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유대감의 존재
시대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이란 매체가 재미를 전달하는 방식은 꽤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단순히 화면 위에서 두 플레이어가 선을 움직여 점을 튕겨내 상대를 이기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의 게임에서 수백 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보장하는 수천 개의 퀘스트가 포함된 오픈 월드 RPG 게임까지.
겨우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개발자들은 온갖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각각의 장르가 전달하는 재미를 극대화 시키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은 싱글 플레이 오픈 월드 RPG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물음표’ 표시 역시, 그런 개발자들이 탄생시킨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지도의 어디에 플레이어가 주목해야 할 무언가가 있는지 알려주고, 수많은 NPC 중 어떤 NPC가 퀘스트를 가졌는지, 그리고 어떤 직역을 아직 탐색하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
물론 그런 전달 방식에도 호불호는 있게 마련이다.
어떤 유저들은, 과거의 RPG가 그랬던 것처럼 유저가 직접 퀘스트를 찾아 마을 주민들에게 말을 걸고, 그렇게 모인 정보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게임의 진정한 재미로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어떤 방식이 유행하는 것에는 그에 따른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싱글 플레이용 오픈월드 RPG에서 물음표 인터페이스가 유행하게 된 이유를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스트레스.
퀘스트 하나를 찾기 위해 별 내용도 없는 주민들의 대화를 하나하나 듣는 과정이나, 길에서 벗어난 외딴 오두막에 숨어있는 NPC의 퀘스트를 발견하려 필드 전체를 뒤지는 행위는, 많은 유저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된다.
대부분의 유저들이 NPC가 떠드는 마을의 고민거리나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 따위보다는 퀘스트와 몬스터, 보상과 경험치에 더 많은 흥미를 느끼기 때문에.
게다가 퀘스트 마커가 없으면 개발자들이 만든 수많은 퀘스트들을 유저가 그냥 지나쳐 버릴 위험도 있다는 것도 현대의 많은 오픈월드 RPG들이 퀘스트 마커 시스템을 사용하게 만드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유저의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진 퀘스트 마커 시스템은 반대로 유저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체 맵을 여는 순간 맵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음표를 보면서, ‘저걸 언제 다 깨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거나, 혹은 단 하나의 퀘스트도 놓치지 않겠다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자극해 저 레벨부터 엄청나게 많은 퀘스트로 플레이어를 지치게 하고, 정작 메인 퀘스트가 시작될 때는 앞서 진행한 수많은 서브 퀘스트로 누적된 피로 때문에 스토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험은 오픈월드 RPG를 즐겨 하는 유저라면 생각보다 자주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상혁은 게임이 의미 없는 물음표로 가득한 리스트 채우기 형태의 게임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퀘스트 작업에 투입된 개발자들에게 세 가지 원칙을 지킬 것을 강조했다.
첫째, 게이머에게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을 시키지 말 것.
자신들의 마을에 도착한 외지인에게,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과를 10개 가져오라.’ 같은 부탁을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임무에는 으레 보상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소중한 돈을 의미 없는 심부름에 쓰고 싶지 않아 하니까.
만약 시킬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주민들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라면, 그들은 지인에게 부탁하지 처음 보는 외부인에게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혁은 퀘스트의 전제 조건으로 반드시 ‘절박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주민들이나 지역 유지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오직 외지에서 흘러온 강자만이 해결할 수 있을 만한 문제.
심지어 문제의 심각성이 너무 높아 외지인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상혁이 말하는 ‘절박함’이었다.
둘째로 상혁이 강조한 것은 ‘퀘스트의 내용을 퀘스트 마커의 도움 없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상혁은 작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상적인 퀘스트 형태의 예시를 들어 주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플레이어가 되어 어느 마을의 거리를 걷고 있다고 치죠.
그때 여러분은 갑자기 가게 주인에게 무지막지하게 구타당하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구타의 현장에서, 어린아이가 무지막지하게 얻어맞는 것을 말리지도 않은 채 주변을 둥글게 둘러싸고 오히려 본때를 보여주라고 소리치는 주민들을 보게 되죠.
보이는 정보로는 소년이 가게의 음식을 훔치다 주인에게 얻어맞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끔찍한 폭력이 종료되고, 소년은 얼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다친 다리를 절뚝이고 골목길로 걸어가죠.
이때, 게이머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소년을 따라가고 싶겠죠.”
한 개발자가 이야기하자, 상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이유는 방금 본 상황 자체가 매우 이질적인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그렇게 어린아이가 구타당하는 장면을 쉽게 보지 못하죠.
그러니 그런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연스레 그것이 뭔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따라간 장소에서 병으로 누워있는 소년의 여동생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겁니다.
단순히 길을 가다 거지꼴을 한 소년에게 말을 걸어서 퀘스트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 특정한 ‘이질감’을 발생시켜서 퀘스트의 존재를 알리는 것.
이것이 이상적인 퀘스트 제작의 두 번째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수백 수천 개의 퀘스트에 모두 사연과 도입부 연출을 부여해야 하는데요?”
“유저의 기억에 남는, 정말로 재미있는 퀘스트 100개가 재미없는 퀘스트 1만 개보다 낫죠.
퀘스트를 작업하기 전에,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지금 내가 만들려는 퀘스트가 과연 컨텐츠 양을 불리기 위해 무리하게 들어간 퀘스트인지, 아니면 정말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어서 들어간 퀘스트인지.
만약 작업 중인 퀘스트가 단순히 컨텐츠 불리기용 퀘스트라는 생각이 들면, 그 작업은 과감하게 파기하거나 더 재미있는 방향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상혁이 마지막으로 내건 조건은, ‘퀘스트에 의미를 부여하라.’라는 것이었다.
그 퀘스트를 완료함으로 인해 유저가 자신의 모험담에 멋진 한 줄을 추가할 수 있도록.
상혁은 이 게임이 게이머가 ‘자신만의 모험담’을 만들 수 있는 게임이 되길 원했다.
“조금 전 설명했던 퀘스트에서, 개발자는 단순히 여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모습을 게이머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다.
여동생의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차마 병원엔 데려가지 못해도 밥이라도 잘 먹이고 싶은 오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겠죠.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그건 그냥 가난한 남매를 도와주었다는 수준의 사소한 경험이 되고 맙니다.
이상적인 퀘스트라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죠.
왜 주민들은 가난한 남매를 도우려 하지 않을까?
왜 어린 소년은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도둑질을 해야만 했을까?
소녀는 무슨 이유로 어떤 병에 걸리게 된 것일까?
퀘스트는 그 퀘스트가 발생한 지역의 삶과 분위기, 그리고 그곳 주민들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어야 합니다.
보상이 있으면 좋지만, 보상이 없어도 퀘스트를 플레이하는 것만으로 끝내주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그 퀘스트를 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야 하죠.
그런 기분이 들려면, 플레이어에게 성취감을 주어야 하고요.
그 성취감은 단순히 미니맵에서 물음표 하나를 없앴다는 것이 아닌, 플레이어가 어떤 사건의 중간에 개입하여 그 사건을 ‘해결’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나오는 성취감이어야 합니다.”
그 이상적인 사례로, 상혁은 ‘와쳐3’의 퀘스트 라인을 예로 들었다.
“와쳐 3에서 첫 마을에 들어갔을 때, 플레이어는 마을에 진입하기 전부터 나무에 주렁주렁 메달려있는 시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간 주점에서, 최근에 있었던 전쟁에 대한 정보와, 주인공 일행을 탐탁치 않아 하는 주정뱅이들을 만날 수 있죠.
그곳에서 플레이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지금 플레이어가 있는 백색 과수원이란 곳이 북부 왕국에서 닐프가드의 영토가 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는 정보이고, 둘째는 주인공의 직업인 ‘와쳐’가 사람들에게 환대받지 못하는 직업이라는 거죠.
외쳐 3에서는 술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사실을 도입부 연출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이질감’입니다.
일반적인 RPG 게임 속 주점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배척당하고 멸시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이 마을에서 무언가의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려주죠.
그리고 그곳의 퀘스트인 드워프 대장장이 퀘스트를 보면, 한눈에 보기에도 화재가 벌어진 현장에서 슬퍼하고 있는 대장장이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는 방화범을 잡고 싶어서 하지만, 그가 점령국의 병사들인 닐프가드 군대에 무기와 갑옷을 납품한다는 사실 때문에 주민들의 미움을 받아 협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절박함’입니다.
길을 가는, 그것도 돈만 밝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존재들이라고 소문난 주인공 일행에게, 보수를 지급할 테니 내 일을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절박함.
그것은 플레이어가 그 퀘스트를 해결해야 하는 스토리 적 당위성을 제공해줍니다.
마지막으로, 그 대장장이 퀘스트에서 플레이어는 방화범을 추적해 신고할 수도, 아니면 군대에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미약하나마 게임 속 세계에 반영되죠.
신고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그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고, 반대로 신고를 한다면 대장장이가 편하게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와쳐 3의 모든 퀘스트가 3가지 조건을 다 갖춘 상태로 완성되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 게임에서도 잘 만든 퀘스트는 대부분 이 3개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죠.
하지만 그것이 지금까지의 오픈 월드 RPG가 가지는 ‘좋은 퀘스트의 조건’이라면, 저희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이 게임의 퀘스트에 요구하고자 하는 4번째 조건이고, 이 게임을 기존의 오픈 월드RPG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저희 게임만의 특징이죠.”
그러자 다른 작업자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이미 3개의 조건만 갖춰도 충분히 좋은 퀘스트 같은데, 거기 더 붙일 게 있습니까?”
“물론 ‘의외성’, ‘절박함’, ‘의미’.
이 3가지의 조건만 잘 갖추고 있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퀘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으면 합니다.
저희 게임의 퀘스트를 단순히 해결해야 할 사건이 아닌, 진짜 모험담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그 4번째 조건이 뭡니까?”
“그건 바로 ‘유대감’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오픈 월드 RPG에서, 퀘스트의 주체들은 항상 정적인 존재로 필드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해진 자리, 혹은 지역을 배회하면서, 플레이어가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대기하다가 퀘스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현실성이 결여된 퀘스트 부여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개발자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에게는 기존의 방식도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한번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NPC라고 가정하죠.
제 옆집에 민준이라는 NPC가 사는데, 그의 직업은 약초꾼입니다.
하지만 민준은 얼마 전부터 전혀 약초를 캐지 못하고 있었죠.
숲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짐승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저는 아주 멋진 장비로 무장한 한 무리의 모험가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라면, 숲의 괴물을 퇴치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럼 저는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그들이 민준의 집에 방문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민준의 운이 좋기를 바라며 모험가들을 방관할까요?
아니면 모험가들에게 다가가 옆집 사는 주민이 숲의 괴물 때문에 힘들어하니 그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부탁할까요?”
그러자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개발자가 입을 열었다.
“후자겠죠?”
“그렇죠. 특히나 중세 시대의 마을은 굉장히 폐쇄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들은 매년 모여서 수확을 축하하고, 힘을 모아 재난에 대비하며, 외지인을 배척하고 주민들끼리 뭉치려는 성향이 있죠.
옆집에 누가 언제 애를 낳았는지, 누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는 게 그 시대의 주민들입니다.
그러니 곤란한 이웃이 있다면, 주인공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주인공의 방문을 이웃에게 알려주는 식으로 이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 하겠죠.
그리고 만약 주인공이 자신의 골칫거리를 해결해준다면, 주변 주민들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줄 겁니다.
지금 마을에 방문한 모험가들이 매우 실력 있는 자들이니, 네가 평소에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부탁하라고 말이죠.
그렇게 된다면···.”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퀘스트를 가진 NPC가 플레이어를 찾아오겠군요.
그 방식이라면, 굳이 마커가 없어도 퀘스트 몇 개를 해결하는 순간 마을의 모든 퀘스트가 플레이어를 쫓아오게 될 거고요.”
“바로 그겁니다.
저는 이 게임의 퀘스트가 단순히 제자리에서 주인공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각자 가진 고민의 크기에 따라, 때로는 바다를 건너 주인공의 명성을 듣고 주인공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하러 찾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가는 상인에게 부탁하여 섬을 도울 영웅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전에 받은 도움을 기억해 새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을 찾아오기도 하는, 말 그대로 NPC들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주인공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세계.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게임 속 세계’는, 바로 그런 형태의 퀘스트가 가득한 세계입니다.”
그 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작업자들은 상혁이 추구하는 퀘스트가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상혁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모든 퀘스트가 그런 형태로 구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형태의 퀘스트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넘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다른 게임의 퀘스트와 비교할 수 없는 재미를 가지고 있었다.
퀘스트 하나를 만드는데 기존의 게임보다 훨씬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업자가 자발적으로 상혁이 제시한 가이드 라인을 지키려고 노력할 정도로.
단 하나의 서브 퀘스트를 위해, 수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구성하며 세트를 준비하고 연기를 만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그런 팀 수십 개가 동시에 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혁은 PTW의 개발자들 사이에 자신이 기대하지 않았던 특이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째 점점 전문화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리얼 엔진은, 원래 ‘탈 전문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엔진이었다.
기획자가 기획만을, 그래픽 디자이너가 그래픽 작업만을, 프로그래머가 코딩만을 하는 것이 아닌, ‘개발 도구’의 난이도를 극한까지 낮춰 모두가 ‘개발자’로서 게임 개발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해, 리얼 엔진은 모델링 작업부터 게임 시스템의 설계 및 적용, 레벨 밸런스 작업 및 맵 디자인, 사운드 및 이펙트 작업 같은 온갖 작업을 말 그대로 ‘아마추어’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직관적이고 쉽게 쓸 수 있도록 구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리얼 엔진을 쓰다보면 엔진에 익숙해질수록 각 직업 간의 구분은 희미해지고, 서로가 작업에 간섭하기 매우 쉬운 상황이 조성되기 마련이었다.
기획자가 디자이너의 도움 없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배경을 그대로 만든다던가, 디자이너가 기획자의 도움 없이 자신이 재미있을 것 같은 퀘스트를 구현하는 식으로.
원래 리얼 엔진에서의 ‘협업’은 그런 방식의 협업을 의미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수백 명의 독립 영화 감독들이 만든 영화를, 마지막 순간에 하나로 합쳐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그 모든 개발자를 하나의 넓은 공간에 밀어 넣고 협업을 시키자, 개발자들은 다시 자신이 전담하여 작업하는 특정 프로세스만을 집중적으로 작업하는 ‘전문화’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개발팀 안에서 ‘웨더링 팀’이라 불리는, 그래픽 디자이너 팀 스웨든의 경우처럼.
그는 각 팀의 구분 없이 전체 세트를 돌아다니며, 오로지 ‘웨더링’ 작업만을 전문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Ahoy! 다들 작업은 잘 되어갑니까?”
“아, 스웨든씨. 안 그래도 슬슬 올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어요.
세트도 완성되고 퀘스트도 전부 작업이 끝나긴 했는데, 역시 스웨든씨가 마무리를 해 줘야 진짜 해적 분위기가 나니까요.”
자신을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개발자를 보며, 스웨든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눈앞의 세트를 향해 손뼉을 치며 외쳤다.
“자, 그럼 이 삐까뻔쩍한 세트에 손때를 좀 묻혀 볼까요?”
스웨든이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하는 작업은, 마치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모델링에 ‘날씨’와 ‘세월’의 흔적을 묻히는 것이었다.
돌 사이에 이끼와 물 때를 씌우고, 나무 테이블에 손때를 묻히고, 후라이 팬을 그을리고, 냄비를 찌그러트리는 것.
그는 출근한 순간부터 퇴근하는 순간까지, 오로지 그 작업만을 하고 있었다.
“그을음 텍스쳐 342-24-46.”
그는 능숙한 말투로 3개의 검은색 텍스쳐를 불러내더니 그것을 잡아 프라이팬에 붙였다.
그리고는 모델링을 주물럭거리며 흔적과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업은, 프라이팬에서 시작하여 중세식 싱크대로, 그리고 화장실과 설치된 커튼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수리한 느낌을 내기 위해 목재의 한가운데를 없앤 뒤 못으로 수리한 느낌의 다른 나무를 끼워 넣기도 하고, 마치 몇 번 던져서 찌그러진 것처럼 프라이팬의 모델링을 바꾸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가 지나가면 조금 전까지 매우 깔끔한 형태로 있었던 물건들이 순식간에 수십 년은 사용된 느낌으로 멋지게 탈바꿈되었다.
그런가 하면 사운드 팀의 어떤 개발자는 주점 작업을 하고 있는 팀을 모조리 찾아 돌아다니며 그 지역의 분위기에 맞는 자작곡을 만들어 집어넣기도 했다.
연주를 진행할 NPC의 캐릭터에 맞춰, 다양한 악기와 그에 어울리는 가사를 붙여가면서.
작업 중인 팀에 쳐들어가 해당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건이나 역사, NPC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즉석에서 곡을 만들어 부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중세시대의 음유시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 어떤 개발자는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던 전 직장의 경험을 살려서, 각 지역의 생태에 맞는 자작 요리를 게임에 집어넣기도 했다.
“이 섬은 맹그로브 숲이 근처에 있으니 머드 크랩이나 악어 계열의 재료를 쓴 요리가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이 섬의 주점에서는 특별 메뉴로 산 쥐 요리를 내놓는 거로 하죠.”
“달팽이. 여기는 느낌이 딱 달팽이를 잘 조리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의 특이한 점은, 게임 안에서 요리를 만들기 전에 꼭 현실에서도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요리를 만들어 게임에 적용하기 전에 항상 해당 지역을 작업중 인 팀원들을 불러 자신의 요리를 대접했다.
“이 요리의 이름은 엘렌 데 파다스테입니다.
달팽이와 옥수수를 주재료로 만든 요리이고, 케이준 스타일 시즈닝을 곁들여 만든 요리이죠.”
어느새 그가 만든 요리는 재료가 아무리 엽기적인 것이라도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생겼기 때문에, 팀원들은 달팽이의 외형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가 만든 요리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어 그의 요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가 만든 요리는 재료에 상관없이 언제나 맛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마을의 자랑이라고 해도 되겠는데요?”
“나중에 조리법 좀 가르쳐주세요!”
“흠, 이 요리를 주제로 퀘스트를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NPC들이 엄청나게 언급하게 만듭시다.
아니면 이 요리가 너무 좋아서 자기 자식 이름을 이 요리의 이름을 따서 지은 NPC가 있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뭘 하든 적당히 해 주세요.
지금 말씀하신 아이디어는 전부 다른 팀에서 다 써먹은 아이디어니까.
어째 가는 마을마다 전부 음식이 야기만 하면 플레이어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 게임은 고독한 미식가가 아니라고요.”
그러자 마침 그 팀에 작업하러 찾아온 사운드 팀의 ‘음유시인’이 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노래를 지읍시다.
이 음식에 대한 노래를 지어드리죠.”
“민요? 아니면 지나가던 음유시인이 이 요리를 맛보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지은 즉석 곡인가요?”
“민요라면 요리의 역사가 꽤 깊어야겠군요.
만약 역사가 깊다면 비슷한 시스닝을 쓰는 다른 요리도 있을법하고요.”
A를 완성하면 B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B를 완성하면 C라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게임을 사랑하는 개발자는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자신이 만든 게임이 얼마나 멋진지 게이머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할 뿐.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퀘스트가 아무리 멋지더라도, 너무 멋져서 대나무 숲에 들어가 ‘방금 내가 만든 퀘스트는 너무 멋져어어어’라고 소리 지르고 싶어지더라도, 그들은 언제나 하나의 지역을 완성하고 나면 바로 다음 지역을 작업하기 위해 묵묵히 이동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바로 옆에, 자신들이 만든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멋져 보이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경쟁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한 프로젝트의 모든 개발자를 하나의 가상 공간에 밀어 넣을 때 생겨날 수 있는, 매우 ‘긍정적인 방향’의 경쟁심이었다.
‘저 팀이 만들고 있는 것보다 더 멋지고 재미있게.’
‘저 팀이 만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수백 개의 팀이 경쟁적으로 최선을 다해 게임 속 컨텐츠를 개발하는 가운데,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해적과 범선이 살아 숨 쉬는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 역시 어느새 이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1년이란 시간 동안, 밥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이 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찰 지경이었으니까.
개발팀의 마음속에 있는 감정은 어느새 ‘범선을 타면 어떤 기분일까?’에서 ‘범선을 타고 싶다.’로 바뀌어 있었다.
범선을 타고 싶다.
거대한 범선의 선장이 되어, 이 가상의 세계를 마음껏 누비고 싶다.
이 게임을 하며,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게이머의 입장이 되어 느껴보고 싶다.
상혁이 독일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날은, 개발팀의 그런 감정이 극한에 도달한 날이었다.
‘만들고 싶은 마음’보다 ‘플레이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다들 작업의 텐션이 떨어져 가고 있던 바로 그 시기.
상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헐레벌떡 버츄얼 스튜디오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조정도 끝나지 않은 가상 범선에 탄 채 해적 놀이를 즐기고 있는 개발팀을 향해 소리쳤다.
“Ahoy! 여러분!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800명에 가까운 프로젝트 팀원들이 동시에 아바타의 머리에 쓰고 있던 해적 모자를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Ahoy!!!출항이다!!”
“가자! 범선이다아아!!”
“진짜 범선을 타러 가자아아아!!”
상혁은 ‘때가 되었다.’라고 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팀원들은 상혁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타이밍에, 상혁이 말한 ‘때가 되었다.’의 의미를 모르는 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잘 아는 상혁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 1년간 항해 없는 해적 게임을 만들고 있던 개발자들이 가장 듣기를 원하고 있었을 바로 그 말을.
“갑시다! 독일로! 오직 저희를 위해 만들어진 해적선을 타러!”
그런 상혁의 외침에, 개발자들이 대답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Aye!!!! Aye!!!! Captain!!!!!!!!!”