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17화 (418/485)

417. 과거와 현재와 미래

1492년 8월 3일.

당시 금값에 맞먹던 후추를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빙 돌아야 했던 기존의 항해 루트 대신, 둥근 지구를 반대편으로 돌아 새로운 항해 루트를 개척하고자 했던 모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사랑하는 고국을 떠나 아무도 가보지 못한 넓은 바다로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2일.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의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인도라고 생각했기에, 인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곳의 이름을 ‘서인도 제도’라고 명명했다.

카리브해(Caribbean Sea)는 아메리카 대륙 북해안, 중앙아메리카 동해안과 서인도 제도에 둘러싸인 대서양의 내해다.

콜럼버스에게 발견된 이후 수백 년간, 유럽 출신 해적들의 근거지가 되어 수많은 전설을 낳은 지역이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21세기를 맞이한 지 20년이 넘어간 해에, 그곳에는 다시 한번 과거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카리브해에 있는 작은 섬나라.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은 동카리브 해의 소앤틸리스 제도 남방에 떠 있는 약 6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였다.

상혁은 해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유명한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촬영지이기도 한 그곳을 집결지로 선정했다.

PTW에서 동시에 발주시킨 12척의 범선이 하나로 모일 장소로.

원래는 해적 섬으로 유명한 아이티의 토르투가(Tortuga)섬을 집결지로 선정하려 했지만, 당시 아이티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기에, 좀 더 안정적인 계약이 가능한 곳을 고른 것이었다.

1979년에 영 연방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나름 안정적인 정치 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독립국이었기에.

게다가 영어가 공용어인 나라라 업무 협력을 받아내기도 쉬운 편이었고.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PTW는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에서 범선을 이용한 ‘전투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장관이네요. 진짜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과 범선 위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말하자, 옆에 있던 민준이 답했다.

“그렇죠. 400년쯤 거슬러 올라간 시대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거니까요.”

“이번 촬영은 저희에게도 참 뜻깊은 촬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목조 범선을 12척이나 만드는 미친 짓을 시도할 회사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촬영은 잘 진행되어 갑니까?”

“범선의 제작 단계부터 전부 촬영해서 현재는 초반 부분을 편집 중입니다.

보내주신 영상 소스 중에 좋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편집에 애를 먹고 있죠.

이번 주 전투 실험에 대한 촬영까지 마치면, 시즌 2 촬영도 끝날겁니다.”

“시즌은 몇 부작으로 기획하고 계신가요?”

“상혁 씨와 이야기한 대로, 범선제작 과정을 담은 6부작 다큐멘터리가 시즌 1이 될 거고, 민준씨와 항해했던 3달간의 여정을 담은 내용이 마찬가지로 6편짜리 시즌 2가 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데이터가 적용된 게임에 대한 내용과 발매 이후의 반응을 담아서 시즌 3가 제작되겠죠.”

“게임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로는 최대 규모의 시리즈가 되겠네요.”

“애당초 게임 제작을 가지고 만드는 다큐멘터리가 별로 없으니까요.

본사에서도 좋은 시청률을 기대하는 중입니다.

그나저나 PTW의 영업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세상에 게임을 만드는 데 미국의 항모를 동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말하자, 민준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민준이 타고 있는 범선과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거대한 항공모함 한 척이, 호위를 위해 참가한 다른 함선들과 함께 지평선을 가리고 있었다.

주변을 떠다니는 범선과 함께 섞여 있는 현대식 항모의 존재는 마치 15세기 한가운데로 항모 전단이 타임슬립 한 것 같은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이질적인 풍광을 보며, 남자가 민준에게 물었다.

“근데 범선끼리 전투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어째서 항모가 필요하죠?”

그러자 민준이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항해 도중에 범선 안에 설치된 센서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예. 그 녹색 LED가 달린 검은색 상자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 센서는 실내용 센서고, 지금 해밀턴 씨가 타고 있는 이 배의 내부에는 12만개 정도의 센서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항해 내내 그 센서들을 모해 수집된 데이터를 위성 통신을 통해 PTW 본사로 전송했죠.

그건 항해 도중에 모인 데이터의 양이 위성 통신을 통해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투 테스트는 다르죠.

지금 저희가 타고 있는 배를 제외한 다른 배에도 비슷한 숫자의 센서가 장착되어 있고, 테스트가 시작되면 그 모든 배가 한번에 데이터를 보내기 시작할 겁니다.

그 많은 데이터를 한번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근거리에서 바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일종의 데이터 센터 설비가 필요하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데이터 센터는 전기 먹는 괴물이고요.”

“그래서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항모의 전원을 빌린다?

일개 게임회사에서, 그런게 가능이나 합니까?

대체 어떻게 설득한 거죠?”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PTW는 현재 미국 국방의 핵심축으로 평가받고 있는 워 다이버를 개발 및 납품하는 업체이기도 하죠.

아마도 그쪽 관련해서 모종의 조건을 제시했을 겁니다.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지만요.

아마도 상혁은 알고 있겠죠.”

민준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실제로 상혁이 ‘이동형 워다이브 시스템’의 설비 실험을 빌미로 미 국방부에서 항모를 삥 뜯었기 때문에.

상혁은 협력 관계에 있는 DARPA를 통해 ‘항공모함’을 빌려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미 국방성에 전달했고, 이유를 묻는 미 국방성 관계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현재 미국 본토 내부가 아닌 파병지역에서 사용되는 워 다이버는 병사들의 빠른 전투 데이터 수집 및 제공을 위해 현지에 발전설비와 함께 소규모 AI 센터를 건설할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적의 주요 타겟이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핵심 설비이기 때문에, PTW에서는 해당 장비를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항공모함 안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신형장비를 개발하였습니다.

해당 장비의 테스트를 위해, PTW에서는 미 국방성에 해당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 전력을 갖춘 항공모함의 제공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이후 이어진 실무 협의에서, 상혁은 항모에 실을 수 있는 신형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신, 한 달이란 기간 시험용으로 제공된 항모를 원하는 목적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었다.

미국의 국익이나 외교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서.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민준이 타고 있는 범선 뒤쪽에 정박해 있는 거대한 항모 전단의 모습이었다.

카리브 해에 동원된 미국의 니미츠급 항공모함.

CVN-75 해리 S. 트루먼이 이곳에서 맡은 역할은, 워 다이버의 신형장비 테스트를 핑계 삼아, 해상전 테스트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데이터를 대신 처리해 줄 ‘움직이는 데이터 센터’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저기, 배가 오는데요?”

그때, 카메라를 들고 있던 스태프가 항모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민준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나열된 범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대식 모터보트가, 바다를 가르며 민준이 탄 범선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작은 보트에서 밧줄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민준의 범선에 올라탄 인물은, 무려 4개월 가까이 민준과 떨어져 지냈던 민준의 가장 오랜 친구.

PTW의 CCO, 이상혁이었다.

“우왓! 까매! 누가 보면 남미 사람인 줄 알겠다!”

상혁은 배에 올라타 민준을 보자마자 뒤로 흠칫 물러서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민준은 그런 상혁의 반응을 보고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너도 바다에서 4개월쯤 지내봐라. 안 까매지고 배기나.”

그러자 상혁도 민준의 손을 마주 잡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완벽한 백업을 준비했다 하더라도, 15세기 기술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범선을 타고 유럽에서 카리브해까지 이동하는 것은 결코 안전한 일이 아니었기에.

바다는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는 위험천만한 존재였기에, 상혁은 민준이 무사히 이곳까지 도착한 것에 대해 마음속으로 매우 안도하고 있었다.

“쉽 비스켓은 좀 먹을 만 하디?”

“한국 가면 치과부터 가야 할 것 같다.

진짜 무지막지하게 딱딱하더라.”

“그래도 넌 선장이니까 별도로 식사가 나갔을 텐데?”

“궁금해서 먹어봤지. 그리고 우리라고 계속 쉽 비스킷만 먹은 건 아니야.

몇몇 미친 인간들을 제외하고는, 우리도 지원함에서 계속 현대식 식사를 받아서 먹었으니까.”

“미친 인간들?”

“있어. 해적의 마음을 느껴보겠다고 쉽 비스켓이랑 육포만 오질라게 먹다가 괴혈병 판정받고 지원함으로 실려 간 정신 나간 개발자 몇 명이.”

그 말을 들은 상혁은 잠시 고민하다 진지한 표정으로 민준에게 말했다.

“그거 공해상에서 발생한 건데 산재처리 해줘야 하나?”

“미친놈아!”

“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때, 조금 전까지 민준과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상혁 씨, 아무리 오랜만에 만났다지만 너무 친구분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여기 저도 있는데.”

“아, 해밀턴 씨.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으로 만난 게 1년이 넘었죠?”

“그렇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이상혁 씨.”

상혁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내미는 남자.

그는 상혁이 이번 범선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기 위해 외주를 요청한 내셔널 지오그래픽(NGC) 소속의 프로듀서, 알렉산더 해밀턴이었다.

그의 손을 잡으며 악수를 나눈 상혁은 그에게, 항해에 관해 물어보았다.

“어땠습니까? 범선을 타고 다닌 4개월은?”

“끔찍하면서 멋진 경험이었죠. 항해 기간의 절반은 거의 취한 상태로 진낸 것 같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서, 술 마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뭐 그 끔찍하면서 멋진 경험도 이번 주가 마지막일 겁니다.

이번 주에 전투 테스트가 끝나고 나면, 이 멋진 범선들은 전부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될 테니까요.”

그러자 상혁의 말을 들은 해밀턴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상혁에게 질문했다.

“진짜로 전부 가라앉힐 생각입니까? 이 12척 전부를?”

“아마 그렇게 되겠죠.”

“어째서요? 아니, 진지하게 말해서, 솔직히 이 범선들은 지금이라도 구매자를 찾으면 누구든 나설 만큼 멋진 무동력 범선들입니다.

불편하긴 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만큼, 장거리 항해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구현되어있는 범선이기도 하고요.

하다못해 박물관에 기증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굳이 대포로 다 박살 내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유가 뭡니까?”

“리얼함을 위해서죠.”

“리얼함이요?”

“해밀턴 씨. 현존하는 물리 엔진 중에, 가장 완벽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물리 엔진이 무슨 엔진인지 아십니까?”

“그야 PTW의 리얼 엔진 아닙니까?”

“현실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시스템도, 현실이 가져다주는 현실성을 압도할 수는 없죠.

8킬로그램짜리 금속제 포탄이 함선의 측면을 강타할 때 바닷물에 젖은 목제 파편이 어떤 형태로 튀어 오르는지.

그리고 그 소음은 어느정도인지.

포탄에 맞은 마스트가 부러지면서 선체를 강타했을 때 배가 어느 정도의 충격을 받는지.

구멍이 뚫린 배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하는지.

22노트의 속도로 거대한 전함에게 옆구리를 들이받혔을 때 몇 명의 선원들이 갑판에서 튕겨 나가 바다로 떨어지는지.

저희가 그 모든 것을 컴퓨터로 시뮬레이트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진짜 현실적인 데이터인지는, 현실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데이터를 가진 회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없는 데이터는 만들어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범선을 가지고 전투 테스트를 하려는 것도 그 이유에서고요.”

“하지만 범선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타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 좋은 스턴트 맨을 쓴다 하더라도, 사람이 탄 배에 대포알을 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말한 해밀턴은 갑자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아니, 아무리 저라도 그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게임 만들겠다고 미국 해군의 항모 전단을 끌고 온 사람의 말이라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군요.”

“범선이야 다시 만들면 그만인 물건이기도 하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저희 PTW의 직원들은 한명한명이 전부 보석같은 존재들입니다.

세상 어느 게임회사 직원들이 ‘해적의 마음’을 이해하겠다고 쉽 비스킷과 육포만 먹다가 괴혈병으로 실려 나가겠습니까?

그 정도로 열정적인 직원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죠.”

“그럼 어떻게 이 위험한 테스트를 진행하실 생각이죠?”

해밀턴의 질문을 들은 상혁이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건 잠시 후면 알게 되실 겁니다.

지금은 일단, 배에서 내리도록 하죠.”

상혁이 민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민준이 선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배를 버려라!”

그러자 선원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작은 보트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범선은 단 한 사람도 타지 않은 상태로 카리브해의 바다 위에 방치되었고, 상혁은 그런 선원들과 함께 자신이 출발했던 미국의 항모 트루먼 호의 갑판 위로 이동했다.

그곳엔 항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모양의 컨테이너 박스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그 위에서, 해밀턴은 갑판 위를 바라보며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풍경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현대식 복장을 갖추고 있는 상혁과 PTW의 직원들.

그리고 15세기의 해적 복장을 하는 민준과 선원들.

그 주위를 부산히 돌아다니는 해군 복장의 미군들.

시대와 출신이 명확히 구분된 3개의 그룹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모습이, 너무나 말이 안 되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대체 무슨 공간에 서 있는 걸까?’

혼란에 빠진 해밀턴의 곁에, 상혁이 다가와 말했다.

“개판이죠?”

“예? 하하하···. 뭐···.”

“하지만 좀 더 정신줄을 잡아두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저 컨테이너 박스가 열리면 좀 더 미친 풍경이 될 테니까요.”

“저 안에 뭐가 들어 있길래?”

“글쎄요.”

상혁이 해적 복장을 한 민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엔 과거가 있죠.”

그리고는 갑판 위의 미군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엔 현재가 있고요.”

마지막으로, 상혁이 가리킨 것은 갑판 위에 있는 컨테이너였다.

흔히 쓰이는 주름진 모양의 철제 컨테이너가 아닌, 마치 SF 우주선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멋진 형태의 금속제 박스.

그것을 가리키며 상혁은 이렇게 말했다.

“저 안에 있는 건 미래입니다.”

***

갑판 위로 이동한 민준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스컹크 웍스 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갑판 위에 노트북을 펴고 미리 지시한 작업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늘 테스트에서 수십 할 ‘메인 데이터’외에, 미리 PTW에서 수집해놓은 ‘보정 데이터’를 확인하기 위해.

거기엔 PTW의 지하 실험실에서 수행된 수많은 물리 실험의 결과 데이터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포의 데이터는 이게 끝인가요?”

“예. 대포의 종류와 크기, 그리고 피사체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테스트를 수행하여 정리했습니다.

팔코네트(Falconet), 세이커(Saker), 데미컬버린(demi-culverin), 컬버린(Culverin), 데미캐논(demi-cannon), 캐러네이드(carronade), 봄바드(bombard)까지.

크기와 종류, 재질에 따라 다양한 함포의 파괴력을 테스트했고 화약의 양과 습도에 따른 탄 속의 변화도 측정했죠.

테스트에 사용된 포탄만 5만 발 가까이 될 겁니다.

거기에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포탄이 아니라 잡동사니를 넣고 쏜 테스트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나고요.”

“피사체는?”

“삼나무, 붉은 소나무, 너도밤나무, 느릅나무, 호두나무, 티크, 떡갈나무, 마호가니, 동판, 철판, 돼지 사체와 마네킹, 밀을 채운 포대, 술이 가득 찬 오크통, 물통, 15세기 싱크대와 옷장, 벽돌, 대리석, 화강함, 스테인드글라스에 뼈까지 구현된 실물 크기 인체 모형.

살아있는 것 빼고는 웬만한 건 다 테스트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민준은 빠르게 데이터를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글쎄요. 피부를 보면 저희보다는 민준 씨가 더 고생하신 것 같은데요?”

“많이 어색합니까?”

“아뇨. 보기 좋습니다. 안 그래도 매일 실내에서 키보드만 두드리면서 햇볕과는 담쌓고 사시던 분이니까요.

오히려 좋은 재 충전의 기회가 되신 듯하네요.”

“그래도 제가 자리를 비워서 여러분이 더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네요.”

“반대로 없어서 더 편한 점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민준 씨가 있었을 땐 저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언제나 민준 씨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저희는 민준 씨가 짠 코드를 보면서 ‘이 코드가 어떻게 저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를 알아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야 했으니까요.

반대로 자리를 비우시니 저희끼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싸매야 했는데, 다들 탑클래스 전문가들이다 보니 그것도 꽤 즐거운 과정이었습니다.

가끔 진짜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위성 통신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하긴 했지만요.”

“요청받은 양이 좀 많던데요?”

“과제가 과제지 않습니까. 나머지 부분을 저희끼리 완성하는 것도 진짜 엄청나게 힘들었습니다.”

그러자 민준이 컨테이너가 있는 방향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려운 과제긴 하죠. 저기 들어갈 데이터도 전부 준비하신 겁니까?”

“기본적인 데이터는 민준 씨가 행해 중에 모아서 전달해준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했고, 거기에 상황 대응에 따른 특수 데이터를 추가했습니다.”

“특수 데이터?”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민준이 살짝 옆으로 비켜서자, 스컹크웍스 팀원이 노트북을 조작했다.

그리고는 민준에게 미리 준비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

거기엔 마치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3D 모델이, 배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민준은 그 화면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쪽 배경이 터져나가면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고 팀원에게 질문했다.

“포격 상황에서의 움직임? 저건 제가 보낸 데이터가 아닌데요?

만든 애니메이션인가?”

“아뇨. 실제 사람의 반응을 데이터로 만들어서 해서 넣은 겁니다.”

“실제 반응이요? 사람한테 직접 대포를 쏘지 않는 이상은 수집하기 어려운 데이터였을 텐데?”

“쐈죠.”

“예?!”

“진짜 대포알은 아니고, 가상의 대포알을 쏜 거죠.”

팀원이 설명했다.

“이 아이디어는 상혁 씨가 제안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함선의 특정 장소를 현실의 세트로 똑같이 구현한 다음, 그걸 같은 해상도의 VR 공간으로 만드는 거죠.

그리고 그 안에서 테스트 인원에게 특정 임무를 수행하게 한 다음, 가상의 포탄을 그 공간으로 날려 보냅니다.

로프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움찔하는 반응을 보이는지,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로프를 손에서 놓고 자연스럽게 도망가는 액션을 취하는 지.

최대한 현실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지금의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몇몇 스태프들에게는, 선을 넘는 위험한 실험도 자행했고요.”

“선을 넘는?”

“오류가 발생한 것처럼 일부러 UI를 보여줬다 끈 상태에서 가상의 대포알을 쐈죠.

보는 사람으로서는 세트장 안의 환경과 가상환경의 구분이 불가능하니, 시스템 오류로 인해 진짜로 대포알이 발사된 거라고 착각할 수 있게요.”

“미친! 그러다 고소당하면 어쩌려고······.”

“저희도 그 위험성을 제기했는데 상혁 씨가 그러더군요.

적어도 이 게임을 만드는 직원들이라면, 그냥 웃으면서 넘길 거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진짜로 웃으며 넘겼습니다.

‘이런 미친! 진짜로 죽는 줄 알았잖아요!’라고 하면서.

더 황당한 게 뭔지 아시나요?

‘방금 내가 보인 반응을 NPC AI가 보여준다는 거죠? 그거 X나게 리얼하겠네!’

라면서 기뻐하는 인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죠.

이 게임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 그냥 PTW의 개발자들은 전부 정신 나간 인간들밖에 없다는 걸.”

그 말을 듣는 민준의 머릿속에, 괴혈병으로 실려 가던 직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입술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들것에 실려 가던 직원의 모습이.

그것은 ‘광기’라는 단어 말고는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또 하나의 사실도 알고 있었다.

상혁이 테스트 인원을 고르면서, 고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할 만한 미친 인간들만 골라서 집어넣었을 것이란 사실을.

상혁은 그런 개발자를 구분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인 데이터로 저희가 만든 게 지금의 AI입니다.

민준 씨가 4개월 동안 항해하는 선원들을 통해 수집한 모션 데이터와, PTW 본사 지하의 실험실에서 수집한 데이터.

그것들을 가지고 완성한,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가상 선원’의 AI가, 바로 저기에 담겨 있죠.”

그때, 대화하는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온 상혁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이제 ‘전투 테스트’를 위한 준비를 할 시간이 되었다고.

그리고 상혁은, 민준에게 해당 테스트의 ‘마지막 준비’를 위한 버튼을 보여주었다.

마치 ‘핵 가방’처럼 생긴, 두 개의 키를 꽂는 구멍이 있는 은색 가방을.

“여기 동시에 키를 꽂고 돌리면 ‘저게’ 동작하게 될 거야.”

“그냥 컨테이너에 버튼을 달아도 되는 문제 아니었나?”

그러자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민준의 질문을 되받아쳤다.

“그건 로망이 없잖아.”

“그건 그래.”

“그럼 같이 할 거지?”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이 두 개의 열쇠 중 하나를 넘겼다.

“준비 됐어? 셋을 셀 거야. 1이 나온 다음 타이밍에 맞춰.

3···. 2···. 1···. 지금!”

그리고는 민준과 타이밍을 맞춰 동시에 열쇠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순간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거대한 컨테이너가 붉은빛을 점멸시켰다.

그리고는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컨테이너가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선의 해치가 열리는 듯한 그 모습을 보며, 민준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물었다.

“저 연기도 그냥 연출이지?”

“당연하지.”

그 모습을 보던 해밀턴은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맨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이거 찍고 있어?!”

“당연하죠!”

“젠장. 이번엔 뭘 준비한 거길래 저리 요란한 연출을···. X친 저게 뭐야!?!?”

해밀턴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컨테이너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물건이, 그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는 충격적인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를 가까스로 찾아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혁을 향해 물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 물건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 저거, 로봇 맞죠?”

그러자 상혁이 환한 표정으로 해밀턴을 보며 답했다.

상혁의 대답은, 해밀턴이 기대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을 담은 대답이었다.

“네. 맞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스턴트 봇(Stunt Bot).

원래는 테슬러에서 개발 중이었던 인간형 로봇의 프로토타입을, DARPA의 도움을 받아 저희 PTW가 뜯어고쳐 만든, 오직 대포알을 맞기 위해 태어난 로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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