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24화 (425/485)

424. 살아있는 게임의 광기

해밀턴이 처음으로 탐험하게 된 저주받은 해역의 유적은, 말 그대로 ‘모험’이란 단어 그 자체를 현실로 구현해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해밀턴은 동료들과 함께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와 싸우며 유적의 함정을 해체하고, 외줄을 타거나 굴러오는 바위를 피해 뛰어가는 등 마치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 단 한 명의 동료라도 없었으면 절대 클리어하지 못했을 거야.’

해밀턴이 그런 확신을 가질 정도로, 유적의 모든 어트렉션은 해밀턴의 동료 구성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정밀하고 완벽하게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기에, 해밀턴은 매번 위기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적절한 동료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시해야 했다.

그것은 ‘모험’이란 단체극에서 해밀턴이 맡은 선장의 역할,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재미있었기에, 해밀턴은 첫 번째 유적을 모두 클리어할 때까지 게임을 끄지 못했다.

결국, 그는 유적의 첫 번째 보상 상자를 연 후에야 게임을 종료할 수 있었다.

‘상혁 씨 말대로 아까 프로틴 바라도 먹지 않았으면 X될 뻔했네.’

몰려오는 피로감을 느끼며, 해밀턴은 게임을 종료시켰다.

그러자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텔레포트 하는 듯한 PRD게임 특유의 연출과 함께, 그의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서서히 현실의 그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해밀턴은 게임을 처음 켰을 때의 연출보다 게임을 끌때의 연출이 더 긴 부분에 의아함을 느끼며, PRD에 연결된 케이블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해밀턴과 마찬가지로 PRD에서 나온 상혁과 개발자들이 해밀턴의 주위로 걸어왔다.

해밀턴의 ‘첫 경험’을 축하하는 듯이, 단체로 손뼉을 치면서.

그 박수 소리 속에서, 상혁이 해밀턴을 향해 물었다.

“첫번째 유적 클리어를 축하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거기까지 플레이하시는군요.”

“제가 얼마나 게임을 한 거죠?”

“27시간 36분입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해밀턴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게임을 끄기 거의 직전까지, 그는 피로함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왜 게이머들이 PRD 전용 게임에 열광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PTW에서 범선까지 제작하며 이 게임의 데이터를 수정하려 했는지도요.

진짜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따금 내가 게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게임이 마음에 드셨나 보죠?”

“마음에 들지 않는 게임을 27시간 36분이나 플레이하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더 플레이 하고 싶었지만, 그 이상은 몸에 무리가 갈 것 같아서 어려울 것 같아서 게임을 종료한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개발자가 대화에 끼어들며 해밀턴에게 질문했다.

“저기저기! 황금 원숭이 빌카스가 들어간 퀘스트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아, 그거 좋았죠. 동료로 영입하는 퀘스트도 아주 좋았지만, 이후 유적에서의 활용도가 아주 높은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에만 해도 ‘도굴꾼이 굳이 파티에 필요한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빌카스는 그런 제 생각을 한방에 박살내더군요.

다만 특정 종류의 함정은 빌카스가 해체할 수 없어서 다른 방법을 써서 해제해야 했지만요.

그때는 인간 도굴꾼을 동료로 맞이하는 게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조금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 도굴꾼을 동료로 데려가면 ‘이 구간에선 원숭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게 되셨을 겁니다.

무한의 바다는 그런 게임이니까요.”

“혹시 원숭이 외에도 인간형이 아닌 동료가 더 있습니까?”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진 초지능 앵무새.

전설의 탐정의 동료인 명탐정 강아지.

모든 부정한 것을 퇴치하는 퇴마사 고양이.

머리는 좋지 않지만 힘쓰는 거로는 호든에게도 밀리지 않는 괴력의 빅풋도 있죠.

그 외에도 찾아보면 많은데, 그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들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잘하면 동물 농장파티도 만들 수 있겠는데요?”

그러자 상혁이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했다.

“자, 다들 외부인의 게임 평가가 궁금한 건 알겠지만, 그 외부인 씨는 지금 27시간 넘게 게임을 플레이하셨습니다.

일단 오늘은 빨리 돌아가서 주무실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죠.”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해밀턴 씨. 이 게임을 만든 저희 직원들조차도 수면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건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말짱한 정신으로 게임을 해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가서 푹 주무셔야 내일 더 즐겁게 게임을 하실 수 있겠죠.

아직 해밀턴 씨가 즐기신 게임 속 컨텐츠는, 2%도 안 되는 작은 분량이니까요.”

“잠깐만요, 지금 2%라고 하셨습니까?

27시간이나 플레이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게임에 있는 섬과 대륙은 800개가 넘습니다.

그 섬마다 퀘스트나 동료, 유적이 있죠.

그리고 바다 위에서 만날 수 있는 퀘스트도 수백 개가 넘고요.

게다가 초반에 선택한 캐릭터의 ‘재능’에 따른 다양한 전용 퀘스트도 있으니, 1회차로 모든 컨텐츠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해밀턴 씨. 무한의 바다는 애당초 ‘무한한 바다’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게임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게이머들이 그 무한한 바다를 보며 텅 비어있다고 생각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확실히. 첫 섬을 탐험하는 순간 생각했죠.

이 정도가 초반부 모험의 일부라면, 대체 전체 게임 스케일은 얼마나 큰 걸까 하고요.”

“그건 앞으로의 플레이에서 얼마든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있죠.

지금까지 해밀턴 씨가 경험한 모든 체험은, 이 게임이 보여주는 재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요.”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두근거리네요.”

“그럼 빨리 가서 주무시도록 하세요.”

해밀턴은 상혁의 권유를 받아들여 집으로 돌아갔다.

단순한 피로 때문이 아닌, 충분한 수면을 취해 더 말짱한 정신으로 게임을 만끽하기 위해서.

***

다른 일정 때문에 바쁜 관계로, 상혁은 해밀턴이 무한의 바다를 플레이한 첫날에만 모니터링을 했다.

그렇기에 해밀턴은 매번 플레이가 끝날 때마다 상혁을 찾아와 마치 보고라도 하듯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있었고, 상혁은 그런 그의 질문에 몇몇 중요 정보를 제외하곤 최대한 성실히 답변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 질문 중의 하나는, 바로 ‘도굴꾼’의 존재 의의였다.

“상혁 씨. 지금 제가 고른 캐릭터 재능은 체력 보정이 매우 낮아 스턴트 액션에 불리한 직업이라고 하셨죠?”

“그렇죠.”

“그럼 저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도굴꾼에 가까운, 그러니까 인디애나 존스 박사같은 캐릭터를 고른다면, 도굴꾼은 필요가 없는 건가요?”

“캐릭터의 육성이나 성장에 따라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적 탐사에 필요한 스턴트 액션은 거의 전문 스턴트맨이 수행해야 할 정도로 과격한 액션이 꽤 있는 편이고, 체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가급적이면 동료에게 부탁하는 게 편하게 모험을 진행하는 방법이겠죠.

아무리 시스템 어시스트를 받더라도, 플레이어 개인의 체력 조건에 따라 수행하기 어려운 동작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시스템 어시스트라···. 구체적으로는 어떤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혹시 게임 초반부에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가던 도주극 파트 기억하시나요?”

“아, 그 도심을 질주하면서 추적자들을 따돌리던 파트요?

기억하죠. 엄청 신나는 부분이었으니까.”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각 플레이어에게 맞는 적당한 시스템 어시스트의 레벨을 측정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해밀턴 씨는 다큐멘터리 전문 PD로서, 원래부터 아웃도어 스타일의 활동 스타일을 가지고 계시고, 장거리 이동에 익숙하며, 일반인보다 조금 더 높은 레벨의 액션을 소화 가능한 강한 체력과 신체 조건을 가지고 계시죠?”

“저는 일반적인 레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제가 말한 ‘일반인’은 현대의 ‘게이머’평균을 말하는 겁니다.”

“아하···.”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어마다 체격이나 신체 능력의 조건이 전부 달라서, 모든 플레이어에게 같은 보정치를 적용하면 같은 스턴트 액션이라도 어떤 플레이어에겐 난이도가 너무 높게 느껴지고, 어떤 플레이어에겐 난이도가 낮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점프 거리를 1미터 늘려주는 시스템 어시스트를 평소에 2m 가까이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에게 준다면, 그 사람은 게임 안에서 3m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되겠죠.

반대로 1m밖에 뛰지 못하는 사람에게 1m의 시스템 어시스트를 제공하면 그 사람은 2m 이상의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할 거고요.

그래서 플레이어가 어떤 재능을 고르든 간에, 플레이어는 초반에 무조건 그 추격 파트를 플레이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해밀턴 씨의 경우는 빚쟁이들이 쫓아온다는 설정이었지만, 다른 재능을 가진 캐릭터로 플레이하면 내연남에게 쫓기기도 하고, 군인들에게 쫓기기도 하고, 심지어 개한테 쫓기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도주를 하게 되어 있죠.

그 안에서, 게임은 이 플레이어의 기본 신체 능력이 어느정도인지를 측정하고, 게임 안에서 제공될 적절한 시스템 어시스트를 결정합니다.

그게 이 게임의 ‘디폴트 어시스트’가 되는거죠.

굳이 스턴트 액션 관련 스킬을 찍지 않아도, 최소한의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제가 도굴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적에서 나름 스턴트 액션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군요.”

“맞습니다. 저희는 초반의 추격 파트를 통해 해밀턴 씨의 기본 근력과 최대 점프 거리, 달리기 속도와 몸무게 등 다양한 정보를 얻어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유적의 어트렉션 난이도를 재조정했죠.

만약 해밀턴 씨가 기계 체조 선수 정도의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면, 유적에서 요구되는 액션 난이도는 거의 도굴꾼에게 요구되는 수준의 그것이 되었을 겁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도저히 클리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요.”

상혁의 말을 들은 해밀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상혁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럼 만약에 제가 초반에 있었던 추격 파트에서 고의적으로 대충 플레이했다면, 유적의 난도가 내려갈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게 단순한 시스템은 아닙니다.

그 파트 전에, 해밀턴 씨는 범선에서 로프를 당기고 짐을 날랐었죠?

그 짐이 있었던 자리에, 여러 가지 무게의 상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중엔 도저히 들 수 없는 크기와 무게를 가진 상자도 있었을 거고요.”

잠시 기억을 되짚은 해밀턴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것도 측정이었군요!”

“이미 첫 추격전 파트조차도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을 계산해서 제공된 겁니다.

해밀턴 씨가 밀어서 넘어트린 상자들, 뛰어넘은 지붕 사이의 간격, 타고 달렸던 마차 위의 흔들림.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신체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조정되어 등장한 거죠.

잡히면 게임 오버인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넘어갈 수 있는 어트렉션을 앞에 두고 고의로 대충대충 게임을 할 수 있는 유저는 그리 많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적의 난이도를 낮추려고 일부러 대충 하는 유저가 있다면요?”

“그 정도 수준이면 그냥 움직이는 거 자체가 싫은 사람이니 그 게이머의 취향에 맞춰줘야죠.

거기서부터는 유저의 선택의 영역입니다.

게다가 이 옵션들은 유저가 고의로 변경할 수도 있어요.

옵션을 호출해서 스턴트 액션 난이도 페이지에 가면 최대 점프 거리나 장애물 높이, 달리기 길이까지 다양한 옵션을 조정할 수 있죠.

그걸 조정함으로써, 플레이어는 자신을 쫓아오는 추격자의 속도나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의 종류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매우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게 되겠지만, 반대로 매우 게임이 루즈해질 수도 있겠죠.

미친 듯이 전력 질주해야 겨우 피할 수 있는 바위가 굴러오는 상황에서 뛰는 것이, 걸어가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바위를 피해 느긋하게 걸어서 피하는 것보다는 훨씬 즐거울 테니까요.”

“어떤 뜻인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다면, 파쿠르 계열의 스킬은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안 찍어도 클리어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시스트가 충분히 제공된다면서요?”

“그럼 숨겨진 보상을 얻기가 어렵죠.

유적에 가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게임에서는 ‘어? 저기까지 점프할 수 있으면 저 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구간이 자주 등장합니다.

보통은 그 구간을 돌파하기 위해 도굴꾼을 쓰는 거지만, 데리고 있는 도굴꾼이 스턴트 계열이 아닌 함정 해체 계열이라면 단순히 ‘거기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라는 의심만 가진 채로 탐사를 포기해야 할 때가 많죠.

반대로 스턴트 계열 재능을 가진 캐릭터로 플레이하고 있으면,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문자들을 보게 될 거고요.

그 문자들은 숨겨진 보상으로 가는 중요한 힌트를 안고 있지만, 특정 재능이나 스킬, 동료를 가지지 않은 플레이어는 그 문자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게임은, 한번 클리어한 던전이라도 후반부에 동료를 더 갖추고 스킬을 배워서 다시 클리어하는 것이 권장되는 게임입니다.

분명 초반에 클리어했던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뭔가가 더 나오는 것이 무한의 바다라는 게임이니까요.

그렇기에 이 게임에서는 공략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죠.”

상혁의 말은 해밀턴의 흥미를 끌었다.

“공략이 의미가 없다고요?”

“유저가 가진 재능, 스킬, 동료와 아이템에 따라 만날 수 있는 NPC도, 탐험할 수 있는 유적의 형태와 보상도, 심지어 배를 적절히 운영하기 위한 권장 파티의 멤버도 전부 달라집니다.

해밀턴 씨는 지금 학자 캐릭터로 플레이하고 계시지만, 이 게임에는 탐정이나 검사, 저격수나 무법자, 해군 같은 수많은 재능이 존재하죠.

다른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가 유적을 공략하는 방식은 또 다른 플레이어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게임의 공략 방식을 변경시키는 선택지들이 게임 곳곳에 엄청나게 많이 숨어있죠.

극 초반 배에서 해밀턴 씨가 옮겼던 짐의 무게에 따라 초반 추격파트의 장애물 난이도가 변경된 것처럼, 이 게임에서는 아무 힌트 없이 공략 스타일을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심지어 같은 플레이어가 똑같은 방식으로 두 번 게임을 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죠.

첫 번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늘어난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이나, 습관처럼 굳어진 퍼즐 해결 방식조차 게임의 내용을 변경시키니까요.

무한의 바다는 말하자면 살아있는 게임입니다.

게임이 알아서 게이머의 플레이를 파악하고 그 게이머가 최대한의 재미를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재구성하죠.

어떤 상황에서라도 100% 이상의 성취감을 지속해서 느낄 수 있도록.

그렇기에 이 게임을 하면서 공략을 보고 가장 좋은 보상을 얻기 위한 루트를 찾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애당초 그 공략을 올린 사람조차도, 그게 최고의 보상인지 확인할 수 없는 게임이 바로 이 게임이니까요.”

상혁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지극히 개발자다운 표정으로.

“이렇게 멋진 게임 속에서, 저희가 지금까지 확신할 수 없던 건 오로지 하나뿐이었죠.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범선을 타는 것에 있어서, 플레이어에게 진짜 범선을 타고 바다를 누비는 기분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이 게임은 오로지 그 부분을 빼면 모든 부분이 완벽한 게임이었어요.

그러니 조 단위의 예산을 부어서라도, 직접 범선을 만들어서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한 겁니다.

범선을 타는 부분을 게임의 가장 멋진 부분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의 다른 부분이 가지고 있는 퀄리티까지 범선 운행 파트의 퀄리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죠.

그리고 그 결과는, 해당 데이터가 적용된 게임 버전을 플레이해본 해밀턴 씨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죠.”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최고였습니다. 어둡고 습기찬 유적을 빠져나와, 보물상자를 품에 안은 채로 밝은 햇볕을 볼 때의 기분.

그리고 보물상자를 들고 있는 저를 보고 환호하는 선원들의 함성을 듣는 기분.

그 보물을 들고 배 위에 올라 항구로 돌아갈 때의 기분.

그 모든 감각이 마치 진짜처럼 피부에 하나하나 와닿고 있었죠.

그리고 그 감각은, 제가 4개월 간 민준 씨와 범선을 타며 느꼈던 그 감각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바로 그 감각이었습니다.”

“예전에 해밀턴 씨는 저희가 굳이 범선을 만들어서 고작 테스트를 위해 박살낸다며 저희의 계획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셨었죠.

그 멋진 범선들은 당연히 온전한 상태로 박물관에 가야 하는 물건들이라고 하시면서요.

지금도 저희가 범선 제작에 쓴 예산이 낭비라고 생각하시나요?”

해밀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상혁이 카리브해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PTW가 만든 게임은 ‘범선의 영혼’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감각을 위해서라면, 그 멋진 범선들의 희생조차 절대 헛된 일이 아닐 거로 생각하며, 해밀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만약 범선에 영혼이 있다면, 그 범선의 영혼조차 이 게임을 보고 만족하게 될 겁니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보아도, 이 게임은 모험과 항해, 동료라는 로망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해밀턴은 그 이후로도 이주가 넘는 기간 동안 게임을 플레이했다.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이 자신의 재미를 위해서.

처음 해밀턴이 게임 플레이를 위해 본사에 요청한 플레이 기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어차피 게임을 좋아하던 스타일도 아니고, 느긋하게 플레이해도 일주일이면 게임의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PTW에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게임의 스케일은 그런 그의 예상을 아득하게 벗어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일주일의 파견 기간이 끝난 이후 회사에 휴가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제발 좀 쉬라고 간청해도 절대 휴가를 가지 않았던 그는 모아둔 모든 연차를 동원했고, 나중엔 자신이 올해 쓸 수 있는 추가 연차까지 모두 당겨 쓰며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PTW 직원이 아닌 다큐멘터리 PRD였기에, 상혁이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말했던 게임의 엔딩까지는 보지는 못했다.

3주가 넘는 기간에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어 플레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엔딩을 보지 못할 정도로 게임의 스케일이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해밀턴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자신이 예전에 입던 옷을 입으며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그의 옷이 훨씬 헐렁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해밀턴은 급하게 체중계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3주간 빠진 자신의 몸무게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친···.”

하루 평균 6시간 정도의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3주간 매일같이 18시간을 PRD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에서 보낸 결과.

그의 몸무게는 무려 15KG이나 빠져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몸무게만 빠진 것이 아니라, 지방이 빠진 자리를 근육이 대체하기까지 하면서.

해밀턴은 어쩌면 미국의 고질적 문제라는 만성 비만의 해결책이 바로 PRD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허리에 있는 버클을 힘껏 죄었다.

그리고는 짐을 챙겨 미국으로 돌아갔다.

PTW의 개발팀이 전력을 다해 게임을 만든 것처럼, 자신 역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멋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각오를 안은 채.

그리고 해밀턴이 그런 각오를 하고 차에 오르던 그 시각, 상혁은 공항에 가기 위해 차에 오르는 해밀턴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게임의 메인 홍보 수단이자 게이머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트릴 다큐멘터리의 편집이 완료되는 시점.

그때가 바로 PTW가 진행하는 ‘차세대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일 거라고.

실제 크기의 범선을 만들면서까지, 개발팀 모두가 목숨을 걸고 만든 게임이 발매 되는 순간.

그 순간까지는 아주 조금의 시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좋아.”

상혁은 두 손으로 자신의 빰을 세차게 때렸다.

그리고는 문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하나는 이걸로 끝.

이제 남은 건 다른 하나뿐이로군.”

잘 알려져 있다시피, PTW에서는 항상 게임의 홍보 할 때 굵고 짧은 마케팅 수단을 선호하고 있었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지속적인 광고 대신, 전 세계의 주목 속에서 진행되는 단 한 번의 광고를 하고, 신문과 잡지, TV에 기사를 싣는 대신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몇 년 이상 게이머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압도적인 컨벤션 행사를 진행하는 식으로.

그리고 상혁은, 이번에 발매할 예정인 게임 중 ‘무한의 바다’를 위해 장편 다큐멘터리를 준비해놓았다.

‘아니 왜 게임회사에서 저런 미친 짓을?!’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범선 제작 과정부터 게임의 일부 내용까지 게이머들을 흥분시킬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런 시리즈를.

그리고 이제는 다른 한 개의 게임을 위한 마케팅 수단을 준비해야 할 시기였다.

상혁에게 있어서는, 두 게임 모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두 게임의 극명하게 갈리는 타겟 층은 상혁으로 하여금 두 게임이 같은 형태의 마케팅 수단을 쓰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무한의 바다가 해적과 범선을 사랑하는 비 오타쿠층을 겨냥하는 게임이라면, 나머지 한 개의 게임은 완벽하게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미소녀 캐릭터에 열광하는 유저들을 타겟으로 만든 게임이었으니까.

완전히 다른 제작사에서 만든 게임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서로 다른 두 스타일의 게임을 동시에 발매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혁은 소위 말하는 ‘오타쿠’들에게 새 게임을 어떤 식으로 홍보할 것인지를 고심했다.

생각에 잠긴 채 복도를 걷던 상혁에게 PTW 직원들이 웃으며 인사했지만, 상혁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이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닿고는 고개를 들었다.

“어? 내가 언제 여기 왔지?”

상혁은 고민을 하며 산책을 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상혁의 몸이 본능적으로 자주 방문했던 지역으로 상혁을 이끈 것 같았다.

상혁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앞에 있는 거대한 건물을 보았다.

그리고는 건물 벽에 달린 조그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때가 덕지덕지 낀 티셔츠를 입은 채 열심히 목공 망치를 휘두르던 거대한 남성이었다.

“상혁 씨! 오셨습니까?”

“예. 수리는 어떻게 잘 되어 갑니까?”

“하고는 있죠.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원래대로는 절대 복원 못 합니다.

아마 복원이 완료되더라도 걸레짝 같은 모습이 되어 있겠죠.

용골부터 메인 마스트까지 성한 부분이 없으니까요.”

상혁의 앞에 있는 것은 거대한 범선이었다.

그 과격한 전투 테스트를 마치고, 산산이 부숴진 트리거 호의 잔해.

상혁은 그것을 항모에 있는 헬기를 이용하여 끌어 올린 후, 미리 대기시켜둔 화물선을 통해 한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천하 대에 거대한 공장식 도크를 지어 그 안에서 복원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게임이 발매된 이후에도, 자신들이 얼마나 게임 제작에 진심이었는지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사용하기 위해.

복원이 완료되면 트리거호는 PTW의 본사 옆에 설치되어 관광 장소로 쓰일 예정이었다.

상혁은 이 박살 난 범선이, 무한의 바다가 발매된 이후 PTW의 심볼이 되어 게이머와 직원들의 마음속에 ‘PTW는 게임 제작에 이정도로 진지하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세상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보겠다고 실제 크기 범선을 제작하는 미친놈들은, PTW외에는 없을 테니까.

그 ‘광기’야 말로 PTW라는 회사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며, 상혁은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은 자신이 애타게 찾고 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오직 오타쿠를 위해 만들어진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상혁은 미소지으며 범선을 수리하고 있는 목수들에게 인사한 뒤,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PTW 본사가 아닌, 천하대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혁의 걸음걸이에는, 조금 전 고민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경쾌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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