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회사 지하에 있는 것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커다란 난제 중 하나였던 가동부의 설계 문제가 해결되면서, 프로젝트의 흐름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기열은 같은 방식으로 구동하는 로봇의 나머지 부위를 설계하고, 거기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동력부를 설계한 뒤, 그것을 조립하여 하나의 로봇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장비를 제외한 본체 자체의 무게만 25톤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그 무거운 금속 덩어리를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각 파트 별로 떼어놓았을 때는 멀쩡히 동작하던 관절 부분들이 조립해서 구동시키는 순간 속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고, 팔 파츠 만을 사용하여 테스트했을 때는 거뜬히 버텨내던 티타늄 블레이드가 전신의 무게를 실어 휘두르는 일격에 두 동강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기열 교수가 택한 방법은 로봇의 무게를 한계까지 줄이는 것이었다.
문제는, 작업의 난이도와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 이미 핵심 부속들을 전부 가벼우면서 단단한 재질인 티타늄으로 제작했다는 것이었는데, 그보다 가벼운 금속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금속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열은 결국 알루미늄이라는, 무르면서도 가벼운 금속을 사용하기로 했다.
각 부위의 핵심 방호를 담당하는 보호 장갑을 제외한, 모든 장식 부분을 알루미늄으로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4톤짜리 티타늄 블레이드 앞에서, 자잘한 장식들의 존재는 그것이 티타늄으로 만들어졌든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든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가공하기 쉬운 알루미늄의 특성상 자잘한 장식들을 만드는 데는 티타늄보다 훨씬 유리했기에, 기열은 소재의 변경을 통해 기체의 경량화뿐만이 아닌, 작업 속도의 효율화도 함께 이룰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로봇의 핵심 가동 부위를 보호하는 보호 장갑의 형태는 다음과 같은 복합 장갑의 형태가 되었다.
가장 안쪽에 티타늄 재질의 두꺼운 방호 장갑판이 들어가고, 그 위를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장식장갑판이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얇은 티타늄 장갑판을 다시 씌웠는데, 아예 통짜 알루미늄으로 외장을 마감할 경우 외장 장갑에 상처가 너무 쉽게 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3단 복합 장갑을 통해 기열은 원래의 통짜 티타늄 로봇이 가지고 있던 무게의 상당 부분을 감량할 수 있었고, 로봇은 그제야 기열이 의도한 스피드에 가까운 속도로 동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로봇의 구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기열은 다음으로 검의 내구도에 대한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검끼리 정면으로 충돌해도 검이 두 동강 나지 않도록 검의 두께를 무식하게 두껍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면 무거워서 휘두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를 위해 기존에 개발했던 교체식 블레이드의 구조 개선을 시도하기도 하고, 검이 충돌하는 순간 충격을 흡수해줄 유압식 완충기를 설치해보기도 했지만, 그 모든 노력은 20톤짜리 로봇이 전력으로 휘두르는 타격을 흡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기열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때로는 불가능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건 설계 단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기열은 상혁이 자주 말하던,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맨몸으로 하늘을 날 수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검을 휘두르는 속도에 제한을 걸어야 할 것 같다고 상혁에게 알렸다.
그러자 상혁은, 그런 기열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은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 문제에 대해 잘 알만한 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지하 연구동의 출입자 명단엔 또 한 사람의 이름이 추가되었다.
기열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혁이 보내준 헬퍼.
그는 YAS 플레이어 중 최초의 현경급 검사 플레이어이자, PTW 직원 중 가장 뛰어난 중세 검술 전문가인, 칼 구스타프였다.
“이런 미친, 우리 회사 지하에 왜 이런 게 있습니까?!!?!?”
평소 게임 속에서 만나는 유저들에겐 과묵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구스타프였지만, 그의 원래 성격은 장난기 많고 말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거대한 중세 기사처럼 보이는 15미터짜리 거대 로봇의 존재는 심장을 뒤집어 놓을 만한 모습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구스타프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이 혹시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상태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만져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딥 다이버를 쓰고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손가락의 촉감이 두피에 생생하게 느껴지자, 구스타프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거대 로봇이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물건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엌···. 로···. 봇··· .진···. 짜···. 어거걱···. 허엌···. 이런 미친놈들···.”
거의 과호흡 증상까지 보이며 실신하려 하는 구스타프를 보며, 기열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도 그 미친놈들의 일원이면서….’
이후로도 구스타프는 로봇의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만지작거리며 수도 없이 만세와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개발자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이런 미친놈들 같으니!! 사랑해요! 당신들은 인류의 영웅이야!!”
기열은 구스타프가 흥분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그대로 놔두면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 로봇을 주물럭거릴 기세였기에, 직원들을 불러 구스타프를 제지했다.
그러나 구스타프는 로봇의 종아리 부위 장갑을 끌어안으며 자신을 끌고가려는 직원들에게 격렬히 저항했다.
“안 돼! 저리 꺼져! 누구도 날 브루노에게서 떨어트릴 수 없어!”
“왜 남의 로봇에 멋대로 이름을 붙이십니까!
이 로봇의 이름은 ‘제국의 영광’이란 말입니다!”
“아니야! 얘는 브루노야!
이 얼굴이! 이 컬러가! 이 장식이 자신이 브루로고 소리치고 있다고!
네놈들의 귀에는 로봇이 지르는 영혼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 거냐 아!”
그리고는 강제로 끌려가면서 로봇을 향해 소리쳤다.
“브루노오오!! 브루노오오!!!”
그것은 마치 자식과 헤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전의 난동이 거짓말인 것처럼 차분한 표정으로 기열이 타준 홍차를 마시던 구스타프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기열에게 말했다.
“흠흠···. 우선 먼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제 대답은 당연히 YES입니다.”
그러자 기열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구스타프를 보며 말했다.
“아직 아무 질문도 안 했는데요?”
“저 멋진 로봇의 파일럿이 되어주지 않으시겠냐고 물어보려던 것 아니었나요?”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당신의 뇌 구조가 궁금해지네요.
현재 테스트 조작은 AI로 진행하고 있으며 파일럿은 별도의 과정을 거쳐 선별할 겁니다.”
그러자 구스타프가 기열의 대답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테이블에 다리를 올리며 말했다.
“쳇. 그럼 대체 로봇을 만드는 데 왜 게임 개발자를 호출한 겁니까?
파일럿으로 쓸 게 아니라면, 절 부를 이유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제가 부른 게 아니라 상혁 씨가 보낸 겁니다.
도움이 될 분을 보내주신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지금보니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네요.
게다가 전 당신이 뭐 하는 분인지도 모른다고요.”
“절 모른다고요?”
“예.”
기열이 말하자 구스타프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YAS 최고의 양손검사이자, 최초로 현경에 도달한 플레이어!
시체 포식자에 맞서 월드를 구한 영웅!
PEW 안에서도 중세 검술에 대한 독보적인 지식으로 마스터 등급 개발자 권한을 취득한 저 칼 구스타프를 모른다는 말입니까?”
“전 PTW직원이 아니라 천하대 로봇 공학과 교수입니다.
그 YAS 인지 YES인지 뭔지는 해본 적도 없고요.
듣자 하니 상혁 씨는 검술에 대한 지식 때문에 구스타프 씨가 이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해서 보낸 것 같은데, 이건 검술의 문제가 아니라 검의 내구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차라리 검 제작의 달인을 보내주셨으면 더 도움이 되었을 듯싶네요.”
PTW의 직원이 아닌 기열은 잘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PTW내에서 구스타프는 검술의 ‘ㄱ’자만 나와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괴짜로 유명했다.
그런 구스타프에게 있어서, 기열이 꺼낸 ‘검의 내구도’라는 단어는 그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주제라 할 수 있었다.
흥미를 느낀 구스타프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기열에게 말했다.
“검의 내구도라뇨?”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 개발 중인 로봇은 거대 로봇에 걸맞는 출력을 가진 물건입니다.
그리고 무장으로는 검이나 창 같은 냉병기를 활용하게 설계되어 있죠.
문제는 로봇이 검을 휘두를 때 생기는 충격량을 검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검 날이 부딪히는 첫 번째 타격 때 날이 거의 절반까지 잘려나가고, 그렇게 약해진 검신은 두 번째 충돌 때 부러져나가죠.
게다가 저희가 만든 방패 역시 검이 주는 데미지를 충분히 방어하지 못하고 있고요.
그건 인간이 휘두르는 검술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인간은 로봇 수준의 괴력으로 검을 휘두를 수 없으니까요.”
“한번 보아도 되겠습니까?”
“무엇을요?”
“그 검이 박살 나는 과정을요.”
“저희는 개선사항이 적용되지 않은 테스트를 하지 않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건 이미 결과가 나온 테스트를 다시 보여달라는 건데, 티타늄 블레이드 한 자루에 얼마인지 아십니까?
그건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박살 낼 만한 물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실험과정에서 찍었던 영상이라도 보여주시죠.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는 확인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구스타프 씨께 보여준다고 해도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는···.”
“김기열 교수님.”
구스타프가 한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상혁 씨에게 부탁받을 때 단순히 지하 연구동으로 가라는 말만 들었을 뿐, 여기 도착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가 검의 내구도 문제에 대해 설계 측면에서의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요.
하지만 상혁 씨가 이 문제에 대해 제가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면, 전 그 판단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그분은 이유 없이 움직이는 분이 아니니까요.”
구스타프의 말을 들은 기열은 조용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테스트 쳄버로 가시죠.
실제로 검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영상으로 보여주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영상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정보도 있겠죠.
그리고 저도 구스타프 씨와 마찬가지로, 상혁 씨의 판단을 믿으니까요.
게다가···.”
기열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 자루에 12억짜리 블레이드를 상혁 씨가 보낸 조력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날린 상황에서, 쓸만한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 상혁 씨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요.
가끔 보면 이상혁이라는 사람은 모든 상황이 어떻게 굴러갈지 전부 알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자신의 예상이 틀렸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금하네요.”
“어, 그건 저도 좀 궁금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만은 아니고, 실제 로봇들이 검을 들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 김기열 교수님의 의견에 적극적인 찬성표를 던지겠습니다.”
두 사람은 두 대의 로봇이 배치된 테스트 쳄버로 이동했다.
그곳엔 앞서 구스타프가 본 것과는 다른 형태의,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거대 로봇이 놓여 있었다.
“아까 본 로봇은 완전 새것이었는데, 이건 좀 낡은 느낌이네요.”
“워낙 비싼 물건이니, 한계까지 굴리는 거죠.
저렇게 혹사당하다 가동한계에 도달하면 부품을 교체하고,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통째로 새 로봇으로 교체합니다.”
기열은 구스타프에게 로봇이 검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실전 형식의 전투가 아닌, 최대 출력으로 검을 충돌시키는 형태의 테스트였다.
구스타프는 두 대의 로봇이 각자 검을 들고 서로를 대치하는 것을 보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 로봇을 보며 경탄의 소리를 내뱉었다.
눈앞의 로봇은 그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육중한 무게에도 불구하고, 기열이 설계한 로봇은 인간 그것을 아득히 웃도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쿵쿵쿵쿵쿵-
두꺼운 아크릴 벽을 뚫고 넘어오는 강철 거인의 발소리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자, 구스타프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로봇의 파일럿이 될 수 있다면, 목숨을 내놓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구스타프는 그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두 로봇이 보이는 모든 동작에 신경을 집중했다.
오로지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12억짜리 티타늄 블레이드가 두동강 나는 것을 각오하고 수행하는 테스트.
그것에서 전달되는 정보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구스타프는, 마침내 지근거리에 도달한 로봇이 전신의 모든 출력을 동원하여 그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디딤발의 위치.
허리의 높이와 각도.
최대의 회전을 주기 위한 검의 위치.
저건 단순히 로봇의 출력만을 사용한 일격이 아니야.
자신이 가진 모든 출력과 무게를 검 끝에 실은, 그야말로 필살기 같은 공격이다.’
양손 검을 주로 다루는 구스타프는 검을 휘두르는 자세만 보아도 공격에 실린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검이 부딫힌 그 찰나의 순간, 구스타프는 그 예리한 눈썰미로 김기열이 잘못한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잠까아아아안!!!”
구스타프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시작된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현재 테스트에 참여한 로봇의 최대 출력인 6천 마력을 끝까지 쥐어 짜낸 공격을 강제로 멈출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에 구스타프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두 로봇이 들고 있던 두자루의 티타늄 블레이드는 엄청난 불꽃과 굉음을 내며 허무하게 두 동강 나고 말았다.
한 자루에 12억씩.
단 한 번의 칼질에 24억.
그 엄청난 공격이 남긴 결과물을 보며, 구스타프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기열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들. 제정신입니까?
어떤 미친 검사가 칼을 저따위로 휘두릅니까?”
확신에 찬 구스타프의 표정을 보며, 기열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보낸 조력자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실망하는 상혁의 표정을, 이번에도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기뻤기에, 기열은 구스타프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혹시 문제가 뭔지 찾으셨습니까?”
“아니, 문제요? 뭐, 문제라고 하면 문제라고 할 수 있죠.
김기열 교수님. 지금 저 문제는 검의 구조나 소재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검이란 것은 한없이 날카로운 물건이고, 그래서 검의 날 부분은 반드시 면적이 좁아지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검이란 존재에게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는 예리함이란 어드벤티지를 제공하지만, 반대로 이가 빠진다는 단점을 제공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검과 검으로 싸우는 데 저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검술과 실제로 쓰이는 검술의 괴리죠.”
구스타프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검을 다룰 때는, 날과 날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합니다.
아무리 단단한 검이라도 날끼리 부딪히면 무조건 이빨이 나가게 마련이고, 전투가 지속될수록 검의 수명이 짧아지게 될 테니까요.
설사 검날로 검날을 막아야 한다고 해도, 저런 식으로 무식하게 온 힘을 실어서 검을 휘두르지는 않아요.
검의 목적은 적의 몸을 베는 것이지, 적의 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드리죠.
자, 팔을 펴서 제 정수리를 내리쳐보세요.”
-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열의 춉이 구스타프의 정수리를 후려치자, 구스타프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기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기열에게 말했다.
“천.천.히. 내리쳐보세요.”
“앗, 죄송합니다.”
기열이 천천히 팔을 내리자, 구스타프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전력이 실린 종 베기 공격이 들어올 때, 방어자는 아래에서 검을 올려치는 방식으로 검을 막지 않습니다.
힘이 가해지는 방향의 반대 방향에서 힘을 주는 식으로 방어를 하는 것은, 무식한 방법이니까요.
이때 간단히 상대의 공격을 막는 방법은, 위에서 아래로 가해지는 힘에 대해 옆에서 가하는 힘으로 대항하는 겁니다.
요컨대 이런 거죠.”
구스타프는 손을 뻗어 내려오는 기열의 손을 옆으로 밀어내었다.
그러자 기열의 팔은 힘없이 구스타프의 옆으로 빗겨나갔다.
“횡베기의 경우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됩니다.
횡베기를 횡베기로 막는 것보다, 종베기로 내리쳐서 아래로 방향을 돌리게 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요.”
그러자 김기열이 이번엔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팔을 천천히 휘두르며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위 아래로 긴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 횡베기의 방향을 전환하면 하반신이 위험해지지 않겠습니까?”
“아예 상대의 검이 바닥에 꽂힐 정도로 후려치면 되지만, 그게 어려운 경우는 이렇게 막습니다.”
구스타프는 옆구리를 베어오는 기열의 팔을 비스듬히 밀어내었다.
그러자 기열의 팔은 방향이 바뀌며 구스타프의 몸에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날과 날이 부딪히는 경우에도, 서로 수직으로 부딪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부러 그런 각도가 나오지 않게 조정하는 기술도 있고, 손목을 살짝 트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검날이 상대의 검날 대신 검신을 때리게 만들 수 있죠.
다시한번 말하지만, 검의 목적은 상대의 신체를 베는 겁니다.
상대의 검을 박살내는 게 아니라요.
제 생각에 현재 만들어진 검의 수준은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힘을 흘리는 방식을 쓰면, 웬만한 공격은 다 상쇄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저렇게 무식한 방법만 쓰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도 나름 오버테크놀러지의 정수나 다름없는 물건인데, 무식하다는 표현은 조금···.”
“아니 애당초 저건 말하자면 바이스 위에 검을 물려놓고 다른 검으로 그 검날을 내리찍는 거나 다름 없는 무식한 테스트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날이 안 나가는 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물론 두 동강 나지는 않는 검정도야 있겠지만. 저 정도 크기의 로봇이 무게를 실어서 후려치면 티타늄이 아니라 오리하르콘 할애비가 와도 못 버틸 겁니다.
테스트 방식을 보아하니 방패의 내구도 테스트를 할 때도 90도 각도로 후려쳤을 것 같은데, 맞습니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기열을 보며, 구스타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찬가지로 방패도 맞는 각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쉽게 검을 튕겨낼 수 있어요.
심지어 탱크를 만들 때도 탄환을 튕겨내기 위해 장갑의 각도를 조절하는데, 탱크는 만들어진 경사를 함부로 조정할 수 없죠.
반면에 로봇의 방패는 다릅니다.
가해지는 모든 공격에 대해 최적의 도탄각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물수제비를 생각해보세요.
각도만 잘 맞아 떨어지면, 그 부드러운 물로도 돌을 튕겨낼 수 있습니다.
돌을 수면에 수직으로 던지면 돌이 수면 아래로 뚫고 지나가지만, 비스듬하게 각을 줘서 던지면 수면에 튕겨 나가 물 위를 달리게 되잖아요?
날아오는 검을 그 돌이라고 생각하고, 들고 있는 방패를 수면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날아오는 공격을 무식하게 내구력으로 막는 게 아니라, 비스듬하게 힘을 줘서 상대의 공격을 튕겨내는 개념으로 가는 거죠.”
구스타프가 손바닥을 이리저리 꺾으며 말했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방패는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경사 장갑이 될 수도, 아니면 그냥 두께만 두꺼운 철판 덩어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포탄은 적과 직접 충돌하는 가장 앞부분에 신관이 달려있죠.
각도와 타이밍만 잘 조절하면, 날아오는 포탄을 옆으로 후려쳐서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을 겁니다.
화살도 마찬가지고요.”
“인간이 그걸 할 수 있을까요?”
“아뇨.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하지만 이건 로봇이잖아요.
날아오는 포탄이나 검격의 방향을 읽고 자동으로 최적의 각도로 방패를 운용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PTW에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줄 괴물들이 얼마든지 있고요.
그리고 날아오는 포탄을 쳐내는 것이 아닌 검격을 막아내는 것이라면, 저것보다 훨씬 무른 검으로도 충분히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고수는 길가에 있는 나뭇가지로도 진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건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걸 그대로 믿는 건 바보같은 일이겠죠.”
“그럼 보여드릴까요?”
“예?”
구스타프의 말을 들은 기열이 놀라며 묻자, 구스타프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혹시 저것보다 훨씬 약한 검도 있습니까?”
“예전에 썼던 프로토타입 블레이드가 있긴 합니다만, 그건 지금 사용하는 무기에 비하면 진짜로 나뭇조각 수준입니다.
소재도 티타늄보다 강철이 더 많이 쓰였고, 무게 때문에 두께도 얇습니다.
정면으로 충돌하면 아마 프로토타입 블레이드만 두 동강이 날 테죠.”
“강철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 로봇이 어떤 조작 체계를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저 로봇을 탈 기회를 주시죠.
그리고 로봇을 구동시키는데 필요한 프로그램을 PTW의 YAS 팀에 있는 이범배라는 프로그래머에게 보내주세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구스타프가 손가락 3개를 펴며 말했다.
“3주. 3주만 주시면 제가 로봇을 타고 프로토타입 블레이드로 여러분이 만든 최강의 검을 어떻게 막는지 보여드리죠.
과학기술의 서포트를 제대로 받는 인간이, 얼마만큼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와 함께.”
“그 말은 이범배라는 분이 파일럿의 역량에 따라 현재 수준의 내구도를 가진 블레이드로 전투가 가능한 어시스트 AI를 만들어 줄 거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이범배라는 분은 대체 어떤 천재시길래···.”
“천재요? 아뇨. 제가 아는 이범배 씨는 천재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분은 평범한 프로그래머로 시작해, 마스터 클래스 직원의 자리에 오른 노력파 프로그래머죠.
하지만 이범배 씨는 스컹크 웍스 멤버를 제외하면 민솔 씨와 더불어 민준 씨의 수제자임을 자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PTW 직원 중의 한 명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YAS에 들어간 검술 보조 시스템을 혼자서 전부 구현하신 분이기도 하고요.”
“그분의 조력과 구스타프 씨의 능력이 있으면···.”
“다이소 식칼로 명검을 베는 기적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어차피 프로토타입 블레이드는 쓸데도 없이 창고에 쳐박아놓은 상태고, 이범배란 분이 운용 프로그램을 손대다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원래 버전을 다시 덮어씌우면 되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구스타프 씨의 탑승은 조금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프로토타입 블레이드의 내구력은 현재 완성된 티타늄 블레이드보다 훨씬 무르기 때문에, AI가 조작하는 로봇이 전력으로 휘두른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시에는 조종사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어요.
현재의 파일럿 좌석은, AI가 조종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직 보호 장비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타야 한다는 거죠.”
“검사는 상대의 움직임만 봐도 상대가 가진 역량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 로봇들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초보자의 그것이었고요.
전 검을 무식하게 휘두를 줄만 아는 AI에게 질 정도로 허접한 검사가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YAS 최초의 현경급 소드 마스터이자 PTW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한 검사이기도 하니까요,
뭣하면 테스트 중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라도 쓰죠.”
“잠시 상혁 씨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기열의 전화를 받은 상혁은, 기열이 설명하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기열을 향해 말했다.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 대신, 사고가 발생하면 PTW에서 모든 피해를 배상해준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세요.
만약 사망하면 보상금으로 2천억쯤 준다고 적어서요.-
“2천억이요?!”
-애당초 지금 제작한 로봇의 안전 시스템을 설계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김민준입니다.
모든 나이츠는 전투 도중에 상대 파일럿에게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시간으로 계산해서, 문제가 있을 경우 공격을 하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죠.
그러니까 만약 AI가 조작하는 나이츠가 구스타프 씨가 조종하는 나이츠의 검을 두 동강 내고, 파일럿 석을 공격할 가능성이 0.00001%라도 존재한다면 나이츠는 그 즉시 공격을 멈추게 될 겁니다.
이미 마네킹 테스트부터 스턴트 봇을 이용한 테스트까지 수도 없이 테스트 했었잖아요?-
“하지만 사람을 태우고 한 적은 없었죠.”
-어차피 로봇을 완성하면 사람이 탑승해야 합니다.
자진해서 몰모트가 되겠다는데, 말릴 필요는 없죠.
사고에 대한 백업은 PTW에서 전부 해준다고 하세요.
그리고 제 예상이지만, 아마 AI 가 조작하는 나이츠는 구스타프 씨가 조종하는 기체에 상처하나 낼 수 없을 겁니다.
서로가 가진 무기의 역량이 아무리 심하게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요.-
“그건 왜죠?”
기열의 질문에 상혁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수화기를 통해 기열에게 말했다.
-저 인간은 지금 YAS에서 갑옷도 안 입고 티셔츠만 입은 채 사냥하고 있어요.
그것도 게임 시작할 때 지급하는 목검 하나만 들고서.
가상의 세계에서의 일이지만 이미 구스타프 씨의 검술 실력은 탈 인간 급입니다.
그리고 나이츠는 그런 구스타프 씨의 가상 스펙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장비고요.
구스타프 씨가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면 몰라도, 나이츠에 탄 상태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울 겁니다.
원래라면 YAS가 제공해야하는 시스템 어시스트를, 나이츠에 달린 하드웨어가 대신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상혁은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개선된 전투 데이터를 포함해서 현재까지 쌓아둔 테스트 데이터를 전부 PTW 서버로 전송해주세요.
현재 개발 중인 게임 속 로봇의 움직임을, 현실 로봇의 움직임과 동기화해야 하니까요.-
“현실 로봇의 동작을 가상의 로봇에 맞추는 것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그 가상의 로봇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상상으로 만들어낸 움직임입니다.
예를 들어 구스타프 씨가 말한 것처럼 최적의 피격 각도를 만들기 위해 방패를 조작하는 모션 같은 건 구현되어 있지 않죠.
저희는 현실의 로봇을 게임 속 로봇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만큼, 게임 속의 로봇의 움직임을 현실의 로봇처럼 구현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기열 교수님. 이 프로젝트는 양방향 프로젝트입니다.
이쪽에서 부족한 건 그쪽에서 가져오고, 그쪽에서 부족한 건 이쪽에서 제공해야죠.
결과적으로 게이머들은, 현실의 로봇이 주는 무게감과 박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게임 속 로봇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게임에서 보았던 그 움직임을 똑같이 재현하는 15미터짜리 강철 거인을 보게 될 거고요.
게임 속 세계에서 내가 조종하는 로봇이 현실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그건 정말 멋진 일 아니겠어요?-
상혁의 말을, 기열은 부정할 수 없었다.
“상혁 씨의 의견에 20,000% 동의합니다.”
기열은 구스타프가 말한 대로 로봇의 조작에 대한 운영 프로그램 데이터를 이범배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PTW의 서버에 현재까지 모인 ‘나이츠’의 가동 데이터를 업로드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프로젝트에 참여한 PTW의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들던 게임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전과 비슷한 것 같지만, 무언가가 다른, 딱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위화감을.
“일단 동작은 이전하고 전부 같은데···..”
이전과 똑같은 형태로 검을 휘두르고, 똑같은 형태로 대지를 뛰어다니며, 똑같은 형태로 방패를 사용하는 로봇들.
그러나 그 로봇들의 움직임엔 구체적으로 말하라면 딱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무게감’이 더해져 있었다.
단순히 가상의 모델링이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하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미묘한 변화.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사람은, 헐리우드 특수효과 팀 출신의 애니메이터이자, 지금도 최고의 로봇 애니메이션을 꼽으라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전설의 명작.
Guardian of Steel(GOS)의 로봇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던 애니메이터.
릭 산체스였다.
“이거, 누가 건드린 게 확실한데.”
릭이 중얼거리자 그의 단짝 친구인 3D 모델러 마셜이 말했다.
“그래?”
“확실해.”
“모델은 변경된 게 없어. 그대로야.
그리고 모션도 예전하고 똑같잖아.
대체 뭐가 달라졌다는 거야?”
“무게감이 달라 무게감이.”
릭은 다른 쪽 모니터에 구버젼의 애니메이션 데이터를 재생시켰다.
그러자 비슷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같은 로봇의 모습이 화면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릭은 다른 쪽 모니터에 현재 버전의 로봇 애니메이션을 재생시키고는, 그것을 마셜에게 보여주었다.
“어때. 다르지?”
“지금 틀린 그림 찾기 하는 거야?
똑같은 애니메이션이잖아.”
“야 이 갑갑한 화상아! 잘 보라고! 움직이기 전에 로봇의 각 파츠가 움직이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잖아!
이전 버전이 뭐랄까 인간의 움직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지금 버전은 훨씬 로봇다워졌다고!
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완전히 다르다고!”
그러자 마셜은 관심없다는 듯 귀를 후비며 흥분한 릭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우리가 만드는 건 로봇 게임이잖아.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가 만든 게임의 애니메이션을 좀 더 로봇답게 업데이트했고.
그럼 더 좋은 거 아냐?”
“내가 궁금한 건 대체 누가 이 작업을 했냐는 거야.
적어로 로봇의 움직임에 대해서라면, PTW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나보다 뛰어난 애니메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 직함에 달린 ‘마스터 클래스’라는 칭호는, 결코 허세가 아니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런 내가 볼 때, 이건 누군가 건드린 게 맞아.
그리고 지금 조정된 부분들은,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고.
그것도 장난감 모형이 아닌, 진짜 몇십 톤 이상 나가는 로봇이 실제로 움직일 때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 가를 눈으로 본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란 말이지.
X발. 나도 이 수준으로 디테일하게는 작업 못 하는데.
대체 어떤 미친X 끼가 이 짓을 해놓은 거야?”
“구둣방 요정이라도 왔다 갔나 보지.”
“남의 일이라고 쉽게 이야기하는구먼.
하지만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릭은 노트북을 조작해 화면에 띄워진 모델링을 크게 확대했다.
그리고는 그것을 마셜에게 보여주었다.
“어?!!? 어어엉?!?!”
그것을 본 마셜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모니터를 향해 소리질렀다.
전혀 변화가 없던 외장과는 다르게, 관절의 틈 사이로 살짝 비치는 관절 부분의 모델링이 전부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수정은, 마셜을 흥분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떤 미친 X끼가 겁도 없이 내 작업물을 건드렸어?!”
“기다려봐. 로그를 확인해서 누가 수정한 것인지 확인할 테니까.”
릭은 리얼 엔진에 등록된 작업 히스토리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해당 작업물을 수정한 최종 작업자의 닉네임을 확인했다.
[Master - YODA]
“이상혁?!? 그분이 왜 모델링하고 애니메이션을 수정해?!”
PTW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고, 그것에 이상혁이 관여되어 있다면 직원들이 낼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 뿐이었다.
‘거기에 뭔가가 있다.’
두 사람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상혁이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의 정신나간 CCO가, 이번엔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것은 부실을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의 심장을 미친 듯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