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 충돌 테스트
상혁의 특별 미션을 받아 거대로봇의 제작에 들어간 김기열 교수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순간부터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단순히 ‘움직이는 거대로봇’을 만드는 것과, 그 로봇을 ‘전투가 가능한 스펙’으로 끌어올리는 것 사이에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술적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그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무게를 감소시키기 위해 메인 소재로 차용한 티타늄 합금의 가공 난이도였다.
티타늄.
철의 3/5, 구리의 1/2 무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보다는 2배 이상, 알루미늄보다는 3배 이상 단단한 내구성을 가진 금속.
티타늄은 무게에 비해 뛰어난 강도와 내식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번 거대로봇 프로젝트의 이상적인 소재가 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티타늄이란 금속이 난삭재(가공하기 어려운 재질)에 속하는 금속이라는 것이었다.
열전도율이 강철의 1/7에 불과한 티타늄은 그 낮은 열전도율로 인해 절단 연마 과정에서 연마 부위에 과도한 열이 몰리게 되는 특성이 있었고, 그로 인해 절 단면의 온도가 1000°C 이상으로 올라가며 티타늄을 연마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특성이 있었다.
게다가 활성 금속인 티타늄은 저온에서 용접하여도 산소 및 수소와 반응하여 용접 부분이 취성(작은 변형임에도 불구하고 소재가 깨져버리는 현상)되는 특성이 있어 용접 난이도가 매우 높으며, 레이저 절삭 시에도 레이저를 반사하여 기계를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 금속이었다.
말 그대로 ‘사용’하기엔 매우 뛰어난 특성이 있지만, ‘가공’하기엔 매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는 금속, 그것이 바로 티타늄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공의 난이도가, 바로 비교적 흔한 광물인 티타늄의 가격을 미친 듯이 올려놓는 원흉이었다.
그런 이유로, 티타늄은 지구에서 10번째로 흔한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철처럼 대중적으로 쓰이는 금속은 아니었다.
그 정도의 강도와 내열성이 필요한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강철 합금을 쓰는 것이 가격에서 이득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에서 그렇다는 이야기였고, 이번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무제한의 지원이 약속된 상태에서, 아예 로봇의 전신을 티타늄으로 도배하더라도, 그 말도 안 되는 금액이 김기열 교수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김기열 교수는 아무런 부담 없이 말 그대로 ‘억’ 소리가 날 정도의 금액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티타늄이란 금속을 원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한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티타늄으로 만든 부속을 써서 로봇을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의미있는 수준의 전투가 가능한 로봇의 제작을 위해서는, 설계대로 만들어진 각 부품이 정해진 속도와 강도를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테스트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즐거운 기분으로 PTW 지하에 있는 특수 연구동으로 향했다.
오늘은 바로 그 ‘내구도 테스트’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흥흥흥흥흥~오솔길을 걸어가면은~~”
콧노래를 부르며 엘리베이터에 탄 상혁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전면부의 패널이 아닌 엘리베이터 뒷면의 패널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치고는 특이하게 카드키를 꽂는 자리가 있는 패널에 자신의 보안키를 꽂아넣었다.
[보안 액세스 권한 1급.
방문자 이상혁의 시큐리티 코드를 확인하였습니다.
특수 보안 지역 이동을 위해 망막 및 지문 인식을 수행합니다.
터치패드에 등록한 지문을 인증하시고 카메라로 눈동자를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문 정보 일치 여부···..확인.
망막 스캔 일치 여부···..확인.
음성 인식 프로세스를 시작합니다.
랜덤한 단어를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로봇 최고.”
[음성 인식 확인 완료.
특수 연구동으로의 이동이 허가되었습니다.
방문하실 층수를 눌러주세요.]
터치 패드에 불이 들어오며 0부터 F까지의 알파벳과 숫자가 적힌 16진수 패드가 등장했다.
그러나 여기서 층수를 누르면 원하는 층으로 가는 대신 보안 요원이 호출되는 것을 잘 아는 상혁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ADF1979’라는 코드를 집어넣었다.
특수 연구동은 매 프로젝트마다 변경되는 고유 코드를 넣어야, 해당 층으로의 이동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하 연구동으로 이동할 때 이 특수 엘리베이터는 내려가는 속도를 매번 다르게 조정하여 내려가는 시간을 통해 깊이를 추측하는 일조차 하지 못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하 몇 층에서 일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단순히 프로젝트에 합류할 때 전달받은 대로, 특수 연구동의 ‘ADF1979’라는 층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을 뿐.
바로 그곳에서, 상혁이 김기열 교수에게 맡긴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ADF 1979플로어에 도착했습니다.
프로젝트 플로어 방문을 환영합니다.
방문자 이상혁 님.]
인공지능의 분위기가 풍기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자신이 탄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나섰다.
그리고는 바닥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작업 에리어로 이동했다.
거기엔 두꺼운 유리벽 너머로, 길이가 3m는 될 법한 거대한 로봇팔 두 개를 앞에 둔 김기열 교수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내구도 테스트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전체 자금을 지원중인 자신이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홀린 듯 유리벽 너머의 로봇 팔만 바라보는 김기열을 보며, 상혁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교수님?”
“아, 상혁씨! 우리 물주님! 로봇 공학의 위대한 후원자께서 이 누추한 연구실에 방문하셨군요!”
“이 장소를 설계하고 제작한 본인한테 누추하다고 말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요?
누추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충 만든 공간은 아닌걸로 기억하는데.”
“아, 그거야 그렇죠.
사실 공간 자체에는 100% 만족하고 있습니다.
환기도 여기가 지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잘 되고 있고, 무지막지한 테스트에도 웬만한 충격은 다 흡수되는 구조로 되어있으니까요.
아마 천하대 중앙에 핵폭탄이 직격하더라도 이 연구동은 무사하겠죠.
처음 왔을 땐 무지 놀랬습니다.
대체 게임 회사 지하에 왜 이런 공간이 있는 것일까 의아해서요.”
“무한의 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범선을 구성하는 각종 재질의 파괴 테스트 및 대포의 종류와 구경에 따른 위력 실험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한국은 민간 업체가 화기나 무기 종류를 개발하는 것을 엄중하게 금하고 있죠.
그렇다고 모든 테스트를 매번 미국에서 하기도 힘드니, 이렇게 비밀 장소를 만들어서 법의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장소가 PTW 내부에서도 극비 취급받는 장소이기도 한 거고요.”
“그럼 혹시 걸리면 다 잡혀가는 겁니까?”
“아뇨, 공식적으로 PTW는 미군 국방부의 공식 협력업체 중 하나이고, 저희가 가지고 있는 워다이버의 데이터는 미국의 핵심 군사기밀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죠.
이 연구동 가장 중심에는 워 다이버의 데이터를 백업하는 백업 데이터 시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플로어 전체는 미국 국방부와 한국 정부의 협의에 따른 일종의 치외법권처럼 취급되고 있죠.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이 플로어에 진입할 권한이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저희가 미 국방부의 허락을 받아 이 장소를 임시로 빌려 쓰는 거고요.”
“여러모로 특이한 회사네요. PTW는.
가끔 보면 이게 게임 회사가 맞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저희가 그런 특이한 회사이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에 수천억을 때려 박을 수 있는 겁니다.
그 부분에는 오히려 감사해서 하셔야죠.
세상에 어느 정신 나간 회사가 통짜 티타늄합금으로 제작한 3미터 짜리 로봇 팔 두 개를 가지고 내구도 테스트를 시키겠어요?”
“아, 거기에 검과 방패도 추가해야죠.”
김기열이 말하자, 상혁은 유리벽 너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혁은, 금세 두 대의 로봇 팔 근처에 놓여 있는 거대한 검과 방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저 거대한 칼과 방패도 티타늄 합금입니까?”
“예.”
“저렇게 큰 걸 어떻게 가공했죠?”
“러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잠수함 외벽을 티타늄으로 제작했었죠.
해당 작업에 참여했던 러시아 기술자를 섭외해왔습니다.
잠수함 외벽에 쓰이는 거대한 티타늄 강판을 가공하던 그 기술로, 저희 프로젝트에서 개발 중인 로봇의 장갑판을 제작해달라고 말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절삭 자체는 그냥 깎으면 되는 일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강철처럼 빠르게 깎을 수가 없다는 거죠.
티타늄 합금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각도와 정확한 속도로,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조금씩 깎아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깎아낼 부분이 크면 클수록, 절삭가공하는데 들어가는 시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죠.
그래서 검 같은 경우는 절삭 연마가 아니라, 애당초 처음부터 형태를 거의 다 갖춘 상태로 가공했습니다.
물론 처음에 완성했던 검은 테스트하자마자 바로 폐기했지만요.”
“그랬습니까?”
“보고서를 올렸는데, 혹시 못 보셨나요?”
“한글보다 숫자와 공식이 더 많이 적혀있길래 그냥 대충 보고 넘긴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 기회에 설명해드리죠.”
기열은 흥분된 표정으로 노트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벽에 달린 스크린에 화면을 공유한 뒤 현재 완성된 검의 구조에 대한 설명에 들어갔다.
“저희가 첫 번째로 만들었던 검의 프로토타입은, 두꺼운 두 장의 티타늄 합금 강판을 용접으로 이어붙여서 검 모양으로 만든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프로토타입은, 바이스에 물린 상태로 전투 시의 격렬한 충돌을 가정한 실험에서 순식간에 반으로 쪼개졌죠.
정확히 말하면 쪼개졌다기보다는 깨졌다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저희가 만들려는 로봇이 휘두를 수 있는 한계 속도를 가정하여 시행한 테스트였기 때문에, 그 육중한 금속 덩어리 두 개가 충돌할 때 생기는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러 가지 타입의 검을 만들며 실제로 전투가 가능한 타입의 티타늄 블레이드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죠.
날 부분만을 티타늄으로 제작하고 몸통은 강철로 만드는 방법.
티타늄 프레임 안에 탄소섬유를 심는 방법.
그런 다양한 방법을 시행하는 도중에, 저희가 주목한 것은 PTW에서 넘겨준 가상의 로봇 전투에 대한 시뮬레이션 데이터였습니다.
거기엔 거대한 로봇이 금속의 내구 한계를 적절히 이용하며 싸우기 위해, 어떤 식으로 검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 있었죠.”
“아···. 그러고보니 개발 중에 테스트 삼아 돌렸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보낸 기억이 나네요.
그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그렇죠. 일종의 발상 전환이랄까.
그 전까지는 무조건 휘두르는 검의 내구도를 올릴 생각만 했지, 그것을 어떻게 휘둘러야 검의 날을 보전하면서 전투를 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검의 날을 보전하면서 전투를 유지하기 위한 전용 검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투 도중에도 쉽게 날을 교체할 수 있는, 교체형 검날 시스템을 가진 검을 만들 수 있었고요.”
기열은 현재 만들어진 로봇 전용 티타늄 소드의 내부 구조도를 보여주었다.
“현재 버전은 검의 날을 구성하는 부분과 검의 몸체를 구성하는 부분 사이에 충격흡수를 위한 완충장치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검 날이 정면으로 부딪치더라도, 검의 날만 쪼개지고 내부의 프레임에는 손상이 최대한 가지 않도록.
그리고 그렇게 손상된 검날은, 간단한 조작을 통해 프레임에서 분리되게 되어있죠.
검 날의 안쪽에 반응장갑처럼 동작하는 화약이 들어있는데, 이것이 폭발하면서 튕겨 나갑니다.
그 상태로 검집에 검신을 집어넣으면, 새날이 장착되는 구조입니다.”
“그냥 잠금장치를 풀면 떨어지게 만드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양손 검의 경우 티타늄으로 만든 검 날의 무게만 2톤이 넘습니다.
본체까지 합치면 거의 4톤에 육박하고요.
4톤짜리 합금 덩어리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와중에, 잠금장치가 멀쩡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죠.
잠금장치의 형태가 변형되며 검날이 검신에 끼이는 사고가 자주 발생해서, 아예 화약으로 튕겨 나가게 설계한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멋진 교체장면을 만들 수 있기도 하고요.”
“검은 그렇다치고, 나머지 부분은 어떻습니까?”
“나머지도 거의 바닥에서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죠.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4톤짜리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출력을 가진 관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관절이 움직이는 것처럼 빠른 동작을 수행하면서도, 금속의 내구도 한계를 넘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과도한 동력을 요구하지 않도록 만들면서, 전투시의 충격을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는 관절 구조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테스트를 한다는 것은 결국 성공했다는 의미겠죠?”
상혁이 말하자 기열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정말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해 낼 수 있었습니다.”
상혁은 마치 오줌이라도 마려운 것처럼 몸을 비비 꼬는 기열을 보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거 설명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상태구나.’
그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기획자인 자신도, 기획서가 정말 기깔나게 멋지게 뽑히거나 환상적인 엑셀 테이블 같은 걸 만들었을 때, 어떻게 그것을 만들었는지 설명하고 싶을 때가 있었으니까.
실무자들의 그런 욕망을 받아주는 것도 책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상혁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기열에게 물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기열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속사포처럼 자신의 위업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통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관절 부위엔 유압식 피스톤처럼 보이는 부품이 등장하곤 하죠.
사실 기계 구조적으로, 단순히 접혔다 폈다 만을 하는 관절 파트를 만드는데 그런 형태의 동작부를 만드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유압식 피스톤은 사람처럼 빠른 동작을 수행하게 만드는 데 한계가 있고, 전기식 모터는 움직여야 하는 무게가 커질수록 필요한 동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단점이 있죠.
게다가 전체가 금속 덩어리인 모터의 무게 자체도 영향을 주고요.
GE에서 생산하는 ‘시리즈 9000’모터 같은 경우는 27000마력을 낼 수 있지만, 모터 무게만 55톤이 넘습니다.
기본적으로 모터의 출력은 모터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15m 정도의 로봇을 부드럽게 동작시키기 위해 어떤 관절 구조를 채택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프로토타입을 박살내기도 하면서요.
그 결과가, 지금 유리벽 너머에 있는 ARM Mk-56입니다.”
“56번째 프로토타입이라는 건가요?”
실물 크기의 기계 팔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수십억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잘 아는 상혁의 마음속에, 조금씩 기열의 과도한 열정이 부담되는 것 같은 기분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열은 그런 상혁의 속내는 전혀 모른 채,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결과물에 대한 자랑을 쏟아내었다.
“저희는 각 관절의 구조가 가지는 장단점을 모두 모아서,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절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보통 전기 모터의 경우 RPM이 올라간 상태에서는 모터 자체의 회전 모멘트 때문에 효율이 더 잘 나오는 편이지만, 관성비가 높은 모터일수록 일정 모멘트에 도달할 때까지 전력효율이 낮아지죠.
게다가 관성모멘트가 클수록 가·감속에 들어가는 토크도 증가하고요.
반대로 유압식 실린더의 경우 균형 있게 지속적인 파워를 공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동작시키기가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죠.
저희는 그런 여러 가지 장단점을 통합하기 위해, 현재의 복합구조 관절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기본적으로 고토크상태에선 유압 실린더를 사용하여 관절에 가해지는 무게 부하를 보조하고, 중단 단계의 부하 상태에서는 본체 내부에 있는 대형 모터에 연결된 고탄성 와이어를 통해 자세에 속도를 더하며,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관절 내부의 모터를 이용해 관절을 컨트롤 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로봇 공학에서 쓰이는 구동 체계는 전부 가져다 밀어 넣은 거라고 할 수 있죠!
쉽게 설명하자면 하이브리드 자동차에서 시동을 걸 때나 저속운전을 할 때는 전기 모터를, 그리고 속력이 올라가면 가솔린으로 동작하는 엔진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 상태에 따라 완벽하게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에 필요한 기술은 스컹크웍스에서 전부 제공해 주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주요 공식을 설명드리자면···.”
가만히 놔두면 물리학 공식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상혁은 기열의 설명을 끊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분명 쉽게 설명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요.
한 줄로 요약하면 결국 ‘무지막지하게 힘든 일이었지만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서 어떻게든 만들었다.’ 아닙니까?”
“그···. 그렇죠.”
“그것만으로도 그 작업의 대단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지금 제 눈앞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설명은 그만두고 슬슬 교수님의 역작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시죠.
로봇의 완성까지 얼마나 남았을지는, 오늘의 테스트 장면을 보아야 확신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열은 상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연구실 벽에 있는 인터콤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지금부터 ARM Mk-56의 웨폰 실사 테스트를 수행합니다.
테스트 장소에 있는 스텝들은 전부 안전 지역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삐이 삐이 하는 경고음과 함께 유리벽 너머의 테스트 룸이 붉은 경고등으로 물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요란한 경고등 아래서, 3m 길이의 거대란 로봇팔 옆을 작업복을 입은 채 분주히 뛰어다니는 스텝들의 모습은 상혁으로 하여금 로봇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잠시 후, 모든 스텝이 자리를 비우자 기열은 노트북 앞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며 노트북 옆에 놓인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
“2020년 1월 5일.
ARM Mk-56 웨폰 테스트 개시.
ARM Mk-56 Part 1, 동력 공급 개시.”
그러자 스피커에서 여성 스텝으로 보이는 한 스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ARM Mk-56 Part 1, 동력 공급 개시.-
“ARM Mk-56 Part 2, 동력 공급 개시.”
-ARM Mk-56 Part 2, 동력 공급 개시.-
“로우 토크 조인트 구동 테스트 시작.”
-로우 토크 조인트 구동 테스트 시작.-
그 기묘한 대화를 들으며, 상혁은 ‘굳이 이런 과정까지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떠올렸지만, 굳이 그 질문을 기열에게 하지는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향해 말하는 기열의 표정을 보는 순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인원이 지금의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치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을 스스로 연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이 프로젝트에 영혼을 갈아 넣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부여라 할 수 있었다.
상혁은 미소를 띈 채 조용히 유리벽 너머에 있는 거대한 기계 팔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운동 전에 어깨를 푸는 것처럼, 느린 속도로 팔을 휘두르며 팔에 연결된 모든 관절을 하나하나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기열은, 진지한 목소리로 다음 테스트로 넘어갈 것을 지시했다.
“미들 토크 조인트 구동 테스트 시작.”
-미들 토크 조인트 구동 테스트 시작.-
‘위이잉’하는 관절음과 함께, 기계 팔의 움직임이 조금 빨라졌다.
이제 양쪽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기계 팔은, 마치 사람이 팔을 휘두르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기계 팔의 무게가 거의 4톤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상혁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자연스러운 기계 팔의 움직임에 조금씩 놀라는 중이었다.
“하이 토크 조인트 구동 테스트 시작.”
-하이 토크 조인트 구동 테스트 시작.-
마침내 관절 가동 속도의 한계점까지 로봇팔을 구동시키는 단계에 도달하자, 두 로봇팔은 마치 무술가가 정권 지르기를 하는 것처럼 빠르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혁은, 로봇이 주먹을 뻗을 때마다 로봇의 관절 곳곳에 달린 구멍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기열에게 물었다.
“혹시 전부 집어넣었다는 게, 관절에 로켓 부스트를 다는 것도 포함인가요?”
“할 수 있는 건 다 집어넣었죠.
말하자면 저 펀치는 일종의 로켓 펀치이기도 합니다.
물론 휘두르는 주먹의 속도에서 로켓 부스트의 출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5% 정도밖에 안되지만요.
대신 저 기능을 넣음으로써 로봇이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5%정도 빨라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열의 다음 말은, 상혁과 기열이 동시에 내뱉은 말이었다.
“로망이죠.”
“로망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메인 테스트인 무기 사용 테스트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ARM Mk-56 Part 1, 검 장착 개시.”
-ARM Mk-56 Part 1, 검 장착 프로토콜을 수행합니다-
“ARM Mk-56 Part 2, 방패 장착 개시.”
-ARM Mk-56 Part 2, 방패 장착 프로토콜을 수행합니다-
비록 몸체는 달려있지 않지만, 진짜 사람이 집어 드는 것처럼 바닥에 놓인 거대한 검을 집어 든 로봇 팔들이 서로를 향해 대치했다.
한쪽은 거대한 검을, 한쪽은 거대한 방패를 든 채로.
단순히 내리치는 충돌만으로도 엄청난 굉음이 발생할 것이 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혁은 긴장된 눈으로 로봇 팔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공격을 지시하는 기열의 외침이 들려왔다.
“Hit!!!!!”
-Hit!!!!!-
숙련된 검사가 검을 내리치는 자세 그대로, 검을 잡은 기계 팔은 반대편의 방패를 향해 거대한 강철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던 기계 팔은, 자신의 손에 들린 거대한 강철의 방패를 휘둘러 그 검의 공격을 막아냈다.
-까아아아아앙!!!!!!!-
수 톤에 육박하는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부딪히면서, 작열하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그와 함께 10인치 두께의 두꺼운 아크릴 벽을 뚫을 정도의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안전한 지역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지이이잉···.-
금속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과 진동은 공격이 멈춘 이후에도 수 톤짜리 거대한 강철 검을 울리게 하고 있었고, 상혁은 조용히 눈을 떠 정면에 있는 유리벽 너머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말도 안 되는 속도와 위력으로 진행된 충돌 테스트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손상 없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두 대의 기계 팔이 나란히 서 있었다.
“Yeeeeeeeeeeeeaaaaahhhh!!!”
“드디어 박살 나지 않는 기계 팔을 만들었다아아아아!!!”
연구실의 모든 스텝이 환호하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성 뒤에 감춰진 상혁의 본능이, 오로지 인간의 상상력에 대한 열정만으로 이뤄낸 이 대단한 위업을 칭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자 스피커에서도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만족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천하 대학교의 로봇 공학과 교수.
김기열이었다.
“다들 조용!”
그가 소리치자, 박수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러자 기열은 아직도 목마르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겨우 단 한 번의 충돌 테스트였을 뿐입니다.
여러분.
저희가 만들어야할 로봇은, 저것보다도 훨씬 격한 충격을 수백 수천 번에 걸쳐 견뎌내야 하죠.
단순히 멀쩡한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저희의 목표는, 그 너머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테스트를 계속하겠습니다.
저희가 설계한 이 강철의 팔과 검이, 얼마만큼의 격렬한 전투를 견딜 수 있는지.”
-알겠습니다.
그럼 연속 충격 테스트를 시행하겠습니다.
공격 횟수는 몇 번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스텝의 질문을 들은 기열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향해 외쳤다.
“부서질 때까지.”
그 말을 들으며, 상혁은 속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못해도 수백억은 들었을 듯한 저 두 기계 팔과 강철 검의 운명은, 결국 고철이 되어 박살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그러나 그런 미래를 알고 있어도, 상혁은 이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이 단 한 푼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방금 보았던 광경.
그것은 로봇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꿈꿀 수밖에 없는 ‘로망’그 자체인 장면이었기 때문에.
‘다음 NE 컨벤션에서는 로봇들이 싸우는 장면을 보며 경악하는 팬들의 얼굴을 찍어서 하이라이트로 편집해야겠다.
분명 내가 오늘 지었던 것처럼, 경악으로 물든 표정을 하게 될 테니까.’
그 누구도 시도조차 하지 못할 말도 안 되는 짓을 시도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보는 이들의 표정을 경악으로 물들게 하는 것.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상혁을 즐겁게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