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 부수는 이유
갑판 위에 있던 6개의 컨테이너 하나당 400유닛씩.
상혁은 총 2400개의 스턴트 봇을 준비시켜 놓았다.
그것은 대포알에 맞아 박살 날 로봇의 여분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마치 스타워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로봇들의 모습을 보며, 해밀턴은 한참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로봇들이 사열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송 중의 흔들림으로 서로 충돌하여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컨테이너 중앙에 설치된 견고한 지지대에 고정된 로봇들은 그 지지대에 연결된 고리가 해제되자 마치 잠에서 깨어난 인간처럼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200대씩 12열 종대로 갑판 위에 사열했다.
그 진귀한 모습에, 갑판에서 일하던 미 해군뿐만이 아닌, 조종사부터 함장까지 모두 갑판으로 튀어나오자, 항공모함의 갑판은 마치 영화촬영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 되었다.
그 기괴한 모습을 앞에 두고서, 상혁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이 가져온 로봇 군단의 위용을 마음껏 만끽하는 중이었다.
“저기···.”
그때, 상혁의 곁에 다가온 해밀턴이 상혁에게 질문했다.
질문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대체 저건 뭡니까?”
“말씀드렸잖아요? 대포알을 사람 대신 맞아주려고 만들어진 스턴트용 로봇이라고요.”
“그럼 진짜 인공지능이 탑재된,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이란 말입니까?
총도 쏘고, 전차도 몰 수 있는?”
그러나 상혁은 그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현재 스턴트 봇에 탑재된 인공지능은, 오로지 함선의 선원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인공지능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처럼 대포알을 피하려고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명령에 따라 대포를 장전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칼을 들고 다른 로봇과 싸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전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으로 통제되는 조작입니다.
학습에 의한 게 아니라요.
추가 데이터를 넣어서 인공지능을 개선하는 건 가능하지만, 로봇이 스스로 습득한 데이터를 가지고 뭔가를 배우는 건 불가능하죠.
그러니까 로프를 붙잡고 갑판 위를 날아다니며 피스톨을 쏘는 건 완벽하게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외의 행위.
예를 들면 아기 기저귀를 간다던가 하다못해 연필로 글씨를 쓰는 그런 행위를, 저 로봇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입력하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하겠죠. 인간의 움직임을, 인간의 근력 수준으로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니까요.
하지만 그 경우에 효율은 극도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지금 만들어진 버전도, 제한된 움직임만을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 유지시간이 3시간 정도밖에는 되지 않으니까요.”
“더 늘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럼 무게가 늘어나서 대포알을 맞았을 때 사람처럼 날아가지 않겠죠.
중요한 건 목적입니다.
저희의 목적은 사람처럼 움직일 로봇을 투입하는 것이지, 사람보다 뛰어난 로봇을 투입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 저 많은 로봇이 전부, 오로지 ‘부서지기 위해’ 투입된다는 말입니까?
딱 보기에도 무지막지하게 비싸 보이는데요?”
“생각보다는 쌉니다. 그냥 겉만 번지르르 한 거지, 안에 들어간 장치는 기본적으로 PRS에 들어가 있는 장치와 별다를 게 없거든요.
저 로봇 안에는 각 관절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인공 근육에 해당하는 와이어와, 그 와이어를 컨트롤 하는 모터, 그리고 그 모터의 동작을 제어하는 컴퓨터와 전체 구동계에 동력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들어있습니다.
프레임과 외장을 포함한 전체 무게는 70kg 정도죠.
근력이나 악력도 인간과 비슷한 수준에서 맞춰져 있고, 취할 수 있는 자세도 인간과 같습니다.
그 외에 인간의 스펙을 초월하기 위한 모든 설계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고요.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저건 사실 로봇이라기보다는 걸어 다니는 드론에 가까운 물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걸어 다니는 드론이라고 해도 싸 보이지는 않는데요.”
“안에 있는 모터나 와이어를 컨트롤 하는 기술은 세계 최고의 자세 제어 기술을 보유한 저희 PTW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상태였고, 외부를 덮은 플라스틱 커버의 설계는 세계 최고의 플라스틱 사출 기술을 가진 번다이에서, 그리고 동력계와 배터리는 테슬러에서 받았죠.
안에 들어가는 칩셋은 설계는 스컹크 웍스에서, 제조는 삼정 파운드리 연구팀에서 맡아서 처리했고요.
저희가 한 건 이미 있는 기술을 적당히 조합해서 필요한 장비를 만든 것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로봇을 만들어보자.’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땐 엄청나게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필수적인 기능만 구현하니 너무 허무하게 완성되더군요.
하지만 지금의 저 로봇은 단순히 가능성만을 품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 상태에서 처리 능력을 올리려면 칩셋의 연산 능력을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그럼 필요한 전력이 늘어나게 되며, 그럼 배터리의 무게가 증가해야 하고, 구동계와 프레임을 갈아치워야겠죠.
늘어난 무게에 맞춰 모터도 더 강력하고 무거운 걸 써야 할 테고요.
딱 3시간 정도의 구동 시간 안에서, 정확히 15세기 선원들이 할수 있는 제한된 행동만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비이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제작이 가능한 겁니다.
저기서 기능 몇 개가 추가되는 순간 가격이 미친 듯이 뛴다고 볼 수 있죠.”
“그 말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주문 제작을 하게 되면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린건 순수하게 로봇의 제작에 들어간 비용만을 말씀드린 겁니다.
해당 로봇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PTW에서 투자한 금액은 거기 포함되어 있지 않죠.
저희는 NPC선원들의 AI를 완성하기 위해 실제 15세기 범선을 만들어 원양 항해까지 하면서 선원들이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세세히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그 비용을 생각하면, 저 로봇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로봇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 것 치고는 지금 사열하는 자세가 영···.”
해밀턴의 말을 들은 상혁은 항모 갑판 위에 사열해 있는 로봇들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로봇의 사열 자세라기보다는, 마치 15세기 해적들을 모아놓은 듯한 껄렁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로봇들이 묘하게 틀어진 대열을 취하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상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른 직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 직원이 옆에있는 상자에서 물건 두 개를 꺼내 상혁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딥 다이버 아닙니까?”
해밀턴의 질문을 받은 상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딥 다이버 하나를 그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에 딥 다이버를 뒤집어쓰며 해밀턴에게도 딥 다이버를 장착할 것을 권했다.
“전원을 올리세요. 그럼 저 로봇이 왜 저러고 있는지 아시게 되실 테니까.”
해밀턴은 상혁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을 통해 AR 모드로 구동된 딥 다이버가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플라스틱 외관을 하고 있던 2400대의 로봇들이, 15세기 해적의 복장을 완벽하게 갖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모습이었다.
-카아아아악~~퉷!-
심지어 고개를 아래로 털며 가래침까지 뱉는 ‘해적’의 모습을 보며, 해밀턴은 이제야 로봇들의 껄렁한 자세가 이해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니까 이미 저 로봇들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15세기 선원들의 그것이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배를 조종하는 데 필요한 음성명령에도 반응하고, 서로 음성으로 정보 교환도 하죠.
신체 일부가 파손되면 비명을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선원이 붙어야 할 자리에 사망자가 발생하면 다른 로봇에게 자리를 메꾸라고 요청도 합니다.
탑재된 성격에 따라 겁을 먹으면 도망도 치고요.
물론 이런 로봇들의 자유의지는 저희가 로봇에 탑재된 ‘연기 모드’를 활성화했을 때에만 동작합니다.”
“연기 모드라 하심은, 다른 모드도 있다는 건가요?”
“미션 모드로 들어가면 공포심이나 인간적인 반응을 하지 않고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기 전까지 맡은 업무만을 수행하게 되어있죠.
오늘의 테스트는, 연기 모드가 아닌 미션 모드로 진행될 겁니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배 안에 실제 사람을 태울 수는 없으니, 로봇을 태워서 대신 포탄을 쏘고 배를 조종하게 하는거죠.”
상혁이 노트북으로 모드를 변경하자 껄떡대는 자세로 서 있던 로봇들이 일제히 차렷 자세로 전환 되었다.
그리고는 한 줄씩 차례대로 이동하며 함선으로 이동하기 위해 보트가 준비되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밀턴은, 절도있게 줄 서서 걸어가는 로봇들의 모습을 보며, 상혁이 해준 설명을 머릿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제한적이라고는 했지만 이미 저 로봇은 그 존재만으로 엄청난 가능성이 있는 물건 같은데?’
들어간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설계를 약간만 변경해도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꿀만한 물건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고작’ 게임 하나 만드는데 쓰겠다는 상혁의 발상을, 해밀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저기, 상혁 씨?”
“예.”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게임이 발매되기 전까지 엠바고를 지켜주신다는 약속만 유효하다면, 어떤 질문이든 괜찮습니다.”
“조금 전 상혁 씨는 저 로봇이 별로 대단한 물건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능에 비해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면 모를까, 저렇게 부서질 용도로 2400대씩 만들어질 로봇이라면 생산 단가가 그리 비싸지는 않은 물건이겠죠.
그럼 그것이 아무리 인간 수준의 근력만을 발휘하는 물건이라도, 충분히 현대사회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배달이나 짐 나르기, 아니면 카페 서빙 같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다양한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죠.
산업 현장에서의 수요도, 말 그대로 어마어마할 거고요.
어쩌면 인간의 능력 위에 쌓아 올려진 현대 산업이란 기반 자체를 무너트릴 수도 있는 물건을, 겨우 게임에 현실감을 부여한다는 목적으로 개발한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행위가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어째서요?”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이 로봇의 연산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상혁이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배달업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현재 저희 PTW에서는 인간 중 가장 뛰어난 레이서가 가지고 있는 운전 능력을 완전히 상회하는 수준의 레벨 5 자율 주행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탑재한 차량은 아직 발매하지 못하고 있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법적인 문제라던가?”
“배터리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는 세계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비선형 컴퓨터죠.
우린 인간은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오감을 사용해서 실시간으로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언제 정면을 바라보아야 하고, 언제 백미러를 보아야 하는지, 눈앞에 있는 물건이 진짜 사람인지, 아니면 앞에 있는 트럭 뒤에 그려진 그림인지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죠.
수많은 센서를 사용해서 인간보다 뛰어난 초감각을 구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센서로 수집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워 다이버가 연산 센터의 지원 없이는 임무 수행이 불가능한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그러니 실제 인간 배달부가 가지는 운전 능력을 저 로봇에 탑재하기 위해서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전력 수요와 발열량을 커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운전이 어렵다면, 단순 물류 업무는요?
트럭에 짐을 싣는다던가?”
“그 정도는 가능하겠죠. 물론 안에 들어있는 물건에 따라 상자의 무게 중심이나 파손 방지를 위해 필요한 적절한 힘이 전부 다른 만큼, 충분한 데이터를 쌓아서 프로그램을 짜야 하겠지만.”
“그럼 총은 어떻습니까?”
“총이요?”
“방탄복을 입혀서 참호에 넣어두고, 적군 군복을 입고 접근하는 모든 존재를 사격하는 것 말입니다.
두려움을 모르니 조준이 틀어질 일도 없을 거고, 자세를 취하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죠.”
상혁은 해밀턴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보트에 승선하기 시작한 로봇들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해밀턴을 향해 질문했다.
“혹시 저 로봇들에 사용된 기술이 전쟁에 사용될까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이미 PTW는 미국 국방성에 워 다이버라는 전쟁 병기를 제공한 경력을 가지고 있죠.
이번에 제작할 로봇의 개발에는 DARPA도 개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미군이 로봇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확실히 무리는 아니죠. 하지만 미군이 실제로 그런 짓을 시도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째서요?”
“그건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일이 될 테니까요.
만약 단순히 접근하는 적을 발견하여 사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냥 감지기능이 달린 터렛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힙니다.
인간형 장비의 전투 효율이 그렇게 높다면, 어째서 간담 대신 탱크를 쓰겠어요?
애당초 포를 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리나 팔은 쓸데없는 장식일 뿐이죠.
쓸데없이 피탄 면적과 중량만 늘리는 애물단지입니다.
물론 다리의 존재는 캐터필러로도 갈 수 없는 복잡한 지형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게 해 주긴 하지만, 그런 장소가 아니라면 그렇게 쓸모없는 물건도 드물죠.
전장에서 병사의 가치가 높은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현대의 컴퓨터로 처리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비선형 연산’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기능을 전부 수행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가 달린 로봇 한 대보다, 전투 식량 한 팩으로 24시간을 버틸 수 있는 인간을 쓰는 게 더 싸게 먹히죠.
게다가 전투력도 더 높고요.
반대로 현재 상태에서 저 로봇의 전투 능력을 높이려면 무게 증가를 감수해야 하는데, 성능이 올라가면 무게와 가격이 올라가고, 가격이 올라가는 만큼 방어 성능을 올려야 하니 무게가 또 증가하고, 그 때문에 배터리가 더 무거워지는 무한의 루프를 타게 됩니다.
겨우 ‘몸을 가누는 데만’ 가지고 있는 운동능력과 연산 능력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형태의 무거운 로봇보다는, 정확히 필요한 기능만을 가지고 태어난 드론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죠.
해밀턴씨가 말하는 ‘전쟁용 로봇’이라는 물건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재 인류가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 저장 기술을 아득히 웃도는 가벼우면서도 효율 좋은 에너지 공급원의 존재가 필수적입니다.
토디 스터크가 아크 리엑터라도 만들어주면 모를까, 리튬 이온 배터리 기반으로 그런 슈퍼 로봇을 만드는 건 무리죠.”
“하지만 미군에서도 이족 보행 로봇에 대한 연구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산악 지형에서 짐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4족 보행 로봇 같은 것도 있고요.”
“연구만 하는거죠.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2족 보행 로봇의 허세를 그린 만화가 있습니다.
간담처럼 생긴 2족 보행 로봇을 만들었더니, 서 있는 상태에서 피탄 면적이 너무 넓어 집중 포격의 타겟이 되는 문제가 발견되었죠.
그래서 사격 시에 엎드려쏴 자세로 피탄 면적을 낮췄더니, 이번엔 엎드린 상태에서 이동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배에다 무한궤도를 달았더니 다리가 쓸모가 없어졌죠.
그래서 다리를 제거했더니 이번엔 ‘굳이 팔로 대포를 들고 쏴야만 하냐?’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팔을 없애고 몸통에 대포를 달았더니, ‘그럼 머리는 어디다 쓰냐?’라는 지적이 나왔죠.
그래서 머리를 없앴더니 결국은···.”
“전차가 되었겠네요. 그건.”
“그렇죠.”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죠.
다리 따위는 장식입니다. 높으신 분들은 그걸 잘 알고 계시죠.”
“로망은 있지 않나요?”
“거기엔 동의합니다. 아마 GOS를 저희가 지금처럼 자금력이 넘치는 시기에 만들었다면, 시뮬레이션을 하겠다고 실물 크기 로봇을 만들어 전투 테스트를 했을지도 모르죠.”
“오!!! 그건 정말 끝내주는···.”
해밀턴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혁이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자르며 말했다.
“안 할 겁니다. 저희도 선이라는 게 있어요.”
“지금 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고려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은 말이네요.
PTW에 선이 있다는 말.”
해밀턴이 바라보는 방향에는, 모터보트에서 기어올라 PTW에서 주문한 3천 톤급 범선에 타고 있는 로봇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상혁은 그 로봇들이 자리를 잡을때를 기다리다가, 민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엔 언제 준비했는지 딥 다이버를 쓴 채로 명령을 내리기 위해 PRD에 탑승한 채로 대기하고 있는 민준의 모습이 있었다.
“지휘는 민준 씨가 하는 건가요?”
“4개월 동안 트리거 호의 선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대포부터 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은 충돌 테스트부터 수행할 거니까요.”
“하지만 단 한 번의 충돌로 배가 박살 나서 가라앉을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12척이나 주문한 거니까요.”
상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원 제1종 전투 배치!”
그것은 PTW 역사상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간, ‘전투 테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
“충돌한다! 전원 충격에 대비하라!”
민준의 외침에 따라, 배에 타고 있는 400대의 로봇이 일제히 들고 있던 장비를 놓고 난간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직후, 굉음과 함께 민준이 조종하고 있는 거대한 함선이 다른 함선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콰드드드득!-
두꺼운 목재가 압력을 못 이기고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상혁과 함께 있던 PTW 직원들이 일제히 실험 데이터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252번부터 755번까지 압력 센서 파손 확인.”
“충돌로 인해 침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남은 센서들로 수압 자료를 수집하겠습니다.”
“아예 가라앉을 때까지 테스트는 계속합니다.
선체 내부의 보수 테스트에 들어가겠습니다.”
“24번 로봇부터 44번 로봇까지 선체 보수 작업 개시.
들어오는 물을 수선용 목재로 막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수압이 너무 세서 보수가 어려울 듯 합니다.
로봇을 추가 투입하겠습니다.”
“일단 투입된 로봇은 방수 처리가 되어있긴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니 수위가 사람 어깨높이를 넘어가면 로봇은 작동 정지시키거나 철수시키세요.”
상혁은 실험실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와, 현장 실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철저하게 구분했다.
그리고는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러 메인 마스트를 대포로 쏴서 부러트린 다음 배에 가해지는 충격량을 확인한다던가, 배 안에 있는 로프가 끊어지면서 풀려난 대포가 벽에 부딪힐 때의 충격량을 확인한다던가.
일부러 선체 내부에 탑재된 물탱크에 물을 채워, 실려있는 짐의 무게에 따른 충격량의 변화를 테스트하기도 하고, 기울어지기 시작한 배를 선원들의 몸무게로 다시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범선의 제작에 쓰이는 나무가 얼마 정도의 인장 강력을 버틸 수 있는지, 정면으로 옆구리를 들이받혔을 때와 비스듬하게 충돌했을 때 어떤 식으로 배가 파손되는지.
작은 배가 큰 배를 들이 받았을때와 큰 배가 작은 배를 들이받았을 때의 충격이 어떻게 다른지.
배마다 달린 수십만 개의 센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실험이 진행되는 동시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항모에 실려있는 데이터 센터로 전송했고, PTW에서 설치한 데이터 센터는 항모에 달린 두 개의 원자로에서 전력을 미친 듯이 끌어 쓰면서 그 데이터를 모두 처리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상혁은 조금의 아쉬움도 표현하지 않으며 한 대당 수백억에서 수천억이 투입된 15세기 범선들을 미친 듯이 박살 내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다양한 방법으로.
“다음은 크라켄 테스트입니다. 워터 튜브 준비해주세요.”
거대한 범선을 통째로 둘러싸고도 남을 만한 커다란 튜브로 배를 빙 두른 상혁은 그렇게 배를 감싸고 있는 튜브에 물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튜브가 부풀어 오르며 마치 고대 신화에 나오는 크라켄의 거대한 촉수처럼 변했고, 상혁은 튜브의 양쪽 끝에 연결된 쇠사슬을 미군 전함에 연결한 뒤 동시에 잡아당겼다.
그러자 현대식 전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출력을 받은 튜브가 목조 범선을 쥐어짜듯 박살 내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펑-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목재가 내는 기괴한 소리는 마치 배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상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으로 함선 위에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로봇들을 통해 ‘크라켄’의 촉수에 배가 박살 나는 순간 선원들이 받는 압력과 진동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포격 시험의 데이터를 제외한 모든 데이터의 수집이 끝났을 때, 현장엔 단 7척의 배만이 외로이 떠 있게 되었다.
‘미친, 진짜 박살 내네?!’
해밀턴이 질린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는 이유는, 단순히 지금 하는 테스트가 돈 지랄처럼 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말도 안 되는 실험을 보면서, 해밀턴은 PTW가 돈을 정말 알뜰하게 쓴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상혁은 정말 철저하게 범선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이미 사람 두 배 크기만 한 구멍이 나서 바다에 가라앉은 배를 크레인으로 다시 끌어올려 수리해서 다른 테스트에 써먹거나, 반으로 쪼개진 함선을 끌어 올려 부속 단위로 쪼개 다시 파괴 테스트를 할 정도로.
그렇게 수천억을 카리브 해 앞바다에 가라앉힌 상혁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남아있는 배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제 포격전 테스트만 하면 얼추 마무리되겠네요.”
“그럼 남은 배들도 다 박살 나게 되겠죠.”
해밀턴이 투덜대듯 말하자, 상혁이 물었다.
“뭔가 불만이라도?”
“아뇨. PTW에서 만든 배를 PTW에서 부수는 거니, 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죠.
저는 다만 범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수천 명의 장인이 1년이란 시간을 모두 쏟아부어서 만든 저 아름다운 배들이, 단지 게임의 현실성이라는 이유로 사정없이 부서지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어차피 부서질 배라면, 저렇게 공들여 만들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 해밀턴의 말을 들은 상혁은,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한 척 정도는 남겨두는 게···.”
“당신이 게이머가 아니라면 말이죠.”
상혁이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가 조 단위의 금액을 투자하면서까지 이 정도 규모의 물리적 실험을 진행하는 이유는, 가상의 범선에 타고 있는 게이머에게 실제 범선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상황이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라는 가정의 느낌이 아닌, 실제 크라켄의 촉수에 잡혀 배가 쥐여 짜일 때 어떤 소리와 느낌을 느끼게 되는지, 혹은 상대 전함에서 동시에 발사된 120발의 대포알이 내 전함에 맞을 때 어떤 느낌이 나는지, 그런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거죠.
그를 위해 이번에 탑승한 로봇들에는 구동을 위한 장비 외에도 수백 개의 센서를 덕지덕지 도배해놓았습니다.
대포알이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을 때 어떤 압력이 느껴지는지, 배의 구멍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의 차가움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저희의 스턴트 봇들은 그 모든 감각을 인간이 체감할 수 있는 오감을 모방한 센서로 수집해서, 이 항모에 설치된 데이터 센터에 보내고 있죠.
그것을 통해, 게이머들은 PRD로 15세기 범선을 타면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100%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신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일정 이상의 충격량은 배제하고요.”
“하지만 정작 그 게이머들은 실제 범선에 탄 경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상의 데이터와 현실적인 데이터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이건, 단순히 PTW가 이 게임에서 100% 현실적인 감각 재현을 위해 12척의 범선을 박살 냈다는, 일종의 마케팅 수단의 의미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요. 사실 적당히 물리 엔진을 통해 구현한 시뮬레이터로 구현한 감각을 전달하더라도, 현실의 그것과 딱히 구별되지 않는 멋진 감각을 전달할 수 있겠죠.
그리고 게이머들은 그것이 현실적인 느낌이라고 혀를 내두르며 게임을 하게 될 거고요.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게이머들을 만족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역시 마케팅 적인 이유입니까?
단순히 홍보를 위한 것인가요?”
상혁은 불만을 내뱉는 해밀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해밀턴 역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민준과 4개월이란 시간 동안 트리거호를 타고 항해를 했고, 심지어 배의 설계 단계부터 촬영을 시작하면서 많은 애착을 쌓아왔을 테니까.
그렇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준 배가, 고작 게임에 현실성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산산조각나는 것은 범선을 너무 사랑하기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든 해밀턴에겐 매우 가슴 아픈 일일 것이었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상혁은, 해밀턴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배를 사랑하시는군요.”
“당연하죠. 최고의 장인들에게 최고의 조건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해서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서 나온 물건입니다.
안에 있는 잔 하나, 나무 장식 하나에 전부 만든 사람의 애정이 녹아 있는 물건이죠.
범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저 배를 보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부수는 겁니다.”
“예?”
“그 멋진 경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요.
해밀턴 씨. 저는 어린 시절 플레이했었던 게임 중, 대범선 시대라는 게임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2편을 특히나 사랑했죠.
그 안에서, 저는 집에 있는 고물 컴퓨터 위에 놓인 CRT 모니터를 통해 ‘바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게임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형편없는 그래픽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엔 꽤나 멋진 그래픽을 가진 게임이었죠.
그 안에서, 저는 엄지손톱만 한 작은 배를 커다란 범선이라고 생각하며 넓은 바다를 누볐습니다.
부족한 그래픽을 상상력이라는 모듈로 채워 넣으면서요.
당시의 저는 범선은커녕 자신의 눈으로 바다를 직접 본 적조차 없었던 어린아이였지만, 게임을 통해 범선과 해적이란 존재와 사랑에 빠질 수 있었죠.
그 안에서, 저는 해적도 될 수 있었고 모험가도 될 수 있었으며 지도 제작자도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의 게임을 통해, 현대의 게이머들도 그런 감각을 느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그래픽을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으며, 해밀턴씨가 그랬던 것처럼 가상의 범선을 타면서도 진짜 범선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은거죠.
그리고 그 사랑은, 단순히 범선을 타는 즐거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처음 조선소에 있는 ‘내 배’를 보았을 때의 흥분.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타고 만져보면서 느껴지는 감각.
다른 배도 아닌 ‘내’ 배가, 돛을 내리고 바람을 가르며 대양을 가로지르는 것을 볼 때의 느낌.
그리고 그 배가 대포알에 맞아 갈라지고 박살 날 때 느껴지는 안타까움.
그것을 위해서, 저희는 게이머가 가상의 배를 ‘진짜’처럼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계산이나 물리 엔진으로 이루어진 ‘만들어진 감각’이 아닌, 현실의 물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혼’이 필요하고요.
물리 엔진만 가지고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제6의 감각까지 전부 느껴질 듯한 생생한 표현.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단순히 힘들게 만든 범선을 허무하게 박살내는 행동이 아닙니다.
현실에 있는 배의 영혼을, 가상의 배에 넣을 수 있도록 데이터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죠.
그 과정을 통해, 저희는 플레이어가 저희 게임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 내가 진짜 배를 타고 있구나.’
‘아, 내 배가 지금 부서지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구나.’
‘진짜 배를 탈 때는 이런 느낌이 나는구나!’
‘진짜 배가 부서질 때는 이런 느낌이 나는구나!’
배에 구멍이 나서 물이 들어올 때 발끝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감각, 대포알을 맞아 뚫린 구멍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화약 연기.
연속 발사로 달아오른 포신의 뜨거움.
달궈진 대포알에 맞아 타오르는 젖은 나무의 냄새.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그 모든 감각을 포함할 때, 저희는 진정으로 그 배의 영혼을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 영혼은 수없이 복제되어 수많은 게이머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눈빛엔,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에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눈을 보면서, 해밀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혁의 말에 담긴 감정은, 자신이 범선을 보며 느꼈던 ‘아까움’ 정도의 감정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밀턴은 그제야 PTW가 어째서 부서질 용도로 만든 배에 이토록 큰 노력을 쏟아부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배의 영혼’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가장 멋진 배’의 영혼을 옮겨 담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할 테니까.
그리고 PTW의 목적이, 단순히 자신들의 게임에 현실감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들은 ‘범선의 영혼’을 디지털로 구현하려 하고 있었고, 그것은 해밀턴이 상상하는 ‘게임 제작’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포격 테스트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민준아. 준비해줘.”
해밀턴은 격한 테스트를 진행하며 중간에 몇 번씩 PRD에서 내려 구토를 하면서도, 다시 PRD에 오르는 민준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런 민준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단 하나의 데이터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는 상혁의 모습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해밀턴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것은 적어도 저런 각오를 하고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의 게임이라면,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 게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