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28화 (429/485)

428. 인간 VS AI

“실례하겠습니다!!!!!”

마치 문을 부술 기세로 부실문을 열고 쳐들어온 릭이 소리치자, 부실에서 서류를 검토 중이던 상혁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산체스 씨. 실례인 줄 아는 사람은 문을 그런 식으로 열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말을 바꾸죠.

이리오너라아아!!!”

그러자 상혁이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애당초 임원실로 쓰이고 있는 공간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실’은 직원 누구나 편하게 들어와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누구에게 용건이 있어서 오셨습니까?

서연이라면 지금 버츄얼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이라 PRD에 접속해서 만나러 가는 게 빠를 텐데요.”

그래픽 파트의 마스터 클래스 직원인 릭과 마셜은 평소에 서연을 찾아오는 경우가 잦았기에, 상혁은 서연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러나 릭은 그런 상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노노놉. 평소엔 AD인 서연 씨를 만나러 자주 방문하곤 했지만, 오늘 제가 용건이 있는 분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 저와 대화를 하고 있는 상혁 씨, 바로 당신이죠.”

“저요?”

“KOA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입니다.”

“나이츠 오브 아너(knights of honor)말씀이시군요.

그 프로젝트에 무슨 문제라도?”

“은근슬쩍 시치미 떼시려는 모양인데 저는 속지 않습니다.

분명 저희가 개발하던 버전에서 애니메이션과 모델링이 변경되었고, 해당 업데이트를 진행한 등록자 목록엔 대장의 이름이 적혀있죠.

제가 궁금한건 이겁니다.

‘도대체 누가 해당 업데이트를 진행했을까.’

이 대답에 대한 답변을 듣기 전엔, 이 부실을 나서지 않을 겁니다.”

“방금 자기 입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등록자 이름이 제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요.

애당초 타인 명으로 로그인할 수 없는 장비가 PRD이니, 제 이름이 적혀있으면 제가 올린 게 맞겠죠.”

“하지만 대장은 기획자이지 애니메이터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본 업데이트 내용은 일반적인 애니메이터가 작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어요.

특히나 대장처럼 비전공자가 할 수 있는 업데이트 내용은 더욱 아니었고요.

그러니 말씀해주시죠.

이번 업데이트의 애니메이션 수정 작업을 누가 진행했는지 말이죠.”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마셜도 끼어들어 한마디를 던졌다.

“설명하시는 김에 모델링 작업에 손댄 사람 이름도 설명해주시죠.”

그러자 상혁은 골치가 아픈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리고는 릭을 향해 말했다.

“산체스 씨의 말대로, 해당 업데이트 내역은 저 같은 비전공자가 작업해서 올리기엔 무리가 있는 내용이긴 하죠.

해당 업데이트는 제가 조력자에게 받은 데이터를 민준에게 부탁해서 게임에 맞게 수정한 뒤 적용한 데이터입니다.

모델 데이터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그분의 이름을 알려주시죠.”

“흠···. 혹시 업데이트 내용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어서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요청하시려는 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작업물엔 문제가 없어요.

아니, 오히려 훌륭하죠. 제가 봐도 지금까지 그 정도로 현실적으로 구현된 로봇의 움직임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그럼 왜 굳이 작업자의 이름을 알려고 하시는 겁니까?

알려드릴 수 있는 이름이었으면 당연히 해당 작업자 이름으로 올렸겠죠.”

“보안 문제 때문입니까?”

“대외 보안 문제도 있지만, 이번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사내 보안 문제도 얽혀있습니다.

직원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아는 내용이라 해당 프로젝트 관련 사항은 알려드릴 수가 없네요.”

“마스터 클래스 직원인 저에게도 알려주실 수 없다는 겁니까?”

“필요하지 않다면요.”

상혁이 딱 잘라 말하자, 릭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상혁은 터벅터벅 걸어가는 릭을 다시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예?”

“이번 업데이트에서 조정된 부분은, 말하자면 종아리나 발꿈치의 가동 부분이나 전반적인 운동 속도의 변화 등 디테일한 부분이 주로 조정되었습니다.

대신 큰 부분에서의 움직임은 여전히 산체스 씨가 작업한 부분을 유지하고 있죠.

굳이 말하자면 이번 업데이트는 산체스씨가 작업한 내용을 날리는 것이 아닌, 작업하신 내용을 업그레이드하는 업데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전 버전보다 더 무게감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해당 작업을 진행한 작업자를 찾으시는 이유가 뭡니까?”

상혁의 질문을 들은 릭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말했다.

“그건 제가 PTW의 마스터 클래스 직원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이유가 되나요?”

“되죠. 대장. 대장도 아시다시피 PTW에서 마스터 클래스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건 그 사람이 어떤 한 분야에서 실력의 정점을 찍었다는 의미가 있죠.

그리고 저는, 적어도 이번 업데이트가 진행되기 전까지는 그런 자부심을 마음에 품고 살았습니다.

적어도 로봇의 움직이는 모션을 표현하는 데에서는, 전 세계의 어떤 작업자에게도 밀리지 않는, 아니 그 이상의 실력을 제가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죠.

하지만 전 이번 업데이트 내용을 보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잡지 못했던 디테일을, 마치 진짜 로봇이 움직이는 걸 보기라도 한 것처럼 섬세하게 잡아낸 애니메이션이었으니까요.

전 단지 그 작업을 진행한 사람에게 배움을 청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로봇의 움직임을 그토록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사고해야 하는지.”

“산체스 씨의 실력은 지금도 충분합니다.

적어도 이 업계에서 로봇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표현하는데 산체스씨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업데이트를 진행한 사람은 분명 저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일 겁니다.

그런 사람이 회사 안에 존재하는데, 제가 마스터 클래스라고 자청할 수는 없죠.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신다면, 제 직급을 반납하겠습니다.”

릭은 진심인 듯 자신의 옷깃에 달린 마스터 클래스 배지를 떼어 상혁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상혁은, 그런 릭의 행동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그냥 계속 가지고 계시죠.

여전히 산체스 씨는 업계 최고의 실력자이시니까.”

“수수께끼의 작업자보다는 못하겠죠.”

“아뇨. 그분을 포함해도, 산체스 씨는 ‘업계’ 최고의 실력자가 맞습니다.

이번 업데이트를 도와주신 그분은, 업계 사람도 아니고, 하물며 PTW 직원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애니메이션 작업은커녕 리얼 엔진조차도 다룰 줄 모르는 분이죠.”

“그런 사람이 이번 업데이트를 진행하셨다고요?

대체 어떻게?!”

“말씀드렸지만 이번 업데이트는 그분이 제공한 데이터를 민준이 게임에 맞게 수정해서 적용한 것뿐입니다.

자세한 건 보안 때문에 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적어도 그분이 업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죠.

그러니 안심하고 작업에 임하도록 하세요.

아직 출시까지 남은 작업이 산더미같이 많고, 그 중 산체스 씨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작업도 엄청나게 많으니까요.”

릭은 상혁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부실을 나섰다.

그러자 옆에 따라붙은 마셜이 릭을 향해 물었다.

“더 따져 묻지는 않는 거야?”

“뭘?”

“너보다 실력 좋은 애니메이터가 회사 안에 있는지 확인하러 간 거잖아.

근데 이렇게 쉽게 물러나도 돼?”

“대장이 말했잖아.

이번 업데이트를 진행한 사람은 업계 사람이 아니라고.

그 말은 그 수수께끼의 구두요정의 직업이 애니메이터가 아니라는 의미지.

그 말은 여전히 PTW내에선 내가 로봇 애니메이션의 일인자라는 이야기고.

그걸 확답받은 이상, 굳이 대장이 감추려고 하는 걸 더 캐물을 필요가 없지.”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

“기본적으로 대장은 거짓말은 안 해. 대신 정보를 숨기지.

그리고 대장은 정보를 숨겼어.

그 말은 이번 업데이트의 뒤에 대장이 그린 더 큰 그림이 존재한다는 뜻이겠지.”

“더 큰 그림?”

“PTW의 마스터 클래스 직원들에게도 숨겨야만 하는, 무언가 엄청난 그림말이야.

그게 뭔지 궁금하지만, 아마 아무리 캐물어도 대장은 대답하지 않았을 거야.

그 사람은, 필요에 따라서는 자신조차 속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한 릭은 뭔가를 깨달은 듯 속도를 올려 작업실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셜이 곧바로 그의 뒤를 쫒으며 물었다.

“잠깐, 갑자기 왜 뛰어가는 거야?!”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확인하고 싶은 거?”

“대장 본인은 숨긴다고 최대한 숨긴 거겠지만, 대장의 말에는 힌트가 숨겨져 있었어.

첫째는 그 말도 안 되는 업데이트를 작업한 사람이 업계 사람이 아니라는 거고, 둘째는 PTW의 직원조차도 아니었다는 거.

그 말은 로봇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그토록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자가, 애니메이터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

업계 사람이 아니라고 했으니, 모델러도 아닐 거고 말이야.”

“그럼 대체 누가 그런 작업이 가능한데?”

“바로 그걸 확인하러 가는 거야.

업데이트된 로봇의 움직임을 다 까보면, 누가 이번 작업을 진행한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그런 데이터를 가졌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 테니까!”

작업실로 돌아간 릭과 마셜은 그 즉시 PRD에 접속해 프로젝트를 로드했다.

그리고는 마치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업데이트 이전과 이후에 달라진 부분들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했다.

마치 탐정이라도 된 기분으로.

그것은 GOS 프로젝트 이후로 오래간만에 두 사람의 가슴을 끓게 만든, 참으로 멋진 작업과정이었다.

***

“300군데 넘게 비교해보니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릭과 마셜.

두 명의 마스터 클래스 작업자가 비교 분석에 들어간 지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사이에, 릭은 상혁이 업데이트한 애니메이션의 모든 부분을 샅샅이 뜯어, 어떤 식의 변화가 있었는지 눈을 감고도 달달 외울 정도로 철저하게 분석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셜 역시 자신이 작업한 원본 로봇의 디자인과 변경된 디자인을 철저하게 해부하며 변경된 부분이 ‘어째서’ 그렇게 변경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그 노력의 결과로, 두 사람은 이번 업데이트에서 변경된 작업물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모델링부터 애니메이션까지 게임 속에 적용된 모든 변화가, 기본적으로 ‘현실성’을 반영하기 위해 적용된 업데이트라는 것이었다.

그 부분을 지적하며, 릭이 마셜에게 말했다.

“KOA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세대 구분이 되어 있지.

전세대 기체일수록 기초 스펙이 낮고, 후세대 기체로 갈수록 스펙이 올라가는 식으로.

원래 그건 로봇에 적용된 수치적인 데이터로만 적용되어 있었지만, 봐봐.

업데이트된 데이터를 보면 세대별로 관절의 구조와 움직임이 전부 다르게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그 부분은 나도 확인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오더군.

예를 들어 여기 보이는 1세대 로봇의 관절은 전적으로 모터의 힘에 의존하여 구동되는 구조로 되어 있었어.

엄청나게 무거운 쇳덩이를 오직 모터의 출력으로 움직어야하는 만큼, 관절부의 크기가 거대해지고 무게도 증가하는 특징이 있었지.

그리고 멈춰 있는 상태에서 속도가 빨라지는데 걸리는 시간도 꽤 걸리는 편이었고.

근데 2세대로 가면서 거기에 유압형 실린더가 추가되고, 3세대에서는 본체 안에 있는 중앙 모터에 연결된 와이어로 관절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기능이 추가되었지.

특이한 건 4세대야.

4세대부터는 관절 자체에 가스압으로 동작하는 쇼크 업소버가 추가되면서, 움직일 때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이 매우 줄어들게 설계되어 있어.

이건 마치···.”

“맞아. 누군가가 실제 로봇을 만들며 남긴 결과물을 보는 기분이지.

나도 그렇게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야.”

“릭. 정말로 상혁 씨가 직원들 몰래 로봇을 만들고 있는 걸까?”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 구현되어있는 로봇의 구동부를 잘 보라고.

애당초 대장이 목표하는 게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거라면, 이 정도로 파워가 있는 구동부를 설계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현재 개발이 완료된 스턴트 봇의 껍데기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로봇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는 모형 정도는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지금 적용되어 있는 구동부는 적어도 수십 톤짜리 쇳덩이를 빠르게 움직이게 하려고 설계된 물건이지.

그 말은 지금 대장이 아예 20미터 크기쯤 되는 거대 로봇을 제작 중이라는 말인데, 그건 아무리 봐도 진짜 미친 생각 아니겠어?

아무리 대장이라 하더라도 그런 미친 짓을 시도하지는···.”

거기까지 말한 릭의 머릿속에 상혁이 만든 12척의 목조 범선이 떠올랐다.

그것의 존재를 떠올리자, 릭은 도저히 상혁이 거대 로봇을 개발하는 중이 아닐 거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세상에 그런 미친 짓을 시도할 사람이 단 한 명 있다면, 그건 바로 상혁일 테니까.

“X발. 솔직히 말하면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모든 증거가 하나같이 이번 업데이트가 거대 로봇을 실제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것도 일본에 있는 것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형’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고 싸울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

“PTW에서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에, 시작할 때 ‘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었지.

코넥트도 그렇고 딥 다이버도 그렇고 PRD도 그렇고.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물건은 거의 오파츠 수준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문제는 이거지.

지난번에 제작한 범선의 경우, PRD 전용 게임인 무한의 바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실제 범선의 운용 자료를 수집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었어.

거기엔 실제 범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는 감각을, 게이머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목적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이건 PRD 전용 게임이 아니라 일반 콘솔용 게임이야.

리얼 엔진으로 개발 중인 지금이야 얼마든지 이 섬세한 디테일을 살려서 개발할 수 있지만, 그건 현세대 콘솔에 맞춰 포팅을 시작하는 순간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죄다 잘려나갈 거라고.

어차피 잘 보이지도 않는 부분의 관절 애니메이션 따위는 구현되든 안 되든 그게 그거니까.

물론 로봇이 움직이는 모션의 자연스러움이나 무게감은 그대로 남아서 화면을 통해 유저에게 전달되겠지만, 겨우 그것만을 위해 이정도로 디테일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그 부분을 생각해보면, 이번 업데이트는 굉장히 이상하지.”

“어디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잖아.

어차피 게이머가 보지도 못할 부분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실제 크기 로봇을 개발한다는 이야기니까.

만약 진짜로 로봇을 만들고 있는 거라면 범선 12척 건조하는 비용은 애들 장난처럼 생각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갈 거라고.

그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까지, 대장이 잘려나갈 디테일에 목숨을 걸 거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아.

뭔가가 더 있겠지.”

“하지만 PTW는 원래부터 이해 안 가는 짓을 하는 회사잖아.

게다가 우리가 게임을 만드는 방식은, 원래부터 효율성과는 안드로메다만큼 떨어져 있었다고.

그 부분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거대 로봇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도 이상한 게 아니지 않을까?”

“그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PTW에 대한 전형적인 오해 중의 하나인데, PTW는 게임 제작이란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회사일지 몰라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아.

코넥트는 지금도 전 세계 보안 설비 시설의 핵심 장비로 사용되고 있고, 각종 군용 장비에서도 코넥트의 감지 센서가 활용되고 있지.

게다가 딥 다이버는 게임 시장이 아닌, 산업 현장에서 더 주목받는 장비이기도 하고.

PRD는 마셜 너도 알다시피 미군이 가장 사랑하는 훈련 장비로 꼽히는 물건이야.

그런 사례를 볼 때, PTW에서 만드는 하드웨어는 절대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지.

그러니까 만약 거대 로봇을 만들고 있다면, 대장의 머릿속에는 그 로봇을 활용해서 진행할 이후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림까지 그려져 있다는 이야기고.”

“다음 NE 컨벤션에 대한 것일까?”

“그것만으로는 조 단위를 가볍게 넘어갈 막대한 개발비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지.

무언가가 더 있어.

분명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그러나 상혁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 그들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면 분명 PTW 지하에 있는 비밀 연구동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고, 그곳은 허가된 인원 외에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었기 때문에.

마스터 등급의 직원조차 허가를 받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PTW의 지하 연구동이었다.

결국, 심증만 잔뜩 남긴 채 결정적인 물증을 잡지 못한 릭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미치겠네! 진짜!

어차피 물어봐도 절대 대답 안 해줄 거고!

로봇을 만들고 있는 거 같기는 하고!

근데 너무 미친 짓이라 확신은 또 못하겠고!

근데 평소의 PTW를 보면 분명 할 거 같기는 하고!

근데 시도하는 짓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놈이나 시도할 짓이고!

하지만 우리 대장은 미친놈 중에 상 미친놈이 맞고오오!”

마치 광인처럼 소리치는 릭을 보며, 마셜이 말했다.

“뭐, 결국은 까보기 전엔 모르는 거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기다리는 것뿐이야.

상혁 씨가 알아서 비밀을 공개할 때까지.

그냥 참고 기다리면서 게임을 만드는 거지.”

“넌 그걸로 납득이 될 거로 생각하는 거야?

어쩌면 우리 발밑에서 꿈에도 그리던 ‘진짜’ 거대 로봇이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때 되면 알려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겠냐고!”

“만약에 진짜로 만들고 있다면 어쩌려고?

애당초 우린 모델러와 애니메이터이지 로봇 공학 전문가가 아니라고.

실제 로봇을 개발하는 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지.

상혁 씨도 그걸 아니까 우리를 프로젝트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일 테고.”

그러자 릭이 뭔가를 깨달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했다.

“맞아!”

“뭐가?!”

“네 말이 맞다고.”

“로봇을 만드는 덴 별 도움이 안된다는 거?”

“그거 말고, 우리가 별 도움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대장이 프로젝트에서 우리를 제외했다는 거.”

“그게 왜?”

“그 말은, 우리가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입증하면 대장이 우리도 끼워줄 거라는 말이지.”

“저쪽에 있는 건 ‘진짜’ 전문가야.

우리 같이 상상의 로봇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로봇을 다루는 사람일 거라고.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도움이 된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마셜. 헤이 마셜.

무슨 일이든, 무언가를 만들려면 뭘 만들지를 상상해야 만들 수 있는 법이야.

그리고 저쪽이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전문가들이라면, 우린 상상의 로봇을 만드는 전문가들이고.

저쪽이 ‘됩니다.’의 전문가라면, 우린 ‘될 겁니다.’의 전문가들이지.

그러니 당장 작업을 시작하자고.

실제로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지하에서 거대 로봇을 개발 중인 개발자들조차 감탄할만한 로봇 디자인을 뽑아서 업데이트하는 거야.

그들이 우리가 만든 로봇의 모델링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설계한 구동 방식조차도 참고해서 만들고 싶어질 정도로.”

그렇게 말한 릭의 얼굴엔 기대감 어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상상이 어떻게 현실을 이겨내는지, 지하의 현실주의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자.”

상혁이 GOS의 제작을 위해 섭외한 헐리우드 출신의 마스터 등급 개발자.

릭 산체스와 마셜 에릭슨은 곧바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로봇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을 모두 담은, ‘상상의 영역’에서 완벽하게 구동하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PTW의 수많은 직원 중에서도 ‘로봇 전문가’라 손꼽히는 두 작업자의 참전.

그것은 상혁이 진행하는 ‘거대 로봇 개발 프로젝트’를 또 한 걸음 위로 옮겨 놓는 좋은 자극이 되고 있었다.

***

“이게 제가 탈 기체입니까?”

구스타프는 약속한 3주를 조금 넘긴 시점에 다시 지하 연구동을 찾았다.

그가 기열에게 이야기 한 대로, 실제로 사람이 탄 상태로 로봇을 타고 전투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그것은 당연하게도 목숨이 걸린 리스크를 지고 수행하는 테스트라 할 수 있었지만, 구스타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AI가 조작하는 로봇 따위가 자신이 탄 기체에 흠집을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기열을 바라보는 구스타프의 옆엔, 눈 밑의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가 있는 한 프로그래머가 비틀거리며 노트북을 안고 서 있었다.

“데려오신 저건 좀비입니까? 인간입니까?”

“아, 이분이 바로 이번 테스트에서 제가 탈 기체의 프로그램 조정을 맡아주신 이범배 씨입니다.

PTW에서는 마스터 클래스 프로그래머를 맡고 계시죠.”

“천하대 로봇 공학과 교수 김기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나 이범배는 기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구스타프가 범배를 향해 손뼈을 치며 말했다.

“자자! 범배 씨! 여기 이 로봇입니다! 어때요!? 제가 말한 대로 끝내주게 멋지지 않습니까?!”

범배는 ‘로봇’이라는 단어에 반응하듯,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듯 자신의 옆에 서 있는 15미터짜리 거대 로봇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저게···.”

마치 감동받은 사람처럼 손을 벌벌 떨며 로봇을 향해 손을 뻗는 범배를 본, 기열과 구스타프는 서로를 향해 미소지었다.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저 로봇을 보았을 때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범배가 다음에 취한 행동은, 그런 두 사람의 예상을 완벽하게 박살내는 행동이었다.

“이 개 같은 쓰레기가아아!!”

들고 있던 노트북으로 갑자기 로봇의 발 부위를 후려치기 시작한 범배를 보며,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는 급하게 로봇으로 달려가 아직도 반쯤 부서진 노트북으로 로봇을 후려갈기고 있는 범배를 로봇에서 떼어내었다.

그러나 범배는 양팔을 붙잡힌 상태에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로봇을 향해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 개 같은 야근 덩어리!

내가 네 운영체제를 뜯어고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사람의 기를 빨아먹는 악마 같으니!!!

너 같은 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

어어어억!!”

갑자기 범배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자, 스탭들이 곧바로 의료진을 호출했다.

그리고 범배는 들것에 실려 나가면서도, 로봇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실려 나가는 범배를 보던 기열이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구스타프를 보며 말했다.

“대체 얼마나 갈궜길래 작업자가 로봇에 달려듭니까?

저 정도로 힘들어하면 좀 쉬게 해주셨어야죠.

보아하니 처음에 말씀하신 3주도 그냥 멋대로 정하신 것 같은데, 그래놓고 저렇게 사람을 파김치로 만드신 겁니까?”

“저···. 그게···. 빨리 타보고 싶어서···. 그리고 저는 딱히 작업을 빨리 마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서 졸고 있으면 조용히 에너지 드링크를 사서 건네줬을 뿐이죠!”

“몇 시간 간격으로요?”

“한 2시간마다···.”

“수면 고문도 그 정도로 악랄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찌됐건 이번 테스트는 미뤄야겠네요.

작업자가 저런 멘탈 상태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멀쩡할 리가 없으니까요.”

“그건 안 됩니다!”

“왜죠?”

“지금도 로봇을 보자마자 치를 떨 정도로 PTSD에 걸려 있는데, 작업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해달라고 하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그냥 진행하시죠.”

“그럴수는 없습니다.

안전이 걸려있는 문제니까요.”

그때, 옆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가 기열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 목소리는, 조금 전까지 로봇을 노트북으로 후려치며 분노를 발산하던 범배의 목소리였다.

“그냥 진행하시죠.”

“실려 가시지 않았나요?”

“···다시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확인은 필요 없습니다.

애당초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렇게 내려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

“그러니까 자러 가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제가 구스타프 씨에게 수면 고문까지 당하면서 만든 운영체제가, 제대로 동작하는지를 제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요.

이 테스트의 결과는, 아마도 두 가지 결과가 나오게 되겠죠.

저 거대한 티타늄 블레이드에 맞아 구스타프 씨가 조종석 채로 두 동강 나던가, 아니면 제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동작해서 모든 검격을 막아내던가.

제 지금 기분으로는 어느 쪽이든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테스트의 결과를 보기 전에는 절대 쓰러질 수 없다는 범배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기열은 깊은 한숨을 쉬며 스텝들을 향해 말했다.

“실제 크기 로봇을 만들겠다고 지하에서 이 짓을 하는 우리도 미친놈들이지만, PTW 직원도 어째 정상인이 하나도 없네.

테스트를 준비해.

그래야 이 불쌍한 영혼을 침대로 돌려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는 구스타프를 향해 말했다.

“요청하신 대로 구스타프 씨가 조종하는 기체의 검은 강철을 메인 프레임으로 사용한 1세대 블레이드입니다.

그리고 상대 로봇은, AI가 조종하는 조건으로 5세대인 티타늄 블레이드를 사용하게 될 거고요.

3주전, 구스타프 씨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영체제의 보조와 조종사의 실력 여부에 따라, 강철로 만들어진 검으로도 티타늄 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이건 저희가 이 로봇의 목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테스트입니다.

그러니 부탁드리죠.

제발 저희의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 만든 5세대 티타늄 블레이드를, 1세대 블레이드로 막아달라고요.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저희는 이 로봇들로 실제 검술 대결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구스타프는 자신을 바라보는 스텝들의 눈빛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신의 희망을 이뤄주기를 간절히 바랄 때 나오는 눈빛.

그것은 YAS에서 시체 포식자와 싸울 때, 자신을 바라보던 수많은 게이머의 눈빛과 매우 닮은 눈빛이었다.

‘영웅이 되어달라는 눈빛이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구스타프는 조용히 자신이 탑승할 로봇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범배가 미리 입력한 운영체제가 구스타프의 접근을 감지하고는 로봇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탑승자가 조종석에 타기 편하도록,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손을 내미는 자세로.

로봇이 가슴의 해치를 활짝 열고 자신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탑승의 편의를 위해 해치 왼쪽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구스타프는 해치 안쪽으로 몸을 던져넣었다.

그러자 PRD 안에서 훈련할 때 수없이 느꼈던 익숙한 조종석의 감촉이 그의 전신을 감싸왔다.

그리고 구스타프가 조종간을 잡자, 조종석에 배치된 모든 버튼에서 일제히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탑승자 신원 인식 완료.

명령을 기다립니다.]

“수동 조종 모드 개시.

해치 폐쇄.”

[수동 조종 모드 적용 중.

해치 폐쇄 완료.

운영체제 업데이트가 감지되었습니다.

신규 동작 보조 애드온 242개.

신규 센서 보조 애드온 52개.

메인 운영체제 업데이트 내역 571개가 존재합니다.

각 애드온의 기능 설명을 시작합니까?]

“어차피 말해도 몰라.

설명은 넘어가.”

[신규 기능 중 활성화할 기능을 선택하셔야 합니다.

일부 신규 기능의 경우 기존 운영 프로그램과 충돌을 일으킬 위험이 있습니다.

해당 애드온의 목록을 출력합니다.]

마치 홀로그램 영상처럼 수많은 리스트가 구스타프의 눈앞에 떠올랐지만, 구스타프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어차피 범배가 만든 것들이니, 무조건 완벽하게 동작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활성화할 신규 기능을 선택해주십시오.]

자신을 재촉하는 듯한 운영체제의 목소리를 들으며, 구스타프가 말했다.

“전부.”

단호하게 말하는 구스타프의 목소리가, 로봇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이 역사적인 테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처럼 지하 연구동 전체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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