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 기밀엄수의 건설작업
1년 중 PTW의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바로 슈퍼볼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모두가 미식축구의 열렬한 팬이어서는 아니었다.
PTW 팬들의 태반은, 오로지 슈퍼볼 중간에 나오는 PTW의 광고 때문에 슈퍼볼을 시청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매년 슈퍼볼이 열릴 시기가 오면, PTW 팬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내기가 오가곤 했다.
‘과연 올해는 NE 컨벤션에 대한 광고가 나올 것인가’에 대해.
그러나 2018년 8월 15일에 열린 마지막 NE 컨벤션 이후로, 많은 팬들은 다음 NE 컨벤션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였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마지막으로 열렸던 4차 NE 컨벤션보다 ‘더 멋진’ 축제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 중인 ‘코넥트’와 MYOM이 최초로 공개되었던 1차 NE 컨벤션.
그리고 지금은 고전 게임으로 취급받으면서도 게임 방송 인기순위 상위권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OGC가 공개되었던 2차 NE 컨벤션.
그리고 발매되는 순간 세계 전자기기 판매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운 희대의 오파츠 딥 다이버의 공개와 함께, 전 세계 5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던 3차 NE 컨벤션.
마지막으로, PRD라는 풀 다이브 VR 장비와 함께, 세계 최초로 수백만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컨벤션으로 진행되었던 4차 NE 컨벤션.
PTW에서 진행하는 컨벤션은 다른 회사의 독립 컨벤션처럼 일정 주기로 열리는 행사는 아니었지만, 내용은 언제나 보는 이를 압도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개발한 게임을 공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함께 공개한 하드웨어를 통해 앞으로 변할 게임 업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행사.
그것이 팬들이 생각하는 NE 컨벤션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NE컨벤션은 항상 Next Experience라는 이름에 걸맞은 멋진 행사였지.
하지만 아무리 PTW라도 4차 NE 컨벤션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지난번 슈퍼볼 때도 NE컨벤션이 아닌 자사의 차기작, 나이츠 어셈블2의 광고만 따로 진행한 거지.
그거야말로 PTW도 NE 컨벤션을 통해 게임을 공개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람들이 기대감을 무한히 채워줄 수 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케일의 행사를 끊임없이 개최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 나도 그 의견에 동의.
솔직히 완벽한 가상 공간에서 펼쳐진 4차 NE 컨벤션이 PTW가 가진 포텐셜의 한계라고 봐도 되겠지.
거기에 HC 101이라는 갓겜을 공개하면서, 헐리우드 유명배우까지 참가하는 초 거대규모 이벤트도 열었고.
솔직히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리얼엔진의 공개 이후에도 아직도 HC 101이 가진 스케일이나 재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PRD 이상의 게임 디바이스를 내놓는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지.
만약 새 디바이스를 내놓는다면, PRD보다 더 좋은 성능의 장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거보다 더 체감율이 높아지려면 아예 매트릭스처럼 뇌에 바늘을 꽂아서 플레이하는 디바이스가 되어야 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건 아무리 PTW라 하더라도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지.
↳ 단순히 신작 게임을 공개하는 측면에서 새 컨벤션이 열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방식은 기존에 하던대로 4차 NE 컨벤션과 똑같이 가상의 세트장에서 진행하는 거로 하고요.
↳ 지금 말하는 게 PTW가 아니라 다른 게임회사라면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했을 것야.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는 건 ‘PTW’와 ‘NE컨벤션’이라고.
NE 컨벤션은 팬들에겐 언제나 기념비적인 행사였어.
어떤 내용이 진행될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광고가 나오는 날부터 하루하루 망상 속에 빠지는 거야.
대체 이번엔 뭘 보게 될까?
가장 좋은 건 티켓을 구하는 거지만, 티켓을 구하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지.
행사에 참여한 팬들의 표정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환상적인 경험을 하는지를 충분히 대리체험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난 4차 NE 컨벤션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행사였어.
무리한 티켓팅이 없어도 딥 다이버만 있으면 누구나 행사를 즐길 수 있었고, 동경하던 헐리우드 영화의 히어로들과 함께 빌런에 맞서 싸울 수 있었지.
PRD로 그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건 더 각별한 경험이었다고 하고.
↳ NE 컨벤션은 언제나 팬들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첫 체험’을 선사하지.
때로는 진짜 마법사가 된 기분을, 때로는 진짜 친구처럼 느껴지는 동료와 노는 기분을, 때로는 우주 전함의 함장이 되거나 진짜 레이서가 된 것 같은 기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퍼 파워를 가진 히어로가 되어 자신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민들을 구출하는 기분을.
PRD를 처음 쓰는 사람들은 보통 게임 진행은 하지도 않고 게임 안의 이런저런 사물을 전부 만져보려고 하는데, 거기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가상의 사물의 촉감을 실제로 느낀다는 독특한 경험은, 게임 자체가 주는 재미를 압도할 정도로 매우 신선한 기분이니까.
그리고 4차 NE 컨벤션은 그런 기분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체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컨벤션이었지.
현실에서는 비행기를 타고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야 겨우 탈 수 있는 전 세계의 유명 롤러코스터를 가상현실에서 타고, 고무로 뒤덮인 범퍼카가 아니라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를 타고 리얼 범퍼카를 즐길 수도 있었으니까.
그건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멋진 경험이었지만, 만약 다음 NE 컨벤션도 똑같은 형태로 진행된다고 하면 난 매우 실망하게 될거야.
기존의 NE 컨벤션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이 미친놈들이 드디어 이런 것까지 해내고 말았구나.’ 하는 감동을, 다음 NE 컨벤션에선 느낄 수 없을 테니까.
결국, PTW의 팬들은 커뮤니티에서의 격한 토론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NE 컨벤션은 언제나 참가자나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하는 놀라움을 지닌 행사다.
▶ 그러니 다음 NE 컨벤션이 열린다면, 반드시 또 한 번 그런 놀라움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
▶ 그러나 이미 PRD와 실제 엔진이 공개된 상황에서, 아무리 PTW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발전된 기술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그렇기에 4차 NE 컨벤션을 마지막으로 다음 NE 컨벤션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 스트리밍 이벤트를 통해 오픈 베타로 전환된 YAS의 공개나, 슈퍼볼 광고만으로 홍보가 진행되었던 나이츠 어셈블 2의 발매가 바로 그 증거이다.
▶ PTW는 가지고 있는 카드를 다 쓴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매우 아쉬운 결론이라 할 수 있었지만, 팬들은 나름 납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PTW라는 회사가 미 국방성을 손에 쥐고 흔들며, 페이트 북에 굴욕을 선사하고, 테슬러나 MS, SANY같은 굴지의 대기업을 쥐락펴락하는 대단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영원한 혁신이란 있을 수 없었기에.
팬들은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다음 NE 컨벤션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 PTW의 사정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PTW라는 회사로 인해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게임라이프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만 점점 길어지고 있는 YAS의 정식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논란이 되곤 했었는데, 그 부분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기에 PTW가 욕을 먹고 있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YAS는 언제까지 오픈 베타만 하는거야? 지금 게임 들어가 보면 수도 지역은 거의 로마제국 전성기 수준으로 개발되었던데?
그걸 다 사람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 거기엔 사정이 있다.
PTW에서는 원래 진즉에 오픈하고 싶어 했어.
근데 한국의 게임 법 때문에 못하고 있는거지.
↳ 한국 법이 왜?
↳ YAS를 공개했을 때 상혁이 발표한 내용이 문제가 된 거지.
YAS가 공개되었을 때, 상혁은 월 정액 요금을 높게 받는 대신 받은 금액의 일부를 게이머에게 환원하겠다고 선언했어.
게임에서 벌어들인 게임머니를 회사에서 다시 사들여서 현금으로 되돌려주겠다고.
문제는 그런 식의 게임머니 환전이 한국에서는 불법이라는 거야.
한국의 게임 심의는 게임머니의 환전에 대해서는 매우 가차 없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니까.
현재 PTW가 YAS를 오픈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 서비스를 제외하고 해외에서만 서비스를 진행하는 거야.
아니면 그렇게 하겠다고 정부에 엄포를 놓던가.
하지만 PTW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는 이야기만 했지, 한국을 서비스에서 제외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
심지어 다른 국가의 YAS유저들에게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한국 서비스 포기에 대한 언급은 절대 하지 않았지.
이 오래된 전쟁은 결국 한가지 방향으로 귀결되게 될 거야.
한국 정부가 게임 머니의 현금화 정책에 대한 규제를 풀던가, 아니면 PTW가 현금화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한국 게이머를 위한 메리트를 제공하던가.
그리고 전자는 확률이 극히 낮은 상황이지.
↳ 후자는 가능성이 있나?
↳ 그것도 쉽지는 않아.
다들 알다시피 PTW는 콘솔 게임회사니까.
랜덤박스 형태의 BM을 사용하지 않으니 게이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메리트라고 해봐야 새로 발매되는 게임을 게임머니로 대신 사게 해주겠다든가 하는 건데, 그건 너무 메리트가 적지.
오른 가격을 감안해도 그리 높은 가격이 아니니까.
하지만 조만간 뭔 수를 쓰긴 할 거야.
다른 회사라면 몰라도, 상대는 PTW니까.
뭔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기적적인 수를 내겠지.
↳ 그 기적적인 수를 가지고 다음 NE 컨벤션 좀 열어줬으면 좋겠다.
난 팬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4차 컨벤션까지 전부 놓쳤거든.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내가 알던 세상이 뒤바뀌는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고.
↳ 젠장.
요즘은 허먼 씨도 PTW 관련 소식은 YAS 관련 내용만 줄창 다루고 있고, PTW가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니 갑갑해 죽겠네.
혹시 여기 있는 사람 중에 PTW 직원이랑 아는 사람 있으면 내부 정보 좀 풀어봐.
NE 컨벤션에 대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그냥 다음 신작이 뭔지만 알아도 소원이 없겠음.
↳ 썰 한번 잘못 푸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서 바로 쫓겨나고 수십억의 정보 유출 배상금을 내야 하는데 누가 입을 열겠음?
거긴 연봉에 아예 비밀 유지 협약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회사임.
사내 정보 유출을 기대하는 것보다 죽어라. 공부해서 PTW에 입사하는 게 더 빠를걸?
그러나 팬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PTW의 직원들도 다음 NE 컨벤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상혁은 관련자를 제외하면 마스터클래스 직원들에게도 해당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상혁은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소수의 직원들에게도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
그런 이유로, 상혁이 다음 NE 컨벤션을 통해 15미터 크기의 거대 로봇 배틀을 시연할 것이란 사실은, PTW의 직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완벽한 비밀 유지를 위해서, 상혁이 단속해야 하는 것은 PTW 직원들의 입만이 아니었다.
테마파크 건설이라는 초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업에 참여한 수많은 작업자의 입을 전부 단속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입을 전부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상혁은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야만 했다.
단순히 비밀 보장 계약이라는 법적 서류만 믿어서 지킬 수 있는 비밀이 아니었기에.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생각 없이 이야기를 내뱉을 수도 있었고, 누군가는 자식들에게 자랑처럼 이야기를 풀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상혁은 세상에서 가장 비밀을 잘 지키는 작업자를 공사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완벽한 작업자.
상혁이 테마파크의 공사를 위해 투입한 그 특별한 인원들은, 바로 범선의 전투 테스트를 위해 개발되었던 인간형 로봇.
‘스턴트 봇’이었다.
“아직 NE 컨벤션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미래가 바뀐 느낌이네요.”
수만 대의 로봇이 절도있게 공사를 진행하는 영상을 지켜보던 기열이 말하자, 상혁이 설명했다.
“로봇을 건설 작업에 사용하는 것은 여러 강점이 있죠.
별도의 수당이 따로 나가지 않으니 인건비가 절약되고, 모든 일을 정해진 절차에 맞춰서 진행하니 안전과 품질이 확보되고, 24시간 공사를 진행할 수 있으니 공기를 단축 시킬 수 있습니다.
덕분에 로봇들이 경기를 펼칠 스타디움의 건설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대체 어떻게 로봇을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 수준으로 훈련하셨습니까?
숙련된 인부의 실력을 로봇이 구현하게 하기는 절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말씀하신 대로, 한 대의 로봇이 공사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수행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쪽 구역부터 저쪽 구역까지 지정된 부품의 나사를 조이라던가, 아니면 철골 구조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사로 고정을 한다던가, 지정된 지역에 콘크리트를 균일하게 붓는 작업 같은 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죠.
저희는 공사 현장을 각 구조에 따라 수천 개의 가상 현장으로 구현하고, 숙련된 기술자를 고용하여 PRD를 사용해 가상 현장에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안에서, 저희는 각 건설 노동자들이 어떻게 구조물의 수평을 잡는지, 금속 간의 거리에 따라 어떤 식으로 용접봉을 다루는지, 어느 정도의 압력으로 볼트를 조이는지, 빠른 작업을 위해 어떤 식으로 주변에 공구를 배치하고 사용하는지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죠.
그리고 그 과정을 그대로 로봇이 따라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각 작업자는 오로지 자신이 맡은 구역의 가상 환경만 볼 수 있었죠.
세트의 전체 모습은 보지 못하고요.
아마 지금까지도 작업에 참여한 작업자들은 자신들이 한 테스트가 일종의 훈련 시뮬레이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15미터 짜리 강철 로봇이 뛰어다니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스타디움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전체 설계를 맡아서 할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했을 텐데요?”
“해당 스타디움의 설계는 제3 법인을 통해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를 설계한 시카고의 설계 사무소. SOM(Skidmore, owings & merrill)에 맡겨서 진행했습니다.
거기서는 자신들이 설계한 건물을 주문한 사람이 PTW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죠.
단지 일종의 설계 실험의 일환으로 로봇이 싸울 수 있는 스타디움 건물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로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해당 프로젝트의 의뢰를 처음 들었을 때, 그곳 담당자가 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죠.”
“뭐라고 하던가요?”
“앞으로도 영원히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건축물 설계에 왜 돈을 쓰는지 모르겠다고요.
그런 식으로 다음 NE 컨벤션에 관한 모든 정보는 조각난 상태로 통제되고 있습니다.
전체 그림을 보지 않으면, 절대 무엇을 진행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구조로요. 게다가···..”
“게다가?”
“혹시 운 좋게 몇 개의 정보를 취합해서 목적을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누가 믿겠어요?
자신들이 사는 세상의 한 구석에서, 어떤 정신나간 인간들이 15미터짜리 거대 로봇끼리 실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스타디움을 건설하고 있다고요.
‘혹시 그런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너무 없으니 머리에서 지워버리게 되겠죠.”
“결국 저희가 개발한 나이츠의 실물만 공개되지 않으면, 다음 컨벤션의 정보가 유출될 일은 없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서울에 있는 천하대에서 대전에 있는 스타디움으로 그 거대한 나이츠를 어떻게 옮길지가 문제겠네요.”
“그래서 처음 설계할 때부터 부품의 해체와 교환이 간단한 구조로 설계해 달라고 부탁드린겁니다.
여기서 완성된 나이츠를 해체한 후, 부속 단위로 대전에 옮겨서 그쪽에서 조립할 수 있도록.”
“그 부분은 완벽합니다.
물론 트럭에 실릴 정도로 작게 분해하려면 분해 조립에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조립이 정상적으로 수행되었는지를 테스트할 공간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스타디움의 지하에는 PTW 지하연구동과 같은 구조의 공간이 배치되어 있죠.
조만간 그쪽 공사가 마무리되면, 전체 개발 설비를 그쪽으로 이전하고 거기서 개발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상혁은 완성 예정인 테마파크의 건설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각 지역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입구에서 스타디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지역은 히스토리 영역입니다.
거기엔 역대 NE컨벤션에 사용된 세트들이, 현재의 PTW 기술에 맞게 컨버젼 되어 들어가 있죠.
1차 NE 컨벤션에서 저희가 공개하려던 메인 타이틀은 마법사를 테마로 한 게임인 MYOM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희는 코넥트를 이용해 유저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수많은 어트렉션을 설치했었죠.
이번 NE 엑스포에 설치될 어트렉션은, 그것의 강화된 버전입니다.
입장객은 딥 다이버를 쓴 상태에서 화면 속의 마나가 아닌 허공에 떠 있는 마력을 자신의 움직임을 통해 제어하는 체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마력을 다루는 능력에 따라 미리 준비된 수많은 설비를 직접 만지고 놀 수 있겠죠.
그곳을 통과하면, 2차 NE 컨벤션 에리어로 갈 수 있습니다.
거기엔 딥 다이버를 지원하도록 개조된 EOD를 플레이하고, OGC에서 게이머들이 친구들과 놀던 학교를 직접 거닐 수 있는 세트가 준비되어 있죠.
세트의 구성은 2차 NE 컨벤션과 같지만, 거기에도 특별한 체험 기능이 하나 추가될 겁니다.
OGC를 즐겁게 플레이한 유저라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체험이 준비되어 있죠.
그곳을 통과해 3차 NE 컨벤션 에리어로 가면, 저희가 5가지 테마로 전 세계 5곳에서 동시에 진행했던 3차 NE 컨벤션의 어트렉션을 동시에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지역엔, 4차 NE 컨벤션의 하이라이트였던 스테이지 무대를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유저는 딥 다이버를 통해 그 장소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당시 게이머들이 헐리우드 히어로들과 함께 싸웠던 전투를 관람할 수 있고요.”
“그럼 로봇이 등장하는 스타디움은 바로 그 뒤에 있겠군요.”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츠의 형상을 본뜬 1:1스케일의 동상이 서로 검을 맞대고 있는 정문을 지나면, 인간이 즐기는 스포츠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스타디움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경기장의 크기가 큰 만큼 스타디움의 지름도 늘어나기에 참관 인원은 20 만명 규모가 되죠.
거기에 안전을 위한 완충 지역을 포함해 꽤 먼 거리에서 경기를 지켜보게 되겠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은 기껏해야 2m밖에 안 되는 작은 인간이 아니라, 멀리서도 확연하게 볼 수 있는 15미터짜리 강철 로봇이니까요.
게다가 딥 다이버를 이용하면 경기장 안에서도 파일럿의 시야나 시네마틱 뷰, 원거리 줌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서 경기의 박진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상혁의 설명을 들은 기열은 벅찬 표정으로 눈앞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물었다.
“결국. 이 모든 준비를 통해 다음 NE 컨벤션이 진행도는 거군요.
팬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거대 로봇들의 대결을 히든카드로 쓰면서 말이죠.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할 겁니다.
PTW의 팬들은 물론, 전 세계가 놀라게 되겠죠.
그리고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PTW의 직원들도요.
행사 공개는 이전처럼 슈퍼볼 광고를 통해 하실 건가요?
오픈은 8월 15일에 맞춰서 하시고?”
“그래야죠. 그것도 이제 일종의 전통이 되기도 했고, 넉 달 후면 2021 슈퍼볼 결승전이 펼쳐질 테니까요.”
“얼마나 공개하실 생각입니까?”
“행사 테마에 대한 힌트로 로봇과 관련된 게임이 출시될 예정이라는 것.
그리고 범선이 메인인 게임이 나올 것이라는 것.
그 두 게임의 스케일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암시하는 광고가 나가게 되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5차 NE 컨벤션의 메인 카피가 나갈겁니다.”
“메인 카피라···. 분명 지난번 4차 NE 컨벤션의 메인 카피가 ‘Game Changer’였죠?
이번 5차 컨벤션의 메인 카피는 뭐가 됩니까?”
그러자 상혁이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기열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수님. 이번 5차 NE 컨벤션의 테마는 로봇이고, 행사 진행지는 대전입니다.
그럼 당연히 메인 카피로 적합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죠.”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기열이 눈을 크게 뜨고 상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헉,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실물 크기의 로봇들이 싸우는 행사를 기획한 순간부터, 저는 이 행사에 가장 어울리는 메인 카피가 바로 그거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상혁은 기열에게 보여주었던 사진을 내려, 그 사진 파일이 담긴 폴더의 이름을 보여주었다.
거기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슈퍼로봇대전(Super Robot大田)’이라는 폴더명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로봇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 인기 게임의 시리즈 제목인 ‘슈퍼 로봇 대전(Super Robot大戦)에서, 뒤쪽의 마지막 한 글자의 한자를 개최지의 지역명인 대전(大田)에 맞춰 바꾼, 일종의 말장난처럼 보이는 타이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