 말했다.
“그건 코드네임 ‘스나이퍼’입니다.
어깨에 달린 기다란 장사정포가 있고, 해당 포의 충격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4개의 다리를 달았죠.
사실 스나이퍼는 변신형 로봇으로 설계되었기에, 이 상태에서 2족 보행 형태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뒤쪽의 두 다리는 평소엔 접혀서 등에 달려 있거든요.
장사정포를 쏘기 위해 스나이퍼 모드로 들어가면, 등에서 두 개의 다리가 추가로 내려오며 충격을 흡수하게 되죠.”
“전체적으로 로봇의 전투 스타일에 따라서 디자인이 꽤 많이 변경되었네요.
원래 개발되던 로봇은 전반적으로 통합성이 강조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뭐랄까, 장비만 보아도 어떤 식으로 전투를 하는 로봇인지 한눈에 보이는 느낌입니다.”
상혁이 로봇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기열은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아, 그건 사실 PTW덕분이기도 합니다.”
“PTW덕분이라고요?”
“원래는 저희도 통합 설계 위에 장갑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을 쓰려고 했었죠.
사실 그렇게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꽤 어려운 작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저희가 원본 디자인으로 참고해서 쓰던 로봇들의 모델링과 애니메이션이 전부 변경되었더군요.
태극에 들어간 ‘접히는 프레임’이라던가 미라지의 ‘가변형 경사 장갑’등, 원래는 중세 기사의 갑옷 같은 이미지의 로봇 디자인들에 갑자기 현실성이 들어가기 시작했죠.
그 로봇들의 설계에 들어간 아이디어는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것이 실제로 구현 가능한지를 테스트한 뒤 로봇에 적용했죠.
그 결과가, 지금 완성된 로봇이고요.”
상혁은 기열에게 로봇들의 디자인이 변경되기 시작한 날짜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해당 날짜 근처의 KOH의 업데이트 로그를 뒤져본 뒤,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마셜 씨와 릭 씨가 한 작업이구나.’
아마도 지난번 기열이 건네준 데이터를 받아 진행한 상혁의 업데이트를 보고,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로봇들의 디자인을 변경한 모양이었다.
상혁은 변경된 로봇들에 적용된 신규 기믹들을 꼼꼼히 살폈다.
그것은 ‘이런 구조를 사용하면 이런 전투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가정하에서,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 ‘현실적인 로봇’을 구현해보려는 인간의 상상력이 듬뿍 담겨있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훨씬 개성 있어진 로봇들의 디자인을 보며, 상혁이 입을 열었다.
“변화된 로봇들의 기믹이나 디자인은 마음에 드네요.
로봇의 전투력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요?”
“가상 스킬을 사용한 전투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현실에서의 전투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둘 다입니다.”
“그거라면 몇몇 불가능한 일부 스킬을 빼고는 대부분 구현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나 가능할 법한 스킬들을 현실에서 전부 구현하는 건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현실적으로 전투가 가능한 로봇을 개발하는 중이죠.
아마 저 로봇들 중 아무 로봇이나 전장에 가져다 놓아도, 현대전에 쓰이는 최신형 전차들과 좋은 싸움을 벌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 부분에서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사람들이 실제 전투가 가능한 로봇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저희가 만든 로봇을 스포츠의 도구가 아닌 전쟁 도구로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스테이지 위의 전투에서는 프로그램의 통제에 의해 상대 로봇에게 실탄이 아닌 가짜 탄환을 발포하고, 상대 파일럿에게 위해가 가해질 만한 모든 공격이 사전에 차단되긴 하지만요.
만약 누군가가 잠겨있는 락을 해제하고 이 로봇들을 무기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 부분은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죠.”
상혁이 우려를 표하자 기열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혁이 우려할만한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현재 개발된 로봇들은 전원 공급이 끊기는 순간 겨우 5분 정도 가동이 가능한 로봇들입니다.
현재 건설된 스타디움에는 로봇의 발 위치를 추적하여 해당 로봇이 서 있는 패널에 초고압 전류를 바로바로 흘려줄 수 있는 기능이 있지만, 전장엔 그런 시설이 없죠.
게다가 그 엄청난 출력을 배터리로 처리하게 하려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배터리 용량이 필요할 테고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희가 개발한 로봇은 오로지 연구실 안이나 스테이지 위에서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공간에서는, 겨우 5분동안 화려하게 싸우다 전원이 나가는 장난감일 뿐이죠.
그러니 전쟁 병기로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접어두셔도 좋을 겁니다.
토디 스타크가 아크 원자로라도 만들어서 던져주면 모를까, 아직 인류가 가진 배터리 기술로 저 로봇을 완벽하게 구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합금으로 만들어진 15미터 강철 거인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바로 동력 공급의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인류가 가진 그 어떤 배터리 기술로도 로봇을 장시간 구동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김기열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로봇의 동력을 공급하는 배터리 부분에, 독립적으로 구동되는 두 개의 거대한 플라이 휠을 집어넣었다.
김기열 교수가 로봇의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개발한 플라이 휠은, 말하자면 모터와 발전기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부속이라 할 수 있었다.
전원이 공급되는 순간, 플라이 휠은 무거운 회전자를 5초 안에 43,000RPM까지 가속한다.
그리고 전력 공급이 끊기면, 모터처럼 동작하던 플라이 휠은 이번엔 반대로 그 회전력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물론 만들려는 전압이 크면 클수록 회전자에 걸리는 저항도 커지기에, 무거운 회전자를 아무리 고속으로 회전을 시켰다 하더라도 회전자의 속도는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충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화학식 배터리와는 다르게, 플라이 휠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걸리는 속도가 극단적으로 짧은 특성이 있었고, 김기열 교수는 바로 그 장점을 이용하여 로봇의 무거운 관절을 움직이는 주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현재 사용 중인 동력원은 충전이 극단적으로 빠른 대신 방전속도도 극단적으로 빠른 편이죠.
만약 필드에서 저희 로봇을 쓰려고 한다면 아마 송전탑 부근에서 케이블을 달고 싸워야 할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잠깐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죠.
어차피 가상의 실탄을 쏘고 상대의 몸에 닿지 않을 검을 휘두르는 거라면, 지금 만드는 로봇을 이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고요.
그냥 ‘움직이는 것’만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것과, ‘전투가 가능한 로봇’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력은 차원이 다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혁 씨의 말대로, 만약 모든 기능이 가상으로 돌아가는 로봇이었으면 이토록 애착이 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바로 몇 달 전의 일이지만, 실제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이 아닌, 가상의 데미지를 주는 방식으로 전투를 진행하자는 범배의 아이디어는 기열을 몹시 흥분시켰었다.
그 아이디어를 잘만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화려한 전투를 보여주면서도 개발의 난도를 확 낮출 수 있을 테니까.
기열에게 있어서, 범배의 아이디어는 실탄을 맞을 필요가 없으니 장갑의 두께를 줄여도 되고, 장갑의 무게가 줄어드니 구동부에 요구되는 출력도 확 낮출 수 있는 말 그대로 일석이조의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기열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처음부터 가짜 이펙트로만 구성된 장난감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김기열 교수님을 끌어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냥 관객들 전체에게 딥 다이버를 씌우고, AR로 구현된 로봇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겠죠.
물론 좀 더 화려한 전투를 위해 가상의 스킬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범배 씨의 아이디어엔 저도 찬성하지만, 현재 개발 중인 로봇의 개발 방향을 바꾸자는 의견에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건 이 프로젝트의 전체 의미를 퇴색시키는 결정이 될 테니까요.”
“프로젝트의 전체 의미요? 개발 중인 게임의 홍보를 위해 게임에 등장하는 로봇을 1:1 사이즈로 만들어 전투를 보여주려는 게 이 프로젝트의 의미가 아닙니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죠.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실물 크기로 로봇을 만들어 서로 실탄을 쏘고 티타늄 블레이드를 휘두르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겁니다.”
상혁이 말했다.
“교수님. 지금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컴퓨터의 어시스트라던지, 현대 전차가 할 수 없는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면서 실전성이 확보되었지만, 애당초 이족 보행 로봇이란 것 자체가 그다지 효율적인 물건은 아니죠.
그건 그냥 로망의 덩어리 같은 겁니다.
조종도 사실 PRD를 사용해서 원격으로 조작하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이지만, 저희는 굳이 사람이 탈 수 있는 조종석을 로봇 안에 욱여넣었죠.
그것 역시 로망 때문이고요.
그리고 효율을 따지자면 애당초 이 컨벤션 전체를 VR환경에서 구현하는 것이 가장 싸게 먹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굳이 20만 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거대한 스타디움을 건설하여 사람들이 거대 로봇들의 전투를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더 로망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같은 기준으로 볼 때, 로봇이 가진 전투력 역시 로망의 한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바디 전체가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진 장난감 총과, 전체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델건의 차이 같은 거죠.
어차피 유저들도 금방 알게 될 겁니다.
저희가 로봇에 직격당하는 포탄은 폭발만 화려한 가짜 탄환을 사용하고, 무식하게 휘두르는 티타늄 블레이드도 상대 로봇의 파일럿 석 근처에서는 강제로 멈추게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프로그램이 강제하고 있는 제약을 해제하는 순간, 저희의 로봇들은 전차조차도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는 검을 휘두르며, 10인치 두께의 장갑도 뚫을 수 있는 탄환을 쏠 수 있을 테니까요.
전 실제로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로봇의 전투력을 강제로 낮춰서 수행한다는 전투의 개념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스테이지 위에 있는 로봇이 단순한 장난감이 아닌 ‘진짜 로봇’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기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애당초 전투력이 없는 로봇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플라스틱 칼을 들고 대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느낌이긴 하네요.
반대로 지금 개발된 로봇들의 전투는 진검을 들고 ‘대련’을 하는 느낌이고요.”
상혁에게 설득된 기열은 그 이후로 범배가 가져온 가상 스킬들을 현실에서 비슷한 형태로 구현하는데 온갖 노력을 퍼부었다.
예를 들어 ‘태극’이 사용하는 고유기이자 상대의 장갑을 뚫고 내부에 데미지를 입히는 ‘통배권’의 경우 시뮬레이션 모드에서는 단순히 손바닥을 대면 충격파와 함께 ‘전산상’의 데미지를 입히게 되어 있지만, 봉인을 풀면 손목에 내장된 파일 드라이버로 상대 장갑을 공격하게 하는 식으로.
그것은 시스템의 봉인을 풀지 않는 이상은 영원히 사용될 일이 없는 장비였지만, 기열과 개발팀은 그것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개발이 진행될수록, 자신들의 로봇이 점점 ‘압도적인 전투력을 지닌 병기임에도 스포츠를 위해 대부분의 기능을 봉인한’, 그야말로 중2병다운 설정의 멋진 로봇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개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개발자도 있을 정도였다.
“만약 5차 NE 컨벤션이 열리는 날 스타디움에 외계인이 쳐들어온다면, 우리가 만든 로봇들이 봉인을 풀고 외계인을 상대로 멋지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외계인이 있어야 싸우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니면 상혁 씨가 미군에게 부탁해서 M1 탱크랑 1:10으로 실전 테스트를 수행한다던가.”
“M1 탱크라···. 그건 좀 흥미로운데.
누가 이기려나?”
“미라지 같은 경우는 가변형 경사 장갑이 있으니 웬만한 포탄은 다 튕겨내지 않을까?”
“현대 전차는 관통형 포탄 말고 근접 신관이 달린 포탄도 사용해.
근거리에서 포탄이 폭발하면, 경사 장갑이고 뭐고 안 통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내구도가 있잖아.
가변형 경사 장갑을 제외해도, 미라지 자체의 방호가 매우 튼튼한 편이니까.
게다가 현대 전차는 공통으로 상부 장갑이 약하다는 특징이 있어.
전차 위로 점프해서 티타늄 블레이드로 내려치면 M1이 아니라 M1 할아버지가 와도 바로 뒤질걸?”
“난 전차에 한 표.”
“난 로봇에 한 표.”
이런 식으로 삼삼오오 모여 VS 게임을 하는 것도 연구원들의 취미 중 하나였다.
그것은 기열이 제안한 대로 로봇의 스펙 자체를 100% 가상 전투에 맞췄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만한 취미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지하 연구동의 개발팀이라도, AR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장난감과 현대 전차를 맞붙게 하려는 미친 인간은 없었을 테니까.
상혁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현재의 나이츠는 장난감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개발된 물건이지만, 실제 스펙은 장난감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물건이죠.
전 사람들이 저희가 만든 로봇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열 씨가 만든 로봇은, 그런 제 의도에 충분히 부합하고 있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찔하네요.
그때 생각난 대로 ‘로봇’이 아닌 ‘장난감’을 만들었다면, 제 마음이 지금처럼 뜨겁지는 않았겠죠.
그래서 더 신경이 쓰입니다.
저희가 만든, ‘장난감’이 아닌 ‘로봇’에, 누가 처음으로 타서 싸우게 될 지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파일럿을 선정하는 것엔 일종의 딜레마에 가까운 문제가 있으니까요.”
“딜레마요?”
“제가 그리는 이상적인 상황에서, 세계에서 최초로 나이츠를 타게 될 조종사는 게이머가 되어야 합니다.
스타디움이 오픈되기 전에 게임을 미리 오픈하고, 게이머들이 KOH를 체험하며 저희가 개발한 로봇 게임에 대해 이해하게 한 후, 체험 기간 가장 성적이 좋은 유저들을 추려서 로봇을 탑승할 기회를 준다면···.”
“오, 그건 굉장히 멋진 아이디어 같은데요?”
“저도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거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애당초 KOH는 PRD 전용으로 개발된 게임이 아닙니다.
패드를 잡고 TV 앞에서 즐기는 일반 콘솔 액션 RPG 장르의 게임이죠.
그러니 조작 방법도 콘솔 패드에 맞추어져 있고, 로봇의 조작도 3인칭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저희가 개발한 나이츠는 게임 패드가 아닌 조종간 형태의 조작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그건 솔직히 빈말로라도 쉬운 조종 시스템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시스템이죠.
물론 조작감 자체는 매우 좋은 편이긴 하지만, 편의성이나 요구 숙련도가 매우 높은 시스템입니다.
패드를 잡고 게임을 즐기던 유저에게 갑자기 조종석에 앉아 로봇을 조종하라고 했을 때, 한번에 능숙하게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게다가 숙련도가 낮은 조종사가 로봇을 조종할 때 생기는 안전 문제도 있을 거고요.
마지막으로, 오늘 처음 로봇을 탄 유저에게 ‘로봇의 포텐셜을 100% 끌어낸 조종’을 요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스타디움에서의 팀 파이트엔 저희가 개발한 로봇을 유저의 눈앞에 선보인다는 목적도 있지만, 숙련된 조종사가 조종하는 로봇들의 화려한 경기를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으니까요.
누구도 느릿느릿 걸음마 하다 뒤로 넘어지는 로봇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지는 않을 거고요.”
“그 말은 결국 PTW의 직원들이나 연구동 직원들 사이에서 파일럿을 뽑으실 생각이라는 소리입니까?”
“그렇게 된다면 이 축제는 게이머들의 축제가 아닌 남의 축제가 되겠죠.
저는 이번 컨벤션을 통해 유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당신도 이 게임을 열심히 플레이하면 언젠가 진짜 로봇에 탑승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저는 그 메시지가 주는 강렬함을 쉽게 포기하기가 어렵네요.”
“흠···. 저는 플레이해보지 않았지만, 저희가 만든 로봇은 원작 게임에서 등장하는 로봇을 그대로 구현한 로봇이죠?”
“예.”
“게임 제목이 뭔가요?”
“나이츠 오브 아너(knight of honor)입니다.”
“로봇에만 신경 쓰다 보니, 게임의 내용에 대해서는 신경 쓴 적이 없었네요.
대충 어떤 느낌의 게임이죠?”
기열의 질문에 상혁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은 로봇과 기계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 한 신비한 소녀를 만나 ‘머신 스피릿’과 대화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동료들과 함께 로봇을 타고 세상을 해방하는 게임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기열이 상혁에게 말했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린 시절의 제가 생각나네요.
그때의 저는 문방구에서 부모님이 사준 로봇 장난감을 품에 안고 이런 망상을 하곤 했었죠.
내가 품에 안은 이 장난감에 특별한 힘이 있어서, 진짜 자신이 숨겨져 있는 곳으로 나를 인도해주지는 않을까?
세상 어딘가에 내가 가진 장난감과 똑같이 생긴 거대 로봇이 있어서, 내가 그것을 탈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할 법한 망상이긴 하지만, 그때의 저는 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정말로 로봇이 타고 싶었거든요.
PTW에서 개발 중인 KOH라는 게임의 주인공은, 왠지 모르게 그 어린 시절의 저를 떠올리게 합니다.
초과학을 가지고 있었던 고대 문명이 멸망한 이후의 이야기라고 했었나요?
고철밖에 없는 고물상에서 매일같이 용도조차 알 수 없는 고물을 수리하면서, 주인공은 생각했을 겁니다.
지금 자신이 수리하고 있는 이 고철은, 어쩌면 고대 문명의 산물이라는 ‘나이츠’의 부속이지는 않을까.
자신이 열심히 고철을 모아서 수리하다 보면, 언젠가 망가진 부속을 모아서 로봇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정확한 해석이십니다.”
“주인공이 가진 능력 중 하나가 로봇의 영혼인 머신 스피릿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셨죠?
그럼 조종사로서의 능력은 따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플레이어가 습득하는 스킬에 따라 천천히 개화합니다.
초반엔 로봇을 걷게 만드는 것도 힘들어하는 주인공이지만, 후반엔 매우 능숙한 조종 실력을 뽐내죠.”
“그럼 초반부의 전투는 어떻게 수행하나요?
초반에 얻는 나이츠를 탈 테니 그리 전투력이 높지도 않을 테고, 주인공은 로봇 조종에 대해서는 아예 문외한이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실력이 부족한 만큼, 주인공과 함께하는 머신 스피릿이 서브 파일럿 역할을 맡아 주인공의 조종을 보조하니까요.”
순간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자신이 ‘반드시’ 그렇게 설계해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에.
상혁은 다급한 목소리로 기열을 향해 물었다.
“교수님. 현재 개발된 나이츠에 는 몇 명이 탑승할 수 있죠?”
그러자 기열이 씨익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두 명입니다. 메인 파일럿과 서브 파일럿.
현재는 서브 파일럿 역할을 AI가 수행하게 하고 그 자리를 비워놓았지만, 저희가 나이츠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조종석은 언제나 2명이 타도록 설계되어 있었죠.
원본 게임의 나이츠가 그러한 설계로 되어 있으니, 반드시 고증을 지켜야 한다고 부탁하셨으니까요.”
“그럼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겠네요.
미리 훈련받은 PTW 직원을 서브파일럿으로 앉혀놓고, 메인 파일럿 자리에 유저를 앉히면 될 테니까요.
부족한 조종 능력은 원작의 머신 스피릿이 했던 것처럼 서브 파일럿이 맡아서 하게 하면 되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상혁 씨.
그 아이디어엔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뭐죠?”
“원작의 설정에서 모든 머신 스피릿은 키가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설정되어 있었죠.
그리고 저희는 그 설정 그대로 로봇을 제작했고요.
그래서 지금 개발된 나이츠의 서브 파일럿 시트는, 건장한 성인 남자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매우 작은 크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파일럿 좌석의 크기를 늘릴 순 없나요?”
“단순히 부품이나 기능을 추가하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죠.
수많은 부속 가운데서도 나이츠의 본체는 기체 구동의 핵심이 되는 엄청나게 많은 부품이 몰려있는 부위입니다.
당연히 거의 여유가 없을 정도로 타이트하게 설계되어 있고요.
그 부분을 수정하려면 ‘기본 설계’를 고쳐야 하는데, 그건 꽤 어려운 일이죠.
본체를 아예 새로 하나 다시 설계해서 만드는 게 빠를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상혁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기열을 향해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로봇을 파일럿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니, 파일럿을 로봇에 맞출 수밖에.”
“되도록이면 155cm이하의 파일럿으로 부탁드립니다.”
기열의 말을 들은 상혁이 모니터에 띄워진 나이츠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머신 스피릿이 전부 여성이라는 설정은 강제 하렘 전개 때문에 들어간 설정이었는데, 진짜로 여성 유저만 탑승할 수 있게 되었네···.”
상혁은 PTW의 여성 직원 중에서도 키가 가장 작은 직원들의 리스트를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로봇의 설계 때문에 파일럿의 신체 조건이 특정된다는 이런 설정조차도,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X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예 원작 설정대로 전부 미소녀로 가자.
하는 김에 아예 원작대로 파일럿 슈트도 입히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상혁은 원작 게임에서 머신 스피릿들이 입는 복장을 떠올리고는 잠시 흠칫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중얼거렸다.
‘노출도는 좀 수정해야겠지만.’
실물 크기의 거대 로봇에 의해 진행되는 화려한 팀 파이트가 끝나고, 로봇에 달린 해치가 열리며 등장하는 두 명의 파일럿.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모습을 상상하며, 상혁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게이머를 즐겁게 만들 풍경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상혁은 곧바로 NE 컨벤션 행사장의 세션을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이전 세션에서 스타디움으로 곧바로 들어가 로봇들의 전투를 본 뒤에 게임을 하게 되는 구조가 아닌, 게임을 먼저 플레이하고 스타디움으로 입장할 수 있는 형태로.
그 과정을 통해, 선택받은 10명의 유저에게 로봇을 직접 탈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상혁은 그 유저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저가 기뻐하는 것을 보는 것 자체를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상혁조차 부러움을 느낄 정도로, 이번 행사에서 선정될 10명의 유저가 느낄 행복은 매우 각별해 보였기 때문에.
상혁은 그 행운의 주인공이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 젠장. 내가 타고 싶다···.’
그러나 상혁은 자신의 마음속에 차오르는 욕망을 강제로 억눌러야 했다.
그가 생각하는 NE 컨벤션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전체 세션을 재배치한 상혁은 조용히 전체 행사장의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기열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재배치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기 체험존에서 성적이 높게 나온 유저들 중에 파일럿을 뽑는 겁니까?”
“그렇죠. 게임을 하고 있으면 저희 직원들이 다가가 말을 걸 겁니다.
잠시 할 말이 있으니 따라와 달라고요.
그리고 스타디움에서 벌어질 VR 로봇끼리의 가상 대결에 대해 설명하고, 조종사로 참가를 부탁하게 되겠죠.
그 시점까지, 유저는 자신이 진짜 로봇을 타게 될 거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일정 숙련도 이상에 도달한 파일럿이 있으면, 그 사람을 데리고 스타디움 지하에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거죠.
조명이 꺼진 방 안에 유저를 집어넣고, 안내 방송을 통해 이야기 할 겁니다.
사실 앞서 말한 VR전투는 거짓말이었고, 진짜 목적을 보여주겠다면서요.
그리고 그 안에서, 그 유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로봇의 두 눈을 보게 되겠죠.
그 순간 조명이 들어오고, 유저는 자신이 조금 전 게임 속에서 보았던 15미터짜리 로봇이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
상혁의 이야기를 들은 기열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기열을 바라보던 상혁은, 행사장 설계도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만족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진짜 NE 컨벤션답네요.”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역사상 최고의 게임쇼’라는 평가를 갱신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전설의 행사 기획자가 내리는 진심이 담긴 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