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29화 (430/485)

429. 실전 테스트

“어떻습니까? 실제 거대 로봇에 탑승한 기분은?”

로봇에 탑승한 구스타프의 귀에 김기열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구스타프는 자신이 탑승한 로봇을 조종하여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고, 서서히 올라가는 전방 스크린의 시야를 보며 기열에게 답했다.

“15미터짜리 거인이 된 기분이군요.

하지만 아직은 PRD 안에서 시뮬레이터로 훈련할 때와 그리 다른 느낌은 아닙니다.

지금 느껴지는 것보다는 더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구스타프 씨가 타고 있는 조종석은 저희 개발팀이 가진 기계 공학 기술을 총동원해서 만든 겁니다.

큰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설치한 42개의 유압식 액추에이터(actuator : 작동기).

작은 충격을 흡수하는데 사용되는 108개의 공압식 액추에이터.

조종석에 가해지는 충격을 감지하여 자동으로 장력을 조정하는 탄소섬유 와이어와 컨트롤 모터.

자잘한 회전을 상쇄시키는 회전식 프레임.

그 모든 기계장치가 섬세하게 제어되는 운영 시스템의 명령을 받아 조종석에 가해지는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합니다.

말하자면 기계장치로 제어되는 가공의 유체 위에 둥둥 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격렬한 조작에도 사용자가 멀미를 느끼지 않도록.”

“그 데이터가 PRD의 훈련용 시뮬레이터에 적용되어 있던 거군요.

어쩐지 아무리 격렬하게 움직여도 PRD 안에서의 시야가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했습니다.

대놓고 두들겨 맞을 때 빼고는.”

“두들겨 맞다뇨? 이번 테스트는 구스타프 씨가 단 한 대도 맞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진행되는 테스트 아닙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맞을 때 얼마나 아플지 확인은 해야 하니까요.

아예 뒤질 정도의 데미지가 가해지면 PRD가 강제로 피드백을 중단하기 때문에, 사망수준의 데미지가 가해질 때의 충격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본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어느정도까지 흡수 가능한지 시뮬레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죠.

전문적인 훈련을 위해 개발된 PRD-S 같은 경우는 강제로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PRD-S의 피드백 레벨을 위험 수준까지 올리면, 뼈가 부러지는 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에 멍이 드는 수준의 충격까지는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충격을 전달하는 건 하드웨어 레벨에서 막혀있고요.

그래서 시뮬레이션 테스트에서는 일부러 방어를 하지 않고 적 로봇의 공격을 몸으로 막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나요?”

“민준씨가 개발한 운영체제에는 파일럿에게 위험이 가해질 정도의 충격량이 예상되는 경우 공격의 강도를 강제로 조정하는 기능이 들어있죠.

그건 해당 운영체제를 그대로 쓰는 시뮬레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드백 레벨을 최대한 올린 상태에서, PRD는 한 번도 데미지 오버로 인한 강제 셧다운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실제 로봇들이 전투를 벌이는 순간에도, 상대 파일럿에게 치명상이 갈만한 공격을 로봇이 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러니 최악의 상황에서도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조종 시의 충격에 대해서도, 시뮬레이터에 입력된 데이터가 실제 로봇의 데이터와 같다면 충분히 조작 가능한 수준일 테고요.

하지만 이번 테스트에서 중요한 건 제 몸의 안전 여부가 아닙니다.”

구스타프는 자신이 조종하는 로봇의 팔을 천천히 뻗어 옆에 세워진 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스피커를 통해 기열에게 말했다.

“이번 테스트를 통해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현재 개발된 로봇의 강도와 움직임으로 프로젝트가 목표하는 수준의 전투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무식하게 무거운 15미터의 티타늄 거인이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는 과정에서, 관절과 구동부의 내구력이 충분히 전투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대로, 저는 두 로봇이 최대 출력을 내서 서로를 후려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면, 현재 개발된 로봇의 스펙으로도 충분히 전투다운 전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지금부터 이범배 씨가 개발한 업데이트를 통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션 테스트 프로토콜 개시.”

[모션 테스트 프로토콜을 시작합니다.]

“레프트 암 테스트.”

[레프트 암 테스트 개시]

구스타프가 왼손으로 잡은 조종간을 움직이자, 로봇의 왼쪽 팔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PRD를 통해 사용자의 움직임을 로봇이 그대로 재현하는 조작방식보다는 훨씬 불편한 조종 방법이었지만, 구스타프는 오히려 그 점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파일럿 석에 앉아 양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조작하는 것은, 그야말로 끝내주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구스타프는 왼팔에 달려 있는 조종간의 버튼을 눌러 손가락의 움직임을 테스트했다.

그러자 로봇이 손가락의 관절을 푸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펴는 행동을 시작했다.

[레프트 암 모션 테스트 프로토콜 클리어.]

“라이트 암 테스트.”

[라이트 암 테스트 개시]

구스타프는 조종간을 움직여 로봇의 각 신체 부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PRD의 훈련시뮬레이터를 통해 3주라는 기간 동안 거의 손발처럼 로봇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구스타프는 조종간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김기열은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네요. 조종간으로 조작하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저 조작방식은 개발자인 저도 저 수준으로 다루지는 못하는데요.”

그러자 피곤한 표정으로 로봇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던 이범배가 말했다.

“애당초 운영체제와 시뮬레이터 데이터를 받았을 때, 제일 의문이 그거였습니다.

그냥 로봇의 움직임을 PRD와 동기화시켜서, 사람의 모션을 그대로 따라하게 만드는 게 가장 편한 조작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어서요.

물론 PRD라는 장비 자체가 부피가 어마어마한 장비이니 PRD를 탑재한 상태에서 충분한 공간 확보를 하려면 로봇의 크기가 커져야겠지만, 그 문제는 무선 조종으로도 커버할 수 있는 문제 아니었을까요?

파일럿이 외부의 안전한 지역에서 원격으로 로봇을 조작하게 하면, 조종석이 차지하는 공간 만큼 내부 공간도 아낄 수 있고요.”

“그렇겠죠. 저희도 그런 조작방식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PRD같은 장비가 존재하지 않으면 모를까,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방식이 바로 PRD에 의한 원격 제어 방식이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조종석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양손으로 잡은 조종간과 발에 달린 패드 외에도 조종에 필요한 수많은 기능을 제어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컨트롤 버튼이 추가되어야 했고요.

게다가 로봇의 안에 조종자가 탑승하면 흔들림이나 안전 문제도 발생하게 되죠.”

“그럼 왜 굳이 직접 사람이 탑승해서 조종간을 잡고 조작하는 머신으로 개발한 겁니까?

장점은 하나도 없고 단점만 가득하지 않나요?”

“애당초 그 논리로 따지면 이족 보행 로봇의 개발 자체가 넌센스죠.

저희는 이 로봇에 꿈과 로망을 담았습니다.

어린 시절 TV 앞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거대 로봇의 파일럿이 된다.’라는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로봇.

익숙해지긴 어렵지만 숙달될수록 자신의 손발처럼 제어가 가능한 조종방식.

가슴의 해치가 열리는 순간, 조종사의 탑승을 기다리는 수많은 버튼과 반짝이는 디스플레이.

저희는 현재의 조작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산업용 스위치들 테스트했습니다.

푸쉬 버튼형 스위치, 터치식 스위치, 토글 스위치, 회전식 스위치, 슬라이드 스위치, 조이스틱 스위치···.

그 많은 스위치들을 테스트하며, 저희가 찾아 헤멘 것은 단 하나뿐이었죠.

‘어떤 스위치가 가장 조작할 때 기분이 좋은가.’

범배 씨. 로봇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전원을 넣기 전에 한 줄로 늘어선 토글식 스위치의 레버를 하나하나 올리는 과정도, 부스터의 출력을 조정하기 위해 옆구리에 있는 레버를 꺾어서 미는 과정도, 필살기를 쓰기 위해 거대한 붉은 버튼 위에 달린 투명한 플라스틱 마개를 올리는 과정도, 그 전부가 하나하나 소중한 경험이자 재미가 됩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버튼의 촉감과 감각도, 레버를 올릴 때 귓가에 들리는 경쾌한 소리도.

그 모든 게 심장을 미친 듯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좋은 재미요소가 되죠.

확실히, 지금 저희가 개발한 로봇은 세계에서 가장 조종하기 쉬운 로봇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게 말한 기열은 로봇의 안에서 그 기분 좋은 감각을 만끽하고 있을 구스타프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조종하는 맛’이 있는 로봇인 건 확실하죠.

그건 지금 조종석 내부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구스타프 씨의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기열의 말대로, 구스타프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조종간에 달린 모든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범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구스타프의 그런 모습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의 모습 같았기 때문에.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 보이는 그런 어린아이 같은 행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내 전투에 필요한 모든 조작 버튼을 테스트 완료한 구스타프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좋습니다.

아니, 환상적이네요.

버튼 하나하나의 조작감이 진짜로 끝내줍니다.

마음 같아서는 종일 버튼만 만지작거리고 싶을 정도로요.

PRD로 구현된 시뮬레이터 안에서도 꽤 괜찮은 조작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물은 더 뛰어나군요.

이런 멋진 로봇을 개발해주신 개발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연구동 직원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전원이 내려간 조종석에 앉은 채로 내구성 테스트를 핑계 삼아 몇 시간씩 버튼을 만지작거리곤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피젯토이 같은 거라고 보아도 무방하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조종방식의 실전성입니다.

최대한 ‘조종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기에, 아직 실전성이 검증되지는 않았으니까요.

그 실전성을, 오늘 구스타프 씨가 제대로 보여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배틀 테스트 프로토콜 개시.

타깃은 전방에 있는 적 나이츠.

컨트롤 세팅은 근거리 전투 세팅으로.”

[배틀 테스트 프로토콜이 로드되었습니다.

전방에 있는 나이츠를 메인 타깃으로 설정합니다.

컨트롤 세팅이 근거리 타입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일부 퀵 버튼의 설정이 근거리 전투 전용 세팅으로 변경됩니다.]

“추가 애드온 ‘웨폰 스테빌라이저(Weapon Stabilizer)’ 적용.”

[추가 애드온  ‘웨폰 스테빌라이저(Weapon Stabilizer)’가 기동 되었습니다.

해지하기 전까지 검을 잡은 손의 압력이 유지됩니다.]

“추가 애드온 ‘오토 패링(Auto Parrying)’ 적용”

[추가 애드온 ‘오토 패링(Auto Parrying)’이 적용되었습니다.

검신의 움직임을 추적하여 다른 물체와 충돌 시 자동으로 최적의 각도가 되도록 손목의 움직임을 조정합니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하나하나 대답하는 로봇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경험이었지만, 구스타프는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빠른 테스트에 들어갈 필요를 느꼈다.

“업데이트 적용 된 애드온 중에 타입 ‘근거리’로 설정된 나머지 기능을 전부 활성화해.”

[타입 ‘근거리’로 설정된 모든 애드온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자 검도의 기본자세같이 보이는 균형 잡힌 자세로 서 있던 로봇의 자세가 갑자기 변경되었다.

한쪽 발을 앞으로 내민 채, 거대한 검을 어깨에 걸치고 전방으로 손을 내민 자세로.

그것은 금방이라도 튀어나가 상대의 검을 쳐내려는 듯한 역동적인 전투 준비 자세였다.

“저···. 저게 대체?”

그 모습을 보던 기열은 속으로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든 로봇의 운영체제는, 저런 식으로 전투를 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자 이범배가 씩 웃으며 기열을 향해 말했다.

“저게 바로 이번에 제가 작업한 업데이트입니다.

별도의 복잡한 조작 없이, 숙련된 검사인 구스타프 씨의 전투 스타일을 전부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든 추가 애드온이죠.

하나의 동작을 수행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조작을 요구하는 현재의 조작방식을 커버하면서, 인간의 감각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초고속 전투의 영역을 컴퓨터에게 맡기는 것.

그것이 구스타프 씨가 제게 부탁한 작업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맞아요. 지금 저 인간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패시브 스킬로 온몸을 떡칠하고 전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최적의 각도로 공격을 받아내고, 검을 휘두르는 상태에서도 상대의 빈틈을 향해 검의 경로를 자동으로 수정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들이죠.

저 안에서 구스타프 씨가 하는 역할은, 조종간에서 전달되는 기분좋은 촉감을 느끼며 레버를 휘두르고 페달을 밟는 것뿐입니다.

검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휘두를지, 로봇을 어느 지점으로 이동시킬지는 조종사가 결정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전부 프로그램이 결정합니다.”

“그럼 그냥 AI와 AI가 싸우는 게 아닙니까?!”

기열이 소리치자 범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검술이라는 것은 앞에서 펼친 동작에 따라 뒤에서 펼칠 수 있는 동작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게다가 저 패시브 스킬들은 전부 PRD를 통해 구스타프 씨가 수동으로 축적한 데이터들이죠.

특정 각도로 들어오는 검격에 어떤 각도로 검을 밀어 넣어야 하는지, 상대 검에 실려있는 무게에 따라 어떤 식으로 공격의 방향을 흘려야 하는지.

이 애드온들의 코드는 제가 작성했지만, 그 안에 들어간 데이터는 구스타프씨의 검술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저 애드온은 단순히 구스타프 씨가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을 자동으로, 혹은 버튼 한번 누르는 순간 빠르게 구현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일 뿐입니다.”

그러자 기열이 범배를 향해 물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상대 나이츠의 스펙을 가정한 시뮬레이션 테스트도 수행하셨겠죠?”

“물론이죠.”

“승률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승률이요?”

범배가 웃으며 말했다.

“기본적으로 확률이란 건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을 경우의 수가 존재할 때 쓰는 말이죠.

100만 번 싸워서 100만 번 이긴다면, 그건 승률이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결과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겠죠.”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아마도 지금 바로 눈으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아아아앙!!!!!-

순간 범배와 대화하던 기열의 귀에 묵직한 금속 두 개가 충돌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원래대로라면 충돌하는 순간 잘려나갔어야 할 1세대 블레이드가, 몇 배는 견고한 티타늄 블레이드의 검날을 튕겨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는, 기열이 미쳐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연속으로 터져나가고 있었다.

-캉!카캉! 캉! 카카캉!-

티타늄보다는 훨씬 무른 강철의 칼날을 보전하기 위해, 구스타프가 조종하는 로봇은 끊임없이 검을 들고 있는 손의 각도를 변화시켰다.

때로는 옆면으로, 때로는 칼등으로, 때로는 비스듬한 각도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스타프는 날아오는 검의 옆면을 수도로 내리쳐 막아내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으면 허리가 반으로 쪼개질 수도 있는, 무식한 신기를.

그 모습은 지금까지 수없이 전투 테스트를 반복한 기열조차도 입을 다물 수 없게 하는 모습이었다.

‘로봇이 싸우고 있어.’

단순히 검을 맞대고 파워와 내구도를 측정하는 것과는 다른, 순수하게 상대의 기체를 박살내겠다는 의지만을 담아낸 싸움.

그것은 기열이 그토록 바라고 있었던 ‘거대 로봇의 전투’ 그 자체였다.

“헉, 혹시 지금 우시는 겁니까?”

기열은 옆에서 들려오는 범배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촉촉이 젖은 손가락 끝을 보며 범배에게 말했다.

“우는 게 아니라 천장의 스프링클러가 불량이라 가끔 물이 떨어지는 겁니다.

제 나이가 몇인데, 로봇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울겠습니까?”

“그렇습니까? 스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아니면 여기 천장에 달린 스프링 쿨러가 죄다 불량이던가.”

기열은 범배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거기엔 조금 전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 거대 로봇의 화려한 전투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개발자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열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범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젠장. 그래요.

울었습니다!

우는 게 나쁩니까?

지금 눈앞에서 15미터짜리 거대 로봇이 저렇게 화려하게 싸우고 있다고요?

저걸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건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겁니다.

그리고 전, 전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이고요.

그러니 놀리려면 놀리십시오.

전 제 눈물이 부끄럽지 않으니까.”

“아뇨, 놀리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있었죠.

실제로 저렇게 싸우는 걸 보기 전까지는, 저도 15미터짜리 강철의 거인들이 저렇게 싸우는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분들을 보니 이해가 가네요.

이렇게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스펙의 로봇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아마도 때가 되면 상혁 씨는 이 로봇들을 세상에 공개하겠죠.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할 겁니다.

처음 로봇을 보았을 땐 마감 기한을 맞추겠다고 거의 수면 고문 수준으로 구스타프 씨에게 괴롭힘을 당했기에,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결과를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멋진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겐 영광스러운 경험이었다고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처음엔 게임 개발 파트 직원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생각이었지만, 여러분은 저희가 가진 로봇 공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을 훌륭하게 해결해주셨죠.

범배 씨. 저희는 로봇을 만들 때마다, 해당 로봇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한 직원에게 로봇의 이름을 붙일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구스타프씨가 조종하고 있는 저 로봇은, 말그대로 범배씨가 완전히 새로 태어나게 만든 로봇이나 마찬가지죠.

그러니 이 로봇은 마땅히 새 이름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설계자인 제가 붙인 이름이 아닌, 로봇의 새 아버지인 범배씨가 붙인 이름을요.

범배 씨. 당신의 능력으로 새로 태어난 저 로봇에게, 당신이 붙인 이름을 부여받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기열의 제안을 들은 범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기열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모든 로봇이 제가 만든 업데이트를 품고 세상에 공개되게 되겠죠.

그리고 그건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각인될 겁니다.

로봇 이란 단어가 저 로봇을 상징하는 단어가 될 테고, 저 로봇이 로봇이란 단어를 상징하는 존재가 되겠죠.

어린 아이들은 저 로봇을 모방해 만들어진 장난감을 들고 놀이터를 뛰어놀고, 어른들은 패드를 잡고 저 로봇을 조작한다는 꿈을 꾸며 게임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염원을 담아, 저는 저 로봇의 이름을 ‘영원(Forever)’이라 짓겠습니다.

김기열이 제작하고 이범배가 완성한 세계 최초의 전투용 이족 보행 로봇.

그 로봇의 이름은 ‘포에버’가 될 겁니다.”

“멋진 이름입니다. 아마 로봇에게 영혼이 있다면, 로봇의 머신 스피릿도 기뻐하겠죠.”

영원(Forever).

그것은 나중에 상혁이 이름을 듣자마자 입에서 커피를 뿜게 만든 이름이었지만, 현재의 범배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피곤함과 사랑스러움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눈앞의 로봇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리고 그런 범배의 눈앞에서, 그에게 이름을 받지 못한 다른 로봇은 말 그대로 ‘개작살’이 나고 있었다.

범배가 만든 업데이트가 적용되지 않은, AI가 조작하는 로봇 따위는 패시브로 온몸을 둘둘 감싸고 있는 포에버의 적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로봇의 기체 스펙을 초월한, ‘로봇을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성능의 격차라 할 수 있었다.

-쿠쿵!-

결국, 두 팔과 한쪽 다리, 그리고 머리까지 두 동강 난 거대 로봇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옆엔, 이미 오래전에 두 동강 나버린 5세대 티타늄 블레이드가 초라한 몰골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테스트 과정에서 처참하게 부서진 로봇의 모습.

평소의 그것은 힘들게 로봇을 설계하고 제작한 기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광경이었지만, 기열은 안타까움과 동시에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처참하게 부숴진 로봇의 모습이, 역으로 범배가 만든 업데이트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기열은 시원섭섭한 기분을 느끼며 범배에게 말했다.

“1200억이 순식간에 증발하네요.”

“엑?! 그 정도나 합니까?”

“그것도 원가를 말한 겁니다.

물론 뒷세대로 갈수록 자주 쓰는 부품은 양산 체제를 갖췄기 때문에 가격이 싸지긴 하지만, 새 기능이 추가되는 만큼 비싸지는 부분도 있으니 대당 가격은 얼추 비슷해지죠.”

“좀 살살하라고 할 걸 그랬네요.”

“1200억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테스트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기체의 내구도나 운동 성능 외에 다른 부분을 더 신경써야한다는 좋은 방향성을 제시한 테스트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업데이트를 진행한 범배씨도 대단하지만, 기본 운영체제를 만든 민준씨도 역시 대단하네요.

저 격렬한 전투를 겪으면서도 스턴트 봇을 태운 파일럿 좌석 자체에는 전혀 손상이 가지 않았어요.

아마도 안쪽에 있는 봇 역시 무사한 상태겠죠.

오늘의 테스트는 대성공입니다.

도와주신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열은 구스타프에게도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포에버의 해치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구스타프는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로봇에서 내리지 않은 채 범배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요상한 침묵 속에서, 범배는 잠시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듯 기열을 향해 말했다.

“김기열 교수님.”

“예.”

“사실 저희가 약속한 테스트는 조금 전의 전투로 종료되었지만, 추가로 한 가지만 더 테스트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추가 테스트를요?”

“예.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또 한 대의 온전한 상태의 로봇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번 업데이트에서 근거리 전투 테스트를 위해 사용한 기능은 전체의 절반 정도죠.

나머지 절반은, 다른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진 기능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다른 기능을 포함한 전투 테스트가 정상적으로 동작하는지 확인하고 싶고요.”

“다른 기능이라면?”

“기본적으로 현재의 로봇에 구현된 스펙들은 물리적인 데미지를 기반으로 전투를 수행합니다.

맞죠?

무기로 상대를 때리거나, 팔을 잡아서 던지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렇죠.”

“하지만 저희가 만든 게임 속의 나이츠들은, 물리적인 공격 외에도 마법적인 힘을 사용하죠.

바람의 정령을 부려서 바람의 칼날을 뿌린다던가, 아니면 에너지로 만들어진 방어막을 사용한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설정에 대해서는 저도 읽어 보았습니다만, 그건 구현할 수 없죠.

세상에 수십 톤짜리 강철 거인을 뒤로 날려버릴 수 있는 장풍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게임 속 로봇이 미사일을 쏜다고 해서, 진짜 미사일을 상대 로봇에게 발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진즉에 포기한 상태입니다.

컴퓨터로 제어되는 상대 로봇의 검격을 막아내는 것과, 화약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충격을 버티는 로봇을 만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그렇죠. 그건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교수님.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민준 씨가 파일럿 보호를 위해 로봇의 공격력을 강제로 조정하는 방식을 썼다면, 반대로 저희가 로봇에게 가상의 데미지를 입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가상의 데미지?”

“그렇죠. 제가 만든 업데이트의 나머지 애드온들은, 바로 그런 가상의 데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애드온입니다.

실제로 보시는 게 빠를 테니, 새 로봇을 준비해주시면 양쪽의 운영체제에 같은 업데이트를 진행하도록 하죠.

그럼 구스타프 씨가 어떤 식으로 전투가 진행되는지 보여주실 겁니다.”

전투의 잔해를 치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스타프가 직접 자신의 로봇을 조작해서, 부서진 상대 로봇의 잔해를 빠르게 정리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로봇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새 로봇에 범배가 업데이트를 마치자 새로 등장한 로봇은 마치 구스타프가 하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전투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로봇 둘이 중국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네요.

이번 2차 테스트에서, 상대 로봇은 구스타프씨의 모션과 행동 패턴을 모방한 AI가 조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패시브도 똑같이 적용되고요.

이번엔 근거리 애드온뿐만이 아닌, ‘역할 연기(role play)’애드온도 함께 구동시킬 겁니다.

마법이 함께하는 거대 로봇의 전투가 어떤 것인지, 모두에게 확실히 보여주세요.”

-맡겨주라고.-

구스타프의 듬직한 목소리를 들으며, 기열이 범배에게 물었다.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

그러나 범배는 대답 대신, 근처에 놓여있던 딥 다이버를 집어들어 기열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기열을 향해 미소로 말했다.

“말했지만 보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테스트에서는 상대 로봇이 파괴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딥 다이버는 왜?”

“말씀드렸잖아요.

가상의 데미지를 상대 로봇에 가하는 거라고.

가상의 공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려면, 가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장비를 써야죠.”

그렇게 말한 범배는 자신도 머리에 딥 다이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뒤쪽에 있는 스텝을 향해 외쳤다.

“여기 혹시 팝콘 없어요?!”

그러나 그런 범배의 질문에 대답하는 스텝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이번 테스트의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각자가 머리에 쓸 딥 다이버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잠시 후, 범배는 모든 직원이 딥 다이버를 머리에 뒤집어쓰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팝콘을 요구했다.

이런 멋진 장면은 절대 팝콘 없이 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마침내 한 직원이 범배에게 팝콘을 가져다줌으로써, 범배가 만든 ‘추가 기능’의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이번 프로젝트를 발주한 상혁조차 가능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지극히 ‘게임 회사다운’ 로봇 배틀의 업데이트 테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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